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6 14:52:15

프레더릭 트럼프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프리드리히 트룸프 / 프레더릭 트럼프
Friedrich Trumpf / Frederick Trump
파일:Frederick_Friedrich_Trump.jpg
본명 프리드리히 하인리히 트룸프
(Friedrich Heinrich Trumpf)
출생 1869년 3월 14일
바이에른 왕국 팔츠 칼슈타트
(現 독일 라인란트팔츠주 칼슈타트)
사망 1918년 5월 30일 (향년 49세)
미국 뉴욕주 뉴욕시 퀸스
국적 [[바이에른 주|
바이에른 주
바이에른 왕국
]][[틀:깃발|
깃발 명칭
바이에른 왕국
]][[바이에른 왕국|
바이에른 왕국
바이에른 왕국
]](1869~1871)
(1871~1891)
(1891~1918)
부모 아버지 요하네스 트룸프[1]
(1829년 ~ 1877년, 향년 48세)
어머니 카타리나 코버
(1836년 ~ 1922년, 향년 86세)
형제자매 첫째 요하네스 트룸프
(1860년 ~ ?)
첫째누나 카탈리나 트룸프
(1861년 ~ ?)
둘째 야콥 트룸프
(1863년 ~ ?)
둘째누나 시빌라 루시아 트룸프
(1865년 ~ 1931년, 향년 66세)
셋째 콘라드 트룸프
(1868년 ~ 1868년, 향년 0세)
첫째여동생 엘리자베사 트룸프
(1873년 ~ ?)
둘째여동생 바바라 트룸프
(1876년 ~ ?)
배우자 엘리자베스 크리스트
(1879년 ~ 1966년, 향년 87세)
자녀 장녀 엘리자베스 트럼프
(1904년~1961년, 향년 57세)
장남 프레드 트럼프
(1905년~1999년, 향년 94세)
차남 존 G. 트럼프
(1907년~1985년, 향년 78세)
손자 장손녀 메리 엔 트럼프
(1937년~2023년, 향년 86세)
장손자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
(1938년~1981년, 향년 43세)
차손녀 엘리자베스 트럼프
(1942년 ~, [age(1942-01-01)]세)
차손자 도널드 트럼프
(1946년 ~, [age(1946-06-14)]세)
삼손자 로버트 트럼프
(1948년 ~ 2020년, 향년 72세)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미국 정착과 사업2.3. 독일로 귀향, 그러나 미국으로 추방2.4. 뉴욕 재정착
3. 가족관계4. 외모 변화5. 기타6.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민해 미국에서 사업을 한 독일계 미국인 사업가로, 미국의 제45대, 제47대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의 할아버지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1869년 독일 서부 팔츠 지방에 있는 마을인 칼슈타트(Kallstadt)(현재의 독일 라인란트-팔츠주 칼슈타트)에서 요하네스 트룸프(Johannes Trump)의 아들로 태어났다.[2] 트럼프 가문은 조상 대대로 팔츠, 칼슈타트 인근 출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또한 동시에 그의 조상들은 19세기까지 헤센 대공국 소속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트럼프 가문의 조상들은 현재 칼슈타트 마을에서 약간 북쪽에 살았던 것이다. 이처럼 칼슈타트 마을은 19세기에 행정적으로 일시적으로 바이에른 왕국의 서부 월경지 북쪽 경계선 바로 안쪽에 속했지만 역사적으로 팔츠, 라인란트라 불린 서독일 지역이며, 같은 비텔스바흐 가문가 통치했었을 뿐 바이에른과는 문화적으로나 방언상으로 전혀 연관이 없는 지역이다. 따라서 트럼프 가문을 바이에른 출신이라 소개하는 일부 국내 나무위키 문서의 내용은 사실과 차이가 있으며, 해외에서는 트럼프 가문을 바이에른 출신이라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래 나오지만 프레더릭 트럼프는 미국으로 이주하여 초기 5~6년을 고향 팔츠 출신 이주민들이 모여사는 맨하탄 커뮤니티에서 살며 팔츠 독일어 사투리를 쓰며 일했다.

당시 아버지인 요하네스 트룸프는 작은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폐렴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아버지 요하네스가 폐렴 투병을 하다가 1877년에 사망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14살 때부터 이웃 마을로 가서 이발소에서 일주일 내내 일하며 일을 배우며 돈을 벌었다. 이후 다시 마을로 돌아와 자신의 이발소를 차렸지만 동네에서 오래 전부터 자리잡고 있던 이발소에 밀려 자리를 잡지 못하며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2.2. 미국 정착과 사업

17세 때인 1886년 고향을 떠나 이모와 몇몇 친척이 있는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뉴욕 맨해튼에서 고향인 독일 팔츠 지역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커뮤니티안에서 이발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에 영어를 배울 필요도 없이 한동안 팔츠어 방언으로만으로도 충분히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1891년 시애틀에 은광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뉴욕을 서부 시애틀로 이주했다. 그는 시애틀에서 은광을 파는 대신 광부들을 위한 이발소, 식당, 숙박 사업을 하며 자수성가했다. 1892년에는 영어 이름인 프리드릭 트럼프(Frederick Trump)라는 이름으로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1896년 캐나다 서부 유콘에서 금광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는 유콘으로 향했다. 이것이 클론다이크 골드러시였다. 여기서 그는 광부들을 위한 식당과 숙박업을 하여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트럼프 전기 작가들이나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프레더릭은 돈을 벌어 성공하기 위한 열망이 컸고, 상당히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하는 등 돈을 버는 능력도 탁월했다고 한다.

2.3. 독일로 귀향, 그러나 미국으로 추방

1899년~1900년경 유콘 골드러시가 완전히 끝나자 그는 미국과 캐나다 서부에서 숙박업을 완전히 정리했고 1901년 고향 칼슈타트로 금의환향했다. 그는 독일인 여성과 결혼하길 원했고, 칼슈타트에 살던 엘리자베트 크라이스트(Elizabeth Christ)와 만나 1902년 그녀와 결혼했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다.

뉴욕 브롱스의 독일인 이주민 타운에 집을 마련한 그는 뉴욕에서 이발소와 레스토랑, 숙박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내 엘리자베트가 향수병을 심하게 앓았고, 한동안 고민하던 그는 미국에서 사업을 정리하고 독일로 돌아가 재정착하기로 마음먹었다.

1904년 그는 뉴욕 살림을 완전히 정리하고 갓 태어난 첫째딸 엘리자베스를 포함한 세 가족과 함께 독일 칼슈타트로 재정착하기 위해 돌아왔다. 칼슈타트에 돌아온 그는 독일 시민권을 재신청했다. 당시 칼슈타트 시장은 그의 시민권 신청을 승인했고, 바트-뒤르크하임(Bad Dürkheim) 지역 의회에 그의 시민권 허가를 요청했다. 당시 프리드리히 트럼프는 부자였고, 칼슈타트에서 그의 평판은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칼슈타트의 소속 영방이던 바이에른 왕국 당국은 그가 독일 제국병역의무를 기피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고 판단하여 독일 영주권 갱신을 불허하였다.[3] 그는 독일에서 살게 해달라고 재차 국적 회복을 신청하고 탄원서를 내는 등 수개월간 법적 공방을 이어갔으나 바이에른 당국은 이를 모두 거절하고 최종적으로 추방 명령을 내렸다.

결국 1905년 그는 독일을 떠나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서 새롭게 시작해야만 했다.

2.4. 뉴욕 재정착

프레더릭과 그의 세 가족은 뉴욕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가족으로 데리고 뉴욕 브롱스의 독일인 이민자 커뮤니티에 정착했다. 부인 엘리자베트는 독일 칼슈타트에서 뉴욕으로 다시 돌아온 지 5개월 후에 아들 프레드 트럼프(도널드 트럼프의 부친)를 출산했다.

뉴욕에서 프레더릭은 일단 이발소와 레스토랑으로 다시 출발했지만, 더 큰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작은 사업이 아니라 부동산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뉴욕시를 돌아더니며 땅을 보며 기회를 물색했다. 그는 퀸스버러교가 완공(1909년 완공)되면 퀸스가 본격적으로 개발될 것이라 여겼고, 1908년 브롱스에서 퀸스로 이주했다. 그리고 1908년 퀸즈에서 호텔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부동산업에 뛰어들었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고 미국에서 반독일 정서가 생기자 그는 아들 프레드에게 "우리는 더 이상 독일인으로서 미국에서 사업을 하기 힘들 것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스웨덴인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프레드 트럼프는 한동안 스웨덴 칼스타드(Karlstad) 출신 행세를 했다고 한다. 트럼프 가문은 1980년대에 그의 손자 도널드 트럼프가 독일계 이민자 출신임을 밝힐 때까지 스웨덴계 집안으로 알려지기도 했다.[4]

아마도 그가 오래 살았다면 부동산으로 상당한 돈을 모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1918년 당시 유행하던 스페인 독감으로 49세에 갑자기 사망했다.[5]

3. 가족관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트럼프 가문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그의 사후 장남 프레드 트럼프(Fred Trump)가 그가 시작한 부동산업을 기반으로 뛰어난 사업 수단으로 큰 성공을 거두어 1930~40년대에 뉴욕의 부동산 재벌로 성장했다.

차남 존 G. 트럼프(John G. Trump)는 학업에 재능을 보여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29살의 나이에 MIT 교수가 되어 37년간 재직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군의 레이더 개발에 참여하기도 했다.

4. 외모 변화

파일:Frederick_Trump_1887.jpg

1887년 18세 때의 프리드릭 트럼프

파일:Elisabeth_Christ_&_Friedrich_Trump.jpg

부인 엘리자베스 크리스트와 함께 찍은 사진

파일:Frederick_Friedrich_Trump.jpg

말년의 사진

5. 기타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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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어명 Johannes Trump[2] 서부 독일에 있는 마을인 칼슈타트는 전통적으로 독일 서부에 있는 팔츠, 조금 더 넓게는 라인란트라고 불린 지역에 속해 있으며, 독일 서부 라인강 경제권에 속해 있다. 오늘날도 칼슈타트 지역 주민들은 자신을 팔츠 지방 사람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 지역을 오랫동안 통치해온 오스트리아, 그리고 19세기에 일시적으로 통치한 바이에른과는 지리적으로나 문화적, 방언적으로도 차이가 크다. 원래 합스부르크 가문이 보유한 오랜 월경지였지만 오스트리아와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 관리의 어려움을 겪었던 지역이었다. 그래서 나폴레옹 전쟁 이후 빈 회의 때 오스트리아는 서부 독일에 있던 월경지들을 바이에른 왕국에 쿨하게 넘겼고 그 대가로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대공국을 가져갔다. 그래서 칼슈타트 마을은 1815년부터 바이에른 왕국에 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이에른 왕국 입장에서도 이 지역은 월경지였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나 문화적, 경제적, 정서적, 산업적, 정치적으로 바이에른과 라인란트 지역은 차이가 상당하기 때문에 바이에른 본토에서도 관리에 어려움을 겪었다. 역사적으로 팔츠, 라인란트는 프랑켄 지역에 속해 있어 인접한 로마 제국과 프랑스와 영향 및 교류가 많았다. 중세 시대에도 프랑크 왕국에 일찍히 반복속 상태가 되어 프랑크 왕국에 빨리 동화되었다. 반면 바이에른(바바리아)은 야만인(바바리안)이라 불리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로마 제국과 거의 교류 없이 게르만 부족들 가운데서 가장 문명과 동떨어진 부족이었다. 중세 초기에도 프랑크 왕국과 오랜 적대 관계를 이어왔으며, 카를로스 대제 시기 처절한 살육전을 거쳐 프랑크 왕국에 복속되었으나 이후에도 강한 독립성을 유지했던 부족이다. 신성 로마 제국 시기 팔츠 지역은 라인강 유역의 한자 동맹의 중심지에서 상업과 수공업이 발달했고, 군주 영주들 사이에서 자치 도시가 발달했던 지역이지만, 바이에른은 오랜 기간 동안 비텔스바흐 공작 가문의 지배하에서 보헤미아와 오스트리아 등 동유럽과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강한 연관을 가졌던 지방이다. 종교적으로도 칼슈타트는 개신교(루터교) 지역이며, 바이에른 본토는 카톨릭 지역이다. 트럼프 집안 또한 루터교였다. 한편 현재 칼슈타트 마을 바로 북쪽부터는 전통적으로 헤센 대공국에 속한 지역이다.[3] 프리드릭은 98년 후의 한국 가수에게 생긴 비슷한 문제로 추방되었는데 당시 이런 사례가 적지 않았다. 실제 프리드릭이 16세 때 미국으로 떠나기로 결심한 것에는 독일의 징병제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작용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4]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1차세계대전 참전 용사들이 좀 살아 있었고 2차대전 참전용사들은 대부분 생존 중이었기 때문에 이미지 하락을 막기 위해 독일계라는 걸 숨겼을 수도 있다.[5] 공교롭게도 손자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 재임 중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걸렸지만 스페인 독감에 걸려 죽은 프리드릭 트럼프와 달리 며칠만에 나았다. 다만 이건 20세기 초의 의료 기술 수준이 지금보단 낮았다는 걸 감안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고 현직 국가원수로서 최고의 치료를 받으며 알콜 섭취를 아예 금하는 손주가 더 살아날 확률이 높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