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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국/전 소속사의 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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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1집

280km/h Speed
1995. 07. 01.
정규 2집

New Sensation
1996. 08. 14.
베스트 1집

X-Mas Dance Party With TURBO
1996. 11. 01.
베스트 2집

Summer Remix
1997. 0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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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3집

Born Again
1997. 10. 22.
베스트 3집

Dance Party With TURBO
1997. 11. 29.
정규 4집

Perfect Love
1998. 10. 17.
1998. 11. 01.
베스트 4집

Millennium TURBO Dance Megamix
1999. 07.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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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5집

E-Mail My Heart
2000. 01. 27.
베스트 5집

TURBO History
2001. 06. 20.
정규 6집

AGAIN (다시)
2015. 12. 21.
미니 1집

TURBO SPLASH
2017. 0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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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1집

Renaissance
2001. 12. 12.
정규 2집

Evolution
2004. 06. 18.
정규 3집

This Is Me
2005. 07. 01.
디지털 싱글

김종국
2005.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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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4집

네번째 편지
2006. 04. 13.
정규 5집

Here I Am
2008. 10. 22.
디지털 싱글


2009. 03. 05.
디지털 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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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0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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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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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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恨幸福来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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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다
2021.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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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싱글
봄이 왔나 봐
2024. 03. 19.


1. 개요2. 터보 시절 소속사의 만행
2.1. 당시 터보 멤버들의 나이2.2. 뉴스 기사2.3. 혹사2.4. 폭행2.5. 협박2.6. 정산금 수탈2.7. 터보의 도주 및 소속사 관련 인물 검거2.8. 이후 터보 멤버들의 상태
3. 터보의 해체와 김광수의 방해, 살해 협박4. 그 외 소속사들의 만행5. 그 이후6. 터보 시절에 대한 김종국의 입장7. 관련 문서

1. 개요

가수 김종국이 과거 터보 시절 및 솔로 시절 소속사에서 겪은 만행들을 정리한 문서이다.

김종국을 포함한 터보 멤버인 김정남마이키는 소속사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당한 대표적인 연예인으로 매우 유명하다. 아직 연예계에 제대로 된 표준계약서 따위의 관행이 자리잡지 못하고 소속사의 권한 행사도 막강했던 당시 가요계의 시대성을 감안하더라도, 전 소속사의 대우는 그 시절 기준으로도 검찰수사관이 출동할 정도로 수위가 매우 심각했다.

2. 터보 시절 소속사의 만행

차라리 재떨이 날아오고 의자 날아오는 것은 감사한 거다.
한 대 맞고 병원 가서 꿰매면 되니까
정말 소름 끼치게 무서웠다. 울면서 용서를 빌어도 때리고,
김종국과 도망을 가면 조폭 두 명이 쫓아오면서 뒤통수 때리고, 속옷까지 벗긴 채로 걷어차고, 패대기쳤다.
울지도 못해요
왜? 운다면 랩퍼 바꾸라고 그럴 테니까
이 말을 항상 종국이 없는 곳에서 나 혼자 있을 때만 들었으니까요
김정남
소속사 사장이 종국이형을 지하실로 끌고 가서 폭행했고, 형이 사장실에 들어가고 나면은 온갖 물건들 깨지는 소리와 때리는 소리가 났다.
우리가 번 돈을 소속사가 모두 갈취했다. 그래서 나는 정당한 정산금을 단 1원도 받지 못했다.
마이키
김종국이 과거 터보로 활동했을 때 당시 소속사 스타뮤직은 조폭 계열이었는데[1], 스타뮤직의 대표와 로드매니저, 직원들은 터보를 정말 미친 듯이 학대하며 노예로 굴려먹었다. 소속사 대표는 공동 대표였던 권승식조폭과 가깝게 지낸다고 알려진 악명 높은 김광수였고, 터보의 로드매니저들 중 한 명의 인물은 현재 씨제스 스튜디오 대표 백창주였다.[2] 이 대표 2명에게 연습생 시절부터 김종국은 터보 멤버들인 김정남, 마이키와 함께 매우 높은 수위의 폭력과 혹사, 만행 및 횡포 등을 당했다.
▲ 2018년 9월 23일 방송된 미운 우리 새끼 105회 방영 中
김종국과 김정남이 미운 우리 새끼에서 당시 매우 혹독했던 터보 시절을 회상한 에피소드도 있다.

2.1. 당시 터보 멤버들의 나이

오래된 과거의 일이라 터보 멤버들의 나이가 체감이 잘 되지 않는다면, 당시 멤버들의 나이를 2024년 기준 4세대 아이돌 나이로 치면 다음과 같다.

[ 펼치기 · 접기 ]
정규 1~4집 활동 기준 김종국 20~23세[3]정규 1~2집 활동 및 탈퇴 전 기준 김정남 24~25세[5]정규 3~4집 활동 기준 마이키 18~19세[6]

심지어 마이키는 외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미성년자였음에도 소속사에게 이런 끔찍한 만행들을 당했고, 멤버들 모두가 무려 현재 4세대 아이돌의 나이랑 비슷한 시기였다. 사실상 멤버들 모두 갓 데뷔하는 신인 아이돌 그룹의 나이였던 것이다.

2.2. 뉴스 기사

2.3. 혹사

터보의 소속사 스타뮤직은 터보에게 극에 달한 엄청난 혹사를 요구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는 역대 대한민국 연예계 최악의 혹사 대표 사례로 꼽히며, 현재 여전히 죽어라 굴려지는 아이돌들도 이 정도로 심각하게 혹사당하지는 않는다. 혹사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던 1990년대 당시에도 혹사로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들이 얼마나 빡세게 굴려졌는지 알 수 있다.
파일:터보 혹독한 스케줄.jpg
▲ 터보 정규 2집 New Sensation 활동 뉴스 기사 中
당시 터보의 스케줄 혹사가 어느 정도였냐면 무한도전 토토가에 출연한 김정남의 언급에 의하면 하루에 국내선 비행기 무려 5번 탑승이었다. 엄청 바쁠 시기에는 비행기뿐만 아니라 헬기도 여러 번 타고 다녔었다고 했으며, 데뷔 앨범 정규 1집 《280km/h Speed》 시절부터 평소 스케줄이 하루에 10개, 많으면 무려 20개까지 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곧 후술할 정규 4집 《Perfect Love》 활동 연말 시기에도 하루치 스케줄만 무려 16개에 달했다. 터보보다 스케줄 여유가 있던 후배 그룹 다비치의 매니저의 차량의 한 달 주행 거리가 25,000km라고 밝혀진 것을 보면 서울 시내 영업용 택시도 이 정도는 안 뛰는 수준이다. 영상

잠잘 시간은커녕 밥 먹을 시간도 없을 정도의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서 김정남과 김종국은 정규 2집으로 컴백한 후 한 달 동안 병원 응급실 신세를 세 번씩이나 지기도 했으며, 김정남은 슈퍼선데이 녹화 도중에 갑자기 쓰러졌고 김종국도 과로로 쓰러지기도 했다.[7] 마이키"터보 활동 당시 스케줄이 너무 미친 듯이 혹독해서 체력 하나는 타고났다던 종국이 형이 자주 실신했는데 나는 오죽했겠냐"라고 말한 적도 있으며, 무한도전 토토가에서도 지나간 옛 일이라 장난스럽게 하루에 비행기를 5번씩 타본 적도 있다고 했지만 사실 그 자체가 상당한 고역이고 그날에 비행기만 타고 다른 건 안 탔으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걸 생각해 보면 매우 살인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혹사가 매우 끔찍하기 짝이 없던 탓에 리더였던 김정남이 소속사 사장에게 "스케줄이 너무 많아서 이러다간 정말 죽을 것 같습니다. 조금만 줄여주시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이야기했지만, 이에 사장은 조폭과 다름없는 로드 매니저, 소속사 실장, 소속사 직원들을 동원해 김정남을 지하실에 끌고 가서 재떨이, 의자, 각종 둔기로 무자비하게 구타를 가했다. 초반엔 혼자 앞장서서 말했던 김정남만 구타를 하다가 도중에 김종국도 강제로 끌고 와서 무자비한 폭행을 가했다.

특히 터보는 정규 2집 《New Sensation》 활동 당시 <Twist King> - <Love is... (3+3=0)> - <어느 째즈바...> 일명 '트럽어' 3연타 대히트로 가요계 1위를 휩쓸었으며, 불과 3달의 활동 기간 동안에 1위를 많이 달성한 사실에도 알 수 있듯 인기도 최절정이었고 혹사도 최절정이었던 시기였다. 90년대 당시에는 한 곡으로만 3개월 정도 활동했던 것이 근본적이었는데[8], 터보는 겨우 3개월 동안에만 무려 3곡으로 활동하면서 각종 가요 차트에서 1위를 모두 석권하고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게다가 <Love is... (3+3=0)> 활동 도중 11월 1일에 신곡 10여 곡이 수록된 겨울 캐롤 앨범 《X-Mas Dance Party With TURBO》가 발표되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런 사실만 봐도 터보가 얼마나 쉬지도 못하고 철저히 혹사당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잔혹한 혹사로 인해 결국 밑에 후술할 멤버들의 잠적과 김정남의 탈퇴로 이어졌으나, 저 활동들이 겨우 3개월이라는 짧은 단기간에 이뤄졌으며, 저 기간 동안 엄청나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덕분에 정규 2집의 음반 판매량은 총 150만 장의 판매고를 돌파하는 터보의 첫 밀리언셀러를 달성했으며, 음악 방송에서도 총 24회 1위를 수상하였다.
파일:4156340934.png
▲ 터보 정규 4집 Perfect Love 발매 시기 뉴스 기사 中
미국의 톱스타 윌 스미스의 듀엣곡 녹음, 일본 진출, 활동 중단 후에도 끊임없이 화제를 모아온 터보가 4집 활동을 보류했다.

그 이유는 이미 잘 알려진대로 김종국의 갑작스런 입원 때문이었다. 지난 16일 MBC 'GO! 우리들의 천국' 외 ENG 카메라 앞에서 4집 홍보를 위해 춤을 추던 김종국이 갑자기 쓰러지고 말았다.

고통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실려간 그는 무리한 연습으로 인해 허리디스크 재발이라는 결과를 통보 받았다.

4집 활동을 바로 눈 앞에 두고 앨범 발표를 미뤄야 했던 터보의 심정은 안타까울 뿐이었다. 스케줄만 해도 MBC 음악캠프를 비롯해 KBS 뮤직뱅크, SBS 인기가요 등 줄줄이 잡혀있는 상태에서 이같은 일을 당하고 보니 더욱 더 기가 막힐 수밖에. 병원으로 실려가던 김종국은 그 짧은 순간에도 4집에 대한 걱정 뿐이었고, 마이키는 잔뜩 겁에 질려있었다고 한다.
뉴스 기사 내용 中
큰 병도 아닌데 주위에서 더 난리들인 것 같아요. 디스크를 치료한 지는 이번이 4번째인데 너무 연습을 무리하게 했나봐요.
3집때 라이브에 치중하느라 춤을 많이 못 보여드린 것 같아 이번엔 안무에 신경을 많이 썼거든요.

그런데... 그게 탈진했나봐요.
김종국
▲ 터보 정규 4집 연습 도중 허리디스크 재발 영상 ▲

터보는 모든 활동마다 매우 잔혹한 혹사 및 온갖 고통에 시달렸지만, 그 중 터보에게 가장 최악의 활동 기간은 정규 4집 《Perfect Love》 활동 시기였다. 정규 4집 타이틀곡 <애인이 생겼어요 (True Love)>의 감당이 안 되는 곡 난이도[9]와 후속곡 <X (The Greatest Love)>의 매우 강렬한 댄스에 김종국이 허리디스크가 터지는 등 최악의 컨디션에 시달리기도 했으며, 김종국이 입원하자마자 당시 정규 3집 열맞춰!로 컴백했던 H.O.T.를 피하기 위해 억지로 입원하는 것이라고 인포데믹을 퍼트리는 여론도 있었다. 이에 소속사 사장은 입원한지 10일 만에 김종국을 컴백 무대에 강제로 내놓기도 했다. 이후 후속곡 <X (The Greatest Love)>, 삼속곡 <White Love (스키장에서)> 활동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1998년 12월 연말에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던 한중일 콘서트 도중 김종국이 태도를 지적받는 바람에 소속사는 물론 그룹조차도 상당히 비판을 받았고, 급기야 이러한 김종국에게 가수 활동 무기한 정지 처분[10]을 내리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정규 4집의 성과는 무난히 좋았음에도[11] 결국 위의 사건으로 활동을 일찍 마감해야 했던 사태가 터지게 되었다. 게다가 1998년은 상술한 김종국의 허리디스크 파열, 잔혹한 스케줄, 노예계약, 활동 정지 등 온갖 방해 소재들이 점점 심해지자 김종국의 심정도 크게 지쳤던 해였다.

한중일 콘서트에서 일어났던 일의 전후 사정에 대해서 김종국이 솔로 데뷔 이후 언급한 인터뷰가 있으며, 해당 링크[12]의 5번째 단락 참고.
하지만 제일 큰 사건은 소위 '괘씸죄'가 적용된 1998년 세모[13]의 '불성실 무대 사건'이다. 가 불성실한 무대 매너를 선보인 것으로 비쳤다면 그 점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이 한결같이 '는 왜 그랬지?'만 되풀이 할 뿐 '무슨 사정으로 그랬을까?' 하는 부분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점이 그를 무척 속상하게 한다. 사실 방송 전에 안 좋은 일이 있었다. 연말 연시라 그런지 하루 방송 스케줄이 16개나 되던 끔찍한 날이었고, 그래도 즐겁게 일에 임했다.

리허설 시간에는 조금 늦었으나, 생방송도 아니고 아직 자기들 순서도 아니기에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담당 작가가 필요 이상으로 성질을 부려 참았던 감정이 폭발했다. 언성이 높아지자 주위 스태프들이 몰려 들었고 이 와중 김종국의 감정이 많이 상했다. 아직 한국어에도 능숙치 않고 나이 어린 마이키 걱정도 되었고. 다들 방송하지 말고 그냥 가자고 했지만 그는 그래도 무대에 오르겠다고 했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리라는 생각과 달리 표정도 굳고 안무도 시원치 않았나 보다.[14] 마침 정부 고위층이 그 방송을 시청하다가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왔단다. 일은 그렇게 된 거였다.

분명 잘못했지만 그렇다고 마약 상습 복용 연예인이나 음주 운전, 스캔들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들은 잘도 봐 주면서 '청와대'를 거론하며 '딴 방송이면 몰라도 이번엔 안 돼!'라고 말한 것은 참 서글프다. 그의 새 천년은 이토록 암울하게 밝았다.

이 혹사가 어느 정도였냐면 현재의 아이돌과 비교해 봤을 때, 대표적으로 현재 가장 인기가 높은 아이돌 중 한 명인 IVE 멤버 장원영의 혹사를 보면 싱글 3집 After LIKE 발매 이후 20일치 스케줄<Fred 브랜드 행사 - 한국 입국 - 충북대 축제 - MC 특별무대 사전 녹화 - 뮤직뱅크 생방송 - 아주대 축제 - 성균관대 축제 - 팬사인회 - 파리 출국 - 미우미우 행사>[15] 8일치 스케줄이다. 2020년대인 현재도 스케일이 매우 큰 혹사라고 평가받는 저 스케줄들을 소화해도 장원영은 별다른 내색이 없었으나, 터보 멤버 김종국과 김정남, 마이키의 경우 터보란 그룹명답게 '가요계의 차트를 터보 엔진처럼 쉬지 않고 무한질주하는 것과 춤을 매우 격렬하게 추면서도 절대 지치지 않는 컨셉'도 파괴되었을 정도였고, 체력은 매우 크게 타고난 김종국이 무려 여러 번이나 실신하며 과로로 쓰러졌으면 말 다했다. 인권 의식이 희박했던 1990년대에도 진짜로 멤버들이 대놓고 여러 번 쓰러질 정도의 혹사는 터보 이외에는 없었다.

2.4. 폭행

파일:터보 폭행.png
▲ 2011년 11월 방송된 SBS 플러스 컴백쇼 톱10 출연 中

소속사가 혹사만 했다면 그나마 참작될 수 있는데, 터보에게는 혹사 이외에 1990년대임을 감안해도 용인되기 어려운 가혹한 폭행과 고문까지 이어졌다. 이 폭행이 터보가 전 소속사에게 당했던 모든 만행들 중 가장 최악의 악행이나 다름없다.

터보 멤버들이 돈을 낸 사택의 음식을 남기거나, 식당에서 메뉴를 추가로 주문하거나, 서로 조금이라도 언성을 높이며 다투거나, 심지어 다리를 떠는 등의 별의별 지극히 사소한 것까지 행동하면 소속사는 이러한 행동에 대해 트집을 잡은 후 온몸을 테이프로 포박하고 속옷만 입힌 채 지하실에 끌고 가서 구둣주걱과 가죽벨트, 의자, 재떨이, 각목, 쇠파이프, 각종 둔기, 맨손 등으로 두들겨 패고, 빠따로 때리며 기합을 주고, 라이터에 대고 살충제를 쏘는[16]화염방사기로 사람에게 쏘는 것과 다름없다.] 등 활동 기간 내내 살인미수와 다름없는 체벌을 당했으며, 이는 체벌이 완전히 용인되던 1990년대에도 폭행으로 인식되었다.[17] 터보 멤버들은 소속사 사장들인 권승식, 김광수의 이름만 들어도 자다가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다는 말도 있다.

김정남이 밝히길, 심지어는 울면서 용서를 빌어도 때리고, 도망을 가면 조폭들이 쫓아오면서 뒤통수를 때리고, 속옷까지 벗긴 채로 걷어차고, 패대기쳤다고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로서는 기록이 남지 않아 출처를 찾기 어렵지만, 빠따를 한 번 때리기 시작하면 얼마나 심하게 때렸는지 다리와 둔부가 터지고, 물집과 고름이 잡혀 다음 날이면 자력으로 일어설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딱히 아무 잘못을 안 해도 그냥 스트레스 풀이용으로 멤버들의 얼굴과 눈을 후려치고 발로 걷어찬 적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소속사 직원들이 미성년자였던 마이키에게 사소한 걸로 트집을 잡고, 욕설 및 구타를 가하자 김종국이 욕설 및 구타를 당하는 마이키를 몸으로 감싸고 반항했는데, 사장이 자신에게 반항했다는 이유로 깡패들을 동원해 김종국을 지하실에 끌고 가서 야구방망이쇠파이프로 김종국을 고문과 다를 바 없이 무자비하게 폭행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이키는 김종국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이 크게 들어 엄청 울었다고 했다. 이어 마이키의 증언에 따르면 김종국은 사장에게 지하실로 끌려가 구타당했다고 했으며, 김종국이 사장실에 들어가고 나면은 온갖 물건들 깨지는 소리와 때리는 소리가 났다고 했다.

김정남이 탈퇴하고 후임 멤버 마이키가 들어왔지만, 대표들은 여전히 그대로였던 만큼 소속사의 혹사, 폭력, 횡포, 수익금 갈취 등 매우 끔찍한 대우는 꾸준히 이어졌다. 혹사 문단에 상술했듯이 스케줄이 너무 혹독해서 조금만 줄여달라는 요청에 사장이 깡패들을 동원해 김종국과 김정남을 지하실에 끌고 가서 재떨이, 의자, 각종 둔기 등으로 무자비하게 폭행을 가했으니 이렇게 말할 정도면 확실히 터보 멤버들은 허구한 날 저런 잔혹한 폭행들을 당했을 것이다.

저런 수위가 매우 높은 온갖 폭력들을 오랜 기간 동안 수 차례 당했음에도 멤버들이 사망하지 않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기적이었고, 곽승남은 원래 터보의 메인보컬로 데뷔할 예정이었으나 소속사의 이러한 횡포와 폭력 때문에 데뷔하기 전에 탈퇴했다.[18] 그 후 도망쳤음에도 불구하고 곽승남에 대한 여론이 나쁘지 않았던 이유는 안 그랬으면 사망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어느 인물 밑에서 일을 하다 도주했는지만 보면 모든 상황이 납득된다. 실제로 그는 구타를 너무 많이 당하는 바람에[19] 결국 오직 살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도망쳤다고 봐야 한다.[20]

직접적으로 대부분 폭행을 가했던 인물은 김광수보다는 공동 대표였던 권승식이라는 얘기도 있으나, 김광수가 최소한 폭행을 방관했다는 점, 그간 행적에서 보이는 터보를 포함한 소속 가수의 혹사는 절대 부정할 수 없다. 당시 체벌의 수위는 매우 높았고, 김광수는 비단 터보 외에도 티아라, 조성모, SG워너비, 씨야 등 네임드 연예인 여러 사람들을 엄청 못살게 굴어서 연예계에서는 악의 축 취급이다. 그야말로 K-POP계 최악의 빌런. 당시 김종국이 1:1로 김광수가 두려워서라기보다도 김광수가 폭력 세계에 소위 말하는 '빽'이 아주 강했기 때문에 그런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것이다.

김종국이 어린 시절부터 갖고있던 허리디스크는 위의 혹사 및 폭행으로 크게 더 악화되었으며, 그 허리에 좋지 않은 매우 빡센 안무, 허리디스크로 인해 응급실에 실려가고도 활동 시기에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래서 김종국은 재활을 위해 헬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김종국은 지금도 병원을 가끔씩 방문한다고 하며, 운동 이외에 약물 치료도 병행했다고 한다. 덕분에 김종국이 공익으로 군 복무를 했을 당시에는 '저 근육으로도 공익으로 빠지냐'고 비난의 목소리가 컸으나, 이런 암울했던 속사정이 제대로 알려진 이후로는 누구도 그의 병역이행에 대해 근본적으로 절대 비판, 비난하지 않는다.

2.5. 협박

파일:터보김정남 컴백쇼톱10.jpg
▲ 2011년 11월 방송된 SBS 플러스 컴백쇼 톱10 출연 中

터보 시절 상술한 끔찍한 혹사와 사실상 살인미수와 다름없는 가혹행위 및 폭행까지 모자라, 터보 멤버들에게 자행한 온갖 협박과 정산금 착취를 하여 여전히 큰 비난을 받고 있다.

소속사 공동대표 권승식은 터보에게 선글라스를 강제로 착용하게 시켰고, 멤버들이 선글라스가 불편하여 벗으려고 하자 "너희들은 선글라스 벗는 순간 다 뿔뿔이야."라고 협박한 건 물론 온갖 만행으로 인해 속사정이 암울했던 김정남에게 "너 울었다간 팀에서 내쳐버릴 거다."라는 협박을 김종국이 자리에 없을 때 시도 때도 없이 했기에 결국 김정남은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잠이 오지 않아 자지도 못했고, 울지도 못해서 마음속으로만 울분을 토해내야 했다.

심지어는 멤버들에게 허구한 날 "니들은 개야. 패면 팰수록 고분고분 말대가릴 잘 들으니까. 만약 회사에서 나가거나 신고라도 하기만 해봐라, 그럼 내가 양아치들 시켜가지고 니들 애미, 애비까지 싸잡아서 다 죽여버릴 테니까 그 지랄은 꿈도 꿀 생각 마라."라는 천인공노할 협박을 밥 먹듯이 하여 겁을 주었다. 상식적으로 계약이 끝나거나 퇴사한다는 이유만으로 가족까지 몰살시킨다는 발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받아들여질 수 없으며, 심지어 본인이 스스로 터보를 없애버린다고 밥 먹듯이 협박한 걸 보면 적어도 터보라는 그룹에 대한 애정은 1도 없는, 그냥 자신들에게 큰돈을 벌어주고 자신이 하는 모든 말에 순순히 복종하는 개보다도 못한 취급을 했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또한 터보를 강제로 유흥업소에 출연시키면서 출연료 전액을 가로채간 것은 물론 방송 출연 및 음반 판매로 거둔 수십억 원 이상의 정산금을 착취했고, 이에 반발하는 김종국과 김정남에게 "반발하는 순간 너희들은 바로 가요계에서 매장시킬 거다."라고 협박하며 폭력까지 행사했다고 한다.

김정남이 탈퇴한 후 김종국은 지인에게 미국에서 온 마이키를 소개받았고, 소속사 오디션 끝에 SM엔터테인먼트와 대형 기획사들에도 가뿐히 합격했던 실력파 마이키와 또 다른 1명으로 총 2명이 뽑혔으며 마이키가 순수히 오디션으로 3500:1 경쟁을 뚫고 들어왔고 나머지 1명은 외모가 잘생긴 사람이었다. 그 당시 H.O.T.가 인기를 크게 끌던 시기여서 소속사 사장은 잘생긴 사람을 원했고, 마이키는 얼굴이 안 된다며 내치려는 것을 김종국이 소속사 사장에게 "터보는 실력으로만 승부하는 가수라고 하셨는데, 얼굴은 무슨 상관이죠?"라고 뜯어말려 터보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리고 소속사 사장은 당시 21세였던 김종국[21]에게 "그 대신 만약에 터보가 잘못될 경우엔 싹 다 네 몫으로 책임지는 거야, 이 새끼야."라는 협박을 하여 중압감과 공포심을 주었다고 한다. 저런 협박에도 김종국은 정규 2집 《New Sensation》 활동 말에 잠적했던 기간 동안 피아노, 작곡 등 여러 음악 공부와 전보다 향상된 보컬 실력을 믿고 결국 후환이 두려운 걸 감안하고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하며 이때까지는 아직 멤버가 확정이 안 된 상태였고, 시간도 촉박하여 우선 곡을 녹음하자고 했는데 작업 중에 시간이 더 급박해지자 그대로 앨범을 내어 마이키가 터보에 영입되었다. 정규 3집 《Born Again》의 결실이 정규 1~2집보다 성과가 더 뛰어났어서 다행이지[22], 만약 잘 되지 않았더라면 상술한 가혹행위와 폭행을 더 잔혹히 심하게 당했을 것이다.

2.6. 정산금 수탈

그냥 사장의 첫 마디가 "야. 돈 많이 벌면 너희 싸가지 없어져."
"그러면 안 돼."
"네 나이에 맞는 돈을 벌게 해 줄 테니까 그냥 기다려."
이런 말을 들었거든요.
회사가 우리한테 "그냥 너희는 일해."
"돈은 회사에서 벌 테니까. 대신 돈을 조금은 줄게."
그냥 이거였던 거예요.
김정남
2021년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 中 언급 내용 영상

그냥 우리는 음반이 많이 나가는 팀이니까 음반이 많이 나가는 걸 이용하여 수익을 갖자로 했어요.
그런데 중요한 건 우리가 음반 수익이 없었어요.
김종국
2021년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 中 언급 내용 영상

김종국의 첫 정산금 금액은 겨우 20만 원에 불과했다. 심지어 그 돈도 어머니께 절반을 양도했고 김정남에게 나머지를 빌려준 탓에 맛도 못 봤다. 기사 당시 김종국은 그 정산금이 본인에겐 매우 큰 돈이었다고 한다.

터보 정규 1~2집 활동 기간에만 번 수익이 수십억 원이었으며, 당시 수십억 원 이상이면 엄청난 금액이었고 이것도 겨우 2년에 불과한 기간에 걸쳐 나온 수익금이었다. 2014년 무한도전 토토가에서 김정남이 밝히길 2년 기간에만 벌은 수익금으로 무려 10년 넘는 기간 동안 놀고 먹고 지낼 정도였다고 한다. 소속사가 대부분의 정산금을 모두 수탈하고 정산이 안 된 금액인데도 10년 넘는 기간 동안 놀고 지낼 정도였다면 당시 터보의 인기와 스케줄이 얼마나 엄청나고 혹독했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소속사 사장은 여전히 외국에서 온 미성년자 마이키에게 계약 사기를 쳐서 총 182만 장[23]을 판매한 정규 3집 《Born Again》 수록곡 <Goodbye Yesterday>, <회상 (December)>, <금지된 장난>과 총 111만 장을 판매한 정규 4집 《Perfect Love》 수록곡 <애인이 생겼어요 (True Love)>, <X (The Greatest Love)>, <White Love (스키장에서)>, 총 91만 장을 판매한 정규 5집 《E-Mail My Heart》 수록곡 <Cyber Lover>, <Tonight> 등 밀리언셀러와 줄세울 수 있는 히트곡들을 수 차례 뽑아냈음에도 마이키는 5년 내내 약간의 월급만을 받았다. 즉, 성과에 비해 매우 적은 금액을 받았다. 정당하게 받아야 할 금액들은 김종국이 본인의 사비로 대줬고, 김광수는 정당한 정산금을 단 1원도 주지 않았다.

1998년 당시 윌 스미스가 한국에 왔을 때, 길거리에 들렸던 터보의 노래를 듣고 김종국의 목소리가 매우 독특하고 한국의 마이클 잭슨이라며 콜라보를 제안했다. 성과는 싱글 차트 22위, 핫 랩 차트 1위에 올랐다. 곡의 총 수익금은 터보와 윌 스미스가 각각 50:50로 나눠갖자고 합의를 봤음에도 소속사는 여전히 터보의 정산금을 모두 갈취했으며, 무려 빌보드 차트 상위권 순위와 핫 랩 차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으니 해당 곡의 금액이 절반으로 나눠졌어도 정산 금액은 매우 엄청났을 것이다. 해당 기사 인터뷰

정규 5집 《E-Mail My Heart》 후속곡 <Tonight>의 뮤직비디오는 미국 콤프턴에서 보름간 촬영했는데, 촬영 과정 중에 자동차를 수리하는 장면이 있었다. 문제는 그 자동차의 주인이 마이키였고, 마이키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수리하는 장면[24]을 찍다가 차가 고장났는데 소속사가 그걸 책임지지 않았다는 것. 이 때문에 활동 정산금은 소속사에게 모두 갈취당해 차를 살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마이키는 많이 속상해했고, 결국 김종국이 본인의 사비로 마이키에게 새 차를 뽑아줬다고 한다. [25]

정산금의 금액량은 터보의 성과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봤을 때, 정규 1집 《280km/h Speed》와 정규 3집 《Born Again》, 정규 4집 《Perfect Love》 총 3개의 앨범이 한 앨범에서 3곡이 1위를 차지하는 트리플 크라운 및 정규 2집 《New Sensation》과 정규 3집 《Born Again》, 정규 4집 《Perfect Love》 총 3개의 앨범이 3연속 트리플 밀리언셀러를 달성하는 등 커리어로서는 최전성기였으나, 정규 1~5집의 결실, 그리고 윌 스미스와의 콜라보까지 모두 합해서 멤버들에게 돌아간 누적 정산금은 겨우 중고 상태의 봉고차 한 대 값어치였다고 한다. 게다가 김종국과 김정남은 정산금을 소속사에게 대부분 수탈당했는데도 엄청나게 큰돈이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봤을 때 만약 정상적으로 정산이 되었다면 총 수입 금액량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김종국, 김정남, 마이키가 받을 수 있는 수입은 2015년 12월에 3인조로 재결합한 정규 6집 《AGAIN (다시)》부터였다. 한창 활동했던 정규 1집~5집을 포함한 나머지 베스트 앨범들은 지금 팔려도 정산 수입금을 단 1원도 받지 못한다고 한다. 위의 글들만 봐도 터보는 엄청난 인기와 커리어를 구가하는 최전성기였지만 그들의 속사정은 이런 암울한 꼴이었던 것이다.

2.7. 터보의 도주 및 소속사 관련 인물 검거

파일:터보 소속사 폭력수사.jpg
▲ 1996년 11월 언론 뉴스 기사 中

1996년 11월, 어느 한 소속사가 터보가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을 알고 한창 잘나가던 터보를 뺏어오기 위해 스타뮤직과 터보를 이간질시켰고, 스타뮤직의 온갖 만행들이 언론에 알려지게 되었다. 검찰은 이에 대해 조사 계획을 세웠고, 터보가 어느 한 방송에 출연하던 중간에 검찰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고 한다. 검찰은 숙소에 가서 소속사의 모든 만행에 대한 조사를 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아무 잘못도 안 하고 오히려 피해자였던 터보 멤버들은 검찰 수사에 대해 겁이 났고, 이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로 인한 오해 때문에 역으로 본인들이 피해를 받을 위기에 놓이게 되자 백댄서의 차를 타고 도주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터보 멤버들은 예정되어있던 방송을 펑크내고 무려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연예계에서 자취를 감췄고 심지어 외국까지 나가서 도피 생활을 했다.

그로 인해 스케줄이나 성과에 대한 것도 손해본 것들도 많았다. 정규 2집 《New Sensation》까지 활동을 마쳤던 한창 인기가 매우 뛰어나던 시기라 광고 CF도 꽤 많이 잡혀있었고, <Twist King> - <Love is... (3+3=0)> - <어느 째즈바...> 일명 '트럽어' 3연타 대히트로 각종 연말 가요대상 시상식 대상 후보에도 올랐으나 해당 도주 사건으로 인해 무산되고 말았다.

이후 검찰은 스타뮤직에 대한 수사에 나섰고, 터보의 매니저, 관계자 등 스타뮤직의 관련자들이 먼저 검찰에 붙잡혔으며, 소속사 대표 권승식은 도주하여 지명수배까지 내려졌다. 결국엔 소속사 대표 권승식까지 검거에 성공하여 조사를 받았다. 해당 기사 매니저들 중 1명은 씨제스 스튜디오 대표 백창주였고, 상술했듯 공동 대표 2명 중 권승식은 검거되었고, 나머지 1명은 수사망에는 올랐으나 잡아넣지 못했다. 이 인물이 바로 김광수다. 스타뮤직의 방계 업체였던 GM기획은 이후 인수 합병을 통해서 엠넷미디어로 성장했다. 사실 엠넷미디어가 최전성기였고 코어부터 고꾸라지기 시작했는데, MBK 엔터테인먼트로 바뀐 뒤부터는 완전히 대폭망 중이다. 그 이유는 대표가 바뀐 게 없기 때문이다.[26] 하지만 김광수는 MBK가 폐업한 후로는 포켓돌스튜디오라는 기획사 대표로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그로부터 약 1년 뒤, 스타뮤직의 온갖 행패와 폭력, 혹독한 스케줄 등을 견디지 못했던 김종국김정남은 다른 소속사로 이적하려 했지만, 다른 어느 사업을 하던 기획사 사장이 김종국과 김정남에게 각각 10억 원을 주겠다며 우리 회사로 오라고 제안을 했으나, 그 사장은 터보 명의의 정산금을 모두 가로채 달아났다고 한다. 스타뮤직은 큰 사기를 당해버린 김종국에게 "너희 사기당했으니깐 일단 아무 말 안 할 테니까 다시 우리 소속사로 돌아와라"라고 전했다. 하지만 스타뮤직이 여태까지 터보에게 했던 대우를 보면 아무 말 안 할 테니까라고는 했지만 왜 우리한테서 도주하려다가 큰 사기를 당했냐며 원래 그래왔듯 김종국에게 구타, 욕설 등을 가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과정에서 김종국은 김정남에게 손을 내밀며 자신의 손을 잡고 다시 스타뮤직으로 돌아가자고 권유했으나, 김정남은 활동했던 그 1년 8개월 동안 사람을 너무 지치게 만들었고 두번 다시 노예 생활에 시달리기 싫다고 거절하며 터보에서 탈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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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6월 11일 언론 뉴스 기사 中

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김종국 혼자만 다시 스타뮤직으로 돌아왔고, 스타뮤직은 1997년 6월 11일에 김정남의 빈자리를 채울 래퍼를 구했다. 그렇게 소속사 오디션 끝에 순수히 3500:1의 경쟁을 뚫고 최종적으로 들어온 SM엔터테인먼트와 대형 기획사들에도 가뿐히 합격했던 실력파 마이키가 뽑혀 터보는 2기 체제로 활동하게 되었다.

2.8. 이후 터보 멤버들의 상태

김정남은 잠적하고 결국 터보에서 탈퇴한 후 은둔 생활에 들어가 버렸다. 탈퇴하고 초반에는 좋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지고, 자신은 춤 빼면 할 게 없다는 허무함이 와서 집 안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1년 2개월 동안 게임 중독에 빠져 살았고 나중에 몸에 마비가 와 병원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2015년 1월 29일 해피투게더 3에 출연해 밝힌 바에 따르면 22시간 동안 게임만 하면서 랭킹 1위를 찍었으며, 밥은 새벽 2~3시에 먹고 잠은 컴퓨터 책상에서 엎드려 자는 등 완벽한 폐인 생활을 했다고 한다. 방 안에 있어도 부모님의 한심한 시선이 느껴졌다고.

마이키 역시 터보의 해체 후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며 우울증으로 자살 충동까지 느끼기도 했고, "무대에 못 선다는 생각이 사람을 너무 힘들게 했다. 사람이 옆에 오기만 해도 심장이 떨리고 차 소리만 들려도 나한테 해를 끼칠 것만 같아 항상 불안에 떨면서 집에서 혼자 울었다"라고 견디기 어려웠다고 밝혔으며 "터보 해체 후 자살 충동까지 느껴봤다. 한 번만이라도 '너 다시 할 수 있어 열심히 하면 돼'라는 말만 들었더라도 힘을 냈을 것"이라고 격려해주지 않은 동료 연예인과 가족들에 대해 서운함을 내비치기도 했으며, 결국 심한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병원에서 약물 치료까지 받았고 "우울증이 너무 심하다 보니까 혈액 순환 같은 게 안 되고 몸이 저렸다. 호흡 곤란증이 생겨 안 되겠다 싶어서 병원에 갔더니 입원까지 하라고 했었다. 결국 입원은 안 했지만 6~7개월 동안 약물 치료 받고 상담 받았다"라고 당시 심각했던 증세를 밝히기도 했다. 해당 기사 해당 기사 2

3. 터보의 해체와 김광수의 방해, 살해 협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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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3월 SBS 강심장 출연 中 [27]
김종국은 소속사와의 계약이 종료된 후 2001년 1월 터보에서 탈퇴하고 본격적인 솔로 활동에 나서려고 했지만, 김광수의 줄기찬 방해로 터보 시절 흥행보다 실패하고 말았다. 2010년 3월 강심장에 나와서 밝힌 바로는 김광수와 김종국의 부모님이 만나서 서로 그동안 고생하셨다는 등 이야기를 좋게 나눠 원만한 해결을 하고 1집을 내기 위해 작곡가 여러 명을 찾아다니며 부탁했으나, 작곡가들은 곤란해하면서 "어쩔 수 없지만 너에겐 곡을 써줄 수가 없다."라고 답했다. 당시엔 작곡가 수도 별로 없었을 시기였고 김광수가 모든 작곡가들에게 "김종국에게는 절대 곡을 써주지 마라"라고 압박을 넣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당시 나이도 어렸고 현재와는 달리 인맥이 한참 부족했던 김종국은 최악의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김종국은 포기하지 않고 작곡가들에게 부탁을 시도했으나, 작곡가들은 전 소속사와의 오해를 풀어보라는 답변을 했고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졌던 날에 김광수에게 전화를 걸어 "섭섭하신 게 있으시겠지만.. 형님 제발 살려주십시오"라고 말했다. 허나 김광수는 "니가 이제 아쉬워지니까 나한테 전화하는구나?"라는 차가운 답변과 함께 "넌 내가 무조건 죽여버릴 거다."라고 말하며 살해 협박을 했다고 한다.[28] 그동안 받았던 많은 상처와 마음 고생이 심했던 김종국은 이 말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결국 김광수의 훼방으로 작곡가들도 곡을 주지 않자 김종국은 독기를 품고 스스로 프로듀싱까지 해서 겨우 정규 1집 《Renaissance》를 발매했으나, 김광수는 곡을 주지 못하게 한 것뿐만 아니라 김종국의 방송 활동까지 일부 막아버리는 악행을 저질렀고 김종국은 "이제 가수로서는 끝인가..."라는 심정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도 솔로 정규 1집은 김광수의 방해를 받으며 활동이나 홍보도 못했음에도 음반 판매량은 무려 40만 장이나 팔렸고, 타이틀곡 <남자니까>는 음악캠프에서 최고 4위까지 올랐고 김종국의 발라드 곡들은 물론 역대 모든 발라드 노래들 중 모창 난이도가 가장 어려운 후속곡 <행복하길>도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시기 임창정이 8집을 들고 컴백했고, '기다리는 이유'로 지상파 음악방송 3사에서 1위를 석권하며 6, 7집 인기를 유지하며 쭉 이어갔다. 임창정의 8집 앨범 판매량이 38만 장인 것을 감안하면 김종국이 만약 방해받지 않고 왕성한 활동을 했다면 솔로 1집 앨범 판매량이 40만 장을 가뿐히 넘어서서 최소 60만~70만 장은 팔았을 거라는 말이다. 그만큼 이 시기 김종국의 인기는 여전히 대단했다. 비록 얼마 전까지 활동했던 터보 시절 커리어가 엄청나서 그렇지 웬만한 가수들에겐 솔로 정규 1집의 성과는 최소 중박 혹은 그 이상이다.[29]

전술했듯이 전 소속사가 솔로 활동을 크게 방해하는 바람에 1집 활동을 제대로 이어가기 어려웠고, 결국 김종국은 음반 활동을 일찍 접게 된다. 이후 김종국은 2004년에 한 남자로 재기에 성공하기까지 2~3여 년간 예능 프로그램을 돌며 근근히 활동을 이어나가게 된다.[30]

그 후 김종국이 크게 성공하자 2010년 1월에 김광수는 뻔뻔하게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마냥 김종국을 찾아와 피처링을 해달라는 요청을 했는데, 김종국은 당시 상황이 맞지 않아 그 부탁을 정중히 거절했으나 김광수는 그 말을 듣고 "니가 감히 나한테 이래도 되는 거냐?!"라는 어처구니없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 이 일화를 밝힌 김종국은 "'그때 힘들었지? 미안하다'라는 한 마디만을 바랐는데..."라고 말하며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31]

4. 그 외 소속사들의 만행

스타뮤직에서 탈퇴하고 이적한 소속사 혜성미디어 역시 이전보다 낫다일 뿐 만행이 있긴 했었는데, 전속금 7억원에 음반 발매 3장을 내는 조건으로 계약했으나, 정규 1집 타이틀곡 <남자니까>는 뮤직비디오조차 없었으며, 이후 후속곡 <행복하길> 활동 때 부랴부랴 뮤직비디오를 하나 내놓았다. 정규 1집 활동 종료 후 혜성미디어에 정규 2집을 발매하게 해 달라고 하였으나, 혜성 측에서 묵묵부답으로 나온다. 이에 혜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걸자, 오히려 혜성 측에서 계약파기 소송을 걸게 되고 이후 서로 합의를 하고 혜성에서 탈퇴했다.

그래서 정규 2집 《Evolution》은 아예 소속사도, 뮤직비디오도 없이 제작하여 발매했다. 타이틀곡 <Feeling>은 여전히 터보 시절 만큼 흥행하지는 않았으나, 정규 1집보다는 상당히 좋은 성과를 보였다. 아니, 사실상 타이틀곡도 꽤 성공적이었다고 봐야 한다. 현재 대표 음원 서비스들인 Youtube Music, 멜론보다 그 이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2000년대 초중반 대규모 음원 사이트 벅스뮤직[32]에서 1주 1위 달성 및 15주 동안 TOP 10 순위에 머물렀고, TOP 100 순위에서는 무려 26주 동안 순위에 머물렀으며, 음악 방송에서도 1위 후보까지 올라간 적도 있었다. 그러다 후속곡 <한 남자>가 초대박을 치며 드디어 솔로 가수로서 홀로서기에 성공하였다. <한 남자>는 음악 방송 1위 총 16관왕 수상 및 2000년대 단일곡 기준 1위 횟수 3위를 기록[33]하며 부활탄을 크게 쏘아올렸다. 삼속곡 <중독>도 벅스뮤직 6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정규 2집 수록곡 3곡이 벅스뮤직에서 총 15주 1위를 달성하며 2000년대 단년 최다 1위 달성 및 한 앨범에서 3곡이 1위를 차지하는 트리플 크라운 달성으로 김종국의 최전성기가 본격 시작되었다.

하나 이러한 큰 성공을 구가했음에도 아쉽게도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는데, <한 남자>는 2004년 싸이월드 뮤직 연간차트 1위, 싸이월드 뮤직 9주 연속 1위, 벅스뮤직 8주 연속 1위, SK Telecom 벨소리&컬러링 디지털 음원 연간차트 1위를 포함한 당시 존재했던 음원 플랫폼에서 6~8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등 김종국을 부활시킨 대히트한 곡이지만 불공정한 음원 시장의 구조로 인하여 본인에게 초대박난 노래였음에도 음원 수익은 한 푼도 없었다. 김종국은 "한 남자 음원으로는 단 10원도 못 받았다. 그 때 제가 1년을 쉬었는데 한창 디지털 음원으로 전환되던 시기였다. '저는 그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그 쪽에서도 이야기를 안 해주셔서 음원 수익을 하나도 못 받았다"라고 밝혔다. 해당 기사

후속곡 <한 남자>와 삼속곡 <중독>이 초대박을 친 후, 한 남자를 프로듀싱한 최민혁과 '원오원엔터테인먼트' 소속사를 차렸다. 힘든 시기를 거쳐 그렇게 드디어 안정을 찾아가나 싶더니 2012년에 원오원과 결별하고 1인 소속사 JK엔터테인먼트를 차리자, 2012년 12월 원오원 측에서 김종국의 동의 하나 없이 소속 가수 상추주석이 피처링했던 2005년 12월에 발매했던 '김종국' 해당 앨범을 리메이크해서 발매하기도 했다.

소속사 얼반웍스이엔티도 과거 런닝맨의 외주제작사로 유명했으며, 본편 제작에서는 손을 떼었으나 해외판 런닝맨 스핀오프 등의 제작에는 관여했다. 그래서 초창기 한동안 김종국이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하지만 외국 스케줄만 굴리고, 본업이 가수인데도 음원 하나도 내주지 않자, 계약 만료 후 김종국은 마루기획 소속사로 이적해 버렸다.

이적한 마루기획에서는 다행히도 사실상 만행이 없었으며, 김종국이 마루기획 지분을 무려 10% 이상 소유하고 있었던지라 만행이 일어날래야 날 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5. 그 이후

2014년 12월 무한도전 토토가 특집에서 김종국김정남과 무려 17년 만에 재회하게 되었고, 녹화 장소에 도착한 김정남이 먼저 와있던 김종국에게 "다 말했어?"라고 묻자 "그냥 가볍게 이야기했어" 라고 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방송분에서는 댄서들과 함께 여럿이 밥을 먹는데 메뉴 한 가지 더 추가시킨 것으로 회사에서 뭐라고 한 것에 열받아 도망친 것이라고 적당히 둘러댔다. 사실 이걸 다 풀어버리면 예전도 그랬지만 지금도 파장이 장난이 아닐 게 뻔하기 때문에[34] 쓸데없는 잡음을 일으키지 않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그래봐야 네티즌들은 이미 인터넷 검색과 뉴스 기사로 당시 소속사 스타뮤직의 모든 만행들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딱히 의미는 없지만...

이후 터보는 2015년 12월 3인조 재결성부터 김종국을 소속사 대표로 하고, 소속사를 차린 '더 터보 컴퍼니'와 김종국 1인 기획사인 'JK엔터테인먼트'를 합병하여 각각 소속사 이름을 딴 '터보제이케이컴퍼니' 소속사에서 활동하는 중이다.

터보 시절 소속사 대표였던 김광수에게 "너 무조건 죽일 것이다"라는 살해 협박까지 당한 김종국은 인맥 하나 없이 힘들게 발매한 정규 2집 앨범 수록곡 <한 남자>와 <중독>이 초대박이 터진 것을 시작으로 정규 3집 수록곡들인 <제자리 걸음>, <사랑스러워>, <별, 바람, 햇살 그리고 사랑>의 3연타 메가히트로 종합적인 2005년 최고의 가요 성적[35]을 거둬 2005년 가요계를 종결시켰다. 이후의 행보는 김건모, H.O.T., god 이후 역대 네 번째이자 최후의 지상파 3사 가요대상 그랜드 슬램 달성 및 역대 다섯 번째이자 최후의 지상파 3사 가요대상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또한 방송사 내에서도 전 소속사와의 문제를 에둘러서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입지를 가지게 되었다.

김종국은 과거에 엄청 힘든 시기를 버텨냈기에 이처럼 좋은 결과를 맞이했으며, 일상에서도 먹는 음식에 철저히 신경을 쓰며 연예계 대표 몸짱으로 자리잡았다. 각종 예능에서도 힘과 지능 등 모든 걸 갖춘 능력자 컨셉을 활용하여 꾹관장 캐릭터로 대박을 치면서 2020 SBS 연예대상의 주인공이 되었고, 무려 30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초대형 헬스 유튜버로도 활동하는 현재의 김종국이 있게 되었다. 소집해제 이후에도 계속 강한 남자 이미지를 강조하는 바람에 여전히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상술한 터보 시절에 당했던 폭행으로 더 악화된 허리디스크와 인스타그램에 공개한 허리 상태 엑스레이, 국가유공자 집안임에도 면제나 복무 일수를 단축하지 않고 전체 복무 일수를 끝까지 다 마치는 등 이런 일화가 제대로 알려진 이후부터는 많이 줄어든 상태다.

6. 터보 시절에 대한 김종국의 입장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터보로 데뷔해서 "막 일은 일대로 하고 돈도 못 벌고, 고생 많이 했다." 뭐 이런 얘기들 많이 하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20대 때는. 터보 열심히는 했지만... 얻은 것도 없고, 고생도 많았고. 저도 그런 얘기 많이 하기도 했어요.

근데! 그게 아니예요. 제가 정말 나중에 느낀 거지만. 터보 활동을 하면서 음악으로 많은 분들이랑 교감하고, 제 목소리 하나로 많은 분들이 추억을 하고, 언제나 그 노래들이 나올 때 반가워하고. 이런 음악을 제가 가지고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래서 지금은 정말 가수를 시켜 주셨던 사장님, 프로듀서 분들... 모든 분께 진심으로 저는 너무너무 감사를 드리고요.

생각하는 것만 바꾸면, 정말 나빴던 게 좋은 것이 되고요. 진짜 그렇게 바뀌어요.
2019년 단독 콘서트 '진국' 中 김종국

해당 김종국의 입장을 요약하자면 터보 시절의 기억이 김종국 본인에게는 정말 일만 주야장천 했고, 돈도 못 벌었고, 고통을 자주 당했던 기억뿐이긴 하지만[36], 그 결과 음악이 남아있으니 모든 것이 감사하다는 것이다. 속내가 어떻든 세월이 흐르면서 이젠 훌훌 털어버리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는 초탈한 그의 모습에서 그의 단단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7. 관련 문서



[1] 시대가 시대인지라 일부 레이블이 조폭과 연계되었다는 소문은 있었지만 스타뮤직만큼의 악행이 드러난 케이스는 없었다.[2] 아버지가 그 유명한 양은이파의 부두목인 백영두이며, 아들인 백창주는 조폭 활동을 했다는 얘기까지는 없지만, 아버지가 조폭이니까 당연히 조폭 집안 출신이다. 참고로 백창주는 2010년대 자기 기획사에 한동안 소속되어있던 송지효랑 사귀었다 헤어지기도 했는데, 묘하게도 2022년에 방영된 런닝맨 신년 사주풀이 특집에서 김종국은 송지효와 관련해 "옛날에 아주 오지게 나쁜 놈 만났었거든"이라며 언급하기도 했다. 해당 영상 해당 인물이 백창주인지는 확실하진 않으나 남의 뒷담화를 거의 안 하는 김종국이 대놓고 아주 오지게 나쁜 놈이라고 말할 정도면... 기획사를 차린 이후로는 비교적 조용한 걸 보면 잘 나가는 배우 등 스타들을 기용하려면 로드매니저 시절처럼 함부로 날뛰다가는 자기도 망한다는 걸 아는 모양이다.[3] 4세대 아이돌 기준 2001년~2004년생[4] FIFTY FIFTY 전속 계약 분쟁 사건이 일어나면서 본 문서의 상황이 점점 더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정반대로 소속사가 오히려 멤버들을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잘 대우해 주었는데 외주 업체가 멤버들을 가스라이팅하면서 탬퍼링을 시도했고, 멤버들이 외주 업체에 속아넘어갔다는 차이점이 있다. 쉽게 말하면 해당 문서와 정반대의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5] 4세대 아이돌 기준 1999년~2000년생[6] 4세대 아이돌 기준 2005년~2006년생[7] 그 당시 신문 메인에 터보가 쓰러졌다는 기사가 여러 번 나왔다.[8]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 이후 한 곡으로 활동하는 시기가 짧아지기는 했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2~3달 지나서 차트에 진입하는 사례가 매우 많았기 때문에 심하면 5~6개월까지도 한 곡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특히 1993년 12월에 발표된 부활의 사랑할수록은 다음 해 여름이 되어서야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발표한 지 8개월이 지나서 첫 1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1996년 당시에는 대체로 한 곡으로 3개월, 길면 4개월 정도가 일반적인 상황이었고, 1990년대 말에 접어들면서 한 곡으로 2개월, 2000년대 중반에는 한 달 반 정도를 소비했다. 게다가 2000년대 초반까지는 음반 시대였기 때문에 후속곡 활동은 거의 필수였으므로 실제 한 앨범으로는 더욱 오래 활동했다. 현재와 같은 활동 패턴은 대아이돌 시대와 음원 시대가 도래한 2010년대부터 시작되었다.[9] 이 노래가 얼마나 어렵냐면 3옥타브의 개수가 무려 94개나 되고, 최저음이 2옥타브 도(C4), 최고음이 3옥타브 솔#(G#5)이다. 후렴구가 3옥타브 레#(D#5) 연사로 시작해서 3옥타브 주변에서 끝없이 맴돌고, 후반부에선 진성 3옥타브 파(F5), 애드립으론 3옥타브 솔#(G#5)까지 찍는다. 그야말로 여자 가수 및 여자 아이돌의 노래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다. 심지어 활동 당시엔 립싱크가 대부분이긴 했으나, 안무 난이도가 상당한데다가 곡 분위기상 밝은 노래여서 미소를 짓는 표정 관리까지 해야 하니 충분히 탈진할 만하다.[10] 단순히 출연정지 연예인으로 오른 것은 아니었으니 절대 오해하지 말자. 이 상황을 출연정지 연예인과 엮는 것은 김종국 본인은 물론 팬들에게도 매우 큰 실례다.[11] 왕성한 활동을 하지 못했음에도 음악 방송에서 총 13관왕 수상, 음반 판매량은 총 111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였다.[12] 현재는 다음 블로그가 서비스 종료를 하여 볼 수 없다.[13] 歲暮, '한 해가 저물 무렵'[14] 안무의 경우는 상술한 허리디스크가 제대로 터진 것이 원인이었다.[15] 심지어 충북대학교 축제의 경우 무려 같은 날에 충남대학교 축제도 있었다. 즉 한국에 입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충남대 축제와 충북대 축제를 하루에 모두 치른 것이다.[16] 이 행동은 사실상[17] 1990년대의 체벌도 말 그대로 교육을 위해 뺨을 때리거나 몽둥이질을 하는 정도였지, 특히 라이터에 대고 살충제를 쏘는 것은 당시에도 살인미수나 다름없던 정신 나간 짓이었다. 학교 교사들도 뺨을 때리거나 몽둥이질로 두들겨 패는 정도였고, 당대 군대에서도 매우 악질적인 선임의 군대 가혹행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18] 이와 동시에 서브보컬이었던 김종국이 메인보컬로 데뷔했다. 당시 김정남이 멤버가 한 명 더 있었다고 밝혔던 멤버가 곽승남이다.[19] 김종국의 허리가 그 지경으로 더 악화된 이유와 동일했다.[20] 그 후 곽승남은 3인조 남성 그룹 '지오'의 멤버로 정식 데뷔하게 되는데, 같은 멤버였던 김대진과의 인연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21] 현재 대부분의 4세대 아이돌 리더들보다도 어린 나이였다.[22] 터보의 최전성기는 정규 2집 《New Sensation》이라는 평이 많지만, 음반 판매량과 음악 방송 1위 횟수, 한국영상음반협회 다운타운 차트 성적 등 여러 지표들을 봤을 때 정규 3집 《Born Again》이 훨씬 크게 히트했다.[23] 터보 앨범들 중 판매량 최다 1위[24] 타이어를 빼는 장면도 있다.[25] 2009년에 본인의 콘서트에서 게스트로 마이키를 초대해서 이를 언급했다.[26] 결국 MBK는 2022년에 폐업했다.[27] 참고로 오른쪽 위의 제시카는 "오빠 너무 고생 많으셨네요."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28] 물론 김광수도 연예계에서 이름이 다 알려진 마당에 진짜 살해한다는 소리라기보다는 연예계에서 활동을 못하게 매장시켜버리겠다는 뜻과 함께 자신에게 대들면 가만두지 않는다는 협박까지 담긴 중의적인 표현이다.[29] 당시 임창정을 비롯한 동료 가수들은 김종국을 걱정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김종국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김종국은 심적 고통이 커져 2집 활동 전까지 칩거할 정도로 폐인이 됐다. 터보나 김종국 개인 팬들도 이 사실을 알고 나서 김광수를 저주할 정도.[30] 이 시기 출발 드림팀에 자주 출연했고 왕중왕전에서는 1위까지 했다. X맨 이전에 예능인으로서 그의 히트작이다.[31] 그나마 다행히도 뒤늦게라도 김광수의 만행이 알려져 후배 소속 가수였던 씨야, 다비치, 티아라, 다이아, SG워너비, 엠씨 더 맥스, 조성모의 팬들이 단체로 보이콧을 했다.[32] 2004년 7월 기준 음원 서비스 점유율은 무려 75%에 달했고, 사용자 수도 600만 명이었다. 참고로 2022년 11월 기준 유튜브 뮤직 사용자 수는 460만 명, 멜론의 사용자 수는 450만 명[33] 최다 1위는 김종국제자리 걸음 17관왕과 함께 버즈겁쟁이가 17관왕[34] 김광수는 아직도 연예계에서 현역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터보 멤버였던 본인들이 다른 방송도 아니고 무한도전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하면 소송은 물론이요 신변의 위협까지도 걱정해야 한다. 일본의 사례이긴 하지만 쟈니 키타가와 연습생 성착취 파문쟈니 키타가와 사후에 그 진실이 제대로 밝혀졌다.[35] 당대 대규모 음원 플랫폼(싸이월드 뮤직, 벅스뮤직, 벨소리&통화 연결음) 다운로드 판매 총합 최다 1위, 음악 방송 2000년대 단일곡+단년+앨범 최다 1위, 선호도 조사율 1위, 디지털 모니터 방송 횟수 최다 1위, 라디오 오락 프로 최다 1위[36] 이는 2017년 용띠클럽 - 철부지 브로망스에서 말하기도 했다. 힘든 일 속에서 친구들이 힘이 되어주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