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의 독일 해군 함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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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f-Zeppelin-Klasse |
1. 개요
나치 독일 해군의 정규 항공모함으로 건조하려 하였으나 복잡한 내부 사정에 따라 진수는 하였으나 건조가 중단되어 취역하지 못한 항공모함이다.항공모함의 이름은 비행선으로 유명한 페르디난트 그라프 폰 체펠린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2. 제원
그라프 체펠린급 항공모함 | |
배수량 | 23,200톤(기준), 33,550톤(만재) |
전장 | 262.5m |
전폭 | 31.5m |
흘수 | 7.6m(기준), 8.5m(만재) |
승조원 | 승무원 1,720명 |
항공 요원 306명 | |
무장 | 15cm/55 SK C/28 2연장 주포곽 8기 (총 16문) |
10.5cm/65 SK C/33 2연장 대공포탑 6기 (총 12문) | |
3.7cm/83 SK C/30 2연장 대공기관포좌 11기 (총 22문) | |
2cm/65 C/30 단장 대공기관포대 7기 (총 7문) | |
보일러 | 라 몬트(La Mont) 중유 전소 고온 고압 보일러 16기 |
터빈 | 세트 BBC 기어드 증기터빈 4기, 스크류 4기 |
출력 | 200,000마력 |
최고속력 | 35노트 |
항속거리 | 19노트 기준 14,816km (8,000 NMI) |
함재기 | 1939년 총 43기 Bf 109T 함상전투기 10기 Ju 87C 급강하폭격기 13기 Fi 167 정찰기 겸 뇌격기용 복엽기 20기 |
1942년 총 43기 Me 155 함상전투기 15기 Ju 87E 급강하폭격기 겸 뇌격기 28기 | |
계획 | 1937년 4척 예정 1938년 2척으로 축소 |
건조 | 건조 2척 최종 완성 0척 (2척 취소) |
기공 | 1936. 12. 28 |
진수 | 1938. 12. 08 |
격침 | 1947. 08. 16 |
3. 개발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이 독일의 정권을 장악하는 것이 가시화됨에 따라 독일 국방군의 재무장의 진행도가 활발하게 바뀌었다.해군 측면에서는 세계 주요 강대국들은 거함거포주의의 정점이었던 전함 뿐만이 아닌 해군 항공대의 항공모함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항공모함보다 전함이 중시되던 시절이었다고 해도 항공모함 자체는 함대의 정찰용 및 선제타격용으로 가치가 확립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크릭스마리네 총사령관 에리히 레더 제독은 1945년까지 4척의 항공모함을 포함한 대규모 대양함대를 건설하기 위한 Z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래서 1933년부터 독일 해군은 항공모함 건조의 가능성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빌헬름 하델러 (Wilhelm Hadeler)는 베를린 공과대학교에서 군함조선과 교수의 조교로 9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었으므로 1934년 4월에 항공모함의 설계 준비를 계획하도록 임명되었다. 하델러의 최초 설계는 함재기를 50대 탑재할 수 있는 22,000t의 배수량을 가진 군함으로 35노트로 항주가 가능했다. 그러나 영국-독일 해군조약이 1935년 6월 18일에 체결됨으로서 나치 독일은 항공모함 배수량 쿼터를 38,500t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 해당 쿼터는 나치 독일 해군은 영국 해군이 보유한 모든 군함의 함종별 배수량 합계의 35%까지 건조가 가능하다는 것에 의거한 것으로 해당 배수량 쿼터의 안에서 2척의 항공모함을 건조 가능하도록 빌헬름 하델러의 설계에서 배수량을 19,560t으로 축소하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당시의 독일 해군은 제1차 세계 대전의 패배로 인한 베르사유 조약으로 대형 주력함의 보유가 금지되어 인력들이 흩어지고 전후 혼란 등으로 연구 및 개발이 단절되었기에 경험도 기술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 빠져 있었다. 즉, 옆나라 소련 해군이 러시아 혁명을 거치며 러시아 제국 해군과의 기술 단절이 발생하자 이탈리아 왕립 해군과 영국 해군의 도움을 받아 자체적인 개발 보다는 기술이전을 받는 것에 노력을 기울인 것처럼 독일의 크릭스마리네도 열악한 함선 설계 기술을 도움을 받아 극복하고자 하였다.
본격적인 항공모함 건조를 위해 독자적으로는 항공모함을 건조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수뇌부는 동맹국 해군이자 해군 항공대의 선두 주자였던 일본 제국 해군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기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1935년 가을에 독일 공군 장교 1명, 독일 해군 장교 1명, 독일 조선기술자 1명이 일본을 방문해서 아카기의 비행갑판을 조사하고 항공모함의 운용 노하우를 듣고 비행갑판 관련 설계도를 입수하였다.
당시 일본 제국은 해군력 증강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해군 기술력이 우월했다. 반면 육군 및 공군 기술력은 부족했고, 해당 분야에는 유리한 점이 있는 독일에게 도움을 받았다. 양국은 서로 각종 기술들을 전수하는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했다. 이때 일본은 독일에게 건함, 어뢰 기술 등을 전수해주고 일본은 독일로부터 전차, 제트엔진 기술 등을 넘겨받았다.
그 외에도 영국 해군의 항공모함인 퓨리어스도 사절단을 보내서 방문하여 조사하기 위해 영국과 협상을 진행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본격적인 작업은 1935년 아돌프 히틀러가 지시하여 건조를 시작하였고 진행이 원활하여 그라프 체펠린의 건조에는 반대가 없었다. 다만 영국-독일 해군조약이 체결된 시기인 1935년에야 건조가 시작되었으므로 다가올 전쟁에 시간이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당장 영국과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히틀러의 구두 약속을 믿은 조함단은 원래의 건조 계획을 그대로 유지했다.
1번함인 그라프 체펠린의 용골은 1936년 12월 28일 건조 도크에 설치되었다. 해당 도크는 독일의 항구인 킬에 위치한 도이체베르케 (Deutsche Werke) 의 조선소가 관할하는 도크로 해당 도크에서는 샤른호르스트급 전함 그나이제나우의 건조가 최근까지 진행되었던 지역이었다. 2년 후에 Z 계획을 에리히 레더가 발표하고 해당 계획에서 독일 해군은 4척의 항공모함을 건조할 것을 결정하였으며 그 일환으로 그라프 체펠린급 항공모함 2척을 우선적으로 건조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그라프 체펠린의 공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1938년 12월 8일에 진수까지 진행된다.
1938년에는 두번째 항공모함이 잠정적인 명칭인 'B'로 발주되어 킬에 있는 게르마니아벨프트 (Germaniawerft) 조선소에서 기공에 들어갔다. 그리고 1939년 3월 1일에 아돌프 히틀러가 Z계획에 따른 항공모함 건조 계획을 승인했다.
3.1. 항공모함 내부 설계
전반적인 구조는 독일의 1차대전식 설계가 빚어낸 포곽식 주포와 미국 해군의 개방형 함수 설계 아래 전형적인 내부 기관계통 및 거주시설의 배치, 격납고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는 당시 충분한 호위함을 붙여줄 수 없었던 크릭스마리네의 사정상 항공모함이 자기방어가 가능해야 했기에 포곽식 주포가 채택되었던 것이며[1] 개방형 함수는 생산성과 함 건조비용을 줄이기 위해 디자인을 바꾸다 보니 나오게 된 일종의 수렴진화이다. 개방형 함수는 능파성과 이착함 안정성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지만, 대신 함선의 건조비용과 생산성에 있어서 폐쇄식 함수에 비해 우위를 점한다.항공모함 아카기와 그라프 체펠린의 외형 비교 |
실제 그라프 체펠린의 설계를 보면 상당히 영국 해군의 항공모함 아크로열급 항공모함과 미국 해군의 요크타운급 항공모함에 큰 유사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일본 제국 해군 항공모함 아카기의 설계가 직접적으로 반영되었다는 의견도 있으나 항공모함 함종의 공통적인 특징을 제외한다면 해군의 일부 기술력과 운용 노하우에 도움을 받았다 수준이지 항공모함 설계가 직접 반영된 것은 전혀 아니고 더 나아가 직접적인 아카기와의 유사성을 찾아볼 수 없다. 먼저 아카기의 개방형 함수에서 보이는 무리하게 갑판을 늘리면서 생긴 사각기둥이 그라프 체펠린에게는 필요하지 않았다.
항공모함 그라프 체펠린의 내부 구획 구조 | 항공모함 아카기의 내부 구조 |
내부 기관계통도 마찬가지로 기존 굴절하강식 연돌에서 다이호급 항공모함 이후 본격적으로 도입된 아일랜드형 연돌이 이미 그라프 체펠린급 항공모함에는 반영되어 있었기에 총체적으로 개판이었던 아카기의 내부 기관계통에 비해 그라프 체펠린의 기관 계통은 정렬한 편이었다. 즉, 아카기와 직접적으로 비교한다면 그라프 체펠린의 내부 구획은 전체적인 함의 밸런스가 맞지 않았던 아카기와 전혀 다르며 거주시설의 배치도 완전히 다르게 되어있다.
4. 특징
4.1. 함체
함체 측면에 설치된 주장갑대는 기관부와 후방 탄약고의 구획에서 100mm의 두께로 가장 두꺼우며 전방 탄약고에서는 60mm로 얇아졌으며 함수까지 도달하면 30mm까지 서서히 줄어들었다. 후방 부위 장갑은 조타기구를 보호하기 위해 80mm를 유지했다. 주장갑대 안쪽에는 20mm 두께의 어뢰 방어 격벽이 함체 내부에 설치되었다.갑판장갑의 경우에는 비행갑판과 격납고 아래의 주갑판으로 구성된 2중 구조였다. 비행갑판은 파편방어 위주로 구성되었으며 보통은 20mm 정도의 두께로 구성되며 항공기용 엘리베이터는 필요한 구조 강도를 제공하기 위해 두께가 40mm로 증가하였고 엘리베이터 사프트 주위도 강화했으며 연돌도 파편방어를 강화했기 때문에 장갑이 더 두꺼웠다. 주갑판의 경우에는 탄약고에서는 60mm, 기관부에서는 40mm로 다양하게 두께가 변동하면서 설치되었으며 주변부에 도달하면 45도 경사장갑의 형태로 변화하여 흘수선 부분의 측면 하부 장갑대와 결합하는 구조였다.
그라프 체펠린급 항공모함의 함체는 19개의 수밀 구획으로 분할되었다. 해당 구조는 독일 해군에서는 주요 군함에 채용된 표준적인 구조였다. 그러나 1942년 5월의 설계 변경으로 인해 항공모함 상부의 중량이 늘어남에 따라서 벌지의 대규모 추가가 필요해졌다. 그래서 군함의 전폭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그라프 체펠린급 항공모함의 전장과 전폭의 비율이 9.26:1에서 8.33:1로 감소하여 약간 통통해졌으나 그걸 감안해도 여전히 날씬한 편이었고 항행 안정성이 개선되고 어뢰 방어 능력이 향상되었으며 늘어난 구획에 어뢰 방어용을 겸해서 약 1500톤의 중유를 넣을 수 있었기에 항속거리도 증가했다.
함수의 경우에는 원래는 구식의 직선식 함수였으나 이미 1940년에 설계를 변경하여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에도 채용된 아틀란틱 바우를 도입하여 파도를 돌파하는 능력을 향상시켰으며 이로 인해 군함의 전장이 5.2m 증가했다.
4.2. 동력부
그라프 체펠린의 보일러는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에 사용한 것과 동일한 라 몬트(La Mont) 중유 전소 고온 고압 보일러이며 고출력이 필요하므로 16기로 증설한 것이다. 그리고 세트 BBC 기어드 증기터빈 4기로 추진축 4개에 연결된 스크류 프로펠러 4개를 돌려서 200,000마력을 달성하여 35노트의 속도로 항공모함을 가속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연료의 경우에는 중유 5,000톤을 원래부터 적재 가능하였으며 1942년에 벌지가 추가되어 추가로 1,500톤을 더 저장할 수 있으므로 19노트로 항해할 때 14,816km까지 항속거리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동급 기관을 탑재한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에서 나타난 기관부의 각종 트러블과 문제점과 항속거리의 단축을 생각해본다면 실제 항해시의 항속거리는 상당히 단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함미쪽의 추진용 스크류 프로펠러 외에도 함수 쪽에서 함의 중앙선을 따라서 2기의 보이트-슈나이더 (Voith-Schneider) 사이클로이드 프로펠러와 작은 방향타가 설치되었다. 선수에 추가적인 프로펠러가 설치된 이유는 그라프 체펠린급 항공모함의 건현이 높고 8노트 (15km/h) 이하의 속도로는 조함이 힘들어지며 킬 운하같은 좁은 운하에서 돌풍을 만날 때 군함이 운하 벽같은 곳에 충돌하여 좌초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 외에도 항구에 입항할 때도 도움이 되며 함의 조함이 어려울 때는 응급조치로 12노트 (22km/h) 이하의 속도로 조함을 할 수 있으며 만일 군함의 동력부가 작동하지 않을 경우에는 잔잔한 바다 한정으로 4노트 (7.5km/h)의 속도로 군함을 이동시킬 수 있었다. 사용하지 않을 시에는 수직 샤프트 내부에 수납하고 방수 커버로 덮어서 파손을 방지할 수 있다.
4.3. 비행시설
그라프 체펠린의 비행갑판은 강철로 만들어졌으며, 표면은 목재로 만든 두꺼운 판자로 덮여 있었고, 242m의 길이와 최대 30m의 폭을 갖추었다. 함미의 바로 가까이에서는 약간 둥글게 내려가 주요 상단 구조물과 결합된다. 비행갑판은 강철 대들보로 지지되었다. 항공모함의 함수 부분은 개방함수로 되어 있고, 또 비행갑판의 앞부분은 불규칙한 모습을 가진다. 이것은 주로 캐터펄트 궤조의 최종 말단부가 돌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라프 체펠린의 함교는 우현에 위치하며 함교 구조물에는 전투함교와 항해함교와 해도실이 존재한다. 그 외에도 3기의 탐조등 및 돔 형태의 방어구조물 안에 있는 사격통제장치 4기와 연돌이 위치한다. 함교의 무게중심을 맞추기 위해서 비행갑판과 격납고는 함체 중심선을 기준으로 좌현으로 0.5m 이동했다. 1942년에는 튼튼한 함재기 지휘소, 항공기 탐지용 레이더 안테나, 연통 상부에 경사를 가진 캡을 추가하는 등의 추가적인 설계가 제안되었다. 연통 캡이 설치되는 이유는 장갑화된 함재기 지휘소가 연통에서 나오는 그을음과 연기를 맞는 바람에 업무에 지장이 오지 않도록 연통 캡을 설치하여 그런 현상을 최대한 막기 위함이었다.
비행갑판의 앞부분 및 함교가 난기류를 감당 불가능한 수준으로는 일으키지는 않았다. 모형을 이용한 주의깊은 풍동 실험에 의한 연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당 테스트를 진행하면서 군함이 좌현방향으로 급선회하는 등의 사태로 함체가 심하게 흔들림이 발생하면 함교 구조물이 비행갑판 위에 와류를 형성할 수 있다는 보고도 올라왔다. 이런 문제는 항공작전을 실시할 때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위험으로 간주되었다.
그라프 체펠린의 격납고는 상부와 하부로 나누어지는 2중 격납고다. 전체적으로 길이는 길고 좁은 편이었으며 측면과 선수, 선미부에는 장갑이 없었다. 작업장, 창고, 승무원 숙소등은 격납고 외부에 위치하므로 당대의 영국 항공모함과 설계적인 특성에서 유사하였다. 상부 격납고는 길이 185m, 폭 18m의 크기였으며 하부 격납고는 길이 172m, 폭 16m이었다. 격납고의 높이는 상부 격납고 높이가 6m인 반면 천장의 지주로 인해 하부 격납고는 상부 격납고보다 0.3m 정도 낮은 5.7m 수준이었다. 실제로 사용가능한 격납고의 총 면적은 5,450㎡로 함재기 41대를 수납할 수 있다.
상부 격납고에는 Bf 109T 함상전투기 10기와 Ju 87C 급강하폭격기 13기를 수납했고 하부 격납고에는 Fi 167 정찰기 겸 뇌격기용 복엽기 18기를 수납할 수 있었다. Fi 167 2기는 예비기로 부품형태로 창고에 보관되거나 비행갑판 위에 계류하는 식으로 운용했다. 만일 비행갑판 위에 함재기를 계류하는 식으로 함재기를 최대한 채울 경우에는 50기까지 운용이 가능하긴 했으나 말 그대로 간신히 가능하다는 정도이므로 실제로 전투상황에 돌입하기는 곤란했다.
그라프 체펠린의 항공기용 엘리베이터는 3기가 존재했다. 항공기용 엘리베이터는 전기로 작동하며 위치는 비행갑판의 중앙선을 따라서 1기는 함수에 가까운 위치로 함교의 전반부와 나란히 배치되며, 다른 1기는 함의 중앙부, 마지막 1기는 함미에 놓여졌다. 엘리베이터는 13m x 14m 크기의 8각형 형태로, 최대 5.5t 중량의 항공기를 격납고에서 비행갑판으로 이송이 가능하다.
캐터펄트는 도이체베르케제 (Deutsche Werke) 의 압축공기 작동식 텔레스코핑 방식으로 2기가 비행 갑판의 전방 함수 부분에 내장되었다. 해당 캐터펄트는 전장 23m로, 중량 2,500kg의 전투기를 약 140km/h까지, 또 중량 5,000kg의 폭격기를 130km/h까지 가속하는 능력을 보유했다.
캐터펄트까지 연결되는 이중 레일이 전방 엘리베이터를 거쳐서 중앙 엘리베이터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격납고 내부에서는 크레인을 사용해서 함재기가 발함용 트롤리 위에 올라간다. 발함용 트롤리는 엘리베이터 사용을 위해서 접는 것이 가능하다. 함재기를 올려놓은 트롤리는 엘리베이터에 올려진 후에 비행갑판에 올려진 후 레일을 따라서 캐터펄트까지 이동한다.
캐터펄트가 작동을 시작하면 압축공기가 강력한 압력으로 방출하면서 캐터펄트 내부의 이동 가능한 슬라이드 웨이를 전방으로 추진시킨다. 캐터펄트가 함재기를 발함시킨 후, 발함용 트롤리는 슬라이드 웨이의 끝 부분까지 도달하지만, 견인용 연결 케이블이 해제될 때까지 그 장소에서 고정된다. 일단 슬라이드 웨이가 원래 위치로 되돌아가면서 견인용 케이블이 고정용 훅을 벗어나면 발함용 트롤리는 수동으로 회수 플랫폼 위로 전진해서 B데크상에서 선수루 갑판으로 내려간 후 재사용을 위해서 상부 격납고로 되돌아온다. 캐터펄트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악천후에서 파손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별도의 균질압연장갑제 보호대를 캐터펄트 시스템과 레일 전체에 덮어야 했다.
이론상으로는 캐터펄트용 압축공기 저장탱크 내부의 압축공기를 모두 사용할 때까지 함재기 18기를 30초마다 1대씩 캐터펄트로 이함시킬 수 있었다. 그 후에는 압축공기 저장탱크를 완충할 때까지 50분이 필요했다. 압축공기 저장탱크는 2기의 대형 탱크로 구성되었으며 캐터펄트 궤도 하부의 격리된 공간에 배치되었다. 해당 공간은 비행갑판 하부에 있으나 주장갑보다는 위에 있었으므로 항공모함이 피탄당할 경우 파편방호 이상의 방어력을 가지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리고 발함 작업 중에 캐터펄트 작동을 위해 압축공기를 개방할 때 온도 저하에 의해 공기 실린더의 배관과 제어 설비가 얼어붙은 것을 막기 위해서 격리 구획 내부를 전기식 난방장치로 20°C까지 미리 가열해놓았다.
나치 독일 해군은 캐터펄트를 보조용 이함장치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함재기를 캐터펄트로 이함시키는 것으로 상정하고 있었다. 따라서 함재기가 자력으로 이함하는 것은 캐터펄트의 손상이나 고장같은 상황에서만 실행하도록 지정했다.
캐터펄트로만 이함할 경우에는 함재기의 자력 이함을 위해서 함수를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돌릴 필요가 없고, 바람이 약해서 무거운 함재기가 충분한 양력을 받지 못해서 이함이 불가능해지는 사태도 없으며, 함재기의 이함을 캐터펄트로 하면서 착함을 후방 갑판을 통해서 동시에 진행시킬 수 있는 등의 이점이 있다.
그러나 당대의 항공모함들이 캐터펄트를 보조용 이함장치로만 사용하는 이유가 있다. 당장 캐터펄트에 함재기를 장착하고 발사하는 시간과 수고가 당대 기준으로는 의외로 많이 들어간다. 적 함대를 발견하자마자 가급적 빠른 시간내에 함재기를 대량으로 출격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캐터펄트에 함재기를 장착하고 발진시키고 다시 함재기를 장착하는 시간동안에 자력이함으로 함재기를 더 많이 날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캐터펄트는 장거리 정찰, 상공 엄호기, 특수 임무처럼 비행시간 연장이나 항속거리 증대가 필요한 상황에서 여유가 있을 때 사용하거나 대규모 출격 전에 미리 발진 준비된 함재기를 신속하게 날리는 등의 업무에 사용하였다.
당장 에식스급 항공모함에도 비슷한 구조가 제안되었으나 시간이 너무 걸린다는 이유로 반려당한 적이 있다. 에식스급 항공모함은 초기형은 긴급발진을 위해서 측면부에 있는 함재기용 엘리베이터 개구부를 통해서 캐터펄트로 직접 함재기를 날리기 위해 격납고에도 비상용 캐터펄트를 직접 설치해서 격납고에서 직접 함재기를 캐터펄트로 날린 적이 있으며 2차대전 당시에 가장 성능이 좋은 유압식 캐터펄트를 사용하는데도 캐터펄트를 보조용 이함장치로만 사용한 게 다 이유가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라프 체펠린의 압축공기식 캐터펄트는 압축공기의 용량이 제한적이라는 것과 압축공기의 재충전시간이 오래걸린다는 문제점이 있고 피탄으로 손상당하는 등의 실전시 위급사태가 발생할 경우 자력이함의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독일의 함재기 조종사들과 항공갑판의 요원들이 이함작업을 진행하는 데 지장이 올 가능성이 높다는 문제점이 있다.
나치 독일에서도 최대한 함재기를 빠르게 이함시키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항공기 엔진의 예열과정을 생략하기 위해서 격납고의 갑판상에서는 최대 8기까지의 함재기를 증기예열기를 이용하여 항공모함으로부터의 발함태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들은 함재기의 엔진을 70°C의 가동가능 온도로 유지할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서 엔진오일도 전용 저유조 안에서 미리 예열되고, 그 후 발함전의 짧은 시간 내에 수동펌프를 사용해서 함재기의 엔진안에 주입한다. 일단 함재기가 엘리베이터로 비행갑판까지 올라갔을 때,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비행갑판 위에 위치한 소켓부에 콘센트를 연결하는 전기예열기를 연결하여 기름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함재기의 엔진을 이미 정상 작동 온도 근방까지 올림으로서 함재기를 즉시 캐터펄트로 이함시킬 수 있었다.
그라프 체펠린의 착함장치는 4기의 제동용 와이어가 비행갑판의 선미방향부터 선수방향으로 순서대로 설치되었으며, 다른 2기의 긴급용 와이어가 중앙 엘리베이터의 전후에 설치되었다. 당초의 설계도에서는 전방 엘리베이터 전후에 제동용 와이어 4기의 추가를 나타내고 있어서 항공갑판 전방에서 착함하는 함재기의 회수도 생각하고 있었으나 최종 설계안에서는 제거되었다. 야간 착륙시 착함장치를 함재기 조종사가 잘 찾기 위해서 제동용 와이어는 네온등으로 조명을 켠다.
비행갑판에 돌풍이 불 것에 대비하여 높이 4m의 슬릿이 열린 강철 바람막이 2기를 설치하여 중앙 엘리베이터와 앞부분 엘리베이터 전후에 내장했다. 바람막이를 설치하면 장비 후방 약 40m에 걸쳐 비행 갑판 위의 풍속을 감소시킬 것으로 예상하였다. 바람막이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바람막이 위를 함재기가 통과가능하도록 비행갑판과 같은 높이까지 눕혀놓을 수 있었다.
4.4. 자체 무장
그라프 체펠린은 대공 방어와 대함 방어를 위해 대수상용 함포와 대공포로 무장하기로 결정한다. 특히 그라프 체펠린은 나치 독일 해군의 열악한 상황으로 인해 호위함을 거의 지원받지 못하거나 단독 항해를 할 가능성이 있어서 자체 무장을 강화할 필요성이 높았다.대수상용 함포로는 비스마르크급 전함의 부포로도 채용된 15cm/55 SK C/28을 사용한다. 형식은 2연장 주포곽방식인 MPL C/36이며 포신부앙각도가 -10 / +37도며 포신부앙속도도 초당 8도에 포좌선회속도도 초당 9도다. 포신수명이 1,100발인데 포구초속은 875m/s이며 연사속도는 분당 6 ~ 8발 수준이고 장전각도는 +3도이다. 35도 각도에서 45.3kg의 포탄을 22,000m 거리까지 날릴 수 있으며 1문당 배정된 포탄량은 115발이다. 그라프 체펠린에는 해당 2연장 주포곽을 8기를 장착해서 양현에 분산하여 상부 격납고의 전방과 후방 부위에 2기씩 배치하였다.
원래 설계자인 빌헬름 하델러 (Wilhelm Hadeler)는 해당 주포를 8문만 장착하려고 했다. 항공모함에 함재기를 많이 넣기도 곤란한데 대수상용 함포를 많이 장착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군 무기국은 설계자의 제안을 공간절약으로 오해하여 포곽을 2연장으로 변경하여 16문의 함포를 장착해버렸으며 운용을 위해 탄약고를 늘리고 전기로 움직이는 장전용 호이스트 설비를 증설하는 등의 개악을 단행해버렸다.
해당 주포의 경우에는 특성상 대수상용 함포로만 사용이 가능하며 대공사격은 불가능한 수준인데다가 포곽의 위치상 전방 포곽이 바닷물을 자주 맞아서 침수현상이 발생하는 등 운용도 힘든 문제점이 다수 지적되었다. 덤으로 1문당 115발이라는 적은 탄약 보유량으로는 난사시 순식간에 포탄이 바닥나게 되므로 과연 실전에서 구축함을 상대로도 제대로 활약할 수 있을 지 의문점이 들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라프 체펠린의 설계를 변경할 때는 대수상용 함포를 모두 제거하고 10.5cm 대공포로 모두 교체한 후 비행갑판 하부의 돌출부에 추가로 탑재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이미 군함이 진수된 상황에서 이렇게 큰 변화를 주면 함체를 근본적으로 손을 대야 한다는 문제점이 터져서 주포곽은 그대로 유지된다.
10.5 cm/65 SK C/33 |
대공포의 경우에는 10.5cm/65 SK C/33을 채용하여 2연장 대공포탑 형식으로 함교 전방에 3기를 계단식으로 설치하고 함교 후방에 3기를 계단식으로 설치하였다.
해당 대공포의 경우에는 포신부앙각도는 -8도나 -10도에서 +80도이며 포신부앙속도가 초당 10 ~ 12도고 포탑회전속도는 초당 8 ~ 10도며 3축 안정방식이라 3축 안정각도는 -17도에서 +17도이며 3축 안정속도는 초당 5 ~ 10도이다. 분당 연사속도는 15발 ~ 18발이고 포신수명은 2,950발이며 사정거리는 45도 각도로 17,700m이고 대공사격시 +80도 각도로 12,500m까지 대공포탄을 날릴 수 있다. 포탄적재량은 1문당 400발이었으며 포구초속은 900m/s 였다.
일단 포와 탄도 자체는 105mm급으로는 딱히 나무랄데 없는 대공포였으나 날이 갈수록 빨라지는 항공기에 대응하기에는 한참 모자라는 포신부앙속도와 포탑회전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약과였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포탑인데 포좌만도 못한 반쪽짜리 포탑이었다. 포탑의 하부만 존재하는 구조기 때문에 포미를 포함한 포신 전체 및 구조물이 아무런 방어조치 없이 노출되어 사소한 피탄이나 포탄 파편이 쏟아져도 동작정지 될 수 있으며, 심지어는 바닷물이 고스란히 들어오는 구조라 북해의 험한 파도로 인한 전기고장에 수시로 시달렸다고 한다.
3축 안정식 구조는 표적 획득 상태를 유지하는 것에 용이했으나 기술력 부족으로 신뢰성이 바닥을 기었으며, 구경 자체도 대함전에 사용하기에는 타격력이 모자란 105mm라 구축함 상대하기도 곤란해지는 통에 대체로 대공포로 사용했다.
대공포의 장착 위치 자체는 렉싱턴급 항공모함 같은 군함에서도 채용한 것처럼 상당히 좋은 위치였으나 함교가 우현에 있는 관계로 반대 방향인 좌현 방향의 적 항공기를 막기 위해 대공포가 발포할 경우에는 비행갑판 위의 함재기와 관련 시설이 포구에서 발생하는 후폭풍으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 외에도 대공포를 발사할 때는 항공갑판에서의 이함과 착함에 상당한 지장을 줄 가능성도 높았다.
대구경 대공기관포는 비행갑판의 가장자리를 따라 돌출부를 마련하고 그 위에 설치된 11기의 3.7cm SK C/30 2연장 대공포좌로 구성되었다. 4기는 우현측에, 6기가 좌현측, 그리고 1기가 선수루 갑판 부위에 장비되었다. 소구경 대공기관포의 경우에는 7문의 20mm MG C/30 기관총이 단장포대로 설치되어 항모의 양 측면에 배치되었다. 4문은 좌현측, 3문은 우현측에 설치되었다.
그러나 대공포도 성능이 안좋은데 대공기관포도 성능이 바닥이었다. 대구경 대공기관포로서 장비한 3.7cm/83 SK C/30 2연장 대공포는 단발식이다. 운용인원만 쳐도 일본제 25mm 3연장 대공포보다 많은데다가 분당 30발이라는 처참한 연사속도를 지녀서 페어리 소드피시 같은 허접한 복엽기 방식 뇌격기조차도 격추시키기 힘들었는데다, 이게 여기저기 고슴도치처럼 많이 박혀있던 것도 아니고 고작 22문만 장비되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어이없게도 항공기 저격을 노린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좌는 3축안정 방식이었고 포탄은 미넨게쇼스까지 도입해서 작약을 꽉 채워놓았다. 이래놓고 제대로 된 사격통제장치와 조준장치를 갖추지 않았고 포신부앙과 포좌선회를 모조리 수동으로 하기 때문에 실제 대공사격은 말 그대로 마탄의 사수급 포수가 있어야 제대로 가능했다. 물론 옆에서 광속의 속도로 장전해주는 장전수와 포신부앙과 포탑선회를 고속으로 시행하기 위해 수동핸들에 불이 나도록 미친듯이 돌리는 보조인원도 있어야 할 지경이다.
소구경 대공기관포도 탐탁치 않았다. 2cm/65 C/30의 성능은 96식 25mm 고각기총 수준이었다. 당장 20발 탄창으로 장전하는 방식 덕분에 카탈로그상 분당 280여발이 실전에서 120발 수준으로 떨어진 것도 똑같다. 그 외에도 일장일단이 있으나 전반적으로 도토리 키재기다.
그나마 2cm/65 C/30은 나중에 4연장인 Flak C/35로 바꾸어서 28문으로 화력을 증강시켰으나 구성은 여전히 2cm/65 C/30을 4연장으로 한 것이라 수량만 늘었을 뿐이며 문제점 그 자체인 3.7cm/83 SK C/30는 그대로 유지되었고 그보다 대구경의 대공무장은 일체 증설되지 않았다.
종합적으로 볼 때 자체 무장은 모조리 문제점이 많으며 특히 대공방어면에서는 답이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그라프 체펠린이 미완성으로 끝나면서 무장들은 모조리 철거된 후 다른 용도로 전환되었다.
4.5. 함재기
그라프 체펠린의 건조시 목적이 함대의 정찰업무였으므로 함재기 구성이 Bf 109T 함상전투기 10기와 Ju 87C 급강하폭격기 13기 및 Fi 167 정찰기 겸 뇌격기용 복엽기 20기로 구성되었다.그러나 Fi 167이 저성능으로 인해 1선급 전장에서 생존할 가능성이 적을 것이라고 판단되었기에 Ju 87D를 개조해서 급강하폭격도 가능하고 항공어뢰 탑재도 가능하도록 한 Ju 87E를 개발하여 12기를 탑재하고 Bf 109T의 숫자를 30기로 늘리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그라프 체펠린이 건조가 취소되었다가 재개되는 것을 반복하면서 개발하거나 개조되는 항공기가 제대로 완성되지 않거나 다시 원래 사양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반복되었으며 심지어 시제품도 만들어지지 않는 경우가 속출하였다. Ju 87C나 Ju 87E의 경우에는 개조되었다가 원상복구되거나 개조하다가 주문이 취소된 후 방치되는 등의 혼란이 발생했다.
1942년 5월에 그라프 체펠린의 건조를 재개할 때 이미 Bf 109T가 구식 항공기로 전락하였으므로 새롭게 Me 155를 신형 함재전투기로 채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라프 체펠린의 취역이 최소한 2년 이상 걸린다는 보고를 받자 Me 155를 개발하는 것을 보류하라는 비공식적인 지시가 내려왔고 결국 시제품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라프 체펠린에 탑재될 함재기용 항공부대도 편성되고 지상에서 비행갑판을 그려놓고 바람이 심한 해안가에서 훈련을 하는 등 최대한 항공모함 함재기 부대의 상황에 맞추어서 훈련을 개시했으나 항공모함이 완성되지 않은 상황이 지속되었다. 그리고 나치 독일에게는 그런 식으로 항공부대를 낭비할 여유가 없었기에 부대는 해체되고 부대원과 장비는 다른 항공부대로 재배속되었다.
5. 시련과 중지
아돌프 히틀러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1939년에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이후 우선순위가 육군에 밀린 해군은 예산의 부족으로 항공모함 건조 계획을 2척으로 줄인다. 당초 계획은 항모(Flugzeugträger) A ~ D의 네개의 함을 건조하는 것이었으나 C와 D의 건조는 시작되기도 전에 백지화된다. 게다가 원래 세계 대전이 벌어지면 영국같이 해군에 중점을 둔 국가도 건조중이던 대형함선을 건조 중지하거나 폐기처분할 정도로 상황이 안좋게 변한다.[2] 당연히 독일의 사정은 더 좋지 않았으므로 1940년엔 아예 해체 명령이 떨어지지만 다행히 노르웨이 침공를 독일이 노르웨이를 점령하게 되자 노르웨이 국가판무관부가 설립되며 해안선 방어라는 명목으로 겨우 보존된다.이 중 항모 A와 달리 항모 B (Flugzeugträger B)는 1940년 7월 1일 진수를 목표로 1938년 기공되었으나 1939년 9월 19일 이후 건조가 완전히 중지되고, 자재는 U보트 건조용으로 전용된다. 장갑 주갑판 (Armored Deck)까지 완성되어있던 선체는 1940년 2월 28일까지 녹슬도록 방치되어있다가 레더 제독의 명령으로 스크랩 명령이 떨어진 후 4개월에 걸쳐 해체된다. 크릭스마리네는 진수 전에는 함명을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름이 붙지는 않았으나, 1차 대전 중 전사한 독일 제국 해군의 비행선 지휘관 페터 슈트라서 (Peter Strasser)를 추모하기 위해서 해당인의 이름이 붙었을 가능성이 유력하였다.
그렇게 노르웨이에서 잉여하게 지낼 무렵 전함 비스마르크 등의 손실로 인해 가뜩이나 없던 해군 전력이 부족해지고 타란토 공습과 진주만 공습으로 인해 항공모함이 단순히 항공기용 수송함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는 걸 히틀러가 알게 되자 다시 그라프 체펠린을 완공시킬 것을 1942년 5월에 명령한다. 작업은 다시 박차를 가하게 되고, 적어도 1943년이나 1944년 정도면 실전 참가가 가능하리라고 보았다.
항공모함 그라프 체펠린의 진수식 |
일단 어느 정도 선체가 완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더 필요해진 것은 독일이 항공모함을 만드는 것은 처음이었으므로, 함재기 파일럿이 있을리 없었으며 그로인해 이함/착함 등의 훈련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함재기로는 Bf109T와 Ju87C/E 등을 쓰기로 되어있었으며 이는 공군에서 운용하던 형태를 항공모함에서 운용할 수 있게 개조한 형태인데 이로 인해서 항공모함의 설계를 추가로 더 변경해야 했다. 해군 항공대의 선도 국가 중 하나였던 영국처럼 호커 시허리케인, 슈퍼마린 시파이어와 같이 지상기지에서 운용하는 항공기를 함재기로 개조해서 활용하는 방법이자 신규 기체 개발의 모험 대신 이미 검증된 공군기를 개조해서 사용한다는 안전한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이 짧은 기간 사이에도 알력 다툼이 있었는데 위 문단의 상황과 맞물려 어느 정도 쉽게 해결이 되었다. 루프트바페의 공군 최고 사령관이었던 헤르만 괴링은 독일 항공군 장관과 수렵청장을 겸하고 있어서 민간 항공기 뿐 아니라 새 사냥조차 그의 허가를 받아야 가능했으므로 크릭스마리네에게 항공모함과 항공대의 지휘권을 요구해와서 대혼란을 겪었다.[3] 그럼에도 타국 해군 항공대의 발전과 비슷한 출발 노선을 목표로 하였고 육군과 해군의 항공대도 전부 공군 파견대가 들어가는 상황에서 해군이 군함까지 양보할 순 없었으므로 군함은 해군의 지휘하에 운용하되 항공기와 조종사 및 승무원, 정비사 등은 공군이 파견되어 들어가는 기존 체제를 유지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4]
하지만 항공모함이 다 완성될 때까지 영국이 손가락만 쪽쪽 빨고 있을 리가 없었다. 당연하게도 그라프 체펠린이 건조중이던 킬 항구에 야간 공습을 걸었다. 그러나 야간 기습이라 목표 식별이 힘들었기 때문에 실패하였다. 당시 영국 조종사들은 전부 자기가 그라프 체펠린을 격침시켰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그라프 체펠린이 아니라 샤른호르스트급 전함 그나이제나우가 손상을 입었던 것이다.
그 외에도 1942년 6월의 미드웨이 해전에서 정규항공모함 4척을 잃은 일본 제국 해군은 그라프 체펠린의 구입의사를 나치 독일에게 보냈다. 하지만 이미 일본으로 갈 수 있는 항로가 끊어진 상황인지라 나치 독일은 해당 제안을 거부하고 대신 일본 고베시 항구에 묶여 있던 고속 화물여객선인 샤른호르스트를 매각하여 일본군이 개조한 후 신요가 된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그라프 체펠린의 완성은 실패하였는데 영국 공군, 헤르만 괴링, 뒤집힌 전황도 아닌 지속 건조를 명령한 아돌프 히틀러에 의해 저지된다. 바렌츠 해 해전에서 독일 해군 수상함 부대가 보인 졸렬한 전투때문에 분노가 치민 히틀러가 그라프 체펠린의 건조를 중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결국 1943년 1월에 95% 정도 완성된 상태에서 건조가 완전히 중단되고 무장은 해체되어 노르웨이의 해안포대로 이동되었다. 이 때 티르피츠도 해체될 뻔한 것을 카를 되니츠가 살려 놓는다. 건조나 개장 계획이 취소된 다른 함선들의 함포도 노르웨이의 해안포로 전용된다.
6. 소련 해군의 노획 항공모함
독일 지도부는 더이상 그라프 체펠린급 항공모함에 관심을 기울일 수 없었기에 그라프 체펠린은 목재 저장 창고등 군함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용도로 사용되면서 반쯤 방치된 상태를 유지하다가, 1945년 4월 슈테틴 항에서 소련군의 진격을 앞두고 항구를 폐쇄할 목적으로 흘수 밑의 밸브를 열어 자침한다.1945년 여름이 시작되자 그라프 체펠린은 소련 해군의 노획함이 되었으며 항공모함으로의 취역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먼저 선체 수밀상태를 복원하였고 펌프를 여러개를 사용하여 해수를 모두 제거함과 동시에 소련 본국으로 옮긴 후 수리와 복구 및 개장을 통해 항모로 쓰려고 한 것이다. 이제 이 시점부터는 크릭스마리네의 항공모함 그라프 체펠린(Graf Zeppelin)이 아닌 소련 해군의 체펠린(Цеппелин)으로 함명도 부여 받았으며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한 상태였다.
그러나 1947년 도시 그단스크를 거쳐 이동한 체펠린은 수년간 많은 논의 끝에 가라앉아 있던 동안 발생한 부식 등 전체적인 손상이 심각하다 판단해 결국 훈련용 표적함으로 쓰기로 한다. 이미 해수에 장기간 노출되어 선체 강성이 온전하지 못하였으며 항공모함으로 완공한 이후에도 선체가 버틸 수 없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결정에 따라 실제 작전중인 항공모함을 가정해서 내부에 유류와 폭탄을 적재한 상태로 포격과 공습의 목표가 되었다. 이렇게 세심한 준비를 마치고 표적으로 쓴 이유는 실전에 투입된 상태의 항공모함을 격침하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양의 폭탄을 쏟아부어야 하는가에 대해 알기 위해서였다. 소련 해군의 노획 항공모함 체펠린은 예상보다는 좀 더 버텼지만 결국 발트해의 바닷속으로 가라앉으며 함생을 마감하였다.
이렇게 가라앉은 그라프 체펠린은 21세기가 되어서야 발견되었는데 소유권 문제를 두고 독일, 러시아, 폴란드간에 약간의 잡음이 있었지만 결국 바다 속에 방치되었다. 하다 못해 방사능에 노출되지 않은 "Low-Background Steel"[5] 때문이라도 어느 정도의 가치는 있으나, 상술한 소유권 문제 때문에 쉽사리 인양도 불가능한 상태다.
7. 평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Graf_Zeppelin.jpg | |
완성된 상태를 가정한 그라프 체펠린급의 예상 모형 |
나치 독일의 국가적 역량으로는 완성될 수 있었으나 여러 내부 사정에 의해 끝내 취역하지 못한 독일의 '환상의 항모'라 그런지 미완성함치고는 아주 인기가 많은 편이다. 또한 함생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비스마르크 추격전에 비할 바는 못하지만 복잡한 이해관계가 숨겨져 있는데다 건조 이전 선행 설계, 건조 당시 설계, 후속함 설계 등 설계안 청사진도 많아 여러 주목을 받는 함선이다. 실제 당시 독일 내부 자료에 의하면 상당한 준비와 기대를 걸었던 함선이자 동맹국 해군인 일본 제국 해군도 관심을 보이는 등 예정대로 완성되었다면 완공 시기 기준 평균에 버금가는 성능은 보유할 수 있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처음부터 항공모함으로 만들어진 함선인 만큼 최고 속도가 35노트로 빠르고 비행갑판 면적도 충분해 함재기의 운용에 용이하다. 최상단의 청사진에서 보이듯이 일본 항공모함들과는 달리 캐터펄트도 장착되어 있었다. 항공모함에게 중요한 방뢰능력의 경우 측면에 벌지가 장착되어 주력 전함이었던 비스마르크급 전함을 능가하는 방뢰능력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육해공에서 연합군의 항공 전력에 쓴맛을 봤던 만큼 대공포도 그럭저럭 어느 정도 수량은 장착되어 있다. 6인치급 주포가 16문이나 장착되어 있으므로 이론상으로는 항공모함을 호위중인 호위함이 약간 부족하더라도 동등한 전투 능력을 보일 수 있다.
항공모함의 전투력을 결정하는 함재기의 경우 배치 시점이 관건인데 초기 계획인 1940년 하반기에 성공적으로 배치가 되었다면 Bf109T와 Ju87의 성능에 힘입어 영국 해군에게 상당히 위협적인 전력으로 자리잡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 시점에서 영국 항공모함들의 함재기는 상태가 심각하여 전투기는 페어리 풀머 같은 괴작이 주류였고 항공모함에 따라서는 아예 전투기를 배치하지 않고 폭격기나 뇌격기만 배치된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영국 공군의 작전범위 바깥에서 대응할 수단이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영국 항공모함들의 작전에 제약이 걸릴 것이고 비스마르크 추격전에 동행할 수 있다면 비스마르크가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왔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1942년에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시허리케인이나 와일드캣이 배치되어 영국이 대응하는 자체는 가능하지만 질적으로는 독일측이 그럭저럭 비슷힌 수준으로는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운용하기에 따라서 그럭저럭 활약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1943년 하반기에 배치될 경우 영국이 시파이어와 F4U를 항공모함에 배치하기 시작한 시점과 거의 겹치기 때문에 공격적으로 운용하기는 힘들고 티르피츠와 함께 철저하게 영국의 신경을 긁는 식의 운용이 최선일 것이다.
다만 실제로 완성되었다고 해도 적국이었던 영국 및 미국의 거대한 대양 해군 앞에서는 주력 항공모함으로 많이 부족한 것은 사실인데다, 동맹국이자 해군 항공대의 선두주자 중 하나인 일본 제국과 비교하더라도 설계 방향에서부터 문제가 있는 등 당시 독일이 처한 상황 앞에서 별 효과는 없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영국 해군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라프 체펠린의 예상 완공 시기쯤 되면 대전기 최강 항모 중 하나인 에식스급 항공모함이 마구 취역하고 있었다. 데일리 항모들은 덤이다.
조금만 짚어봐도 초기 항공모함의 등장 역사와 비슷하게 항공모함이 구축함 등을 직접 상대하려고 대수상 전용 대구경 함포를 달아놓았고 함체 자체도 설계상의 결함이 있어서 다시 건조를 시작했을 때는 벌지를 측면에 더덕더덕 붙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함포를 대공포나 양용포로 일원화하고 가급적 포탑 형태로 달아놓은 항공모함 선도국들의 항모들과는 달리 대수상 전용 함포를 포곽 형태로 달아놓아서 포각도 좁아 화력 집중이 어렵고 유폭 위험도 크고 대공전시 무용지물이 되며 제거하려면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단순히 6인치급 함포 16문이라고 하면 당대 유럽의 군축조약 준수형 경순양함 2척이 장비한 주포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한 방향으로 집중 가능한 최대 화력은 절반밖에 안 되는 8문에 불과하다. 게다가 포곽의 특성상 함포가 설치된 높이도 낮고 바닷물을 뒤집어써서 침수와 고장이 빈발한다. 당대 전함들이 부포의 수량이 줄어드는 것을 무릅쓰고 포곽을 철거하고 포탑으로 전환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내부 공간을 상당하게 잡아먹으므로 함재기 탑재량에 악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설계변경을 하면서 포곽을 제거하려고 했으나 함체 전체를 뒤집어 엎어야 하기에 실패하였다.
여기에 더해서 항공모함은 홀로 다닐 경우에는 잠수함 등에게 맛있는 표적을 제공할 뿐이라서 반드시 호위함이 필요한데 당시 나치 독일 해군의 사정으로는 주력함인 전함조차 호위 전력이 부실한데 항공모함에 붙여줄 적절한 호위 전력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양으로 빠져나가려면 적국 해군의 방어망은 물론이거니와 지형 상의 문제로 인해 영국 본토 등에서 날아오는 영국 공군과 미국 육군 항공대의 공습까지 막아야 하는데 함재기의 숫자도 그렇게 많지 않아서 이걸 다 방어하는 것은 무리다.
대공포도 어느 정도 숫자는 채웠지만 VT신관도 없고 영미 해군의 오리콘 20mm 기관포과 보포스 40mm 포와 비교하면 성능이 크게 떨어지고 기본적인 성능도 여러가지 단점 탓에 답이 없는 능력을 보이므로 공습을 받게 되면 전혀 만족스럽지 못한 대공 능력을 보여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비스마르크급 전함에서 나오듯이 나치 독일 해군의 문제점중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뽑히는 문제점이자 이론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이 대공화기의 부실함이며 개선의 미흡함과 나치 독일 육군이나 나치 독일 공군에서 사용하는 대공포같은 대안이 있는데도 채택하지 않는 등의 대삽질이 항상 언급되는 것이다.
애초에 영미 해군과 전력차가 너무 크다. 가뜩이나 항공모함과 함재기의 운용 노하우도 모자란 판에 함재기의 성능도 육상에서 강하다고 해서 함재기로 개조한 후에도 똑같이 강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데다가 숫자면에서도 이 정도 수준의 심각한 격차가 나면 별 의미가 없다. 실제로도 시파이어 같이 명기임에도 함재기로 개조했더니 기대에 못미치는 경우도 있고 Bf109도 스핏파이어와 동일하게 철저한 제공기로 설계된 기종이라 동일한 문제를 공유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도 함재기로 개조되면서 발생한 무게와 항력 요소 등의 증가가 기체의 성능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게다가 미국은 당대 최강의 함재기들인 F6F, F4U, TBF, SB2C 등의 기체들을 보유하고 있었으니 더욱 의미가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라프 체펠린급 항공모함은 실제 성능은 별로 만족스럽지 않지만 태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전설이 된 군함이라고 볼 수 있다. 무리하게 취역시켰더라도 항구를 떠나지도 못하고 밥만 축내다가 전후 연합군에 배상함으로 넘어가거나, 용감하게 구축함 2 ~ 3척과 함께 단독출격한 후 영국 해군이나 미국 해군의 집중공격을 맞고 격침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8. 매체에서의 등장
- 스트라이커즈 1945 2의 북극면 보스로 등장한다. 그라프 체펠린(스트라이커즈 1945) 항목을 참고. 게임에서 등장하는 그라프 체펠린 중에서 가장 유명한 녀석으로 추정된다.
- 네이비필드에서 독일 2차 항공모함으로 등장한다.
- 네이비필드2에서 독일 9티어 항공모함으로 등장한다.
- 내가 히틀러라니!에서는 괴링이 히틀러가 흘린 정보에 의해 레지스탕스에게 암살되는 바람에 그라프 체펠린이 완성되고, 대낮에 영국 해안을 당당히 항해해 (영국 해군이 낚여서 엉뚱한 데로 간 데다 독일 수상함대가 호위하고 있어서 당장 공격할 수가 없었다.) 영국 뇌격기 50여 기와 전투기 100여 대, 중폭격기 20여 대를 박살내고 빠져나가며 루프트바페와 함께 영국군에게 빅엿을 선사한다. 당시 독일 함대는 샤른호르스트, 티르피츠, 프린츠 오이겐, 그나이제나우, 그라프 체펠린, 구축함 8척, 어뢰정 12척 등으로 구성된, 크릭스마리네의 U보트를 제외하고는 전체 전력이라고 해도 무방할 함대였다. 이후 대서양 호송선단 부근에서 계속 깔짝거리면서 영국 해군을 신경쇠약에 걸리게 하고, 출항했다가 이를 노리고 출격한 영국 함대가 U보트와 어뢰정에게 엿을 먹는 패턴이 종전 때까지 반복된다. 이것 때문에 영국 해군은 전함을 몇 척씩 날려먹었다. U보트를 잡자니 전함과 항공모함한테 구축함이 사냥당하고 함대를 공격하자니 전함과 순양함, 항모가 유보트에게 당하는 미치고 팔짝 뛸 상황, 그렇다고 대규모 함대를 편성하자니 대서양 수송선단이 마비될 지경...
- 히틀러가 되었다에서 항공모함의 중요성을 알고 있던 주인공의 지시로 역사보다 일찍 등장한다. 여기선 헤르만 괴링이 마약에 중독되지 않은 정상인인지라, 해군 항공대 창설을 지원하는 등 해군에게 협조적으로 나오고 덕분에 그라프 체펠린은 노르웨이 전역에서 영국 해군을 상대로 활약한다. 전후 예산 문제로 크릭스마리네의 함정들이 해체되거나 팔려나가는 신세가 되었음에도 독일 최초의 항공모함이라는 상징성 덕에 보존이 결정되어 해상 박물관으로 살아남게 된다.
- 월드 오브 워쉽에서 독일의 항공모함으로 본함과 여러 설계안이 모두 등장한다. 본함 그라프 체펠린이 독일 8티어 프리미엄 항공모함으로 등장하는 것에 이어, 선행 설계안이 에리히 뢰벤하르트로 명명되어 독일 6티어 프리미엄 항공모함으로 등장하고 후기 설계안이 아우구스트 폰 파르제팔로 명명되어 독일 8티어 정규 항공모함으로 등장한다. 특히 앞선 결론의 분석과 달리 전력 불균형 같은 현실에서의 문제는 함선 수 등의 밸런스를 맞추는 워쉽에서는 해결되는 데다가 쓸데없는 함포 또한 다른 유저들이 협동을 더럽게 안 하는 상황에서는 호위 없는 항모에 돌격하는 구축함 등을 격퇴하는데 요긴하게 쓰인다.
선행 설계안 '에리히 뢰벤하르트' | 본함 '그라프 체펠린' | 후기 설계안 '아우구스트 폰 파르제팔' |
- 모바일 게임 큐라레: 마법 도서관에도 출연했다. 모에선은 기본이요, 수영복 버전도 있다.
- 함대 컬렉션에 칸무스로 등장한다, 그라프 체펠린(함대 컬렉션) 참조.
- 중국 모바일게임인 전함소녀에서도 등장한다. 그라프 체펠린(전함소녀), 페터 슈트라서(전함소녀) 참조.
- 벽람항로에서도 등장한다. 그라프 체펠린(벽람항로)와 아우구스트 폰 파르제팔, 페터 슈트라서(벽람항로) 항목 참조.
- 호시노 유키노부의 '멸망한 짐승들의 바다'라는 단편만화집에서는 소비에트 연방에 의해 MiG-19를 함재기로 이용하는 원자력 추진 쇄빙선 항공모함으로 마개조되어 등장하나 방사능 사고로 자침한다. 이를 미 해군 원자력 잠수함인 노틸러스가 목격한다.
- 걸즈 앤 판처에서 쿠로모리미네 여학원의 학원함으로 등장한다.
- Naval Creed:Warships에서 4티어 프리미엄 항모로 등장한다, 상당히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항모로, 특히 급폭기의 자동 조준원이 구축함 안쪽으로 들어가는 막장 조준원으로 유명하다, 다만 제공 잡는 것에는 심히 문제가 있는 편이다.
- SCP 재단의 항목들 중 SCP-1942-JP에서 언급된다. 독일 제3제국의 오컬트 부서 아넨에르베 암흑군단이 니드호그라는 이름으로 완성시킨 모양이다.
- 대체역사소설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에서는 라이히스마리네의 유일한 항공모함으로서 등장한다. 역사가 바뀌어 영국의 협력으로 함포가 철거되고 함재기 운용에 최적화가 된 그라프 체펠린은 이후 비스마르크와 함께 태평양 전선에 참가. 미, 영 해군과 함께 일본 제국 연합함대와 최후의 함대 결전을 치르는 등 활약한다.
- '터닝포인트: 그라프 체펠린(Turning Point: Graf Zeppelin)'이란 TV 시리즈에서 1942년에 완성되어 군함 2척의 호위를 받으며 뉴욕을 공격한다는 내용이 나왔다.#
- fps게임 스나이퍼 엘리트 5의 dlc "깨어난 크라켄"에서 등장. V2로켓과 그 기술을 일본제국에 전달하여 미 본토에 피해를 입힌다는 크라켄 계획을 위해 징발한듯 하다. 다만 여기서도 건조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방치되어있었는지, 크라켄 계획때문에 급하게 재건조를 하고있었다.
9. 모형화
미완성함이기는 하지만 2차 세계 대전 독일의 유일한 항공모함이라는 점 때문에 인기가 많은데다 설계 자료도 자세하게 남아 있어 모형화가 많이 이루어졌다.- 1/350
- 베리파이어 모델
베리파이어 모델의 데뷔작이 될 뻔했던 킷이다. 트럼페터 킷과 비교해서 장단점이 있는 킷이었지만 사출 오류로 수거 후 폐기되었다. 이후 2020년 9월 타오바오 일부 상점에서 소량 재출시되었다. 디테일도 좋고 동사의 다이호와는 달리 함재기[6]도 넉넉히 넣어 준다. 에칭 2장도 포함되어 있다. 제품 번호는 VF350801인데 워낙 소량 판매되었다 보니 알려지지 않아 어디서도 확인이 불가능하다. 오직 제품 박스에 쓰여있을 뿐이다. - 트럼페터
2017년 발매된 제품이다. 요즘 트럼페터 함선 킷답게 평이 상당히 좋다. 선체의 세부 비율이 살짝 아쉽고 디테일이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좋은 품질의 키트라는 평이다. 에칭도 기본적으로 포함되어 있지만 엘리베이터와 캐터펄트 부분은 없다. 전용 디테일 업 세트도 많이 출시되어 있다. 같은 해 2번함인 페터 슈트라서도 발매되었다. 정가는 두 킷 모두 437위안이다.
- 1/400
- JSC
2004년 발매된 제품이다.
- 1/700
- 오렌지 하비
2013년 발매된 레진 키트이다. - 트럼페터
2017년 1번함 그라프 체펠린, 2018년 2번함 페터 슈트라서가 발매되었다.
- 1/1200
- XP Forge
2020년 발매된 레진 키트이다.
- 1/1250
- Navis-Neptun
2010년대 발매된 레진 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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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탑을 올리자는 주장까지도 있었다. 활주로 길이 문제로 폐기되었지만.[2] 전쟁이 터졌는데 군함 건조 중지라니?할 수도 있지만, 이는 최소 몇달에서 최대 몇년이 걸려야 전력화시킬 수 있는 대형 함선의 건조에 들어갈 자원, 인력, 돈을 투입할 여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미국같이 능력이 넘쳐서 전시 필요 물자를 다 만들어 내면서도 대형 군함을 대량으로 건조한 사례는 예외 중의 예외이다. 일본 역시 영국처럼 거의 완공 상태에 있었던 대형함들만을 취역시킬 수 있었다.[3] 이와 비슷한 사례로 이탈리아 해군은 수상기를 제외한 항공기를 보유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해버린 이탈로 발보가 있다. 영국의 경우도 Fleet Air Arm이 1924년에 공군에서 창설되었다가 1937년에 해군으로 넘어간다. 그 이전까지는 영국 함재전투기들도 공군 소속이었다는 이야기이다.[4] 오늘날에도 미중러 해군같이 해양 패권을 두고 다투는 막강한 해군을 제외하면 항모 함재기들은 이런 식으로 운용된다.[5] 1940 ~ 1950년대 핵개발과 여러 핵실험으로 지구 대기의 방사선량이 증가하면서 제철 공정 중 미량의 방사성 동위원소가 섞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핵개발 이후 생산된 강철은 방사능에 민감한 정밀 기기에 쓸 수 없다. 현대 기술로 제철 공정 중 섞이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걸러낼 수는 있지만, 양차대전 중 수없이 침몰한 군함들의 강철을 인양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 그럴 이유가 없다.[6] 그라프 체펠린의 기본 함재기 2종 외에 Me 262도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