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9-22 09:35:08

오리콘 20mm 기관포

Oerlikon 20 mm cannon
<nopad> 파일:Oerlikon_20mm_2.jpg
오리콘 20mm 기관포
<colbgcolor=#c7c7c7,#353535><colcolor=#000,#fff> 종류 <colbgcolor=#ffffff,#121212><colcolor=#000,#fff>기관포
원산지 파일:스위스 국기.svg 스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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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7c7c7,#353535><colcolor=#000,#fff> 역사 <colbgcolor=#ffffff,#121212><colcolor=#000,#fff>1937년~현재
개발자 라인홀드 베커
개발년도 1930년대
생산 오리콘
생산년도 1937년~1995년
생산수 124,734대
사용국 파일:스위스 국기.svg 스위스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오스트리아
그 외 다수
사용된 전쟁
기종
원형
파생형 오리콘 FF, MG FF
제원
탄약 L70: 20×110mmRB
L85: 20×128mm
탄약 무게 HE: 123g
HE-T: 116g
급탄 60발들이 실린더 탄창(후기형은 벨트형 탄띠)
작동방식 가스작동식
총열길이 L70: 1,400mm
L85:1,700mm
전장 L70: 2,210mm
L85:
전폭 m
전고 m
중량 L70: 68.04kg(포 본체), 20.865kg(포미 제외 시)
L85: 92kg(공허중량), 182kg(200발 적재)
반동력 kg
운용 인원
대차
선회 수동 360°
고각 수동 -15°~+90°
발사속도 L70: 최대 450RPM, 보통 250~320RPM
L85: 최대 900~1000RPM
탄속 L70: 820m/s
L85: 1,050m/s
유효사거리 저공 비행 표적, 고폭탄 기준
L70: 914m
L85: 1,500m
최대사거리 고폭탄, 고각 45° 기준
L70: 4,389m
L85: 6,800m
}}}
1. 개요2. 역사3. 특징4. 파생형
4.1. 오리콘 FF4.2. MG FF
5. 실전6. 운용국7. 미디어

1. 개요


Mk.II 작동 방식 영상

스위스의 기업 오리콘에서 개발하고 생산한 20mm 구경의 기관포. 제1차 세계 대전에 나온 독일의 Becker Type M2 20mm 기관포를 기반으로 1935년에 설계되었다. 1937년부터 생산되어 제2차 세계 대전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도 파생 버전들이 사용되고 있다.

폴란드에서 생산한 20mm 폴스텐 기관포도 오리콘 20mm의 현지 파생형이다. 이 포는 1944년에 실전 배치되었으며, 1950년대까지 센토어 전차 기반 대공전차나 초기형 센추리온 전차의 부무장으로도 사용되었다.

태평양 대전기 미군 함선에 40mm 보포스와 함께 도배되었다.

2. 역사

제1차 세계 대전 중 독일의 산업가 라인홀트 베커는 API 블로우백 방식을 사용하는 20mm 구경 기관포를 개발했다 . 이 기관포는 일명 20mm 베커라고 불리며, 20×70mm RB 탄약을 사용했고, 분당 300발의 연사력을 가졌다. 이 포는 독일제국 항공대의 항공기용 기관포로 제한적으로 사용되었고 전쟁 말기에는 대공포로도 사용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베르사유 조약으로 독일에서 이러한 무기의 추가 생산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이를 우회하여 1919년에 특허와 설계는 취리히 근처에 있는 스위스 회사 SEMAG( Seebach Maschinenbau Aktien Gesellschaft )로 이전되어 진행되었다. SEMAG는 이 무기의 개발을 계속하여 1924년에는 더욱 강력한 20×100mm RB 탄약을 발사하는 더 무거운 버전인 SEMAG L을 생산했으며, 발사 속도는 약간 더 빠른 350rpm에 달했다.

1924년 SEMAG는 파산했으며, 이후 취리히 교외의 오리콘(Oerlikon)에서 이름을 딴 오리콘이 SEMAG의 무기, 제조 장비, 그리고 직원에 대한 모든 권리를 인수했다.

1927년에 오리콘 S가 기존 제품 라인에 추가되었다. 이 제품은 더 큰 카트리지(20x110RB)를 사용하여 830m/s의 포구초속(기존 베커 20x70RB 포의 490m/s 대비)을 달성했지만, 무게가 증가하고 발사속도도 280rpm으로 감소했다. 개발목적은 더 높은 포구초속이 요구되는 대전차 및 대공 무기로서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것이었다. 1S라는 개량형이 1930년에 출시되었다.

탄약과 총열 길이는 다르지만 메커니즘은 매우 유사한 세 가지 크기의 기관포가 계속해서 병행 개발되었다. 1930년에 오리콘은 항공기에서의 기관포 사용을 재고하여, 사수가 수동으로 조준하는 가동식 마운트에 사용하도록 설계된 AF 와 AL을 출시했다 . 이전 버전의 총기에 사용되었던 15발들이 박스형 탄창은 15발 또는 30발들이 드럼형 탄창으로 대체되었다.

1935년에는 전투기 날개에 장착하도록 설계된 기관포들이 등장하며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다. '날개에 장착됨'을 의미하는 Flügelfest의 FF로 지정된 이 무기는 다시 FF , FFL 및 FFS 라는 명칭으로 세 가지 크기로 나왔다 . FF는 AF보다 약간 더 큰 카트리지인 20x72RB를 발사했지만 이러한 무기의 주요 개선 사항은 발사 속도가 크게 증가한 것이다. FF의 무게는 24kg이고 발사 속도는 520rpm으로 550~600m/s에 달했다. 30kg의 FFL은 발사 속도가 500rpm으로 675m/s의 총구 속도로 투사체를 발사했다. 그리고 무게가 39kg인 FFS는 470rpm으로 830m/s의 높은 총구 속도를 제공했다.

날개 장착 및 원격 조종을 위해 총기 설계가 변경된 것 외에도, 비행 중에는 탄창을 교체할 수 없기 때문에 더 큰 드럼 탄창이 도입되었다. FF 시리즈의 경우, 45, 60, 75, 100발(그리고 드물게 사용되는 150발) 드럼 탄창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용자는 30발 또는 60발들이 드럼 탄창을 선택했다.

전 세계적인 재무장이 시작된 1930년대에는 여러 외국 기업들이 오리콘한테 20mm 기관포의 면허를 구입하여 현지 생산을 시작했다. 프랑스에서는 이스파노-수이자가 V-12 엔진 실린더 뱅크 사이에 장착하기 위해 오리콘 FFS를 이스파노-수이자 HS.7과 이스파노-수이자 HS.9로 도입했다. 독일에서는 이카리아(Ikaria)가 FF포를 MG FF 로 개발하여 20x80RB 탄약을 발사했다. 그리고 일본 제국 해군은 세 종류의 함포를 모두 평가한 후 FF와 FFL을 각각 99-1식과 99-2 식 으로 개발하도록 지시했다.

1938년에는 FFS의 개량 사항을 새로운 대공포에 적용하여 오리콘 SS가 생산되었다. 오리콘은 1942년 1SS(제1대공포)와 1945년 2SS(분당 650발)의 발사 속도를 더욱 향상시켰다. 그러나 대공포로 널리 채택된 것은 바로 SS 대공포였으며,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중 연합군 해군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SS 대공포는 400그레인(26그램)의 IMR 4831 무연화약을 사용하여 2000그레인(130g)의 포탄을 초당 850미터의 속도로 2발사할 수 있었다.

3. 특징

대부분의 고압 기관포와 달리 오리콘 기관포와 그 파생형은 블로우백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즉, 발사 순간 노리쇠가 총의 약실에 고정되지 않는다. 잠금이 없는 단순한 블로우백 설계는 소구경 반자동 권총과 같은 훨씬 가벼운 무기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저출력 카트리지의 경우, 노리쇠 또는 노리쇠와 슬라이드의 정적 관성이 약실이 열리기 전에 발사체가 총구를 떠나고 총열의 가스 압력이 안전한 수준으로 낮아지도록 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에 잠금이 필요하지 않았다[1]

반면, 20mm 카트리지는 너무 강력하고 효율적인 자동포 배럴은 너무 길어서 이 기본 시스템을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따라서 Oerlikon은 API( Advanced Primer Ignition)를 사용하여 노리쇠의 저항을 증가시키는 설계다.API 블로우백 무기에서는 발사핀이 노리쇠가 계속 앞으로 이동하는 동안 카트리지를 발사하므로 가스 압력이 노리쇠의 전진 운동량을 극복해야 뒤쪽으로 밀 수 있다.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Oerlikon의 챔버는 카트리지를 담는 데 필요한 것보다 길고 케이스와 같은 직경인 노리쇠의 앞쪽 끝은 실제로 발사 전에 카트리지 뒤쪽으로 이 확장된 챔버에 들어간다.결과적으로 발사가 발생하면 노리쇠와 스프링의 전진력이 추진제 가스의 힘에 맞서 작용하여 후자가 전자를 극복하고 케이스, 노리쇠 및 스프링을 뒤로 밀기 시작한다.노리쇠가 간단한 블로우백 총처럼 챔버 입구에서 멈췄다면 이 운동량은 중화되었을 것이다. 대신 지속적인 움직임 덕분에 추진제가스를 상쇄하고 카트리지와 노리쇠의 후방 이동을 늦추는 역할을 한다.

이와 더불어, 이 특이한 배치의 두 번째 장점은 발사 후 노리쇠와 탄피가 노리쇠 끝이 다시 나오고 탄피가 약실을 떠나기 시작하기 전에 짧지만 상당한 거리를 후방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후방 이동 지연과 함께 가스 압력이 필요한 안전 수준으로 떨어질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일반적인 무기보다 훨씬 더 강력한 무기에 블로우백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금 장치가 있는 총과 비교하면 상당히 무거운 노리쇠를 사용해야 한다. 이 무거운 노리쇠에 충분한 전진 속도를 부여하려면 큰 스프링이 필요하다[2] 이러한 특징은 일본제 99식 Mk 2의 최종 모델처럼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이러한 총의 발사 속도를 제한한다.

이 독특한 약실과 노리쇠 설계는 특징적인 모양의 카트리지를 사용해야 한다. 탄피는 곧은 측면, 매우 작은 연결부, 그리고 리베이트 림을 가지고 있다.곧은 측면 덕분에 탄피가 원통형 챔버에서 앞뒤로 미끄러질 수 있다.이 과정에서 연결부는 지지되지 않으므로 탄피가 발사될 때 확장되고, 리베이트 림은 추출 클로가 림에 걸린 노리쇠의 면이 챔버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한다. 탄피의 움직임을 원활하게 하려면 탄약에 윤활제(그리스)를 발라야 했는데, 이는 오리콘 기관포의 대표적인 단점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개발된 대안은 소위 플루트 약실이었는데, 이 약실에는 홈이 있어 추진제 가스가 약실 벽과 탄피 사이로 스며들어 그리스의 역할을 대신했다.

탄약은 상단에 달린 60발들이 드럼 탄창을 통해 공급된다. 연속 사격 시에는 탄창을 자주 교체해야 하므로 유효 발사 속도가 감소하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벨트 급탄식 버전도 개발되었다. 사격은 오른 그립의 방아쇠로 제어한다. 사용된 탄약은 약실 아래에서 배출된다.

여러 국가와 군에서 동일한 기본 포에 대해 다양한 마운트를 도입했다. 일반적인 단포신 해군형은 고정된 받침대 위에서 자유롭게 회전하며, 평평한 장갑 방패가 승무원을 어느 정도 보호한다. 포수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링 앤 비드 가늠자를 사용하여 조준하고 발사한다 . 포수는 허리띠와 어깨 지지대를 통해 무기에 붙었다. 이러한 이유로, 다양한 체격의 포수를 위해 높이 조절 기능이 있는 장착대가 존재했다. "피스 치프(piece chief)"가 표적을 지정하고, 급탄기가 소모된 탄창을 교체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육군과 해군 모두에서 사용할 수 있는 2연장 및 4연장 마운트가 개발되었다. 영국 해군은 유압식 2연장 총 마운트를 운용했으며, 미국 해군은 Elco 해군 사단, Electric Boat Company에서 PT 보트 용으로 개발한 Elco "Thunderbolt" 마운트라고 불리는 4연장 마운트를 운용했다. 시제품은 1942년 후반에 제작 및 시험되었으며 지중해에 있는 여러 Elco PT 보트에 실전 배치되었다. 또 아칸소, 콜로라도, 메릴랜드, 웨스트 버지니아, 워싱턴, 매사추세츠 등의 전함과 와이오밍급 훈련선에도 실험적으로 배치되었다.

블로우백 작동 방식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더 높은 발사 속도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더 나은 메커니즘이 필요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블로우백 메커니즘은 발사되는 포탄의 힘과 메커니즘의 작동 타이밍 사이의 신중한 균형을 요구한다. 오리콘 기관포의 설계에서는 이러한 타이밍 요구로 인해 상대적으로 연사 사이클이 느려졌다.

이러한 요구에 대한 대응으로 Oerlikon은 가스 작동 메커니즘을 도입하여 약실 잠금을 해제하는 "파워 리저브 로딩" 액션을 개발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이 설계로 생산된 총은 5TG라고 불렸고 그 직후 KAB라고 불렸다. 이는 본래 베커 기관포 설계와 근본적으로 다른 최초의 오리콘제 설계였다.

전쟁 직후 오리콘은 현재 KAA인 또 다른 가스 작동 자동포인 204-Gk의 개발을 시작했다. 5TG(KAB)와 204-Gk(KAA)는 모두 오리콘이 1943년에 개발한 20mm×128 탄약 카트리지를 사용한다.

4. 파생형

4.1. 오리콘 FF

전투기 탑재 무장형.

4.2. MG FF

5. 실전

5.1. 제2차 세계 대전

전투기 탑재형인 오리콘 FF는 폴란드의 PZL P.24 G와 같은 1930년대의 일부 전투기에 무장으로 설치되었다. 오리콘 포의 국내 생산 파생형은 항공기, 군함 및 지상에서 훨씬 더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공중에서 Ikaria MG FF는 여러 독일 항공기의 무장으로 사용되었으며 가장 유명한 것이 Bf 109다. 일본 해군도 유사하게 FF의 사본을 사용하여 A6M을 포함한 여러 항공기에 99식 Mk 1 기관포를 사용했으며, 전쟁 후반에는 위력과 연사력이 강화된 오리콘 FFL의 라이센스 생산 버전인 99식 Mk 2를 전투기에 사용했다.

프랑스의 이스파노-수이자(Hispano-Suiza)는 엔진의 실린더 뱅크 사이에 면허생산형 HS7 또는 HS9 기관포를 장착한 12X 및 12Y 엔진의 모터-캐논(motour-canon) 조합을 시장에 내놓았다. 기관포는 속이 빈 프로펠러 허브를 통해 발사되었는데, 기어 설계상 크랭크케이스 위로 돌출되어 있었다. 이러한 무장은 모란-솔니에(Morane-Saulnier) MS406을 비롯한 일부 기종에 장착되었다. 독일에서 MG FF를 장착한 유사한 사례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오리콘 기관포는 해군 분야에서 가장 잘 알려지게 되었다. 영국군은 처음에는 오리콘 대공포를 단거리 화기로서 호의적으로 보지 않았다. 1937~1938년 당시 영국 해군 대령 이었던 Louis Mountbatten 경은 영국 해군 내에서 오리콘 20mm 함포에 대한 편견 없는 성능시험을 주선했지만 실패했다. 본국 함대 사령관인 Roger Backhouse 경이 제1 해군경으로 임명된 후에야 Mountbatten 의 노력 이 결실을 맺었다 . 1939년 상반기에 1,500문의 함포 계약이 스위스에 발주되었지만, 각종 지연과 1940년 6월에 일어난 프랑스의 함락으로 인해 단 109문만 영국에 도착했다. 1940년 스위스에서 수입된 모든 오리콘 기관포는 다양한 포차에 장착되어 육지에서 경대공포로 사용되었다.

프랑스 함락 몇 주 전에 오리콘 공장은 면허 하에 영국에서의 생산을 승인했다. 영국 해군은 취리히에서 필요한 도면과 문서를 가져왔고, 최초의 영국산 오리콘 대공포의 생산은 1940년 말 런던 루이 슬립에서 시작되었다. 최초의 영국제 오리콘 기관포는 1941년 3월이나 4월에 영국 해군에 인도되었다. 영국 공군 연대는 대공 역할에 오리콘 기관포를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이것은 1943년에 보포스 40mm 포가 도입될 때까지 북아프리카, 중동, 이탈리아 및 북서유럽의 경방공중대의 주요 무장이었지만 많은 방공중대는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여러 포를 함께 사용했다. 극동의 비행 중대는 오리콘 기관포만 사용했다.

오리콘포는 1942년부터 미국 해군 함정들이 사거리와 화력이 부족했던 M2 브라우닝 중기관총과 무겁고 신뢰성이 떨어지는 기존의 1.1인치 4연장 75구경장 기관포를 대체했다 . 오리콘 대공포는 해군 대공포로 명성을 얻었으며, 중형급 이상 함포로는 표적 사격이 어려운 단거리(실제로는 최대 1.5km)에서 효과적인 방어성능을 발휘했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 당시 중형 항공기와 일본군의 카미카제 공격에 대한 저지력 부족으로 결국 주요 대공 무기로서 사용이 중단되었다. 이후 미군도 오리콘 대공포를 더 큰 보포스 40mm 포와 3인치 50구경장 함포로 대체했다. 일부 항공기에도 주무장으로 장착하였는데, 기존 .50구경 중기관총보다 화력이 크게 향상되었지만 탄약 공급 시 걸림 현상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다.

캐나다 왕립 해군은 오리콘 기관포를 대함 및 대잠수함포로 널리 사용했다. 대부분의 대형 함선의 장갑에는 직접적인 효과가 없었지만, U보트와 대형 함선의 갑판에는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전쟁 말기에는 소수의 코르벳함에 이 무기가 장착되었지만, 당시에는 프리깃함과 구축함에 더 많이 사용되었다.

루마니아는 제2차 세계대전 전반기에 독일로부터 45개를 구입했다.

5.2. 베트남 전쟁

베트남 전쟁 당시 미 해군은 각종 20mm 구경 기관포를 혼합하여 사용했다. 초기 오리콘(Oerlikon) 기관포는 전쟁 초기에 일부 함선, 특히 강변 순찰선에서 여전히 사용되었지만, 점차 이스파노-수이자(Hispano-Suiza) HS.404에서 파생된 벨트 급탄식 콜트 Mk 12와 Mk 16 기관포로 대체되었다.

5.3. 이란-이라크 전쟁

유조선 전쟁 시기에 오리콘 20mm 함포는 소규모 걸프 해군과 일부 서방 호위함에서 사용되었다. 이 무기는 종종 고속정에 장착되어 경고 사격을 하거나 이란의 소형 함정의 괴롭힘을 억제하는데 사용되었다. 이 시점에는 공중 위협에 대해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지만, 오리콘은 해상의 경장갑 표적에 대해서는 여전히 유효했다.

5.4. 포클랜드 전쟁

영국 해군은 CIWS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몇몇 함선을 포함한 여러 보조 함선에 방어를 위해 2차 대전기의 오리콘 20mm 포대가 급히 장착되었다. 일부 영국 함대 보조 (RFA) 함선도 가스 작동식 Oerlikon GAM-BO1 의 쌍발 마운트를 받았다. 그러나 성능이 제한적이라서 현대식 레이더 유도 방어 체계가 필수적이라는 것이 강조되었다.

6. 운용국

7. 미디어


[1] 노리쇠 스프링 또한 약실의 개방을 저항하지만, 실질적으로 그 기여도는 너무 작아서 관련성이 없다.[2] 오리콘은 독특하게도 이 구성 요소를 총열에 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