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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호부


1. 개요2. 한국에서
2.1. 고려2.2. 조선
3. 중국에서
3.1. 당

1. 개요

도호부(都護府)는 중국의 군정기관이자 한국고려조선 시대의 행정기관. 고려왕조 때부터 신설되어 구한말까지 존속했던 곳으로 도읍행정, 치안을 맡았다.

원래 도호부라는 명칭은 중국에서 새로 정복한 이민족을 통치하기 위해 변방에 둔 군정기구를 가리키는 것이었는데, 이 이름을 고려에서 일반 행정구역에도 붙이기 시작했고 조선 시대에도 보편화되었다.

2. 한국에서

2.1. 고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경우 한반도에서 아주 남쪽에 위치한 수도 금성에서 조운 및 교통이 손쉽게 미치며 물산이 풍족한 남부지역 위주의 교통 및 무역망이 구축되었기에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일원적 행정이 강했고, 수도에서 멀고 교통이 불편한 북쪽 지역에서는 준자치제가 이뤄지기도 하는 등 복잡한 행정을 구축할 필요성이 떨어졌기 때문에 행정구역도 주(지방의 중심도시)-군(큰 동네)-현(작은 동네)과 진(변방의 군사거점)으로 간결하게 구성했다. 그에 비해 후삼국시대의 고려는 건국부터 호족연합체로 시작했고 다양한 호족들이 다양한 세력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좀 더 다양한 구조의 행정구역을 만들고자 했다. 특히 후삼국시대는 전란의 시대였으며 각 호족들은 사병을 거느리고 있었고 모두가 고려 정부에 우호적인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군정의 필요성 또한 절실했다. 그래서 군보다 상위인 부나 도독부가 태조(고려)대에 신설되었고 보다 중요한 요충지에는 도호부를 두었는데, 918년(태조 원년)에는 현 평양시에 평양대도호부를, 후백제가 멸망한 직후인 935년(태조 18년)에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안동도호부를, 현 전라북도 전주시에 안남도호부를 둔 것이 한국사상 최초로 도호부를 둔 것으로써 후대에도 이어지는 도호부제의 효시가 되었다.

그러나 위의 세 도호부는 태조대에 곧 폐지되었고 이후 광종(고려)대인 951년(광종 2년)에 현 경상북도 상주시에 안동도호부가, 현 전라북도 정읍시에 안남도호부가 재설치된다.

본격적으로 도호부제가 활용된 건 10도제가 정비된 성종(고려)대부터인데 983년(성종 2년) 현 평안남도 안주시에 안북대도호부가 신설되었고, 광종대의 안동도호부와 안남도호부는 폐지된다. 그러다 995년(성종 14년)에 현 경상남도 김해시에 안동도호부가 재설치되고, 전주에 안남도호부가 안남대도호부로 승격되어 재설치되었다가 곧 현 전라남도 영암군에 안남도호부로 격하되어 이치되며, 현 황해남도 송화군에 안서도호부가, 현 함경남도 영흥군에 안변도호부가 신설되고 5도호부제가 완성된다.

5도 양계제가 정비된 현종(고려)대에 다시 대대적인 개편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1012년(현종 3년) 안동도호부가 안동대도호부로 승격되며 상주로 이치되었고, 1014년(현종 5년)에는 다시 최초의 설치지인 경주로 이치되었으며, 1018년(현종 9년)에는 안남도호부가 안남대도호부로 승격되며 다시 최초의 설치지인 전주로, 안서도호부가 현 황해남도 해주시로, 안변도호부가 현 강원도 안변군으로 이치되어 대체로 해안에서 내륙으로 이동하는 추세를 보인다. 그리고 1022년(현종 13년)에 안남대도호부가 폐지되고 1030년(현종 21년)에 안동대도호부가 폐지되면서 현종대에는 최종적으로 안서도호부, 안북대도호부, 안변도호부의 3개의 도호부만 남게 된다. 예종(고려)대인 1122년(예종 17년)에는 안서도호부가 안서대도호부로 승격된다. 고려의 표준적인 5도호부제라 하면 보통 현종의 5도호부에서 경주에 설치된 안동도호부만 안동으로 옮겨놓은 것의 이미지가 강한데, 정작 이렇게 설치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후 도호부제는 복잡한 변천을 겪게 되는데 의종(고려)대인 1150년(의종 4년)에 현 인천광역시 부평구에 안남도호부가, 명종(고려)대인 1197년(명종 27년)에 김사미·효심의 난에서 공을 세운 경상북도 안동시에 안동도호부가 재설치되어 5도호부제가 부활하며, 희종(고려)대인 1204년(희종 원년)에는 이비·패좌의 난에서 공을 세워 안동도호부가 안동대도호부로 승격된다. 고종(고려)대인 1215년(고종 2년)에는 안남도호부가 계양도호부(桂陽都護府)로 개칭된다. 1231년(고종 18년)에는 여몽전쟁의 전과에 대한 포상으로 현 평안북도 구성시에 정원대도호부(定遠大都護府)가 설치되었으나 곧 정주목이 된다. 1247년(고종 34년)에 안서대도호부가 폐지되고 원종(고려)대인 1260년(원종 원년)에는 현 강원도 강릉시가 공신 김홍취(金洪就)의 고향이라 하여 강릉에 경흥도호부(慶興都護府)가 설치되기도 하였으나 1263년(원종 4년)에 곧 강릉도로 개칭된다. 충렬왕대인 1308년(충렬왕 34년)에는 안동대도호부와 계양도호부가 다시 폐지된다. 공민왕대인 1361년(공민왕 10년)에는 홍건적의 난으로 공민왕이 안동에 몽진했을 때 대우를 잘 받은 것에 대한 보상으로 다시 안동에 안동대도호부가 설치되고 1369년(공민왕 18년)에 안북대도호부는 안주만호부(安州萬戶府)로 개칭되었다가 다시 안주목(安州牧)이 된다. 공양왕대인 1389년(공양왕 원년)에는 강릉대도호부가 설치된다. 결국 고려의 도호부는 최종적으로는 안동대도호부, 안변도호부, 강릉대도호부가 남는다.

도호부제는 도시의 급에 따라 도호부 혹은 대도호부가 설치되었는데, 대도호부사(大都護府使)는 목사와 같은 3품 이상이, 도호부사(都護府使)는 4품 이상이 임명되었다. 원래 중국의 도호부, 도독부 제도에서의 수령은 도호, 도독으로 불렸는데 한국에서 현지화되면서 도호부사, 도독부사로 쓰였으며, 고을 이름 뒤에 붙일 때는 그냥 부사(府使)로 줄여서 부르기도 했다.[1] 마찬가지로 대도호부, 도호부, 대도독부, 도독부 자체도 '부'로 줄여서 불렸다. 도호부 혹은 도독부가 설치되는 건 원래 군정을 위한 것이지만 후삼국이 통일되고 통합도가 높아짐에 따라 내전의 위험성이 많이 사라지며 그냥 급이 높은 도시에 명예로써 붙여주는 것 비슷하게 되어 오늘날로 치면 특례시 정도의 위상을 갖게 된다.

2.2. 조선

조선대에도 고려대와 비슷하게 도호부제가 이어졌다. 대도호부로는 강릉, 안동, 영변, 영흥, 창원의 5곳이 지정되었다.[2]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수령으로는 정3품의 대도호부사를 두었다.

도호부는 고려시대보다 높은 종3품 도호부사를 두었다. 부, 대도호부는 중요지역에만 특별히 지정되었지만, 도호부는 군의 인구가 많아지면 승격하는 식이라 그 수가 계속 증가하였다. 안주목사, 길주목사, 북청도호부사는 절도사가 겸임했고, 대구도호부사는 경상감영 소재지가 된 1601년부터 경상감사가 겸임했다.

경기도 8곳, 충청도 1곳, 경상도 14곳, 전라도 7곳, 황해도 6곳, 강원도 7곳, 함경도 18곳, 평안도 14곳 등 75개 도호부가 있었다. 1896년 23부제 개편 당시 도 산하의 행정구역이 모두 으로 일원화되면서 폐지됐다.

3. 중국에서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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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정복전쟁을 통해 강역을 넓혀갔으며, 이민족을 통치하기 위하여 6개의 도호부를 두었다. 한국사와 직접 관련있는 안동도호부삼국통일전쟁 이후 당이 차지한 동쪽의 경계였던 고구려최대도시, 평양에 설치되었으나 나당전쟁 이후 강역이 줄어듦에 따라 요동으로 이전하였다.

[1] 현 대한민국에서 '○○광역시장'을 줄여 그냥 '○○시장'이라 통용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2] 강릉과 안동은 고려대에 대도호부로 승격된 것이 그대로 이어졌고, 영변은 세종 대에 연산도호부(延山都護府)와 무산현(撫山縣)을 합쳐 승격되었다. 영흥은 함경 감영이 위치한 종2품 부였으나 함경 감영이 함흥과 영변을 왔다갔다 하다가 중종 대에 함흥으로 완전히 옮겨가면서 부에서 대도호부로 강등되었고, 창원은 임진왜란 당시의 공적으로 대도호부로 승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