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7-20 19:36:58

여모

후한서(後漢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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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 유굉 유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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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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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권 「곽진열전(郭陳列傳)」 47권 「반양열전(班梁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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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권 「남흉노열전(南匈奴列傳)」 90권 「오환선비열전(烏桓鮮卑列傳)」
남흉노 오환 ·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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呂母
(? ~ 18)
1. 개요2. 생애

1. 개요

신나라 시절 최초로 왕망에게 반란을 일으킨 인물. 여모(呂母)는 그녀의 본명이 아니라 "여씨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반란군 수장으로, 개인 열전도 없으며 《후한서》 <유분자전>에서 적미를 소개할 때 짤막하게 언급된 것과 민간전승으로만 그 행적이 전해진다.

2. 생애

낭야군(琅邪郡) 해곡현(海曲縣)에 살던 여모는 남편과 사별하고 현의 관리였던 여육(呂育)이라는 외아들과 서로 의존하며 오순도순 살고 있었다.

천봉 원년(14년), 여육은 현재(縣宰)[1] 의 명령에 따라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징수했지만 낼 형편이 안되는 집안의 세금을 걷지 않았다. 세금이 적게 걷힌 것을 본 현재는 분노하여 담당자인 여육을 처형해버렸다. 하루아침에 외아들을 잃어버린 여모는 현재를 크게 원망하며 은밀히 빈객을 모아 복수를 준비했다. 그녀는 복수만을 위해 남편의 유산을 전부 처분하여 객잔을 차리고 은밀히 도검을 구입한 뒤, 남은 돈으로 마을의 빈민들을 구제하면서 민심을 얻었다.

여모는 비록 수년 만에 가산을 탕진했으나 이미 그녀를 추앙하는 마을 사람들이 많아 흔쾌히 음식과 재물을 지원해주었다. 어느덧 무리가 많이 모이자 여모는 그들에게 자신의 아들이 당한 억울한 사연을 울면서 하소연하였다. 안그래도 왕망의 폭정에 단단히 빡쳐 있던 마을 사람들은 모두 분노하며 자신들이 목숨을 걸어서라도 그녀의 복수를 돕겠다 하였다. 여모는 이들을 거느리고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으로 들어가 관리에게 저항하니, 인근 지역에까지 그 소문이 퍼져 수백이었던 무리가 어느새 수천에 달했다. 때마침 홍수, 가뭄, 메뚜기떼가 연달아 터져 수많은 농민들 생활이 파탄난 것도 여모의 세력 성장에 한몫 하였다.

천봉 4년(17년), 드디어 때가 되었다 여긴 여모는 용사 3천여 명과 함께 섬에서 나와 규산(奎山) 서쪽 기슭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스스로 장군이라 칭하며 복수를 완수할 것을 다짐했다. 여모의 반군은 기세등등하게 성으로 달려가 관군을 한 번의 전투로 전멸시키고 해곡성을 함락시켰다. 그녀의 아들을 죽인 현재가 그녀 앞으로 끌려가 머리를 조아리며 목숨만은 살려달라 애원하자 여모가 꾸짖었다.
"나의 아들은 작은 죄를 지어 마땅히 사형당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대가 죽여버렸소. 살인을 했으면 당연히 그 목숨으로 죗값을 치러야 하거늘, 어찌 살고자 애원하는가?"
이후 사람들 앞에서 현재를 즉시 참수하고는 그의 머리를 여육의 묘에 바쳐 제사를 지냈다. 복수를 마친 여모는 다시 섬으로 들어가 반군 활동을 이어나갔다.

여모가 복수에 성공하자 그녀의 명성은 연주 전역으로 뻗어나가 크게 요동쳤다. 낭야군의 연솔[2]은 해곡현으로 출병해 반군을 진압하려 했지만, 여모가 섬과 해곡을 넘나들며 바다를 끼고 침착하게 유격전을 펼쳐 끝내 제압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 왕망의 실정은 점점 늘어만 가 사방에서 많은 자들이 여모에게 귀부하러 왔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여모의 반군 무리는 1만여 명으로 불어났다. 그들은 머릿수에 비해 자원이 한참 부족했지만 여모의 지도 아래 섬을 개간해 농사를 짓고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힘겹게 지냈다.

천봉 5년(18년), 여모의 반란이 성공한 이후, 신나라 각지에서 서서히 농민들이 봉기하기 시작했다. 불안해진 왕망은 여모에게 투항을 권유해 보았으나 소용 없었다. 그러나 그 해에 여모는 병사하고 말았다. 우두머리를 잃어버린 여모의 무리들은 마침 거현(莒縣)에서 번숭과 서선이 봉기했다는 소식을 듣고 대부분이 번숭과 합류하여 훗날 적미군이 된다.


[1] 신나라 시기 관직명. 그냥 한나라의 현령(縣令)과 똑같다 보면 된다.[2] 왕망이 신나라를 세우면서 만든 관직. 왕망은 지방을 다스리는 관직으로 졸정(卒正), 대윤(大尹), 연솔을 두었는데 그 업무의 범위는 한나라의 태수와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