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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민족주의 단체에서 쓰이는 서아르메니아의 깃발 | 아르메니아 혁명연맹이 주장하는 대아르메니아의 지도. 서부의 큰 땅이 서아르메니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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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현 튀르키예의 동부 지역, 아르메니아 고원의 북서쪽에 위치한 지명이다. 과거부터 아르메니아인이 주로 살았으며 쿠르드인과 흑해 그리스인도 많이 살았으나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으로 현재는 60,000명의 아르메니아계 중동인만이 남아있고 대다수가 죽거나 해외로 도피하였다. 주로 아르메니아의 민족주의자들에게서 자주 쓰이는 명칭으로 아직까지도 일부 분리주의자들이 본국과의 통일을 주장하고 있다.
아르메니아 본토와의 차이가 꽤 있는데, 바로 언어가 동부와 서부로 갈라진다는 것이다. 서부 아르메니아어는 대학살의 여파로 서아르메니아보다는 미국, 이란, 러시아, 프랑스 등의 아르메니아인 디아스포라가 큰 지역에서 많이 쓰인다.
2. 역사
387년 경 아르메니아 왕국이 동로마 제국과 사산 왕조 페르시아에 의해 분할되며 현재의 서아르메니아와 동아르메니아가 구분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오스만 제국과 사파비 제국의 찰디란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이 승리하면서 서아르메니아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 하에 들어섰으며 이 이후로는 서아르메니아를 오스만 아르메니아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19세기 러시아 제국이 중앙아시아로 남하하면서 카자르 왕조한테 동아르메니아 전체를 받아가고 오스만 제국한테도 카르스를 비롯한 서아르메니아를 합병하며 어찌저찌 동서 아르메니아는 통일되었다. 이때까지만 하도 서아르메니아에선 아르메니아인이 다수를 차지하였다.
1915년 반 방어전을 비롯한 제1차 세계 대전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몇몇 아르메니아인들이 러시아를 도와 이에 오스만 제국은 보복으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시행하게 된다. 이로 인해 발생한 사망자는 최대 150만명으로 추정되며 서아르메니아 또한 제노사이드에 엄청난 피해를 입어 전쟁 이후에는 남아있는 아르메니아인이 튀르키예인, 쿠르드족은 물론 일부 도시에선 아제르바이잔인보다도 더 적은 수를 보였다. 이후 세브르 조약이 체결되며 우드로 윌슨의 강력한 지지로 아르메니아 제1공화국이 이 서아르메니아 영토를 재수복 할 기회가 있었으나 튀르키예 독립 전쟁에서의 계속되는 참패와 소련군이 캅카스를 차례대로 점령하며 오히려 본토조차 지키지 못하고 서아르메니아에선 아르메니아인이 전부 추방당하게 된다. 로잔 조약 이후 소련과 튀르키예는 서로 친밀해지며 서아르메니아와 동아르메니아를 나누는 모스크바 조약을 채결하였다. 결국 아르메니아는 또다시 동서로 분할되게 된다. 하지만 이후 튀르키예가 친서방화 되며 소련과의 관계가 나빠지고 소련은 서아르메니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시작하였다.
이후 1991년 아르메니아가 독립하고 제1차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에서 승전하면서 튀르키예는 형제국 아제르바이잔을 도와 서아르메니아 아르메니아 국경을 봉쇄하였다. 현대의 아르메니아 또한 서아르메니아와의 통일을 주장하고 있으나 튀르키예와의 국력 차가 매우 크고 이미 서아르메니아 인구는 튀르키예인이나 쿠르드인이 많이 살기에 통일 가능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아르메니아가 패하고 이후로도 2022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국경분쟁에서도 아르메니아가 두들겨맞고 2023년 아르차흐 분쟁까지 또 패하면서 결국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모조리 다시 아제르바이잔에게 넘겨버린 상황이 되어버렸기에 더더욱 서아르메니아 부활은 어림도 없게되어 버렸다.
이젠 튀르키예 땅이 되어버린 서아르메니아에는 아르메니아인의 성산 아라라트산과 아니 고고학 유적지, 반 등의 아르메니아의 역사적 유물들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