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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 조호 3년~고와 2년 |
히브리력 | 4761년 ~ 4861년 |
북송 | 함평 4년~원부 3년 |
요 | 통화 19년~수창 6년 |
서하 | X~영안 3년 |
고려 | 목종 4년~숙종 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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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세기는 서력으로 1001년부터 1100년까지이다.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의 세기이다.동로마 제국은 11세기 초까지의 중흥기를 뒤로 하고 셀주크 제국과 노르만 인의 침공으로 혼란에 빠졌다. 이때 십자군이 시작되며 서유럽이 지중해 사회와 본격적인 접촉을 시작하게 된다.
동양에서는 송나라가 요나라, 서하에게 군사적으로 크게 밀려 조공을 바치게 되었으나 문화, 경제적으로는 큰 번영을 누렸다. 고려는 요나라와의 20여 년에 걸친 여요전쟁에서 승리한 후 전성기를 맞이하며 번영하였다. 일본에서는 국풍 문화의 끝물이 오며 인세이, 즉 원정이 시작되었는데 장원이 늘며 중세 무사, 즉 부시 세력이 성장하였다. 다가오는 막부를 예고한다. 우산국은 여진족들의 침공으로 많은 백성들이 고려로 도망가서 완전히 멸망했다.
2. 11세기의 주요 국가
2.1. 유럽
중세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삼포제와 같은 농업혁명으로 생산성이 증가하면서 무역이 활발해졌고, 사람들이 도시에 몰리기 시작했다. 도시가 커지자 규율을 위한 법과 길드가 나타났고, 법을 가르치기 위해 1088년 세계 최초의 대학 볼로냐 대학교가 개교했다.황제가 교회를 권력을 위해 악용하는 문제가 심해지자 교회개혁을 주도하던 클뤼니 수도원 세력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를 배출해 황제와 서임권 투쟁을 벌였다. 황제 하인리히 4세는 그레고리우스 7세를 제거하려고 했으나 파문당해 그의 별장 카노사에서 용서를 빌었고 파문이 해제되었다. 이후 그레고리우스 7세를 쫓아내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서임권은 최종적으로 교황이 차지하게 되었고 12세기 이후 교황의 권위는 절정에 달했다.
교황권이 강해지는 과정에서 교회개혁의 의지에서 '올바른 기독교 세계'의 구현, 황제, 동방교회를 견제하려는 목적과 성지순례를 막은 셀주크 제국을 단죄하려는 목적, 농업생산량 및 인구의 증가와 도시국가의 무역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콘스탄티노플이 아닌 또다른 무역 거점의 필요성과 인구 분산의 필요성, 기사들의 폭력성 분출 등의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여 1095년 십자군 전쟁이 개시되었다.
건축의 측면에서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시대였다. 로마가 멸망하면서 아치와 같이 개방적인 구조가 목적인 양식들의 용도가 잊혀졌고, 아치를 벽에 장식하는 등 로마 시대의 본래 목적과는 달라졌다. 창문이 좁아 많이 답답한 느낌을 준다. 잘리어 왕조의 슈파이어 대성당이나, 피사의 사탑으로 유명한 피사 대성당이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표적 건물이며, 피사 대성당의 경우 건축이 끝나가는 시기에 로마네스크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모습도 보인다.
- 신성 로마 제국
폴란드를 공격해 일시적으로 신하로 만들고 헝가리를 공격했으나 패배하고 국경의 일부를 내줘야 했다. 또한 교황과 세속군주의 서임권 분쟁으로 카노사의 굴욕이 일어났다. - 동로마 제국
중흥기를 맞은 동로마 제국은 아르메니아 왕국과 1차 불가리아 제국을 공격해 영토를 넓혔다. 이러한 중흥기는 11세기 중반까지 이어지나 11세기 중반 혜성처럼 나타난 셀주크 제국이 부와이 왕조를 멸망시키고 아나톨리아로 진격해왔고, 결국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패배하며 아나톨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상실하게 되었다. 게다가, 이탈리아까지 노르만족에게 완전히 뺏겨버린다. - 후우마이야 왕조
후우마이야 왕조는 1002년의 알 만수르 사후부터 지속적으로 국력이 쇠약해지고 영토를 조금씩 레온 왕국에게 빼앗기기 시작했으며, 결국 타이파들이 하나둘 독립을 선언하여 11세기에 이르면 코르도바 인근 지역만을 지배하는 소국으로 전락했고, 결국 귀족들과 시민들이 공화 혁명을 일으켜 멸망했다. 이후 알 안달루스에는 타이파 시대가 열리게되었다. - 레온 왕국
11세기 중반, 나바라 왕국의 침공으로 왕조가 아스투리아스-칸타브리아 왕조에서 히메나 왕조로 교체 된후, 2대왕인 알폰소 6세의 치하에서 레온 왕국은 전성기를 맞았다. 알폰소 6세는 이슬람세력들이 분열되어 있는 틈을 타서 톨레도를 점령하였고, 알폰소 6세 시기에는 사실상 이베리아 전체가 레온 왕국의 지배하에 놓여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나 위기를 느낀 타이파들은 무라비트 왕조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무라비트 왕조가 기독교세력들을 분쇄시켜 버리고 타이파들을 공격해 알안달루스를 통일하자 레온 왕국의 전성기는 끝나고 만다. - 나바라 왕국
11세기에 전성기와 쇠락을 둘다 맞본 국가, 위대한 안초 3세 대왕의 시기 정복으로 카스티야 백국을 병합하여 아들에게 주고, 레온왕국을 정복하였다. 허나 이후 안초3세가 사망하고 분할 상속으로 아라곤과 카스티야-레온이 독립해나가면서 나라는 기울기 시작했으며 이후 가르치아 국왕이 동생들에게 완패하고 결국 손자대에 가족내의 내분으로 국왕이 암살되면서 아라곤왕국과 카스티야 왕국에게 분할되며 아라곤왕국의 동군연합이 된다. - 프랑스 왕국
당시의 프랑스는 카페 왕조 초기였는데, 왕권이 너무나 미약한 시기였기에 카페 왕조의 직할령은 오를레앙과 파리 주변에 불과했다. - 잉글랜드 왕국
덴마크 바이킹과의 치열한 전쟁이 계속되었고 정복과 분리독립을 반복했다. 참회왕 에드워드의 시기에 고드윈 가문에 대항할수 있을정도로 세력을 키워 강력한 왕권을 재확립했으나 노르망디 공작 월리엄 1세의 침공으로 잉글랜드는 노르만족에게 정복되고, 노르만 왕조가 시작되었다. - 덴마크 왕국
스벤 1세가 잉글랜드를 일시적으로 정복하고 덴마크-잉글랜드 동군연합을 창시하였으나 얼마안가 스벤 1세가 죽으면서 동군연합이 와해되었다. 이후 스벤 1세의 아들 크누트 대왕은 잉글랜드를 다시 공격하여 정복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시기의 덴마크는 북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크누트 대왕의 덴마크를 북해 제국이라고도 불렀다. 이후 크누트 대왕은 고드윈 백작이 잉글랜드를 통치하게 하였다. - 폴란드 왕국
볼레스와프 1세 때 공식적으로 왕국이 되고 국력이 강해졌으며 키예프 루스의 중심지인 키예프를 잠시 점령하기도 하였다. 볼레스와프 1세 사후 내분으로 국력이 약해져 잠시동안 신성 로마 제국의 신하가 되지만 볼레스와프 2세 때 다시 국력을 회복하였다. 또한 황제와 교황의 대립에서 교황의 편을 들어 신성 로마 제국의 신하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 헝가리 왕국
이슈트반 1세 때 헝가리 대공국의 공작 작위가 왕으로 승격되어 헝가리 왕국이 건국되었다. 헝가리 왕국은 점차 발칸반도로 영향력은 넓혀가기 시작했고, 십자군 전쟁이 일어날 즈음에는 강대국으로 성장하였다. - 1차 불가리아 제국
차르 사무일이 즉위하면서 잠시 중흥했으나 클레이디온 전투에서 완패하면서 사무일이 화병으로 죽고, 결국 1018년 내분으로 인해 멸망하였다. 이로 인해 불가리아는 한동안 동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 키예프 루스
키예프 루스는 11세기 중반에 야로슬라프 1세 시기에 최전성기를 맞아 국력이 크게 성장하고 문화적으로도 크게 번영하였다. - 교황령
11세기에 들어서 그레고리오 7세와 우르바누스 2세의 노력으로 교황권이 크게 강해졌다. 그러나 시칠리아 왕국과의 충돌로 영토면에서는 축소되었다.
2.2. 아시아
- 카라한 칸국
10세기 말 사만 왕조를 공격하였으나 셀주크 제국과 연대한 사만조의 군대에게 대패하여 쇠퇴하고 말았다.결국 내분으로 국력이 약해진 카라한 칸국은 11세기 말 셀주크 제국에 복속되었다. - 부와이 왕조
아바스 왕조의 쇠퇴로 인해 부와이 왕조는 11세기 초에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부와이 왕조는 내분으로 인해 동서로 분열되었고, 가즈니 왕조에 의해 호라산을 상실하고 쇠퇴하다가 11세기 중반에 셀주크 제국의 공격으로 바그다드가 셀주크에게 함락되면서 부와이 왕조는 측출되어 멸망하였다. - 가즈니 왕조
마흐무드의 인도 원정으로 인도의 수많은 힌두교 유적들을 파괴하고 프라티하라 왕조를 멸망시켰다. 이후 가즈니 왕조는 벵골의 팔라 왕조와 대치하게 되었다. 이후 가즈니 왕조는 한동안 강력한 세력을 유지하다가 11세기 중엽 셀주크에 의해 호라산의 패권을 상실하였으나, 그래도 인도 내에서는 세력을 유지하였다. 결국 11세기 말에 고르 왕조에 의해 멸망하였다. - 촐라 제국
스리위자야를 격파하고 동남아시아를 영향력 아래에 두게 되었다.이후 체라 왕조를 공격해 아랍인들의 세력을 축소시켰다. 이후 서찰루키아 왕조를 공격하고 북인도 진출을 시도하여 팔라왕조까지 진출하나 북인도의 저항이 만만치 않아 실패하고 영향력을 넓히는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 크메르 제국
11세기에 들어서 크메르 제국은 점점 국력이 강해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12세기에 크메르 제국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 스리위자야
11세기 초에 스리위자야는 말레이, 수마트라, 자바를 모두 장악하여 전성기를 맞이하고 동남아시아를 장악하였다. 그러나 촐라 왕조가 팔렘방을 기습하여 스리위자야는 해상 제국으로서 제해권을 잃었고, 크다 지역의 반란으로 인해 말레이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 북송
너무나도 약한 군사력으로 인해 요나라에게 굴복하고 말았다. 이후 송나라는 서하에게마저 패배하여 세폐를 바치게 된다. - 요나라
성종 때 북송을 공격해 개봉 코앞까지 진격하였으나 결국 실패하고 중원 진출을 포기했다. 11세기 중반부터 경제적으로는 번성하였으나 계속해서 일어나는 반란으로 인해 조금씩 쇠퇴하기 시작했다. - 고려
고려는 여요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전성기를 맞아 11세기 동안 강력한 국력을 인정받았다. 송나라와도 동등한 위치에서 외교하려고 하였으며 만주의 여러 세력들이 고려의 영향권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 셀주크 제국
가즈니의 세력을 격파하고 전성기에 접어 들었다. 여러 이슬람세력들이 차례차례 셀주크 제국에 점령되자 위기를 느낀 동로마 제국이 제국의 모든 역량을 끌어모아 만지케르트로 진군하였으나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박살나면서 셀주크가 아나톨리아까지 장악하게 된다. 셀주크 제국은 파티마 왕조와도 전쟁을 벌였고, 11세기에 셀주크 제국은 중동의 이슬람 세력을 통합하고 넓은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다. - 서하
고려가 동쪽에서 요와 송과 균형을 이룬 반면 서하는 서쪽에서 균형을 이뤘다. 이쪽은 요나라와 더 친해서 11세기 내내 북송과 잦은 소모전을 치르는 한 편 양국에게 책봉 받으면서 균형을 바로잡았다. 하지만 내정 면에서는 혼란이 끊이질 않아 황권이 불안정한 시기이기도 했다.
2.3. 아프리카
- 파티마 왕조
11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파티마 왕조는 점차 쇠퇴하였다. 동로마 제국, 셀주크 제국과의 전쟁에서 연전연패하였고 십자군 전쟁까지 터지면서 시리아와 아라비아반도에서의 영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 가나 제국
부족장들끼리의 내분으로 인해 국력이 크게 쇠약해졌고 무라비트 왕조의 공격을 받아 멸망 일보직전의 상황이였다.그러나 무라비트 왕조가 철수하자 가나 제국은 재건되었다. - 무라비트 왕조
무라비트 왕조는 이드리스 왕조 이후 강자가 없던 서북아프리카를 순식간에 장악하였다. 11세기 중반에 이르면 모로코가 완전히 무라비트 왕조에게 점령되고 가나 제국은 몰락했다. 알제리도 정복하였으며 11세기 후반에는 타이파들의 요청으로 알폰소 6세를 격파하고 알 안달루스를 지배하게 되었다.
3. 주요 사건
- 1001년 - 가즈니 왕조의 술탄 마흐무드가 인도 원정을 시작하였다. 바이킹의 빈랜드 식민지가 형성되었다.
- 1002년 - 알 하지브 알 만수르의 후우마이야 왕조 군대가 나바라 왕국을 침공하였으나 카스티야와 레온의 연합군에 패배하였다. 시스탄 지역이 가즈니 왕조에 정복되었다. 폴란드 왕국이 보헤미아 공국을 점령하였다.
- 1003년 - 덴마크의 왕 스벤 1세가 잉글랜드를 침공하였다. 타타르족이 요나라에 항복하였다. 프랑스 왕국의 로베르 2세가 부르고뉴를 공격하나 실패하였다. 헝가리 왕국이 트란실바니아를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 1004년 - 신성 로마 제국의 하인리히 2세가 폴란드 왕국을 공격하여 보헤미아를 제국령에 포함시켰다. / 북송과 요나라 사이의 전연의 맹 체결
- 1008년 - 이베리아 반도의 후우마이야 왕조가 쇠퇴하며 사라고사 토후국이 독립, 1차 타이파 분열기 시작. / 가즈니 왕조의 술탄 마흐무드가 페샤와르 전투에서 힌두 연합군을 격파.
- 1009년 - 고려, 강조의 정변으로 8대 국왕 현종 즉위(~1031). / 베트남, 리 왕조 성립. / 바다호스 토후국이 후우마이야 왕조로부터 독립하였다.
- 1010년 - 톨레도, 발렌시아, 데니마 토후국이 후우마이야 왕조로부터 독립해 1차 타이파 분열이 가속화. / 일본, 겐지모노가타리 서술 추정.
- 1011년 - 무르시아, 카디스가 후우마이야 왕조로부터 독립했다.
- 1012년 - 후엘바가 후우마이야 왕조로부터 독립했다.
- 1013년 - 덴마크 국왕 스벤 1세가 잉글랜드를 정복하고 대관식을 치렀다. / 바다호스 토후국이 이베리아 반도 중서부 대부분을 가지고 독립하고 그라나다가 이에 동참하면서 후우마이야 왕조는 사실상 붕괴된다. 덴마크의 공세에 지친 폴란드가 포메른에서 철수하였다.
- 1014년 - 클레이디온 전투에서 바실리오스 2세의 동로마 제국군이 제1차 불가리아 제국군을 전멸시켰다. / 스벤 1세가 급사하고 크누트의 데인 인들이 본토로 복귀하며 잉글랜드에 웨식스 왕국이 복원되었다.
- 1015년 - 크누트 대왕이 잉글랜드 공격을 시작하였다.
- 1016년 - 웨식스 왕국의 에드먼드 2세가 급사하자 데인인 크누트 대왕이 잉글랜드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 동로마 제국 - 키예프 루스 연합군이 하자르 칸국을 멸망시켰다. / 롬바르드인의 용병으로 고용된 노르만 족의 남부 이탈리아 진출이 본격화 되었고 시칠리아 왕국의 초석이 마련되었다.
- 1017년 - 남인도의 촐라 제국이 스리랑카를 정복.
- 1018년 - 거란의 3차 침입(~1019). 폴란드 왕국 군이 키예프에 입성하여 루스 국가들을 재편하였다. / 동로마 제국이 1차 불가리아 제국을 멸망시켰다. / 2차 칸나이 전투에서 동로마 군대가 노르만 - 롬바르드 군대를 격파하였다. 촐라 왕조가 15만 해군으로 란카를 공격하였다.
- 1019년 - 고려, 강감찬이 귀주 대첩에서 거란군 격퇴. 여요전쟁의 사실상 종결. / 가즈니 제국의 술탄 마흐무드가 중세 초중기 인도 3대 강국 중 하나였던 프라티하라 왕조를 멸망시켜 북인도의 패권을 장악하였다.
- 1020년 - 인도 카주라호의 마라데바 사원이 세워짐
- 1021년 - 촐라 제국군이 서벵골까지 진격하였다. / 발렌시아 토후국이 후우마이야 왕조에 대한 형식적인 충성마저 버리면서 후우마이야 왕조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 1022년 - 우산국이 완전히 멸망.
- 1023년 - 가즈니 왕조가 트란스옥시아나를 정복. 세비야 토후국이 후우마이야 왕조로부터 독립하였다.
- 1024년 - 가즈니 왕조의 술탄 마흐무드가 펀자브의 힌두교 성지인 솜나스를 파괴하였다. / 렘노스 섬 전투에서 바실리오스 2세의 동로마 군대가 키예프 루스의 슬라브 해적들을 격파하였다. / 북송 시대 중국의 쓰촨성 지방에서 세계 최초의 지폐가 사용됨.
- 1025년 - 촐라 제국군이 수마트라의 스리위자야 군을 격파하고 인도양 해상권을 장악하였다. / 동로마 제국 황제 바실리오스 2세 사망. / 말라가 토후국이 후우마이야 왕조 로부터 독립하여 해군력이 사라짐에 따라 모로코 해안의 후우마이야 왕조의 영토가 상실되었다.
- 1026년 - 탕구트족이 하서 위구르 왕국을 멸망시키고 돈황을 접수하여 하서주랑을 정복하였다. / 크누트 대왕이 헬가 전투에서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연합 함대를 격파하였다.
- 1027년 - 이븐 시나의 치유의 서가 출판되었다.
- 1028년 - 크누트 대왕의 노르웨이의 왕을 겸하며 북해 제국이 수립되었다. / 나바라 왕국의 산초 3세가 카스티야 왕국을 정복하였다.
- 1029년 - 발해 부흥 운동으로 흥요국이 세워짐
- 1030년 - 동로마 제국이 시리아의 미르다스 왕조를 침공했지만, 실패하였다.
- 1031년 - 후우마이야 왕조가 멸망하였다.
- 1032년 - 이원호, 서하 건국.
- 1033년 - 천리장성 축조 / 나바라 왕국의 산초 3세가 레온의 왕을 겸하며 나바라 - 레온 - 카스티야 왕국의 동군연합이 결성, 레콘키스타를 추진하였다. / 아를 왕국이 해체되었다.
- 1034년 - 레온 왕국이 나바라 왕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 1035년 - 이베리아 반도에 아라곤 왕국 성립. / 정복왕 윌리엄이 노르망디 공작이 됨.
- 1036년 - 레온 왕국의 주도로 레온 - 카스티야 - 갈리시아 동군연합 설립, 레콘키스타 추진. / 지리 왕조가 시칠리아 토후국을 공격해 팔레르모 점령. / 탕구트 문자가 제정됨.
- 1037년 - 셀주크 제국 건국.
- 1038년 - 서하의 이원호가 황제를 칭하였다. / 동로마 제국이 일시적으로 메시나와 시라쿠사 일대를 회복하였다. (~ 1043)
- 1040년 - 단다나칸 전투에서 셀주크 제국군이 가즈니 제국군을 격파하고 호라산의 패권을 장악 / 삼천구 전투에서 서하 군이 송군 격파 / 막 베하드가 던컨 1세를 독살한 후 스코틀랜드 왕으로 즉위
- 1041년 - 호수천 전투에서 서하 군이 송군 대파 / 지리 왕조가 파티마 왕조에서 독립 / 동로마 군이 노르만 - 롬바르드 연합군에 패배
- 1042년 - 동로마 제국의 에데사 회복. / 참회왕 에드워드가 잉글랜드 왕으로 즉위하며 웨식스 왕조 회복. / 무라비트 왕조가 모로코를 공격.
- 1043년 - 키예프, 노브고로드 군대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하였으나 동로마 수비대가 그리스의 불로 격퇴. / 셀주크 제국이 타바리스탄의 지여르 왕조를 격파하고 속국화.
- 1044년 - 고려, 천리장성 축조. / 송, 서하 간 경력의 화의로 전쟁 끝냄. / 송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화약의 제조술이 기록된 무경총요 완성.
- 1045년 - 중국 북송의 필승이 활자인쇄술을 발명
- 1048년 - 셀주크 제국이 카페트로우 전투에서 조지아 왕국과 동로마 제국의 연합군을 격파. / 잉글랜드를 침략 바이킹들이 격퇴당하고 플랑드르로 달아났다. (잉글랜드에 대한 최후의 바이킹의 침공)
- 1049년 - 피사 공화국, 사르데냐 정복. / 파티마 왕조가 독립을 선포한 지리 왕조에 힐랄 부족을 파견하여 응징하였다.
- 1052년 -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라틴 교회들을 폐쇄하였다. 동서 교회 대분열의 전조.
- 1053년 - 시비타테 전투에서 노르만 인들이 독일 군대를 격파하고 교황 레오 9세를 포로로 잡았다.
- 1054년 - 로마 교황과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가 상호 파문을 선포, 동서 교회 대분열. / 무라비트 왕조가 와가두 제국을 공격하였다.
- 1055년 - 셀주크 제국군이 바그다드에 입성, 칼리파의 섭저이었던 부와이 왕조가 멸망하였다.
- 1056년 - 파티마 왕조가 예루살렘의 크리스트교도 3백을 추방 / 동로마 제국의 마케도니아 왕조가 끊김 / 하인리히 4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즉위
- 1057년 - 힐랄 부족이 지리 왕조의 수도 카이로완을 점령하였다.
- 1058년 - 무라비트 왕조가 모로코 서해안의 바르가와타를 정복하였다.
- 1059년 - 교황 니콜라오 2세가 노르만 용병대장 로베르 기스카르의 도움으로 대립 교황을 물리친 이후 멜피 조약을 통해 그와 동맹,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지배권 인정함.
- 1061년 - 노르만 군대가 시칠리아의 메시나 함락
- 1062년 - 무라비트 왕조가 수도로 마라케시 건설.
- 1063년 - 알프 아르슬란이 셀주크 제국의 술탄으로 즉위. / 노르만 인들이 시칠리아 토후국의 수도인 팔레르모를 함락. / 엘 시드 - 카스티야 군이 아라곤 격파
- 1064년 - 카스티야 왕국이 코임브라 점령. / 셀주크 제국이 아르메니아의 수도 아니를 점령, 아나톨리아로 진군해 카이세리 점령.
- 1065년 - 카스티야, 갈리시아, 포르투갈이 레온 왕국으로부터 독립. / 북송의 사마광이 자치통감 편찬을 시작.
- 1066년 - 윌리엄 1세, 잉글랜드 침공.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승리하여 노르만 왕조 설립. / 제노바 공화국과 피사 간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 1068년 - 일본, 후지와라와 혈연 없는 고산조 덴노 즉위(~1073). / 쿠만인이 키예프 루스 군을 격파했다.
- 1069년 - 북송, 왕안석의 개혁 정책 시행(~1074). / 무라비트 왕조가 모로코를 통일 / 잉글랜드, 윌리엄 1세의 북부의 약탈. / 세비야 토후국이 안달루시아 일대를 통일하였다.
- 1070년 - 동로마 제국의 반격으로 셀주크 제국의 강역은 유프라테스 강 너머로 축소되었다. / 세비야 토후국이 코르도바를 정복하였다.
- 1071년 -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셀주크 제국 군이 동로마 제국 군을 격파, 아나톨리아의 튀르크화[1] / 로베르 기스카르의 노르만 군대가 남부 이탈리아의 마지막 동로마 제국령 도시인 바리를 함락.
- 1072년 - 말리크 샤가 셀주크 제국의 술탄으로 즉위
- 1073년 - 그레고리오 7세가 교황으로 즉위. / 셀주크 제국이 앙카라 점령.
- 1075년 - 셀주크 제국이 파티마 왕조를 몰아내고 예루살렘을 점령. / 그레고리오 7세가 딕타투스 파페를 선포(교황권 독재)
- 1076년 - 백등강 전투에서 베트남 군대가 북송 군대 격파 / 왕안석 사임 / 그레고리오 7세가 하인리히 4세를 파문
- 1077년 - 카노사의 굴욕을 통해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의 파문이 취소됨. / 무라비트 왕조가 와가두 제국을 멸망시킴. / 셀주크 제국이 니케아 점령.
- 1080년 - 독일 황제 하인리히 4세가 교황 그레고리오 7세를 파문하였다.
- 1081년 - 디라키움 전투에서 로베르 기스카르가 동로마 제국군을 격파하였다. / 알렉시오스 1세가 동로마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다.
- 1083년 - 하인리히 4세의 독일군이 로마의 산타젤로 성을 포위. / 무라비트 왕조가 세우타를 함락.
- 1084년 - 자치통감 집필 완료 / 로베르 기스카르가 포위된 교황 그레고리오 7세를 구출하였다.
- 1085년 - 카스티야 왕국이 톨레도를 함락 / 잉글랜드의 윌리엄 1세가 둠즈데이 북 작성을 명령
- 1086년 - 노르드인이 시칠리아 토후국의 시라쿠사를 함락 / 일본의 시라카와 덴노가 상황이 되어 인세이를 시작 / 무라비트 왕조 군이 레온 - 카스티야 연합군을 격파, 레콘키스타에 반격
- 1087년 - 고려, 초초대장경 완성. / 피사 - 제노바 해군이 지리 왕조의 수도인 마흐디야를 점령.
- 1088년 - 볼로냐 대학교가 세워졌다.
- 1090년 - 무라비트 왕조가 코르도바를 함락, 안달루시아 패권 장악. / 중세 음유시인 트루바도르 활동 개시
- 1091년 - 노르만 인들에 의해 노토가 함락, 시칠리아 정복 완료. / 레부니온 전투에서 알렉시오스 1세의 동로마 제국군이 페체네그족 격파 / 무라비트 왕조가 알 안달루스를 통일
- 1094년 - 고려, 14대 국왕 헌종 즉위(~1095). / 우르바누스 2세가 교황으로 즉위
- 1095년 - 고려, 15대 국왕 숙종 즉위(~1105).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성전, 즉 십자군을 결의하였다.
- 1096년 - 은자 피에르의 군중 십자군이 유대인 학살 후 출병, 키비토스에서 룸 셀주크 군대에 전멸
- 1097년 - 교황 우르바노 2세의 선동으로 제1차 십자군 원정 출병(~1099). 니케아 함락 / 의천, 천태종 개창
- 1098년 - 1차 십자군, 안티오크 함락, 안티오크 공국 수립. 에데사 백국 수립 / 파티마 왕조, 예루살렘 점령
- 1099년 - 1차 십자군, 예루살렘 함락. 예루살렘 왕국의 수립
- 1100년 - 송휘종이 북송의 황제로 즉위 / 보두앵 1세가 예루살렘 왕국의 군주로 즉위. 베네치아, 피사, 제노바가 레반트 무역 독점권 획득
4. 연도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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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터키의 기원, 십자군의 계기 중 하나로 작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