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1-03 15:53:24

도포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top: 7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b82647 3%, #31b675 3%, #31b675 6%, #89236a 6%, #89236a 9%, #f9d537 9%, #f9d537 12%, #db4e9c 12%, #db4e9c 15%, #026892 15%, #026892 18%, #e7e6d2 18%, #e7e6d2 21%, #b82647 21%, #b82647 24%, #f8e77f 24%, #f8e77f 76%, #b82647 76%, #b82647 79%, #e7e6d2 79%, #e7e6d2 82%, #026892 82%, #026892 85%, #db4e9c 85%, #db4e9c 88%, #f9d537 88%, #f9d537 91%, #89236a 91%, #89236a 94%, #31b675 94%, #31b675 97%, #b82647 97%)"
한복{{{#!wiki style="margin-top: 7px; padding-top: 5px; border-top: solid 1px; border-color: #683235; color:#683235; min-height: calc(1.5em + 1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tablewidth=100%><colbgcolor=#f5f5f5,#2d2f34> 남녀공용
상의 저고리 · 덧저고리 · 배냇저고리 · 색동저고리 · · 적삼 · 장삼 · 마고자
하의 바지
겉옷 반비 · 배자
신발 목화 · 진신 · 태사혜 · 당혜 · 운혜 · 수혜(꽃신) · 갖신 · 짚신 · 미투리 · 나막신 · 설피
기타 무복 · 버선 · 상복
남성용
평복 <colbgcolor=#f5f5f5,#2d2f34> 상의 사규삼
하의 잠방이
겉옷 (도포 · 두루마기) 창옷(소창의 · 중치막 · 대창의 · 학창의) · 심의 · 쾌자 · 답호 · 가사
예복 및 관복 단령 · 곤룡포 · 곤복 · 조복
융복 포졸복 · 구군복 · 철릭
모자 (흑립 · 주립 · 백립 · 초립 · 전립) · 삿갓(방갓 · 지삿갓 · 갈모) · 승관(고깔 · 낙관 · 비로관) ·감투 · 망건 · 탕건 · 패랭이 · 면류관 · 문라건 · 복건 · 사모 · 원유관 · 이엄 · 익선관 · 정자관 · 사방관 · 조우관 · 휘항 · 금관
전통장식 동곳 · 흉배
여성용
평복 하의 치마
겉옷 장옷 · 쓰개치마 · 머리처네
속옷 가슴가리개
예복 상의 당의 · 견마기
하의 스란치마 · 대란치마 · 갈래치마
겉옷 노의 · 원삼 · 활옷
모자 틀:전통여성모자 · 건귁
전통장식 가체 · 노리개 · 떨잠 · 비녀 }}}}}}}}}}}}
파일:도포예시1.jpg 파일:도포예시2.jpg 파일:도포예시3.jpg
파일:도포예시4.jpg
조선 말기의 도포차림

1. 개요2. 형태3. 역사4. 사용 계층5. 여담

1. 개요

도포()는 조선 시대선비양반들이 평상시에 입던 겉옷이다. 구군복과 함께 남자 한복 중 가장 멋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현대 한복 중에선 가장 격식 있는 옷차림에 속한다. 그만큼 인지도가 높아 여러 창작물에서 높은 비율로 다루어지고 있다.

다만 값도 엄청 비싸고 입는 법도 까다로우며 불편해서 조선 말기(1884년 고종21년) 의복제도 변화로 기존의 다양한 겉옷들이 두루마기를 중심으로 밀려났고 이러한 흐름에 도포도 입는 일이 줄어들었다. 마치 연미복이 너무 까다로워서 비교적 간단한 턱시도를 입는 것과 같은 이치.

2. 형태

파일:도포구조1.jpg 파일:도포구조2.jpg
도포를 단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바로 "풍성함" 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도포의 소매는 '광수'()라고도 칭하는 두리 소매이며 이것은 품도 넓으고 길이도 길어서 거의 발목까지 미친다. 이 소매는 그 끝이 전부 뚫여있지 않고 손이 빠져나갈 적당한 크기만큼만 구멍이 나있다.[1]
파일:도포구조4.jpg
파일:도포구조3.jpg
뒷자락은 두 겹으로 되어 있고 뒷중심에 트임이 나있으며, 그 위에 전삼(展衫)이라는 직사각형의 천이 한 겹 더 붙어 있어 터진 곳을 가려준다. 덕분에 활동성을 확보해 달리거나 말을 타는 일들이 가능했고, 특유의 휘날리는 장식적인 역할도 하였다.

단순 바지/저고리 위에 입기도 하지만 두루마기, 창옷 과 같이 모양을 잡아주어 풍채를 키우기 위한 옷들을 껴입고 난 뒤에 마지막으로 도포를 입는다. 그냥 입었을때는 도포의 무게 때문에 밑으로 축 쳐져서 보기에 빈약한 느낌이 들지만, 반대로 받침옷을 입고 입으면 옷의 형상을 따라 펴지면서 풍성함이 더욱 돋보여진다.

평소에는 흰색, 경사로울 때는 푸른계열의 옷을 착용하였다. 이는 도포가 일상에서 입는 평복이었지만 특별한 날을 위한 예복의 성격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조문과 장례식으로 고종시기에 개혁 이후임에도 특별한 경우에 도포를 입는것을 허용해 주었다. 흰색은 푸른색처럼 특별한 의미로 입는다기 보단 옛부터 한민족이 흰 옷을 주로 입었기에 도포도 희게 만들었을 뿐이다.[2]

도포 위에는 세조대라는 허리띠를 이용해 옷을 고정하며, 그 위로 쾌자조끼를 겹쳐입을 수도 있다. 가끔 상황에 따라 도포 자체가 받침옷이 되는 경우도 종종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3]

3. 역사

도포의 기원에 대하여 성호사설과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는 불교도교에서 나온 것이며 원래는 승려의 권투(圈套)로 우리나라의 승복장삼과 동일하고 명칭으로 보아서도 도복이 분명하다 설명하며, 또 남당초고에서는 관복인 직령공복을 일상복으로 할 수 없어 그것을 본 떠 약간 변경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도포가 특정 종교의 승복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이들의 형태가 곧은 깃이기 때문에 혼동하여 생긴 이론이라는 것이 유력하고, 실제로는 삼국시대 양식의 직령포(두루마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더 타당하다. 즉 고구려를 포함한 삼국시대 때 저고리 위에 겉옷으로 입던 포(袍)가 고려의 백저포가 되고 이것이 조선의 직령포 되었으며, 직령포는 또 다시 장옷, 두루마기, 도포 등으로 분화 및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도포 착용과 관련한 최초의 기록은 선조실록에서 이홍망(李弘望)이 초록겹 도포를 입었다는 것이다. 또 효종실록에서는 도포를 입는 제도를 임진왜란 이후부터라고 하였으므로 도포는 조선시대 중기부터 착용한 포라고 할 수 있다.

4. 사용 계층

조선 중기 이후 많이 착용하였으며, 관리들도 관청으로 나아갈 때를 제외하고 사사로이 외출할 때는 일반적으로 착용하였다.
파일:조선사또 이승렬.jpg
1816년 조선을 방문한 영국 해군에서 그린 조선 비인현감 이승렬과 부하들의 모습
파일:야스다요시카타 조선표류일기.jpg
1817년 조선을 방문한 일본인 야스다 요시카타가 그린 충청관찰사의 모습
지방 수령(사또)들도 현대의 영상매체에서는 구군복을 입은 것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문관 수령들은 갓과 도포를 착용하고 근무했고, 무관 수령들만이 군복을 입고 근무했다.

정조 때로 이르러는 관리들과 일반 선비들의 평상시 겉옷이 된 것 말고도 유생들의 공복(公服)이나 제복으로도 사용하였다. 또한 ≪순조실록≫에서는 옛날에는 사대부의 편복으로 직령을 많이 사용하였으나 근세에는 도포를 많이 사용한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순조 이후에는 도포가 직령 대신 일반화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서민층에서도 외출복으로 도포를 착용하는 일이 많았다. 정약용(丁若鏞)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나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당시 백정과 같은 천인도 모두 도포 큰 소매에 자락을 길게 늘어뜨려 조정의 벼슬아치 처럼 하여 기강이 퇴폐해진다고 개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천민도 도포를 착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사실상 서양에서 유래하여 현재까지 작용하는 정장과 비슷한 위치였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도포는 개화기 이전까지 정장으로 기능하였으나, 개화기로 들어서 고종의 의복 개혁 일환으로 착용을 금지하고, 자연스레 정장으로써의 기능은 두루마기가 이어받게 된다.

5. 여담

인조 때 역모로 휘말려 쫓기던 한 선비가 관군을 피해 도망치는데, 하인이 "도포는 활동하기 불편하니 짧은 옷으로 갈아입으시라"고 했는데 그 선비는 "양반이 어찌 짧은 옷을 입겠느냐" 라며 그대로 도포를 입고 도망치다가 더 이상 도망칠 수 없게 되자 병풍 뒤로 숨었다가 병풍 아래로 드러난 옷자락 때문에 발각되어 해를 입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 APEC 정상회의 때 국빈들에게 입힐 한복을 정할 때[4] 원래는 도포로 하려다가 외국인들 입장에서는 낯설고 활동이 불편할 수 있으며 외국 국빈들이 세조대 매는 법을 어려워 한다기에 결국 도포의 간소화 버전인 두루마기로 바꾼 일화가 있다.#


[1] 이는 동아시아에서 공통으로 넓은 소매의 옷을 만드는 방식이다. 소매모양이 흐트러지거나 지나치게 펄럭거리는걸 막는 장치로서 그리 만든다.[2] 당연히 흰색과 푸른색 말고 다른 색으로도 염색해 입었다. 선조 때는 초록색, 고종영친왕 관례시에는 남색 도포를 착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3] 『한중록(閑中錄)』(1795)에는 영조가 용포(龍袍)주31의 받침옷주32으로 도포를 입었다는 기록이 있다.[4] APEC 정상회의에선 개최하는 나라의 전통 복식을 입는 전통이 있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