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의 일본군 군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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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함대 계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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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 항공모함으로 개장, 기울임: 건조/개장 도중 해체, |
나가토급 전함 | |
나가토 | 무츠 |
長門型戦艦, Nagato-Class Battleship |
1. 개요
長門と陸奥は日本の誇り
(나가토와 무츠는 일본의 자랑)
(나가토와 무츠는 일본의 자랑)
나가토급 전함은 일본 제국 해군의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으로 세계 최초로 16인치급 주포를 탑재했다. 영일동맹이 아직 어느 정도 효력이 있었기에 영국의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워스파이트의 설계도를 제공받아서 건조했고,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의 조약 체결 직전에 완성된 전함치고는 상당한 명품이었으며 88함대 계획의 제1번함으로 준공되었다.
태평양 전쟁 초기 야마토급 전함이 등장할 때까지 일본 해군 연합함대의 기함으로 활동했으며 진주만 공습 당시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기함으로서 진주만 공격신호를 보낸 일화는 유명하다. 함명의 유래는 일본의 과거 번국 중 하나였던 나가토(長門국에서 유래). 나가토의 자매함으로는 무츠(陸奥)가 있으며, 무츠 역시 일본의 번국 이름에서 따왔다.[1]
2. 배경
공고급 순양전함을 기반으로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설계 및 건조능력을 얻은 일본 제국은 후소급 전함과 이세급 전함을 건조했지만 뭔가 만족스럽지 않은 성능으로 일본 제국 해군내에서도 말들이 많았다.이에 따라 88함대 계획으로 대규모의 건함 계획을 만들어놓고 첫번째 결과물로 나가토급 전함을 건조하는 데 성공하면서 드디어 일본 제국 해군 입장에서도 만족스러운 고속전함을 만들 수 있었다.
자매함인 무츠의 경우 원래는 살아남을 수 없을 예정이었던 군함이었다.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의 내용 중에는 아직 건조 전이거나 건조 중인 전함은 폐기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조약을 위한 회의 개최시점에 무츠는 95% 공정이 진행되었고 의장이 마무리되지 않아서 완성된 전함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언니인 나가토나 미국의 콜로라도급 전함 2번함 메릴랜드는 조약이 체결되기 직전에 취역해서 간신히 조약 대상에 들어가지 않았다. 당연히 미국과 영국은 무츠를 폐함하라고 강력히 요구했지만, 일본은 무츠에 해군병원의 환자들까지 이송시킨 후 무츠가 의장을 마치고 취역한 후라고 선전하는 꼼수까지 부린 끝에 나가토와 무츠를 모두 보유한다는 의도를 관철시켰다.
일본이 이런 짓까지 한 이유는 당시까지의 거함거포주의적 발상에 의하면, 전함 1척만 굴리기보다는 동형함 1척이 더 있어서 전대를 구성해야 적의 공격에 대응하기 쉽고, 더 많은 활약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경제 부분에서 봐도 전함 한 척을 건조하는데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과 자재를 생각해보면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다. 거기다 공정률 95%는 사실상 완성 직전인 상태인데다, 완성 직전의 전함을 그냥 갖다 버리라 하면 일본이 아니라 타국이라도 불만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함대결전사상에 취해 전함을 막판 한타 싸움에만 쓰는 물건으로 여겼던 일본과 달리 미국이나 영국같은 다른 해군 열강은 3직제를 위해 3척 단위라야(실전배치/훈련/수리 로테이션) 전체의 능률이 올라간다. 한 일본 밀덕 사이트는 전간기 영국이 워싱턴 조약으로 줄어든 전함을 본국/지중해/동양함대에 5척씩 배분했지만 각 방면에서 한 척은 개장이나 수리 등의 이유로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점을 지적한다. 3직제를 엄격하게 적용할 수 없는 순양함, 전함, 항공모함 정도 되는 주력함이라 해도 한 척이 도크에 들어가면 임무 중인 다른 배들을 조정해 구멍을 메워야 한다. 상술한 영국의 사례나, 진주만 공습 당시 전함 콜로라도가 입거 중이라 16인치 주포 전함 3척 중 1척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따라서 일본은 타국과 달리 자매함이 1척만 있더라도 매우 유용하게 사용이 가능했다.
그리하여 미국과 영국은 그러한 사정도 고려해 '하는 수 없네' 하고 무츠의 존재를 인정하는 대신, 자신들도 추가로 2척씩 더 건조하겠다는 무리해 보이는 제안을 들이밀었다. 이 과정에서 암호 해독이 핵으로 떠올랐다. 미국은 일본의 훈령을 해독해서, 미국과 영국에 대한 전력비를 7할을 관철시키기를 기본 골자로 하나, 미국이 완강히 나올 경우 무츠를 16인치 전함으로 인정받는 대신 미국에 대한 전력을 6할로 유지하라고 지시했음을 사전에 파악했다. 그렇기에 미국은 무츠를 인정해주는 대신 5:5:3으로 비율을 맞추기 위해 콜로라도급 2척, 영국이 넬슨급 2척을 건조하는 대신 전함 2척 폐함을 제시했고 일본은 수용하였다. 그리고 당시 미국이 했던 것처럼 그냥 포탑과 장갑을 절반 정도씩 떼어낸 후 무츠를 형식상 훈련함으로 편입시키는 방법도 있었다. 일본이라면 그랬다가 조약탈퇴 후 복귀시킬 수 있었을 것이나 그런 조치는 추가적인 협상이 필요하기에 일본이 선택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장 일본은 16인치급 주포 탑재 고속전함을 2척이나 전쟁에 투입할 수 있는 상태라 제안을 수락하자마자 전력면에서 압도적인 우위에 서지만, 미국은 동급 주포를 갖추었으나 속도가 크게 느린 전함을 건조 중단 상태에서 계속 공사를 추가로 더 진행한 후에야 2척을 추가로 보유할 수 있었다. 게다가 영국은 아예 설계도도 없는 상황에서 16인치 주포 탑재 전함을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적어도 영국과 미국에서 16인치 전함이 추가로 취역할 때까지 몇 년간은 일본의 절대적 해상우위가 인정되는 셈이다. 그래서 일본은 무츠를 살렸다고 좋아라하며 쿨하게 콜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본래 미국과 일본만 1척씩 보유했을 16인치 주포 전함이 무려 5척이나 추가돼서 일본 2척, 미국 3척, 영국 2척으로 총 7척으로 불어나버렸지만 애초에 일본이 무츠를 살리겠다고 고집을 먼저 부린 것에서 비롯된 일인데다가, 정작 당시 일본의 거함거포주의자들은 당장 수중에 16인치급 주포를 탑재한 고속전함 한 척이 더 들어왔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그렇게 해서, 군축조약이 비대해진 건함예산 때문에 미국과 영국조차 국가운영이 곤란해져 모이게 된 것인데, 모처럼 모여 놓고는 가장 경제규모가 작고 해군예산에 정부예산이 가장 많이 짓눌려 있던 일본이 고집 피워 군비를 키운 셈이 됐다.
그리고 무츠의 건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만 하더라도 일본 내에서 자신들이 후일 영국과 미국 양국과 동시에 전쟁을 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이 거의 없었음도 고려해야 한다. 당장 10년 전만 하더라도 영국은 일본에게 자신들의 최신 해군 기술을 실시간으로 공유할 정도로 친한 동맹국이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엄연하게 동맹국인 영국의 간절한 지원 요청을 연달아서 거부하다가 일본 제국 육군은 끝내 서유럽 전선에 참가하지 않았고 생색내듯이 일본 제국 해군 소속의 소수의 보조함만 지중해에 파견하는 등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면서 열강 모두의 이권지인 중화민국을 독점하려고 시도중인게 들키는 등 일본 제국의 외교와 정치의 대실책이 겹쳤는데도 영일동맹이 유지된다는 생각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아전인수적인 판단이었다.
여기서 영국과 미국의 이해가 일치했다. 영국과 미국은 일본과 달리 함대가 나눠질 수밖에 없는(영국: 해역 자체가 넓음, 미국: 태평양과 대서양에 함대를 나눠서 배치해야 함.) 상황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당시만 하더라도 영국은 미국과 전쟁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여겼고 미국 또한 영국과 전쟁을 하거나(적색 전쟁 계획) 최악의 경우는 영국과 일본이 손을 잡고 자신을 공격할 수 있다고 (적색-오렌지 전쟁 계획) 여겼다. 그리고 이런 계획은 서로간에 부담이었고 특히 영국은 이제 쓸모가 매우 적어진 영일동맹 때문에 또다른 전쟁에 말려들기 싫었다.
그래서 미 해군은 1918년에 새로 주력함 28척을 건조할 계획을 세웠고 미국 정부는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이 체결되는 동안 영국에게 영일동맹을 끝낼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문제는 일본은 이런 사정을 모르고 영일동맹이 유지된다는 가정하에 무츠를 살리는 계산을 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완전히 틀린 계산이 되어버렸다.
3. 제원
나가토급 전함 1번함 나가토 | |||
구분 | 건조시(1920년) | 개장후 (1936년) | 최종사양(1944년) |
기준배수량 | 32,720t | 39,130t | 유지 |
상비배수량 | 33,759t | 43,580t | 유지 |
전장 | 215.8m | 224.94m | 유지 |
전폭 | 29.02m | 34.6m | 유지 |
흘수선 | 9.08m | 9.49m | 유지 |
출력 | 80,000shp (60,000kW) | 82,300shp (61,400kW) | 유지 |
보일러 | 로호함본식 중유전소 보일러 16기 로호함본식 중유,석탄혼소 보일러 6기 (총 22기) | 로호함본식 대형보일러 4기 로호함본식 소형보일러 6기 (총 10기) | 유지 |
추진기 | 4축 | 유지 | 유지 |
터빈 | 함본식 all-geared 증기터빈 4기 | 유지 | 유지 |
속도 | 26.5kn (49km/h) 과부하시 27kn (50km/h) | 25kn (46km/h) | 유지 |
항속거리 | 16kn (30km/h) 기준 5,500해리 (10,186km) | 16kn (30km/h) 기준 8,650해리 (16,020km) | 유지 |
승조원 | 1,333명 | 1,734명 | 유지 |
주포 | 3년식 41cm 45구경장 2연장 주포탑 4기 (총 8문) | 개량[2] | 유지 |
부포 | 3년식 14cm 50구경장 단장 부포곽 20기 (총 20문) | 3식 14cm 50구경 단장 부포곽 18기 (총 18문) | 유지 |
대공포 | 3년식 8cm 40구경장 단장 대공포대 4기 (총 4문) | 127mm 2연장 양용포좌 4기 (총 8문) | 유지 |
대공기관포 | 3년식 기관총 3정 | 7.7mm 단장 기관총 3정 40mm 2연장 폼폼 포 기관포좌 2기 25mm 2연장 기관포좌 10기 (총 27문) | 25mm 3연장 기관포좌 14기 25mm 2연장 기관포좌 10기 25mm 단장 기관포좌 30기 (총 98문) |
어뢰 | 53.3cm 수중어뢰발사관 4기 수상어뢰발사관 4기 (총 8문) | 제거 | 없음 |
레이더 | 없음 | 없음 | 1호 3형 조기경보레이더 2기 2호 1형 대공수색레이더 1기 2호 2형 수상추적레이더 2기 |
측면장갑 | 100 - 305mm (4 - 12인치) | 유지 | 유지 |
갑판장갑 | 70 + 75mm (3 - 6인치) | 70 + 127mm (3 - 7인치) | 유지 |
주포탑 | 152 - 305mm (6 - 12인치) | 250 - 457mm (10 - 18인치) | 유지 |
주포탑 바벳 | 305mm (12인치) | 376mm (14.8인치) | 유지 |
부포곽 | 152mm (6인치) | 유지 | 유지 |
장갑함교 | 369mm (14.5인치) | 유지 | 유지 |
함재기 | 없음 | 수상기 3대 | 유지 |
캐터펄트 | 없음 | 수상기 발사용 1기 | 유지 |
기공 | 1917년 8월 |
진수 | 1919년 11월 |
준공 | 1920년 11월 |
4. 성능
일본은 영국에서 공고급 1번함을 사며 전수받은 기술과 자재로 2,3,4번함을 만든 뒤 독자 건조를 시도했는데, 당시 잇달아 준공했거나 공사 중 건조 취소했거나 계획을 정했다 취소한 수 차례의 다포탑 전함/순양전함을 뒤로 하고 처음으로 완성해 낸 제대로 된 전함그리고 나가토급 전함도 영국해군에서 제공받은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의 설계에 여러가지 강화를 한 전함이다. 줄줄이 늘어선 포곽식 부포와, 1,2번 주포탑이 선수에, 3,4번 주포탑이 선미에 몰려 있고 그 사이를 넓게 띄워 단정과 수상기 운용 공간으로 할당한 나가토급 전함의 외관을 보면 영국의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의 모습과 상당히 유사하다.
88함대 계획의 1번 타자로 일본 해군이 동원가능한 모든 능력을 결집하여 건조한 세계 최초의 16인치급 주포 탑재 전함. 당시로서는 우수한 성능을 보여줬으며 2차대전기 기준으로도 미국 신예전함들과 야마토급 전함들을 빼고 생각하면 괜찮은 전함으로 배수량 35,000톤이라는 제약 하에서는 거의 한계에 가까운 공, 수, 주의 밸런스를 자랑했다. 물론 일본군의 많은 장비들이 그렇듯 수치상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런저런 문제점도 많았다.
4.1. 공격력
1931년의 나가토 |
주포로 채택된 3년식 41cm 45구경장 함포의 경우에는 포구의 구경이 410mm로 일본 최초로 16인치급 함포를 전함같은 주력함에 장착했다. 장착방식은 2연장 주포탑 4기를 함수부에 계단식으로 2기를 장착하고 함미부에 계단식으로 2기를 장착했다.
성능은 포탄 중량 1,000kg의 5식 철갑탄을 사용하여 최대 앙각 +30도에서 포구초속 790m/s로 발사할 경우 최대사거리가 30,300m에 도달하였다. 포신부앙각도는 -5도에서 +30도이며 포탑회전각도는 선체중심선을 기준으로 좌우로 130도였다. 포신부앙속도는 초당 5도이고 포탑회전속도는 초당 3도다. 관통력은 사거리 20km에서 측면장갑 271mm를 관통가능하며 포신의 장전각도는 -5도에서 +20도이다. 포신수명은 250발이다.
근대화개장을 실시하면서 카가급 전함에서 쓰일 예정이었던 주포탑을 도입하고 철갑탄도 개량하면서 성능이 향상되었다. 그래서 포탄 중량 1,020kg의 91식 철갑탄을 사용해서 최대 앙각 +43도에서 포구초속 790m/s로 발사할 경우 최대사거리가 38,430m에 도달하였다. 포신부앙각도는 -2도에서 +43도이며 포탑회전각도는 선체중심선을 기준으로 좌우로 130도였다. 포신부앙속도는 초당 5도이고 포탑회전속도는 초당 3도다. 관통력은 사거리 20km에서 측면장갑 454mm를 관통가능하며 포신의 장전각도는 +3도 고정장전방식이다. 포신수명은 250발이다.
주포의 경우에는 구경이 410mm이기 때문에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의 전함 주포 한계선인 16인치 (406mm)를 넘어간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폐함하거나 별도의 협상을 통해 살려야 하지만 일본은 조용히 입다물고 있었다. 함포의 명칭도 1917년에 45구경 3년식 41센티포 (四十五口径三年式四十一糎砲)로 제정했다가 군축조약이 체결된 후인 1922년 3월 29일에 45구경 3년식 40센티포(四十五口径三年式四十糎砲)로 명칭을 변경하고 주포 포신에 새긴 사십일센티(四十一糎)라는 문자도 사십센티(四十糎)로 다시 고쳤다.
부포의 경우에는 3년식 14cm 50구경장 함포를 채택했다. 이미 이세급 전함부터 채택한 부포로 단장 부포곽 형태로 20문을 탑재했다. 순수한 부포고 부포곽 형태라서 대공사격등에 사용하기 곤란하므로 대공화기를 증설하면서 조금씩 탑재량이 줄어들다가 일본 본토에서 본토결전을 대비한 특수경비함 (特殊警備艦)이 되면서 모두 철거한다.
성능은 포탄 중량 38kg의 0식 통상탄을 사용하여 최대 앙각 +25도에서 포구초속 855m/s로 발사할 경우 최대사거리가 17,500m에 도달하였다. 포신부앙각도는 -7도에서 +25도이며 포곽회전각도는 선체 측면 방향을 기준으로 좌우로 70도였다. 포신부앙속도는 초당 8도이고 포곽회전속도는 초당 8도이며 모두 수동으로 동작한다. 관통력은 사거리 20km에서 측면장갑 271mm를 관통가능하며 포신의 장전각도는 20도 이하의 각도에서 수동장전이 가능하다. 연사속도는 분당 6발에서 10발이며 포신수명은 500발에서 600발이다.
대공포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3년식 8cm 40구경장 함포를 채택했다. 해당 함포는 실제 구경이 76mm (3인치)로 영국제 12파운더 12cwt QF HA Marks I, II, V를 라이선스한 모델이었다. 해당 대공포를 단장 대공포대 4기를 장착한 후에는 지속적으로 대공화력 증강이 이루어져서 89식 12.7cm 40 구경장 함포로 대공포를 바꾸고 2연장 대공포좌를 채택하여 대공포의 문수를 8문으로 증강시켰다. 그리고 공간 확보를 위해 부포곽 2문을 제거하였다. 레이테 만 해전 이후에는 89식 대공포 2연장 대공포좌 2기를 추가하고 부포곽 4문을 더 줄였다.
대공기관총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3년식 기관총 3정으로 빈약했다. 그러나 근대화개장에서 대공화력 강화가 이루어져서 7.7mm 단장 기관총 3정과 40mm 2연장 폼폼 포 기관포좌 2기와 25mm 2연장 기관포좌 10기로 늘어나서 총 27문을 확보했다. 전쟁이 벌어진 후에도 대공화력 증설을 통해 25mm 3연장 기관포좌 14기와 25mm 2연장 기관포좌 10기와 25mm 단장 기관포좌 30기로 총 98문의 대공기관총을 증설하였다. 레이테만 해전 이후에는 96식 25mm 고각기총 30문을 추가해서 총 128문으로 대공기관총이 증가하였다.
어뢰의 경우에는 533mm 어뢰발사관 8기를 장착하여 4기는 수상형 어뢰발사관으로 달아서 제한적인 선회가 가능하도록 했으며 4기는 수중어뢰발사관으로 장착했다. 533mm 구경의 6년식 어뢰는 203kg의 시모세 화약으로 충전되어 있으며 3가지 세팅으로 발사 가능하다. 26노트 (48km/h)에서 15,500m를 항진가능하고, 32노트 (59km/h)에서 10,000m를 항진가능하며 37노트(69km/h)에서 7,000m를 항진가능하다. 전함간의 포격전시 취약점이 되므로 근대화개장시 모조리 철거했다.
4.2. 정찰 및 사격통제장치
건조시에는 탄착 관측용으로 열기구를 장비해서 갑판 후부에 계류 및 발함을 실시하였다. 수상기에 의한 탄착 관측이 실용화되면 탄착 관측용 열기구는 수상기로 대체되었지만 캐터펄트가 실용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데릭(Derrick) 이라고 불리는 크레인으로 수상기를 해면에 올려놓고 수상기는 해면에서 발진하고 있었다. 수상기가 임무를 마치고 착수하면 데릭으로 다시 해면에서 끌어올려서 회수한다.근대화개장 근방 시기에 실용화된 오(呉)식 2호 5형 캐터펄트가 장착되었다. 나가토급 전함의 캐터펄트는 선회시에 후부 함교에 접촉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전부터 1/4 정도의 위치에서 위로 접히는 기구가 같이 장비되었다. 이와 함께 함재기 운반 궤조와 턴테이블을 설치하고 기존의 데릭을 없애고 수납식 강화 데릭의 신설 등이 이루어졌다.
함재기에는 E8N으로 불리는 95식 수상정찰기를 탑재하고 나중에는 F1M으로 불리는 영식 수상관측기와 같은 수상기를 3기 탑재했다.
사격통제장치는 건조시에도 주포탑용 측거의가 나가토는 파식 (波式) 6m 측거의로 육안은 무식 (武式) 8m 측거의로 대형화한 측거의를 장착했다. 개장시 양함 모두 10m 주포용 측거의와 광학식 사격통제장치로 개량되었다.
사격방위반은 처음에는 수입한 비커스사의 제품에서 기반한 13식 방위반을 장착했지만 1925년에 14식 방위반으로 대체된다. 대공포용 사격통제장치는 1932년에 31식 고사장치가 채택될 때까지 없었다. 1935년에는 개선된 14식 방위반이 나가토에서 실험된 후 34식 방위반으로 승인받았다. 127mm 구경의 98식 대공포용 사격통제장치인 94식 고사장치는 1937년에 개발완료되었으나 나가토급 전함에 언제 장착되었는지는 불명확하다. 25mm 대공기관포용 95식 고사장치는 1937년에 도입되었다.
처음에는 레이더가 없었으나 1943년 6월에 2호 1형 전탐을 탑재했다. 필리핀해 해전 이후에는 2호 2형 전탐, 1호 3형 전탐 각 2기씩 탑재했다.
이러한 장비들을 통해서 연습시의 탄착 관측기 사용에 의한 주포의 살포계는, 1940년도의 주간 을종 전투 사격 실시 기록에서는 높은 성능을 보여주었다. 나가토가 속력 21노트로 항해하며 사격을 실시한 결과 32,500m의 거리에서 원근 261m, 좌우 102m 규모의 탄착군을 보여주었고 명중률은 15.7% 이었으며 수중탄에 의한 명중을 고려한 제2 유효대를 포함한다면 17.5% 라는 뛰어난 수치를 보여주었다. 무츠도 32,300m의 거리에서 원근 200m, 좌우 52m의 탄착군을 보여주었고 명중률 14.9%로 만만치 않게 좋은 수치도 기록하였다. 물론 해당 연습에서 28,300m 거리에서의 사격 시험에서 12발을 사격한 결과 탄착군 기준으로 나가토가 명중탄 1, 무츠가 명중탄 0을 기록하기도 했으므로 항상 저런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연습 사격에서 저렇게 좋은 능력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어려우므로 광학식 사격통제장치와 정찰장치의 능력은 매우 괜찮은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4.3. 방어력
건조중에 유틀란트 해전이 벌어졌으며 여기서 나온 전훈을 바탕으로 해서 갑판 방어의 강화와 고속함의 실현을 주요 목표로 하는 설계변경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기존의 전함에 장비되었던 현측 부장갑대를 폐지하여 갑판 장갑 방어에 돌리는 등의 설계 변경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원래 45mm (1.75인치) 수준의 갑판장갑이 1인치 (25mm) 추가되는 등 갑판장갑이 증대되었다.그러나 확실한 고속성능을 위해서는 배수량이 추가로 필요했으므로 완전한 수준의 대응방어는 일단 추후의 대개장으로 넘기고 포기했다. 그래서 가장 방어력이 강한 주포탑 전면과 측면은 305mm (12인치), 상면은 6인치 (152mm)라서 콜로라도급 전함의 주포탑 전면 457mm, 측면 254mm, 후면 229mm, 천장 127mm 보다도 방어력이 약하고 넬슨급 전함의 주포탑 전면 406mm, 측면 279mm, 후면 279mm, 천장 184mm 에는 상대가 안될 지경이었다.
측면 주장갑의 경우에는 현측장갑 305mm + 중요부위에 후방 추가 경사장갑 76mm로 측면 주장갑이 343mm의 콜로라도급 전함보다는 약간 쳐지고 측면 주장갑이 330mm ~ 356mm 두께를 가진 18도 경사장갑으로 구성된 넬슨급 전함보다는 압도적인 열세다.
어뢰나 기뢰에 대응하는 수중방어는 측면장갑의 하단에서 아래방향으로 내측으로 경사진 방어 격벽을 갖추고, 강판을 3장 겹친 구조로 되어 있으며, 또한 수중탄 방어로서 76.2mm HT강의 격벽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고속을 위한 방어력 감소로 인해 측면에 비방호구획이 늘어난 것에 대응하여 선체에 다수의 방수가 가능한 구획이 추가되었다. 그래서 수중방어구획의 폭은 총합해서 6.2m이며 콜로라도급 전함의 5.334m, 넬슨급 전함의 5.625m를 능가했다. 다만 구조를 개량하고 추가할 필요가 있어서 구획의 크기 대비 효율성은 약간 떨어지는 편이었다. 일본 제국 해군은 200kg 탄두를 보유한 어뢰의 공격까지 막아낼 것으로 기대했다.
나가토급 전함의 대개장 후 장갑구조 |
대개장을 하면서 전반적인 방어력이 강화되었다. 주포탑은 전면이 460mm, 측면은 280mm, 천정이 127mm ~ 191mm로 강화되었으며 주포탑 바벳도 457mm로 늘어났다.
측면방어는 탄약고 부위의 경사장갑에 50mm에서 203mm의 장갑을 추가해서 탄약고 부분은 수직장갑 305mm + 경사장갑 127mm ~ 280mm가 되었다. 하지만 나머지 부분은 현측장갑 305mm + 중요부위에 후방 추가 경사장갑 76mm를 유지하였다.
갑판방어는 탄약고 부분에서 69.85mm HT + 127mm NVNC + 50.8mm HT로 강화하여 합계장갑이 247.65mm 이며 단일장갑으로 환산하면 180mm 정도의 방어력을 가진다. 기관부의 갑판장갑은 50.8mm HT + 69.85mm HT + +25.4mm DS + 50.8mm HT로 강화하여 합계장갑이 196.85mm 이며 단일장갑으로 환산하면 140mm 수준의 방어력을 가진다.
수중방어는 벌지를 더해서 총합적인 구조의 폭이 약 9m가 되었다. 이것은 테네시급 전함의 개장 후의 수중방어구조의 폭의 7m를 넘어갔다.
명칭 | 두께(mm)와 장갑판 종류 |
측면 주장갑 | 305 ~ 76 VC |
중갑판부위 측면장갑 | 229 VC |
횡방어격벽 | 전방 중갑판 254 VC 전방 하갑판 330 VC 후방 중갑판 254 VC 후방 하갑판 229 - 76 VC |
갑판장갑 | 중갑판 51 HT + 25 DS 상갑판 70 HT 최상갑판 25 + 25 ~ 13 + 25 HT |
어뢰 방어 격벽 | 76 HT |
탄약고 | 갑판평탄부 51 HT + 127 NVNC 갑판경사부 76 HT + 279 ~127 NVNC 수직벽면 76 HT + 231 ~ 44 NVNC 바닥 38 ~ 25 HT + 38 CNC |
장갑함교 | 측면 330 ~ 254 VC 상면 178 NVNC 바닥 76 VC 교통관 127 ~ 76 VNC |
주포탑 | 전면 포방패 305 + 152 VC 측면 280 ~ 230 VC 후면 190 VC 천정 228 ~ 250 VC 바닥 102 VC 바벳 305 ~ 229 VC + 229 ~ 124 VC |
부포곽 | 포방패 38 HT 격벽 19 HT |
조타기실 | 천정 51 HT + 76 ~ 51 VNC 측면 210 NVNC + 51 HT |
연통 | 내부 연로 25 HT |
전반적으로 방어력이 강화되긴 했지만 터틀백 장갑 구조를 근본적으로 고치지 못하고 갑판장갑까지 강화한 개량된 터틀백 방어구조를 채택했으므로 갑판장갑은 다층구조라서 단일장갑에 비해 방어력이 약해지고 측면장갑은 탄약고 외에는 방어력 강화가 없어서 강화에 비해 효율성이 나빴다.
4.4. 주행력
방어력까지 희생하여 주행력에 투자한 결과 고속전함에 걸맞은 속도를 가지게 되었다. 원래 설계안에서는 석탄과 중유를 혼소하는 보일러를 써서 4축 추진으로 60,000마력을 내서 25노트의 속도를 목표로 했다. 그러나 유틀란트 해전의 교훈으로 고속함을 요구하면서 보일러를 증설하고 일본제 함본식 기어드 증기터빈을 장착했다. 최초로 국산 증기터빈을 장착하는 모험에도 불구하고 출력이 80,000마력으로 증가하여 속도가 1.5노트 증가한 26.5노트 (49km/h)가 되었고 과부하시에는 27노트 (50km/h)까지 속도를 증대시켰다. 실제로 준공시의 속도 측정에서 나가토는 26.44노트까지 가속했고 무츠는 25.7노트의 속도를 기록했다. 그리고 항속거리도 16노트 (30km/h) 기준 5,500해리 (10,186km)까지 가능했다.취역 후 나가토급 전함은 운용면에서 일본 제국 해군에게 양호한 평가를 얻었다. 항행성능면에서 가속과 감속 성능은 취역 중인 일본 전함들 중 가장 좋았으며 선회 반경은 후소급 전함이나 이세급 전함보다 크지만 선회시의 속도 저하는 적었다. 방향타도 양호하며 함의 변침도 쉽기 때문에 당시의 일본 전함중에서 최상의 운동성을 가지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리고 나가토급 전함의 속도는 1급 기밀로 결정해서 외부에의 공표는 23노트 수준으로 기록했다. 해당 기밀은 상당히 오랫동안 준수되었으므로 1920년대의 미국 자료에서는 나가토급 전함의 속력을 공시는 23노트지만 실제로는 24.5노트에서 25노트가 나올 것으로 부정확하게 예측했고 1936년에 미국에서 개장 전의 나가토급 전함의 속력을 기록한 자료에도 24.5노트로 기록할 정도였다. 미국이 나가토급 전함의 개장 전의 속도를 알게 된 것은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을 설계하기 시작할 때였고 16인치 포탄에 대한 대응방어를 하면서 기준배수량 3만5천롱톤 안에서 전함을 만들기 힘들어서 표준형 전함과 비슷한 22노트 수준의 저속전함을 만들려고 했다가 어떻게든 고출력 기관부를 좁은 공간에 밀어넣는 개고생끝에 27노트의 고속전함으로 설계를 급하게 변경하게 된다.
사실 이미 나가토급 전함의 속도는 관동대지진때 영국에게 들킨 일이 있다. 지진이 터진 당시 발해에서 연습중이던 연합함대 기함인 전함 나가토는 훈련을 중지하고 구호물자와 식량 적재한 후 최고속력으로 도쿄만으로 항해했다. 이 때 연합함대 참모로 나가토에 탑승한 후쿠토메 시게루 (福留繁) 대위는 영국 해군의 동양함대의 순양함인 플리머스(HMS Plymouth)에게 나가토의 최고속도를 들켰다고 말했다. 실제로는 영국 해군의 다나에급 경순양함 데스패치(HMS Despatch, D30) 였으며 나가토는 데스패치를 보자마자 속도를 줄였으나 이미 속도를 들킨 이후였고 둘 다 구호품을 적재하고 목적지도 비슷해서 동행해야 했으며 데스패치는 예포를 발사한 후 나가토와 동행하여 요코하마로 입항했다. 해당 사실은 1923년 9월 18일에 효고현의 지사가 일본 해군대신에게 보고한 문서에서 영국 군함 데스패치가 입항했다고 기록함으로서 입증된다.
개장 후에는 속도가 25노트 (46km/h)로 감소하고 항속거리는 16노트 (30km/h) 기준 8,650해리 (16,020km)로 증가하였다. 어뢰용 벌지 및 함저 부위에 어뢰 방어용을 겸해서 중유를 저장하는 연료탱크로 사용함으로서 연료탑재량이 증가하여 항속거리가 늘어났다.
기관의 출력도 88,445마력으로 약간 증가하고 보일러도 중유연소 보일러로 교체했는데 속도가 줄어든 이유는 추진용 프로펠러, 보일러와 터빈까지는 교체했음에도 주기관은 교체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개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동력기관을 완전하게 교체하지 않은 이유는 개장전함들의 속도를 25노트 (46km/h)로 유지하자는 정책 때문이었다.
4.5. 함체와 함교
쇼와 12년(1937년), 선체 위에 빼곡히 올라와서 기념사진을 찍는 승조원들[3] |
함체는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의 설계도를 기반으로 해서 주포탑을 선체 중심선에 배치하고 함수부에 주포탑 2기를 계단식으로 배치하고 함미부에 주포탑 2기를 계단으로 배치하는 균형잡힌 구조를 채택하여 주포의 사격각도에 제한이 없고 측면에 모든 화력을 집중가능하면서 전방과 후방에 50%의 화력을 집중가능한 구조를 채택하였다.
함수는 흘수선 부근에서 60도의 경사를 가지면서 상부를 수직으로 하는 독특한 스푼 바우를 채용했다. 이는 당시 결전해역에 배치할 예정이었던 비밀무기인 1호 기뢰를 극복하기 위한 형상이었다. 러일전쟁 당시 기뢰에 전함을 타격당한 일본 제국의 입장에서는 대책을 세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1927년에 무츠가 함수가 파도를 가를 때 발생하는 파도와 물보라가 주포탑과 상부구조물을 덮치는 것을 막기 위해 함수를 개조했고 성과가 좋아서 1930년에 나가토에도 적용되었다. 나가토급 전함의 대개장시에 함미도 늘려서 속도 저하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
마스트의 경우에는 기존에는 삼각 마스트를 채택하려고 했다. 그러나 유틀란트 해전의 교훈으로 광학식 조준장비를 제대로 안정화시킬 수 있는 마스트가 필요해서 1개의 주기둥에 6개의 부기둥이 합쳐지는 칠각 마스트를 설치하였다. 해당 마스트는 정상부에 원통형 케이스 내에 사격 방위반을 담은 사격지휘소가 장착되었으며 수면으로부터의 높이는 약 41m로 올라갔다. 후소급 전함이 파고다 마스트로 유명하지만 나가토급 전함에서 파고다 마스트가 안정적으로 완성되었다. 함교 내부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고 야마모토 이소로쿠도 이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주포탑의 감소에 따라 1인당 거주면적이 확대되었으므로 거주구를 넓게 취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야마토급 전함을 제외하고 일본 제국 해군의 군함 중에서 최상급의 거주성을 가졌다. 승조원 1,400명에 화장실 대변기가 26기가 있었는데 사관 70명에 대변기 11기를 할당하고 사병을 위해 대변기 12기를 할당하는 등의 사태가 발생하여 화장실 가기가 힘들어지는 등의 문제가 생겼지만 기존의 다른 일본의 전함보다는 개선된 편이었다.#1
5. 문제점
일본 해군은 함대결전사상을 기반으로 개별 군함을 꾸준히 근대화개장을 실시하여 1급 전투력을 유지하려고 했다. 조약으로 인해 타국에 비해 양에서 열세였으므로 이를 만회하려면 질을 높여야 한다는 발상 때문이였다. 그럼에도 나가토가 태어난 시대의 한계로 인해 개장을 실시해도 문제점을 완전히 개선하는 것은 불가능했다.5.1. 느린 연사속도와 산탄현상
기본적으로 컴팩트하게 만드는 바람에 주포탑이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의 15인치 2연장 주포탑과 비교해도 별로 크지 않을 정도로 작다. 그래서 장전 문제로 인한 연사속도의 저하가 심했다.취역시의 나가토급 전함은 주포의 주퇴복좌기와 포탄과 장약을 이송하는 양탄기가 능력이 부족하여 주포탑 1기가 장착된 주포를 동시에 사격할 경우에도 계속 사격하면 연사속도가 크게 저하했다. 이러한 문제는 카가형 전함이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건조 취소당하면서 제조중인 주포탑들이 유휴품이 되자 약간 개량을 한 후 나가토급 전함에 통째로 이식함으로서 해결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탄약고와 장약고에서 포탄과 장약을 운반하는 기능을 강화하고 장약주머니의 형태를 변화시켜서 좀 더 빠르게 장전되도록 개선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대개장 후의 나가토급 전함은 모든 주포를 동시에 발포하는 진정한 일제사격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제사격을 실시하게 되면서 양탄능력의 부족 문제가 또 발생했다. 1939년의 술과연보 (術科年報)이라고 하는 포술 관련 기록에서는 주포탑의 주포 1문씩 교대로 쏘는 일제사격인 교호 (交互) 사격에서는 16초마다 포격이 가능하지만 주포탑의 주포를 모두 동시에 사격하는 일제사격에서는 최선을 다해도 30초 전후의 시간이 걸렸다. 실제로는 미리 준비된 탄인 즉응탄으로 쏘는 최초의 10발조차 평균 50초 가까이 요하는 군함이나 나가토의 3번 주포탑처럼 41발 이후의 양탄만으로 100초를 넘는 함이 있는 등 요구된 연사속도를 달성할 수 없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모든 주포를 동시에 발사하는 일제사격이 비효율적이라고 제멋대로 판단하고 날아가는 포탄 사이의 간섭효과가 없어서 단장 주포탑으로 발사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어서 연습전시의 명중률이 향상되는 교호 (交互) 사격을 너무 중시한 일본 제국 해군의 문제점이 컸다. 그래서 늦게나마 실전적으로 훈련을 고치니까 연사속도의 하락이 발견된 것이다.
그 외에도 주포탑의 폭이 좁아서 주포간의 거리가 좁아서 동시에 발사하면 날아가는 포탄이 서로에게 영향을 줘서 포탄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져서 날아가는 산탄포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해당 문제는 각 포의 발사 타이밍을 0.3초 차이로 약간씩 어긋나게 하는 98식 발포 지연 장치를 탑재해서 해결했다. 이에 따라 완전한 일제사격을 실시한 경우에 수중탄을 포함해서 1발의 명중탄을 75%로 기대할 수 있는 거리가 34,500m가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광학식 사격통제장치의 한계로 25,000m를 넘는 거리에서의 착탄 관측이 곤란하기 때문에 원거리 사격 문제는 여전히 해결이 안났다.#1
그 외에도 1944년 12월에 한 번 장전한 포탄을 다른 탄종으로 재변경하는 기구를 추가 설치했다. 이를 통해서 장전된 포탄을 변경가능하게 됨으로서 주포에 장전된 탄종이 실제 필요한 것과 다르더라도 일단 발포해서 포탄을 제거한 후 재장전을 하는 시간낭비와 탄약소모를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5.2. 비효율적 방어구조와 약한 방어력
첫번째로 터틀백 장갑 구조라는 구식 방어구조가 가장 큰 문제였다. 해당 구조를 기본적으로 놓아두고 갑판장갑을 강화한 결과 갑판장갑은 합계가 7인치에 이를 정도로 두껍지만 이는 다층방어 방식이었고, 다층방어방식은 두께에 비해 방어력이 약하다는 문제점이 있어서 신규로 건조되는 군함은 차세대 방어 구조를 채택하여 효율성을 상당히 높였기 때문이다.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탈리아와 같이 대대적인 개조가 필요하나 이는 신규 함선을 발주할만한 거금을 들여 기존 함선을 개량하는 것이므로 경제력에서 영미에 밀렸던 일본에겐 효율성이 매우 떨어졌다.
그래도 갑판장갑은 두께를 늘린 덕분에 나름 방어력 강화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측면장갑은 대개조 이후에도 305mm를 그대로 유지했고 이중 탄약고 부분만 원래의 76mm에 2인치 ~ 8인치를 더 붙여서 최대 305mm + 127mm ~ 280mm으로 강화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고작 14인치 대응방어가 가능한 전함인 테네시급 전함의 측면장갑 343mm와 비등한 수준이다.
방어구조 면에서도 차이가 심한데 테네시급 전함은 집중방어구조를 도입한 반면, 나가토급 전함은 기본적으로 1차대전기의 터틀백 + 다층 방어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같은 두께의 장갑이라도 차이가 더 심하다. 이러한 사유로 인해 거리를 좁혀 근접전에 돌입할 경우 15인치 이상의 포탄에 대한 효과적인 방어력을 전혀 보장할 수 없다.
두번째는 대응방어 기준이 취역 당시에 사용하던 철갑탄이 기준이었단 점으로, 나중에 도입된 신형 철갑탄이나 미국의 신형전함에 달리는 미국의 Mark 6이나 Mark 7 주포탄을 방어하는데 무리가 있었다.나가토의 장갑구조 애초에 신형 16인치 함포는 특정 거리에서만큼은 18인치와 맞먹는 관통력을 발휘하니 당연하다.[4] 다만 나가토가 등장한건 1920년대이고, 나가토와 동시대에 등장한 전함들도 Mark 6/7을 방어해내기란 무리이며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같은 미국 신예전함들조차도 완전한 수준의 대응방어를 포기할 정도이니 참작의 여지가 있다.
세번째로는 측면장갑부위에 큰 약점이 존재한다. 포곽형 부포가 설치된 부위는 장갑이 152mm 수준으로 얇았고 포곽의 구멍을 덮는 포방패는 평균 장갑이 51mm 였다. 이런 빈약한 방어력으로는 경순양함의 포탄마저 방어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포방패부분의 경우 구축함의 주포 혹은 같은 사양인 적의 부포하나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다. 본래 포곽형 부포는 부포의 사격각도에 제약이 심했고, 후방부를 부포곽이 공용으로 사용한다는 특성상 유폭에 취약했으므로 집중방어구조를 채용하여 최대한 약점을 보완해야 했다. 그러한 까닭에 영국의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은 개장 시 이 부포들을 철거하였고, 미국 전함들은 5인치 2연장 포탑으로 교체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구식 전함들은 2차대전기에 수리 겸 오버홀할 때 대공무장을 증설하면서 동시에 5인치 양용포를 달았다. 심지어 자국의 전함인 이세마저도 항공전함 개장 때 포곽식 부포를 철거했다.
그러나 일본 제국 해군은 화력 약화를 감내하지 못하고 끝내 약점을 유지하였다. 일본은 자국의 경순양함 전력을 모조리 수뢰전대의 기함으로 편성해서 야간 수뢰전에 투입하려고 생각한 탓에 소형함을 상대하기 적합한 전함의 부포를 포기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왕 보일러까지 교체하는 수준의 대개장이라면 포곽을 제거하고 89식 대공포를 탑재한다면 대수상 화력을 거의 유지하면서 대공화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이러한 간단한 부분에서 크게 미흡했다는 점이 유감스러울 따름이다. 결국 나가토급 전함도 미국의 항공력을 맛보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부포곽을 철거하고 89식 대공포를 증설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나가토급 전함의 개장과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영국의 전함 개장사례를 두고 포곽 vs 부포탑으로 우왕좌왕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과 전혀 다르다. 영국은 넬슨급 전함에서 부포탑을 올렸으나 1934년에 개장에 들어간 워스파이트는 포곽을 유지하였다가 1937년에 개장에 들어간 퀸 엘리자베스와 밸리언트에서 다시 포탑으로 돌아왔는데 이렇게 된 이유는 영국의 재정난이 매우 심해서 원하는 만큼의 개장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을 불완전하게 개장하는데 건조비용보다 더 많은 금액이 나와서 버럼 (HMS Barham(04))처럼 전혀 개장을 못받거나 기관부만 개장된 말라야 (HMS Malaya(01))처럼 처참한 상황이 나올 정도로 영국의 상황이 안좋았다.
5.3. 일부러 속도를 줄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일부러 속도 저하를 일으켜서 고속전함을 저속전함으로 만든 것이다.일본군의 다른 전함들은 공고급 순양전함의 사례와 같이 대규모 개장시 보일러와 주기관등 동력기관을 전부 교체해서 속도를 향상시켰다. 하지만 나가토는 1933년부터 1936년까지 여러가지 대규모 개량을 진행하면서 추진용 프로펠러, 보일러와 터빈까지는 교체했음에도 주기관은 교체하지 않았다.[5] 그 결과 개장을 통해 함선 현측에 추가로 장착된 벌지가 항력을 증가시키고, 증가된 장갑으로 인해 중량은 늘었는데, 기관은 노후화되어가는 기관 그대로여서 속력이 감소하게 되었다. 물론 함수를 저항성이 낮은 형태로 교체해서 속력 감소를 줄이기는 했으나, 속력의 감소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어서 개장 후 시험항해를 하는데 속력이 24.1노트가 나오는 때도 있었다. 본래 일본 해군은 주력함의 고속 항행으로 전술 선택권을 높이는 방향을 채택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속도 저하를 개선하지 않은 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그럼에도 일본 측이 오버홀 중인 상황에서도 주기관을 교체하지 않은 이유는 개장을 받은 전함들의 전술속력을 25knot로 정하였기 때문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나가토는 대개장(주기관 비교체) 후에도 25knot를 충분히 달성하였으므로 굳이 추가적인 비용을 들여 주기관을 개선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개장 당시 주기관도 완전교체해서 속도를 29knot로 향상시키고 기관 용적을 축소하여 잉여 용적에 함재기를 추가적재하는 방안이 제시되었고, 함재기용 승강기도 납품되었으나 결국 기각되었다.
해당 결정은 일본 제국 해군의 대표적인 실책이었다. 러일전쟁의 쓰시마 해전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승리의 주역인 도고 헤이하치로가 주장한 것처럼 일본의 군함들은 타국의 군함보다 고속이어야 한다는 방침은 개함우월주의로 이미 일본군의 군함 전체에 적용된 후였고 특히 나가토급 전함은 고속성능을 위해 방어력을 약간 하락시키기까지 했는데 이러한 근본개념을 모조리 뒤엎은 것이었다. 이미 고속전함의 기준도 1차대전시의 25노트에서 2차대전 시기에는 최소 27노트며 진정한 고속전함 소리를 들으려면 30노트는 되어야 한다는 시대의 변화를 감안하건데 기존의 군함이 더 빨라져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속도를 느려지게 만들면 답이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리고 빠른 군함과 느린 군함을 혼성편성하면 작전도 느린 군함에 맞추어서 짜주면 되는 것이고 유사시에 빠른 군함이 해전에서의 패스트 윙(Fast Wing)을 담당해서 망치와 모루 전술을 수행하는 것이 느린 군함들이 단종진으로 포격전만 하다가 밀리는 것보다는 한참 나은 결과가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현실적으로 개장된 전함들인 후소급 전함과 이세급 전함이 25노트의 속도를 내는 것도 어려웠다. 둘 다 중앙부 주포탑을 포기하지 않아서 비효율적인 대개장을 한 결과 후소급 전함은 24노트를 내고 이세급 전함은 25노트를 냈다. 이것도 무리수를 쓴 것이라서 전쟁이 벌어지고 관리를 제대로 받기 어려워지고 동력부가 노후화하자 후소급 전함은 보통 18노트를 내고 잘 해봐야 21.5노트를 내서 도로 느려졌으며 이세급 전함은 항공전함으로 대개장을 한 후에나 25노트를 안정적으로 낼 수 있었다. 어차피 구식전함들이 25노트의 속도도 제대로 못낼 것이었으면 차라리 나가토급 전함의 속도를 늘려서 야마토급 전함과 함께 전함 전대중 빠른 속도의 주력부대를 편성하거나 공고급 순양전함과 같이 기동타격대를 하는 것이 더 좋다.
결국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이 결정은 치명적으로 돌아왔다. 항공모함이 30노트로 내달리고 중순양함은 그보다 더 빠른데, 나가토급 전함은 25노트이니 함대를 따라갈 수 없었다. 주기관을 완전히 교체해서 속도를 29노트로 올렸더라면, 아니면 기관 용적을 축소하지 말고 아예 30노트 이상의 고속을 내게 개조했다면 나가토급은 분명히 전쟁 내내 대활약을 했을 것이다. 전함 2척을 폐물로 만든 어처구니 없는 결정이었다. 그래서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 무츠가 참가했으나 느려서 낙오된 끝에 구축함 3척의 호위하에 귀환함으로서 오히려 전투에 참가한 일본 구축함의 숫자나 줄이고 과달카날 해전에도 속도가 느려서 참가가 불가능해서 공고급 순양전함이 미국의 신(新)전함들에게 개박살나는 것을 멀리서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장갑은 얇지만 30노트의 속도를 내서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전과도 일본 전함중에서는 가장 많이 얻은 공고급 순양전함을 볼 때 나가토급 전함의 속도를 줄인 사태는 엄청나게 욕을 먹는다. 어느 정도 수준인가 하면 일본 제국 해군의 최악의 실책인 항공모함의 능력을 증명해놓고 그것을 제대로 써먹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전함의 보조역할에만 충실하게끔 작전을 구상했다는 것과 동급이다.
그나마 항공모함 문제는 일본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항공모함에 힘을 기울일 시점에는 일본 제국 해군 항공대는 괴멸된 상태였으나 그래도 항공모함을 만들고 1944년 2월 1함대 해대, 1기동함대 창설등으로 개선의 노력이라도 해봤지만 나가토급 전함의 문제는 끝까지 고칠 수 없었다.
일본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옹호를 포기하고 과부하 걸면 26노트 정도는 나오니 야마토급 전함과 어떻게든 동행이 가능하다는 식의 변명만 늘어놓을 정도다. 그리고 다른 일본의 군함들과는 달리 일부러 주기관만 기존의 노후화된 낡은 기관을 유지한 나가토급 전함은 과부하 유지시간도 짧고 고장 위험성이 높아지므로 과부하도 조심스럽게 해야 했으므로 전술적으로 써먹기가 곤란하다는 문제점까지 있었다.
취역 초기의 일이었지만, 1번 연돌과 마스트가 너무 인접해있다는 문제점도 존재했었다. 이로 인해 1번 굴뚝에서 나오는 매연으로 함교의 시야가 방해되었고, 함교 인원들이 매연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 문제점은 이후 초기 개장에서 연돌을 만곡식으로 개조해 함교와의 거리를 넓히면서 개선을 했고, 이후 대개장 당시 연돌을 하나로 통일하며 완전히 해결되었다. 해당 연돌은 나중에 대개장할 때까지 나가토급 전함의 유명한 특징중 하나가 된다.
6. 타국 주력함과의 비교
취역 당시의 나가토급 전함은 당대의 최강 전함 소리를 들을만한 자격이 있었다. 주포 구경을 410mm로 확대하고 대신 주포 문수를 8문으로 정함에 따라 이전의 후소급 전함이나 이세급 전함처럼 주포탑을 6기나 탑재함에 따라 발생하는 각종 문제를 예방하고, 집중방어개념에 가까운 방어체계도 수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속도에도 신경을 써서 과부하시 27노트에 가까운 속도를 낼 수 있었다.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이 고속전함이지만 그걸 확대개량한 일본의 노력도 듣보인다.이에 비해 미국의 콜로라도급 전함과[6] 영국의 넬슨급 전함은 발이 너무 느렸다.[7] 콜로라도는 21노트, 넬슨은 23노트가 최고속도였다. 이에 반해 나가토는 대외적으로 23노트로 알려졌지만 실제 26.5노트, 과부하로 27노트까지 냈다. 거듭된 개장동안 늘어난 배수량에 대해 기관을 완전히 교체하지 않고도 25노트의 최고속을 유지했으니 당시로서는 엄청난 고속전함이다. 그나마도 넬슨은 주기 2기로 운동성이 심각하게 나빠서 왕립해군의 수치덩어리라는 취급을 당해야만 했다. 참고로 메릴랜드의 기관마력은 28,900마력, 넬슨은 45,000마력, 나가토는 무려 82,000마력의 올기어드 터빈 4축 추진기(보일러 10기)를 자랑했는데 이는 일본이 유틀란트 해전의 전훈으로 유럽 열강, 특히 가상 적국인 미국의 전함보다 최소 5노트 정도는 빨라야 한다는 고속항행 전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콜로라도급 전함은 계획 당시에는 14인치 주포를 탑재할 예정이었으나 조약 때문에 16인치 주포를 탑재한 전함으로 변경되었다. 미 해군도 전함의 근대화개장 필요성을 알고 있었지만, 미국 정부의 고립주의 정책 탓으로 군관련 사업은 진행속도가 느렸다. 그나마 하급 전함들을 빅 파이브라고 하는 미 해군이 보유한 전함 중 가장 강력한 전함 다섯 척 수준으로 개장하는 것까지는 원활하게 진행되었지만 이건 전함이 너무 구형이라서 전력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예산을 쓴 것이다. 독일이 전쟁을 시작하고 일본과도 위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하자 빅 파이브인 테네시급 전함과 콜로라도급 전함의 근대화 개장이 결정되었는데 그 시기가 1942년.
이런 이유로 인해 나가토급 전함은 전간기 기간동안 사실상 유일한 고속전함으로 자리잡고 그 위용을 뽐냈다. 물론 고속전함의 시작을 연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도 있었지만, 주포가 1인치 차이나고 속도도 25노트라 열세였다. 순양전함 후드의 경우 속도는 빠르지만 방어력에서 약간 부족하며, 화력도 역시 15인치라 히트 앤드 런이라면 모를까 정면대결에서는 열세에 놓이기 쉬웠다.
비록 위에 언급한 문제점으로 인해 대개장후에 저속전함이 되었으나 그럼에도 동시기에 등장한 전함을 상대할 경우 넬슨급 전함 이외엔 비슷한 한계를 공유했고 오히려 16인치 주포 덕에 전간기 ~ 2차대전 초기의 1급 전함들 중 하나였다. 다만 1930년대 중후반에 등장한 미국의 16인치급 신(新)전함 부터는 향상된 설계로 인해 나가토급 전함이 상대할 수 없다.
7. 해당 함급의 함선 및 활약상
나가토(전함), 무츠(전함) 항목 참조. 사실 개별항목에서 보면 알겠지만 둘 다 활약상이라고 할 만 한 게 없다. 적어도 상대였던 미국의 16인치급 전함들은 적 전함을 격침시키거나, 아니면 야마토급처럼 어그로 끌고 몸빵이라도 하거나, 취역이 늦었어도 꾸준히 전선을 돌아다니며 공동격침이나 지상포격은 착실하게 한 전함들이었다.8. 기타
88함대 계획의 함선들 중 유일하게 함급이 전부 완공된 함선이다. 카가급 전함과 아마기급 순양전함은 각각 1척씩이 항공모함으로 개장되고 나머지는 폐기되었다. 본래대로라면 카가급 전함은 2척 모두 폐기하고, 아마기급 순양전함 1번함 아마기와 2번함 아카기가 항공모함으로 개장될 예정이었지만 관동 대지진으로 인해 도크에서 개장공사중이던 아마기가 용골이 부서져 대파되면서 수리불가 판정을 받아 폐기되었다. 이후 아마기를 개장할 때 사용할 예정이었던 자재로 카가가 대신 개장되었다. 그나마 위의 두 함급은 개조라도 되었지 키이급 전함과 13호급 순양전함은 아예 건조에 착수하지도 못하고 기공 및 계확 단계에서 취소되었다. 키이급 전함 1번함 키이와 2번함 오와리는 함명이 결정되고 건조 명령이 하달되어 자재 발주까지 마친 상태에서 건조가 취소되었다. 이 때 준비되었던 자재들은 아마기급 순양전함 1번함 아마기를 항공모함으로 개장되는데 사용될 계획이었으나, 아마기가 폐기되고 카가가 대신 개장되었기 때문에 해당 자재들은 카가의 개장에 사용되었거나 아마기와 함께 폐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다큐멘터리 'Battle of 360'에서는 나가토를 순양함으로 칭한다. 해당 다큐멘터리가 미국쪽 고증은 철저한 반면 일본쪽 고증이 많이 저조한 면은 있지만 이건 많이 과한 실수.
그래도 미군 정찰기가 야마토와 함께 항해중인 나가토를 발견했을 때, 야마토가 워낙 커서 그 옆의 나가토를 순양함으로 착각한 실제 사건이 있기는 했다. 야마토가 나가토보다 40m 가까이 더 컸고, 더군다나 가까이서 본 것도 아니고 정찰기로 비행중에 본 것이었으니 충분히 착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참고로 40m라는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지 비교하자면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과 볼티모어급 중순양함이 17m정도 차이가 난다. 심지어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은 더 짧기 때문에 볼티모어급과 나란히 있으면 2m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난다. 볼티모어급이 조약의 제한을 받지 않고 건조되어 덩치가 상당히 크다는 것을 감안해서 그보다 훨씬 작은 뉴올리언스급 중순양함을 예시로 들 경우 노스캐롤라이나급과는 43m, 사우스다코타급은 28m 차이가 난다. 즉, 야마토와 나가토는 진짜로 전함과 순양함 만큼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반대의 사례도 있었는데, 미국의 사우스다코타급은 특유의 짤막한 길이 덕분에 과달카날 전투의 해전에서 일본군 정찰기에게 발견됐지만 중순양함으로 오해받았다. 덕분에 중순양함 치우겠다고 덤볐다가 뜬금없이 전함포에 두드려맞은 일본함대는 경악과 함께 줄행랑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8.1. 빅 세븐?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이후 나가토급 2척이 영국의 넬슨급 2척, 미국의 콜로라도급 3척과 아울러 세계의 빅 세븐이라고 불렸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 빅 세븐이라는 단어는 일본을 제외한 어느 국가의 서적이나 관련 자료를 찾아봐도 사용하지 않는 키워드다. 당장 인터넷에 Big seven으로 구글링을 해봐도 전함 관련 이야기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정작 당시 세계 최대의 군함은 영국의 순양전함인 어드미럴급 순양전함 후드였다. 결국 누가 가장 처음에 그렇게 불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본에서만 '빅 세븐'이라고 불렀다는 소리다.1930년에 일본에서 민간인 대상으로 출간된 군사서적에서 처음으로 비슷한 표현이 등장한다. 단 영어가 아니라 일본어로, 세계의 7대 전함이다. 현재 일본 밀덕계에서는 이것이 현재 알려진 빅 세븐이라는 표현의 원조라는 설이 거의 정설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어쩌면 빅 세븐은 아래의 미국 빅 파이브에서 따와 일본에서 만든 말일 지도 모른다.
비슷한 사례로 특정 전함을 묶어 칭하는 호칭으로 '빅 파이브'가 있다. 해당 단어는 1920년대 미국의 최신 전함이었던 테네시급 테네시, 캘리포니아와 콜로라도급 콜로라도, 메릴랜드, 웨스트 버지니아 5척을 묶어서 칭하는 것이다. 이쪽은 구글 키워드에서 어느 정도 보이는 단어로 미국 해군 역사 센터에서 실제로 언급 되는 단어이다.Big Five
어찌보면 자위에 가까운 조어라고도 생각이 들지만 당시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신규전함의 건조가 제한된 상황에서 나온 세계 최대 구경의 주포를 가진 전함들로 약 15년간 위협적인 해상전력의 한축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다만 삼국을 제외하고도 쿼터인 3만 5천톤에 맞춰서 건조된 전함(일명 조약형 전함)들이 좀 있는데다가 이들중에는 15인치 등을 장착한 전함들도 있어서 조약에 묶였던 16인치 7척을 묶기에는 범위가 넓은편이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 무렵부터 야마토급 전함이 건조되기 전까지, 세계 최대 구경의 주포를 가졌던 군함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 건조된 커레이저스급 대형 경순양함 3번함이자 세계 최초의 항공모함 퓨리어스였다. 이 배는 18인치 주포 2문을 탑재하고 있었으며, 포탄의 무게는 야마토의 포탄보다 더 무거웠다. 취역하기 전에 항공모함으로 개장되면서 주포 하나를 떼어내고, 함재기 이착함에 지장이 있음을 알자마자 나머지 하나도 떼어내긴 했지만 이 주포들은 모니터함 2척에 옮겨져서 실제로 포격을 하기도 했다. 퓨리어스 자신도 나가토급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수훈함이었다.
지식을 얻을 방법이 한정적이었던 한국의 1세대 군사무기 매니아들은 일본 밀리터리 서적등을 통해 정보를 얻었고, 나가토를 위시한 빅세븐이라는 용어 또한 자연스럽게 유입되어 사용되었다. 이러한 일본 밀리터리계 발 용어나 조어들은 오래간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었는데 빅세븐 뿐만이 아니라 찰리 킬러, 파이팅 몬스터 등과 같은 일본 밀덕들이 좋아할만한 오글거리는 별명들이 대표적이다.
당연히 서양에서는 알려진 단어가 아니며 위키피디아 빅세븐 문서에 새로이 추가되어 올라와 있지만 '일본에서만 쓰이는 용어'라고 지칭되어 있을 뿐이다. 빅 세븐이라는 명칭이 강조되던 함대 컬렉션이 흥행하고 난 뒤에야 차차 알려지게 되었지만 여전히 함대 컬렉션 유저들이나 역시나 빅 세븐이 강조되는 벽람항로 유저들 및 그에 영향 받은 밀리터리 매니아들이나 나가토를 언급할 때만 사용할 뿐이다.
8.2. 2번함 무츠 폭발사고
해당 항목 참조.9. 관련 문서
10. 미디어에서
- DEAD AHEAD에서 나오는 안타레스 제국 소속 전함 타우급 전함은 나가토를 기반으로 만들었다.[8]
- 제독의 결단 1에서 타이틀 화면 배경에 나오는 전함이 바로 이 나가토다.
- 네이비필드에서 일본 3차 전함으로 등장한다.
- 네이비필드 2에서 일본 9티어 전함으로 등장한다.
패치 이전까지는 9티어 중 유일하게 부포(포곽식 부포)가 대함사격이 가능하였으나, 패치 이후 AA탄만 사용하도록 수정되었으며 고각 또한 대공이 가능하도록 변경되었다.
- 월드 오브 워쉽에서는 일본 전함 7티어로 나온다. 첫 16인치 전함이니만큼 화력은 보장하나 스톡 상태가 조금 성가시다는 평이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컬렉션에서도 사진으로 등장한다.
- OVA 청의 6호에서는 나가토와 결합한 인공생명체가 적의 기함으로 등장해 주인공 일행을 추격했다. 원작 만화에서는 잠수함으로 마개조된 야마토였다.
- Naval Creed:Warships에서 4티어 전함으로 등장한다,
- 어비스 호라이즌에 나가토와 무츠가 등장한다.
- 아르키메데스의 대전에서 등장.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의뢰를 받은 주인공이 방문하여 전함파에서 설계한 신형 전함 건조비용을 계산하는데 참고한다. 이는 전함파에서 자료 열람을 못하게 하는 등 방해를 하였기 때문이며 함장 몰래 약식 설계도를 보고 직접 제원을 측정하면서 전함파의 설계도를 예상한다.
- 대체역사소설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에서 최후반부 연합군 함대와의 필리핀 해 해전에서 나가토와 무츠 두 척 모두 독일 해군 비스마르크와 비더슈탄트(장 바르), 미 해군 웨스트 버지니아를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여 두 척 모두 격침되나 그 대가로 비스마르크를 격침시킨다.
11. 관련 링크
[1] 후소급 전함 1번함 후소를 제외하면 일본 해군의 전함 이름은 모두 번국 이름에서 따왔다.[2] 명칭과 구경, 포신은 동일하지만 양각,사정거리가 개선된 카가급 전함의 예비 포탑으로 교환했다.[3] 어째서인지 이 사진은 '웃기는 2차 세계대전 사진집'에 끼워져서 돌아다니는 경우도 있다. 이런 구도의 단체 사진은 예나 지금이나 전 세계 해군에서 자주 찍는 것으로, 전혀 웃기지도 이상하지도 않은 모습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함들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운용되던 전함들보다 더욱 커진 선체, 더욱 많고 복잡한 함선 통제 시스템과 더 많은 각종 화기들을 운용하기 위해 최소 2000명 이상의 승조원들이 탑승했으며, 그 많은 인원들을 통상적인 구도로 단체샷을 찍으면 아마 자기가 사진 속 어디에 있는지도 찾지 못할 수 있으므로 최대한, 그리고 최소한이라도 내가 어느 열에 있었는지 알 수 있도록 최대한 근거리에서 모든 인원들을 찍을 수 있는 구도로 찍어야 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저것이었다.[4] Mk.7, 야마토급 주포, Mk.6[5] 영어 위키피디아에서는 터빈을 교체했다는 내용의 출처로 'Imperial Japanese Navy Battleships 1941-45'를 제시하고 있다.[6]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메릴랜드급이란 건 없다. 콜로라도급 2번함이 메릴랜드.- 본문에도 나오지만 애초에 14인치 12문함으로 계획되었다가 16인치 8문함으로 변경되면서 초도함 콜로라도보다 2번함인 메릴랜드가 먼저 완성된 것이 착각을 초래한 것.[7] 각 나라의 설계 사상이 달라서 영국은 속도가 느린 대신 약점이 되는 부포를 포탑형으로 하고 집중방어구역 개념으로 설계된 구조 덕분에 매우 튼튼하고 데미지컨트롤 능력이 좋았다. 그 반대급부로 항행성능을 빼앗겼지만.[8] 혹은 후소급 전함을 기반으로 만든걸 수도 있다. 나가토는 함체 중앙에 주포탑이 없지만, 후소는 한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