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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규의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하는 흑모화종. |
1. 개요
화우(和牛). 왜우(倭牛) 또는 일본우(日本牛)라고도 한다. 한국의 한우와 같이 일본에서는 고급 식용 소이다.2. 역사
와규(和牛)
좁은 의미로서는, 일본 재래종의 소를 말하는 것이나, 넓은 의미로는 재래종의 소에 외국종을 교접한 개량종도 포함한다. 개량화종(改良和種)의 종류는 흑모화종, 갈모화종, 무각화종, 일본단각종이며, 원래는 고기 및 사역용으로 취급되었으나 현재에는 고기용으로 개량이 진행되고 있다. 흑모화종은 재래종과 데본종, 브라운 스위스종, 갈모화종은 아소 소(阿蘇牛, 구마모토 산)과 시멘탈 종, 무각화종은 재래종과 앵거스 종, 일본단각종은 난부 소(南部牛)와 쇼트혼을 각각 교접해서 육성되었다.
아사히 신문에서 운영하는 코토뱅크(단어은행)의 와규 항목
좁은 의미로서는, 일본 재래종의 소를 말하는 것이나, 넓은 의미로는 재래종의 소에 외국종을 교접한 개량종도 포함한다. 개량화종(改良和種)의 종류는 흑모화종, 갈모화종, 무각화종, 일본단각종이며, 원래는 고기 및 사역용으로 취급되었으나 현재에는 고기용으로 개량이 진행되고 있다. 흑모화종은 재래종과 데본종, 브라운 스위스종, 갈모화종은 아소 소(阿蘇牛, 구마모토 산)과 시멘탈 종, 무각화종은 재래종과 앵거스 종, 일본단각종은 난부 소(南部牛)와 쇼트혼을 각각 교접해서 육성되었다.
아사히 신문에서 운영하는 코토뱅크(단어은행)의 와규 항목
2.1. 에도 시대까지
일본에서 소에 대해 적은 가장 오래된 기록은 797년부터 편찬된 정사 속일본기(続日本紀) 29권(巻二九)이다. 속일본기에는 "타지마 소(但馬牛)가 농경과 운송에 적당하다."라고 서술되어 당시 일본에서 소를 길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속일본기의 원문은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사이트에서 확인이 가능하며 일본 정부기관인 농림수산성 역시 타지마 소가 기록상 일본 최초의 소라고 인정한다. #또한 나라 시대 및 헤이안 시대의 귀족들 사이에선 우시카이(牛養:소를 키움)이라는 이름이 꽤 흔했다. 유게노 우시카이(弓削牛養), 오토모 우시카이(大伴牛養), 오노노 우시카이(小野牛養), 키노 우시카이(紀牛養) 같은 이들이 사례이다. 특히 8세기 초 오토모 우시카이(大伴牛養)는 우사(牛飼), 즉, 소를 치는 사람이라는 별명이 있었기 때문에 나라 시대, 헤이안 시대의 일본에서 소를 키웠다는 것은 확정적이다.
또한 일본 소를 묘사한 유명한 기록 중에 '국우십도(国牛十図)'라는 그림이 있다. 가마쿠라 시대 말기 엔쿄延慶 3년(1310)에 문예가이자 목동인 카와히가시 나오마로(寧直麿)가 남긴 이 그림은 당시 일본에서 존재하는 유명한 소 10가지를 선별하여 각각의 특징(힘이 세다, 성실하다, 건강하다 등)과 외양(얼룩소, 흰 소, 검은소, 황소 등)을 묘사하였다.# 이 그림에서 묘사된 일본 소 10종은 筑紫牛, 御厨牛, 淡路牛, 但馬牛, 丹波牛, 大和牛, 河内牛, 遠江牛, 越前牛, 越後牛이며 국우십도 역시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사이트에서 필사본을 확인 가능하다.
국우십도(国牛十図). 위 그림은 에도 시대에 만들어진 필사본이다.
참고로 국우십도에서 설명되는 각 소는 아래와 같다.
1. 지쿠시 소(筑紫牛) : 생김새가 좋다. 본래는 이키 섬(壱岐島) 출신이나 원나라(元寇)의 일본 원정시, 원나라군에 의하여 식용으로 잡아먹혀 일시적으로 수가 줄어들었으나 근년에는 수가 많아졌다. 2. 미쿠리 소(御厨牛) : 비젠국(肥前国)의 미쿠리(御厨) 출신의 억센 소. 원래는 공물로 바치는 소(貢牛)였던 것에서 이름이 불렸으며 과거부터 명우(名牛)였다. 사이온지 긴쓰네(西園寺公経)로부터 조정의 그림이 새겨진 인(朝絵の印)을 허가받았다고 한다.[1] 3. 아와지 소(淡路牛) : 체구는 작지만 힘이 강하고 우수한 개체(逸物)도 적지 않다. 최근 사이온지 긴쓰네(西園寺公経)로부터 미쿠리 소(御厨牛)와 동등한 평가를 받았다. 4. 타지마 소(但馬牛) : 허리와 등이 통통하여 건강하고 준우(駿牛)가 많다. 5. 탄바 소(丹波牛) : 타지마 소와 비슷하게 생겼으며 최근 우수한 개체가 많다. 6. 야마토 소(大和牛) : 체구가 크다는 특징이 있다. 뿔과 발굽이 약하다는 결점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좋아졌다. 7. 카와치 소(河内牛) : 그저 그런 소지만 준우(駿牛)도 존재한다. 8. 도토미 소(遠江牛) : 교토의 렌게오인(蓮華王院)이 다스리는 사가라(相良) 목장 출신이다. 겉보기에는 지쿠시 소로 착각할 만큼의 준우지만 약간 난폭하다. 고(故) 이마데가와 뉴도(今出川入道) 태정대신이 이 땅에 지쿠시 소의 혈통을 유입시켰다고 한다. 9. 에치젠 소(越前牛) : 체구가 크고 우수한 개체가 많다. 10. 에치고 소(越後牛) : 힘이 좋으며 드물게 우수한 개체가 있다.(그림 없음) |
그 외에도 가마쿠라 시대에 작성된 駿牛絵詞 나 紙本淡彩駿牛図断簡 , 駿牛図巻断簡 등에서도 소에 대한 기록이 확인 가능하다.
가마쿠라 시대의 紙本淡彩駿牛図断簡(출처 : 일본국립정보학연구소)
가마쿠라 시대 応長 원년(1311년) 만들어진 에마키(松崎天神縁起絵巻) 중 일부.농사에 소를 이용하는 당시 풍경이 확인된다.[2]
또한 일본 음식연구학자 이시게 나오미치가 쓴 책을 보면, 16세기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 선교사가 미국, 한국, 중국 등에서 소를 수입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며 보도 자료 전국시대 다이묘였던 다카야마 우콘은 기독교와 서구의 육식문화를 받아들여 소고기로 연회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그 외에도 天正시대(1573~1592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大阪天王寺牛町由来記'에서도 타지마 소(但馬牛)를 묘사하면서, 털 색이 검고(一石/一黒) 머리는 사슴을 닮았으며, 귀가 작고 저작력(씹는 힘)이 강하다라고 묘사한 기록이 발견되기도 한다. 돗토리번에서는 소의 사육을 장려하기 위하여, 소의 구매자금을 정책적으로 대여해주는 '우은제도(牛銀制度)'가 실시되었다는 1695년 기록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일본에서 소의 품종이 개량되기 시작된 것은 에도 시대인데, 예를 들어 타지마 소(但馬牛)는 효고현 타지마(但馬) 지방을 기원으로 하는 소로서, 속일본기와 국우십도에 등장한 바 있는 유서깊은 소지만 본격적으로 관리되고 품종 개량을 시작한 것은 마에다 슈스케(前田周助, 1797~1872)라는 사람에 의해서였으며 그는 상품으로서의 타지마 소의 가능성에 주목하여 養父시장, 湯村시장 등에 우시장을 열어 타지마 소를 판매하였다고 한다. 이 당시 마에다 슈스케가 개량한 소의 혈통은 '슈스케 혈통(周助蔓)'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후세에 '타지마 소'의 대표 품종으로 이어졌다.
그 외에도 오오타 타츠고로(太田辰五郎, 1790 ~ 1854)같은 이 역시 소의 개량에 관심을 기울여 '타케노타니 혈통(竹の谷蔓)'의 소를 판매하는 우시장을 1834년 자택에서 개설하였는데 이는 훗날 오카야마현의 치야 소(千屋牛)로 계승된다. 또한 '이와쿠라 혈통(岩倉蔓)'은 1843년 오늘날의 히로시마현 지방에서, '보쿠라 혈통(ト蔵蔓)'은 1855년 오늘날의 시마네현에서 등장하였다. 이들 타시마, 타케노타니, 이와쿠라, 보쿠라 혈통은 일본의 전국화우등록협회(全国和牛登録協会)에서 인증하는 최고(最古) 4대 혈통이기도 하다.
여기서 반복하여 등장하는 '쯔루(蔓)'라는 단어는 혈통이라는 뜻으로서, 좋은 종자를 가진 소는 종자소, 즉, 蔓牛라고 불리며 별도로 관리되었다. 이렇듯 에도 시대부터 일본 소의 품종 개량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농사일에 동원되었던 소의 모습. 그림 작성시기는 에도 시대 元禄(1688년~1704년). [3]
이와테현의 오슈시는 에도 시대에 만들어진 우키요에 중 27점을 분석하여 당시 소의 모습을 소개하였는데, 검은 소(흑우)가 24번 등장하여 당시 일본에서 가장 흔한 모습임을 짐작케 하였고 얼룩소는 4번, 갈색 소(황소)는 1번 등장하였다고 한다. 또한 우키요에 자체가 도시문화의 산물인만큼, 농사보다는 화물 운송을 위한 우차(牛車)를 끄는 소가 대부분인 것도 특이한 점이다.
2.2. 메이지 유신 이후
1868년 메이지 시대에 서구식 육식문화가 전해지면서 1872년 메이지 덴노는 당시로서는 선구적으로 소고기를 섭취하게 된다. 이후, 일본에서는 소고기 열풍이 불기 시작하는데 에도 시대까지의 일본 소는 어디까지나 농사 및 운송 등 업무용으로만 쓰였고 품종 개량 역시 그에 맞추어서 개량되었기 때문에 당시 일본에서 요구하는 소고기와 우유의 공급량에 미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서구 등 해외에서 소를 들여와 혼혈번식을 하는 등 식용 소의 품종개량을 시작하였다.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887년, 2600마리의 서양 소를 수입해온 것이고 이후 1900년(메이지 33년)에는 정부 주도에 의하여 브라운 스위스, 홀슈타인 등 본격적으로 서양 소 품종의 정책적인 도입이 개시되었다. 이렇게 품종 개량을 적극적으로 하였기 때문에 1877년(메이지 10년)에는 연당 도축두수가 3만여마리에 불과하던 일본 소고기 소비량이 1887년에는 10만 마리를 돌파하였으며 1900년(메이지 33년)에는 20만마리를 돌파하기에 이른다.
이렇듯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까지 불었던 일본 소와 서양 소 교접 광풍으로 인하여 1912년 10월 축산공진회에서 제안한 '개량화종(改良和種)'은 1944년 와규(和牛)라는, 품종에 대한 공식명칭이 등장하기 전까지 일본 소에 대한 대표적인 품종명으로 쓰였다. 하지만 이는 다른 한 편으로는 과거 일본에서부터 내려온 재래종의 순혈종자를 가진 소는 거의 멸종되었다는 뜻이었다. 그 과정에서 서양 소와의 교접이 오히려 고기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문제가 있어서 일시적으로 중지되었다는 등의 추가 이야기는 있지만 서양소와의 교접이 당시 일본에서 보편화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03년(메이지 36년) 출판된 종우도보(種牛図譜) 중 타지마 소(但馬牛) 항목. 출처
이후 1944년, 흑모화종(黒毛和種), 갈모화종(褐毛和種), 무각화종(無角和種) 3개의 품종이 구별되면서 최초로 와규(和牛)라는 품종 명칭이 붙여졌다. 이전에는 와규라는 단어가 '일본 소'를 가르키는 일반 대명사였다면 이제 와규는 흑모화종 등 3종의 소를 규정하는 품종명이 된 것이다. 1957년에는 일본단각종(日本短角種)이라는 품종이 추가되었다. 이중 2017년 기준으로 흑모화종은 일본 전체에서 159만 마리, 갈모화종은 20만 마리가 사육된다고 추산할 뿐 다른 품종은 거의 존재감이 없다.
이 중 대표적인 와규인 흑모화종은 '맛좋은 소고기'를 위한 품종개량 및 교접(cross-breeding)이 워낙 많이 일어난, 일종의 키메라 같은 품종이라 유전적 기원을 추적하기가 어렵다. 이런 특징 때문에 한국에서는 아래와 같이 '한국 흑우 기원설'이 퍼지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平成24년) 2월, 일본의 와규를 인증하는 공익사단법인 '전국화우등록협회(全国和牛登録協会)'가 전국에 존재하는 718,969마리의 흑모화종을 조사하여 이 중 99.9%인 718,330마리가 타지마 소인 타지리(田尻)의 유전자를 모체로 했다는 사실을 인증하였고 타지마 소의 원산지는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에 써먹고 있다. 따라서 별도의 추가 반론이 없는한, 오늘날 와규(흑모화종)는 '타지마 소(但馬牛)'에서 파생된 품종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참고로 타지리(田尻)에 대한 이야기가 더 있는데, 19세기말~20세기초에 있었던 서양소와의 교접 열풍에서 타지마 소 역시 자유롭지 못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재래종으로서의 순수한 타지마소는 거의 멸종되었고 타지마 소의 대부분은 서양소와의 교접종인 '개량화종'이 이루게 된다. 그러던 중 1909년(메이지 42년) 2월 10일, 현재의 효고현 카미쵸(香美町)의 '아츠다(熱田)'라는 마을에서 타지마 소 4마리가 출생하게 된다. 이 중 한 소의 이름은 누이(ぬい)라고 하였는데 이는 상기에서 언급한 슈스케 혈통(周助蔓), 즉, 순수한 타지마 소의 혈통이라고 불려지게 된다(이를 아츠다혈통(あつた蔓)이라고 한다). 이후, 누이의 자손은 이후 계속 이어져, 1939년에는 타지리(田尻)라는 소가 출산되는데, 이 타지리라는 소는 혈통이 워낙 좋아서 다른 흑모화종의 모태가 되었으며 따라서 와규의 대표품종인 흑모화종은 일본 재래종인 타지마 소의 개량형이라는 것이 타지마 소를 홍보하는 사람들의 입장이다. 하지만 타지리가 일본 재래종이라는 것은 일본 학계에서 거의 인정받지 못하는 사실이다. 물론 1898년(메이지 31년)부터 일본 소의 호적제가 실시되었으니 누이나 타지리의 조상을 추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1887년 서양 소가 수입된 이래 1898년까지의 공백기간동안의 서양 소 교접 광풍 속에서 타지마 소(但馬牛)의 유전적 순수성은 증명할 방법은 없다. 따라서 타지마 소를 홍보하는 사람의 입장과는 달리, 누이와 타지리 역시 서양 소의 품종이 일부나마 섞였다는 것이 통상적인 견해이며 타지리의 후손격인 흑모화종 역시 마찬가지이다.
타지리의 모우(母牛)인 후쿠에(ふくえ). 누이의 4대손이다.
그 외, 갈모화종은 한국의 한우와 유사하게 황색 털을 가졌으며, 흑모화종과 달리 비교적 기원을 추적하는 것이 용이하다. 그 중, 아소산 인근에 분포하였다고 해서 아소 소(阿蘇牛)라 불리는 품종은 구마모토현 출신의 소로서, 한반도로부터의 기원이 정설인 소이며 고치현계통의 갈모화종은 대부분 그 기원을 한반도에서 건너온 소와 서양 소(시멘탈 종 등)의 교잡종이라고 일본 축산업계에서도 대부분 인정하고 있다.
위와 같이, 와규의 근대적 개량은 서양 소와의 교접이 너무 활발했던 까닭에 에도시대까지 내려져오던 일본 소의 순수 혈통은 거의 사라졌으며 오늘날 확인되는 순수한 혈통의 일본 재래종은 야마구치현 미시마섬의 미시마소(見島牛)와 토카라 열도의 구치노시마 소(口之島牛) 단 2개뿐이다. 이들 소는 일본 본토로부터 멀리 떨어진 시골섬이어서 19세기후반~20세기 초반의 서양소 교접 광풍에서 비껴나갔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이들 소가 순수혈통이라고 인정받은 것 역시 일본 본토에서 서양소와의 교접이 시작된 이래 40년 이상 외부와의 교류나 교접에 무심했던 섬의 역사로 증명되었다(하지만 기시 히로시(1975)를 비롯한 일련의 연구는 이를 부정한다). 그 중 미시마 소는 아래와 같이, 한국 흑우 기원설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였다.
2.3. 한국 흑우 기원설
한국에서 유명한 가설로서, 일본 와규의 기원이 한국산, 특히 제주산 흑우라는 설이 있다. 2008년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의 발표와 2016년 EBS 지식채널e이 해당 주제를 다루었고 이후 언론 등을 통하여 한국 인터넷에 광범위하게 퍼진 가설이다. 한국 흑우를 와규로 만든 일본제국.조선총독부의 기록에 의하면 1910년부터 1945년까지 국내 한우 150만 마리가 반출됐는데 이 때 조선 흑우의 양이 급격히 감소했으며, 일본은 1928년 흑우(미시마 소)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국립축산과학원 등 정부기관에서는 이 흑우가 제주 흑우였다고 보고 있다. 게다가 일본은 한반도 내에서는 1938년에 누렁소(황우)를 한우 표준으로 지정해버려서 제주 흑우와 칡소 등이 한국인의 인식에서 점차 사라졌다[4].
일본 문화재청은 "흑우(미시마 소)는 한반도에서 도래해 현재까지 혼혈없이 사육됐으며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와규'로 일컬어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일본 학계에서는 미시마 소가 무로마치 시대부터 길러지고 농업에도 사용된 일본 재래종이라는 인식이 정설로 되어있고 제주 흑우와의 연관성에 관한 논란은 거의 만들지 않는 상황.
제주대 제주흑우연구센터에서 2018년 열린 ‘제3회 제주흑우 국내 심포지엄’에서 영남대 생명공학과 김종주 교수가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육지의 한우, 제주 흑우, 울릉도 칡소와 일본 와규 품종, 서양 소 품종들의 유전적 진화트리를 분석한 결과 제주 흑우엔 독특한 유전적 특성이 있다”며 “일본 와규는 흑모색과 갈색으로 나뉘는데, 제주 흑우는 흑모색 품종과 유전적 관련성이 있어 보인다” 고 말했다. 곧 논문으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5]관련기사
하지만 2020년 12월 제주대학교 제주흑우연구센터에서 유전체 연구를 통하여 밝혀낸 바에 따르면, 제주 흑우는 일본 와규와는 유전적 특성이 전혀 다른 계통의 품종이며, 제주 흑우와 와규는 진화트리상 2~3세대 앞선 선조 단계에서 이미 분화가 끝난 상태였다고 한다##
제주흑우 및 세계 주요 소 품종들간 유전학적 진화트리
제주흑우 및 세계 주요 소 품종들간 주요성분(PCA) 분석
제주대학교 제주흑우연구센터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오히려 와규와 유전적으로 더 가까운 것은 한우였다. 와규 중에서도 황색의 털을 가진 갈모화종이야 원래부터 한반도 유래라는 것이 기존부터 너무 명확했던 만큼 새로운 사실이 아니지만 털 색깔이 황색과 흑색으로 가장 다르게 보였던 한우와 흑모화종의 유전적 근연성은 털 색깔이 같았던 제주 흑우-흑모화종간 유전적 근연성보다 훨씬 더 높았던 것이다.
상기의 유전체 연구를 통해서 와규 흑모화종의 기원이 제주 흑우라는 가설은 이미 종료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황색의 한우가 일제 강점기 35년만에 와규 흑모화종으로 둔갑했을 가능성은 낮다.
어쨌든 일반적인 논의되는 '와규의 한반도 기원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반론이 존재한다.
우선, 상기와 같은 한국 흑우 기원설은 크게 다음과 같은 논리구조를 보이고 있다.
- (1) 본래 일본에는 소 혹은 흑우 자체가 없었다.
- (2) 무로마치 시대 혹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미시마 섬으로 한국/제주 흑우가 전해졌다
- (3) 일본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미시마 섬의 흑우를 개량하여 오늘날의 일본 와규를 만들었다.
- (4)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런 부끄러운 과거를 숨기기 위하여 미시마 섬에 살던 제주산 흑우를 억지로 천연기념물으로 만들었다.
이 중, (1)과 (3)은 상기의 내용으로 쉽게 반론이 가능하다. 일본에는 소 그리고 흑우가 고대부터 존재했음이 분명하고 검은 소 자체가 축산업계에서는 전혀 희귀하지 않다. 가장 오래된 육용종인 영국의 갤러웨이(Galloway) 품종이 검은색이고 앵거스(Angus) 품종도 검은색이다. 이건 논점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오늘날의 와규(흑모화종)은 메이지 유신 이후 정부와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로 활발하게 수십년간 외래종과 교접한 결과물이고 흑모화종 역시 미시마 소가 아니라 타지마 소를 베이스로 한다. 일본정부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한국산 흑우를 반출하였으며 특히 1924년 제주산 흑우를 반출한 결과 와규의 흑모화종이 탄생하였다는 주장은 고대와 중세에서 확인되는 일본 소의 역사와 품종개량의 근대사를 통째로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역공당하기 쉽다.
그리고 1938년 와규는 검은색, 한우는 황색으로 일괄적으로 규정하여 한우 중 검은소가 강제로 사라졌다는 논리와 달리, 6년후인 1944년 와규 품중 중 하나로서 갈모화종, 즉, 갈색털의 와규가 정식으로 지정된다. 때문에 제주 한우 기원설을 위해서는 1938년 조치의 실제 파급력과 유효성을 먼저 연구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하지만 한우 항목에서 보듯이 한우중 흑우 수가 급감한 것은 1970년 한우의 털색(황색)을 심사기준으로 강화하여 황색이 아닌 한우는 실격처리한 것에 더 기인한 바가 크다.
또한 (4)번 논리와 같이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와규의 기원을 은폐 및 왜곡했을 것이라는 가정은 성립하기 힘든데, 와규 중 2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갈모화종의 경우, 그 중 상당수가 한반도의 소에서 기원하였다고 학계에서든 축산업계에서든 대부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타지마 소홍보 사이트에서조차, (사료적 가치는 낮기는 하지만) 고사기에 등장하는 신라의 왕자, 아메노 히보코(천일창 ) 기록을 언급하며, 고사기의 기록을 신라 왕자 아메노 히보코가 타지마 지방에 소를 데려왔다는 신화로 해석하기도 한다[6]. 사실 일본 고대의 각종 문화가 하늘에서 내려오거나 땅에서 솟을리는 없으니 이처럼 도래의 전설을 만드는 것은 일본 역사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고 일본 고대사에서 도래인의 존재는 꽤 빈번하고 중요하게 언급되기 때문에 일본 소가 한반도 기원이라고 해서 그것을 굳이 숨길 이유는 없다.
그리고 (2)에 대한 반론을 위해서는 미시마 섬(見島)이 어떤 곳인지를 먼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미시마 섬은 고대, 중세 일본에서 외부세계와의 통로 역할을 했던 사카이, 하카타, 데지마 같은 곳이 아니다. 야마구치현 최북단에 위치한 섬으로서 본토와는 약 45km 떨어졌고 인근의 다른 섬도 없이 외로운 시골 섬으로서, 현재 인구는 약 1천명으로 추정되는, 일본 역사에서 러일전쟁 당시 쓰시마 해전에서 잠시 등장한 것외에는 등장한 적이 없는 작은 섬일 뿐이다.
한국 흑우 기원설에서 자주 인용되는 '무로마치 시대에 한반도로부터의 도래'라는 설명도 사실 별도의 근거가 없다. 그런 기록이 남을만큼 번성한 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섬의 유일한 역사문화 유적은 7세기~10세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지콘보 고분군이 유일한데, 이 고분을 누가 만들었는지, 왜 지콘보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만어로 '지콘보'가 공동묘지를 뜻한다는 가설도 있고 아저씨를 뜻하는 현지의 방언이라는 설도 있다. 여기에 뭍힌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방인(防人, 백강 전투 이후 있을지도 모르는 신라와 당나라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서부의 최전선으로 파견된 일본 군인)의 무덤이라는 설도 있고, 왜구의 무덤이라는 설도 있고, 한국과 중국으로부터의 도래인의 무덤이라는 설도 있다. '무로마치 시대에 한반도로부터의 도래'라는 설명은 그런 빈약한 역사를 채우기 위해 등장한 가설로서 그리 튼튼한 근거는 가지고 있지 않다. 지콘보 고분군에 소와 관련된 유물이 없으니 이 섬에 소가 도래한 시기가 헤이안, 가마쿠라 시대는 아닌 것 같다. 그리고 한반도와 비교적 가까우니 한반도와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정도의 가설만 논의되는 섬이다.
만약에 미시마소가 일본 순수 재래종이라고 가정하더라도 미시마 섬에서 일본 재래종의 소가 남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도 사실은 이 곳이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궁벽한 외지섬이어서 일본 본토를 휩쓸었던 서양 소 품종과의 교접 열풍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1928년 일본이 이 지역의 소를 미시마소로 부르면서 천연기념물을 지정한 것도 이미 당시에 교접열풍으로 인하여 일본 재래종의 순수혈통이 사라진 시대에서 서양 소 도래 이전의 일본 재래종의 혈통을 지니고 있다는 상징성 때문이었지만 미시마 소가 오늘날의 와규 형성에 기여를 하였다는 증거는 없다. 2006년 당시 미시마 소는 미시마 섬에서만 자라며 암소 85마리, 숫소 14마리로 지극히 소규모로 보호되는 재래종일 뿐이고 오히려 1928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서는 도축이 엄격히 제한되는 등, 상업상 가치를 거의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일례로 2014년의 한 신문기사에 따르면, 쇼와 시대 초기, 즉 1920년~30년대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당시에는 섬에 500마리의 미시마 소가 있는 등 현재보다 오히려 번성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일본 농가의 현대화가 진행되면서는 소 대신 농기계가 농사일을 대신하게 되어 미시마 소 역시 섬에서의 수요가 적어지고 이에 따라 1976년에는 불과 33마리만 남을 정도로 급감하였다. 섬에 존재하는 미시마 소 보존회의 구성원 역시 8명에 불과할 정도로, 큰 관심을 못받고 있다.
이렇듯 상징성과 연구적 가치 외에는 일본내에서도 관심이 적고 천연기념물에 대한 관리규정 때문에 오늘날에도 섭취할 수 있는 미시마 소는 일 년에 10마리 미만에 불과하고 대중적으로 팔리는 미시마 소는 미시마 소와 서양의 홀슈타인 품종이 교접해서 탄생된 잡종, 켄란 소(見蘭牛) 같은 소수의 브랜드가 있을 뿐이다.
오늘날의 대표 와규인 흑모화종의 유전적 기원은 너무 각종 품종이 섞인 탓에 논쟁이 활발한 분야고 미시마소의 외양이 흑모화종과 동일하게 검은색인고로 흑모화종의 기원이 미시마 소라는 의견도 일본 내에서 있다. 하지만 미시마 섬의 소가 정말로 무로마치 시대에 한반도 소의 아류로 유입되었을 수 있을지언정 미시마에 살았던 소가 일본 본토에 살았던 소의 기원이 될 수는 없다. 첫째로 미시마 섬은 일본 중심부에서 너무 떨어진 시골이고 교역으로 유명한 곳도 아니므로 이곳의 문물이 일본 본토로 전파되었을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며 둘째로 상기의 역사적 기록을 보았을 때, 무로마치 이전 헤이안-가마쿠라 시대때부터 일본 본토에는 이미 흑우, 황소, 얼룩소 등 다양한 형태의 소가 살았기 때문이다.
물론 도쿄농업대학의 연구처럼 현대 와규(흑모화종)의 특징인 마블링(시모후리, 霜降り)이 일본 재래종인 '미시마 소'에서도 발견된다면서, 와규의 마블링은 서양 소와의 교접을 통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일본 재래종에서 기원한다는 식의 연구를 하는 측도 있다. 하지만 이같은 연구가 흑모화종의 기원이 미시마소라는 소리는 아니다. 미시마소가 연구되는 것은 이 소가 서양 소에 유전적 영향을 받지 않은 일본 내에서 거의 유일한 소(독립변수)이기 때문이지 흑모화종의 직계 조상이 미시마 출신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런 연구를 하는 이유는, 유일한 일본 재래종인 미시마소에서 고도의 마블링이 발견된다면, (현재는 서양 소와의 교접으로 사라진) 일본 본토의 다른 순수 재래종에서도 마블링이 본래부터 내재되었을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즉, 미시마 소는 일종의 살아있는 화석인 셈이다.
추가적으로, 본 문단 처음의 코토뱅크의 설명과 같이, '와규'라는 단어는 '일본 소'라는 의미로서, 농사와 운송에 쓰이던 순수한 재래종과 고기용으로 개량된 현대의 교접종을 포괄하여 통칭하는 말이다. 육용으로 소비되기 위하여 서양 소 품종과 엄청난 교접을 시행한 오늘날의 잡종 와규(흑모화종 등)를 고립된 섬에서 농사용으로 쓰이던 미시마섬의 재래종 소를 설명하는 (문화재청 간판의) 와규와 연결하여 '미시마 소는 오래된 와규니깐 미시마 소가 와규(흑모화종)의 원조'라는 식의 주장은 제주 흑우 기원설과는 무관하게 반론의 여지가 크다.
사실 한반도와 제주도, 그리고 일본 열도의 거리가 가깝고 외양이 흡사한고로 양자간 유전적 친근성을 따져보는 것은 의미 있을 수 있다. 제주 흑우와 미시마 소가 공통 조상을 가지고 있다든가, 혹은 타지마 소와 한반도의 소 간 유전적 친근성을 따져보는 식의 연구는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와규의 흑모화종은 타지마 소와 서양 외래종의 교접으로 탄생했다는 것이 일본 내에서의 정설이고 이를 뒤집을만한 유력한 증거가 따로 없는만큼, 한반도/제주 흑우의 일본 와규 기원설은 아직 아무 근거 없는 가설에 불과할 것이다.
2.3.1. 키시 히로시(1975)의 논문
미시마소의 기원을 철저히 파헤친 논문으로는 키시 히로시(岸浩) 1975년 논문 '천연기념물 미시마 소의 기원에 관한 연구(天然記念物見島牛の起源に関する研究, 獣医畜産新報, no.652, no.653)'이 있다.키시 히로시의 논문, 첫 페이지(1975).
일단 미시마 소의 제주 흑우 기원설을 검토하기에 앞서, 미시마 소가 일본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경위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미시마 소가 일본 본토에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후쿠다 시게오(福田茂穂)이라는 아부군(阿武郡) 농업기수(農業技手, 기수는 판임관으로서, 일본 제국의 하급 공무원)에 의해서였다. 후쿠다 시게오는 1923년(大正12년) 10월 은퇴하였는데 그는 1923~1924년으로 추정되는 시기에 '미시마 섬에 조선 소를 닮은 소가 있다'는 조사서를 보고하게 된다[7].
야마구치현 소속의 공무원인 이와네 마타시게(岩根又重)은 이 조사서를 일본 정부의 천연기념물 조사위원인 와타리세 소오사부로(渡瀬荘三郎)에게 보고하고, 와타리세 소오사부로(渡瀬荘三郎)은 1927년(昭和2년) 6월, 이틀에 걸쳐 미시마 섬에 현지 방문하였고 이후 1928년 9월 20일자 내무성 고시 249호(관보 522호)에 의하여, 미시마 소는 미시마 거북이와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게 된다. 하지만 조사위원이었던 와타리세 소오사부로는 조사보고서에서 천연기념물 지정사유에 대하여 '일본의 특유한 축산동물'이라는 천연기념물관련 법조문만을 기재하였을뿐, 미시마 소가 왜 천연기념물에 해당하는지 구체적인 사유를 기재하지 않은채 1929년 사망하였으며 이후 1930년 돗토리 고등농업학교(鳥取高等農業学校) 모토하시 헤이이치로(本橋平一郎)가 독자적으로 연구한 논문을 돗토리 농학회보(鳥取農学会報) 게재함을 시작으로, 미시마 소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그러던 중 1971년(昭和 46년), 일본 문화재청이 감수한 천연기념물 사전에서 미시마소가 한반도로부터 전래했다는 문장이 기재되었고 이는 오늘날까지 한국에도 전해져 제주 흑우 기원설이 되었다.
키시 히로시(1975)에서는 결론적으로, 미시마소가 한반도 기원이라는 설을 부정하고 있는데, 그가 그동안 각 종 논문 등에서 제시된 한반도 전래설의 주요 근거를 정리한 바는 아래와 같다.
- (1) 삼국지 위지 왜인전에 따르면, 其地無牛馬虎豹羊鵲, 즉 일본 땅에는 소, 말, 호랑이, 표범 등이 없다고 한다. 일본에는 본래 소가 없었으니 일본 소의 조상은 외국, 그중 가장 가까운 한반도에서 도래한 것이다
- (2) 미시마 섬은 한반도와 일본의 사이에 위치해있으며 말을 키운 역사가 없음에도 코마(駒,コマ) 같은 지명이 있는 것으로 보았을 때, 고려 혹은 고구려와 연관이 있는 등 한반도와 일본의 중간 교류지 역할을 하였다.
- (3) 미시마 소의 털색(검은색)과 작은 체형은 한국의 소와 유사하다
- (4) 일반적인 소의 사역 방식(축사의 上板)이 한국식이다
- (5) 소를 사역할 때 쓰는 용어가 한국어와 비슷하다
- (6) 미시마 섬의 적석총(지콘보 고분군)의 모습과 출토품이 한국식이다
- (7) 미시마 섬 내에서 조선의 화폐인 영락통보(永樂通寶)가 출토된다.
이 중, (7)의 영락통보는 본래 명나라 화폐였으며 일본 본토에서 널리 쓰인 바 있으니 별도로 논할 가치가 없다.
키시 히로시가 각 항목별로 반박한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보다 자세한 논거를 확인하려거든 논문을 직접 참고하는 것이 좋다.
- (1)-a. 최근의 고고학적 성과에 따르면, 이미 고훈 시대 이전의 유적지에서부터 일본열도에는 소뼈가 발굴된다[8]. 따라서 기원후 3세기 경 일본에 소가 없었다는 삼국지의 기록은 신뢰할 수 없으며 가마쿠라 시대의 일본 본토에 소가 있었음은 더이상 논쟁거리도 아니다.[9]
- (1)-b. 일본서기, 속일본기, 일본기략(日本紀略) 등의 사서의 기록을 검토하자면, 당시 일본에 소가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특히 일본서기에는물소의 수입이나 야생 소까지 언급되어 있다. 일본서기 등이 신뢰성에 의심을 받는 것은 연대조작이나 지나친 자국중심적 사관때문인데 이건 그런 케이스가 아니다.
- (1)-c. 혈액형 Z' 항원의 품종별 출현빈도 연구에 따르면, 미시마 소는 64.5%, 서양소와 일본 재래종의 잡종인 무각화종은 41.2%인 반면, 한반도로부터의 전래가 확실한 고치현의 갈모화종은 13.3%에 불과하여 오히려 미시마 소와 큰 차이를 보였다.
- (2)-a. 삼국시대 및 이후의 시대에서 한반도 → 일본의 수도(나라, 교토)에 이동하는 길은 부산 등 한반도 남해에서 출발하여 대마도와 후쿠오카 등을 거쳐 혼슈의 남쪽 내해인 세토내해를 통한 방법이 이용되었다. 한반도에서 미시마 섬으로 가려면 그런 통상적인 루트에서 벗어나 대마도로부터 동쪽으로 약 300km 가야 하고 혼슈의 북쪽으로 가야한다. 한반도에서 미시마 섬까지 그렇게 갈 이유나 기록도 없고, 미시마 섬에서 한반도까지 도달하기에는 미시마 섬의 경제상황이나 항해기술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 특히, 한반도에서 미시마 섬으로 가려면 겨울의 북서풍을 타고 갔다가 이듬해 봄의 동남풍을 타고 돌아와야하기 때문에 단기간 항해는 불가능했을 것이며 한 번 도착한다면 반드시 장기간 체류했어야 할 것인데, 그런 기록이나 근거가 없다.
- (2)-b. 한국의 기록에서 미시마 섬이 등장하는 것은 딱 한 번, 조선시대에 작성된 해동제국기에서다. 해당 책에서 미시마 섬의 도주는 기축년(己丑年)에 대마도주에 청하여 한국 사신을 접대하는 역할로 딱 한 번 등장하는데 해동제국기 속 다수의 일본인이 그런 역할을 한 것을 보면 전혀 특이한 위치가 아니다. 또한 해동제국기에 수록된 조선-일본간 항해지도에서도 미시마 섬으로 통하는 항로는 없다. 미시마(箕馬) 섬은 단지 항해중 방향을 나타내는 표지로만 사용될 뿐이다.
- (2)-c. '코마'라는 지명은 야마구치현 내에서만 42개가 확인되는데 이를 전부 고려, 고구려의 흔적으로 볼수는 없다. 예를 들어, 코마쯔라는 지명이 해안가에 있으며 高麗津, 즉, 고려(고구려)의 배가 드나들었던 항처럼 해석되지만 실제로 코마쯔라는 지명은 바다를 접하지 않은 산간지역에서도 발견된다. '고마'라는 지명은 말머리 모양으로 움푹 패인 지형에 붙였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 (2)-e. 1964년 미시마 섬 종합학술보고서에 따르면, 미시마 섬은 지질학적으로 일본 열도와 연속되어 있으며 섬의 식물 및 동물, 조개류, 기생충 등 생태계는 서일본 지방과 유사하지, 한반도의 식생과는 무관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또한 미시마 섬에서 일본 본토에 도달하는 것에 비하여 한반도에 도달하는 것은 6.5배의 거리가 소요된다. 따라서 한반도와 문화적, 역사적 교류성은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해석되었다.
- (3)-a. 조선우마의방(朝鮮牛馬醫方)에 의하면, 조선의 소 색깔은 황색, 검은색, 흰색, 얼룩색 등 다양하다. 조선우마의방은 그중 황색의 소를 우왕(牛王)이라고 칭하고 있다. 즉, 조선 소=흑우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 (3)-b. 일본의 다양한 그림 자료에서도 일본 소의 색깔이 다양함을 보여주고 있고 그중 가장 많은 비중으로 보여지는 것이 검은소이다(1701년의 소(安房牛) 그림에서 55마리를 분석한 결과 42마리가 검은 소였다)
- (3)-c. 미시마 소가 본래 검은 소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1949년 155마리의 미시마 소를 조사한 결과, 순수하게 검은 소는 84마리(54%)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얼룩소였다. 1949년 미시마 섬 촌장이 정부측에 '천연기념물 지정 해제 신청'을 넣었는데, 이때도 미시마 섬 촌장이 내세우는 근거 중 하나로서 본래 '미시마 소는 갈색, 얼룩색, 흰색 등 다양했기 때문에 천연기념물에 지정될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이었다. 기시 히로시는 따라서 '미시마 소=검은 소'라는 이미지가 얼룩소(서양소)에 대항하는 검은소(일본소)라는 상징을 위하여 천연기념물 지정 이후 점차 검은 색으로 개량된 것이 아닌가하고 추정하고 있다.
- (3)-d. 미시마 소가 본토의 일본 소보다 체구가 작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본토의 일본소가 이미 서양 소와의 잡종화가 상당부분 되었기 때문이다. 1932년 실측된 미시마 소의 체고(키)는 115~122cm인데, 이는 에도 시대의 기록인 牛町由來記에서 언급된 종우(씨 숫소, 種牛)의 체고가 약 92cm인 것에 비하면 오히려 높은 것이고, 1701년에 기록된 安房牛의 체고 기록이 112cm~118cm인 점을 고려하면 딱히 작다고 할 수 없다.
- (3)-e. 1973년 다른 일본소와 한국소(1929년 기록), 중국소 3종(1926년 기록), 대만소(1925년 기록) 등 총 13종의 소와 미시마 소의 신체 사이즈를 비교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소는 미시마 소와 4번째, 중국소 3종은 5~7번째로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1,2,3번째로 유사한 소는 전부 일본 국내소였다.
- (4)-a. 우역(牛疫)에 대처하기 위하여, 에도 시대 일본 축산업계가 한국측 자료를 적극적으로 참고했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예를 들어 1399년에 조선에서 집필된 신편우의방(新編牛醫方)은 1756년 우과중보기(牛科重寶記)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그대로 발간되었다. 축사의 상판이나 朱色으로 칠하는 관습 등은 전부 신편우의방을 표절한 우과중보기에서 기원하고 있으며, 이는 다른 일본열도에서도 지역적으로 조금씩 변경된 상태로 확인된다. 미시마 섬의 한국식 축사 역시 이런 지역적 변용에 불과하다.
- (5)-a. 미시마 섬에서 소를 부릴 때, '오른쪽으로'라는 구령은 '보(ボー)'라고 하며, '왼쪽으로'라는 구령은 '조(ジョー)'라고 한다. 미시마 소의 한반도 기원설을 주장하는 측이 이게 한국에서의 구령과 유사한 것이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전혀 다르다. 특히 한국에서는 소를 전진시킬 때 '이랴'라고 하며, 소를 정지시킬 때 '워'라고 하지만, 미시마에서의 전진은 '조이(チョイ)'라고 하며 정지는 '마(マー)'라고 한다
- (5)-b. 야마구치현 내에서만 비교해도 각 지역별로 구령소리가 다양하다. 예를 들어 '오른쪽'이라는 구령은 '세, 세이요, 헤세, 헷세, 히요우세, 보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즉, 구령소리는 추적불가능한 그냥 방언에 불과하다.
- (6)-a. 지콘보 고분군은 이미 몇차례 민간과 정부에서 고고학 조사를 수행하였지만 한반도와 연관되는 유물은 단 한 번도 발굴된 적이 없으며, 그나마 발굴되는 것이 축부 토기(祝部土器) 파편 1점이 발굴된 것인데, 축부 토기는 일본 본토와 한반도에서 고루 발견되는 것으로 한반도와의 연관성을 직접적으로 증명하지는 않는다.
또한 기시 히로시는 미시마 소에 관한 가장 중요한 기록을 언급하는데, 1672년에 해당 지역에 침입한 우역(牛疫)으로 인하여, 인근 섬의 소들이 거의 절멸한 기록이다. 이는 당시 서일본을 휩쓸었던 우역의 연장선상이었는데, 미시마 섬의 기록은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인근의 다른 섬에서의 소가 말그대로 절멸된 기록으로 보았을 때, 미시마 섬 역시 사정은 낫지 않았을 것이다. 즉, 그 이전에 전래된 소는 당시 이미 절멸했으며 현대에서 확인되는 미시마 소는 그 이후(1673년 이후) 외부에서 유입되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유입되었을까 하는 것이 논쟁거리인데, 당시 일본은 쇄국령을 실시하여 외국으로부터 배가 기항할 수 없었고 당시 1671년 조선 역시 우역으로 큰 피해를 보았기 때문에 미시마 섬같은 다른 나라에 소를 지원해줄 여력은 없을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한반도와 미시마 섬 간의 거리는 일본 열도와 미시마 섬간의 거리보다 극히 멀기 때문에 미시마 섬 주민들 역시 한반도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1673년 이후의 미시마 소는 일본 본토에서 지원해줬을 것이다. 실제로 에도 시대 연간에 미시마 섬은 기근이나 재해, 폭설 등으로 곤경에 빠진 적이 다수 있었고 그때마다 일본 본토에서 도와준 전래가 있기에 가능한 추정이다.
참고로 기시 히로시는 미시마 소가 정말 재래종인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미시마 섬의 소는 인근의 다른 섬보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밀도(가구당 보유하는 소가 3마리 이상)로 있고 그 중 상당수는 암소(1881년 통계에서 미시마 섬의 소중 87%가 암소이었으며 이는 인근의 다른 섬에서 20~50%만 암소인 것과 대비된다)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시 히로시가 미시마 섬의 노인들로부터 채록한 바에 따르면, 미시마 섬의 소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이즈모 지방(오늘날의 시마네현)에서 종우(種牛)를 지원받은 것인데, 당시 이즈모 지방의 소는 일본 재래종과 데본종의 잡종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1년에 한 번 열리는 우시장은 한 달동안 계속된다고 한다. 따라서 기시 히로시는 미시마 섬이 에도 시대 연간에 소를 키워서 일본 본토로 수출하는 목장 섬이었으며, 메이지 유신 이후 본토에서 불어닥친 서양소 잡종 열풍에서 미시마 소 역시 생산력과 맛이 좋은 이즈모계 소(데본 F1)을 지원받아 키운 것이므로 결국 미시마 소 역시 잡종 소이며 오늘날 남은 순수한 일본 재래종은 없다는 추정을 하였다. 그런 미시마 소가 1928년 알 수 없는 이유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서 미시마 소의 도축과 판매가 제한되면서 미시마 섬의 경제와 미시마 소의 가치는 뚝뚝 떨어졌으며[10] 1949년 미시마 섬 촌장이 천연기념물 지정을 해제해달라고 신청한 것 역시 그런 연유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본 항목의 제주 흑우 기원설에 대한 재밌는 에피소드가 기시 히로시의 논문(1975)에 실려있다. 기시 히로시는 1945년(昭和20년) 처음 미시마 섬에 방문하였고 미시마 소의 검은 색과 작은 체구를 보고는 '제주도 소와 똑같다(済州島牛そつくり)'는 첫인상을 말하고 있다(p.1227). 하지만 이내 서양의 홀슈타인 같은 얼룩소의 외양을 지닌 다른 미시마 소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점은 2가지인데, 일단 제주도 소는 1945년 당시 일본의 축산연구자라면 알 법한 그런 보편적인 지식이었지 일제의 철저한 탄압으로 강제적으로 기록과 기억에서 삭제된 그런 소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참고로 기시 히로시는 1925년에 태어나 1988년에 죽은 사람인데, 당시 연구를 막 시작한 20세의 대학생 기시 히로시도 제주 흑우를 알고 있었다면 당시 제주 흑우에 대한 지식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보편적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만약 일제가 제주 흑우를 데려다가 일본 고유의 미시마 소로 억지로 세탁했다면 이는 제주도 소를 기억하고 있는 당시 다수의 축산연구자들에 의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기록이 남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록은 전혀 발견되지 않으며 오히려 제주 흑우는 일본으로 반출된 1924년 이후 태어나서 막 공부를 시작한 대학생조차 알고 있는 학문적 상식이 된 것이다.
또한 알 수 있는 점은, 1945년 당시 미시마 소의 외양 중 흑우는 일부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는 1949년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미시마 소의 제주 흑우 기원설의 전제는 미시마 소가 제주 흑우처럼 새까만 소라는 것인데, 실제 미시마 소를 관측한 사람과 미시마 소를 키운 사람에 의하면 미시마 소는 오히려 다양한 색깔에서 흑우 일변도로 점차 개량된 것이다. 따라서 미시마 소의 제주 흑우 기원설이 맞으려면 제주 흑우 역시 과거의 미시마 소처럼 다양한 색, 최소한 얼룩색도 포함하는 것이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1945년 기시 히로시의 방문시에도 얼룩소가 발견되는 것으로 보았을때, 당시 개량은 완전하지 않았고 와규의 흑모화종 품종이 엄격히 정해진 것이 1944년인 점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와규의 흑모화종 형성에 미시마 소가 기여한 바가 없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단, 기시 히로시의 위 논문이 계통학 연구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생물학적 논의보다는 대부분 지리, 역사적 관점에 근거하여 작성된 성격이 커, 계통학 관련 논문임을 표방하는 논문 제목과는 달리 여타 우제류 계통학 관련 연구들에 비해서 전문성이 다소 부족하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기시 히로시는 동물 계통학 분야의 권위자가 아니라 소의 질병(牛疫)을 주로 연구하는 수의사이므로 기시 히로시의 연구가 정설이라고 확언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많은 일본 학자들이 일본에 있는 많은 동식물이나 문물, 풍습 등의 한반도로부터의 유래를 부정하고 대신 그것들이 일본 자체 기원이거나 중국 양쯔강 유역 또는 동남아시아 기원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야요이인이나 일본 벼농사의 기원이 세계적으로 정설로 인정되는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 양쯔강 유역이라는 주장이 대표적인 사례이며, 기시 히로시도 일본 소가 한반도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을 일방적으로 부정하고 있어 그러한 학자들 중 한 명으로 추정된다. 애초에 학자나 아마추어를 막론하고 고대로부터 한반도가 일본에 미친 영향에 대한 일본 사회의 인식이 대체적으로 부정적이며, 설사 그 영향이 사실로 확인된 것도 숨기려 하며 심지어 그러한 영향이 명시된 자국의 문헌도 '근거가 없다', '저자의 착각일 뿐이다'라며 서슴없이 부정하는 경우도 흔하다. 일례로 일본에 유구하고 한반도와는 별개의 독자적인 구석기 문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유물을 몰래 파묻고 자신이 처음 발견한 마냥 조작하다 세계적으로 대망신을 당한 후지무라 신이치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3. 맛과 인지도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고 한우에 비해 식용 개량의 역사가 오래된지라 대표적인 프리미엄 육용종으로 유명하다. 일본 원산 품종이지만 한국은 일본산 소고기 수입을 금지하고 있어 호주산 와규가 더 친숙하다. 일본산 와규는 한우 이상으로 마블링(=지방)이 너무 발달한 나머지 멀리서 보면 육고기의 붉은 색을 가릴 정도라서 스테이크로 익히면 굉장히 느끼할 수밖에 없다. 최고급 한우도 그렇긴 하지만. 그러나, 지방도 물론 맛있지만 지방을 제외하고도 와규종 특유의 풍부한 감칠맛이 깊다고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와규 품종 특유의 감칠맛은 호주와 미국에 진출 및 사육될 수 있었던 이유이며, 와규와 다른 소고기의 차별점으로 손꼽기도 한다. 풍부하고 질 좋은 육고기의 지방에서 나오는 고소함과 고기 본연의 감칠맛이 높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철판구이 또는 야키니쿠, 스키야키와 같이 고기 본연의 맛을 즐기는 조리법으로 요리해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미국인들도 와규를 고급 소고기로써 상당히 많이 소비한다. 미국에서는 주로 스테이크용으로 안심, 등심 등의 값비싼 부위 위주로 소비하는 편이다.[11] 미국에서는 와규를 지칭할 때는 kobe beef (코비 비프)라는 보통 많이 쓰는데, 여기서 코비는 사실 일본의 고베를 뜻하는 것이다. 샴페인을 샴페인(샹파뉴)에서 만들지 않으면 "샴페인"이라고 할 수 없듯이 "고베"라는 브랜딩은 원산지가 일본 고베가 아니면 써서는 안 되는데, 이미 널리 정착된 단어라 현재는 "wagyu"와 혼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즉, 미국이나 호주에서 생산된 와규도 코비 비프라는 고유명사라고 불리고 있다. 해외에서 'Kobe Beef'가 보인다고 무조건 일본 고베산 소고기는 아니라는 소리이다. 미국의 농구선수 코비 브라이언트의 이름도 코비의 아버지가 와규를 좋아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2018년 즈음부터는 대형마트 식육점에서 American Wagyu[12]라는 것을 찾아 볼 수 있는데, 일본소와 미국소의 혼혈종이다.
단, 와규가 오늘날 미국에서 이러한 인기를 얻게 된 것은 후술할 호주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와규는 1950~1960년대에는 미국에서 일본 음식에 관심이 많은 일부 미식가들에게만 향유되는 음식이었으나[13] 호주에서 일본 와규에 관심을 가지고 소를 수입하여 기르기 시작하면서 일본의 와규 품종과 호주의 알찬 사육 환경, 높은 수준의 축산 기술이 접목되어 와규가 많이 생산되었으며 이것이 입소문을 타고[14] 미국에도 전해져 와규는 현재 뉴욕의 웬만한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수 있는 별미로 자리잡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미국, 또한 미국을 넘어서 와규의 세계적 인기에 대한 공은 호주로 돌려야 할 것이다.
3.1. 호주산 와규
일본산만큼 인기가 좋지는 않았지만 90년대에는 호주에서도 번식에 성공하여 호주산 와규가 가격 경쟁력으로 점차 이름을 날렸으며 이후 가성비와 뛰어난 품질로 인해 크게 확산되고 있다.[15][16]이 '호주산 와규'라는 표현은 일본인들 입장에서는 대단히 이질감을 느낄 수 있는 표현이다. 물론 호주에서 생산한 와규 품종이라는 뜻이지만, 말 자체가 모순으로 들릴 수 있다. '호주산 한우'라는 표현이 한국인에게 어떻게 들릴지 상상해보자. 하지만 과거면 몰라도 현재 호주산 와규의 인기와 판매량은 크게 올라갔다. 오히려 일본산 와규는 소수의 최고급 프리미엄 분야에 국한되지만 호주산 와규는 뛰어난 품질과 적절한 가격과 품질, 서양에서 선호하는 미디엄 스테이크 조리법에 적합한 MBS 5~6 정도의 적당한 마블링으로 대중 인지도를 크게 확보하였다. 게다가 이미 일본을 상대로 판매할 MBS 7 이상의 고지방 와규도 깊게 연구하여 성과를 내었다. (호주 축산업계는 판매지역/구매력등으로 판매 대상을 세분화 하고 이에 따라 사육과 유통을 아주 체계적으로 구축한다.) 심지어 일본에서 와규로 선전해대는 일본 흑모화우종도 이미 생산을 마쳤다. 원산지가 호주일 뿐이지 일본에서 자랑하는 와규와 유전적으로도 거의 동일하다. 현재도 호주와규협회 등을 두어 계속해서 호주의 와규 품종을 일본인들의 입맛에 더 맞게 하기 위해 연구 중이다.
물론 일본 정부는 일본에서 자란 소가 아니라는 이유로 진입장벽을 쳤다. 일본 내에서 와규 명칭을 사용하려면 여러 가지 까다로운 규제를 통과하도록 하여, 호주산 와규가 일본에서 와규란 명칭을 쓰지 못하도록 막는다. 참고로 대한민국에서 유통되는 와규는 모두 호주산 와규로, 대한민국에서는 현재 일본산 소고기의 수입이 금지되어[17] 일본산 와규는 한국 땅에서 구할 방법이 전혀 없다.[18] 이에 일본에서 위기감을 느끼고 와규를 고유품종화하여 일본 내에서 자란 소들만을 와규 브랜드를 쓸 수 있게 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19] 결국 일본 내에서도 엄청나게 비싼 일본산 와규의 가격을 낮춰 접근성을 높이지 않으면[20] 호주에게 오히려 역점당할 것[21]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증가하였기도 했다.
결국 일본은 합리적인 가격과 구매의 편리성, 썩 괜찮은 품질로 무장해 대규모 판매를 추구하는 호주산 와규와는 달리 고베 와규, 아키타현 와규, 오미현 와규 등 각 지역별로 독창적인 방법으로 사육된 와규를 브랜드화 한 고가전략으로 호주산 와규와 경쟁하고 있다. 다시말해 호주가 호주산 와규라는 단일브랜드로 대량생산하여 수출한다면, 일본은 각 지역별로 차별화된 방식으로 생산해 개별 브랜드화를 극대화하여 프리미엄화를 추구한다고 말할 수 있다. 호주가 잘하는 분야에서 굳이 정면대결하지 않고 차별화를 통해 아예 다른 세그먼트를 만들어 독점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등 타 소비지역에서는 일본의 이러한 노력의 영향으로 호주산 와규는 일본산 와규에 비해 낮게 포지셔닝되어 있다. 호주산은 '보급형 와규'라고 생각하면 편하다.[22] 실제로 해외 유명 레스토랑에서 사용되는 와규는 대부분 일본산 와규이다. 미국 뉴욕의 350$에 달하는 최고급 와규 스테이크를 비롯해 비버리 힐즈의 온스(Oz)당 25달러에 달하는 와규 스테이크 전문점등 미국 동/서부 부촌지역의 고급 육류요리 전문점 대부분이 자사에서 사용하는 고기 모두 일본산 와규라는 것을 강조한다.
재미있는 점은 호주의 이러한 적극적 판매전략 때문에 와규, 영어로는 'Wagyu beef'라는 이름이 더욱 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서, 스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요리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되었다. 일본과 호주 두 나라가 같은 아이템을 가지고 홍보를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껄끄러운 경쟁자이지만 시장 전체를 확대하는데는 본의아니게 협력하고 있는 셈이다.
3.2. 미국산 와규
미국에서 일반인이 접할 수 있는 와규는 2019년까지 코스트코 특정 지점에서 한시적으로 판매하였던 비교적 비싼 가격의 일본산 와규가 있었다. 이후 소고기 품종 중 탑에 속한 블랙 앵거스와 일본 와규를 교배 시켜 맛을 더 올린 호주산 와규처럼, 미국 내에서도 방목하여 키운 미국산 와규가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A5 Top Grade로 코스트코에 들어왔다. 2022년 초부터 코스트코 본점인 Kirkland와 Redmond 지점부터 다시 한시적으로 판매하다가 상품이 잘 팔리는 것을 인지하고 대량으로 생산 판매하기 시작했다.스테이크 형태만을 좋아하는 미국인들이 좋아하지 않는 갈비살 부위인 Ribs 부위 또한 더 저렴한 가격으로 와규 Ribs로 판매한다. 다진 와규는 양이 많고 잘 사지 않아 더 저렴하다. 와규 갈비살과 다진고기는 한국 내 한우의 30% 가격으로 저렴하다.
4. 일본산 와규 종류
일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일본삼대와규(日本三大和牛)라고 통용되고 있지만 유래도, 규정도 불분명하며 출전에 따라 제 마음대로 세 가지를 정해서 부르고 있다고 한다. 고베소고기(神戸ビーフ), 마츠사카우시(松坂牛), 오미우시(近江牛), 요네자와규(米沢牛)를 넣는다. 출전에 따라선 아래 5가지 외에 마에사와규(前沢牛)도 포함되는 듯하다.일본 위키피디아- 고베소고기, 고베규(神戸ビーフ) : 일본 효고현에서 다지마규(但馬牛) 중 BMS[23] B등급 이상, 지육(枝肉) 450kg 이하의 소에게서 나온 소고기이다. 대략 32개월 내외의 소를 도축한다. 19세기 개항지에 거주하는 서양인들이 선호하면서, 일본 내에서 덩달아 유명해지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를 전후하여 자체적으로 체계화 된 등급관리를 시행하면서 더욱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높였다. 이 당시 소에게 맥주를 먹게 하고,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고, 하루에 여러번 맛사지를 해주면서 사육하는 방식이 언론매체에 등장하여 꽤 유명세를 탔다고 한다. 2019년에는 고베규 협회가 창설되어 협회 가입 점포만 고베규를 사고 팔 수 있게 되었다.
- 마츠사카우시, 마츠사카규(松阪牛, まつさかうし) : 일본 미에현에서 흑모화종(黒毛和種)[24] 중 송아지를 낳지 않은 암소를 최대 3년까지 키운 뒤 출하한다. 1950년대 무렵부터 관리를 통해 고급 소고기로 알려지게 되었고, 일본의 경제성장기에 그러한 인식이 자리 잡히게 됐다. 2002년 하반기부터 마츠사카우시의 기준이 대폭 완화되면서, 마츠사카시에서 사육한 흑모화종 이외의 다른 소의 고기도 마츠사카우시로 판매가 가능하다.
- 오미우시(近江牛, おうみうし) : 일본 시가현 동쪽에서 생산되는 소고기를 말한다. 사료상으로 알려지기는 16세기부터 소고기에 관련된 기록이 남아있으나, 사람들에게 인식이 박히기 시작한 것은 에도 막부 후기 즈음이었다. 에도 막부 후기까지는 특산품의 일종으로 취급되었으나, 개항 이후 사람들이 많이 찾게 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고급 소고기로 자리매김하였다. 과거에는 흑모화종만을 취급하였으나, 지금은 마츠사카우시와 마찬가지로 시가현 동쪽에서 자란 다른 종의 소들도 오미우시로 등록되어 나온다.
- 요네자와규(米沢牛, よねざわぎゅう) : 일본 야마가타현의 남부에 위치한 요네자와와 그 주변에서 생산된 소를 요네자와규로 정의한다. 대략 32개월 내외의 흑모화종 중 거세한 황소, 송아지를 낳지 않은 암소가 그 대상이다. 그들 중 고기 등급 3등급 이상, BMS 3등급 이상의 소고기를 요네자와규라는 이름으로 출하한다. 19세기 무진전쟁 이후 야마가타현에 초빙한 영국인 교사에게 대접한 것이 그 시작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2차 대전 이후 성장기에 일본 전역에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하였다.
5. 논란
5.1. 방사능 소 파동
日 도치기현서도 '세슘 소고기' '와규' 가격 폭락(2011년)후쿠시마 원전 인근 농가에서 방사성 농도가 높은 볏짚을 사료로 먹인 와규가 일본 방역 당국의 검사를 전혀 거치지 않은 채 시중에 유통되어서 큰 논란이 일었다. 일본 정부가 집계한 와규만 해도 2천여 마리이며, 일부 소들이 먹은 사료에서는 방사능 수치가 일본 정부의 기준치 3백 배를 초과하였다.
문제는 오염된 사료를 먹은 오염된 와규가 단지 후쿠시마산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 미야기현이나 이바라키현에서도 발견되어 논란이 되었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홋카이도, 기후현, 아키타현 등 일본 외곽지역 소 사육 농가들에서도 후쿠시마, 미야기에서 판매한 소 사료용 볏짚을 가지고 사료로 사용하면서 이를 확산시켰다.
결국 멀리 떨어진 오키나와를 제외한 일본 46개 지방으로 방사능에 오염된 사료를 먹은 소가 유통되었다.[25] 심지어 초등 학교 급식과 열차 도시락에도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이 때 프리미엄을 형성하며 가격이 비싸던 와규 가격도 급락했었다. [26]
결국 일본 정부는 외부 피폭만 염두에 두는 바람에 오염된 사료를 통한 소들의 내부 피폭에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고 사과하였다. 이에 일본 내에서 후쿠시마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의 토양에서 방사능 물질이 조사되는 상황에서 오염된 지역내 볏짚등의 소 사료로 쓰이는 작물들의 섭취 등에 의한 내부 피폭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에 일본 와규의 명성에 흠이 갈 것을 우려, 검역에 소극적으로 임한 것이 사태가 커지게 한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뒤늦게 일본 정부에서 방사능에 오염된 와규들을 살처분하거나 오염소 검출지역의 소에 대한 전수 조사를 실시하는 등 사후 대책에 나섰다.
한편 본 목장은 후쿠시마현 출입금지 구역에 위치한 희망목장으로 소 출하는 하지 않고, 살처분이 잔인하다고 생각한 소주인이 현상 고발 겸 계속 기르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JTBC 보도 자체가 본 목장의 운영목적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고 유제품을 출하하는 일반적인 목장으로 오인하기 쉽게 보도하였기 때문에 마치 오염된 소고기를 출하시키려 목장을 운영한다는 식의 내용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크게 비난받으며 재인용되고 있다. #,#, #
6. 관련 상품
- 와규 소고기 중에서 윗등심 고기는 대형마트 뿐만 아니라 중소형 마트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 롯데마트는 와규 소고기로 윗등심, 부챗살, 삼각살, 업진살, 치마살, 양지, 설도, 사태 등의 부위를 판매하고 있다. 또한 MBS8+ 등급의 호주산 와규를 50개 이상 점포에서 운영하고 있다.
- 이마트는 달링 다운 와규라는 브랜드로 호주산 와규 소고기를 판매하고 있다. 윗등심은 모든 매장에 매일마다 들어온다. 스트립로인 (채끝), 립캡 (새우살), 꽃갈비살, 살치살, 등심 (립아이) 등의 부위는 일주일에 한번 들어오는데 매장마다 들어오는 요일이 상이하다.
- 트레이더스 홀세일 클럽에서는 와규 소고기로 윗등심, 등심 (립아이), 스트립로인 (채끝), 설도, 오이스터 블레이드 (부챗살), 차돌박이, 우둔살 등을 판매하고 있다.
- 온라인 정육 업체 중에서 극히 일부의 업체들은 호주산 와규 소에서 뽑은 토마호크나 T본 · L본 · 포터하우스 고기를 판매하기도 한다.
- 롯데리아가 호주산 와규 소고기를 써서 버거를 만들었다. 와규에디션2 문서로. 그런데 평가는 그리 신통치 않은 모양. 일단 소고기를 때려넣어서 그런지 가격이 햄버거 치고는 상당히 높다.
- 미국 코스트코 일부매장에서 드물게 일본산 A5 등급 와규를 볼 수 있으며, 가격은 $99/파운드로 일반적인 미국산 프라임 등급 꽃등심 (Ribeye)의 $23/파운드를 압도적으로 뛰어넘는 가격을 자랑한다. 1파운드가 약 0.453kg이므로 100g당 30,000원이 넘는 가격.
그러나 일본산 A5 와규 자체가 사실상 소고기로써는 최고 등급이나 다름이 없기에 이것도 상당히 괜찮은 가격으로 받아들여진다.
7. 기타
- 구글에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스테이크 Top 10을 검색해보면 최상위권을 모두 와규 계열이 독점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당연히(?) 일본산 와규가 가장 높은 등급이고 호주산, 미국산 와규는 그보다 아래여도 다른 소고기들보다 비싼 것으로 분류되며, A5등급 이상의 고베 와규[27]가 이들 중에서도 단연 1등으로 비싼 것으로 꼽힌다. 실제로 와규 스테이크는 1파운드(약 454g)당 100달러를 넘기는 것은 기본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술한 최상급 고베 와규는 1파운드당 300~600달러 이상으로 팔려나간다. 고베 와규보다 더 비싼 고기 부위는 최상급 이베리코 하몽과 자연산 푸아그라 정도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서브컬처 쪽에선 역시나 고급 먹거리라 특별한 날에만 먹는 걸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 들여오면서 현지화되는 경우는 보통 한우로 로컬라이징한다. 에세이 만화 백성귀족에서는 작가가 직접 와규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준 바 있다.
- 킥스타터에서 와규로 육포를 만든다고 하여 12만달러 가량을 모았다가 미심쩍던 몇몇 사람들이 조사한 결과 페이지에 올려진 정보가 위조됐다는 것이 폭로돼, 프로젝트가 성사되기 몇 분 전에 극적으로 중단된 경우도 있다.
- 일본의 유명 코미디 콤비 이름이기도 하다. 구성원은 미즈타 신지, 카와니시 켄시로인데 미즈타가 레스토랑에서 조리사로 일하던 시절 가장 비싼 코스 이름이 와규스테이크라 와규로 지었다고 한다. 원래도 간사이권에서 인기가 많았지만 M-1그랑프리에서 2016년, 2017년 2년 연속으로 준우승한 이후 코미디 실력에 요리실력까지 시너지효과를 내어 전국적으로 인기가 급상승하였다. 친한 콤비인 아키나, 아인슈타인과 함께 2017년 한국을 방문하여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코미디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18년 M-1 그랑프리에서도 준우승에 그치며, M-1 참전 이후 4년 연속 결승 진출, 3년 연속 준우승이라는 흔치 않은 기록을 세웠다.
- 한국의 미디어물에서도 일본산 와규가 최고급 소고기로 묘사되고 있다. 다만 한국에서는 일본산 소고기의 수입이 2001년부터 금지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일본산 와규를 먹는 것은 고증오류.
[1] 御厨는 신의 부엌이라는 뜻으로 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장소라는 뜻이다.[2] 출처 : 타마가와 대학교(玉川大学)[3] 출처 : 일본 정부 농림수산성[4] 다행히 흑우와 칡소는 복원되어서 수가 늘어가는 중이다.[5] 다만 건국대 축산경영연구소 김태경 연구원은 “고구려, 백제 등이 멸망하면서 이미 일본으로 소 반출은 있었다”며 “제주 흑우와 와규가 반드시 유전적으로 같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6] 다만, 천일창항목에서 보듯히, 아메노 히보코(천일창)이 실존 인물인지 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하다. 고사기가 워낙 판타지적인 내용으로 유명하기도 하고.[7] 즉, 제주 흑우 기원설이 말하는 것처럼, 일본 정부가 몰래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것이 아니라, 일본 공무원이 먼저 '조선소와 닮은 소가 있다'고 상부에 보고한 것에서부터 천연기념물 지정이 시작된 것이다[8] 참고로 2016년 발간된 Mason's World Encyclopedia of Livestock Breeds and Breeding(6판)에서도 기원후 2세기 경 일본에 소가 도입되었다고 설명되어 있다[9] 단 위지왜인전의 저 말은 말 그대로 일본에 아예 소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 소가 희귀했는데 도래인에 의해 여러 종류의 소들이 유입되면서 헤이안 시대에 이르러 소가 번성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게다가 위처럼 2~3세기에 일본 열도에 소가 살았다 해도 결국 그 소는 기원전부터 일본 열도로 이주한 한반도인들이 들여온 것이라는 결론이 난다.[10] 1929년 미시마 소의 판매가는 7000엔을 넘었으나 1931년에는 2000엔대로 뚝 떨어진다[11] 단, 미국 내에서 와규의 인지도가 본토 미국소나 호주소에 필적했다는 것은 아니고 '치킨 대국' 한국에서 별미로 일본 닭튀김 가라아게 먹듯이 소비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와규는 닌자처럼 사실상 영어에 동화된 일본어라 보아야 할 정도로 미국인들은 와규의 유래나 어원을 아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다. 심지어 와규가 일본어인지 모르는 사람도 흔하고 그냥 미국소 브랜드 중 하나라 인식하는 경우도 많다. 미국은 애초에 다민족, 다문화 국가라 특정 단어나 음식의 국적을 따지는 경우가 드물다. 쉽게 말하면 어디에서 온 건지는 관심이 없고 유명하고 맛만 있으면 장땡이라는 것이다.[12] Snake River Farm의 브랜드[13] 이 당시는 냉장유통이 발달하지 않아서 세계적으로 대중화되기 힘든 환경이었다. 세계적으로 즐기게 될 수 있었던 별미가 될 수 있던 이유도 해상 컨테이너가 냉장/냉동화가 되면서 신선한 식품을 보다 오래 보관하고 멀리 유통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14] 호주 축산협회와 미국 축산협회는 교류가 많다.[15] 90년대부터 미국에서 와규의 정자와 수정란 등을 들여왔으며 이후 블랙 앵거스와 일본 와규와 혼혈번식을 하는 등으로 지속적으로 품종개량을 하였다.[16] 게다가 호주는 이러한 목축업을 하여 돈을 벌어온 역사가 꽤 되기 때문에 소 사육 등의 노하우와 기술 판매망 구축 등에 도가 튼 곳이다.[17] 2001년 일본에서 광우병 발생으로 인한 조치이다. 참고자료 이와 비슷하게 아르헨티나산 소고기도 1996년 아르헨티나에서 구제역이 돌자 한국으로의 수입이 금지되었다.[18] 사실 일본산 와규는 특유의 프리미엄으로 가격이 높아서 사람들이 와규를 접하는 경우는 호주산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일본에서도 일본산 와규를 고집한다고 해놓고 정작 호주산 와규를 몰래 수입해 판매하다 관리당국에 적발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호주산 와규인지도 모르고 이게 진짜 일본산 와규라고 유명 맛집으로 소문난 가게들이 호주산을 썼다고 적발되기도 하였다.[19] 문제는 이미 호주산 와규가 동남아 최고급 레스토랑에서만 주로 판매되는 등 판매망 개척에 매우 미적지근했던 일본산 와규를 제치고 전세계에 시장 개척을 해놓았다는 것이다. 미국만 해도 일본산 와규를 프리미엄 소고기로 인정하지만 호주산 와규도 당연히 와규로 인식한다.[20] 고급부위와 비선호부위를 묶어 판매하고, 일본 전통조리방법인 스키야키, 샤브샤브 등을 소개해 비선호부위 소비를 늘리는 전략 등이 나왔다.[21] 사실 시장규모로 본다면 역점당했다. 한국만해도 프리미엄 소고기 음식점을 위해 외식업계에서 일본산 와규를 직접 하려한 움직임은 여럿 있었지만 문제는 이게 쉽지가 않다는 것. 결국 판매망도 잘 구축되고 가격도 저렴하고 품질도 결코 뒤지지 않는 호주산 와규를 수입해서 와규로 판매하는 실정이다. 결국 와규란 브랜드와 소 품종의 원조는 일본인데 이걸 활용해서 호주도 돈을 버는 것에 일본에서 불만과 우려를 가진 것이다.[22] 실제로 호주산 와규와 일반적으로 지칭되는 '미야자키 현 A5 와규'의 마블링만 비교해 보더라도 호주산 와규는 마블링이 고기 전체에 고르게 퍼져있지 못하다. 육안으로만 보면 호주산 와규는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주로 먹는 프라임급과 비교해도 구분이 쉽지 않을정도이다. 이는 미국산 와규 역시 마찬가지인 실정으로 이러한 점 때문에 일본산 와규는 미국산, 호주산 와규보다 최대 3배 이상의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23] Beef Marbling Standard, 마블링 기준[24] 앞에서 언급한 다지마규를 포함한 일본 내 소의 품종[25] 일부 축산 업자와 납품업자들이 방사능에 오염된 지역에서 생산된 와규들을 저렴하게 가져와서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와규로 속여서 팔아먹은 것이다.[26] 이 때 미국은 세슘 등 추가적인 방사능 오염에 대한 검사를 요구하며 일시적으로 수입을 중단했다.[27] 매년 3,000마리의 소만 이 등급으로 분류될 정도로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