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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라 미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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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오히라 미쓰요 / 大平 光代 (おおひら みつよ)[1]
본명 니시무라 미쓰요 / 西村 光代 (にしむら みつよ)
생년 1965년 10월 18일(현재 만 [age(1965-10-18)]세)
성별

1. 개요2. 출생과 어린 시절3. 집단괴롭힘의 피해4. 배신5. 자살 시도6. 부모의 실책7. 탈선의 길로8. 갱생과 그 이후9. 저서

1. 개요

일본변호사이자 청소년문제 협의회 특별 위원. 그리고 살아있는 희망의 증거 중 하나인 분. 현재는 우메다종합법률사무소(梅田総合法律事務所) 소속 객원 변호사다.

방황과 역경으로 가득 찼던 자신의 청소년기를 기록한 자서전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2]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크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저 책을 보면 그녀의 삶은 그야말로 에미넴 수준으로 파란만장했다는 걸 알 수 있다.

2. 출생과 어린 시절

미쓰요는 효고니시노미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38세, 어머니가 37세 때 얻은 늦둥이 무남독녀이다. 어머니는 미쓰요를 낳기 며칠 전까지 직장을 계속 다녔으며, 전치태반이라서 제왕절개출산했다. 아들을 기대했던 아버지는 "딸입니다"라는 의료진의 말을 듣고는 조금 실망했지만, 갓 태어난 딸의 얼굴을 보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딸바보가 되었다. 그리고 에 가서 특별히 제일 좋은 이름을 받아왔다고 한다. '미쓰요'라는 이름은 이렇게 지어진 것이었다.

미쓰요의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셔서, 근처에 사시는 외할머니께서 미쓰요를 각별한 사랑으로 돌봐 주셨다. 부모님 또한 바쁜 와중에도 미쓰요를 몹시 사랑했다. 요리가 취미이자 특기였던 아버지는 종종 미쓰요의 도시락을 만들어 주셨고, 미쓰요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먹였다. 미쓰요의 학교에서 학예회 등의 행사가 있으면, 아버지는 직장을 쉬면서까지 참석하여 미쓰요의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다. 만나는 이웃들과 친구들에게도 딸의 자랑을 항상 늘어놓아, 아버지의 유별난 딸 사랑은 유명했다.

미쓰요는 이렇게 외할머니와 부모님으로부터 온갖 사랑을 받으며 자란, 그야말로 귀하고 소중한 아이였다. 그런데…

3. 집단괴롭힘의 피해

여기서부터 탈선의 길로 단락 부분까지는 집단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트라우마가 일어날수도 있으니 주의하자. 농담이 아니고, 정말로 내용이 끔찍하다.

불행의 시작은 미쓰요가 중학교 1학년이던 1978년, 미쓰요의 가족이 외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어서 집을 넓혀 이사를 가면서부터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했지만, 학군이 달라져서 전학을 해야 했는데, 새로 전학 간 학교의 학생들은 처음에는 미쓰요를 친절하게 대해 주었지만, 곧 이유없이 미쓰요를 집단따돌림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무시당하는 정도였지만, 그 강도는 날이 가면 갈수록 심해졌다. 책상[3]에 미쓰요에 대한 욕설을 써놓고, 미쓰요의 필통이나 부적[4] 등의 물건들을 몰래 함부로 쓰레기통에 버리고, 미쓰요가 자리를 비운 사이 미쓰요의 책상에 쓰레기를 쏟아 놓고, 화장실 칸에 들어가 있으면 문 위를 통해 물세례를 한다던지 등등. 강도가 점점 심해져서, 결국 미쓰요는 등교 거부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프다고 학교를 안 가는 것도 한계가 있어 부모님이 계속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아 결국 고백했고, 분노한 아버지는 그날 바로 "선생들은 뭐하고 있는 거냐!!"면서 학교에 전화해서 따졌다. 2~3일후 담임으로부터 "다 해결됐으니 학교에 오라"고 연락이 왔다. 미쓰요는 불안해하면서 등교하여 교무실에 갔다. 그곳에는 담임과 따돌림 주동자가 있었고, 담임은 둘에게 "서로 화해의 뜻에서 악수하라"고 엄한 목소리로 말하였다고. (당시 미쓰요는 "화해의 악수라니 이게 무슨 뜻이야?"라고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따돌림 주동자는 선생님의 말대로 손을 갖다 대기만 했지 잡지는 않았다. '화해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고 그냥 선생이 하라는 대로 시늉하는 것이다.'라고 미쓰요는 생각했고, 주동자의 손에서 전달된 뜨뜻미지근한 불쾌한 감촉은 한참 세월이 흐른 후에도 생생히 기억난다고. 이러한 상황 속에 담임이 분위기를 읽지 못했는지 "이걸로 화해한 거야, 잘됐다, 이제 오케이!"라고 만족스러운 듯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녹차를 맛있게 들이켰다.

역시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주동자는 오히려 미쓰요를 매서운 눈으로 보면서 "저 년이, 꼰대한테 일러 바쳤다"고 하면서 미쓰요를 고자질쟁이로 만들었다. 이 모든 괴롭힘의 원인은 어처구니없게도, 불량학생의 우두머리격 되는 주동자가 미쓰요한테 말을 걸어왔는데 미쓰요가 듣지 못해 대답을 하지 않았다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담임 선생과 학교에 알린 후, 눈에 크게 띄는 괴롭힘은 없어졌다. 하지만 자잘한 괴롭힘과 욕설은 계속되었다. 미쓰요는 어른들에게 알린 것을 후회했다.

4. 배신

중학교 2학년이 되어 새로 사귄 친구들마저 미쓰요를 노골적으로 배신하고 따돌림에 앞장서서, 미쓰요는 큰 상처를 받았다.

사실 1학년 때 따돌림을 주도했던 학생들이 여전히 괴롭혔지만, 따돌림 주동자와는 다른 반이 되었고, 새 학급에서 단짝 친구들을 3명이나 사귀어서 그다지 신경은 안 썼다고 한다. 미쓰요까지 포함해 4명이 단짝으로 굉장히 친하게 지냈다. 매일 함께 점심 도시락을 먹고, 가벼운 수다부터 비밀 이야기까지 많은 대화를 나누고, 넷이서 똑같은 물건을 구입하기도 하고, 학교 밖에서도 종종 만나서 놀곤 했다. 작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학교생활에, 미쓰요는 정말로 행복했다.

하지만… 그 3명의 정체 역시 친구가 아닌 가해자였다. 3명은 미쓰요의 앞에서는 친구인 척하면서, 실은 미쓰요의 비밀을 캐내어, 뒤에서 그 비밀을 퍼뜨리며 비웃고 있었다. 몸이 약해서 걸린 병이라든가, 좋아하는 남학생 등의 상당히 예민한 것들. 핵폐기물만도 못한 년들

그리고 배신하는 과정도 계획적이고 매우 악질적이며 충격적이다. 학교 끝나고 집에 가려던 미쓰요에게 동급생들이 다가와, 다짜고짜 "할 말이 있다"고 불러냈다. 미쓰요가 영문도 모른 채 교실로 따라 들어가니, 그곳에는 친구라고 믿고 있었던 새끼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갑자기 미쓰요를 장난전화의 범인으로 몰았다.

2학기 접어들면서, 반 아이들의 집으로 젊은 여자 목소리의 장난 전화가 걸려오는 일이 있었다. 예를 들어 "당신네 집 애가 도둑질을 했다, 성매매도 했다"는 식의 매우 불쾌하기 짝이 없는 내용의 전화가 하루에도 몇 번씩이고 왔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알리고 경찰에 신고했으며, 전화 내용을 녹음할 수 있는 장치까지 설치했지만 결국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겨울방학이 되어 미쓰요와 친구들과 넷이서 함께 모여 놀던 날 장난전화 범인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범인을 어떻게 잡을까 이야기하고 예를 드는데 무섭고 소름돋는 것이, "모두에게 미움 받고 있는 애의 뒤를 밟아 본다던지", "대략 범인이 누군지는 짚이는 데가 있다."라고 3명에서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미쓰요가 "범인이 누군지 아냐"고 물어봤다. 그리고 그 세 년들은 "개학하면 너도 알게 될 거야."라고 말했다고. 이때 미쓰요는 평소와 달리 이상하다는 걸 느꼈지만 그년들을 진정한 친구라고 믿고 있던 미쓰요는 '설마 걔들이 날 범인으로 지목하겠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미쓰요는 "우리 집에도 그 장난전화가 걸려 왔다"고 말했지만 가해자들의 반응은 "그걸 우리가 어떻게 믿니?"였다. 애초에 그들에게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가해자들의 목적은 처음부터 그저 여럿이서 미쓰요 한 사람을 몰아세우면서 떼를 지어 비웃고 괴롭히며 그녀의 반응을 보며 즐기는 것이었고, 장난전화 이야기는 거기 필요한 핑계였을 뿐이었다. 무려 9개월여에 걸친 친구 흉내도 처음부터 배신할 것을 계획하여 꾸민 장대한 계획의 연극이었던 것이다. 그 증거로 이들은 갑자기 장난전화 이야기를 끝내버리고 일방적으로 다른 이야기를 했다. "사실대로 말해줄까? 우린 네가 전학 왔을 때부터 재수없다고 느꼈어!"라고 시작해서 미쓰요가 앓고 있던 병[5] 얘기를 꺼내며 "할망구 같다, 빨리 죽으라"고 조롱하고, 또 미쓰요가 좋아하는 남학생 이야기를 하며 "그 남자애는 널 싫어한다, 넌 누군가를 좋아할 자격도 없다"고 조롱해댔다.

5. 자살 시도

미쓰요는 결국 이때 받은 충격을 이기지 못해 만 14살의 나이에 유서를 쓰고 부엌칼로 배를 찔러 할복자살을 시도했으나[6] 다행히도 주위를 지나가던 타인의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7]

병원에 실려간 미쓰요는 또다시 괴로움을 겪어야 했다. 중상을 입은 배의 상처와 치료과정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고, 담임이라는 인간은 병문안하러 와서는 실실 웃어 댔으며, 다른 환자들마저 자기 일 아니라고 면전에서 '너 (배를 찌르는 시늉을 하며) 이거지?'라고 묻는 등, 남의 아픔을 흥밋거리로 삼으며 무신경한 언행으로 상처를 주었다. 그 누구도 미쓰요를 위로해주거나 하다못해 동정해주지 않았다. 정말이지 하나같이들…

이런 힘든 입원 치료도 겨우겨우 끝나고… 미쓰요는 3학년이 되어 새 학급에 편성되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그녀를 감싸주기는커녕 오히려 "쟤 취미는 할복이래!"라고 크게 놀리며 비웃는 등 상황은 악화되어 있었다.

하나 예를 들자면 3학년 첫날 자기소개를 하는데, 미쓰요의 차례 때 어느 남학생이 이렇게 비꼬자 다른 학생들도 모두 따라 웃었다. 담임 선생은 미쓰요가 2학년 때도 담임이었기 때문에 사정을 다 알고 있었으나,[8] 이 쓰레기는 귀찮은 듯이 "이놈들!!" 이라고 한 마디 소리친 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소리 한 번 친 다음 수습이 귀찮은지 "자, 다음 사람"이라고 다른 학생한테 자기소개를 시킬 뿐이었다. 또 이때 미쓰요는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이걸 가지고 면전에서 대놓고 정신병자 취급하면서 비웃거나 무시하는 등 상황이 날이 갈수록 매우 악화일로를 걷기만 했다.[9] 비행 청소년이 된 결정적인 원인도, 이 악화되는 상황 속에서 아이들로부터 "제대로 죽지도 못한 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온 학교가 쓰레기

6. 부모의 실책

사실 미쓰요가 엇나가게 된 계기를 보면, 그녀의 부모에게도 확실히 큰 책임이 있다.

자살기도 후, 미쓰요는 왕따를 겪었던 그 학교로 돌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그러나 미쓰요의 부모는 딸의 의사보다 주위의 이목과 체면에만 신경을 쓰며, 끝끝내 전학을 보내주지 않은 채 미쓰요를 본래 다니던 학교로 돌려보내 버렸다. 제발 학교를 옮기고 싶다고 부탁하는데 그 학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게 제일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의견만 내세운 것이다. 미쓰요의 상황과 마음은 알려는 생각조차 안 하고 말이다.

그러기는커녕 '학제상 지금은 전학이 어렵다고 하더라'고 어른들의 사정만 내세우고, 학교의 사정이 정 안 되면 다른 학군으로 이사를 가서 학교측도 어쩔 수 없이 전학을 시켜주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법도 있었을 텐데 그러려고 하지 않은 채 미쓰요에게만 이해를 강요했다.

악화되는 상황 속에서 미쓰요가 아무리 부모님에게 전학을 요구해도, 부모님은 딸의 고통보다 남의 이목[10]에만 신경 쓰느라 미쓰요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으며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는 미쓰요에게 돌아온 말이 이랬다.
"길거리에 나가면 남들이 손가락질을 하면서 수근거려 이것아! 엄마는 어디 맘놓고 나가지도 못해. 그렇게 엄청난 일을 벌여놓고 학교에도 안 가겠다고 떼를 쓰니… 제발, 학교만은 다녀라. 남들 보기도 창피하니까."
너의 상처보다 네가 자살미수를 하는 바람에 내가 이런 꼴을 당한다는 것만 중요하다는 듯한, 오로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기만 한 부모의 태도는 미쓰요에게 더욱 큰 상처를 안겨주었다. 저런 시선들은 가능한 한 딸을 배려해 알지 못하게 해주고 자기 선에서 차단시켜줘야 마땅한데, 자식이 부모에게 의지하게 만들어 줘애 하는데, 오히려 부모가 자식에게 나약한 모습으로 하소연을 하며 자세히 알려줘버렸다. 저런 조롱들을 알게 된 딸이 상처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한순간이라도 해보지 않은 것일까? 부모로서 너무나 생각이 짧고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딸을 정신과에 데려가 치료를 시키는 과정에서도 미쓰요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상처만 주었다. 일방적으로 데려가 테스트만 잔뜩 받게 했을 뿐, 그곳에 그녀를 데려간 부모와 의료진, 그 누구도 설명해주거나 이해시키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미성년자인 중학생이라지만 철부지는 아니니, 미쓰요 본인도 자신이 정신에 이상이 있는지 검사받고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눈치챘고, '알려주면 거부할 거라고 생각한 걸까? 나도 어린애가 아니니, 잘 설명해주면 기꺼이 협조할 텐데'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에 또다시 깊은 상처를 받는다.

나중에 미쓰요가 나름대로 노력해서 미용학교에 합격했을 때는, 어머니는 잠시 기뻐했지만 이내 곧 미쓰요의 면전에서 "고등학교도 못 가고 미용학교에 가는 것을, 친척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라고 말하며 여전히 자신의 하나뿐인 친딸의 안위보다 생판 남들이 자신을 볼 시선만을 신경썼다. 미쓰요가 "그렇게 창피하냐"고 따지자 어머니는 자신의 말실수를 깨달은 듯했지만, 여기서 매우 심각한 잘못을 저지른다. 바로 사과하지 않았고 그저 어물어물 입을 다물어버릴 뿐이었다는 것. 결국 미쓰요는 "그렇게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세상 이목이라는 거, 그 벌벌 떠는 체면이라는 거, 다 때려부수고 팽개쳐버리겠다"는 심정으로 심각한 탈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사태의 심각성이 갈수록 깊어져 가는데도 부모님은 한 번도 미쓰요를 꾸짖거나 혼내지 않았다. 그저 매달리며 빌거나, 미쓰요가 보는 앞에서 한심하고 처량한 모습으로 울기만 할 뿐. 사실 천성이 너무 착해 엇나가면서도 본격적으로는 타락하질 못했던, 그리고 맘껏 비뚤어지지도 못하는 자신에게 다시 한 번 자기혐오를 느끼고 있던 미쓰요는 그런 부모에게 실망한다.

실은 미쓰요도 내심 이런 건 그만두고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부모님이 자신을 혼내고 꾸짖어주기를 바랐으며, 한번 크게 혼나고 나면 당장 손을 씻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부모님이 자신이 멈출 계기를 제공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고, 실망감은 분노로 바뀐 미쓰요는 부모에게 폭력까지 휘두르게 된다. 자신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그저 울기만 하는 주제에 딸이야 어떻게 되건 말건 세상 이목에만 신경을 쓰고 체면만 따지는 어머니는 맞아도 된다고 생각했고,이거 옳은 말 같은데...?? 꾸짖지 않는 부모에 대해 이렇게 지독한 짓을 하는데도 꾸짖지 않다니 나 같은 건 이제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거냐고 생각하며 더욱 배신감을 느끼고 분노하는 상태였다고 한다.

사실 보다보면 미쓰요가 부모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는 게 무리도 아니다.[11] 나중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사과한 부모님과 화해했다지만, 그리고 미쓰요 자신도 그 나쁜 짓들을 평생 후회하며 살아가겠다고 하지만, 이미 딸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고 결국 그녀를 이해해주고 갱생시켜준 것도 결국 부모가 아니라 제3자인 오히라 히로사부로 씨인 것을 생각하면, 결국 미쓰요의 부모는 하나뿐인 친딸에게 아무런 도움이 못 된 셈이다.

사실 미쓰요가 원한 것은 소박한 것이었다. 누군가 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해주고 인간으로 대해주는 것, 자신이 이렇게 된 이유를 아주 조금만이라도 이해해주고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다가와주길 바랐을 뿐이었다. 나중에 오히라 히로사부로에게 조금이라도 이해를 받고 꾸짖음을 당했을 때, 미쓰요는 그제야 엄청난 감동을 받고 갱생할 수 있었다.

7. 탈선의 길로

결국 너무나 가기 괴로워진 학교를 자꾸 빼먹게 되고, 혼자 밤거리를 방황하던 미쓰요는 폭주족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과 어울리면서 탈선을 시작한다. 비행과 등교거부를 계속하면서 그로 인해 학업도 고등학교 진학이 불가능할 정도로 처져 버렸으나, 사실 반 아이들이 고등학교 진학문제로 수다 떠는 것을 듣고는 미쓰요도 장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고.

그러던 중 단골 미용실의 친하던 미용사 언니(당시 25세)로부터 미용사라는 직업에 대해 듣고, '미용사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미쓰요는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미용학교에 합격, 담임 선생님한테 합격통지표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담임이라는 사람은 격려하고 응원해주어도 모자랄 판에, 합격통지표는 쳐다도 안 보고 미쓰요의 노랗게 염색한 머리만 보고 "그 양아치같은 꼬락서니로 네가 뭘 하겠어?"라고 불쾌하다는 듯 내뱉을 뿐이었다.[12] 그러나 미쓰요는 사실 이때 선생님이 "힘내라, 열심히 해라" 라는 말만 했어도, 머리도 검은색으로 염색하고 다시 처음부터 열심히 노력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전술했듯 어머니의 반응도 비슷했다.

다시 한번 큰 상처를 받은 미쓰요는 또다시 의욕을 잃었고, 간신히 합격한 미용학교도 도중에 그만두어 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나중에 이 일을 후회했다. 내가 잘 사는게 최고의 복수라는데, 그때 의욕을 잃고 다시 나쁜 길로 빠져버리지 말고 그들의 기대(?)를 배신(?)하고 훌륭하게 미용사가 된 모습을 보여주어 할말 없게 만드는 것으로 복수를 한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하고.

그 후로는 다시 폭주족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온갖 비행을 저지르고 살았다. 자전거 절도, 음주 등으로 유치장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게다가 걸핏하면 '왜 나를 낳았어!'라면서 자기 부모마저 폭행했다고. 그러나 이 폭주족 친구들마저도 미쓰요의 할복자살 시도라는 과거를 알고 따돌리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같이 어울리던 폭주족 중 고지라는 소년이 오토바이 사고로 목숨을 잃자 고지의 아파트에 모여 장례를 치렀는데, 이때 고지를 좋아하던 유카리라는 소녀와의 사이에서 이런 일을 겪게 된다.
유카리: (술에 잔뜩 취해 미쓰요를 향해) 원래 네가 죽었어야 하는 거 아니냐?
미쓰요: 무슨 말이야?
유카리: (미쓰요의 자살시도를 언급하고, 고지의 꿈을 이야기한 후) 그런 애가 왜 죽어야 해? 죽고 싶은 넌 왜 아직도 살아 있냐?
미쓰요: 친구라고 믿었는데 왜 그런 가슴 아픈 소리를 하냐?
유카리: (비웃으며) 친구라고? 여기 있는 누구도 널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아!! (얼마 전 다른 친구들이 각성제 주사를 맞을 때 옆에서 보고 있던 미쓰요를, 그 친구들이 "넌 이런 거 하지 말고 빨리 가."라고 보냈던 일을 언급하고) 사실은 널 걱정해서가 아니야. '자살시도할 정도로 이상한 앤데, 약까지 먹으면 무슨 짓할지 몰라서' 그랬던 거라고.
미쓰요: 그럼 내가 걔들을 찔렀으면 좋았겠니?
유카리: 그럼!! 나라면 걔네를 찌르지, 네가 만약 그랬다면 진정한 친구로 삼았을 텐데.
그리고 미쓰요는 그 자리를 뛰쳐 나왔다고 한다.[13]
결국 자신을 받아주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좋다는 간절한 심정으로, 16세 때 어느 야쿠자 두목과 결혼까지 했다.[14] 하지만 결혼 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40~50대가 젊은 층에 속하는,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어른들의 세계에서 16살짜리가 사모님이랍시고 앉아 있다며 무시와 조롱을 받기 일쑤였다고. 그러던 중, 미쓰요를 줄곧 사랑하고 걱정해주시던 외할머니[15]마저 돌아가시자 엄청난 절망감에 빠져, 결혼생활 6년 만에 이혼하게 된다.

8. 갱생과 그 이후

그 후 긴자의 클럽에서 호스티스로 일하다가 23세 때 만난 현재의 양아버지이자 자신을 도와준 오히라 히로사부로(大平浩三郞)씨를 우연히 재회하였다. 원래 히로사부로는 미쓰요의 아버지와 사업상 지인이었기에, 미쓰요도 어렸을 때부터 히로사부로와 안면이 있었다. 히로사부로는 미쓰요의 망가져버린 모습에 안타까워하며, 필사적인 설득을 여러 차례 하게 된다. 이런 히로사부로의 노력에 마침내 미쓰요도 다시 한번 삶에 대한 의지를 얻게 된다.

그 후 한자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중학교 1학년 수준의 지적 상태에서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29살의 나이에 일본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인 사법시험[16]에 합격변호사가 되었다. 한국의 사법시험은 전년 1차 합격자에게 다음해 1차를 면제해 주지만, 일본의 사법시험은 1, 2차를 한번에 통과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1, 2차를 동시에 합격하는 동차 수험생 수가 손에 꼽힌다는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성과다.

그 후 한동안 연을 끊고 지냈던 부모님과도 곧 눈물의 화해를 했다. 미쓰요의 부모 역시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쳤고, 특히 친아버지는 자신이 남의 이목만 신경쓰느라 정작 딸의 고통은 모르고 지냈다며, 히로사부로를 찾아가 아버지가 될 자격도 없는 자기 대신 미쓰요를 양녀로 받아달라고 직접 부탁했을 정도.[17] 이 부탁이 받아들여져 미쓰요는 히로사부로의 양녀가 되었으며 얼마 후 미쓰요의 친부는 직장암으로 사망하였다.

그 후로 자서전인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를 통해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감추지 않고 오히려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18] 절망에 빠진 사람들, 특히 청소년들에게 희망이 되어 주고 있다. 청소년 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청소년 문제 협의회 특별의원직을 맡으면서 비행청소년들이나 학부모, 교육자들을 상대로 강연을 펼치고 있다.

2000년에는 시사매거진2580에 출연해 한국의 비행청소년 계도와 지원에 대한 조언을 했다.

2001년에는 한국을 방문해 전국의 소년원 원생들과 학부모, 지도위원들 앞에서 그동안 열심히 연습한 한국어를 사용해가며 강연을 펼치기도 했다. MBC뉴스데스크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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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변호사 남편을 만나 결혼[19]하여 딸 하루카(悠)를 출산했지만, 하루카는 다운증후군인데다 심장에 이상을 가진 아기였다.[20] 하지만 절망하지 않고 딸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긴 육아일기를 <오늘을 산다>란 책으로 펴냈다.[21]

그리고 <오늘을 산다>에서 나오길, 미쓰요는 어머니와 같이 살았지만 행복은 잠시, 어머니의 말씀이나 행동이 좀 이상하다 싶을 때가 잦았다. 집과 사무실이 가까웠는데, 어머니가 자꾸 사무실을 찾아오셨다. "얘기는 밤에 같이 하세요" 라고 말씀드리고 귀가하시게 했지만, 계속 마음에 걸려 어느 날 집에 가봤다. 하지만 어머니는 집에 계시지 않고 거기다 문도 잠겨 있지 않았다. 어머니를 찾아 동네를 헤매다가 채소가게에서 발견했지만, 어머니는 지갑도 안 가지고 있었다고.

즉시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서 검사를 받게 했더니, 검사 결과 병원에서는 알츠하이머라고 했다. 병원에서는 "완치는 불가능하지만 병의 진행은 조금은 늦출 수 있다"고 했다. "약물치료로 1년간은 딸의 얼굴도 알아볼 수 있고 평상시처럼 이야기도 나눌 수 있지만, 그후에는 병이 급속도로 진행될 것"이라고.

미쓰요는 "겨우 1년이라고는 해도, 어머니의 병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둘만의 추억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치료를 부탁했다. 어머니는 여행을 좋아했기에 미쓰요가 지방에서 강연할 때 같이 모시고 가기도 했다. 강연이 끝나면 온천을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등, 모녀 간의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1년 후에는 증상이 악화되어, 툭하면 거리를 배회하기도 했다고. 하루 24시간 3교대로 간병인이 왔지만, 그것도 한계에 다다랐다.[22]

그 사정을 케어매니저에게 털어놓고 상담했더니 ,갓 생겨난 그룹홈[23]을 소개해줬다. 그 시설을 직접 견학해보니, 식사 등은 모두 시설 내에서 만들었고 모든 직원과 환자들과 같은 음식을 먹고 있었다. 결국 그곳에 어머니를 모시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처음 그룹홈에 입주하셨을 때 1주일에 1번은 꼭 면회를 갔지만, 미쓰요가 돌아오고 난 후면 어머니가 불안정해지면서 직원들에게 떼를 쓰신다고 했다. (미쓰요가 없으면 밥도 안 먹겠다고 하시고 집에 가고 싶어하셨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미쓰요는 다시 집으로 모셔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나, 이미 병은 악화되어 가고 전문가의 돌봄을 받으며 지내는 일상, 그 평온한 일상이야말로 기억이 사라져가는 어머니께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리고 미쓰요는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와 화해하고 그리고 알츠하이머가 발병하기 전 어머니와의 거리를 좁힐 수 있던 것 덕분에 마음 속의 짐을 많이 덜 수 있었다고. 만약 화해하기 전에 이런 일이 발생했으면, 당사자한테는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동반한 엄청난 후유증이 남았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호스티스 시절 엄청나게 마시고 피웠던 담배 때문에 간이 악화되어 오래 살 수 없을 거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다행히도 50세를 넘긴 현재까지 별다른 소식이 없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기를 빌자.

2015년에는 의사 카마타 미노루와 <비교하지 않는 삶>이라는 대담집을 펴냈다.

9. 저서

  •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 응원합니다, 당신의 새출발을
  • 친구야, 너라면 어떻게 할래?
  • 비교하지 않는 삶(공저)
  • 오늘을 산다


[1] 현재 성은 (川下) 가와시타 이다.[2] 2000년도에 출판되었다가 2010년에 개정판이 나왔다.[3] 처음에는 교실 책상이었으나, 나중에는 전교생이 함께 쓰는 음악실, 미술실, 가사실 등의 책상. 그것도 처음에는 연필이나 펜으로 쓰다가, 나중에는 지우기 어렵도록 칼로 새겨 놓았다고. 미쓰요는 낙서를 지우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고, 가해자들은 그런 미쓰요를 보며 조롱하곤 했다.[4]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던 미쓰요를 위해, 외할머니께서 에서 받아오신 물건이라고 한다.[5] 그 무렵 신경통을 앓고 있던 미쓰요는 매일 점심식사 후에 약을 먹었는데, 늘 함께 점심 도시락을 먹던 3명이 "그게 무슨 약이야??"라고 물었다. 미쓰요는 '신경통'이라는 병명이 부끄럽기도 했고, 작년의 트라우마도 있어서, 망설임 끝에 친구라고 생각했던 3명에게만 살짝 말해주었다. 미쓰요는 그 3명을 친구라고 생각해서 비밀까지도 말해준 거였으나, 확성기에 대고 외친 꼴이 되고 말았다.[6] 다른 방법이 아닌 할복을 시도한 이유는, 이런 엄청난 일을 하면 걔네들이 자기가 이런 짓을 할 정도로 사람을 괴롭게 하는 일을 했음을 깨달을 거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후술하듯 아니었다. 죄책감을 느낄 인간이었으면 애초에 그런 짓을 하지도 않았겠지.[7] 더 한심하고 충격적인 건, 이것들은 나중에 오히라가 변호사가 되고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를 출판한 후 나타났다는 거다. 아마도 이 책으로 인해 자신들의 과거의 죄가 밝혀져 입지가 좁아졌나 보다. 이 주제도 파악 못하는 폐기물들은 그러니까 인간말종쓰레기들은 "우리 예전에 친구였지? 그땐 어려서 잘 몰랐어."라는 역겨운 소리를 했다. 미쓰요도 너희랑 똑같은 어린 나이였지만, 그런 짓은 안 했는데? 그러자 오히라는 그 핵폐기물들 면상에 물을 쫙 뿌렸다. 심지어 1학년 때부터 괴롭힌 폐기물들에겐 따귀를 날렸다고.[8] 이건 학교 차원에서 병크인데, 왕따 상황에서 전혀 도움이 안 됐던 인간을 '미쓰요를 담당했으니 제일 잘 알 것이다'라며 그대로 3학년 때도 미쓰요의 담임으로 유임시킨 것이다.[9] 사실 러시아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은 아이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 괴롭힘 당한 아이의 아버지는 격투기 선수(삼보 챔피언이었다)라서 가해자 놈들과 가해자 부모를 반병신으로 만들어 버렸다.(노골적으로 배신하고 따돌림에 앞장선 녀석들은 더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담임도 마찬가지로.[10] 자살미수 이후 많은 이웃들이 걱정해줬지만 일부 사람들은 '부모가 도대체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저런 소동을 피운 거야?!'라며 조롱했다. 하지만 부모가 아무리 고통스러웠어 봤자 당사자인 딸만 했을까.[11]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의 감상평을 찾아보면, "미쓰요의 부모에게 너무나 기가 막히고 분노했다"는 독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떻게 부모가 돼가지고 저 정도로 나약하고 이기적이고 한심하기 짝이 없을 수가 있으며, 자기밖에 모르느냐고.예시1 예시2예시3[12] 이 인간도 결국 나중에 미쓰요가 변호사가 되고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를 출판한 후에야 나타나서는 "내가 그 말을 한 덕분에, 네가 더 큰 꿈을 꿀수가 있었다."라는 어이없고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지껄였다. 그러자 미쓰요는 "아 그러세요, 그러면 내 눈앞에서 꺼지세요"라고 경멸 어린 시선을 보-보복-냈다고. 옛 급우들도 그렇고 담임도 그렇고, 다시 나타나서는 이런 망언을 하는 게 아니라 '그때는 내가 정말로 잘못했고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죄했더라면 미쓰요의 반응도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역시 한번 쓰레기는 영원한 쓰레기다.[13] <오늘을 산다>에서 미쓰요는, 폭주족 애들이 본인한테 각성제 주사를 안 놔준 걸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에는 '여기까지 와서도 외톨이라니, 왜 이런 데서까지 따돌림을 당하는 걸까!!'라고 생각하면서 더 이상 누구도 믿고 의지할 수 없다고 생각까지 했다고.[14] 야쿠자들의 세계에 입문하려면 등에 문신을 해야 했는데, 미성년자였던 미쓰요는 부모님의 허가가 필요했다. 허가 도장을 받기 위해 오랜만에 부모님을 찾았으나 허락을 해주지 않자, 화가 난 나머지 또 부모님을 때리고 강제로 도장을 찍어왔다. 문신을 한 후엔 문신을 새길 때의 고통 때문에 위궤양까지 생겼다.[15] 병상에서 사망하던 그 순간까지도 외손녀인 미쓰요의 걱정만 했으며, 입버릇처럼 '할 수만 있다면 차라리 미쓰요가 여기 오고 내가 거기에 대신 가 있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16] 기수로는 수습 49기.[17] 미쓰요의 현재 성씨인 오히라도, 바로 이 양아버지 히로사부로의 성씨를 물려받은 것이라고 한다. 원래는 다른 성씨였다.[18] 아무리 성공했다고 해도 저 정도의 어두운 과거를 세상에 드러낸다는 건 쉬운 게 아니다. 양아버지 히로사부로도 미쓰요에게 몸의 문신을 지우길 권했으나, 미쓰요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감추고 싶지 않아서 그대로 놔뒀다고.[19] 양쪽 다 재혼이며 둘 다 자식은 없었다.[20] 다운증후군심장 기형을 동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21] 당시 미쓰요의 책을 번역했던 역자 김인경이 직접 일본에 방문해서(자녀와 함께 갔다고 한다) 미쓰요와 하루카를 만나고 온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22] 당시 미쓰요는 오사카 시 부시장에 취임하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23] 지적장애인이나 치매노인 등이 자립적으로 생활하도록 조직된 시설로 일상생활을 돕는 도우미를 배치하고 환자 5~6명이 함께 생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