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2-07 01:05:03

희망의 한국신당

대한민국의 보수정당
자유민주연합희망의 한국신당한나라당
(개별 합류)
한글 희망의 한국신당
창당일 2000년 3월 14일
해산일 2001년 1월 22일
1. 개요2. 역사3. 해산 후

1. 개요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급하게 창당되었던 충청권 보수정당이었다.

2. 역사

대한민국의 보수정당
제5공화국 ~ 국민의 정부
(1981 ~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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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 3당 합당으로 보수정당에 편입
참여정부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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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민련 내부에서 내각제 개헌 문제를 두고 계파갈등이 일어났는데 이 과정에서 김용환 前 사무총장이 자기 계보인 이상만, 김고성 의원을 데리고 나와서 창당했다. 또한 12.12 군사반란의 주축인 허화평 전 의원도 가담했으나 민주국민당으로 옮겨갔다.

이후 16대 총선을 하게 되었는데, 자민련과 같이 박살났다. 김용환 대표최고위원 혼자 당선되고 지역구 김고성(충남 공주·연기)[1], 이상만(충남 아산)[2]을 포함한 나머지 후보 31명이 모두 떨어진 것.

결국 김용환 1인을 빼면 원내인사도 없었던데다가 이후 사실상 한나라당과 행보를 같이 하기 시작했고, 결국 김용환 당 대표는 2001년 1월에 한나라당과의 합당을 추진하면서 당을 해산했다.

3. 해산 후

이 당 해산 이후 김용환 대표는 한나라당 부총재, 상임고문을 지냈고 2007년 대선을 앞두고 7인회의 일원으로서 박근혜를 도왔다. 이후 2012년 대선이 끝나고 "최태민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라."라고 직언을 하는 바람에 박근혜 대통령에게 찍혔고, 결국 김용환의 충고를 무시한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되었다. 이후 김용환 상임고문은 2017년 4월 7일에 작고했다.

16대 총선 당시 현직 의원들이나 여러 번 출마했으나 낙선했던 인사들을 보면 김고성(충남 연기)의원은 자민련 정진석 후보에게 낙선한 이후 정계를 떠났고, 이상만(충남 아산)의원은 17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나섰다가 복기왕 후보에게 밀려서 낙선했다.

민주한국당, 평화민주당 출신의 조병환 영천시 당협위원장은 내리 5번째 낙선을 끝으로 정계를 떠났고 평화민주당과 군소정당을 떠돌던 윤승중 파주시 당협위원장은 17대 총선을 앞두고 자민련 공천을 받아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연기군에서 내리 낙선하고 대전 중구로 옮겨간 김준회 후보도 16대 총선을 끝으로 은퇴했다.

나머지 인물들을 살펴보면 강남구 을 이춘근 당협위원장은 자민련에 복당해 17대 총선에 나왔지만 떨어졌고, 서초구 갑 이강욱 당협위원장은 기독당에 입당해 구로구 을에 17대 총선에 출마하나 낙선했다. 그리고 부산 북ㆍ강서을에 출마했던 윤무헌 당협위원장은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17대 총선에 나섰으나 낙선했다. 나머지 인사들은 모두 정계를 떠나다시피 했다.

이외에도 묻혀버린 희망신당 출신 인사 중에서 현역 정치인은 16대 총선에서 청원군에 출마한 홍성각 후보인데, 이 사람은 무려 18년이 지나서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2018년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청주시 바 선거구)에서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1] 자민련 후보인 정진석에게 패배.[2] 자민련 후보인 원철희에게 패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