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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S 서톤[1]에 항복하는 10형 유보트 U-234.[2] |
제원 | |
수상 배수량 | 1,763톤 |
수중 배수량 | 2,177톤 |
전장 | 89.8m |
전폭 | 9.2m |
높이 | 10.2m |
흘수 | 4.71m |
추진방식 | 디젤-전기 추진 |
추진체계 | 과급 GW F 46 9-실린더 4행정 사이클 디젤엔진 2기(총 4,800 마력) AEG GU 720/8-287 전기모터 2기(총 1,100마력) |
속력 | 수상 최고속도 17노트 수중 최고속도 약 7노트 |
항속거리 | 부상상태 10노트 항해로 34,170km 잠항상태 4노트로 172km |
최고 잠항심도 | 220m |
승조원 | 장교 5명, 수병 47명 |
어뢰발사관 | 함미 2문 |
무장 | 533mm 중어뢰 15기 or SMA 기뢰 66발 105mm SK L/45 함포 |
1. 개요
10형 유보트는 특별한 독일 잠수함이었다. 원래 장거리 기뢰부설용으로 설계되었으나 화물수송으로 점점 용도가 변경되었다. 9D형 유보트와 이탈리아 로몰로급 잠수함[3]과 같은 유형의 수송 작전을 맡았다.2. 역사
10형 유보트는 원래 새로 개발된 SMA 기뢰를 탑재하기위해 특별히 설계된 함종이다. 내부 설계에는 기뢰 수용을 위한 건조격실이 따로 마련되어있었다. 이는 SMA 기뢰가 발사 전에 일일이 신관설정을 해놓아야했기 때문이다. 계획상 약 2,500톤의 배수량을 보유할 계획이었고, 훗날 파생형 10A형 유보트는 주 기뢰적재실에 더해 부착형 탱크에 기뢰를 더 싣고 다녔다. 그러나 건조되지 않았다. 대신 총 8척의 10B형 유보트가 생산되었다. 기존의 기뢰적재실 대신 함 전방 구획에 6개의 수직 적재구획을 탑재하여 18발의 기뢰를 탑재하고 부착형 탱크에도 총 12개의 수직구획에 48발의 기뢰를 탑재하고 다녔다. 어뢰발사관은 함미에 2문을 갖추었다. 수송함으로 전용된 이후로는 기뢰 적재구획에 화물 컨테이너를 넣고 다녔으며, 기뢰 발사 장비도 폐기되었다.10B형 유보트 초도함은 1941년 5월에 취역했고 수중 만재배수량이 2,710톤이었다. 독일 유보트 중 최대 크기를 자랑했기에 항속거리 하나는 끝내줬으나, 그 대가로 잠항 속도와 기동성을 포기해야만 했다. 이는 지구 반대편의 일본 해군 잠수함들이 보인 특징과도 유사하다.[4]
2.1. 기타
8척 중 6척이 전쟁 중 격침당했고 2척이 전쟁에서 생존했다. 2척 중 하나는 본 문서 맨 위의 U-234인데, 일본으로 560kg의 산화 우라늄, Me 262 전투기 2기, 10기의 제트엔진을 싣고 가던 중 1945년 5월 14일에 미국 해군 측에 항복했다. 이에 대한 내용도 역시 U보트 비밀일기의 주역인 볼프강 히르쉬펠트라는 통신부사관이 여기로 배치,(볼프강은 피부병때문에 잠시 배에 내렸는데 U-109가 함장과 승무원들이 교체된 상태로 출격, 5월 7일 폭뢰공격으로 격침되고 준사관으로 진급 후 U-234가 완성되자 통신 준사관을 배치해야 하는 규정으로 이 함에 배치받을 수 있도록 '자원'했다고 한다.) 그리고 항복하고나서 234를 해체하는 마지막까지 함께 했다.살아남은 나머지 1척은 U-219였다. 1944년 12월에 일본에 수송할 목적으로 V-2 로켓을 실은 채 바타비아(현 자카르타)에 도착했으나 독일의 항복에 따라 일본이 1945년 5월 8일 U-219를 나포해서 1945년 7월 15일부로 구 일본 제국 해군에 I-505로써 취역했다.
3. 함선 목록
- U-116
- U-117
- U-118
- U-119
- U-219[5]
- U-220
- U-233
4. 손실
- U-116 : 1942년 10월 6일 북대서양에서 마지막으로 통신 후 연락 두절. 격침된 것으로 잠정 결론.
- U-117 : 미국 해군 호위항공모함 USS 카드(CVE-11)에 의해 1943년 8월 7일 북대서양에서 격침됨.
- U-118 : 미국 해군 호위항공모함 USS 보그(CVE-9)에 의해 1945년 6월 12일 카나리아 제도 부근에서 격침됨.
- U-119 : 영국 해군 HMS 스타링에 의해 1943년 6월 24일 비스케이 만에서 폭뢰 공격을 받고 격침됨.
- U-220 : 미국 해군 호위항공모함 USS 블록 아일랜드(CVE-21)에 의해 1943년 10월 28일 북대서양에서 격침됨.
- U-233 : 미국 해군 호위구축함 USS 베이커(DE-190)과 USS 토마스(DE-102)에 의해 1944년 6월 5일 헬리팍스 남동쪽 노바 스코티아에서 격침됨.
5. 관련 항목
[1] 이 배는 훗날 대한민국 해군에 공여되어 강원함(F-72)이 된다.[2] 여담으로 이 유보트는 당시 우라늄과 Me 262 제트전투기 부품들, 전략물자 등 각종 화물들을 싣고 일본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자세한 것은 U-234 문서 참조.[3] 이탈리아 왕립 해군이 계획한 장거리용 수송용 잠수함으로, 총 12척이 계획되었지만 전황 악화로 2척만이 건조되었으며, 겨우 건조한 2척 모두가 진수식 직전 항구에서 공습으로 아무런 활약도 하지 못한 채 격침되었다.[4] 사실 이 10형 잠수함이라는것도 일본 해군의 잠수함들 기준으로 보면 꽤나 작은 편이다. 단적으로 일본 해군의 주력 잠수함이었던 순잠형 잠수함의 수중배수량은 약 3,583톤에 달한다. 이는 두 나라의 지리적 특징에서 기안하는데, 일본은 주 작전무대가 넓디넓은 태평양이었기에 피탐성능을 좀 포기하더라도 항속거리를 살리는 쪽을 택했고, 독일은 주 작전무대가 상대적으로 작은 대서양과 발트해였기에 항속거리를 버리고 피탐성능 등을 살렸기 때문이다.[5] I-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