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한국의 고속열차 개발사.2. 1980년대 이전
1970년대 당시 한국에서 가장 빠른 열차였던 관광호 |
1970년대 한국에서 가장 빠른 열차는 관광호 - 새마을호였다. 이 열차는 일본에서 수입한 강철제 객차, 발전차와[1] 미국에서 수입한 디젤기관차의 조합으로 운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고속도는 최고 시속 150킬로미터가 한계였다. 그래서 1978년 11월 정부는 고속철도 건설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1983년 3월경 현대차량(현대로템의 전신)에서 새마을호보다 더 빠른 고속전철의 개발이 시작되었는데, 요구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 최고 시속 220킬로미터
- 기존 선로 사용
- 틸팅 기술 사용
- 유럽 전문 업체와 제휴해서 85년까지 완성
계획 시기와 요구 조건을 볼 때, 해당 계획대로였다면 영국철도 370형을 기반으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영국철도 370형은 최고 시속, 기존선 사용, 틸팅열차 사양이 해당 계획 조건과 유사하고, 1981년부터 이미 운용 중이었다.[2]
3. 1990년대
85년에 시제차는 물론 조감도도 나오지 않으면서 고속열차 개발 계획은 취소된 것 같아 보였지만, 1990년대 경부고속선(경부고속철도) 계획과 함께 부활했다. 이때의 요구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3.1. 차량 선정
이후 당시 고속철도 시스템을 가진 단 3개의 국가였던 일본, 독일, 프랑스가 한국에 고속열차 수출을 계획했는데,[4] 각 국이 한국에 제안한 차량은 다음과 같다.- 프랑스
- 일본
- 신칸센 300계 전동차 기반
- 모터 출력을 높여 최고속도를 기존 300계의 270km/h에서 300km/h로 향상
- 차폭을 3.380미터에서 3.1미터로 축소, 2+2 배열으로 1000석 내의 총 좌석 수
- 독일
3.1.1. 일본의 입찰 경쟁 탈락
먼저 일본이 평가 기준에 미달해서 1993년 6월에 탈락했다.#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가장 큰 이유로 일본 측에서 기술 이전에 매우 부정적이었다. 국내 라이센스 생산은 전부 불허하고 전량 일본 생산 후 도입을 고집했으며, 중정비의 한국 자체 실시에도 부정적이라서 중정비는 차량을 일본으로 보내는 방식으로 진행할 것을 요구했다.
- 게다가 기술 검증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일본 측은 한국 규격에 맞게 차폭을 줄인 모델로 시속 300km 영업운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실차는 물론이고 모형이나 컨셉 이미지조차 전무했으며[6] 오히려 240km 이하로 성능을 낼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그리고, 그 당시 신칸센 300계는 각종 결함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일본어 위키백과에 자세한 내용이 나와있다.
- 동력분산식임에도 불구하고, 가속 성능이 동력집중식인 TGV와 별다른 차이점도 없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일본이 가장 먼저 탈락한 이유는 차관 제공도 없으면서[7] 경쟁 후보 중에서도 가장 비싼 가격에다 성능도 가장 좋지 않았고 라이센스 생산은 물론 자체 중정비마저 불허할 정도로 기술 이전에 대해 배타적인 입장을 보여서 협상의 조건이 지나치게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은 일본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봐도 좋은 부분이 하나도 없었고, 자신들이 제시한 입찰 조건이 해도 너무할 정도로 지나치게 나빠서 당시 철도청과 한국 정부는 이를 고속철도 사업 목적을 완전히 역행하는 조건 제시로 판단했다. 이 때문에 이렇게 지나치게 안일하고 비협조적인 태도로 임했던 일본 협상단은 가장 많이 점수가 감점되었고 3파전에서 가장 먼저 탈락했다. 당시 철도청과 한국 정부가 일본 협상단에게 단체로 뇌물이라도 먹었거나 사리판단이 결여된 바보천치같은 인사들로 채워진 것이 아닌 이상, 일본이 아니라 다른 경쟁 후보 국가들을 선택하는 것이 전략상 너무나도 당연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결국, 독일이나 프랑스가 저런 식으로 일본과 똑같은 조건을 내밀었어도 거부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정말로 철도청에서 반일감정 때문에 입찰 경쟁에서 탈락한 것이었다면 국민들의 여론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을 것이 뻔한데다 정치권에서도 눈치를 봐야 되므로 일본의 신칸센을 도입해야 하는지 신경쓰지 않았을 리도 없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도 일본의 철도 기술이 한국보다 더 발달했었다는 것은 반일감정이 심했던 한국인들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말로 반일감정 때문이었다면 일본은 처음부터 입찰을 하는 과정이나 협상의 대상으로 전혀 고려하지도 않았거나 입찰하지 말라고 거부하면서 무시해버렸을 확률이 높았을 것이다. 게다가, KTX 개발 이전부터 일본에서 열차를 아예 들여오지 않았을 것도 불보듯이 뻔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의 한국에서는 반일감정이 현재 2020년대보다 더 심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이스라엘-시리아나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등 무역은 물론이고 교류조차도 거부하고 있는 다른 분쟁국가들과 비교해보면 8.15 광복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국과 일본은 여전히 잘 지내왔고 무역과 교류는 계속 원활히 진행되어 왔었다.[8]
애초부터, 새마을호의 전신인 관광호는 아예 일본에서 차량을 직수입한 열차인데다, 그 외에 전동차들도 초기에는 아예 직수입 모델을 굴렸고 일부 유럽제 혹은 후대에 국산화된 경우를 제외하면 핵심기술을 거의 일본 기업인 히타치, 도시바, 미쓰비시전기에 의존해왔었다. 심지어 한국철도공사 VVVF 전동차의 경우, 초기에는 아예 본 문서에서 언급한 신칸센 300계의 기술을 일부 접목한 주변환장치를 적용했고, 최근에 출고되는 신차에서도 서울 지하철 5호선, 7호선, 8호선 우진산전 제작 차량 및 부산 도시철도 1호선 2017년 이후 도입 차량도 일본 기술에 기반한 인버터를 여전히 적용하는 중이다. 그래서, 정말로 반일감정 하나 때문에 입찰 경쟁에서 탈락한 것이 이유였다면 그동안 코레일 측에서 KTX 개발 이전이나 그 이후에도 일본 기업에서 직수입으로 도입하거나 기술제휴로 만들어왔던 한국의 열차들을 설명할 수가 없을 것이다. 특히 상기한 VVVF 전동차들의 경우, KTX 개발 이전 시기인 199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20년 넘게 도시바의 기술을 사용하고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
사실, 1980년대 초반 까지만 해도 일본 측에서는 신칸센을 한국에다 수출을 추진하면서 기술을 이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그 당시에는 나온지 한참 되어 끝물인 신칸센 0계 전동차 였으니 그 무렵에는 0계의 후속으로 차세대 기종인 100계가 한참 개발중인데다가 도호쿠 신칸센용 200계가 등장을 앞둔 시점이고, 구형이 되는 0계는 한국에 기술이전을 해줘도 딱히 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로 일본 내에서도 한국에 기술 이전을 해주지 말자는 여론이 늘어나게 되면서 이 때부터는 기술 이전에 대해 부정적으로 나서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협상에 비협조적으로 나왔으니 한국에서는 굳이 신칸센을 도입하고 낙찰해줄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3.1.2. 독일의 입찰 경쟁 탈락과 프랑스 선정
마지막으로 독일과 프랑스가 경합했는데, 선정 직전인 탓인지 1993 대전 엑스포에서도 두 나라는 각국의 전시관에 열차를 전시해놓고 자존심 싸움을 했고 결국 운용 경험, 금융 조건, 경제성, 사업 일정, 기술 이전 등을 비교한 끝에 1993년 8월에 프랑스가 승리했다.[9] 독일이 3개국 중 기술적 스펙이 가장 좋았고, 기술 이전, 차관 등 각종 조건도 일본보다 나았음에도 프랑스가 승리한 이유로는 다음과 같을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의 고속열차 최고 영업 속도는 최고 시속 300킬로미터인데 반면, 독일은 최고 영업 속도가 최고 시속 280킬로미터이다.
- 프랑스는 스페인에 고속열차를 수출한 사례가 있었지만 독일은 수출 사례가 없었다.
- 기술 이전 조건 역시 프랑스가 독일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 무엇보다도 프랑스 정부가 제안한 20년 짜리 차관 조건이 가장 파격적이었다.
우선 기술 이전에 있어서 독일보다 프랑스가 적극적이었는데, 프랑스는 실제 도입된 것과 같이 시제차 1편성, 양산선행차 11편성을 제외한 전 편성 한국 라이센스 생산 허용, 노반, 분기기 등의 지상설비와 운용 시스템 한국 자체 선정과 개발 허용은 물론 향후 이전받은 기술을 활용해서 자체적으로 시스템을 개발해도 라이센스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되는 조건을 제시했으나, 독일은 라이센스 생산을 허용하긴 하나 대부분의 차량을 독일에서 완제품으로 직도입하고 극히 일부 차량만 부품 단위로 반입해서 조립만 하는, 사실상 한국철도공사 200000호대 전동차와 서울교통공사 SR000호대 전동차와 같은 넉다운 생산만 허용해서 그야말로 허울 뿐인 거나 마찬가지였다. 또한 노반, 분기기 등의 지상설비도 독일산을 써야 했고, 향후 이전받은 기술을 토대로 자체적인 시스템을 개발할 경우 라이센스 비용을 낼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프랑스와 손을 잡은 것은 기술 이전 외에 운용 경험도 큰 이유를 차지했다. 특히 프랑스 고속철도는 한국과 비슷한 수도권 집중 방사형 체제[10]로 구성되어 있어서 역시 서울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한국 철도망의 구조와 맥이 통했다. 당시의 한국은 단순히 차량만 수입한 게 아니라, 이와 연계되는 차량 및 선로의 유지보수 시스템까지 같이 도입했는데, 프랑스는 이런 파리 중심 방사형 고속철도망을 유지하기 위해 빠른 시간 내에 선로를 보수하고 철수하는 시스템이 발전한 반면에 전국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독일은 아예 한 구간을 틀어막고 보수를 하는 시스템이라 한국의 사정에는 맞지 않은 상황이었다.[11]
일각에서는 프랑스의 역대 사기 행각 전설과 같이 프랑스가 병인양요 때 훔쳐간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해준다는 조건으로 TGV를 수입했다는 루머가 퍼져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며 위에서 서술된 것처럼 당시 3개국 중 가장 유리한 조건을 제시했고, 한국의 사정에도 그나마 가장 맞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ICE가 에세데 사고 때문에 탈락된 것이란 루머도 있는데, 이 또한 사실이 아니며 차량 도입 계약은 1994년에 체결됐고 에세데 사고는 1998년에 일어났다. 물론 ICE 차량으로 결정이 났다면 사고로 인해 안전성 문제가 불거져 차량 도입이 늦어졌을 수는 있다.
3.1.3. 선정 이후
이렇게 프랑스 알스톰이 일본, 독일 대비 파격적인 수준의 기술 이전과 라이센스 생산 허용 조건을 제안해서 선정되었으나, 이는 차량 도입을 계약할 때 단종된 구형 기종인 TGV 레조를 떠넘기기 식으로만 생각했던 것이었고,[12] 프랑스 현지 기술진도 기술을 전수받으러 간 한국 측 기술진에게 처음에는 "어차피 기술을 가르쳐 줘도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할 것이다" 라고 여기면서 거만한 태도로 대했다고 전해진다.#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뽕을 뽑겠다는 한국 측 기술 연구진의 끈질긴 물밑 교섭 끝에 고속철도에 대한 각종 저작권, 기술 도입 중에 새로 발견된 신기술에 대해서는 한국 측이 그 권리를 선점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각종 유리한 조건을 모두 따오는 것에 성공했다. 그 당시에는 알스톰 사내에서도 한국 측을 너무 얕보고 계약을 해버렸다는 반응이 있었다고 전해지면서, 공장에 칸막이까지 치는 등 갈수록 방어적이고 신경질적인 태도로 변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프랑스의 알스톰으로부터 100% 기술 제공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50% 정도를 받긴 했으나 이마저도 차체 규격과 골격 정도에 불과했고 내장 설비 관련 기술을 비롯한 중요한 핵심 기술에 대해서는 매우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했다. 일례로 당시 알스톰에 파견된 기술진이었던 이병석 현대로템 전 대표이사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한창 따끈따끈한 신차였던 TGV 듀플렉스의 알루미늄 차체 제작 공정을 구경하려고 하자 기술 이전은 스틸 차체에 한하기 때문에 알루미늄 차체는 보여줄 수 없다며 가로막거나, 도면에 대해서 설계 원리를 물어볼 때도 기술 이전은 설계도대로만 만들 수 있는 수준까지만 해주고 그 이상은 계약 범위 밖(Out of scope)이라며 거절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불성실한 기술 이전은 한국으로 인도한 이후에도 마찬가지라서 한국 측에 제공된 KTX 유지보수 매뉴얼은 한국에 파견된 SNCF 기술자가 보기에도 대놓고 부실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서 알스톰은 해당 SNCF 기술자를 회유하려 시도했는데, 해당 기술자는 이러한 회유 시도에 분노하여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기술들을 전수해줬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알스톰은 자회사 EUKORAIL[13]을 세워 현대정공, 대우중공업, 한진중공업, 금성산전, 삼성전자, 금성전선, 일진 등 한국 7개 업체, 추가 프랑스 2개 업체와 한국TGV 컨소시엄을 만들어 KTX를 들여오기로 했고, 그렇게 프랑스 알스톰 공장에서 생산된 초기 도입분의 차량들이 1998년 4월 18일에 마산항으로 들어왔다. 당시 뉴스 당시 계획상, 동력차는 대우와 현대가 5 : 5, 보조 동력차(부스터 카)는 한진이 전부, 객차는 현대, 대우, 한진이 4 : 4 : 2로 제작할 예정이었지만 이후 전부 현대가 제작하게 되었다. 이유는 빅딜.#
4. 2000년대
산천 출시 당시 홍보영상 |
2004년에 KTX가 개통한 이후 프랑스 TGV 기반의 KTX-1 도입 당시에도 가장 큰 목적은 한국의 고속열차 독자 개발이었기에, 한국 기술진은 프랑스 고속열차를 면허 생산하면서 받은 기술로 고속열차 개발을 시작했다. 하지만, 면허 생산 당시 알스톰의 비협조적인 기술 이전 탓에 한국 기술진이 프랑스에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차체 규격과 골격 정도뿐이었고, 핵심 기술을 비롯한 내장설비 관련 기술은 거의 얻지 못하는 바람에 독자적으로 몇 년에 걸쳐서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하다시피 개발해야 했다.
하지만, 한국 측 기술 연구진들은 이러한 조건에서도 그나마 얻을 수 있었던 기술들을 토대로 차기 시험 모델인 HSR-350X를 개발해냈고, 여기서 얻어진 기술을 기반으로 양산차인 KTX-산천을 새롭게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KTX-산천 1호기 출고 당시 기념으로 초청되었던 프랑스 측 인사는 뭐 씹은 표정이었다고 전해진다. 프랑스에서는 고속철도 기술 수출 당시 핵심 기술을 가르쳐주지도 않는 등, 한국 고속철도 자체 개발에 불성실하고 비협조적으로 대했는데, 알스톰에서 제공한 기술을 뽑아먹을 대로 다 뽑아먹고 후속 고속열차는 스스로 강화된 제품으로[14] 자체 생산까지 해 버렸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 이후에는 HEMU-430X로 최고시속 421km/h를 달성했고, 해무 기술을 기반으로 KTX-이음, KTX-청룡을 상용화시킨 후 우즈베키스탄에 이음 열차 기반으로 첫 해외수출까지 달성한 것을 보면 정말 전화위복이라 하겠다.
5. 2010년대
세계 고속철도 시장의 주류가 지멘스 벨라로 등 동력분산식 차량이 되면서 한국 역시 새로운 동력분산식 400km/h대 고속열차 개발을 착수했고, 시험차 HEMU-430X가 개발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얻어진 기술을 기반으로 동력분산식 준고속열차인 KTX-이음을 양산했고, 2022년에는 320km/h의 최고속도를 가진 KTX-청룡 양산에도 성공한다.[15] 이쪽 역시 HSR-350X는 놔두고 아예 처음부터 새로 개발한 물건에 가까워 관절대차 같은 TGV의 흔적도 아예 완전히 사라졌다.6. 2020년대
2021년에 준고속열차인 KTX-이음이 영업운행을 시작한 후 2024년 5월에는 KTX-청룡 초도편성이 영업운행을 시작하였다. 현재는 알스톰에서 도입한 KTX-1의 대체 준비를 위해 현대로템에서 시속 370km/h로 달리는 HSEMU-370을 개발 중이다.그리고 2024년 6월 14일에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아프로시욥에 투입될 KTX-이음 기반 열차를 7량 6편성 2,700억원으로 도입하게 되어서 대한민국 고속철도 제작 이래 사상 첫 수출이라는 값진 성과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향후 다른 국가에도 수출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7. 논란
7.1. 프랑스 선정에 대한 비판과 반박
최근까지도 프랑스를 "구식 차량 팔았으면서 핵심 기술이전도 안 해준 유럽의 짱깨"라고 비하하면서 프랑스가 아닌 일본이나 독일의 고속열차를 들여왔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16] 특히 한국인에게는 독일어보다 일본어의 진입 장벽이 낮고, 일본 철도 덕후를 겸하고 있는 철도 동호인들이 적지 않은 철덕계 특성상 신칸센을 들여와야 했다는 주장이 ICE 도입 주장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다. 이에 대해 당시 네임드 철덕인 조사부장의 반박글이 남아있다.#해당 주장들에 반박하면 다음과 같다.
7.1.1. 일본
만약 일본을 선정했더라면 일본 측이 기술이전에 부정적이었는지라 도입 이후 독자적인 고속열차 개발을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고, 대신 N700계나 E6계 기반 차량을 일본에서 사 왔어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때마다 발생할 거액의 외화 유출은 덤. 게다가 후술할 대만의 사례처럼, 신칸센 차량을 그대로 들여오는 것 대신 대한민국의 고속선 환경에 맞게 개수하여 들어왔으면 대한민국도 300계 대체용 신칸센 차량을 일본의 원본 차량보다 초고액으로 사 와야 했을 것이다. 대만의 경우, 프랑스와 독일의 유로트레인 차량 도입을 결정하고 건설하던 도중 신칸센 차량으로 변경했기 때문에, 이미 유럽식으로 지은 신호 시스템과 선로에 맞춰 개수하여 들여왔다.국가적 차원의 고속철도 기술 국산화 전략에 무지한 적지 않은 동호인들은 동력분산식 열차를 도입하지 못하고 동력집중식 TGV를 도입한 것을 매우 애석해 하지만, 기술이전도 기술이전이거니와 기본적으로 동력집중식이 기술적 난이도가 낮아 한국이 빠르게 고속열차 자체 개발에 성공한 점을 무시할 수가 없다. 게다가 일본이 제안한 열차는 300계인데, 300계는 신칸센 차량의 고질병인 낮은 내구성 문제[17]로 인해 2012년에 전부 퇴역한 이후 박물관에 전시된 선두차 1량을 제외하고 전부 스크랩되어 버려서 부품 수급에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고 동류 전환같은 부품 돌려막기로 연명하거나 아예 유지보수의 난맥 때문에 예상 사용기간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조기 퇴역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700계를 기반으로 한 700T형을 도입한 타이완 고속철도의 경우, 700계가 단종되어 부품 수급이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증차 목적으로 N700S계 기반 차량 도입을 추진했다가 편성당 185억 엔(700T형의 4배)이라는 초고액이 문제가 되어서 구매 협상이 중단되었다. 사실, 현재도 대만은 한국과 달리 현재에도 독자적인 고속열차 제조 능력도 전무하다.일본 뉴스 물론, 그 당시에는 일본은 누가 봐도 거지같이 불성실한 협상 조건을 한국에 내밀었다가 퇴짜를 맞으면서 거절당했고 받아들였을리는 없으니 차라리 다행이었다.
7.1.2. 독일
독일의 경우 일본보다는 나았을 것이라는 말이 많지만, 선정 이후 에세데 사고가 터져버려서 고속철도 건설과 고속열차 개발에 차질이 생겼을 확률이 매우 높다.[18][19] 사실 이보다 더 문제는 고속철도의 전반적인 유지보수 시스템이었는데, 수도 파리를 중심으로 종단선 고속철도가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프랑스와 달리 독일은 전국에 분포한 주요 도시들을 종횡으로 연결하는 철도망이 거미줄처럼 깔려있는 환경이다보니 프랑스는 운행종료 시간에 빠르게 해당 구간을 보수하고 철수하는 방식으로 발전한 반면 독일은 어떤 구간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해당 구간의 운행을 아예 일정 기간 통제하고 보수하는 방식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전반적인 철도망 형태가 독일보다는 프랑스와 더 비슷한 한국 환경에 적용하기가 힘들었다. 특히 경부고속선 2단계 구간 분기기 문제나 2010년대 중반 이후 고질적인 여름철 폭염으로 인한 주행능력 저하 같은 문제를 보면 ICE를 도입했을 경우 문제가 더 커졌을 것이다.7.2. 개발 순위 논쟁
현재까지 한국이 세계 몇 번째로 고속열차의 독자 개발에 성공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왜냐 하면 프랑스, 독일, 일본 외에도 한국보다 고속열차 개발에 성공한 나라들이 다수 있기 때문이다.먼저 이탈리아의 경우 피아트와 안살도브레다라는 제작사의 합작으로 ETR 500이라는 고속열차를 개발했다. 그러나 피아트는 철도차량 부분을 프랑스 알스톰에 매각했고, 안살도브레다 역시 일본 히타치에 인수되어서 현 시점으로 ETR 500을 순수한 이탈리아만의 기술이라고 봐야 할 지는 의문인 상태다.
스페인 역시 탈고라는 제작사에서 Renfe S-102라는 자체 제작 고속열차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쪽 역시 동력차 부분을 ADtranz라는 독일 제작사[20]에서 만들어서 순수 스페인 기술이라고 봐야 할 지 논란이 있다. 다만 후속차인 탈고 아브릴(S-106)의 경우 동력차도 국산화한 게 확인되었다.
8. 경쟁 차량들의 여담, 후일담
- 경쟁에서 승리한 알스톰의 TGV 레조는 2023년 현재까지도 프랑스에서 현역으로 운행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수출 이후로 프랑스의 고속열차 수출은 좋지 않았는데, 모로코의 알 보라크에 듀플렉스를 수출한 게 전부다. 다만 파생형까지 포함하면 이탈리아 이탈로에 수출한 AGV나 미국 암트랙에 수출한 아벨리아 리버티도 있다.
- 신칸센 300계 전동차는 이후 어떤 국가에도 수출되지 못했고, 본국에서조차 신차인 N700계가 나온 후 얼마 안 가 2012년에 퇴역했고 이후 박물관에 보존된 선두차 1량을 제외한 전량 폐차되었다.[21] 일본은 700계와 E2계부터 본격적으로 수출을 하게 되었다.
- 일본은 중국철로고속 사업에서 중국에 신칸센 E2계 전동차를 수출하면서 고속열차 핵심 기술 이전을 해줬다. 중국이 내건 핵심 사업조건이 기술 이전이었기 때문이다. CRH2 참조. 물론 JR 도카이는 기술 이전에 여전히 부정적이었으나 신칸센 E2계 전동차는 JR 도카이가 아닌 JR 동일본과 가와사키 중공업(現.가와사키 차량)이 공동개발한 차량이었기에 이들은 JR 도카이의 반대를 무릅쓰고 독단적으로 중국에 기술 이전을 해줬다. 이들도 중국에 기술 이전을 해주면 세계 고속철도 시장의 강력한 경쟁자로 등극할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기술 이전을 해주지 않아도 어차피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기술 이전을 받아 경쟁자가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일 테니 수주금액도 많은 김에 차라리 우리가 먼저 선점해서 큰돈[22]이라도 벌자는 계산이었던 것. 하지만 이 일로 JR 도카이의 원한을 산 가와사키는 나중에 신칸센 N700S계 전동차의 개발에서 배제되었다. JR 도카이와 가와사키 양사의 행동은 달랐지만, 결과적으로 중국은 여러 나라로부터 이전받은 기술을 토대로 완전한 자체개발 고속열차인 CR400을 만들고 세계 고속철도 시장에서 1위를 달성함으로서 신칸센의 경쟁자가 되었다.
- 독일 ICE 1은 탈락 이후 에세데 사고를 냈고, 300계와 마찬가지로 수출에 실패했다.[23] 독일은 ICE 3가 나온 후에야 본격적인 수출을 하게 되었다. ICE 3 수출형인 지멘스 벨라로는 수출실적에서 TGV를 앞서고 있다.[24]
9. 여담
- 한국이 고속열차를 개발하기 전인 1976년, 북한에서 1973년 소련에서 개발된 ER200형 고속열차[25]를 베이스로 ‘주체호’라는 고속열차를 만든 사례가 있었다.[26] 4량 1편성에 동력은 직류 3000V를 사용했다. 다만 고속(200km/h 이상) 영업 운전과 추가 양산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때는 한국에서도 150km/h로 달리는 열차 조차 혁신으로 평가받던 시절이었다.
- 이후 2018년 2월 15일 평양에서 열린 산업 미술 전시회에서 중국의 CRH380과 유사한 고속열차 도안이 공개되었다. 다만 자체 인공위성, 전투기도 못 만든 북한의 기술력을 감안하면 실제로 만들 가능성은 희박하다.
- 고속열차 도입을 본격 추진하던 YS정부 초기는 이 문제가 일반 신문지상에도 오르내리던 화제였다. 그러다보니 YS는 못말려 같은 일반인들 보는 유머집에 "헬무트 콜 당시 독일 총리가 "콜!" 하며 ICE를 들고 찾아왔고, 곧이어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Me'테랑"이라고 외치며 TGV를 들고 오더라"는 서술이 실려있었다.
결국 나중에 들어온 Me테랑이 수주를 따냈다
- 참고로 애초에 신칸센은 당시 시사풍자에서 "쌍팔년도 시절 일본제 들여왔듯 하면 되지 않겠나?" 정도로만 논의되었지, 기술적 성취 부분에선 아예 국가 차원 레벨에서는 고려 대상도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1] 새마을호 하면 떠오르는 스테인리스 객차는 1986년에 출시되었다.[2] 하지만 승차감 등의 문제로 인해 얼마 못가 2대 43형 기관차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3] 궤간, 차량한계 등[4] 이외에도 고속열차 제작 기술력이 있었던 국가들로 이탈리아 피아트의 펜돌리노나 스웨덴 AESA의 SJ 2000도 있었지만, 이 국가들은 참여하지 않았다.[5] 일각에서는 ICE 2의 개발형 기반이라는 주장도 있다.[6] 시속 300km를 낼 수 있는 신칸센 300계는 1992년 노조미 등급이 생길 때 처음으로 상용운전을 했는데, 그 때도 최속 270km로 제한을 걸고 운행했다. 본고장에서도 영업운전으로 300km를 낼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던 셈.(300계로는 결국 불가능 판정이 나왔다.) 일본에서도 나온 지 얼마 안 된 최신형 열차를 원본 그대로도 아니고 개조를 해서 팔아야 하는데 1~2년만에 그게 될 리도 없고, 가능했다 한들 그 차량의 기술이 검증되었을 리가 없다.[7] 사실, 철도 인프라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은 국가 재정으로 감당하기에는 부담이 매우 크기 때문에, 일종의 인프라 건설도 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은 인도에 신칸센을 수출할 때 파격적인 차관 제공을 한 적이 있다.[8] 하다 못해 견원지간인 중국-대만도 교류는 한다.[9] 당시 신문 기사들을 보면 공정한 평가를 위해 300개에 달하는 항목별로 전문가 및 담당 실무진이 개별 점수를 입력하되 전체 점수는 볼 수 없도록 한 뒤, 정부가 총점을 집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최종 점수는 100점 만점 기준으로 프랑스가 87점, 독일이 86점으로 양국의 차이는 1점에 불과했다.[10] 이후 다른 지역으로 확대되기는 하지만 이 역시 부산을 중심으로 한 방사형 체제다. 그리고 이와 연관된 것도 KTX-이음이 다닐 경전선과 동해선, 중앙선밖에 없다.[11] 이런 일관된 시스템 도입이 안 되어 엉망진창이 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타이완 고속철도다. 선로, 운영, 공사 시스템은 유로트레인 기반이지만 차량은 신칸센 700계 전동차 기반으로 도입하면서 차량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쳐야 했다. 타이완 고속철도 사례는 한국의 고속철도 시스템 도입의 완전한 반례로 이 문서에서 계속 언급된다.[12] 정확히 따지자면 TGV 레조는 1992~96년에 생산되었기 때문에 1994년 당시에는 구형 기종은 아니라지만, 얼마 있지 않아 신형 기종을 개발하였기 때문에 사실상 구형 기종인 셈이었다. 그렇다고 KTX-1이 그렇게 구형 차량은 아니었던 게, 당시 기존 레조는 물론이고 이후 만들어진 TGV 듀플렉스 차량에도 없었던 외부 행선 LED 안내판을 TGV 계열 차량 중 처음 도입했고, 일부 전장품을 듀플렉스 차량과 공용하거나(대표적으로 기존의 스티어링 휠 식이 아닌 원 핸들 주간제어기 방식이 있다.), 회생제동 추가 등 오리지널 레조보다 상당히 개량돼 도입된 차량이다. 즉, 레조에서 듀플렉스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단계의 차량이라 볼 수 있기에 신형 기종이라면 나름대로 신형 기종이라고 볼 수는 있었다.[13] 유코레일. 이후 알스톰 한국 법인으로 사명 변경[14] 알루미늄 차체, 관절대차 독자 개발 등.[15] KTX-청룡은 현대로템에서 코레일 추가발주분 17편성, 주식회사 SR 추가발주분 14편성을 추가 제작해서 초도분 2편성을 합해 총 33편성이 들어온다. 그리고 2026년에 남부내륙선 개통을 위해 13편성이 추가 발주될 예정.[16] 굳이 신칸센 뿐만 아니라 한국 철도는 예전부터 일본 철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그러나 이 사실이 결코 일본이 한국을 호구잡으려 할 때 한국이 순순히 호구잡혀야 한다는 주장을 정당화하지 않는다.[17] 300계 이전에도 0계 역시 도입 20년도 안 돼서 노후화가 시작되어서 같은 종류의 신형 차량으로 대체된 적이 있었으며, 2010년에 최종 생산이 끝난 E3계 역시 20년도 못 채우고 신차인 E8계로 대체될 계획이다. 반면에, 다른 경쟁 후보였던 레조나 ICE 1은 300계와 달리 현재도 현역이다.[18] 참고로 이와 관련해서 1991년 과학동아에 실린 분석기사를 찾아보면 "초도운행 당시 문짝이 날아가고 화장실에 문제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기술적 성취로는 최고 수준이라는 ICE"라는 서술이 있다. 7년 후 벌어진 사고를 생각해 보면 예사로 안 보이는 부분.[19] 타이완 고속철도가 시스템은 유로트레인 기반으로 들여와놓고 차량은 신칸센으로 틀어버려 누더기가 된 결정적인 두 계기가 921 대지진과 에세데 사고였다.[20] 이후 캐나다계 독일 기업인 봄바디어 트랜스포트에 인수되었다가 봄바디어 트랜스포트가 프랑스 알스톰에 매각되어 현재는 알스톰에서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유지보수를 진행한다.[21] 여담으로 과거엔 신칸센을 수입했었어야 한다는 주장이 상당히 있었지만 일본이 팔려던 열차가 신칸센 300계였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그런 주장은 사실상 사라졌다.[22] 약 1400억엔[23] 1993년 미국에 수출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무산되었고 대만에는 2층 열차파생형인 유로트레인으로 도전했지만 700계에게 밀렸다.[24] 이전에 ICE T를 오스트리아에 수출한 적이 있긴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철덕들은 한국 고속철도 사업에 독일이 지멘스 벨라로, 프랑스가 TGV 듀플렉스를 내놓았으면 승부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25] 영업 운전은 1984년부터 했고 2009년 독일에서 삽산이 도입되면서 퇴역했다.[26] 외형은 일본 485계 전동차 초기형과 유사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