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05-26 12:11:57

앤드루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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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 제17대 대통령
앤드루 존슨
Andrew Johnson
파일:Andrew_Johnson_photo_portrait_head_and_shoulders,_c1870-1880-Edit1.jpg
<colbgcolor=#0d164a><colcolor=#ffc224> 출생 1808년 12월 29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롤리
사망 1875년 7월 31일 (향년 66세)
미국 테네시 주 엘리자베스톤
재임기간 제15대 테네시 주지사
1853년 10월 17일 ~ 1857년 11월 3일
제16대 부통령
1865년 3월 4일 ~ 1865년 4월 15일
제17대 대통령
1865년 4월 15일 ~ 1869년 3월 4일
서명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0px-Andrew_Johnson_Signature.svg.png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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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d164a><colcolor=#ffc224> 부모 아버지 제이콥 존슨
어머니 메리 맥도나 존슨
배우자 엘리자 맥카들 존슨
자녀 딸 마르타 존슨, 메리 존슨
아들 찰스 존슨, 로버트 존슨, 앤드루 존슨 2세
학력 해당사항 없음
종교 기독교 (초교파)[1]
신장 178cm
소속 정당

}}}}}}}}}
파일:external/cf3ea7e50fe961a5c6f9210a6a1cf25486e479d344392cb4943b35e87b9462ee.jpg
백악관 공식 초상화

1. 개요2.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3. 대통령으로서4. 탄핵5. 말년6. 평가

[clearfix]

1. 개요

미국의 제17대 대통령.

2.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1808년에 노스 캐롤라이나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독학으로 학문을 익히고 정계에 진출하여 연방 하원의원(1843~1853), 테네시 주지사[2], 연방 상원의원(테네시, 1857~1862) 등을 거치면서 점차 이름이 알려졌다. 1860년 링컨의 당선 이후 남부가 차례로 연방을 탈퇴했지만 그는 연방에 남아있었다. 왜 그랬는가 하면 존슨 본인은 노예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는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음에도 연방 탈퇴에 반대했다.[3] 이로 인해 북부에서는 찬양받았지만 남부에서는 배신자 소리를 듣게 되는데 그의 출신주인 노스 캐롤라이나와 정치적 기반이나 다름없던 테네시가 모두 연방에서 탈퇴한 걸 생각해보면... 결국 이것이 뒷날 탄핵당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1864년 대선에서 공화당은 국가연합당(National Union Party)으로 잠시 당명을 바꾸고 자신들에게 지지를 호소한다. 또한 링컨 대통령 또한 분열된 국가를 통합하겠다는 의지에서 민주당 소속이었던 그에게 손을 내민다. 그 당시 북부에는 민주당의 위세가 약한 편이었다. 왜 그런가 하면 대부분의 민주당원은 남부를 지지했기 때문. 이 사례는 아직까지도 대통령 후보와 부통령 후보의 정당이 다른 유일한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4]

어찌되었건 그는 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시작부터 영 좋지 않았다. 본인으로서도 어중간한 포지션에 있기도 하고 부담감도 있고 해서 긴장을 풀기 위해 부통령 취임식장에 위스키를 마시고 입장하게 된다. 결국 이로 인해 주정뱅이라는 비아냥을 듣게 된다. 그를 부통령으로 세운 링컨이 적극적으로 그를 감싸주었지만... 불과 1달만에 링컨이 포드 극장에서 저격당한다. 다음날 링컨은 서거하였고,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3. 대통령으로서

대통령으로 취임한 존슨은 생전 링컨의 정책 기조대로 남부 유화책[5]을 실시했는데, 존슨의 정책이 지나치게 유화적이라는 공화당 급진파와 대립하게된다. 게다가 해방 노예들에 대한 지원 법안을 폐지하고[6], 해방은 되었지만 여전히 차별받던 흑인들의 실상에 대해서는[7] 무관심했다. 심지어 KKK 같은 인종 차별주의를 근간에 둔 불법 폭력 집단의 준동을 방치하는 등 흑인들을 사실상 2등 국민 취급하였다.[8]

이로서 공화당에게는 '인종차별주의자, 인간 쓰레기, 당의 배신자'라 불렸고, 그렇다고 남부에게 지지를 받았냐면 그것 역시 아닌게 '남부의 배신자' 등의 소리를 들으며 남부측의 지지도 영 시원찮았다. 이렇게 양 당 모두에게 찍힌 존슨은 국방부장관 에드윈 스탠턴이 헌법은 '모든 권력은 의회에 있다'고 적혀있으니, 자신의 충성 대상은 대통령이 아닌 의회에 있다고 선언한 '스탠턴 사건'을 통해 자멸했다.

당시 공화당 급진파들이 주도했던 상하원에서 (존슨을 길들이기 위해) 1867년 "육군 통솔법"과 "공직 보장법"을 통과시킨 상황이었기 때문에 존슨 대통령이 장관 등을 해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전에 의회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러나 결국 상원이 해임동의안을 의결하는데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존슨의 의지로 스탠턴은 기어이 해임되었다. 결국 나중에 의결해줬지만서도 정확히는 탄핵이 부결된 후 스탠턴의 사임으로 해결을 봤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 이 사람 재임 중에 발생했다. 당시 조선의 국왕은 고종. 물론 민간 상선인 제너럴 셔먼호가 독단적으로 벌인 만행이기에 뒤늦게서야 이 소식을 접하고 두 번 선박을 파견해 사실 관계를 확인한다.

4. 탄핵

파일:Andrew_Johnson_impeachment_trial.jpg
연방 상원에서 열린 앤드루 존슨에 대한 탄핵 심판

결국 "지금 우리에게 도전하는 거지?"라면서 하원에서[9] 탄핵안을 제출하여 찬성 126표, 반대 47표로 가결된다. 이때 하원에서는 열이 머리 끝까지 오른 공화당 뿐 아니라 존슨을 고까워하던 민주당 의원들과 남부민주당 의원들마저 탄핵 절차를 밟는 것에 찬성하며 앤드루 존슨 탄핵 과정에 동참해버리고 만다(...)[10]

탄핵안이 나온 것은 예전에도 몇번 있었으나 탄핵소추가 가결되어 상원까지 올라간 것[11]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거기다 상원의원의 2/3를 넘게 차지한 공화당 대부분이 존슨의 탄핵에 동의하고 있던 상황. 누구처럼 사임하지 않은게 용할 지경 그러므로 사람들은 존슨이 당연히 탄핵될 거라 생각했는데... 결과는 3개의 탄핵 안건이 모두 1표차로 간신히 부결. 3건 모두 찬성 35표, 반대 19표였다.

이렇게 된 이유는 민주당 의원 9명이 그의 탄핵을 반대한 점도 있지만,[12] 무엇보다 소수(10명)의 공화당원들이 막판에 등돌렸던 것이 컸다. 그들도 존슨을 지지한 건 아니었지만, 의회가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 즉 삼권분립의 원칙 침해를 막기 위해 반대표를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60년 뒤인 1926년, 연방 대법원에서 이 공직 보장법이 위헌이라고 판단하면서("마이어스 vs U.S" 판결) 존슨이 주장한 공직 보장법의 위헌성이 뒤늦게 입증되었다.

당연히 재선은 도전조차 하지 못했고, 존슨의 후임으로는 남북전쟁의 영웅인 율리시스 S. 그랜트가 취임했다. 하지만 존슨은 그랜트를 대선 후보로 내세운 공화당 급진파가 탄핵 정국을 주도했기에 서로 관계가 험악했기에 취임식때 참석하지 않았다. 이후 152년 뒤 도널드 트럼프가 후임 대통령 취임식에 불참하기 전까지 마지막으로 후임 대통령의 취임식에 불참한 대통령이었다

5. 말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ndrew_Johnson,_1875.jpg
1875년 촬영

탄핵으로 인해 사실상 정치 생명이 끝장난 상태에서 백악관을 떠나게 되었지만, 명예 회복한답시고 계속 정계에 남았다. 결국 1875년 테네시 주 상원의원이 되었지만 얼마 안가 세상을 떠났다. 4월 당선되어 7월 사망. 그의 고집불통 같은 면모는 죽기 직전에도 잘 보여줬는데, 죽기 직전 존슨은 앉아 있다가 의자에서 굴러떨어져 쓰러졌다. 몸 오른쪽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고통을 호소했는데, 놀란 이 의사를 부르려고 하자 "의사 따위는 필요 없어! 혼자 설 수 있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망했다.하여간 한 많은 삶을 살다 간 대통령.

6. 평가

미국 역사학자들의 평가에서 모든 부문 최하위를 달리는 역대 최악의 능력을 가진 대통령으로 꼽힌다. 심지어 그 최악이라는 워렌 하딩, 프랭클린 피어스보다도 낮은 평가를 받는 경우도 많다. 특히 협상력, 연설력, 호소력을 포함하는 정치력에서 각종 지표가 최악을 달리는 역대 대통령이며 그의 전임이 아무리 뛰어난 링컨이었을지언정 그의 개인 능력 자체가 최악임을 보여준다. Siena College Research Institute에서 발표하는 순위에서는 2010년, 2018년 모두 전체 꼴찌를 했고, 제임스 뷰캐넌이 바로 앞을 차지했다. 참고로 그 다음이 도널드 트럼프였으며, 트럼프도 각종 정치력 지표에서 최악의 순위를 받았으나 운 항목과 위험 감수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존슨과 뷰캐넌보단 높은 순위에 위치했다.
"나는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거만한 귀족들이, 사실은 얼마나 형편없는가를 여러분 앞에 보여줄 것입니다. 노력하지 않고 돈을 버는 그들은 열심히 노동해서 자기 먹을 빵을 버는 사람들에 비하면 정말로 형편없는 사람들이지요."
ㅡ 대통령이 되기 이전 존슨 본인의 말
국가의 이익을 위해 그만큼 고통을 겪고 일해보지 않은 사람은, 어떤 면에서든지 앤드루 존슨을 평가할 수 없다.
ㅡ 그를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결정한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
"만약 내가 그랬듯이 여러분이 그의 정직한 모습과 진심 어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여러분은 결국 그를 믿게 될 것이다."
ㅡ 오하이오 주지사 제이콥 콕스

그러나...
"칼리굴라의 말(馬)[13]에 필적할 만한 술주정뱅이 짐승"
ㅡ 공화당 급진파 상원의원 찰스 섬너[14]
" 저런 무례한 촌사람이 대통령 옆에 서있다니! 하나님! 링컨을 축복하고 용서하소서!"
ㅡ 뉴욕 월드지, 부통령 취임 당시[15]
"그는 자신 출신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부에 관심이 별로 없었으며 칭찬과 비난에도 무감각했다."
ㅡ 남부 연합의 대통령이었던 제퍼슨 데이비스, 1865년 발언

나름 업적도 있었다. 알래스카 조약이 대표적. 물론 당시에는 슈어드(국무장관)의[16] 냉장고라 불리면서 의회로부터 조롱받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매입은 미국에게 신의 한 수가 되었다.[17] 그 외에도 먼로 독트린을 내세워 멕시코에서 나폴레옹 3세가 찝적거리던 프랑스 세력을 몰아낸 것도 업적. 내전 이후 아메리카에서 미국이 맹주라는 걸 확인시켜주는 조치를 보였다고 볼 수 있다.[18]

결과적으로 링컨의 후임자라는 불리한 위치에서 고생만 한 대통령이 되었지만 본인 또한 좋은 정치인은 결코 아니었다. 본인이 남부 편의를 많이 봐주고, 남부 연합 가담자가 연방에 충성을 인정한다면 사면해주려고 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와의 극한 충돌로 당시까지의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많은 거부권을 난사하며 공화당 급진파는 물론 중도파와도 갈등을 빚었다. 1866년 인권 법안에 끝까지 거부권을 행사했으나 의회는 2/3을 넘는 찬성표로 거부권을 눌러버렸고, 그의 비타협적인 태도는 공화당 중도파조차 존슨과 함께 일하는 것을 포기하게 할 정도였다. 1866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대승하며 존슨을 압박했지만 존슨은 끝까지 양보 없이 적대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남부를 제외하면 존슨의 지지세는 크지 않았고, 현역 대통령이면서도 경선에서 뉴욕 주지사 호레이쇼 시모어에게 패배하여 일찌감치 재선에 실패했다.

위의 언급에서 보듯 스스로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서 농장 소유주나 귀족화된 상류층들을 좋아하지 않았고, 계속 자신의 출신성분을 반영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많은 반감과 어그로를 샀지만, 그만큼 자신의 신념에 투철하고 도덕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렇듯 그의 올곧은 행보 때문에 양당에 모두 왕따당하는(...)[19] 불행한 임기를 보냈다는 동정어린 평가도 있지만(주로 남부를 중심으로), 그럼에도 링컨 이펙트 때문인지 대통령 평가 순위에서는 최하위권인 일이 많다. 특히 흑인민권운동이 자리잡은 이후로 남부 재건의 실패가 재조명되면서 존슨의 책임이 다시 불거지기 시작했으며 고의로 재건을 사보타주한 인종차별주의자, 남부 보수파에 힘을 실어 흑인 인권을 100년 뒤로 미룬 원흉이라는 평가도 21세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1] 본인 스스로 기독교인이란 정체성을 확고히 했으나, 특정 교파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했다. 감리회에 주로 출석했으나 가톨릭의 미사에도 자주 참석하는 초교파적 신앙을 추구했다.[2] 18대(1853~1857), 20대(1862~1865) 두차례나 지냈다. 특히 20대 주지사로서는 1861년 벌어진 남북전쟁의 전장에서 3년간 군정 주지사(military governor)를 맡았는데, 이 공로로 주지사에서 물러난 뒤 바로 부통령이 되고 또 뒤로 대통령이 된 것.[3] 때문에 남북전쟁 시기 남부 출신으로서 연방 상원에 남은 '유일한' 의원이 되었다.[4] 대통령과 부통령의 정당이 달랐던 사례는 2대 대통령 존 애덤스 때의 부통령 토마스 제퍼슨도 있다. 그러나 이 때는 부통령 후보가 따로 없이 대통령 선거에서 2등을 한 자가 부통령이 되었다.[5] 남부 주들의 빚 탕감 등[6] 토지 분배, 교육 등 여러 방면에서 지원하는 정책이었으나, 존슨은 이를 '백인에 대한 역차별'이라 주장하며 폐지했다.[7]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린치를 당하는 등 차별은 여전했다.[8] 존슨은 위에서 보았듯 스스로도 노예를 소유했던 인물이었고 노예제 찬성론자였으며 노예 지원 법안 폐지에 관한 발언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백인 우월주의 사상을 지닌 인물이었다.[9] 당시 하원은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었다. 거기다 해임당한 스탠턴도 공화당이었으니... 아니, 당시 앤드루 존슨을 제외한 모든 내각 구성원이 공화당이었으며 앤드루 존슨의 최측근이 임명되어야 하는 비서진들마저 공화당으로 채워져 있었다. 말그대로 공화당이 탄 거대한 방주에서 선장만 민주당인 셈. 민주당에서 앤드루 존슨을 배신자라고 불러대는게 괜한건 아니었던 것.[10] 하지만 최종 탄핵 소추 표결에서는 민주당 하원의원 45명은 모두 반대표를 던졌다.[11] 미국은 양원제 국가이므로 탄핵이 상원에서 끝난다. 탄핵소추는 하원, 탄핵심판은 상원이다.[12] 다만 이 민주당 상원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지게 된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다. 당장 탄핵소추할 때도 민주당/남부민주당 사람들마저 적극 탄핵 절차에 동참했다. 애초에 존슨에 대해 링컨에 영합한 배신자라며 대통령으로 인정하는 것조차 탐탁지 않아하던게 당시 민주당이었다.[13] 유명한 야사로 칼리굴라가 자신의 애마를 원로원 집정관(또는 의원)으로 임명했다는 소리가 있다. 다만 실제로 그런 적은 없다. 칼리굴라가 원로원을 조롱하기 위해 '저 노친네들 대신에 내 애마를 원로원 의원으로 임명해도 딱히 별일 없을듯.'이라고 농담했던 게 시간이 흐르면서 와전된 것이다.[14] 찰스 섬너는 그의 스피치를 듣고 빡친 사우스 캐롤라이나 하원의원 프레스턴 브룩스에게 지팡이로 공격당한 사건으로 유명하다. 말이 좋아 지팡이지 보스턴에 있는 올드 스테이트 하우스에 전시된 것을 보면 금박도 잘 되어있는 엄청난 흉기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섬너는 다행히 목숨은 부지했지만 3년 간 요양을 해야 했으며 죽을 때까지 신경쇠약에 시달렸다. 이 사건은 남과 북을 더욱더 양극화시켜 훗날...[15] 긴장을 풀기 위해 부통령 취임식장에 위스키를 마시고 참석했다. 이것을 악의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대한민국 국무총리가 청문회장에 소주 한병 마시고 입장했다고 가정해보자[16] 이 슈어드는 링컨처럼 남부의 몰락에 기여했는데, 링컨의 노예 해방 선언을 권한 사람이 슈어드였다. 때문인지 링컨이 암살당하던 날 그는 병중이었는데, 링컨의 암살범 부스의 공범인 루이스 파월이 그를 암살하려고 했지만 링컨이 암살당한 것과는 달리 슈어드는 끝내 무사했다. 그야말로 역사를 바꿀 뻔 했다 소련: 아까비![17] 만약 알래스카가 현재에도 러시아 땅으로 남아 있었다면 미국은 근거리에 미사일이 배치되어 전략적으로 상당히 불리했을 것이다.[18] 당시 미국은 남북전쟁이 막 끝난 상태로 나라 자체가 전쟁의 피해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을 텐데도 이 정도다. 반면에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강대국 중 하나였다. 당시엔 미국이 프랑스보다 국력에서 밀린 건 물론 전쟁 여파로 더 격차가 차이가 났을텐데도 이 정도다.[19] 비슷한 사례가 타일러인데 이 사람도 마찬가지로 임기중 양당에게 왕따당했다(...). 그런데 타일러도 앤드루 존슨처럼 여당과 마찰을 빚던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