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01 10:15:31

샤른호르스트급 전함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제2차 세계 대전의 독일 해군 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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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축함 <colbgcolor=white,#191919>구축함 1934, 구축함 1936, TA16급, 구축함 1937, 구축함 1938, 구축함 1942, 구축함 1944, 구축함 1945
잠수함 1형, 2형, 7형, 9형, 10형, 14형, 17형, 21형, 23형, 기타 유보트 계획, 네거 반잠수정
보조순양함 아틀란티스
경순양함 엠덴급, 쾨니히스베르크급, 라이프치히급, M급, 슈페크로이처
중순양함 아트미랄 히퍼급, 도이칠란트급, D급, P급
항공모함 자이틀리츠, 그라프 체펠린급, 경항공모함 계획(클라이너), 오이로파, 야드급, II파일:프랑스 국기.svg
항공순양함 A II급, A III급, A IV급, A IIa급, E IV급, E V급
전함
전노급
도이칠란트급
노급
샤른호르스트급, 비스마르크급, H급
순양전함
O급
어뢰함 어뢰함 1923, 어뢰함 1924, 어뢰함 1935, 어뢰함 1937, 어뢰함 1939, 어뢰함 1940, 어뢰함 1941, 어뢰함 1944
어뢰정 슈넬보트
훈련함 브렘제
노획함 항공모함: 아퀼라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스파르비에로파일:이탈리아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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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 계획 함대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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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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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명 미정 함명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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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임: 건조/개장 도중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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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arnhorst-Klasse

파일:Scharnhorst_Klasse.png파일:투명.png
파일:Scharnhorst_.png 파일:Gneisenau_.png
Scharnhorst 샤른호르스트 Gneisenau 그나이제나우

1. 개요2. 제원3. 개발4. 특징
4.1. 함형4.2. 화력4.3. 방어력4.4. 주행력
5. 활동
5.1. 초기5.2. 노르웨이 침공5.3. 영국 해협 돌파작전5.4. 노스케이프 해전5.5. 패전
6. 동형함 목록7. 함종8. 여담9. 기타 매체에서의 등장

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전함.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제국샤른호르스트급 장갑순양함의 이름을 계승했으며 독일군의 재무장 시 나치 독일 해군 증강 계획인 Z 계획의 일환으로 건조되었다.

2. 제원

샤른호르스트급 전함
Schlachtschiff der Scharnhorst-Klasse
이전급 L 20 α급 (취소), 바이에른급
다음급 비스마르크급
기준배수량 32,600톤
만재배수량 38,700톤
전장 235m
전폭 30m
흘수 9.69m[1]
출력 157,811마력 (111,717kW)
최고속력 31노트 (약 57km/h)
항속거리 샤른호르스트 19노트(약 35km/h)에서 13,100km
그나이제나우 19노트(약 35km/h)에서 11,500km
동력 기관 수관식 보일러 12기
증기 터빈 3기 3축
추진 직경 4.8m 3엽 스크류 프로펠러 3기
승조원 총원 1,669명
(1,840명까지 증원 가능)
장교 56명
수병 1,613명
무장 주포 28cm 54.5구경장 SK C/34 3연장 주포탑 3기 (총 9문)
부포 15cm 55구경장 SK C/28 2연장 부포탑 4기 (총 8문)
15cm 55구경장 SK C/28 단장 부포좌 4기 (총 4문)
대공화기 10.5cm 65구경장 SK C/33 2연장 대공포탑 7기 (총 14문)
3.7cm 83구경장 SK C/30 2연장 기관포좌 8기 (총 16문)
2cm 65구경장 SK C/30 2연장 기관포좌 5기 (총 10문)
→ 2cm 65구경장 SK C/38 2연장 기관포좌 19기 (총 38문)
어뢰 53.3cm 3연장 수상어뢰발사관 2기 (총 6문)
장갑 측면 주장갑 350mm
하부 170mm
상부 45mm
장갑함교 측면 300mm
천정 200mm
관측창 350mm
해치 220mm
갑판 주갑판 95mm
상갑판 50mm
흘수선 경사장갑 105mm
주포탑 전면 360mm
측면 200mm
후면 180mm
천정 180mm
바벳 350mm
부포탑 전면 140mm
측면 60mm
후면 60mm
천정 50mm
레이더 시탁트(Seetakt) 2기
함재기 아라도 Ar 196A-3 수상기 3기
함재기 시설 캐터펄트 1기

3. 개발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 제국이 패배하면서 독일 제국 해군이 붕괴된 후 1920년대까지 바이마르 공화국국가해군에서는 해군의 역할과 규모에 대한 논쟁이 진행중이었고 프랑스와 소련이 해군력을 증강하면서 여기에 대처할 예비적인 건함 설계가 필요해졌다. 그래서 1차대전 당시에 설계까지만 진행된 에르자츠 요르크급 순양전함을 기반으로 해서 30.5cm 2연장 주포탑 4기를 탑재한 배수량 19,600t의 순양전함을 1928년에 설계했다.

1933년에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의 정권을 잡고 나치 독일이 된 독일은 나치 독일 해군에게 자신은 바다에서 영국 해군제해권의 향방을 가리기 위해 함대결전을 일으킬 목적으로 대규모의 함대를 만들 생각이 없으며 독일의 해양통상로를 위협하는 프랑스 해군과 제한적인 전투를 진행할 목적으로 적당한 규모의 함대를 만들 것이라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이런 방침에 따라서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의 후속작인 D급 중순양함 2척을 건조하라고 지시했다. D급 중순양함은 기존의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의 배수량을 2만톤으로 늘리고 장갑을 크게 증설하여 방어력을 높히고 최고속도도 29노트로 증가시킨 군함이었다. D급 중순양함은 1934년 1월 25일에 주문이 들어가서 1934년 2월 14일에 건조가 개시된다.

그러나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베르사유 조약의 허점을 뚫고 나치 독일이 건조한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은 예상과는 달리 영국 해군을 비롯한 열강들의 해군에 엄청난 놀라움을 주었으며 즉시 대응할만한 군함을 찾아내거나 건조에 돌입하는 과정에 돌입했다. 당장 프랑스는 됭케르크급 전함을 2척이나 건조하기 시작했고 D급 중순양함이 여기에 대해서 전혀 상대가 불가능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따라서 나치 독일 해군의 수장인 에리히 레더는 D급 중순양함의 배수량을 늘리고 3번째 주포탑을 장착해서 28cm 주포를 9문으로 늘려서 됭케르크급 전함을 상대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대해서 아돌프 히틀러는 방어력 강화 및 내부 구조 변경에는 동의했으나 주포탑 증설에는 반대했으나 결국 1934년 2월에 암묵적으로 승인하고야 만다. 그리고 이미 D급 중순양함부터 베르사유 조약의 제한을 본격적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영국과 해군 조약을 새롭게 체결해서 기존 조약의 굴레를 벗어날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영국-독일 해군조약을 1935년에 체결하게 된다.

일단 새로운 전함을 건조가능하게 될 예정이었으므로 배수량 29,000t을 가지며 28cm 3연장 주포탑 3기를 설치해서 총 9문의 주포를 탑재하는 설계안이 나왔고 D급 중순양함은 1934년 7월 5일에 취소되었고 D급 중순양함에 부여할 예정이었던 함명도 다른 군함에 쓰기로 하고 1차대전 시기의 샤른호르스트급 장갑순양함에서 가져온 함명인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가 새로운 전함의 함명으로 선택되었다. 전함을 건조할 조선소도 빌헬름스하펜에 있는 두개의 업체로 지정되었으나 14개월 정도 군함의 건조가 지연되었다. 그 이유는 영국-독일 해군조약 체결을 기다리기 위한 것도 있었고 D급 중순양함이 취소된 곳에서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을 건조하기 위해 정리 및 개편작업이 진행되었으며 대형 군함의 설계 및 건조가 10여년 이상 단절되었기에 실제 건조에 돌입하자 설계 변경이 매우 잦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영국-독일 해군조약이 체결되자 주력함의 주포 구경 한계가 40.6cm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아돌프 히틀러는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에 탑재할 주포를 교체하는 것을 생각하고 곧 38cm으로 주포를 교체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38cm 주포는 아직 개발단계였고 주포탑 설계도 확정이 나지 않은 상황이라서 실제로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에 장착하려면 많은 시간이 소모될 상황이었으며 과거의 건함 경쟁에서 보듯이 영국 해군은 독일 해군의 주포 구경 확대를 매우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당장 장착이 가능한 28cm으로 일단 주포를 장착한 후 나중에 38cm으로 주포를 교체한다고 아돌프 히틀러의 명령이 변경되었다.

주포 결정의 혼란 속에서 기존의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의 주포인 28cm 52구경장 SK C/28 3연장 주포탑보다 성능이 좋은 28cm 54.5구경장 SK C/34 3연장 주포탑으로 주포가 변경되는 이득이 있었으나 나중에 비스마르크급 전함의 주포로 채용되는 38cm 51.66구경장 SK C/34와 주포탑 바벳 및 포탑링 규격등 주포 교체에 필요한 각종 조치를 미리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는 손해도 발생했다. 결국 1942년 전함 그나이제나우를 수리하면서 38cm으로 주포 환장을 하려고 하니까 선체를 연장하고 주포탑 바벳을 강화하며 전기 시스템을 점검하는 등의 각종 조치 및 시간이 필요했으며 비용도 증가하여 1943년에 주포 교체 시도가 포기된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은 마켄젠급 순양전함을 기반으로 해서 설계가 완성되었으나 1차대전 방식 설계를 제대로 수정하지 못했다. 그리고 디젤 엔진을 채용하려다가 실패했기 때문에 증기 터빈으로 동력기관을 바꾸면서 동력기관 설치도 효율적이지 못했다. 심지어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에 있었던 어뢰방어대책인 삼중 함저 바닥과 측면의 삼중 격벽도차 채용하지 못해서 포탄 및 어뢰 방어에 취약점을 드러냈으며 실전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4. 특징

나치 독일 해군이 최초로 건조한 전함이었기에 거의 모든 면에서 문제점을 일으켰다. 사실상 특징 항목이 문제점이나 다름이 없었다.

스펙만 본다면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의 속력은 31노트로 빠른 기동력을 가지고 있고, 28cm(약 11인치) 주포는 구경은 작지만 분당 3.5 - 4발 이라는 중순양함 수준의 빠른 연사력을 보유했으므로 통상파괴전에 적합한 전함이었지만 실제로 그런 능력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나치 독일 해군의 승조원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4.1. 함형

초기 샤른호르스트의 모습은 새하얀 모습으로, 마치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연상시키는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가져 '백색의 전함'이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하였다. 한번은 어떤 영국인이 영국 해협 돌파작전 당시 안개낀 영국 해협을 조용히 통과하는 샤른호르스트를 목격한 적이 있었는데, 그가 말하길 마치 중세시대의 한 채의 거대하고 요새화된 고성을 보는 듯한 엄청난 아름다움을 가진 배였다고 표현했다. 그는 훗날 그것이 자신이 생각한 프랑스나 영국의 것이 아닌 무려 크릭스마리네의 함정이라는 것을 알고는 무척 놀랐다고 한다.

물론 함선의 모습이 멋있다면 국민과 운용 인원의 사기 고취에 도움이 되지만, 실질적인 운용 인원들의 입장에서는 성능도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멋진 모양을 따라와줘야 사기가 올라간다. 하지만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은 그렇지가 못했다.
항목 배수량(t)
함체 8,000
장갑 14,000
주동력 3,000
보조동력 1,000
무장 4,800
함재기 50
기타설비 1,100
경하배수량 31,950
연료, 보일러용 물, 승조원, 탄약 6,500
만재배수량 38,500

기본적으로 1차대전의 독일 제국 순양전함의 설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탓에 항해시 침수 문제가 심했다. 그 이유는 함수의 모양이 거의 수직일 정도로 구식설계였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조금만 속도를 올려도 함수와 충돌한 파도가 함수쪽의 2개의 주포탑 및 함교까지 바닷물을 뿌리게 만들고 특히 1번 주포탑은 거듭된 바닷물의 습격으로 인해 침수현상까지 발생해서 고장이 잦았다.

따라서 건조중인 그나이제나우가 1939년 1월에 실시한 설계 변경을 적용해서 샤른호르스트도 1939년 8월에 아틀란틱 바우(Atlantic bow)라고 불리는 클리퍼 방식의 함수를 적용함으로서 선체 길이를 약간 늘리면서 함교까지 바닷물이 광범위하게 쏟아지는 사태는 일단 해결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을 연결하는 쇠사슬이 통과하는 갑판의 구멍 부위를 통과해서 소방펌프처럼 바닷물로 이루어진 물줄기가 함수방향 주포탑과 함교를 정밀타격하는 사태가 벌어졌으며 이를 막기 위해서 갑판의 구멍을 막고 함수에도 페어 리더를 설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수와 충돌한 파도가 1번 주포탑을 강타하는 문제는 완전하게 해결되지 않았고 1번 주포탑의 침수 및 포탑에 장착된 조준기와 거리 측정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함미쪽도 상황은 마찬가지라서 항상 바닷물이 뿌려지는 바람에 젖은 상태였으며 함선을 선회할 때 반응속도가 느려졌으며 방향타를 크게 작동시켜면 속력이 50%로 급감속하며 10도 이상 함체가 기울어졌다. 심지어 시험항해기간동안에는 방향타를 약간만 작동시켰음에도 불구하고 13도까지 함체가 기울어지는 막장상황까지 발생했다. 기본적으로 거대한 함체를 움직이는 키의 설계 및 기술적용이 부족했던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앞서 언급한 구식 설계문제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과적상태라는 것도 한 몫했다. 설계의 기초가 된 마켄젠급 순양전함도 기준배수량이 31,000톤이고 만재배수량이 35,300톤인데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은 기준배수량이 32,600톤이고 만재배수량이 38,700톤으로 이미 3,400톤이나 배수량 초과 상태인 것이다. 따라서 흘수선도 9.3m에서 9.69m로 더 깊게 들어가면서 수면과 갑판간의 높이인 건현이 줄어들고 측면 방어력의 기준인 주장갑대가 수면 아래로 내려가면서 실질 방어력이 약화되며 침수에 더 취약해지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속도도 마켄젠급 순양전함이 28노트인데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은 31노트니 고속항해를 하게 되면 침수현상이 더 심해지는 것이다.

덕분에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에 탑승하는 승조원들은 자신이 탑승하는 전함을 기본적으로 답 없는 보트(poor sea boat)라고 부를 정도였다. 전함이 보트 소리를 들을 정도로 항해능력이 비정상적이며 침수가 자주 발생했다는 소리였다.

4.2. 화력

파일:external/www.chuckhawks.com/bild11.jpg
38cm SK C/34 2연장 주포탑으로 주포를 교체한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의 예상도

원래 주포로는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의 주포인 28cm 52구경장 SK C/28 3연장 주포탑을 채택해서 주포탑 3기를 장착해서 총 9문의 주포를 확보하려고 했으나 개발 항목에서 언급한 사유로 인해 비스마르크급 전함에 탑재된 것과 같은 38cm 51.66구경장 SK C/34 2연장 주포탑 3기를 탑재해서 총 6문의 주포를 탑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개발 과정에서 언급한 우여곡절 끝에 38cm 주포를 확보할 수가 없어서 28cm 54.5구경장 SK C/34 3연장 주포탑으로 주포가 변경되었다. 해당 주포는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의 주포보다는 강력했지만 당대의 1급 주력 전함의 주포로서는 성능이 모자랐다.

일단 주포 구경장이 52구경에서 54.5구경장으로 늘어났으며 철갑탄도 기존의 300kg의 중량과 104.7cm의 길이에서 330kg의 중량과 124.5cm의 길이로 변경하면서 중량이 늘어나고 길이가 길어졌다. 주포탑도 Drh-LC/34 3연장 주포탑을 채용했는데 이를 통해서 좌우 150도의 포탑선회각도와 -8도에서 +40도의 포신부앙각도를 가지게 되었으며[2] 포탑선회속도는 초당 7.2도, 포신부앙속도는 초당 8도를 가지고 +2도의 고정장전각도에서 장전을 하며 분당 3.5발의 연사속도를 보유하게 된다.

이런 능력을 바탕으로 해서 포구초속 890m/s로 330kg의 중량을 가지는 28cm Pzgr. L/4,4 (m.Hb) 철갑탄을 사격하면 +40도의 포구각도에서 40,930m의 최대사정거리를 보유하며 15,100m 거리에서 측면장갑 335mm와 갑판장갑 41mm를 관통가능하며 18,288m 거리에서 측면장갑 291mm와 갑판장갑 48mm를 관통가능해서 실제구경인 28,3cm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우수한 성능을 보여준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경량고속탄인 관계로 인해 거리가 멀어지면 관통성능이 크게 하락할 뿐 아니라 갑판타격능력도 크게 떨어진다. 그래서 7,900m 거리에서 측면장갑 460mm와 갑판장갑 19mm를 관통하는 성능이 27,432m 거리에서는 측면장갑 205mm와 갑판장갑 76mm를 관통하는 수준으로 급하락하며 포탄의 중량이 구경의 한계상 330kg에 불과하고 내부작약도 7.208kg의 TNT라서 매우 적으므로 장갑을 관통하더라도 내부에서 포탄이 작렬하면서 폭발력과 함께 매우 무거운 파편을 생성하는 식으로 군함의 내부를 박살내는 효과는 크게 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순양함 이하 함급이나 자체 무장이 빈약한 항공모함을 상대로는 위력을 발휘했지만, 영국킹 조지 5세급 전함, 넬슨급 전함,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과 같은 영국의 주력 전함을 상대로는 열세였다.

간혹 독일의 11인치급(283mm) 함포가 영국의 15인치(381mm) 함포와 동일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건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에 독일 제국빌헬름 2세가 한 말이라서 이미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는 시대에 매우 뒤쳐진 말이었고 빌헬름 2세가 한 말의 기준도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의 교전거리인 5km에서 8km 수준의 초단거리에서나 적용되는 이야기며 장갑 관통력에 한정된 이야기라서 포탄 1발당 실제 위력은 영국의 15인치가 더 높다고 인정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의 주포는 1급 주력함을 절대로 정면에서 상대할 수 없는 주포가 맞다.

이미 경량고속탄은 영국도 넬슨급 전함에서 대실패를 겪은 일이 있고 그 후에는 전함같은 주력함의 주포는 포탄의 중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발전하며 위력을 더 높이려면 포구초속까지 늘리는 것으로 대처하게 된다. 이미 경쟁자인 됭케르크 전함의 주포인 330mm/50 Model 1931은 구경은 330mm지만 포탄 중량은 560kg이라서 거의 14인치(356mm) 포탄에 근접하는 중량이므로 장거리 대낙각 포격전에서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에 비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실제로 27,500m 거리에서 측면장갑 292mm와 갑판장갑 110mm를 관통한다.

부포인 15cm/55 SK C/28은 2연장 포탑과 단장 포좌를 혼용해서 12문을 탑재했다. 기본적으로 2연장 부포탑은 포신부앙각도가 -10 / +40도에 불과하며 단장 포좌는 포신부앙각도가 -10도에서 +37도에 불과하다. 포신부앙속도도 초당 8도에 포탑선회속도도 초당 9도에 불과하며 포신수명이 1,100발인데 포구초속은 875m/s이며 연사속도까지 분당 6 - 8발 수준이며 +3도 각도로 포신을 고정하고 고정장전을 하기 때문에 대공사격용으로는 종합적으로 볼 때 사실상 무쓸모하며 심지어 근접하는 구축함을 상대하기에도 연사속도와 반응속도가 모두 모자란다. 심지어 포탄적재량까지도 1문당 133발에서 150발이라서 포탄 난사시 쉽게 탄약고가 비어버리므로 노스케이프 해전에서 샤른호르스트가 근접하는 영국군 구축함을 포격으로 제대로 쫓아내지 못한게 다 이유가 있다.

그리고 2연장 부포탑과 단장 부포좌를 동시에 운영하면서 운영이나 관리가 어렵고 목표에 사격시 집중을 하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나와서 비스마르크급 전함에서는 2연장 부포탑으로 부포를 통일하게 된다.
파일:WNGER_41-65_skc33_pic.jpg
10.5cm/65 SK C/33

대구경 대공포인 105mm 대공포의 경우 구체적으로 살펴 본다면 Dop. L. C/31gE 2연장 대공포탑을 채택하여 7기의 대공포탑을 적재함으로서 총 14문을 확보했다. 포신부앙각도는 -8도에서 +80도이며 포신부앙속도가 초당 10도고 포탑회전속도는 초당 8도며 3축 안정방식이라 3축 안정각도는 -17도에서 +17도이며 3축 안정속도는 초당 5도이다. 분당 연사속도는 15발 - 18발이고 포신수명은 2,950발이며 사정거리는 45도 각도로 17,700m이고 대공사격시 +80도 각도로 12,500m까지 대공포탄을 날릴 수 있다. 포탄적재량은 1문당 400발이었으며 포구초속은 900m/s 였다.

일단 포와 탄도 자체는 105mm급으로는 딱히 나무랄데 없는 대공포였으나 날이 갈수록 빨라지는 항공기에 대응하기에는 한참 모자라는 포신부앙속도와 포탑회전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포탑인데 포좌만도 못한 반쪽짜리 포탑이었다. 포탑의 하부만 존재하는 구조기 때문에 포미를 포함한 포신 전체 및 구조물이 아무런 방어조치 없이 노출되어 사소한 피탄이나 포탄 파편이 쏟아져도 동작정지 될 수 있으며, 심지어는 바닷물이 고스란히 들어오는 구조라 북해의 험한 파도로 인한 전기고장에 수시로 시달렸다고 한다.

3축 안정식 구조는 표적 획득 상태를 유지하는 것에 용이했으나 기술력 부족으로 신뢰성이 바닥을 기었으며, 구경 자체도 대함전에 사용하기에는 타격력이 모자란 105mm라 구축함 상대하기도 곤란해지는 통에 대체로 대공포로 사용했다.

여기에 더해서 저렇게 결함많은 대구경 대공포를 유지하는 시간도 너무 길었다. 샤른호르스트는 1943년 12월 26일에 침몰해서 개선할 시간이 약간 부족하다는 변명을 할 수 있지만 그나이제나우는 1945년 3월 23일에 고텐하펜 항구 봉쇄용으로 침몰했음으로 개선할 시간이 넘치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해당 대공포를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했다. H급 전함의 마지막인 H-44까지 주력 대공포가 10.5cm/65 SK C/33 인것을 생각하면 채용은 유지해놓고 계속 개량해볼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이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면 포기하고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도 못한 게 문제였다. 덤으로 해당 대구경 대공포의 개량도 지지부진했다.[3]

그나이제나우가 침몰할 때까지의 시간이라면 나치 독일 육군의 12,8cm FlaK처럼 이미 실전에서 검증된 대공포를 해상용으로 도입 가능한 충분한 시간이기도 하다. 개조 편의성도 용이한 것이 애초에 12,8cm FlaK은 나치 독일 해군의 구축함용 함포인 12,8cm를 기반으로 개발한 것이기 때문에 개조하면서 부품이나 탄약의 호환성도 충분히 살릴 수 있다. 그리고 나치 독일 육군의 대공포들은 유사시에 지상목표를 상대로 사격하기 위해서 저각이나 부각(俯角)으로 포구를 내리는 것도 가능하고 포구를 내린 상태를 장시간 유지하면서 사격을 지속하는 것도 가능하며 전차같은 장갑을 가진 목표를 공격하기 위한 철갑탄도 있으므로 양용포로 근본적인 개조를 시행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급속하게 기술력이 올라가는 세계대전 당시 상황에서 비스마르크 추격전으로 나치 독일 군함의 대공화력 부족 문제가 확실하게 입증된 후에 3년이라는 긴 기간을 가진다면 나치 독일의 기술력을 감안할 경우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4]

이미 육상용 대공포를 해상에서 실전운용한 경험도 충분했다. 영국 해협 돌파작전에서 대공화력 증강을 위해 샤른호르스트급 전함 2척과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 프린츠 오이겐의 상부구조물에 나치 독일 육군의 대공포를 임시 설치해서 실전에서 영국 공군과 전투해서 효과를 본 경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육상용 대공포를 해상용으로 개조해서 설치해보겠다는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다.

심지어 일본 제국과 U보트로 기술 교류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제국에게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고 89식 12.7cm 40 구경장 함포98식 10cm 65구경장 함포의 설계도를 수입하거나 견본품을 입수한다라는 노력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고 10.5cm/65 SK C/33의 포신수명이 2,950발이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일본 제국의 대공포를 수입한 후 독일제 포신을 장착하고 주요 부품을 독일제로 교체하면서 세부 조정하는 기본적인 개조를 거치는 것만으로도 원본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거기다 양용포를 채용하지 못하고 대공포와 대수상용 부포들을 따로따로 장비해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부포와 대공포의 숫자는 늘어났지만 대공전을 하거나 대수상전을 하거나 간에 전투에 제대로 참가하지 못하고 노는 화력이 발생했다. 부포탑의 방어력이 높지 않고 대공포탑은 아예 방어력이 없다시피 한 것을 고려하면 피탄시 중앙부 갑판에까지 화재가 번지고 유폭마저 일으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은 상부구조물에 비해서 갑판이 좁은 편이라서 부포와 대공포를 모두 배치하기에는 공간이 좁으므로 양용포의 필요성이 더 컸는데 끝까지 해당 구조를 개선하지 못했다.

부포와 대구경 대공포의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실전에서 쓴 맛을 본 후에는 부포의 탄약 적재량 대다수를 대공사격용 시한신관도 달 수 있는 대공포탄 겸용 고폭탄으로 바꾸고 철갑탄은 소수만 보유했으며 대구경 대공포의 경우에는 철갑탄도 도입하여 제한적으로나마 대함공격용으로도 사용하도록 탄약배치와 종류를 바꾸었다. 여기에 더해서 주포와 부포에 일본의 3식 통상탄 비슷한 대공포탄을 개발해서 추가했으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워낙 포 자체의 기본 능력이 딸리니 답이 없었고 새로 도입한 대공포탄도 별로 성능이 안좋았다.

부포와 대구경 대공포가 문제라면 소구경 대공포라도 좋아야 하는데 실제로는 설상가상이었다. 대구경 기관포로서 장비한 3.7cm/83 SK C/30 2연장 대공포는 단발식이다. 운용인원만 쳐도 일본제 25mm 3연장 대공포보다 많은데다가 분당 30발이라는 처참한 발사속도를 지녀서 소드피시 같은 허접한 뇌격기조차도 격추시키기 힘들었는데다, 이게 여기저기 고슴도치처럼 많이 박혀있던 것도 아니고 고작 16문만 장비되었다. 설상가상으로 37mm 포는 함교나 함재기 격납고 같은 상부 구조물 옆에 설치되었으므로 현측으로 사격 가능한 포문은 실질적으로 8문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어이없게도 항공기 저격을 노린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좌는 3축안정 방식이었고 포탄은 미넨게쇼스까지 도입해서 작약을 꽉 채워놓았다. 이래놓고 제대로 된 사격통제장치와 조준장치를 갖추지 않았고 포신부앙과 포좌선회를 모조리 수동으로 하기 때문에 실제 대공사격은 말 그대로 마탄의 사수급 포수가 있어야 제대로 가능했다. 물론 옆에서 광속의 속도로 장전해주는 장전수와 포신부앙과 포탑선회를 고속으로 시행하기 위해 수동핸들에 불이 나도록 미친듯이 돌리는 보조인원도 있어야 할 지경이다.

소구경 대공기관포인 2cm/65 C/30의 성능은 96식 25mm 고각기총 수준이었다. 당장 20발 탄창으로 장전하는 방식 덕분에 카탈로그상 분당 280여발이 실전에서 120발 수준으로 떨어진 것도 똑같다. 그 외에도 일장일단이 있으나 전반적으로 도토리 키재기다. 게다가 수량도 2연장 기관포좌 5기로 총 10문에 불과해서 대공화력 측면에서는 매우 미약했다.

결국 실전의 쓴맛을 본 이후에나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은 개장을 거치며 2cm C/38기관포를 38문씩 도배를 했지만 소구경 대공기관포만 약간 개선했다고 전반적인 대공화력의 개선이 이루어지지는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3.7cm/83 SK C/30는 그대로 유지되었고 그보다 대구경의 대공무장은 일체 증설되지 않았다.

그와중에 일부 순양함이나 구축함에는 4cm Flak 28, 즉 독일제 보포스 40mm 포를 달곤 했다. 사실 이것도 처음부터 단 것이 아니라 나중에 대공화력 부족 문제를 인식하고 증설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그 전에는 노획한 타국의 보포스 기관포를 철광석 대금 대신 스웨덴에 억지로 넘기다가 스웨덴이 거부한 후에나 멈추었다는 흑역사도 있다.

그런데 사실 독일 육군이나 독일 공군이 쓰는 육상 대공포로는 3,7cm Flak 37 같이 좋은 발사속도(분당 150발)가 나오는 40mm급 대공기관포 같은 훌륭한 대공포가 충분히 있었다. 왜 이런 좋은 대공포를 해군에 도입하지 않고 쓰레기같은 3.7cm/83 SK C/30을 고집했는지는 의문이다. 독일 해군도 5.5cm/77 Gerät 58같은 대체품을 개발하고 있었으나 1944년에 설계를 시작한 후 패전까지 프로토타입 1문만 만들고 끝났다.[5]

북해의 험난함이 작전에 미치는 영향을 과대평가해서 북해의 날씨만 믿고 공습에 대한 생각도 제대로 못갖춘 것도 답이 없다. 당장 자기네들의 Bf 109, Fw 190, Ju 87, Ju 88같은 항공기를 보면서 적 항공기가 이들의 성능의 절반만 된다는 만용스런 생각을 가지더라도 공습에서 살아남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데 이것도 못한 것이다.

이게 왜 문제가 되는 가 하면 PQ-17 호송선단의 경우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데 북극해에 가까운 노르웨이 지역에서 악천후가 펼쳐졌음에도 독일 공군은 성공적으로 공습을 수행하여 호송선단에 궤멸적인 피해를 입힌 바 있다. 그 외에도 대서양 전투몰타 항공전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듯이 독일군의 전투기가 제공권을 빼앗고 급강하폭격기뇌격기가 영국 해군에게 상당한 타격을 주고 있는 상황인데 양용포와 대공화기로 군함을 도배하고 항공모함의 함재기까지 상공엄호기로 동원한 영국 해군도 곤란을 겪는 것이 눈에 뻔하게 보이는데도 북해의 날씨는 험난하다는 식의 핑계거리나 대면서 대공화기를 저런 쓰레기급으로 달아주고 개선도 없는 것 자체가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이다.

실제로도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 해군의 연습전에서 자국의 공군이나 해군 항공대가 참가하여 자국의 해군을 공습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며 특히 미국 해군이 해당 분야에서 선두를 달려서 연습전시마다 각종 문제점을 발견해서 보고서를 올리고 자국의 함재기를 계속 개량 및 개발했다. 그러므로 자국의 항공력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항공력을 경시하는 것 자체가 요식행위 수준의 함대공습 훈련도 안해봤거나 하더라도 일부러 편견을 가지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중 하나이므로 답이 없다고 보면 된다.

독일이 이럴 동안 미국의 조약형 전함인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에도 건조 당시 1.1인치 기관포가 16문이 있었다. 해당 기관포도 성능 면에서는 영 좋지 못했는데 작동불량이 잦았고 근접방어수단으로서는 그 크기와 무게 때문에 부적절했으며 그러면서도 기관총과 양용포 사이의 간극을 메꿔주기에는 위력과 사거리가 부족했다. 이 때문에 대부분 오리콘 20mm 기관포보포스 40mm 포로 신속하게 대체되었으며 대공화력의 부족을 빨리 지적받아서 수량도 대대적으로 늘린 것을 생각하면 대공사격에 대한 독일의 태도가 방만스럽기 그지없었음은 일목요연 하다.

그래서 나치 독일 해군의 문제점중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뽑히는 문제점이자 이론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이 대공화기의 부실함이며 개선의 미흡함과 대안이 있는데도 채택하지 않는 등의 대삽질이 항상 언급되는 것이다.

4.3. 방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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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의 장갑 구조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의 장갑 방어력 기준은 프랑스의 됭케르크급 전함의 공격을 기준으로하고 15,000m - 20,000m 거리에서 33cm 포탄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측면장갑은 흘수선 상부의 매우 좁은 지역에서만 350mm 장갑을 유지하며 흘수선 하부 부분은 170mm로 가늘어지면서 어뢰방어시설로 연결된다. 측면 주장갑은 높이가 매우 낮기 때문에 주장갑 위에 있는 45mm의 장갑판만이 대부분의 측면 방어력을 감당한다. 45mm 장갑판은 순양함은 고사하고 구축함의 주포에 대한 충분한 방호조차 불가능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설계의 기반이 된 마켄젠급 순양전함의 한계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 크다.

측면장갑의 350mm의 경우에는 방어범위는 함수부의 1번 주포탑 앞부터 함미부위 추진부 근처까지 상당히 긴 구역을 담당했고 1번 주포탑 앞에서 150mm로 감소하면서 함수부에서 0mm 까지 감소하며 3번 주포탑 후방에서 200mm로 감소한 후 함미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이론상 리나운급 순양전함의 15인치(381mm) 주포로는 17,700m 이내까지 접근해야 관통이 가능했다. 그러나 측면장갑의 높이가 너무 낮으며 기존의 설계보다 과적이 되는 바람에 흘수선이 올라가서 수면 위로 나온 주장갑의 높이가 고작 1.2m 수준이므로 대다수의 포탄이 주장갑 상부에 있는 45mm 장갑에 명중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갑판장갑의 경우 터틀백 장갑 구조로 상갑판이 50mm고 하부에 주갑판이 존재하는데 일반적으로는 20mm 두께였으며 함체의 중앙 부분에서 50mm로 늘어난 후 탄약고와 동력부가 포함된 중요 부분에서 80mm로 증가했으며 함수에서 다시 20mm로 감소했다. 함체의 양 측면과 연결되는 부위에 105mm 두께의 경사장갑이 설치되면서 측면장갑과 연결되는 구조다. 기본적으로 갑판장갑이 부족하며 터틀백 장갑 구조로 보호되는 함체 하부의 높이가 낮은 관계로 동력부에서는 약간의 돌출부가 만들어지면서 약점부위가 만들어졌으며 이는 실제 노스케이프 해전에서 입증된다.

어뢰방어구획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250kg의 탄두 폭발을 막도록 설계되었다. 하지만 마켄젠급 순양전함의 설계를 유용하면서 1차대전식 수밀방호구획인 석탄저장고를 그대로 복사하는 바람에 비효율적인 구조가 되고 말았다. 원래 1차대전에서는 석탄을 연료로 사용했기 때문에 석탄저장고를 어뢰방어구획으로도 사용이 가능했지만 2차대전에서는 중유로 연료가 전환되었기 때문에 석탄저장고 시설물 구조로는 제대로 된 어뢰방어구획으로 작동할 수가 없다. 따라서 해당 구조는 그냥 함체 측면에서 함체 바닥을 모두 덮으면서 2중구조로 빈 격실로 매우 미미한 어뢰방어구획으로 작동했다.

그래서 추가적인 벌지 구조를 함체 내부에 추가로 설치했다. 12mm - 66mm 두께를 가지는 외부 구조는 어뢰 탄두를 작렬시키도록 만들어졌다. 그 뒤에는 탄두 폭발력을 받아낼 수 있는 거대한 빈 구조가 존재하며 그 뒤에는 8mm 두께로 만들어진 외벽이 있는 연료탱크로 어뢰방어구조를 만들면서 폭발력을 모두 상쇄하게 된다. 어뢰방어구조는 세로축 보강재와 가로축 격벽으로 보강되었으며 용접구조를 채택하고 측면장갑 뒤에 부드러운 강철(Wotan Weich)로 불리는 어뢰용 격벽을 리벳으로 고정하는 식으로 최대한 방호력을 늘리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구식인 함체 구조로 인해 기본적으로 어뢰방어구조는 충분치가 못했다. 일단 선체 중앙부에서는 250kg 탄두를 버틸 수 있지만 선체 중앙부의 양쪽 끝에서는 200kg의 탄두를 버틸 정도로 약화가 된다. 그리고 어뢰 격벽의 설치에도 문제가 많아서 10도 각도로 경사장갑을 이루는 갑판장갑의 양 측면 끝단으 하부에 연결되는 구조가 특히 문제였다. 구체적으로는 두 개의 막대가 일종의 지지대를 구성하면서 리벳으로 연결된 구조로 버티는 것인데 항해중에 함체에 가해지는 힘으로 인해 평상시에도 많은 응력을 받는 관계로 만일 어뢰가 명중해서 폭발하면 막대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부러지면서 어뢰방어구조 자체가 붕괴될 가능성이 높았다. 여기에 더해서 탄약고와 바벳이 설치되는 주포탑 부근의 어뢰방어구조는 함체의 폭에서 주포탑 구조물로 인해 사용가능한 너비가 적기 때문에 어뢰방어구조가 더 약해지는 결과가 초래된다.

주포탑은 전면 360mm, 측면 200mm, 후면 180mm, 천정 180mm, 바벳 350mm으로 주포의 구경을 생각하면 상당히 튼튼한 장갑을 가졌지만 독일 주력함 특유의 구조인 주포탑 전면장갑과 천정장갑을 연결하는 상부경사장갑을 비롯한 구조적 약점이 있어서 대낙각탄과 높은 고도로 날아오는 수평탄도 포탄이 경사장갑 부위에 명중하면 쉽게 관통당한다는 취약점이 존재한다. 부포탑은 전면 140mm, 측면 60mm, 후면 60mm, 천정 50mm으로 부포의 구경을 생각하면 약간 약한 편이고 대공포탑은 기본적으로 상부개방형이며 포탑 자체도 고작 20mm의 장갑이라 방호력이 없다. 장갑함교는 전방과 후방에 나누어져서 설치되었는데 전방 장갑함교의 경우에는 350mm의 측면장갑과 200mm의 천정장갑을 가지고 있어서 튼튼하지만 후방 장갑함교의 경우에는 측면장갑이 100mm고 천정장갑이 50mm라서 실제 전투에서 운용하기에는 위험하며 중량만 차지할 뿐이라 실제로는 배수량 낭비였다.

4.4. 주행력

처음에는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처럼 디젤엔진을 채용하려고 했으나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이 요구하는 속도를 내기 위한 대출력의 디젤엔진은 개발도 하지 못한 상태라서 증기 터빈으로 동력기관을 교체하게 된다.

그리고 기존의 증기터빈으로도 고출력을 내기 힘들기에 고온고압보일러를 채택한다. 12기의 와그너(Wagner) 초고압 석유 연소 수관 보일러는 450도의 온도와 50기압(5,900kPa)의 압력으로 증기를 생산했으며 여기서 나오는 고온고압증기는 3기의 증기터빈으로 들어가는데 샤른호르스트는 브라운 - 보베리(Brown, Boveri, & Co) 기어드 증기 터빈을 사용했고 그나이제나우는 게르마니아(Germania) 기어드 터빈을 채택했고 각각의 터빈은 추진축을 통해서 직경이 4.8m인 3엽 스크류 프로펠러를 가동한다.

동력기관은 분당 회전수가 265rpm에서 157,811마력(117,680kW)의 출력을 낼 것으로 평가했고, 시험에서 분당 회전수가 280rpm에서 최대 165,930마력(122,041kW)의 출력을 내는 데 성공했다. 후진 시 동력기관의 출력은 57,000마력(41,923kW)이다.

군함의 설계 속도는 31노트(57km/h)였고 시운전에서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은 모두 설계 속도를 능가했다. 샤른호르스트는 31.5노트(58.3km/h), 그나이제나우는 31.3노트(58.0km/h)를 기록한다.

연료의 경우에는 중유를 사용했으며 설계도상으로는 5,080톤의 연료를 적재가능했다. 나중에 측면장갑과 어뢰격벽 사이의 함체 공간을 추가연료저장구역으로 사용해서 6,100톤의 연료적재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연료를 최대한 적재한 상태에서 항속거리는 19노트(35km/h)로 8,100해리(15,000km)를 달성할 것으로 예측하였으며 실제 실험에서는 샤른호르스트는 19노트에서 7,100해리(13,100km)를 달성하여 어느 정도까지는 목표에 근접했으나 그나이제나우는 19노트에서 6,200해리(11,500km)를 달성해서 한참 부족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전기의 경우에는 5개의 발전실에서 발전을 통해 군함에 공급했다. 각각의 발전실은 4개의 디젤 발전기와 8개의 터보 발전기로 구성되었다. 4대의 디젤 발전기는 2쌍으로 나뉘어 2대는 각각 150kW, 2대는 각각 300kW를 공급했다. 8개의 터보 발전기도 6대는 각각 460kW를 공급하고 나머지 2대는 각각 230kW를 공급했다. 이렇게 해서 220볼트의 전압으로 4,120kW의 발전량을 기록했다.

동력기관의 배치는 기본적으로 제1차 세계 대전독일 제국순양전함과 동일하기 때문에 제2차 세계 대전의 일반적인 동력기관 배치인 분산식 시프트 배치와는 달리 보일러 - 터빈의 일반적인 배치를 사용해서 실질방어력이 약화되었다. 그래서 방어력을 증대시키려고 보일러실 주변에 발전기실과 보조기관실을 설치하여 피격시 보일러실을 보호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터빈실의 경우에는 격벽을 사용해서 2개로 나누어서 전면에는 양 측면에 터빈 2기를 배치하고 후면에는 중앙에 터빈 1기를 배치하는 식으로 3축 배치를 해놓았다.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의 동력기관의 문제점은 구조적으로는 방어력 항목에서 나왔듯이 동력기관의 높이가 너무 높아서 터틀백 장갑 구조로 방어가 힘들기에 돌출부가 추가되었다는 점이며 기본적으로는 독일제 군함 동력기관의 공통적인 문제인 고온고압보일러와 터빈쪽의 전투용 신뢰성이다. 상업용이나 일반용 선박 엔진과는 달리 군용 군함 엔진은 제대로 정비를 못받은 상태에서 미숙련자가 운영하는 악조건에서 처음 가는 해역에서 급가속, 급감속, 급회전등의 가혹조건으로 지속운행을 해야 하므로 섬세하게 다루어야 하는 장비는 신뢰성 확보가 어렵다. 따라서 타국은 이런 점을 고려해서 전투용 신뢰성을 확보한 동력기관을 채용하는데 나치 독일은 기술력 단절 및 대형함 건조 중단이 10여년이나 발생하는 통에 그냥 최신예이며 매우 섬세한 기술을 군함에 적용해버린 것이 큰 문제였다. 이런 문제는 나치 독일 해군에서 고온고압보일러와 터빈을 채택한 거의 모든 군함이 겪은 문제이기도 하다.

5. 활동

5.1. 초기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질 때 나치 독일에서 완성된 전함은 샤른호르스트급 전함 2척 밖에 없었고 그나마 취역 직후의 상황인지라 실전에 투입되긴 했으나 북대서양에서 통상파괴전을 수행했다. 여기서 무장상선HMS 라왈핀디(HMS Rawalpindi)와 교전이 벌어져서 샤른호르스트가 라왈핀디를 압도적인 화력을 동원해서 격침시키지만 라왈핀디도 152mm 함포 1발을 샤른호르스트에 명중시켰으며 영국 함대가 근접하자 후퇴한다.

5.2. 노르웨이 침공

최초의 본격적인 실전은 노르웨이 침공이 처음이다. 여기서 28cm 주포 9문씩을 장비한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가 순양전함 리나운(381mm 주포 6문 장비)와 교전을 벌이고는 도망간 적도 있었는데, 이 전투에서 리나운은 약간의 손상을 입었고 그나이제나우는 주포 1문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주포탄의 위력은 리나운이 훨씬 강하지만 리나운은 순양전함이기 때문에 장갑이 전함보다는 약하다. 단순 계산으로 381mm 주포 6문한테 28cm. 주포 18문이 붙은 것이고, 샤른호르스트의 28cm SK C/34 주포는 15.1km 거리에서 336mm의 관통력이 나온다. 즉, 15.1km에서라면 리나운을 충분히 관통 가능하다. 독일 전함들의 주포가 대체로 그렇지만 현측타격능력은 상당한 수준이어서 KGV의 14인치보다도 측면 관통력은 우수했다. 실제로 리나운에게 낸 명중탄은 선체를 관통해서 전치 1개월을 끊어주었다. 따라서 해볼만한 싸움이었으나, 두 전함의 목적은 상륙이 완료될 때까지 어그로를 끄는 것이었고, 리나운은 2차 나르빅 해전의 나비효과까지 일으키는 대 판정승을 거뒀음에도 결과적으로는 낚인 셈이 되었다.

물론 그냥 낚였다고 보기엔 좀 애매한 것이 라나운에게 입은 피해로 인해 샤른호르스트급 두척이 둘 다 내빼버리자 글로우웜 때문에 빠져야했던 아트미랄 히퍼를 포함한 모든 주력함이 전선에서 빠지게 되었고 남아있는 함정들은 영국 해군에게 말그대로 일방적으로 사냥당했기 때문이다. 이때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크릭스마리네는 아무것도 못하고 유보트만 믿고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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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해군의 포격을 받고 화염에 휩싸인 HMS 글로리어스, 샤른호르스트에서 촬영

그러나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이 그냥 당하고만 있던 것은 아니고 많은 전과를 기록했다. 대표적인 전과가 1940년 6월 8일 자매함 그나이제나우와 함께 노르웨이 근해에서 영국 해군항공모함 HMS 글로리어스포격으로 격침시키고 예하 호위 전대(구축함 2척)를 전멸시킨 것. 글로리어스는 직접 포격으로 격침당한 최초이자 유일한 정규항모가 되었다.(호위항모까지 넣으면 갬비어 베이가 최후)

그리고 이때 샤른호르스트는 26km라는 역대 최장거리 명중탄을 기록해서 대형군함이 대형군함을 함포로 맞춘 기록을 달성한다. 그러나 전함이 항공모함을 명중시킨 것이라서 전함과 전함이 서로 전투할 때 함포가 명중한 최장기록은 HMS 워스파이트지중해에서 약 23km 떨어진 이탈리아줄리오 체자레를 명중시킨 것이다.

글로리어스의 함장인 가이 도일리휴즈(Guy D'Oyly-Hughes) 대령이 부하의 군법재판에 꼭 참석해서 부하를 영창에 보내기 위해서 항공모함에 2척의 구축함만 호위를 붙이고 정찰기나 상공엄호기도 항공모함 머리 위 상공에 올리지 않는 엄청난 짓을 하는 바람에 전함이 항공모함을 선제발견하고 선제포격했다. 글로리어스는 첫번째 포탄이 비행갑판에 명중하고 두번째 포탄이 함교에 명중하여 아무 대처도 하지 못한 채 무력하게 가라앉았고, 노르웨이 전역에서 철수하는 공군의 전투기와 조종사, 정비사 등이 함께 타고 있다가 대부분 함께 사망했다. 노르웨이에 배치되었던 영국 전투기가 글로리어스의 적재 한계보다 많았고 격추된 전투기도 많았기 때문에 일부 전투기 조종사는 다른 수송선에 탑승하거나 하는 식으로 따로 영국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기후가 좋지도 않은 북해를 낡은 수송선에 탑승하고 가로질러오라는 말을 듣고 투덜거리던 '운 나쁜' 조종사들은 영국에 도착하고 나서야 항공모함 타고 편하게 간다고 좋아하던 동료 조종사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소름이 끼쳤다고 한다. 역시 인생사 새옹지마...

이때 샤른호르스트도 HMS 글로리어스를 호위하던 구축함 HMS 아카스타에게 뇌격을 맞아 승조원 약 50명이 사망하는 참사도 있었으나 빠르게 복구해 큰 피해는 없었다. 또한 본 전투 직전 우연히 인근 해역에 머물던 영국의 호송선단 소속 수송선들과 대잠 호위함으로 징발되었던 트롤어선 십여 척을 모조리 쓸어버리는 전과를 호위하던 구축함들(해전 이후 연료문제로 회항)과 함께 이룬 바 있었다.

5.3. 영국 해협 돌파작전

비스마르크급 전함과 함께 독일 수상함대의 최신형 전함으로 핵심전력 중 하나였다. 그러나 하필이면 상대가 당시 세계 최강의 해군국 영국 해군인 게 문제였다.[6]

프랑스 침공으로 프랑스를 점령했을 때는 곧 펼쳐질 바다사자 작전과 대서양 작전에 대비해 브레스트항에 머물렀으나, 독일 공군이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패배하고 허구한 날 공습을 얻어맞자 영국 해협 돌파작전(케르베로스 작전)이라는 퇴각작전을 계획하고 독일 점령지 노르웨이로 자매함인 그나이제나우와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 프린츠 오이겐 및 Z형 구축함 5척과 함께 이동했다. 영국은 이들이 밤에 움직일거라 판단 밤에는 영불해협을 집중적으로 수색했지만 독일은 이미 계산하고 낮에 움직였다 이에 처음 보고가 들어왔을때 믿지 못했다. 브레스트에서 도버 해협을 거쳐서 북해로 진입하는 미친 계획이었는데 영국 해군이 유일하게 남은 비스마르크급 전함인 티르피츠를 견제하기 위해서 주력함대가 움직이지 못 하고 브레스트에서 출발한 사실 자체도 늦게 알려져 아무런 피해 없이 성공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샤른호르스트는 기뢰를 2번 밟아 집결지인 노르웨이로 가지 못 하고 모항인 빌헬름스하펜에 임시로 기항하게 된다. 그나이제나우도 기뢰를 1번 밟지만 승조원들이 혼신의 힘으로 복구한 덕에 움직일 수 있었다. 도중에 정찰기에게 걸려 공습이 날아오긴 했으나 뭐 늘상 그렇듯 명중한 폭탄은 없다.

하지만 독일의 항구에 입항한 후에도 폭격이 계속되는 바람에 그나이제나우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으며 샤른호르스트도 폭격을 당했으나 간신히 큰 피해는 입지 않은 채로 수리를 마치고 1943년 1월에 노르웨이에 배치된다. 대공화기의 증설과 개조로 인해 배수량이 늘어나서 1943년 11월 25일 샤른호르스트가 2시간 동안 최대 출력 시험을 수행했고 그 결과 29.6노트(54.8km/h)로 속도가 줄어들었으며 흘수선도 1940년에 시험항해로 31.14노트(57.67km/h)를 달성했을 때와 비교하면 5m나 증가했음을 발견했다.

5.4. 노스케이프 해전

1943년 12월 26일에 영국에서 소련으로 향하는 수송선단을 공격하기 위해 수리를 완료한 샤른호르스트가 출항을 진행했다. 무기대여법에 의해서 대규모의 수송선단이 북극해를 거쳐서 아르한겔스크와 무르만스크로 향했는데 이 수송선단은 주요 공격대상 중 하나였다.

여기서 전함이 수송선단 잡으러 가는 게 폼이 빠져 보일 수도 있지만, 상대 주력과 싸워 이길 수 없으면 정면승부는 피해야 하니 남는 시간에 호송선단이라도 잡고 있는 게 낫다. 그리고 1차대전 때 독일의 경순양함 SMS 엠덴의 전과를 보면 알 수 있듯 통상파괴를 이용해 상대를 말려 죽이는 것은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상대에게 장기적으로 큰 타격을 입히는 데 좋은 전략 중 하나이다. 물혼 상대 해군과 정면으로 싸워 이길 자신이 있다면 싸우러 갈 수도 있지만 그러면 상대 해군이 정면충돌을 피해다니면서 수송선단을 잡으러 다닐 것이므로 입장만 바뀌는 것이다.

하지만 북극해 호송선단의 안전 확보 및 소굴에서 뛰쳐나온 나치 독일 해군을 때려잡기 위해서 영국의 본토함대는 항상 대기중이었고 노르웨이의 영국 스파이로부터 샤른호르스트의 출항소식을 전달받고 바로 급히 출동했다. 샤른호르스트는 영국 함대의 순양함들은 어찌어찌 상대가 가능했으나 하필이면 나타난 게 4연장 주포탑을 탑재한 괴악한 놈이었다. 저 4연장 함포는 안 좋은쪽으로도 괴악해 제대로 작동되는 주포는 여전히 절반에 불과했지만 샤른호르스트를 상대하기에는 그걸로도 충분했다. 결국에 샤른호르스트는 포격에 얻어맞고 수장당한다. 노스케이프 해전 참조.

영국 해군의 입장에서 샤른호르스트라는 함선은 잘 눈에 띄지도 않는데다가 갑자기 나타나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사라지는, 말그대로 눈엣가시인 존재라 미끼를 걸어 유인한 것이다. 사실 먼저 만났던 카운티급 중순양함 HMS 노포크의 함대는 상대가 가능했으나 끈질기게 따라붙는 바람에 샤른호르스트는 포기하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초전에 샤른호르스트의 마스트에 포탄이 명중하며 레이더가 날아갔는데, 이때 이미 운명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여기서 노포크를 날려버리고 최대 항속으로 튀었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었으나 당시는 악천후였고 자칫 발이 묶인다면 오히려 포위당해 위기를 맞을 수도 있었으며 레이더가 날아감에 따라 광학조준으로 함포를 조준해야 했는데 북해의 거친 날씨로 인해 영국군 순양함이 쏘는 함포의 섬광을 보고 조준하는 어려움을 겪었으니 실제로 영국군 순양함을 제압하거나 후퇴시키기는 어려웠다. 이후 Ar 196 A-3 정찰기의 오보로 킹 조지 5세급 전함 3번함 듀크 오브 요크 외 13척의 군함과 마주치고는 도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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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갑대를 피해 관통한 14인치 포탄

도망가던 중 HMS 듀크 오브 요크가 최대 유효사정거리에서 날린 포탄이 장갑판과 장갑판 사이를 뚫는 바람에 보일러실이 직격당해 속도가 8노트까지 느려졌다. 애초에 주장갑대인 320mm 구역 바로 위는 45mm밖에 되지않으며 갑판도 최대 140mm 정도로 두껍지는 않았다. 비스마르크급 전함과 동일한 구식설계의 취약성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일러실은 동력기관의 높이가 높아서 터틀백 장갑 구조 방식의 갑판장갑으로 방어가 불가능하므로 돌출부가 만들어졌는데 해당 약점을 정확하게 찌른 타격이었다.

듀크 오브 요크의 356mm 주포탄은 샤른호르스트에 명중하면서 측면 주장갑을 살짝 넘어간 위치에 있는 45mm의 얇은 상부 측면장갑을 가볍게 관통한 후 함체 내부로 깊숙하게 들어가서 장갑두께가 80mm에 불과하며 높이도 1m 수준으로 낮게 수직으로 돌출된 부위를 그대로 관통하면서 보일러실에 직접 타격을 준다. 이런 방식으로 356mm 구경의 대구경 포탄이 명중할 경우에는 45mm 장갑은 피모철갑탄의 피모도 못벗기고 80mm 장갑도 간신히 철갑탄의 피모를 벗겨낼 수준이므로 그냥 철갑탄 본체가 아무런 손상도 입지 않고 보일러실 내부로 진입한 후 성공적으로 작렬해서 보일러실에 엄청난 피해를 준 것이다.

보수반이 보일러를 긴급수리하면서 간신히 22노트(41km/h)까지 속도를 올렸지만, 이미 영국함대에 포위당한 상황에서 결국 350발에 가까운 포탄들과 11발의 어뢰를 맞고 샤른호르스트는 침몰한다. 특히 후방의 3번 주포탑이 영국 전함의 주포탄에 명중당해서 일찍 전투력을 상실한게 결정적이었다.

이 때 약 1,900명의 승조원중 36명만 생존했고 그나마 생존자는 모두 부사관수병으로, 장교는 전원 전사했다. 영국 해군의 함대는 샤른호르스트를 향해 총 55발의 어뢰를 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훗날 영국 해군 제독은 자신의 훈사에서 샤른호르스트를 향해 '용감한 배'라며 높이 평가한다. 샤른호르스트는 영국군의 포격에 대화재가 일어나 선미부터 선수까지 타오르기 시작한다. 이후 영국 S급 구축함들의 어뢰 일제사격에서 11발의 어뢰가 명중하고, 그중 선수에 명중한 한 발이 큰 폭발을 일으켜 선수 부분부터 침몰한다. 현재 샤른호르스트의 잔해는 노르웨이 북쪽 약 103km 지점에 선수부분이 잘려나가고 뒤집어진 채로 위치하고 있다. 이는 당시 듀크 오브 요크의 전대 사령관 브루스 프레이저 제독의 기록과 오차가 컸는데, 당시 북해의 날씨상황 때문에 오차가 생긴 것이라고 한다. 샤른호르스트의 최후는 1943.12.26 오후 7시 45분 경.

사실 킹 조지 5세급 전함의 속력은 28.3노트로 31.5노트로 순항할 수 있었던 샤른호르스트급에 비해 한참이나 느리다. 당시 샤른호르스트급보다 빠른 전함은 영국에는 없었다. 그러나 보일러실의 직격탄은 버티기 힘들었나 보다. 그래도 방향타에 뇌격맞은 누구보다는 나은 형편.
"...샤른호르스트는 장갑과 내해성, 특히 화력 면에서 영국 순양함들보다 월등했다. 경무장인 순양함들에 비해 샤른호르스트는 부포 외에도 11인치 중포를 9문이나 갖고 있었다. 그런 우위의 화력면을 볼 때 접촉이 이루어졌던 그 날 아침에 함포 사격으로 전투를 벌여 결판을 냈어야 했다."
"...프레이저 제독이 두려워한 것은 바로 그 점이었다. 호송선단이 순양함의 보호만 받으며 독일의 무장전함을 조우하고 있던 그 순간에 그가 타고 있던 전함 듀크 오브 요크는 아직 200마일 밖에 있었던 것이다."

당시 독일 해군 총사령관이었던 해군원수 카를 되니츠 제독은 샤른호르스트의 이 마지막 항해에 대해 훗날 자신의 전쟁 회고록에 '불운과 재난의 연속'이었다고 기록했으며, 당시 전단장으로 샤른호르스트 함과 함께 전사한 해군소장 에리히 베이 제독의 지휘에 관해서도 의문을 남겼다. 또한 앞으로 크릭스마리네의 모든 함들은 레이더 없이는 싸우지 말 것을 당부했다. 샤른호르스트가 노포크와의 교전에서 레이더를 잃어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론상 속도를 살려 잡히기 빠져나갈 수도 있었던 포위망이 완전히 조여진 상태에서 두들겨맞은 전훈을 반영한 것.

그러나 샤른호르스트는 크릭스마리네의 전투함들 중에서는 가장 화려한 전과를 가진 전투함이다. 노스케이프 해전이 치열했던 것 자체가 이를 입증한다. 그리고 자매함 그나이제나우 함과 함께 모범군함으로 지정되어 전 승조원이 대양 함대 휘장을 수여받았다.

5.5. 패전

1942년 2월 26일에서 2월 27일간의 폭격에서 1000파운드 폭탄에 직격당해서 함수부가 박살나고 1번 주포탑이 불타는 큰 피해를 입고 112명이 사망하고 21명이 부상을 입은 그나이제나우는 수리견적을 뽑아보니 최소한 2년이 걸릴 것으로 예측되었으며 이렇게 오랜 기간 수리할 것이며 아예 대개장을 겸해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고텐하펜에 1942년 4월 4일에 도착한 그나이제나우는 기존의 주포탑을 뽑아내고 주포탑 바벳을 강화하며 선체를 연장하고 전기 시스템을 점검 및 개선하는 과정에 돌입한다.

1943년 초까지 수리 및 강화는 대부분 진행되었고 개선된 함수와 38cm 2연장 주포탑을 탑재할 준비까지 갖추어졌으나 바렌츠해 해전의 패배로 분노한 아돌프 히틀러가 대형함 폐기명령을 내림에 따라서 수리가 중지되고 방치되었으며 모아놓은 자재는 다른 곳으로 전용되었다.

대개장을 위해서 분리된 28cm 3연장 주포탑은 해안포용으로 전환되었으며 그 중에서 3번 주포탑은 노르웨이에 해안포로 설치된 후 21세기에도 노르웨이의 트론헤임에 있는 오스트로트 요새(Austrått Fort)에 남아있으며 1991년에 박물관이 되었다. 부포인 15cm 함포는 덴마크에 설치되었으며 1952년에 스테펜 요새(Stevnsfort)에 전시된 후 2000년에 최후의 연습사격을 실시한 후 박물관이 되었다.

그나이제나우 자체는 쓸만한 것은 모조리 뜯긴 채 폐허로 방치된 상태에서 항구에 계류되었다가 1945년 3월 23일 고텐하펜의 외항을 막기 위해 폐색선으로 침몰했다. 폴란드는 1951년 9월 12일에 그나이제나우를 인양한 후 스크랩 처리했다.

6. 동형함 목록

함명 기공 진수 취역 비고
샤른호르스트
(Scharnhorst)
1935년
6월 15일
1936년
10월 3일
1939년
1월 7일
1943년 12월 26일
노스케이프 해전 당시 침몰
그나이제나우
(Gneisenau)
1935년
5월 6일
1936년
12월 8일
1938년
5월 21일
1945년 3월 23일
고텐하펜[7] 연안 봉쇄용으로 자침

7. 함종

영국군 함선 분류표에는 순양전함으로 분류되어 있고 교전 이전에 관측되었을때도 순양전함으로 보고되었으며 이게 주로 세간에 퍼졌다. 덕분에 일부 독일계 사이트에만 전함으로 기록되는 중. 주포의 위력 역시 11인치라 주포 구경의 한계로 인해 종합전투력은 약하지만 현측 관통력 한정으로는 꽤 강력했다. 다만 카테고리상의 부실해보이는 스펙과 전함 상대로 제대로 된 활약상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결국 이런 취급을 받은 꼴이다.

사실 개념상으로도 샤른호르스트급은 순양전함이 될 수 없다. 순양전함은 당대 기술력의 한계로 화력, 장갑, 항속을 모두 챙길 수 없어서 셋 중 장갑을 포기한 부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갑을 덜었으면 덜었지 화력은 어지간해서는 건드리지 않는다. 설령 건드린다 하더라도 포문 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지 구경을 줄이는 짓은 하지 않는다. 당장 리나운급 순양전함이 대표적이다. 주포 구경은 15인치에 달하지만 주포의 포문 수는 고작 6문 뿐이다.

나치 독일도 원래 함포를 비스마르크급 전함과 동급인 38cm 함포를 2연장 주포탑으로 3기를 설치하려고 계획했고 후에 RAF의 공습으로 손상된 그나이제나우를 뒤늦게서야 14.96인치의 380mm로 환장할 계획이었으나... 히틀러의 대형함 폐기명령에 그나이제나우의 환장계획은 좌절되고, 3번 포탑은 육상에 설치된다.

8. 여담

건조 중이나 운용 중에 죽은 사람이 많고 그래서인지 귀신 들린 배라는 도시전설 비슷한 이야기도 있다. 대표적으로 대모의 자살인데, 이는 사실이 맞다. 단치히 포격전에서는 이유없이 포가 폭발하고 환풍구가 고장나는 등 여러 인명사고도 발생하였다.

그 외에도 설계상의 문제점으로 인해 과적상태가 발생, 보급품이나 연료를 적당히 실은 평소에도 반침몰상태로 항해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쓸데없이 복잡하기만 하고 정작 바다에서는 고장이 잘 나는 장비를 가득 가지고 있어서 상당한 애로가 꽃피었다고 한다. 당장 개수 때 2만 미터에 이르는 쓸데없는 전선을 제거하였다 등의 문구가 기록될 정도였다.

전쟁 당시 영국에서는 콤비로 통상파괴전을 벌이고 튀어버리는 이 두척을 신데렐라의 두 언니들에 빗대어 추한 자매들(Ugly sisters)이라고 불렀다. 함선 자체의 손꼽히는 미모를 생각하면 다소 아이러니한 명칭이다.

이 전함에 쓰인 주포를 육지에서 움직이게 하려는 페이퍼플랜이 있었다.

타미야의 1/700 함선 라인업 워터라인으로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가 발매되어 있다. 그런데 순양전함으로 분류했다. 가격도 보통 전함의 가격인 3600엔이 아닌 주로 순양함의 가격인 2200엔이다.

9. 기타 매체에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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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사급 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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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른호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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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이제나우
  • 월드 오브 워쉽에서 7티어 독일 프리미엄 함선으로 등장한다. 또 자매함인 그나이제나우는 업건 계획이 적용된 버전으로[8] 정규 7티어 전함으로 나왔다. 둘 다 재빠른 기동성과 충분한 내구도와 부포로 무장했으며 특장점으로 어뢰를 달고 있어 근접전에서 우위를 가져가기에 탁월하다. 특히 샤른호르스트의 경우 안 그래도 뛰어난 관통력을 가진 주포에 연사력까지 겸비해 순양함의 시타델을 쓸어버리고 전함은 연사력으로 피해를 누적시키거나 근접전을 강요해 어뢰로 박살내는 등 7티어 내 상당한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원본에서 약점으로 지적받던 80mm 두께의 시타델 수직장갑대가 수평장갑으로 깔끔하게 평탄화되었고 일관적인 입사각 탄 궤적 시스템 덕분에 45mm 두께의 측면 상단을 뚫려 노스케이프마냥 상탄에 시타델이 털릴 일이 없게 되었다. 특히 50mm 갑판장갑이 미국산 초고각포가 아니면 죄다 도탄을 내버리는 만능장갑이라 전함 간 저격전에서 상당한 중장갑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나이제나우는 포문 수도 적고 집탄도 안 좋아 운용이 상당히 까다로운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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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른호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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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이제나우
  • Naval Creed:Warships에서 4티어 1차 전함으로 그나이제나우와 4티어 프리미엄 순양함으로 샤른호르스트가 등장하며 모두 측면에 어뢰 튜브가 설치되어있어 근접하는 적들에게 서프라이즈 선물로 어뢰를 날려줄 수가 있다. 다만 은근 관통력 좋은 전함들과 독일 담당일진 영전 때문에 근접전 능력을 못살리고 용궁가는일이 가끔씩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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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른호르스트 그나이제나우
  • 지금은 서비스가 종료된 대만의 강철소녀전함의 순양전함으로 샤른호르스트, 그나이제나우가 등장했었다.
  • 워썬더 독일 해상트리 5랭크 6.7에 위치해 있으며, 타 전함보다 한방화력이 바늘포마냥 빈약하여 타 전함을 잡는 것이 힘들지만 20초 미만이라는 빠른 연사력과 해상장비 중에서 나름 탑에 드는 방공망을 자랑하였고 16인치 대응방어라는 은근 단단한 맷집으로 순양함들 상대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함선이다.

[1] 배수량 37,303톤 기준[2] 2번 주포탑은 -9도에서 +40도의 포신상하각도를 보유함[3] 일단 포탑을 밀폐시킬 계획이긴 했으나 H급 자체가 취소되어 역시 취소되고 말았다.[4] 물론 1943년 시점에 대형함 폐기를 명령하고 수리가 거의 다 되어가던 차였던 그나이제나우 마저 무장해제 시키고는 주포와 부포를 떼어다가 해안포로 쓰던 차였던 만큼 기술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냥 해군을 도외시해버린 탓도 있다.[5] 다만 이 문제는 육군과 공군이 대립하고 있던 점을 생각한다면 이쪽도 해군과의 정치적 알력다툼이 있다면 정치적 문제로 계속 썼거나 육군에서 내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공군의 경우는 항공모함 건조 중에 괴링이 전투기 관련으로 간섭한 경우를 생각한다면 해군도 이러한 정치적 대립 문제로 도입이 안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쪽도 일본 제국 육해군의 대립보다는 못해도 엇비슷한 수준이었을 것으로 보인다.[6] 유틀란트 해전때 영국과 비슷한 수의 함정을 잃었으나 독일해군 수가 더 적었기에 영향이 컸다. 그리고 1차대전 이후에 많은 전함이 자침되었고, 2차대전 때 독일은 아예 새로 만들어야 됐지만 영국은 새로 건조하는 것에 더하여 구식 전함의 개수를 하면서 전력의 차이가 커졌다.[7]그디니아[8] 두 사진중 윗 사진의 연장포탑이 15인치 업건 계획으로 등장한 그나이제나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