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집시>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트 앨범 (1959) 빌 에반스 트리오, <The Complete Village Vanguard Recordings> (1961년 6월 25일) 더 밴드, <The Band> (1969) 패티 스미스, <Horses> (1975) 윌리 넬슨, <Red Headed Stranger> (1975)
리 모건, <The Sidewinder> (1964) 제퍼슨 에어플레인, <Surrealistic Pillow> (1967) 릴리 톰린, <This is a Recording> (1971) J. D. 크로우 & 뉴 사우스, <J.D. Crowe & the New South> (1975) ABBA, <Arrival> (1976) 더 카스, <The Cars> (1978) 블론디, <Parallel Lines> (1978) Kronos Quartet, <Pieces of Africa> (1992) 그린 데이, <Dookie> (1994) 노토리어스 B.I.G., <Ready to Die> (1994) 더 칙스, <Wide Open Spaces> (1998)
이 공연은 그 비하인드 스토리가 드라마틱하기로도 유명한데, 해당 공연은 1975년 당시 서독에서 가장 어린 공연 기획자였던 18세의 베라 브란데스(Vera Brandes)에 의해 추진되었다. 그러나 이 공연은 준비 과정에서 문제가 많았다. 우선 공연자인 키스 자렛의 컨디션이 매우 좋지 않았다. 이미 몇날 며칠간의 공연 강행군으로 인해 자렛은 크게 지쳐 있었고, 스위스취리히에서 직전 공연을 마친 후 만프레드 아이허와 낡은 르노 4에 구겨탄 채 밤새 잠도 못 자고 쾰른까지 온 터라 심한 요통으로 보조 기구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피아노의 상태도 엉망이었다. 자렛은 공연을 위해 뵈젠도르퍼 사의 그랜드 피아노를 요구했으나, 오페라 하우스 직원들의 실수로 실제로 준비된 것은 무대 뒤에서 리허설 용으로 쓰이던 뵈젠도르퍼의 조그만 베이비 그랜드 피아노였다. 심지어 그 피아노는 조율도 되지 않은 상태에 일부 흑건은 소리도 나지 않고 페달은 아예 눌러지지도 않는, 관리 상태가 심각하게 좋지 않은 피아노였다. 베라 브란데스가 뒤늦게 그랜드 피아노를 수소문해 보았지만 공교롭게도 그 날 쾰른에는 폭우가 내리고 있었고, 그 와중에 악기에 치명적인 고장을 일으킬 수 있는 장거리 운송을 하려고 하는 곳은 없었기에 결국 오페라 하우스의 그 조그만 피아노를 어떻게든 수리해서 연주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키스 자렛은 당연하게도 공연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러나 베라 브란데스는 어떻게는 공연을 성사시키려고 했고, 숙소로 돌아가려는 자렛을 필사적으로 설득했다. 자기보다 한참 어린 브란데스가 쏟아지는 빗속에서 자신에게 무대에 서 달라고 호소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동했는지, 키스 자렛은 결국 마지막의 마지막에 마음을 바꿔 공연을 하기로 결정했다.
즉흥 연주의 정점으로 꼽히며, 피아노 독주 형식 기반의 즉흥 연주의 지평을 확장했다고 평가받는 앨범이자, 재즈 솔로 앨범과 피아노 앨범 중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앨범이다.
당시 키스 자렛과 동행했던 만프레드 아이허에 의하면 자렛이 이런 훌륭한 연주를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피아노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해당 피아노는 저음부가 풍부하지 않고 고음부 역시 제대로 울리지 않았기에 자렛은 주로 중음역을 위주로 연주했으며, 부족한 저음을 받치기 위해 왼손으로 반복적인 베이스 리프를 연주하고 점진적으로 변주하는, 오스티나토 스타일의 연주를 선보였다. 작은 피아노의 부족한 음량을 커버하기 위해 일견 타악기적으로 들릴 정도로 있는 힘껏 건반을 타건한 것도 이 녹음 특유의 독특한 음색에 기여했다. 결과적으로는 부족한 장비 상태와 좋지 않은 컨디션이 결과적으로 연주의 개성을 만들어낸 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