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28 17:21:52

옥타비아누스의 일리리아 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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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만티아 전쟁 파일:external/b66a81d7e3c5440cfef450e3309a2b4b425f1dcd788e510bd84b747e2e2573be.png 아레바키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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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3.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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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원전 35년 ~ 기원전 33년, 옥타비아누스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가 이끄는 로마군이 일리리아를 평정하고 일리리쿰 속주를 복원한 전쟁.

2. 배경

기원전 168년 일리리아 왕국의 군주 겐티오스가 루키우스 아니키우스 갈루스가 이끄는 로마군에게 패배하여 생포되면서 왕국이 무너진 후, 로마 공화국은 일리리아 전역을 복속시키고 일리리쿰 속주를 창설했다. 그러나 일리리아의 수많은 부족[1]은 로마에 순순히 복종하지 않았고, 기회가 올 때마다 반란을 일으켰다. 여기에 다키아 왕국부레비스타 왕이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강대한 군사력을 갖춘 뒤 일리리아를 종종 습격해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기원전 59년 집정관을 역임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듬해인 기원전 58년에 갈리아 나르보넨시스, 갈리아 키살피나와 더불어 일리리쿰 속주의 총독이 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갈리아 2개 속주와 더불어 일리리쿰까지 맡은 것에 대해 갈리아 전쟁을 종결지은 후 다키아 왕국까지 정벌함으로써 군사적 위업을 한층 더 세우려는 의도였으리라고 추정한다. 실제로 카이사르는 기원전 57년 벨기카(지금의 벨기에) 일대를 평정한 뒤 갈리아가 평온해졌다고 판단한 후 일리리쿰으로 가서 겨울을 보냈는데, 이는 이듬해에 다키아로 진출하려는 의도였을 수 있다. 그러나 갈리아에서 다시 전쟁이 터지자 어쩔 수 없이 갈리아로 돌아가야 했다.

기원전 54년 갈리아 키살피나에서 겨울 숙영 중이던 카이사르는 일리리아 부족인 피루스테족이 인근 부족들을 급습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는 일리리쿰으로 가서 일리리아인들을 징집해 피루스테족을 징벌하려고 했다. 이에 피루스테 족장이 절대로 의도한 일이 아니었다며 보상을 제안하자, 카이사르는 인질을 보내면 믿어주겠지만 그러지 않으면 전쟁 뿐이라고 대답했다. 피루스테족은 즉시 인질을 보냈고, 카이사르는 중재자들을 임명하여 다른 종족들이 입은 피해를 평가하고 처벌을 내리게 한 뒤 갈리아로 돌아갔다.

기원전 49년 카이사르의 내전이 발발한 후, 일리리아 해안 도시에 사는 주민들은 카이사르의 편을 들었지만 내륙 부족들은 대체로 폼페이우스의 편에 섰다. 기원전 48/47년 겨울, 카이사르의 명령을 받들어 15개 보병 대대와 3,000명의 기병을 이끌고 일리리아 속주 총독 퀸투스 코르니피키우스를 도우러 가던 아울루스 가비니우스가 도중에 일리리아 부족 중 하나인 달마티아족의 급습으로 큰 손실을 입고 살로나로 패주했다가 얼마 후 사망했다. 이후 폼페이우스파인 마르쿠스 옥타비우스는 일리리아 부족들의 지원에 힘입어 코르니피키우스 총독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상황이 이처럼 악화되고 있었지만,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를 추격하고자 이집트로 향했기에 코르니피키우스를 당장 도와줄 수 없었다. 이에 그는 마지막 희망으로 이탈리아 남부의 항구 도시인 브룬디시움에 주둔하던 푸블리우스 바티니우스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바티니우스는 즉시 브룬디시움에 남겨진 병사들을 민간 상선에 태워서 출진했고, 뒤이은 타우리스 해전에서 마르쿠스 옥타비우스를 격파해 코르니피키우스를 구원했다.

기원전 45년, 내전을 평정하고 종신 독재관에 선임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일리리아를 가로질러 파르티아로 진군할 준비에 착수했다. 일리리아인들은 아울루스 가비니우스를 공격했던 일로 인해 자신들이 징벌당할 것을 우려하여 로마에 사절을 보내 카이사르에게 동맹을 요청했다. 카이사르는 그들이 한 일 때문에 친구로 둘 수는 없지만 조공을 바치고 인질을 넘겨주면 용서하겠다고 답했다. 그들은 동의했고, 푸블리우스 바티니우스가 3개 군단과 대규모 기병 부대와 함께 일리리아로 보내져서 조공을 수급했다.

그런데 기원전 44년 3월 15일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 사건이 벌어진 후 로마 정계가 대혼란에 빠지자, 일리리아인들은 태도를 싹 바꿔 바티니우스를 공격해 5개 코호트를 섬멸시켰다. 바티니우스는 에피담노스로 후퇴하여 농성을 벌였다. 원로원은 그의 남은 군대와 속주를 카이사르의 암살자 중 한 명인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에게 넘기기로 했다. 브루투스가 와서 군대를 넘기라고 요구하자, 바티니우스는 아무런 저항없이 사임했다. 그 후 로마인들은 '해방자'를 자처한 카이사르 암살자들과 카이사르의 복수를 천명한 제2차 삼두정치파간의 대결에 관심이 쏠린 터라 일리리아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고, 일리리아인들은 이때를 틈타 로마의 통제에서 벗어나 이탈리아 북동부를 급습하며, 아드리아 해에서 해적질을 일삼았다.

기원전 36년 시칠리아 내전에서 승리하면서 이탈리아에서의 입지를 굳힌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의 통제에서 벗어나 주변 지역을 약탈하는 일리리아인들을 정벌하겠다고 선포했다. 일찍이 카이사르의 두 부하(아울루스 가비니우스, 푸블리우스 바티니우스)가 일리리아 부족들의 급습으로 패배하고 군기를 잃어버린 적이 있었기에, 이를 복수하여 로마 공화국의 위신을 되살리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여기에 이아피데스족이 아퀼레이아를 포위 공격하고 테르게스토스를 약탈해, 옥타비아누스의 원정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이리하여 옥타비아누스는 친구인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와 함께 일리리아 원정을 단행했다.

3. 전개

옥타비아누스의 일리리아 원정에 대한 기록은 매우 부족해서 원정의 진행 과정을 확실히 파악하기 어렵다. 단지 아피아노스디오 카시우스에 의해 몇 가지 일화만이 전할 뿐이다. 평야가 지극히 적고 지세가 험준한 산악 지형이 주류인 일리리아에 대한 옥타비아누스 휘하 로마 육군의 원정은 산악 행군 때 부족들의 매복 공격에 맞서는 것과 주요 부족 중심지들의 포위 공격으로 진행되었다. 이와 동시에, 아그리파가 이끄는 로마 해군은 아드리아 해에 암약하는 해적들을 소탕하고, 육군에게 보급 물자를 운송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아그리파가 이끄는 해군은 목표를 순조롭게 달성했다. 그들은 세니아로 항해해 이아포데스족의 해안 영토를 공략했고, 코르기라 섬과 멜리타 섬의 해적들을 순식간에 소탕해 아드리아 해의 안전을 확보했다. 반면 옥타비아누스가 이끄는 육군의 원정은 순탄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모엔티니족과 아벤디타이족 등 군소 부족들은 즉시 항복했지만, 여러 부족은 끈질기게 저항했다. 특히 아퀼레이아를 습격하여 원정을 촉발시킨 이아피데스족의 저항이 거셌다. 로마군이 그들의 수도인 메툴룸을 포위하자, 수비대는 투석기를 성벽 위에 설치한 뒤 로마군을 향해 바위를 퍼부었다. 로마 군단병들은 경사로를 세운 뒤 경사로에서 성벽에 도달하는 다리를 4개 건설했지만, 그 중 3개는 이아피데스족 수비대에 의해 파괴되거나 공격하던 로마군 병사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병사들이 거듭된 공격 실패에 전의를 잃고 움츠리는 모습을 보이자, 높은 탑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던 옥타비아누스는 병사들에게 달려가 당장 공격하라고 독촉했다. 병사들이 응하지 않자, 그는 가장 가까운 병사의 방패를 잡고 유일하게 남은 다리로 달려갔고, 그 뒤를 아그리파와 다른 참모들이 뒤따라갔다. 그 광경을 본 병사들이 지휘관들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이 다리 역시 군단병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으며, 다리 위에 있었던 장병들은 경사로와 이아피데스족의 요새 사이로 떨어졌다. 몇몇 병사들은 죽었고, 옥타비아누스 본인도 오른쪽 다리와 양쪽 팔에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옥타비아누스는 안전한 곳으로 후송된 뒤 더 많은 다리를 건설하라고 명령했다.

로마군의 끈질긴 공격에 기가 죽은 메툴룸 수비대는 다음날 50명의 인질을 바치고 가장 높은 언덕을 로마인에게 할당할 테니 평화협정을 맺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모든 무기를 내놓으라는 옥타비아누스의 명령이 부당하다고 여긴 그들은 아내와 아이들을 공공 건물에 가둔 뒤 경비병들에게 다음 전투에서 패배할 경우 건물에 불을 지르라고 지시했다. 이후의 공방전에서 수비대가 패배하자, 경비병들은 건물에 불을 질렀고 수많은 여인과 아이들이 화마에 휩쓸러 사망했다. 살아남은 이아피데스인들은 로마 공화국의 지배에 복종했다.

그 후 옥타비아누스는 판노니아의 콜라피아니족, 세게스타니족과 이름을 알 수 없는 다른 부족들을 향해 진격했다. 그들은 숲에 숨어 있다가 로마군의 낙오병들을 습격해 죽이는 식으로 대응했지만, 로마군은 계속 진군하면서 세게스타니족의 수도인 세게스타에 도착할 때까지 8일간 주변 지역을 황폐화시켰다. 세게스타는 강과 도랑에 둘러싸인 강력한 요새였다. 아피아노스에 따르면, 옥타비아누스는 나중에 다키아 왕국과 전쟁을 치를 때 이곳을 전진기지로 삼기를 원했고, 사바 강에 다키아로 물자를 수송할 선박을 건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디오 카시우스에 따르면, 옥타비아누스의 해군 제독 메노도로스가 사바 강 또는 콜라피스 강에서 적과 맞붙었다가 전사했다고 한다.

1개월 간의 공성 끝에 세게스타를 공략한 옥타비아누스는 세게스타의 명칭을 '시스키아'(Siscia)로 변경하고 세게스타니족의 항복을 받아내 인질을 받아낸 후, 푸피우스 게미누스를 판노니아 군사 지휘관으로 삼은 뒤 로마로 돌아와서 상처를 치료했다. 이후 기원전 34년 겨울 갈리아에 돌아와 그 지역을 순시했는데, 이에 대해 고대의 일부 기록에서는 그가 카이사르가 감행했던 브리타니아 원정을 재현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최근에 복종했던 일리리아 부족들이 반란을 일으켜 세게스타(시스키아)에 남겨뒀던 수비대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옥타비아누스는 곧바로 일리리아로 돌아왔다. 하지만 반란이 이미 수습되었고 세게스타 수비대는 건재하다는 걸 알게 되자, 옥타비아누스는 기왕 온 이상 아직도 복종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달마티아인들을 토벌하기로 했다.

옥타비아누스가 달마티아로 행진하자, 베르조 왕이 이끄는 달마티아 전사 12,000명이 프로모나에서 농성했다. 베르조는 대부분의 군대를 도시에 배치하고 나머지는 인근 언덕에 배치해 로마군의 진격을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로마군의 압도적인 전투력을 극복하지 못하고 요새가 함락되었으며, 베르조는 공성전 도중에 전사했다. 또다른 달마티아 왕 테스티무스가 베르조를 구원하러 왔지만, 프로모나가 끝내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산악지대로 피신했다. 그 후 테스티무스는 유격전을 전개하며 로마군을 괴롭혔다.

디오 카시우스에 따르면, 한 번은 옥타비아누스가 적이 야간 기습을 했을 때 방어 위치에서 벗어나 도망친 1개 코호트를 전원 처형하라고 명령해 200명이 한꺼번에 처형되었다고 한다. 또 한 번은 세토피아를 공격하던 옥타비아누스가 적이 던진 돌멩이에 맞아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를 사령관으로 남기고 로마로 돌아가 요양 생활을 해야 했다. 타우루스는 그를 대신해 공세를 이어가 기원전 33년에 함락시켰다.

기원전 33년 치료를 마치고 일리리아로 돌아온 옥타비아누스는 공세를 꾸준히 이어나갔고, 여러 부족이 대거 로마에 귀순하자 테스티무스 역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해 귀순했다. 옥타비아누스는 700명의 인질을 넘겨받고 지난날 그들이 빼앗아간 아울루스 가비니우스의 군기를 돌려받은 뒤 로마로 돌아와서 원로원에 들어가 승리를 선언했다. 하지만 개선식을 거행하라는 원로원의 권고를 거부한 것을 볼 때,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이를 통해 얻어낸 전리품은 개선식에 선보이기에는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일리리쿰 속주를 복원하는 데 성공하면서, 정계에 뛰어든 이래 동족과의 내전만 치렀던 옥타비아누스는 처음으로 외부 세력을 상대로 군공을 세웠다. 그는 이를 기반삼아 최후의 경쟁자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의 내전을 준비했다.


[1] 옥타비아누스가 일리리아 원정에 착수하기 전에 원로원에 보낸 보고서에 따르면, 일리리아에는 30개 가량의 부족이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