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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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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한국사의 제철
2.1.1. 삼국시대2.1.2. 남북국 ~ 고려시대2.1.3. 조선시대2.1.4. 근대·현대
2.2. 세계사의 제철
3. 제철로의 종류
3.1. 고로, 용광로3.2. 용선로3.3. 반사로3.4. 도가니법3.5. 전로(轉爐, Converter)3.6. 평로3.7. 전기로3.8. 파이넥스 공법
4. 철의 성분별 분류5. 제철의 가공방식별 분류6. 철의 형상별 분류7. 관련 문서

1. 개요

제철(製鐵)이란, 철광석 또는 토철, 사철에서 철을 추출하여, 각종 철재를 만드는 공정을 말한다.

철기문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민족의 융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철기는 생활도구에서 무기류에 이르기까지 문화적인 중요성이 높았다. 특히 삼국이 각축을 벌였던 고대에는 철의 생산이 곧 국가의 힘과 직결되는 중요한 사항이였던 만큼 각국은 철의 생산에 많은 인력을 투입하였으며, 제철공정에 다양한 기술들이 접목 되었다.

제철이라는 것은 야금의 한 분야이고, 철광석 또는 사철로부터 철을 추출하고 정련해서 각종 용도와 성격에 맞게 철의 조직을 필요한 형태로 만드는 기술을 말한다.

이러한 제철기술은 고대부터 시작해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매우 중요한 분야 이며, 이와 같은 야금의 기초가 되는 학문을 야금학 또는 금속 공학이라고 하며, 제철,야금 기술을 주체로 하는 공업을 금속공업이라고 한다. 금속공업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우리 나라에서 중요 산업 중 하나이며, 특히 그 가운데서 철강공업은 매우 큰 생산량을 보유하고 있다.

국립중원재단문화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철강생산량은 전 세계 생산량의 1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2. 역사

2.1. 한국사의 제철

2.1.1. 삼국시대

한국 고고학에서 철기시대란 철기가 사용되기 시작한 서기전 300년경부터 삼국이 정립된 서기 300년경까지를 말하는 만큼, 기원전 1세기에서 4세기에 철의 제련과 제조를 전역에서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제철작업의 시작은 우선 철광석 또는 사철이나 토철을 채취하는 채광 작업부터 시작되고, 제철에 주로 쓰이는 철광석은 자철석, 황철석, 갈척석, 적철석 등이 있으며, 한반도에서는 주로 자철석과 적철석이 사용되었다. 사철같은 경우 해안이나 강변 등에서 주로 채취였는데, 주로 자철광이 주성분을 이루고 있으며, 그 밖에는 적철광이나 갈철광, 티타늄 철석이 혼합 되어 있다.

고대 한국의 제철 과정에 대한 연구는 주로 한성 백제 유적을 통한 추론에 의존하고 있다. 삼국시대 제철소 유적지를 통하여 추론해보면, 채광된 철광석들은 철 성분이 높은 고급 철광석, 사철을 선별하는 과정인 선광 작업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제련에 앞서서 광석을 선광하면 운송의 노동력이 절감되고 제련 공정에서 금속 손실과 제련비 감소 등의 여러가지 이점이 있었다.

다음 공정으로는 배소 작업에 들어가는데, 배소는 광석이 용해되지 않는 정도의 고온으로 철광석 표면에 화학 반응을 일으켜 환원이 잘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하고, 광석 표면에 균열을 일으켜서 파쇄하기 용이하게 하는 공정이다. 철광석이 쉽게 파쇄되면, 제련을 할때 철광 내부까지 쉽게 온도가 전달이 되고 이는 제련 비용을 감소 시키며 운송비용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배소과정이 끝나면 제련공정을 거치게 된다. 철광석을 용광로 내에서 목탄[1]을 매개로 환원시켜 철을 얻는 과정이다. 제련공정에서 철의 탄소량과 온도등 용광로의 조건에 따라 탄소량이 높은 선철과 탄소량이 낮은 괴련철이 생산된다. 그 중간단계인 반환원괴가 생성되기도 한다.

이렇게 형성된 철괴는 정련공정에 들어가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추론이 각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다.

가장 흔하게 받아들여지는 고대 한성 백제의 제련법은 접쇠단조가공이다. 접쇠단조가공이란 말 그대로 가열한 쇳덩이를 단조로 편 다음, 접어서 다시 두들기를 반복하는 방식이다. 쇠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쇠 내의 탄소량을 조절하는 것이 목적이다.

반면 한 논문에서는 한성백제 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초강법이 전래되어 운용되었다고 본다.관련 논문. 초강법에 대해서는 세계사 부분에서 후술한다. 문제는 한반도에서 명확한 초강로가 발굴된 사례가 아직 없어 실제로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오산 수천동, 포천 중리 등에서 발굴된 철기의 미세조직상 초강법으로 제조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초강제법이 있었을 가능성과 개연성은 충분하다.

한편 어떤 철기는 현대에도 흔히 보이는 공구강의 품질과 거의 동일하거나 더 좋은 수준의 강재까지도 존재했기 때문에, 이러한 철기는 남북조 시대 중국에서 개발되었다는 관강법으로 제련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관강법 역시 전래되었다는 주장도 있다.해당 논문

일본 정창원에서 소유하고 있는 신라 도검으로 추정되는 유물의 경우 소량의 티타늄이 섞여있다고 한다. 이러한 경우로 보아 신라 또한 사철로 된 철기 또한 만들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현재 문화재청 산하기관에서 고대 삼국시대 용광로를 복원하고 제련과정을 연구하고 있는 중이고 민간에서도 소수나마 다양하게 고증을 거쳐 연구하고 있다.

2.1.2. 남북국 ~ 고려시대

현재 고려시대 철광석을 이용한 제철소로 진척 석장리,밀양 사촌 유적지, 충주 다인철소가 발견되었다. 이은철 전통제철연구가는 해당 유적지의 연구 결과로 현재 학계에서 전통적으로 생각하고있는 화로를 만들고, 처인성에서 발견된 고려칼을 연구,복원하였다.

2.1.3. 조선시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이성계에 의하여 건국이 되자, 조선은 초기부터 광물을 채굴하는데 박차를 가하였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의하면 철장은 안동·합천·용궁·산은·무주·영덕·무안·고산 등 17개소가 있었고, 이들 철장은 제련소에서 농한기에 광석을 취련하여 상납하게 하였다. 세종 당시 조선의 철의 산지는 34개소인데 이 가운데 사철을 생산하는 곳이 21개소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의 철은 크게 생철과 숙철로 나눴다. 생철은 망치로 두드리면 깨져서 주조로 가공하는 쇠, 숙철은 망치로 두들겨서 단조하는 쇠를 말했다. 생철은 무쇠라고도 불렀고, 숙철은 시우쇠라고도 했다. 시우쇠는 연철에서부터 연강까지의 스펙트럼이 포함된다. 조선의 제철법은 서구의 것과 달랐기 때문에 서구의 철 분류법에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

조선시대의 철광 제련법은 다음과 같다. 쇠부리가마에 철광석을 넣고 1,200∼1,300℃ 사이에서 장시간 가열하면 묵철 또는 잡쇠 덩어리(선철)가 바닥에 생긴다. 이 덩어리를 다시 강엿쇠둑과 판장쇠둑에서 잘게 부수고 가열한 뒤 다시 두드리면 숙철이 된다. 맨 처음 만들어진 시우쇠를 신철(薪鐵)이라고 하는데, 이 신철 1근을 두드려 정련하면 품질이 열등한 정철 4냥을 얻었다.

이러한 괴련철 위주의 제철술은 고대에서부터 이어진 것에서 크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이 때문에 조선시대 전통 제철술을 재현 연구하는 프로젝트에서는 서구의 고대 제철 기술 재현 연구를 참고하기도 하였다.[2]

언제 실전되었는지는 기록의 부족으로 불명확하나, 조선 시대에는 고대 한성 백제에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초강법이나 관강법은 사용되지 않았고 단조가공을 통해 주로 제작되었다. 하지만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이 기록한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는, 우리나라의 대장장이들 사이에서 비밀스레 전해지는 제철법이 있는데 자기도 자세히는 못 들었지만 대강 들은바로는 그것이 중국 옛 기록에 있는 관강법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실증할만한 유적이나 유물은 발견된 바가 없다.[3]

2.1.4. 근대·현대

2.2. 세계사의 제철

강철의 대량생산은 산업혁명의 중요한 업적으로 꼽힐 만큼, 을 비롯한 금속의 양산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했다. 대약진운동 시절 대표 오류로 치부된 토법고로조차도 중세 중~후기에 들어서야 만들 수 있었다. 천 년 이상 강철을 마음대로 생산하지 못했던 유럽과 원시적 침탄로를 오랫동안 사용한 일본 등의 문헌은 강철 제조법의 어려움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아시아에서는 중세 말까지도 꾸준히 쓰였던 단련강 제조법이 인도-중국에서는 기원전 7세기 무렵에 이미 완성되었다. 유럽에서는 도가니 제강법, 반사로 기술, 베세머 전로법 등이 18세기~19세기에 개발되었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고대부터 원리적으로 같거나 유사한 수준의 제강 기술이 있었다.

예를 들어, 반사로와 같은 구조의 제철로는 중세 일본에도 존재했고, 도가니 제강법과 같은 원리의 제강법은 고대 인도에도 있었다. 베세머 전로법과 원리가 같은 제강기술(초강법)은 고대 중국에 이미 존재했다. 한나라 시대에 발명된 초강법은 한국의 원삼국시대에도 한성 백제가 수입하여 운용했다.

세계 문명은 일반적으로 청동기에서 철기로 넘어갔지만,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청동기를 거치지 않고 외부에서 전파된 철기를 바로 사용했다. Primitive Technology와 같은 유튜브 채널에서도 청동기 기술을 생략하고 바로 철기를 사용하는 영상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으며, 대체로 도가니법을 이용한다. 이는 청동기를 위한 동과 주석이 흔치 않은 반면 철은 흔해서 쉽게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2.1. 고대

고온을 얻기 어려운 초창기의 철기는 철을 녹이는 대신에 직접 환원법을 통해 약 섭씨 900℃ 정도의 온도에서 처음부터 고체인 해면상(sponge), 그러니까 스펀지 형태의 괴철(塊鐵, Bloom)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철의 1회 생산량 1~10kg 급 원시적인 자연흡기식 소형 괴철로(Bloomery)에 목탄과 석회와 철광석을 혼입한 후 가열하면 철광석이 완전히 녹지 않아 스펀지 구조로 녹은 슬래그와 철이 섞인 괴가 된다. 이렇게 얻은 해면상 철괴는 내부에 기공이 많고 슬래그가 다량 함유되어 있었다. 이런 기공들은 하나하나가 파단의 시발점이 되기 때문에 기공이 많은 철을 그대로 썼다간 뽀각…때문에 미칠 듯한 망치질을 통해 이런 기공을 눌러서 도로 접합시켜 붙이면서 슬래그를 부숴버려야 제대로 쓸 수 있었다. 이 과정에는 많은 노동력이 소모되었다. 이렇게 얻은 탄소 함유량이 매우 낮은 철을 'Wrought Iron'이라고 한다.[4] 흔히 연철[5]로 번역된다.

이걸 또 부순 후 괴철로에 녹여서 괴철로 만든 후 다시 망치질을 하는 과정을 반복해서 슬래그를 더 제거해 철의 순도를 높힐 수 있었다.

철에 탄소를 약간 포함시키면 구성 조직의 변화에 따라 강도가 높은 강철이 되는데, 이상의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연철을 목탄불에 달구면서 표면침탄[6]시키고, 가열해서 때리고 접고 꼬아주어서 속의 연철층과 겉의 강철층이 서로 켜켜히 겹치게 해서 패턴웰딩해서 강철을 만들었다. 이러한 침탄 과정은 철괴를 탄소, 즉 숯이 풍부한 환경에서 수백 도의 고온으로 가열하여 몇 주간이고 기다려야 하는 엄청나게 연료 낭비적인 값비싼 과정이었다.

유럽은 아시아에 비해서 제강기술이 오랜기간 정체되어있어 강철의 생산량이 부족했는데 바이킹 소드는 무역이 활발한 바이킹이 아시아에서 철을 수입해 만들어 유명해졌다.
2.2.1.1. 중국
괴철로 제철법과 표면침탄을 이용한 제강법을 중세까지도 사용했던 서유럽과 달리, 고대 중국에서는 주철을 만들고 주철에서 탈탄, 즉 탄소를 제거하여 강철을 만드는 법을 이미 발명하였다. 이러한 제강법은 명나라 시대 백과사전 천공개물에서는 초강법(秒鋼法)이라고 이름 붙였다.

초강법은 녹인 주철에 잘게 빻은 고순도 철광석이나 붉은 녹을 첨가하고 공기 중에 노출된 상태에서 막대로 저어주는 것으로, 고순도 철광석과 녹은 즉 산화철덩어리이므로 고온에서 산화철이 분해되며 내뿜는 산소가 탄소와 결합하여 이산화탄소가 되어 증발하며 탈탄 작용을 한다. 공기 중에 노출시켜 휘젓는 것 역시 쇳물 속의 탄소를 공기 중의 산소와 접촉시켜 탈탄을 하게 된다. 이러한 초강법은 서구는 산업혁명 시대에 발명한 베세머법과 원리가 같다는 평가가 흔히 나타난다. 일설에서는 반사로법과 같다고 비교하기도 한다.

그러나 초강법은 원리 상으로 보면 매우 진보한 것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약점 때문에 중국에서 강철이 대량생산되지는 못했다. 문제의 원인은 무쇠는 비교적 낮은 온도인 1,200도에서 녹지만, 무쇠로부터 탄소를 제거한 강철은 1,500도 수준에서 녹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무쇠를 공기와 접촉시켜 어느 정도 탄소를 산화시키면 곧 굳어져서 탈탄 작용이 멈췄다. 이 문제는 명나라 시기에는 초강을 하는 로의 구조를 바꿔서 온도를 올려 해결이 되긴 했는데, 그러자 탈탄효과가 지나쳐 강철이 아니라 연철만 생산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또 휘젓는 과정에서 공기가 철에 유입되어 기포가 형성되기 쉬웠다. 또한 좋은 철광석은 귀하기에 녹여서 철로 만드는데 써야했고 멀쩡한 철을 탈탄제로 쓰자고 일부러 녹슬게 할 수도 없었기에 주로 사용되었던 대체재는 이산화규소가 주성분인 황토흙이었는데, 황토흙은 산소를 내놓아 탄소를 태워서 날리는 동시에 잔존 규소가 탄소와 반응하여 악질 슬래그를 생성해 품질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었다. 이렇게 초강법으로 얻은, 기포와 슬래그가 다량 함유된 고체 상태의 강철괴에 다시 미칠 듯이 망치질을 해서 내부 조직을 다듬은 뒤에야 쓸 만한 강철괴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강철은 직접 환원법과 침탄으로 얻은 강철에 비해 성분을 조절할 여지가 적어 숙련된 장인이 침탄법과 접쇠로 만든 철에 비해서도 질이 낮았다. 무협에서 나오는 백련정강이 이런 초강법으로 만든 철을 망치질하여 단련한 철로, 백련강이라는 표현은 한나라 시대의 기록에 나온다.

북송 시대에는 제철법으로 관강법(灌鋼法)이 존재[7] 했는데,이것은 주철과 연철을 한데 모아 융해하는 제철법이다. 후술할 서구의 도가니법과 원리상 같은 것으로, 조직을 미세관찰해도 현대의 공구강과 비슷한 수준의 우수한 질의 강철을 만들 수 있었다. 이러한 관강법은 남북조 시대에 개발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관강법으로도 강철을 대량 양산하지는 못했는데, 관강법의 주목적은 탄소량을 조절하는게 아니라, 비교적 녹이기 힘든 연철을 주철과 함께 섞으면 연철도 쉽게 녹는다는 점을 이용해서 녹여서 기포와 슬래그를 배출시키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관강법으로 강철이 생산되는 것은 주철을 더 많이 섞어 녹였을 때의 경우였는데 후대로 갈수록 연철을 더 많이 써서 관강법으로 연철이 주로 생산되게 된다.
2.2.1.2. 인도
인도는 다마스쿠스 강의 사례에서 보이듯 고대에서부터 도가니법과 유사한 제강법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다마스쿠스 강은 제법만이 아니라 지역의 철광석의 성분과도 관련이 큰 것이었고, 광석이 고갈되자 제작법도 실전되었다.

2.2.2. 중세

십자군 전쟁 혹은 몽골 제국의 정복전쟁으로 동양의 제강기술과 다마스쿠스 강이 들어와 정체되어있던 서양의 제강기술이 발전하며 철의 생산량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수차(물레방아)를 이용해서 강제과급[8]하여, 규모를 최대 300kg급까지 키운 발전형 대형 괴철로로 연철을 생산하여 패턴웰딩으로 강철화시켰다. 이 영향으로 철판을 활용한 갑옷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주철, 즉 무쇠의 활용과 제작은 13세기를 기점으로 하여 서구에서 갑자기 시작되었다. 그 이전의 독자적인 발전 과정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쇠의 제작과 활용은 몽골을 통해서 서구에 유입되었다는 것이 현재 통설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유입 경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철광석과 고철을 목탄과 함께 완전히 녹여서 탄소와 슬래그 함량이 높은 선철(pig iron)을 생산하였다. 이것을 다시 녹여 괴철로 만들고 수력 망치로 두들겨서 연철/강철화시켰다.

2.2.3. 근세

정련로가 더욱 발전한다. 오스몬드 제철(Osmond process)법이라고 불리는 선철에서 연철을 제작하는 제법이 만들어진다. 바닥이 파여 있고 주변이 막혀 있는 구조의 로에 목탄을 가득 깔고 불을 붙인 후, 풀무로 바람을 넣어 온도를 높히면서 목탄에 닿지 않도록 살짝 높은 위치에 파인 구멍으로 선철을 살짝 집어 넣어서 선철이 숯에 닿지 않게 가열한다. 이렇게 해서 선철이 녹으면서 흘러내리면 그 수철은 탈탄된 연철이 되는데, 이 떨어지는 철 액체에 쇠 막대를 살살 가져다 대면서 솜사탕 마냥 빙빙 돌려서 막대에 엉기게 하는 것이다.

한편 제강법도 추가로 발명되어 밀폐 석관에 목탄과 철괴를 넣고 오랫동안 가열하여 강철화하는 삼탄강 방식도 만들어진다.

이시기 서구에서 균질한 품질의 강철 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해진 것이 독일 등지와 이탈리아였는데 아직도 강철 제품을 만들던 지역의 박물관들은 당시에 생산한 균질한 품질의 똑같이 생긴 검들을 수십자루씩 진열하며 자랑하고 있다. 이는 길드나 브랜드가 이미 존재했던 서구의 특징이였으며 똑같이, 균일하게 만들수록 더 실력있는 것이었다. 즉 동양보다 대량생산에선 밀렸으나 품질 면에서는 동양을 뛰어넘기 시작한 시점이다.

이는 다마스쿠스 강을 재현하기 위한 노력의 부산물로 보기도 하는데 다마스쿠스강의 성능이 재료의 차이가 아닌 특수한 제조법에 있다고 생각했던 유럽인들은 다마스쿠스강을 만들기 위한 열정으로 철에 수천, 수만 번의 실험을 하기 시작했고, 근세에 이르러서는 열처리 스프링강을 완성해 이를 이용한 태엽, 플레이트 아머, 기계식 시계, 플린트락, 아바레스트같은 발명을 이루었으며, 결국에는 동양과 서양의 기술력 차이를 불러왔다고 평가하는 학자들도 있다.

또한 주철기술이 발전하여 주철대포가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청동대포보다 우월하지는 않았으나 가격이 저렴해 대량으로 구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특히 초기 주철대포 기술을 독점하여 대항해시대에 주도권을 잡게된 국가가 영국이였다.

이 시기에 발명된 기술 중 현대까지도 제한적이나마 사용되는 유일한 기술은 1740년대에 개발된 도가니강 제련법이다. 벤자민 헌츠맨은 우수한 품질의 스프링강을 만들기 위해 삼탄강 방식으로 제강한 철을 잘게 부순 후 도가니에 넣고 녹이는 방법으로 다시 우수한 품질의 강철을 만들었다. 접쇠라는 방식 때문에 필연적으로 불균일했던 이전의 철들과 달리 서구에서는 최초로 균질한 상태의 강철을 만들었으며, 최초의 현대적인 제철법이라고 평해진다.

2.2.4. 근대, 산업혁명

헨리 코트가 반사로를 통한 연철 제철법을 만들었으며, 베세머가 전로법을 개발하였다.

2.2.5. 현대

지멘스-마르탱 평로, 베이직 산소 제강법, 그리고 전기 아크로가 등장하였다. 20세기 후반에는 나노미터 크기의 강재 분말을 적층시켜 제강하는 분말강이 등장하였다.

3. 제철로의 종류

3.1. 고로, 용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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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용선로

파일:Cupola-Furnace-1.jpg
용선로(熔銑爐, Cupola Furnace)

선철을 녹여 단순한 주철로 만드는 로의 예시는 용선로가 있다. 구조 자체는 그냥 높게 쌓은 굴뚝 수준이다. 점토 벽돌로 쌓은 로에, 내부에 다시 점토 모르타르를 발라서 내화성을 갖게 만들면 된다. 바닥 부분에 모래를 비스듬히 깔고, 슬래그를 뺄 높은 구멍 하나, 녹아서 나오는 주철을 뺄 구멍 하나를 내준다. 그리고 녹은 쇠가 나오는 바닥 바로 위에 구멍을 숭숭 뚫어서 재료들은 빠져나가지 못하고 녹은 쇠는 흘러나올 수 있는 망 구조 바닥을 하나 얹어주면 된다. 그리고 그 망구조 바로 위 옆에 불기운이 들어갈 구멍을 뚫어주고, 풀무 화로를 연결해주면 완성. 이 안에 선철-코크스-석회석을 번갈아서 깔아 넣고 화로에서 불바람을 넣어주면 된다.

이런 용선로에서 나오는 무쇠는 탄소 함량이 높은 주철이라 단단하고 잘 깨진다. 유럽에서는 냄비 등 생활도구를 만들 때나 사용했고, 무기로는 구리가 부족해서 급하게 대포를 만들 때나 사용했다. 창, 검, 갑옷 등 냉병기로는 거의 쓸모가 없다. 그럼에도 주철이 널리 사용된 것은, 철과 연료(탄소)가 접촉하지 않으면서 철의 온도를 녹는점까지 올리는 것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즉 고대 내지 중세의 제철법은 철을 녹일 수 있는 대신 연료와의 접촉으로 탄소를 흡수하거나, 아니면 연료와 직접 접촉하지 않지만 녹는점까지 온도를 올리지 못하는 방식 뿐이었다.

3.3. 반사로

파일:반사로.png
반사로(反射爐, Reverberatory furnace)

반사로는 쇠를 연철 혹은 강철로 전환하는 전로의 역할이 가능한 로다. 위의 괴철로처럼 철광석과 연료를 함께 굴뚝 속에 쌓은 형태가 아니라, 마치 전통 온돌 같은 구조의 로에 철과 연료를 분리해서 철에 탄소가 흡수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상기한 그림의 좌측이 연소실이고, 중앙의 길다란 복도쪽이 철을 놓는 반응실이다. 우측 위는 굴뚝, 우측 아래는 작업용 구멍. 녹은 철을 빼는 구멍은 로의 측면에 설치된다. 연료에서 나온 고온의 기체와 연료의 복사열이 반사로의 벽에 반사되어 철로 전달되는 방식이다. 연소 기체와 함께 공급되는 산소가 철의 탄소가 결합해서, 녹은 철로부터 탄소가 빠져나가게 된다. 일부 반사로는 firebox에서 발생하는 복사열을 철로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내부 통로의 형상이 타원체 모양을 하기도 했다.

일단 반사로 내부에 내화물을 바르는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내화물을 반사로 내부에 바른 후 한번 4~5 시간 가량 예열을 해서 내화물이 세라믹화 되도록 하고, 반사로를 식힌다. 그 뒤 선철과 고철 등을 장입한다. 이제 철들을 가열하는데, 이 과정에서는 철을 저어서 반응을 더 촉진시킬 필요가 있다. 철들의 상단 표면이 녹으면 이후 온도를 더 높여서 철을 완전히 용해시키고, 위에 떠오르는 슬래그를 남기고 밑의 철만 사출구로 용출한다.

반사로에서 정련한 철은 강하게 탈탄되어서 탄소 함유량이 낮은 연철이 된다. 탈탄 과정을 중간에 멈추면 강철을 만들 수 있다. 두명이 붙잡고 12시간 동안 작업하면 1500kg 의 연철 혹은 강철이 생산된다. 헨리 코트가 발명한 이 반사로를 통한 연철 제법은 영국의 연철 생산을 급증시켰다. 1770-1820년의 1차 산업 혁명기의 영국의 철 생산량의 급증은 이 반사로법의 보급에 의한 것이었다. 그 유명한 에펠탑 역시 이 반사로법을 통해 생산된 연철로 만들어진 것이다.

헨리 코트가 낸 특허는 오직 연철에 한정되었다. 헨리 코트 본인도 반사로법의 개선에 다소 무관심했는지 새로운 특허를 내지 않았다. 그러나 1860년대에 독일 지역에서 반사로를 통해 강철을 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선철과 고철을 섞어 장입하고, 고온으로 가열하여 철을 빠르게 녹여 탈탄이 과도하게 진행되기 전에 녹은 철을 용출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서구의 강철 생산 기술을 받아들이고자 했던 메이지 시대 일본도 서구의 제철업자들을 초빙하여 반사로를 만들어 대포를 대량생산하고자 시도했으며, 이 때 만들어진 니라야마 반사로가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의 일부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3.4. 도가니법

파일:도가니로.jpg
도가니로(crucible furnace)


▲ 1949년, 영국 요크셔 애터클리프의 '헌츠맨 철강'에서 도가니로를 통해 철을 생산하는 모습. 도가니로를 최초로 개발한 벤자민 헌츠맨이 18세기에 세운 회사이다. 사실상 도가니로의 본가.

점토를 구워 만든 도가니[9]에 선철, 고철, 그외 첨가물 등을 넣고 코크스로(이미지 상 d)에서 1600℃ 정도로 3시간 구워준 다음, 위에 뜬 규소 등 불순물(슬래그)을 버리면 아래쪽의 강철을 얻을 수 있다.

이 도가니 정강은 양이 적긴 하지만 생산 과정을 쉽고 정확하게 제어할 수 있기 때문에 고급 강철을 만들기 좋다. 또 생산량이 적다지만 이전에 비해서는 혁신적이라, 1차 산업 혁명기 영국은 도가니법으로 1840년 8만 톤에 달하는 강철을 생산하며 유럽의 철강 산업의 거의 절반을 점유했다. 위의 반사로법도 강철을 만들 수 있긴 한데, 산업의 과학화가 이뤄지지 않아 숙련된 기술자들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했던 당시 산업계 상황 상 숙련된 제철업자들만 가능했고 반사로법은 주로 연철 생산에 쓰였다.

3.5. 전로(轉爐, Conver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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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essemerConverter.jpg
베세머 전로(Bessemer converter)

바닥에 구멍이 숭숭 뚫린 도가니와 풀무를 이어 두고 용융된 선철을 부어준 후, 밑바닥으로 공기를 불어넣어주면 된다. 들어간 공기가 선철을 뚫고 올라오면서 탄소와 결합해서 불덩어리가 되어서 전로의 입으로 일산화탄소 가스가 뿜어져 나온다.

베세머 전로법은 강철 생산 산업화의 첫 기술이었다고 불릴 정도로 큰 의의를 가지지만, 사실 여러모로 불완전한 기술이었다. 공기를 불어넣는 과정에서 쇳물이 풀무쪽으로 흘러나온다던가, 뿜어져 나오는 일산화탄소 가스로 화재와 인명사고가 발생한다던가 많이 위험했다. 게다가 공기가 균일하게 주입되지 않으면 철의 품질도 불균일했다. 또 질소가 철에 유입되어서 철강의 품질이 떨어졌다. 또 생짜 공기를 그대로 투입했다가는 철강의 온도가 내려가 철강이 굳어버리는 문제도 있었다. 게다가 베세머 당대에는 탈인 탈황제를 몰라서 인을 제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인과 황이 많이 섞인 영국산 철광을 쓰면 똥철이 나왔다. 문제가 지나치게 많은데 베세머가 자신의 케이스에서 성공한 것은 망간이 많이 함유된 스웨덴산 선철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는데, 베세머에게서 기술을 사간 제철업자들은 그냥 영국산 철광을 썼다가 낭패를 보고 말았다. 때문에 베세머 전로법으로 만들어진 강철은 싸구려 강철로 사용되었고, 고급 강철은 위의 도가니법으로 주로 생산되었다.

결국 베세머 전로법은 정작 고향인 영국에선 별 빛을 못봤고 영국 제철업자들은 그냥 반사로법을 계속 썼다. 베세머법이 빛을 본 것은 중화학 공업이 본격적으로 발전한 2차 산업 혁명기 독일과 미국에서였다. 이것은 20세기 들어서 영국이 두 나라에게 철강 산업의 우위를 뺏기게 된 원인이 되었다. 다만 저 두 나라도 1890년대 무렵부터는 더 질 좋은 강철이 생산 가능한 평로법을 중심으로 전환한다. 순수한 산소를 열풍으로 만들어서 주입하는 린츠-도나비츠 전로법, 줄여서 LD전로법이 개발되고서야 저런 문제들이 개선되어, 다시 강철 양산의 주역으로 자리잡았다.

3.6. 평로

베세머법의 바로 다음에 나온 기술은 20세기 중반까지도 큰 변화 없이 이어진 지멘스-마르탱의 평로법인데, 기계 구조적으로는 오히려 베세머법보다 간단하다. 때문에 오래된 제강 시설에서는 LD 전로보다 더 많이 쓰였다. 예를 들어서 미국의 경우 최후의 평로 제강 설비는 1980년대까지 가동했으며, 소련(예컨대 우크라이나) 시절의 평로 제강 설비는 2000년대까지도 가동되는 것이 존재했다. 기본 원리는 위의 반사로와 크게 다르지 않아, 연료의 연소열을 효과적으로 철에 전달하여 강철을 녹이면서 탄소량을 조절하는 것이다. 반사로와 비교할 때 평로의 핵심적인 진보는 고열을 얻기 위해 연소공기를 예열한다는 점과, 연소공기의 예열을 위해 노에서 배출되는 고온의 배기가스를 이용한다는 점이다. 즉 레큐퍼레이터(recuperator)를 도입한 것이 핵심이다. 평로는 고온의 배기가스가 연소공기 유입 통로를 이루는 내화벽돌을 가열하고, 연소공기는 가열된 내화벽돌로부터 열을 얻어 예열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따라서 연소공기가 처음부터 가열되어 있으므로 동일한 연료로 얻을 수 있는 단열 화염 온도(adiabatic flame temperature)가 상승하여 더욱 쉽게 고온을 얻을 수 있고, 배출된 배기가스의 버려지는 폐열을 연소공기 예열에 활용하므로 연료의 에너지 효율성이 증가한다.

평로제강 조업에는 선철뿐만 아니라 고철, 철광석 등의 철원을 함께 장입할 수 있고, 그 외에 조재제[10]로서 석회 등이 첨가된다. 베세머 전로법은 탈탄시의 발열반응이 강철을 녹이는 열원이 되므로 반드시 철원의 대대수는 선철이 되어야 한다. 이와 대비하여 평로법은 연료의 연소열이 열원이므로 이러한 제한이 없다는 점이 장점이다. 따라서 고철의 재활용을 위해서는 베세머 전로법에 비해 평로법이 유리하다.

다만 평로법은 반사로법에 비해서는 개선되었으나 철을 녹이고 전환하는데 4~10시간 가량이나 걸려서 비용은 많이 든다. 따라서 베세머 전로법과 그 후신인 염기산소전로법이 개선되어 전로강의 품질이 평로강을 따라잡자 차츰 도태되었다. 또다른 평로의 용도인 고철의 재활용은 전기로(특히 전기아크로)가 이어받았다.

3.7. 전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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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파이넥스 공법

4. 철의 성분별 분류

5. 제철의 가공방식별 분류

6. 철의 형상별 분류

  • 슬라브: 납작하게 뽑은 반제품
    • 열연강판: 고온에서 압연한 완제품 강판.
    • 냉연강판: 상온에서 압연해서 광이 나는 완제품 강판.
    • 강관: 강판을 돌돌 만 쇠파이프.
    • 코일
    • 후판: 비교적 두꺼운 완제품.
  • 빌렛: 길게 뽑은 반제품.
    • 선재: 더욱 가늘게 뽑은 완제품. 철사부터 철근까지 굵기가 다양하다.
  • 블룸: 어중간하게 굵고 두꺼운 반제품.
    • 봉: 속이 차고 긴 완제품.
    • 형재: 용도에 따라 모양을 낸 완제품.

7. 관련 문서


[1] 용광로 유적지에 흔적이 발견된다.[2] 조대연. (2017). 고대 철 제련로의 전개과정 및 철 생산 복원실험에 관한 검토 - 유럽의 사례를 중심으로 -. 숭실사학, 38, 47-76.[3] 정해득. (2020). 조선시대 철장(鐵場)의 운영과 제철(製鐵)기술에 대한 문헌적 검토. 한국중세고고학, 7, 79-102.[4] 'Wrought'는 고대 영어에서 'Work(일하다)'의 과거 분사형이다. 즉 '일(work)을 가한 철'이라는 뜻. 일반적으로 'Wrought Iron'은 '시우쇠'라고 번역하나, 한국과 서구권의 전통 제철법은 차이가 있으므로 이 둘이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5] 練鐵. 연할 연자가 아니라 단련할 연자다. 망치질을 해서 단련해 강하게 만들었다고 해서 때문에 단철(鍛鐵)이라고도 불렸다. 탄소가 적은 철로, 전통적으로는 강철이 되기 전의 순수한 철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실제론 공정 상 아무리 단련 과정을 반복해도 2% 정도의 슬래그가 섬유 같은 형태로 섞여 있어 강도가 낮았다. 탄소도 슬래그도 안 섞인 순수한 철을 만들 수 있게 된 건 현대의 일이다.[6] 표면에 탄소를 침투시킨다는 뜻이다.[7] 심괄(沈括)의 몽계필담(夢溪筆談).[8] 공기를 불어넣는다는 뜻이다[9] 사실 점토는 내열 한계가 좀 낮기 때문에 비철금속 제련에 사용하고, 강철 제련을 위한 도가니는 흑연이나 돌로마이트 등으로 만드는 편이다.[10] 슬래그를 형성시키기 위해 넣는 물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