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13 18:55:29

접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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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2. 발전3. 환상4. 여담

1. 소개

고대 제철과정에서 탄소와 불순물 함량을 조절하기 위해 사용했던 기법. 가열한 쇳덩이를 단조로 편 다음, 접어서 다시 두들기기를 반복한다.

파일:Fe_Fe3c_phase_diagram.png

위 이미지는 탄소와 금속간화합물인 Fe₃C(철 내부에서 시멘타이트라는 조직을 형성한다)의 상평형 상태도로 가로축은 탄소함량, 세로축은 온도로 표시되는 도표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온도와 탄소함량에 따라 철-탄소 합금이 어떤 상으로 존재하는지를 나타내는 것인데 여기서 액체, 철이 녹은 영역은 최상단에 L 이라고 표기된 부분이다.

위 도표에 따르면 우리가 강철이라 부르는 탄소함량 0.2~0.5wt%의 철 합금을 액체로 만드려면 1500도가 넘는 고온이 필요함을 알 수 있는데(실제론 용광로에서 나오는 선철은 4wt% 정도의 탄소함량을 가지기에 약 1200도 정도에서 녹는다), 이 정도 온도를 얻기 위해서는 현대의 용광로(고로)에서 사용하듯 코크스 등 탄화가 잘 된 연료를 장입한 후 고압의 뜨거운 공기를 송풍기로 강하게 불어 넣어야 간신히 얻어지는 온도이다.

따라서 인력이나 수력등에 의존해 풀무 따위로 바람을 불어넣고 연료 역시 목탄등을 사용하던 고대~전근대 제철 과정에서는 철을 녹여낼 만큼 높은 온도를 얻어내기 힘들었으며, 녹는점을 낮추기 위해 탄소 함량을 높일 경우 만들어진 철에서 탄소를 제거해 강철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 더 힘들었기에 철을 녹이는 대신,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의 로 안에서 연료가 연소하며 나온 이산화탄소가 광석 내의 산화철을 부분적으로 환원해 철을 만들어내는 공법을 주로 사용했다.

그리고 이 경우 철과 불순물이 완벽히 분리되지 않고 불순물(슬래그)과 탄소함량이 각기 다른 철이 한 덩어리로 섞여있는 형태의 철괴가 만들어지는데 이를 괴련철이라고 한다.(일본에서는 이를 타마하가네(옥강:玉鋼)로 부르며, 현대에도 전통 일본도를 재현할 때 사용된다)

괴련철의 경우 품질이 균일하지 않고 불순물을 함유하고 있기에 이를 제련하기 위해 전통 방식에서는 이 철괴를 부순 후 환원된 철 부분을 모아 달구어 두드리기를 반복하는 방법으로 내부 불순물을 제거하여 강철을 만들어냈는데 이 과정을 접쇠라 부른다.

2. 발전

과거 가야나 백제에서 경우 접쇠 기법을 이용해 만들어낸 철정을 일본에 수출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을 보아 고대에는 강철을 얻기 위해 널리 행해지던 방식이었지만, 철을 녹인 용선에서 탄소를 제거하여 강철을 얻을 수 있는 초강법(秒鋼法)이 개발/전파되면서부터는 주류에서 밀려났다. 초강법은 근대의 베세머 전로법과 유사하게 선철(통상 4wt% 이상의 탄소를 함유)을 녹인 용선에 곱게 빻은 철광석, 녹가루 혹은 정제한 황토를 섞고 막대로 휘저어서 강철을 생산한다. 한대의《회남자》, 명대의 《천공개물》에 초강법의 탈탄 과정이 기록되어 있는데, 기본 원리는 첨가된 산화철에서 떨어져나온 산소가 용선 속의 탄소를 태워 공기 중으로 날려보내는 것이다. 고고학적으로도 매우 일찍 등장하는데 관련 논문에 따르면 한국 기준 한성 백제 시절 중국에서 도입된 게 확인된다.

현재 접쇠 기법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철을 생산하는 개인 공방에서 소규모로 철기를 생산할 때 사용하는 정도로 유지되고 있다. 현재 일본에서 예술품으로 분류되는 전통일본도제작에 사용되는 타마하가네가 이 접쇠 기법을 통해 강철로 제련되는 대표적인 예이다. 그 외 현대 장인들이 서로 다른 탄소함유량의 강철, 또는 합금강을 적층한 후 두드림으로서 검신에 무늬를 만들어내는 패턴웰디드 공법이 현대적인 접쇠 기법 중 하나이다. 흔히 다마스커스강으로도 불리는 패턴 웰디드 기법으로 생산된 도검의 경우 고탄소강과 저탄소강의 색깔 차이가 만드는 특유의 아름다운 무늬 때문에 예술품으로써의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한다.(이 경우 무늬를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 에칭 기법을 이용해 표면을 부식시키기도 한다.)

참고로 중세 유럽에서는 베세머법이 개발되기 이전까지 탄소량이 높은 선철에서 효율적으로 빠른 시간 내에 탄소를 제거하는 방법이 없었기에 연철을 달구어 탄소를 침탄시키는 방법으로 강철을 생산했다.

3. 환상

초기 철기 시대를 연 가장 기본적인 제련법이지만 이상하게도 일본도다마스쿠스 강 덕분(??)에 접쇠법이 대단한 비법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사실은 서양의 중세 초기 도검 제작 법인 페턴 웰디드(pattern welded) 방식도 일종의 접쇠 방식이며(사실 서양은 고대 로마 시절부터 글라디우스 제작에 접쇠공정을 사용해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원전 훨씬 전부터 행해져 왔다.[1] 북구지방도 지크프리트 전설과 같은 초기 게르만 전설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검을 묘사할 때 뱀이 똬리를 튼 것 같은 무늬가 있다라는 언급이 있다[2]. 실제로도 바이킹 소드 유물로 이렇게 철봉을 달궈 꼬아 두들겨 만든 자국을 가진 제품이 발견되었다.

이 접쇠 기술이 도입된 때는 로마 후기 민족이동시기(서기 4~8세기) 정도의 시기로,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나 독일 북부, 네덜란드 지역에서는 철기시대를 구분할 때 로마 이전 철기시대와 로마의 영향을 받은 이후의 철기시대로 구분되어 나타나는데, 로마 이후의 철기시대 도검부턴 로마의 스파타와 형태가 비슷해지기 시작하고 접쇠 기술이 도입된다. 덴마크의 Nydam 늪 유물이 이 시기의 변화상을 잘 보여준다.

즉, 접쇠 공법은 탄소 함량이 높고 순도가 낮은 철 원석을 어떻게든 강재로 만들기 위해 사용한, 흔하디 흔한 공정이었을 뿐, 튼튼한 철을 만드는 마법의 공법이 아니다. 단조로 강철을 만들려면 접쇠는 필수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는 과정이다. 주조로 상등급품의 강철을 국가, 상회 차원에서 대량으로 만드는 방법이 발견된 이후로는 소규모의 개인 대장간에서나 사용되었다. 일본의 경우, 기본적으로 불순물이 많은 사철로 만들기 때문에 단조나 주조나 어느 쪽이든 외국의 강재보다 불순물이 많이 섞일 수밖에 없고 품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제철소에서 균일한 품질의 강철이 쏟아져 나오고, 수많은 원소의 함량을 0.0x% 단위로 조절하며 분말야금 기술까지 적용된 최첨단 도검용 강재[3]가 시장에 널려 있는 오늘날 기준으로는, 적어도 성능의 측면에서는 전혀 의미 없는 역사 속 유물일 뿐이다.

다만 국내 웹에는 일본 웹의 불확실한 자료나 일빠들의 자료를 그대로 인용하여 철광석보다 사철이 더 고품질이고, 다른 나라의 저급한 철광석과 달리 고품질의 사철을 써서 일본도의 성능이 좋다는 글을 지금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럼 왜 현대 제철업에서 철광석을 쓸까? 구하기 쉬운 걸로 따지면 모래를 슬슬 물로 일거나 자석으로 긁어도 시커멓게 나오는 게 사철인데 그런 말이 사실이라면 왜 굳이 철광석을 쓰겠는가? 답은 사철의 채산성이 철광석에 비해 낮기 때문이다. 물론 고품위 사철의 경우 현대에도 제강에 사용되고 있고, 철광석 매장량이 풍부한 편인 한반도에서도 조선시대 철 산지의 분포를 보면 사철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는 하다. 다만 이를 무조건 사철이 철광석보다 우월하다고 결론지을 수는 없는 것이 물론 사철 자체만 따지면 순도는 높지만, 사철이 채취되는 것을 대부분 흙에 가루 형태로 섞여 있는 쇳가루 상태이며 그 많은 흙가루가 전부 다 철의 순도를 떨어뜨리는 이물질이다. 즉 사철 역시 철광석과 마찬가지로 결국 불순물을 제거하는 선광작업을 거쳐야 하는데 이를 감안하면 생산성이나 채산성 측면에서 철광석이 더 합리적이다. 물론 저품위 광석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현대 제강업에서 쓰는 철광석은 아무 철광석이나 갖다 쓰는 게 아니라 엄연히 품질검사를 거쳐 철 함유량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된 걸 쓴다. 다만 고품위 철광석은 그 분포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철광 매장량이 적은 일본은 물론이고 철광 매장량이 많은 편인 한국, 중국에서도 철광석의 대부분이 품위가 낮기 때문에 호주나 브라질에서의 철광석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것.

게다가 현대에 생산되는 강철의 적지 않은 비율은 재활용철이 차지하고 있다. 원재료에서 불순물 제거하고, 필요로 하는 원소들 집어넣고 하는 게 현대 야금술이다. 한마디로 철광석이든 사철이든 고철이든 어차피 불순물부터 제거하고 시작하기 때문에 결과물은 큰 차이가 없으며, 사철은 불순물이 더 많이 때문에 수율만 더 낮고 비용만 더 많이 들뿐이다.

과거에 나온 양판소를 보면, 하여간 여러 번 접으면 강도, 경도, 인성, 균일성 모두 늘어나는 사기적인 공법이고 접쇠한 철 혹은 다마스커스강으로 만든 무구가 현대의 최신 도검용 합금강 재질의 무구보다 가격을 제외한 모든 범위에서 능가한다고 묘사된다. 무슨 이유인지 미스릴+아다만티움, 만년한철+운철 같은 합금으로 검을 만들 때 자주 쓰이는데, 합금에 쓰면 금속이 잘 섞이지 않고 층별로 금속이 나뉘어 합금을 쓰는 이점이 사라지기 때문에 쓰이지 않는다. 접쇠의 현실이 알려진 뒤로는 이런 묘사가 줄어들었다.

드리프터즈에서는 토요히사의 검이 접쇠 방식으로 만들어져서 드워프 대장장이들이 눈으로 쇠를 두세 번 접은 방식을 파악, 변태같이 만들어서 수리를 할 수 없다고 할 정도. 이에 토요히사는 못하냐며 도발했다. 근데 이건 변태같이 쓸데없이 손이 많이 간 데다가, 들어간 재료가 잡종이라 못 고친다는 거에 가깝다[4]

게다가 닥터 스톤에서는 접쇠 과정도 과거에는 10번씩이나 했지만 현대 과학으로 조사했더니 접쇠과정을 2번만 해도 적당한 데다가 열처리가 더 중요하다면서 만능이 아님을 언급한다.

4. 여담

  • 제빵에도 이와 같은 제법이 존재한다. 페이스트리 반죽위에 버터를 올리고 그걸 접고 밀고 접고 밀고 하기를 수십번 해서 층을 만들어낸다. 발효법을 개발하기 전까지는 부드러운(고급) 빵을 만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는 점까지도 유사하다. 제빵 말고도 설탕공예나 가락엿을 만들 때 결을 내고 사탕 사이에 공기층을 만들어 딱딱하지 않고 먹기좋은 바삭바삭한 식감이 되도록 늘리고 접는 공정을 거치는 것이 있다.
  • 한과 중에도 비슷한 것이 있다. 개성에서 약과를 만들 때 비슷한 공정을 거쳐서 네모나게 썰어내는 모약과라는 것이 있는데, 일반 약과와 달리 진득하지 않고 식감이 파삭하고 결 사이사이에 조청이 스며들어 한 입 물면 배어나오는 모습을 보인다.
  • 접쇠 중 가장 어려운 방식 중의 하나가 일명 젤리 롤(롤빵식 접쇠)이다.[5] 젤리 롤 접쇠는 가열한 쇳덩이를 마치 롤빵처럼 돌돌 말아서 두들기는 방식인데 가열한 쇳덩이 사이에 공간이 생기지 않도록 돌돌 마는 것이 엄청나게 어려운 작업이다. 게다가 돌돌 말았기 때문에 둥근 모양이 되는데 이러면 일반 접쇠보다 훨씬 많이 망치질을 해야 동일하게 납작해지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난이도 역시 매우 높은 접쇠 방식이다.

[1] 주조방식도 이미 기원전에 발견되었다. 초강법 등[2] 이것을 따라 지크프리트 전설 소재 영화에서는, 지크프리트가 철봉을 달궈 꼬아서 명검 '발뭉'을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3] 이런 최첨단 강재들은 접쇠는커녕 애초에 단조 자체가 매우 어렵고, 이미 첨단 기술로 성분이 균일하게 뽑혀 나온 상태기 때문에 굳이 해서 얻을 이득도 없다. 때문에 대부분 그냥 원하는 두께의 강판을 절삭 가공하는 방식으로 칼을 만들게 된다.[4] 애초에 토요히사의 검은 가운데가 동강이 나있었다. 근데 문제는 금속은 부러진 부분이 붙지 않는다는 것. 굳이 고친다고 해도 부러진 부분이 또 부러질 것이고. 결국 답은 처음부터 다시 벼리는 것뿐이다.[5] 젤리 롤 접쇠방식으로 도살칼 만들기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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