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2 01:03:48

베루스의 파르티아 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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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만티아 전쟁 파일:external/b66a81d7e3c5440cfef450e3309a2b4b425f1dcd788e510bd84b747e2e2573be.png 아레바키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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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0년~84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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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3년~92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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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8년~10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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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체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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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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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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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5년~12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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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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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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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루스의 파르티아 원정
영어: Parthian War of Lucius Verus
시기 161년 ~ 166년
장소 아르메니아, 메소포타미아, 메디아
원인 파르티아 제국의 아르메니아, 카파도키아, 시리아 침공
교전 세력 파일:attachment/mon_256.png 로마 제국
아르메니아 왕국
파일:attachment/mon_256_9.png 파르티아
파일:1920px-Standard_of_the_Arshakuni_Arsacid_dynasty_svg.jpg 아르샤쿠니 왕조
지휘관 파일:attachment/mon_256.png 루키우스 베루스
파일:attachment/mon_256.png 아비디우스 카시우스
파일:attachment/mon_256.png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프론토
파일:attachment/mon_256.png 마르쿠스 스타티우스 프리스쿠스
파일:attachment/mon_256.png 푸블리우스 마르티우스 베루스
파일:attachment/mon_256.png 마르쿠스 세다티우스 세베리아누스†
파일:attachment/mon_256.png 루키우스 아티디우스 코르넬리아누스
소헤모스
파일:attachment/mon_256_9.png 볼로가세스 4세
파일:attachment/mon_256_9.png 호스로에스
파일:1920px-Standard_of_the_Arshakuni_Arsacid_dynasty_svg.jpg 파코로스
병력 9~12개 군단불명
피해 불명불명
결과 로마 제국의 승리
1. 개요2. 배경3. 전개
3.1. 루키우스 베루스의 여정3.2. 원정군 구성3.3. 로마군의 반격
4. 이후

[clearfix]

1. 개요



서기 161~166년, 아르사케스 왕조 파르티아 제국의 아르메니아, 카파도키아, 시리아 침공에 대응한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로마 제국의 공세였다. 로마군이 아르메니아, 메소포타미아, 메디아 일대를 공략하고 파르티아의 수도인 크테시폰을 함락한 후 귀환하면서 전쟁이 종결되었다.

2. 배경

113~117년에 있었던 트라야누스의 파르티아 원정 이래, 로마 제국파르티아 제국은 별다른 무력 충돌을 벌이지 않았다. 로마 제국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수성 위주 정책에 따라 대규모 원정을 다시 감행할 의사가 없었으며, 파르티아는 트라야누스 황제의 침략으로 인한 막대한 손실과 샤한샤위를 둘러싼 내전으로 인해 로마 제국을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던 140년에서 144년 사이에 아르메니아 왕국 아르샤쿠니 왕조의 샤(왕) 볼로가세스 1세가 사망했다. 로마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파르티아가 내전에 시달리느라 아르메니아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못하는 틈을 타, 144년 소헤모스를 아르메니아의 새 군주로 선임했다. 소헤모스는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였던 클레오파트라 7세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아들인 알렉산드로스 헬리오스와 약혼했던 메디아 공주 이오타파의 후손으로, 콤마게네 왕국과 시리아 에메사 왕조의 혈통을 물려받았으며, 아르메니아의 왕이 되기 전에는 원로원 의원으로 일했다.

151년, 볼로가세스 4세가 오랜 내전을 종식시키고 파르티아의 명실상부한 샤한샤로 군림했다. 그는 로마 황제가 아르메니아의 왕위에 비 아르샤쿠니 왕실의 인사를 선임한 것에 반감을 품었고, 로마가 아르메니아를 손아귀에 넣는다면 자국의 국방이 다시 위태로워진다고 여겼다. 볼로가세스 4세는 장차 아르메니아를 탈환하고 지난날 파르티아에 막심한 피해를 안긴 로마 제국에 복수할 때를 노렸다. 그러던 161년 3월,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가 사망하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루키우스 베루스가 공동 황제로 등극했다. 볼로가세스 4세는 정무 경험이 부족한 두 젊은 황제가 막 집권해서 정신 없는 틈을 타 아르메니아 원정을 감행하기로 마음먹었다.

161년, 샤한샤 볼로가세스 4세는 대군을 일으켜 아르메니아로 쳐들어가 소헤모스를 몰아내고, 아들인 파코로스를 아르메니아의 새 군주로 선임했다. 이와 동시에 카파도키아에 별동대를 보내 현지의 로마군을 타격하도록 했다. 카파도키아 총독이자 그곳에 주둔한 로마군 사령관 마르쿠스 세다티우스 세베리아누스는 켈트족 출신으로, 미신을 믿는 경향이 강했다. 그는 글라이콘이라는 뱀을 데리고 다녔던 예언자 아보누티코스의 알렉산데르로부터 파르티아인들을 쉽게 물리쳐 영광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즉시 1개 군단을 이끌며 파르티아군에 맞섰다. 그러나 카파도키아 국경 지대에 있는 엘레게이아 마을에서 호스로에스가 이끄는 파르티아군에게 참패를 당했고, 그는 전 병력을 잃자 책임을 통감하며 자결했다. 세베리아누스가 이끌고 간 군단의 명칭은 명시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는데, 현대의 일부 학자들은 9군단 히스파나 또는 22군단 데오타리아나 중 하나일 것으로 추정한다.

세베리아누스를 가볍게 격파한 파르티아군은 여세를 몰아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시리아로 진격했다. 156년 이래로 시리아를 다스리던 루키우스 아티디우스 코르넬리아누스 총독이 이에 맞서 싸웠으나 패배했다. 당시 유대를 포함한 시리아 속주에는 6개 군단이 있었는데, 그 중 3개 군단은 팔레스타인 일대에 주둔했고, 나머지 3개 군단이 시리아 총독의 직할 병력이었다. 코르넬리아누스는 세베리아누스와는 달리 살아남은듯 하며, 군단을 완전히 잃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중에 로마 제국이 서방에서 수많은 병력을 끌고 와야 했던 것을 보면, 시리아 군단들의 피해가 카파도키아에서 벌어진 것보다 훨씬 심각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이 참패로 인해 시리아 속주민들이 동요하여 반란의 조짐이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로마의 속국이었던 오스로에네 왕국 역시 파르티아에 굴복하여 만누스가 폐위되고 '웨엘' 왕이 옹립되었다. 결국 로마 제국의 두 황제들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한 후 파르티아를 향한 보복 원정을 감행하기로 결의했다.

3. 전개

3.1. 루키우스 베루스의 여정

세베리아누스와 코르넬리아누스의 패배 소식은 162년 초에야 로마에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161년의 주화에 두 공동 황제의 즉위를 축하하는 그림이 새겨져 있지만 전쟁을 묘사하는 그림은 그려져 있지 않은 데서 확인할 수 있다. 반면에 162년에 주조된 주화에서는 말을 함께 탄 두 황제의 이미지가 그려져 있고, 군사 원정의 시작을 알리는 문구인
PROFECTIO AVG(usti)
가 새겨졌다. 로마 정부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루키우스 베루스 중 한 사람을 필두로 대규모 원정을 벌이고, 남은 한 명은 로마에 남아 내정을 관리하기로 했다. 이때 원정을 이끌게 된 황제가 바로 루키우스 베루스였다.

루키우스 베루스에게 적대적인 시각을 견지한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는 베루스가 선택된 이유는 방탕한 나날을 보내는 동료 황제를 보다못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이번 원정을 통해 황제의 책무를 자각하길 희망했기 때문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반면에, 디오 카시우스는 몸이 약한 형 아우렐리우스보다는 젊고 건강하며 활기가 넘치는 루키우스 베루스가 대 파르티아 전쟁을 이끄는 데 더 적합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일부 학자들은 철학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군대를 이끄는 것에는 관심을 덜 두었던 아우렐리우스가 국방 문제는 동생 베루스에게 맡기고 자신은 내정에 집중한다는 일종의 '직무 분리'를 시도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거의 위작 취급을 받고 있는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에 따르면, 베루스는 형과 함께 캄파니아의 대도시 카푸아까지 이동했고, 형이 로마로 돌아간 뒤에는 브룬디시움으로 이동하려고 했으나 도중에 병에 걸렸다. 로마로 돌아가던 아우렐리우스는 곧장 동생에게 달려와서 3일 동안 정성껏 간호했고, 베루스는 완쾌한 뒤 여정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 병의 원인은 베루스의 방탕한 생활 때문이었다고 한다. 여러 학자들은 이때 걸린 질병이 169년에 베루스의 삶을 끝내게 될 질병과 연관성이 있다고 추정하지만, 이를 입증할 명백한 증거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베루스가 건강한 체질이어서 만성 질환을 앓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베루스는 병마를 떨치고 일어난 뒤 브룬디시움으로 이동한 후 배를 타고 그리스의 코린트로 이동했다. 일전에 가정교사를 맡았던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이곳에서 황제를 접대했다. 베루스는 뒤이어 아테네에 들러 여러 연극을 감상했고, 바다에 접한 아시아의 모든 도시와 팜필리아, 킬리키아 도시들에 들렀다. 162년 키오스에 방문한 사실이 비문을 통해 확인되며, 에리트라이, 파셀리스, 아탈레이아, 페르게, 올바 등 여러 도시에 그의 방문을 기념하는 연도 미상의 비문이 세워졌다. 시리아 비문에는 베루스가 162년 말에 그곳에 도착했고 163년에 우르브에 당도했다는 사실이 기재되었다. 즉, 그는 162년 초부터 같은 해 말까지 몇 달간 여정을 떠난 것이다.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는 적대적인 관점에서 베루스의 여정이 너무도 느렸으며, 이는 그가 사냥, 음악, 그리고 다른 쾌락에 탐닉하느라 나태하게 굴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다른 문헌 기록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베루스를 옹호하는 학자들은 동방 군단의 손실을 징병을 통해 메우고, 서방에서 소집한 수많은 군단이 도착해 원정 준비를 마무리하려면 163년 봄은 되어야 하기 때문에, 베루스 일행이 무작정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당시 베루스와 함께 온 인사들 중에는 근위대장 티투스 푸리우스 빅토리누스, 원로원 의원 마르쿠스 폰티우스 나르키우스 사비누스, 마르쿠스 라일리아누스 바수스 등 군사 경험이 많은 장성들이 있었다. 바수스는 하류 모이시아 총독이었고, 라일리아누스는 153년 시리아의 총독을 역임했기에 동방 전략에 관한 직접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나르키우스 역시 여러 곳에서 총독을 맡은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 사람은 베루스에게 좋지 않은 영향력을 끼친 것으로 종종 언급되는 게미누스, 아가콜레이토스, 코에데스, 에클렉투스 등의 해방노예들을 함께 데려왔다.

3.2. 원정군 구성

서기 161년 세베리아누스가 엘레게이아에서 전사한 후, 카파도키아 방면군 지휘는 브리타니아 속주 총독을 맡았던 마르쿠스 스타티우스 프리스쿠스가 맡았다. 그는 브리타니아 섬에서 소아시아의 카파도키아까지 먼 거리를 단숨에 달려와서 멜리테네에 기반을 둔 제12 풀미나타 군단과 사탈라에 주둔한 제15 아폴리나리스 군단,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한 개 군단 등 총 3개 군단을 지휘했다.[1] 한편 시리아에서는 코르넬리아누스가 162년까지 파르티아군에 저항하다가 베루스 황제의 시리아 입성 후 안니우스 리보로 교체되었다. 그러나 안니우스 리보는 시리아에 도착한 직후 병사했고, 그나이우스 율리우스 베루스가 신임 시리아 총독으로 부임했다.

시리아에 주둔한 3개 군단은 각각 메엘데리의 3군단 갈리카, 사모사타의 16군단 플라비아 파르마, 제우그마의 3군단 스키타카로 구성되었다. 이중 3군단 갈리카의 지휘관은 아비디우스 카시우스였다. 또한 예루살렘의 10군단 프레텐시스, 카파르코티아의 6군단 페라타, 보스트라의 3군단 키레나이카도 있었지만, 이들이 대 파르티아 원정에 참여했는지는 불확실하다.

로마 제국은 파르티아의 공세로 인해 동방 군단의 손실이 큰 만큼 라인 강과 도나우 강 전선에서 차출한 군단들을 동방으로 파견했다. 비문에 따르면, 적어도 3개 군단이 동방으로 파견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푸블리우스 율리우스 게미니우스 마르키아누스가 손상된 동방 군단의 전력을 회복하기 위해 라인 강과 도나우 강에 주둔한 다른 군단들로부터 벡실라티온[2]을 차출하고 이들을 이끄는 임무를 맡았다.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프론토의 서신에는 라일리아누스와 베루스가 시리아에 도착한 뒤 안티오키아에서 신병들을 모집한 후 훈련을 철저히 실시했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3.3. 로마군의 반격

163년 시리아에서 발행된 주화에는
ADLOCVT
라는 문구와 함께 베루스 황제가 한 무리의 군인들에게 연설하는 이미지가 새겨졌다. 이로 볼 때, 전쟁 준비는 162/163년 겨울에 착실하게 이뤄져서 163년 봄에 모든 준비가 완료된 것으로 짐작된다. 문헌 기록에 따르면, 베루스는 파르티아와의 전쟁 중에 안티오키아에 머물렀고, 여름에는 다프네 교외, 겨울에는 라도이케아의 해안 별장에 머물렀으며, 나중에는 루킬라와의 신혼 생활을 위해 에페소스를 여행했다.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는 이 점을 지적하며, 베루스가 전쟁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쾌락만 추구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프론토와 디오 카시우스는 베루스가 후방에 남아서 원정군에게 필요한 모든 보급품을 착실하게 모으고 행정을 주관했다고 밝혔다.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는 베루스가 아비디우스 카시우스, 마르쿠스 스타티우스 프리스쿠스 등의 장수들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후방에 남은 점을 문제삼으며, 트라야누스라면 친히 원정군을 이끌었을 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대 학계는 로마 제국의 첫 2세기 동안에는 황제가 군대를 친히 이끌기보다는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게 당연시되었으며, 트라야누스는 예외였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아우구스투스게르마니아 전쟁 내내 로마에 머물렀고, 클라우디우스 1세브리타니아 침공 때 브리타니아에 며칠 동안 잠깐 들렀을 뿐 대부분의 원정은 장군들에게 일임했으며, 네로파르티아와의 전쟁코르불로에게 위임하고 역시 로마에 머물렀다. 베루스는 군사 경험이 부족했고, 전장에 있다가는 다른 곳에서 일어날 지도 모를 돌발 사태에 효과적인 대응을 하기 힘들었으니 후방에 있는 편이 나았다.

163년, 카파도키아 방면 로마군은 프리스쿠스의 지휘하에 아르메니아로 진군하여 수도 아르탁사타를 성공적으로 공략하고 소헤모스를 복위시켰으며, 샤한샤 볼로가세스 4세가 옹립한 아르메니아 왕 파코로스를 체포해 시리아로 이송시켰다. 164년에 베루스 황제가 로리카와 팔루멘툼을 입은 채 아르메니아의 새로운 왕에게 왕관을 씌우는 모습이 새겨진 동전이 주조되었다. 이리하여 아르메니아 왕국을 로마 제국의 속국으로 돌려놓은 뒤, 로마군은 어느 시점에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프론토의 지휘하에 파르티아에 귀속되었던 오스로에네 왕국을 공격하여 에데사를 공략하고, 파르티아인들에게 축출된 도시의 지도자인 만누스를 복위시켰다. 164년에 주조된 에데사 동전에는 로마인들이 도시를 탈환한 것을 암시하는 이미지가 새겨져있다. 프로코피우스에 따르면, 에데사의 시민들은 파르티아군을 몰아내고 로마 제국에 기꺼이 복종했다고 한다. 프로코피우스의 서술에는 시기가 명시되지 않아서 이때가 언제인지를 확언할 수 없지만, 역사학자들은 대체로 베루스 황제의 파르티아 원정 시기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아르메니아 왕국과 오스로에네 왕국을 로마 제국에 다시 귀속시킨 뒤, 로마군은 165년부터 메소포타미아로 쳐들어갔다. 선봉은 아비디우스 카시우스가 이끄는 제3 갈리카 군단이 맡았고, 본군은 시리아 총독 마르티우스 베루스가 이끌었다. 로마군은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휩쓴 뒤 적군이 집결한 니시비스를 총공격해 단숨에 함락시켰다. 파르티아군은 티그리스 강으로 흩어졌고, 호스로에스 장군은 강을 따라 헤엄쳐 내려가 동굴에 숨었다. 아비디우스 카시우스는 유프라테스 강 하류로 이동한 뒤 두라-에우로포스에서 파르티아군과 대규모 전투를 벌인 끝에 대승을 거두었다.

카시우스는 여세를 몰아 티그리스 강의 오른쪽 강둑에 위치한 셀레우키아와 왼쪽 둑에 있는 크테시폰으로 진격해 함락시켰다. 셀레우키아 시민들 중 다수는 그리스계로, 로마군을 위해 성문을 기꺼이 개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철저히 약탈되었으며, 많은 시민이 노예로 팔려갔다. 그 후 셀레우키아는 다시는 옛날의 영화를 되찾지 못하고 쇠락하게 되었다. 또한 수도 크테시폰 역시 철저하게 약탈당했고 왕궁은 불살라졌다. 로마군은 아폴로 코메오스 동상을 신전에서 훔쳐 로마로 가져와 팔라티노 언덕의 아폴로 신전에 세웠다.

그후 로마군은 보급품 부족과 페스트의 전염으로 인해 더 이상 원정을 진행하지 않고 시리아로 돌아갔으며, 카시우스 휘하의 법무관 유니우스 막시무스가 수도 로마로 돌아와서 승리의 소식을 알렸다. 막시무스는 좋은 소식을 전한 것에 대해 후한 보상을 받고 재무관으로 승진했다. 루키우스 베루스 황제는 로마로 돌아간 뒤 파트리쿠스 막시무스라는 칭호를 받았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역시 나중에 그 칭호를 받았다. 166년에 두 황제가 메디쿠스라는 칭호를 받은 사실이 동전을 통해 확인되었는데, 일부 학자들은 아비디우스 카시우스가 그 해에 메디아를 재침공하여 파르티아 제국에 타격을 입혔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4. 이후

원정을 마치고 귀환한 루키우스 베루스는 개선식을 거행했다. 개선식에는 두 황제와 아내, 자식들이 함께 참여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두 쌍둥이 아들인 콤모두스와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는 이 행사에서 카이사르(부황제)의 지위에 올랐다. 원정에서 혁혁한 공적을 세운 아비디우스 카시우스와 마르티우스 베루스는 166년 집정관을 역임했다. 그후 카시우스는 시리아 총독으로 부임했고, 마르티우스 베루스는 카파도키아 총독이 되었다. 그러나 로마군이 철수하는 과정에서 페스트가 돌면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재위 기간 내내 수많은 인명을 죽음으로 내몰게 되었고, 이 참사는 훗날 안토니누스 역병이라는 명칭으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파르티아는 이 전쟁에서 막심한 피해를 입었기에 14년간 조용히 지냈다. 그러다가 180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사망한 직후 재차 아르메니아로 쳐들어가 소헤모스를 폐위하고 볼로가세스 4세의 아들인 볼로가세스 5세[3]를 왕위에 앉혔다. 로마 제국은 게르만족과 오랜 기간 전쟁(마르코만니 전쟁)을 치르느라 지칠대로 지쳤고, 콤모두스가 또다시 전쟁을 벌이길 원하지 않았기에 파르티아의 이같은 행위를 용인했다. 다만 파르티아는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대부분을 잃었고, 하트라 시가 파르티아 제국의 서쪽 국경이 되었다.

193년 로마에서 내전이 발발하자, 파르티아의 샤한샤 볼로가세스 5세는 동방에서 황제를 칭한 페스켄니우스 니게르를 지지했다. 그러나 내전은 세베루스 왕조의 창건자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승리로 끝났고, 니게르는 파르티아로 망명하려 했다가 붙잡혀 처형되었다. 이후 세베루스는 197~198년 파르티아를 응징하기 위한 대규모 원정을 감행해 수도 크테시폰을 또다시 공략하지만 파르티아인들의 거센 저항과 보급품 부족 문제에 직면하자 철수했다. 그는 아쉬운 마음에 과거 트라야누스 황제가 공략하려 했지만 실패했던 하트라를 공격해봤지만 역시 실패했다.

216년, 세베루스의 아들인 카라칼라가 파르티아 정복을 달성하고자 동방 원정을 떠났지만 도중에 마크리누스의 사주를 받은 근위병들에 의해 암살당했다.(217. 4) 이후 아르타바노스 4세가 이끄는 파르티아군이 로마군에 반격하면서 217년 여름 니시비스 전투가 발발했다.


[1] 신임 브리타니아 총독으로는 고지 게르마니아 총독이었던 칼푸르니우스 아그리콜라가 맡았고, 신임 고지 게르마니아 총독으로는 아우피디우스 빅토리누스가 임명되었다.[2] 기동 분견대[3] 아르메니아 왕으로는 볼로가세스 2세. 180~191 재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