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3 09:50:05

바다호스

파일:바다호스.jpg
알카사바에서 바라본 시내 전경
바다호스 (에스트레마두라)
Badajoz
바다호스 (바다호스)
Badajoz
Badajoz

1. 개요2. 역사3. 기타

1. 개요

바다호스
스페인 중서부에 위치한 도시. 마드리드에서 남서쪽으로 320km, 세비야에서 서북쪽으로 150km, 살라망카에서 남서쪽으로 220km 떨어져 있다. 시내에서 쇼핑몰과 워터파크 쪽으로 5km만 가면 포르투갈과의 국경이 나오는 국경도시로 서쪽으로 에보라 방면으로 200km 가면 리스본이 나온다. 과디아나 강 남쪽에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고 인구는 153,000명이다.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한 후부터 알안달루스의 주요 도시 중 하나로 번영했고 후우마이야 왕조의 멸망 이후 이어진 1차 타이파 시대에 바다호스 토후국(1009년 ~ 1094년)의 수도였다. 레콘키스타 이후로 포르투갈과 스페인 사이에 분쟁이 일었는데 결국 스페인령이 되었고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이베리아 반도 전쟁, 스페인 내전 등 스페인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겪은 도시가 되었다.

2. 역사

파일:카자바 바다호스.jpg
시가지 북부의 알카사바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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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성벽 앞에 세워진 이븐 마르완의 동상

고대에는 지명이 팍스 아우구스타였는데 '평화'라는 뜻의 팍스(Pax)와 성 어거스타를 의미하는 오구스타(Augusta)가 합쳐진 '평화의 어거스타'라는 뜻이다. 아랍 시대의 이름은 바탈리와스(بَطَلْيَوْس‎)다. 875년에 압둘 라흐만 이븐 마르완이 메리다에서 추방된 후 그곳에서 서쪽으로 40여km 떨어진 곳에 세운 도시가 현재의 바다호스의 기원이 되었다. 이븐 마르완의 사후 그 장남인 마르완과 손자 압둘라 이븐 무함마드가 이어 통치하였다. 바다호스는 10세기와 12세기 초만 제외하면 코르도바 중앙 정부로부터 독립해 있었다. 1021년에는 바다호스 토후국의 수도가 되어 번영했는데 당시 인구는 25,000명이었다. 1086년에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6세가 도시를 포위하기도 하였고 1094년에 무라비트 왕조에 편입되었다.

1144년 무라비트 조가 알안달루스에서 철수하면서 바다호스는 재차 독립했지만 1147년에 이번에는 무와히드 왕조의 영토가 되었다. 레콘키스타 운동의 전환점인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 이후인 1230년 3월 19일에 레온-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9세에게 함락, 4세기간의 이슬람 시대 이후 기독교 도시가 되었다. 14세기 알폰소 11세의 치세에는 포르투갈 왕국의 아폰수 4세가 도시를 포위했지만 격퇴되기도 했다. 1524년에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대표가 바다호스의 시청에 모여 국경 문제를 논의했고 현재의 국경으로 결정했다. 1580년 8월부터 12월까지 약 네 달간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가 이곳으로 궁정을 옮기기도 했다. 바다호스 출신의 많은 가문이 아메리카 식민지 개척에 참가했다.

16세기 말 - 17세기 초는 도시의 2차 번영기였지만 1640년 이베리아 연합이 붕괴되면서 벌어진 포르투갈 독립전쟁에서 포르투갈 군이 도시를 공격하기도 했다. 1658년에 도시는 재차 포르투갈의 공격을 받았고 1705년에 영국-포르투갈 군에게 함락되었지만 1715년에 회복되었다. 1801년에는 바다호스 조약이 채결되어 올리벤차가 스페인에 할양되었고 포르투갈은 영국에 항구를 대여하지 않기로 했다. 반도 전쟁 시에 바다호스는 1808년과 1809년에 프랑스 군의 공격을 받았고 1811년에 사령관이 매수되어 함락되었다. 그리고 1811년 말과 1812년에 영국-포르투갈 군의 공격을 받았고 1812년 4월에 함락되었다.

스페인 내전 시에는 1936년에 프랑코의 국민군이 바다호스 전투에서 승리하고 공화군으로부터 도시를 점령했다. 그해 8월 14일 공화파를 지지하던 시민 4,000명이 플라자 데 토로스에서 기관총으로 학살되었다. 이것을 지시한 천하의 원수 후안 야게는 바다호스의 도살자로 불리게 되었고 프랑코는 그를 항공 장관에 임명해 보답했다고...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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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 (정확히는 모사라베) 양식을 기반으로 세워진 바다호스 성당
파일:메리다 3.jpg
인근 메리다 유적

12세기 이후 지어진 대성당과 고딕 양식의 탑이 남아 있고 시가지를 둘러싼 성벽도 볼만하다. 관개 농업에 의해 밀, 포도, 올리브 등을 재배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양조, 제분 공업이 발달했다. 인근의 메리다 유적이나 포르투갈과 영토 분쟁이 있던 올리벤사도 둘러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