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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S(특수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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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Air Service
파일:SAS emblem.png
기간 1941년~1945년; 1947년~현재
국가 파일:영국 국기.png 영국
군종 파일:23px-Flag_of_the_British_Army.png 육군
유형 특수부대
역할 특수작전
대테러작전
특수수색
규모 3개 연대 500명
소속 22연대: 영국 특수전사령부
21, 23연대: 제1ISR여단
별명 연대(The Regiment)
표어 Who Dares Wins

파일:sas-task-force-black.jpg
파일:a5dpxz.jpg
파일:2iav39y.jpg
파일:j6iiht.jpg
Who Dares Wins(용기 있는 자가 승리한다)
- SAS의 구호
Speed 속도
Aggression 공격성
Surprise 기습
SAS 정글 오두막 진압훈련 - BBC Knowledge 채널

1. 개요2. 역사
2.1. 제2차 세계 대전2.2. 제2차 세계 대전 이후2.3. 말레이시아 정찰대(SAS)
3. 대테러 전술4. 심리전 전술5. 전투력 입증6. 군기7. 이름을 둘러싼 해프닝8. 출신 인물 9. 대중매체
9.1. 가공의 출신 인물
9.1.1. 게임9.1.2. 영화9.1.3. 코믹스 & 애니메이션
9.2. 게임9.3. 영화
10. 관련 문서

1. 개요

SAS(Special Air Service)는 1941년 창설된 영국 육군 특수부대이며, 인질구출, 직접타격, 대테러작전, 은밀한 정찰을 포함한 다양한 작전을 수행한다.

현재 SAS는 영국 특수전사령부 소속 제22공수특전(SAS) 연대와 영국 육군 제1정보감시정찰(ISR)여단 소속 제21, 23공수특전(SAS) 연대(예비군)로 구성된다. SAS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창설되어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 1945년 전쟁이 끝난 후 해체되었으나, 평화시에도 특수부대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1947년 향토예비군 부대에 파트타임 예비군 부대인 제21공수특전(SAS) 연대가 창설되었고, 추가로 현역 특수부대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1952년 제22공수특전(SAS) 연대가 창설되었다. 1980년 주영국 이란 대사관 인질 사건 당시 님로드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다. SAS는 세계 각국의 현대 대테러 특수부대에 큰 영향을 끼친 군 대테러 분야의 시조이다.

영연방 국가의 일원인 호주에는 SASR, 뉴질랜드에는 NZSAS가 있으며, 이웃 프랑스에는 제1해병공수연대가 존재한다. 이들의 기량이나 활약상은 원조 못지않다. 각 해당 문서 참조.

2. 역사

2.1. 제2차 세계 대전

SAS는 중동 지역의 영국 육군 코만도 부대가 연이은 전투로 궤멸 직전에 이르러 1941년 7월 중동 지역 5개 코만도 부대 잔존병력을 1개 코만도 부대(중동 코만도 부대)로 축소 개편하는 과정에서 제8코만도 소속 데이비드 스털링 대위의 제안으로 창설되었다. 데이비드 스털링은 중동지역에도 유럽지역처럼 낙하산으로 침투하는 코만도 부대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해서, 새로 창설된 중동 코만도의 6개 소대 중 제1, 2소대가 낙하산 침투부대로 편성되었다. 중동 코만도 제1, 2소대의 대외 명칭은 공수특전(Special Air Service) L 파견대였는데, SAS라는 이름은 영국에 주둔하던 낙하산 침투 코만도 부대인 제11SAS의 명칭을 따온 것이었다.[1]

파일:Special Air Service.jpg

1941년 11월 16일 크루세이더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실시된 데이비드 스털링의 첫 SAS 작전은 참담한 실패로 돌아갔다. 경험이 없었던 수송기는 엉뚱한 곳에 부대원들을 강하시켰고, 장비와 병력 대부분은 흩어져서 다시는 집결하지 못했다. 작전에 참가한 62명의 대원 중 22명이 죽거나 포로로 잡혔고, 18명이 부상을 당해, 공격 목표는 구경도 못하고 중간 집결지에서 철수를 해야 했다. 이 작전에서 계획대로 실시된 것은 복귀를 위해 대기하던 영국 제8군 직할 장거리 차량 정찰부대인 장거리 사막단(Long Range Desert Group, LRDG)의 퇴출작전뿐이었는데, 이 트럭을 타고 복귀하던 중 스털링은 사막 지형에서 공수작전의 어려움을 절감하고 대신 자동차 침투작전을 새롭게 구상했다.

그가 새로 구상한 새로운 작전은 LRDG의 전문가들이 자동차로 SAS를 목표지점까지 안내해 주면, SAS가 적을 기습공격하고, 다시 LRDG를 따라 부대로 돌아오면 된다는 것이다. 1942.6월 마침내 SAS의 두 번째 작전이자 첫 자동차 기습작전이 시작되었다. LRDG의 안내로 리비아에 있는 3개 비행장을 기습공격한 SAS는 다수의 항공기를 파괴하고, 멀리서 대기하고 있던 LRDG의 안내를 받으며 무사히 기지로 돌아왔다.

SAS 작전 중 최고의 성공을 거둔 작전은 1942.7.26일 실시된 시디 하니시(Sidi Haneish) 비행장 기습작전으로 SAS는 LRDG의 도움으로 무더운 낮에는 적의 항공 정찰을 피하고 피로를 막기 위해 위장한 채 잠을 자고, 야간을 이용해 이동하는 식으로 사막을 멀리 돌아 적진 깊숙히 침투한 다음 폭격기와 수송기 37대를 파괴한 작전이었다.

1942년 9월 중대 규모의 중동 코만도가 해체되고, 대대 규모의 제1공수특전(SAS) 연대로 확대 개편되었다. 제1 SAS 연대는 영국군 4개 중대(Sqn), 자유프랑스군 1개 중대, 그리스군 1개 중대, Folboat(SBS) 1개 분대로 구성되었다. 이후 SAS는 차량을 이용한 히트 앤드 런 작전으로 1943.1월 스털링이 튀니지에서 독일군에 포로로 잡히기 전까지 250여 대의 추축군 항공기를 파괴했다. 독일군은 공중전에서 잃는 전투기보다 SAS에 의해 파괴되는 전투기가 더 많았던 날이 있을 지경이 되었다. 스털링이 포로로 잡힌 후에는 제1SAS연대는 특별기습중대(Special Raiding Squadron, SRS)와 SBS(Special Boat Section)로 분리되고, 제11코만도 출신으로 SAS 창설 요원이었던 패디 메인 육군 소령이 SRS 지휘관이 되었다. 북아프리카 전역이 끝나고 SRS는 시실리와 이탈리아 전역에 참가했다.

한편, 1941년 창설되어 국가정보기관인 특수작전집행부(Special Operations Executive, SOE)의 작전부대로 활동했던 제62코만도(또는 Small Scale Raiding Force, SSRF)가 1943년 해체되면서, 제2공수특전(SAS) 연대(연대장은 데이비드 스털링의 형인 빌 스털링 육군 중령)로 개편되었다.

1944년 1월 SRS는 다시 원래대로 제1공수특전(SAS) 연대로 확대 개편되고, SRS 지휘관, 패디 메인 육군 소령은 중령으로 진급하면서 제1공수특전(SAS) 연대장을 맡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공수특전(SAS) 여단이 창설되어 예하에 영국 육군 제1, 2SAS연대와 프랑스 제3, 4 SAS연대, 벨기에 제5SAS연대를 관할하게 되었다. SAS는 이때부터 자동차 기습 대신 독일 점령 프랑스에 대한 낙하산 기습 침투 작전을 펼치게 되었다.

2.2.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에서 전쟁이 끝나자 1945년 10월 8일 군축의 필요성에 의해 SAS는 해체되었으나, 다음 해인 1946년 장기간 장거리 침투부대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1947년 1월 1일 향토예비군(Territorial Army)에 제21공수특전(SAS) 연대가 창설되었다. 이 연대번호는 해체된 SAS 연대를 기념하기 위해 제1, 2 SAS연대의 숫자 1과 2를 가져와 새로운 첫 번째 공수특전(SAS) 연대라는 의미에서 1과 2의 순서를 바꿔 21연대라는 번호를 붙인 것이다.

2.3. 말레이시아 정찰대(SAS)

1950년 한국에서 6.25 전쟁이 발발하자 제21공수특전(SAS) 연대에서 1개 중대가 3개월 간의 6.25전쟁 파병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에서 작전 소요가 없어서 대신 말레이시아 비상사태(Malayan Emergency, 1948~1960)에 파병을 가게 되었다. 당시 말레이시아에는 1945년 3월~10월까지 영국 공수특전(SAS) 여단장을 지낸 마이크 칼버트가 말레이시아 정찰대(SAS)를 창설 중이었는데, 그는 극동 주둔 영국군에서 SAS와 친디트 부대 출신 지원자를 받아 A중대를 창설하고, 영국 본토 주둔 제21SAS 연대에서 파병된 SAS 중대를 말레이시안 스카우트 B중대로 편성했다. C중대는 영국령 로디지아에서 영국인 지원자를 받아 창설했다. 로디지아 출신 지원자들이 3년 계약이 끝나 귀국한 다음에는 뉴질랜드에서 새로 지원자를 뽑았다. 1956년에는 D중대와 육군 낙하산 연대에서 파병된 낙하산 중대를 포함하여 5개 중대로 구성되었다.

현역 공수특전(SAS) 부대의 필요성이 인식되어, 1952년 현역 제22공수특전(SAS) 연대가 영국에서 창설되었다. 1959년에는 MI9의 뒤를 잇는 도피 및 탈출 전문 부대인 예비군 수색대(the Reserve Reconnaissance Unit)를 제23공수특전(SAS) 연대로 개칭하여 세 번째 공수특전(SAS) 연대를 창설했다.

친공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정권이 반외세를 외치며 말레이시아공산당을 지원하며 벌어진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전쟁에서도 공산 게릴라로 가장한 인도네시아 정규군과 싸웠다. 최종적으로 정부를 지키고 민심을 돌리는데 성공하며 이는 성공적인 대(對)게릴라전의 대명사로 여전히 거론되고 있다.

훗날 월남전에서 미군이 막대한 병력과 물자를 소모하고도 결국 베트남의 민심을 얻지 못해 패배한 것에 비해 큰 교훈이 되었다. SAS는 이 작전에서 FN FAL과 같은 고위력 전투소총이 특수임무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 후에 영국군 최초로 M16을 도입했다. 이후 M16은 영국군 내에서 아말라이트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SAS의 상징이 되었다.[2]

3. 대테러 전술

이들은 1960년대 이후로 테러리스트와 대테러전에 관한 개념도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인질구출이나 테러 진압작전의 개념을 만들었다. 특히 북아일랜드에서 IRA와의 시가전 경험을 쌓았다.[3]

북아일랜드에서 실전경험 등을 통해 대테러전에서 최고급의 기량을 쌓았으며, 외국 대테러부대와 잦은 교류를 통해 대테러전 노하우를 공유, 발전시켜 나갔다. 1977년에 있었던 GSG-9의 "마법의 불꽃" 작전 당시 SAS 고문관들이 섬광탄을 제공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1980년 이란 대사관 인질 사건(님로드 작전) 당시, 인질 1명이 사망해 과감히 진압을 결정하고 통해 테러범들을 제압하고 모두 성공적으로 구출하며 자신들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렸다. 이때 이들이 사용한 장비들과 민무늬 검은색 전투복과 방독면[4], MP5 기관단총 같은 특징들은 군사무기 매니아들에게는 SAS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였고 그들이 보여준 진압작전 노하우와 장비들은 다른 나라 대테러부대들도 널리 받아들이는 일종의 유행이 되었다.

영국 지배 하의 홍콩에서 창설된 경찰특공대 비호대(Special Duties Unit)도 영국에서 초빙된 SAS 교관의 훈련을 통해 탄생했다.

4. 심리전 전술

SAS는 또한 심리학 전문가를 반드시 작전에 투입하며, 이는 민사작전과 적지에서 게릴라 편성 및 우호적인 세력 형성에 크나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이라크에서도 자유 의용군 편성에 큰 역할을 했으며, 알려지지 않은 전쟁에서도 많이 활약했다고 한다. 특히 오만 내전 당시 심리학 전문가가 대거 투입되어 공산군에 들어간 민간인들을 설득하여 정부군에 편에 서게 하기도 했다. 심리학 전술이 실패한다면 심리학 전문가들은 짐만 된다는 일부 밀덕들의 주장이 존재하는데... 과연 그럴까? 아래 예시를 보자.

포클랜드 전쟁에서도 심리학 전문가가 투입되어 아르헨티나 군 후방에서 혼란을 줄려고 했지만 타고가던 핼리콥터에 역풍이 불었고 움직이던 SAS 대원 전부[5]가 20kg에 가까운 군장+박격포 부속품+박격포탄+중기관총+중기관총탄+기타 등등(...)을 지고 있어서 작전이 8시간이나 지연되는 바람에 취소되었다. 그 심리학 전문가가 포함되어 있던 SAS 지역대는 아르헨티나 공군 전진기지 습격작전을 위해 대기하던 다른 SAS 지역대와 합류하여 함께 아르헨티나군의 폭격기 파괴임무에 투입되었고, 성공적으로 작전을 수행했다.[6]

5. 전투력 입증

1980년 주 영국 이란 대사관을 점거한 테러리스트를 소탕하고 인질들을 구출한 님로드 작전이 SAS의 대표적인 활약으로 뽑힌다.[7]

포클랜드 전쟁 당시에도 여러 작전에서 맹활약했지만, 아르헨티나군의 기관포 진지 앞으로 쭉 펼쳐진 평야지대를 거슬러 올라가 공격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되어 큰 피해를 입었다. 한편으로는 영하의 날씨에 고산지대를 행군하고 적의 배후를 습격하는 임무에서 단 한 명의 동사자나 비전투 손실도 입지 않아 이후 다른 나라 군대의 동계작전의 모범이 되었다. 당시 사상 최초로 고어텍스 재질의 야외 상의와 전투화가 지급되었다고 하며, 꾸준한 휴식과 따뜻한 로 체력을 유지해 성공적으로 전투력을 유지했다고 한다.

걸프전에서도 역시 이라크의 스커드 미사일 발사대 추적이나 전략 목표 정찰, 연락선 차단 등의 임무에 투입되었다. 이때, 브라보 투 제로라는 암호명을 띄고 스커드 미사일 감시를 하러 간 일단의 SAS 부대가 어린 목동 소년에게 우연히 발견되어 위치가 발각되자 헬리콥터로 이탈하려 했지만, 헬리콥터가 오지 않고 적의 추격이 계속되자 도보로 이라크를 횡단하여 거의 시리아 국경 앞에서 1명은 탈출에 성공하고 3명은 전사, 4명은 붙잡혀 포로가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때 포로가 되었던 한 대원이 그들의 희생과 작전 전체가 극비로 취급되는 것에 분개, 전역 후 브라보 투 제로라는 책을 써내며 이들의 활약상과 놀라운 희생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브라보 투 제로 작전팀의 경우 8명의 인원으로 장갑차를 가진 수백의 정규군과 민병대의 추격을 꾸준히 물리치면서 너무 먼 사우디아라비아 쪽 국경보다는 가까운 시리아쪽 국경을 택해 시리아 국경에서 몇 km 남짓한 지점까지 도망치는데 성공했다. 다만 무사히 시리아로 도망친 사람은 1명뿐이었다. 도망치는 과정에서 전투와 추위로 3명이 전사하고, 포로가 된 이후에도 몇개월에 걸쳐 무수한 고문과 심문을 당했지만 그럼에도 자신들의 정체를 숨겼다. 이라크군이 이들의 정체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전쟁이 끝나고 포로교환을 한 이후였다고 한다. 대원들의 기량은 그야말로 일당백이지만 특수전 장비나 헬리콥터 같은 지원요소가 부족했던 한계 때문에 대원들이 불가피한 희생을 치루었다고 평가된다.

시에라리온에서는 평화유지군으로 파견되었다가 반정부군에 인질로 잡힌 영국군 장병들을 공수부대와 공군과의 협동작전으로 성공적으로 구출하기도 하였다(바라스 작전).

2013년 케냐 나이로비의 쇼핑몰 인질극(Westgate Shopping Mall Attack) 당시 전직 영국 육군 특수부대 SAS 장교 출신으로 나이로비 민간 보안회사에 근무 중이던 도미닉 트롤런(Dominic Troulan) 퇴역 육군 소령이 테러범들과 총격전을 벌이고 인질 100여명을 구출했다. 그는 먼저 자기 동료의 부인과 자녀를 구출한 것을 시작으로 모두 12번이나 쇼핑몰을 왕복하며 인질들을 구출하여 2017년 영국 정부로부터 2등 훈장인 조지 크로스(George Cross, GC) 훈장을 수상했다. 민간인에게 조지 크로스 훈장이 수여된 것은 2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트롤런 소령은 1979년 영국 해병대에 병으로 입대하여, 해병대 코만도 부대에서 하사로 전역한 후 영국 육군 부사관으로 재입대했고, 육군 낙하산 연대를 거쳐 육군 특수부대 SAS 장교로 임관, 2009년 소령으로 전역했으며, 포클랜드 전쟁과 북아일랜드 분쟁,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참전용사이다.

기량이 매우 높은 특수부대로 각 대원의 신원 자체가 비밀로 다뤄질 정도로 이들은 영국의 전략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아돌프 히틀러는 SAS에 대해서 "그들은 매우 위험한 존재이므로 발견 즉시 사살해야 한다."라고 했다. 재미있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 SAS는 적국인 독일 음악 릴리 마를렌을 상부의 반대를 무시하고 행진곡으로 채택하였는데 그걸 21세기에 들어서까지도 계속 사용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부터 연합군 내에서도 대 유행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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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테러리스트들이 하늘에서 전폭기를 보면 도주하거나 은신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SAS는 그들이 보거나 들을 수가 없죠. 우리는 다수의 저격수를 투입해서 공포감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슨 일이 채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죽은 옆의 동료가 모래 위에 나자빠지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겠지요. 우리 전술의 목표는 예측이 불가능한 게릴라식 공격으로 IS에게 공포감을 불어넣고 그들의 사기를 꺾어버리는 것입니다."

2014년 영국군 SAS가 북서부 이라크에서 ISIS에 대한 인간 사냥을 시작했다.[8]# 미리 교신 감청과 무인기 운용을 병행해서 표적들을 확인한 뒤 치누크 수송헬기로 ATV 팀을 투입하고 AWM, Barrett M82 저격소총과 GPMG 등을 사용해 야간에 목표들을 습격한 뒤 고속으로 도망쳐서 빠져나오는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쓰인 전통적인 방식의 개량판이다.

작전이 시작된 지난 4주간의 효과는 꽤 뛰어나서 200여 명 이상의 타겟을 사살시켰는데, 그중에는 장교급 인물이 무려 50% 이상 포함되어 있다. 2017년 5월에는 이라크 모술에서 SAS 스나이퍼가 SVD로 영국군을 저격하던 IS 저격수를 2400미터 밖에서 역저격해 사살했다고 한다. 저격에 사용한 총은 샤이택 M20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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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맨체스터 경기장 테러 당시 2차 테러를 막기 위해 SAS 작전팀이 경찰특공대와 함께 투입되었다. 37년 전 선배들이 그러했듯 방독면을 착용했으며, 일부 대원은 원격 폭탄 테러를 막기 위해 전파방해기를 메고 다녔다.

2017년 모술 인근에서 작전 수행 이후 귀환하던 대원들이 강어귀에서 50여 명의 IS 대원들로부터 기습을 당했는데 실탄을 거의다 소모한 상황에서 죽기살기로 백병전을 감행, 35명을 황천길로 보내버렸다고 한다. 한 대원은 짱돌로 한 사람을 후두려패면서 다른 하나를 익사시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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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케냐 나이로비의 두짓 D2 호텔 복합단지에서 일어난 알샤바브 5인조 테러에서 케냐 특수부대 교관으로 활동중이던 SAS 제22연대 D 중대 소속 대원이 단독으로 신속한 수색 섬멸전을 펼쳐 테러범을 모두 사살했다고 한다. 이 대원은 테러 사건 당일에 비번으로 나이로비 시내에서 쇼핑을 하고 있었다가 테러가 터지자 사진처럼 사복차림 위에 급하게 무장을 했고, 방독면 대신 얼굴을 가리기 위해 두건을 대충 둘러쓴 것이 특징. 이 대원은 곧 최고 무공훈장 다음인 조지크로스 훈장 후보로 상신될 예정이라고 한다.

6. 군기

한편 전시가 아닌 평상시의 훈련 강도와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라서 반대급부로 풀어줄 때는 군기가 거의 개판 5분전으로 흐트러진다고 한다. 물론 전문가들이라 어느 정도 선은 지키고, 쉴 때는 확 쉬고 할 때는 확 하는 식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그 레벨이 다른 군인들이 보기에는 거의 똘끼에 가깝다는 것도 특징이다. 한 예로, 1962년 그린베레 교환 장교로 SAS에서 1년간 훈련을 받았던 미군 장교 찰스 베크위스[9]는 난장판이 된 내무실 바닥에 앉아서 휴대용 가스난로로 차를 끓이던 한 SAS 대원에게 주변 정리정돈 좀 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가 "X까." 라는 대답을 듣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경험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실력과 독특한 훈련군기 등을 접하고는 훗날 1977년 델타포스가 창설되는데 큰 기여를 한다. 미군 특수부대원들의 군기도 어느 정도는 여기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베크위스의 사례도 당사자들에게는 별일 아닐 수 있는 것이, SAS는 대원들 간에 계급이 없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SAS 대원이 되는 순간부터 계급을 반납하고 SAS 대원(Trooper)으로만 취급하기 때문이다. 물론 복무 중 자신의 본래 계급은 그대로 적용되고 실제 진급도 가능하지만 이는 연대 내부에서는 적용되지 않으며, 연대에서 전출된 다음에야 자신의 정상적인 계급장을 가져갈 수 있다. 단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이는 부사관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장교들은 아예 차출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계급 반납이 없다. 대원의 경우 의무적인 연대 내 복무 기한을 마치고 짤 없이 한번 방출된 이후로는 추후 본인 의사에 따라 다시 SAS에 부사관으로 자원할 수도 있다.

이는 무작정 군기를 들여 쉬는 중에도 군인들에게 상시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것보다는 체계적인 훈련과 그에 비례한 정신적 보상이 군사의 숙련도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대표적인 예시이다. 이들이 훈련시간 외에 군기를 집어던진 똘끼로 가득 찬 행동을 할지언정 실전으로 변하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인간흉기로 탈바꿈한다.

게다가 미국의 DEVGRU, 러시아의 스페츠나츠 등 비슷한 수준의 특수부대들이 사살한 적의 시체나 민간인에 대한 잔혹행위를 해서 문제가 된 것과는 달리 SAS는 현재까지 그런 잔혹행위를 했다는 소문이나 제보가 젼혀 없다.

7. 이름을 둘러싼 해프닝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SAS라 불렸으나 현재의 정식명칭은 '제22공수특전(SAS)연대' 이다. 21 SAS연대와 23 SAS연대도 있는데 이들은 방학 등 여유시간에만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는 상근예비역 부대이고 현역으로 활동하는 것은 22연대다. 자신들은 그냥 'The Regiment'(연대)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혹은 부대 본부가 있는 '헤리퍼드'(Hereford)로 지칭하기도 한다.

이름 탓에 사람들이 공군 또는 공수부대[10] 소속으로 착각하거나, '특수공군연대'라는 해괴한 번역을 당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SAS는 어디까지나 고유명사이니만큼, 미군의 델타포스처럼 따로 옮기지 말고 그냥 SAS 그대로 쓰는 게 가장 무난하다. SAS가 뭔지 전혀 모르는 일반인들을 위해 굳이 번역을 해야 한다면 기원이나 역할을 고려할 때 '공수특전단' 으로 번역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영국군 공수부대가 따로 있어 헷갈릴 위험도 약간 있지만, 공수특전단의 "특전단"이란 명칭이 특수전을 수행하는 부대임을 나타내므로 정규전 부대인 영국 육군의 공수연대와 헷갈릴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사족으로 진짜 SAS 대원인지 스파이인지 알아보려면 그 사람이 자기네 부대를 '에스 에이 에스' 라 하지 않고 '싸스' 라고 발음하면 스파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반대로 옆동네의 프랑스GIGN에선 자기네 부대를 '지 아이 지 엔' 이라 부르지 않고 '지젠느' 라고 부르면 스파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8. 출신 인물

9. 대중매체

대중매체에서는 위에서 설명한 이란 대사관 인질 구출 사건의 영향으로 주로 방독면을 쓰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9.1. 가공의 출신 인물

9.1.1. 게임

9.1.2. 영화

9.1.3. 코믹스 & 애니메이션

9.2. 게임

9.3. 영화

10. 관련 문서



[1] 제11SAS는 원래 제2코만도로 창설되었다가 제11SAS로 개칭되었고, 다시 제1낙하산대대로 개칭되었다.[2] 다만 이때의 M16은 대부분 인도네시아군으로부터 노획된 것이 대부분이었고 이후에는 정식으로 들여오게 되었다.[3] 그러나 이 과정에서 IRA 간부를 제거한답시고 IRA 간부의 승용차에 폭탄을 설치해놓고서는 죄 없는 간부 친척들까지 다 모였을 때 "어 테러범 떼거지로 모였네" 하고 폭파시키는 등 여러 가지 실수도 있었다고 한다. 실수로 무마하기엔 죄가 좀 크지만 넘어가자 아일랜드인 학살사건으로 가장 유명한 1972년 1월 30일의 "피의 일요일 사건"은 SAS가 아니라 낙하산 연대 제1대대가 일으킨 사건이다.[4] 검은색과 방독면에서 나오는 기계적인 분위기로 위압감을 주기 위함이다.[5] 당연하겠지만, "심리학 전문가" 또한 SAS 대원이므로 예외는 없다.[6] 아르헨티나군의 대함공격기 8대가 파괴되는 동안 SAS는 한 명의 사상자도 생기지 않았으며, 오히려 작전 시작 직후 아르헨티나군 현장 지휘관과 부사관 한 명이 기관총에 쓰러지는 바람에 아르헨티나 육군 150명이서 SAS 30명 정도가 넓디 넓은 비행장을 말 그대로 활보하는 동안, 총 한 발 쏘지 못하고 모두 방공호로 도망쳤다고 한다.[7] 대중매체에서는 이 작전에 관련된 SAS 대원 중 한 사람인 존 매컬리스를 모티브로 삼아 캐릭터를 디자인했다. FPS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 들어봤을 어느 대위가 바로 그 인물이다.[8] 프랑스나 영국의 경우, 대외적으로는 국제적 지위 때문에 분쟁에 개입하는 미국과 달리 여러 이유를 들어가며 미국과 함께 개입하여 자기나라 군부대의 실전 경험을 쌓는다는 느낌이 강하다.[9] 바로 아래 문단에서 설명될 델타포스를 창설한 베크위스 대령이다.[10] 실제로 창설 당시엔 공수부대였으니 아이러니.[11] 단 후자 인물은 전 소속이었고, 현재는 전자와 중자 인물이 소속된 곳이다.[12] 정확히는 SIS에서 스파이 활동 도중 SAS에 가담, 걸프전에서 스커드 미사일 발사 트럭을 파괴, 대활약을 했다는 설정이 있다.[13] SAS에 소속된 특수부대인 '델타 레드'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