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0 22:29:34

황동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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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8일 야후오크돔에서 열린 소프트뱅크와의 친선경기[1]에서 홈런을 치고 난뒤 타구를 바라보는 황동채(당시 이름은 황성용)
롯데 자이언츠 육성팀
황동채(黃棟寀 / Dong-Chae Hwang)[2]
생년월일 1983년 7월 4일
출신지 부산광역시
학력 부산중앙초 - 개성중 - 부산고 - 성균관대[3]
포지션 외야수 (좌익수,우익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6년 2차 6라운드 지명 (전체 41순위, 롯데)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2006~2015)
프런트 롯데 자이언츠 육성팀 육성담당 (2016~)
응원가 입장시 : Havana Brown - We Run The Night

1. 소개2. 프로 선수 시절
2.1. 2010시즌까지2.2. 2011시즌2.3. 2012 시즌2.4. 2013 시즌2.5. 2014 시즌2.6. 2015 시즌
3. 별명

1. 소개

롯데 자이언츠 소속의 야구선수이자 현재는 롯데 자이언츠의 전력분석관.

부산고 3학년 시절 전국대회 16경기에서 타율 0.441을 기록,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하면서 주목을 받았지만 고향 팀인 롯데 자이언츠의 지명을 받지 못하며 성균관대학교에 진학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고교 시절만큼의 활약을 보여 주지 못하여 성대 졸업 후 간신히 2차 6순위 지명을 받아 롯데 유니폼을 입는다. 계약금은 5,000만 원.

2. 프로 선수 시절

빠른 발과 강한 어깨를 지녔지만 동시에 타구판단능력은 부족하다는 평가도 받아, 그의 외야 수비 능력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단 홈 송구 하나만큼은 이승화, 김강민 같은 완전체 수비수나 보살의 달인 손아섭을 오히려 능가한다는 평가도 받는다. 타격은 경찰청에 다녀온 이후 꽤 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1. 2010시즌까지

프로 첫 해인 2006시즌, 1군 무대에 몇번 모습을 드러냈지만 활약은 거의 없었고 2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 해 7월 5일, 롯데의 주전 중견수였던 정수근현대 유니콘스전에서 태업성 실책을 저지르자, 이에 분노한 강병철 감독은 정수근을 2군으로 보내버리고 대신 황성용을 1군으로 올린다.

2006년 7월 7일 LG 트윈스와의 홈 경기에 정수근 대신 중견수로 선발 출전한 황성용은 4타수 3안타 1타점 1도루의 맹활약을 펼치면서 1군 멤버로 자리를 굳힌다.

몸을 아끼지 않는 허슬 플레이를 자주 선보여 '폭주 기관차'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침체된 롯데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넣었지만, 아쉽게도 더 크게 성장하지는 못한 채 2007시즌이 끝난 후 경찰청 야구단에 들어갔고, 2010시즌부터 롯데에 복귀했다.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타수 무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0을 기록했고, 팀은 2연승 뒤 3연패로 탈락했다.

2.2. 2011시즌

시즌 초 김주찬의 부상으로 인해 이인구와 더불어 외야수로 출장하였다.
타격은 썩 기대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여러번 멋진 호수비를 보여주며 앞으로 충분히 서브활용 가능성이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특히 다이빙 캐치 실력 하나는 롯데 탑급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6월 중반까지 꾸준히 출전하다가 2군으로 내려가 3개월동안 나오지 못하다가 순위싸움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는 9월에 다시 모습을 보였는데, 적시에 임팩트있는 플레이들을 보여주며 감독과 팬들에게 존재감을 확실히 어필하고 있다.

9월 20일부터 사실상의 PO라 할 수 있는 SK전을 앞두고 주전 우익수 손아섭이 발목 부상을 당해서 팬들 누구나 선발로 이우민을 예상하고 머리를 감싸쥐었지만 의외로 주전으로 출전해 대활약했다. 첫 경기에서 3루타를 때려내기도 했고 9회에 센스있는 플레이로 팀의 승리를 지켜냈다. 마무리 김사율이 5:4로 아슬아슬하게 앞서고 있는 1사 1,2루 상황에서 박재홍에게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허용했는데, 그 순간 디코이 플레이(뜬공인것처럼 캐치폼을 보여주며 주자를 속임)로 경험이 부족한 2루 주자 홍명찬을 속여 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고 결국 김사율은 승리를 지켜냈다. 두번째 경기에서는 2루타와 적극적인 주루플레이로 선취점을 뽑아냈고 세번째 경기에서는 위태위태하게 경기를 끌어가던 송승준을 그야말로 '구원'하는 환상적인 수비를 보여주며 롯데의 시즌 말 승리의 아이콘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10월 2일 기준 타율 0.208 홈런 0 타점 5 OPS 0.635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 2차전은 대수비, 5차전에 대타로 출장하여 1타수 무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2.3. 2012 시즌

2011시즌과 비슷하게 수비형 백업으로 출전하였다.

9월 12일 무등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전에서 1:1로 맞선 9회초 2사 2,3루에서 역전 2타점 적시타를 치며 이날 경기의 영웅이 되었다.

두산 베어스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1차전 ~ 3차전까지는 대수비로만 출장하다가, 팀이 시리즈 전적 2승 1패로 앞선 10월 12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3:1로 지던 8회말 1사 만루 상황에서 5번타자 정훈의 대타로 출장하여 홍상삼으로부터 밀어내기 볼넷을 얻어 팀의 연장 10회말 스코어 3:4 끝내기 역전승과 플레이오프 진출홍상삼의 대작 집필에 공헌하였다.
황성용은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에서 한 타석에만 들어서서 1볼넷 1타점, 출루율 1.000을 기록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2년 플레이오프에서 3, 4차전은 대수비, 5차전은 대타로 출장하여 1타수 무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황성용은 2012년 포스트시즌에서 1타수 무안타 1볼넷 1타점, 타율&장타율&출루율 .500을 기록했다.

2.4. 2013 시즌

김문호가 맹활약을 하면서 1군에 자리가 없는 상태였다.

5월 26일에 김문호가 부상을 당하면서 그에게 기회가 가는가 했지만, 그 이후에는 이승화가 각성하면서 기회를 못잡았다.

2013년 11월에 황동채로 개명을 하였다.

2.5. 2014 시즌

12경기에 출장해 5타수 1안타를 기록하였다.

2.6. 2015 시즌

시즌 개막 후 2군에서만 줄곧 머물다가 7월이 되어서야 1군에 첫 등록이 되었는데 그마저도 1군에서 말소된지 아직 10일이 지나지 않던 김주현을 다시 1군 엔트리에 등록하려던 롯데 코칭스태프가 1군에서 말소된 선수는 말소되고 10일 지나야 다시 다시 등록할 수 있다는 조항을 뒤늦게 인지해 땜빵으로 등록된 거였다.

2경기에 출장해 2타수 무안타를 기록한 뒤 다시 말소되었고, 시즌이 끝날 때까지 두 번 다시는 1군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내년이면 34살이 되는 데다가 1군 외야진에는 이미 이우민김주현이 백업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2군을 폭격했던 노망주 오현근, 유망주 김재유도 1군 자리를 노리고 있는 터라 더 이상 설 자리가 마땅치 않아 보인다. 작년부터 급격히 줄어든 1군 출전 시간이 그것을 반증하고 있다.

결국 11월 30일 발표된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고, 이후 롯데의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청백전에서 은퇴한 것이 확인되었다. 조원우 감독과 선수단이 모여 작게나마 은퇴식을 치러 주었다고 한다.

이후 인터뷰에 따르면 보류선수 명단 제외와 동시에 롯데 구단으로부터 프런트 제의를 받았으며, 이를 수용함과 동시에 은퇴했다고 한다. 육성팀의 영상분석 담당으로 활동할 예정이라고 한다. 본인은 인사이동하는 기분이었다고. 스프링캠프부터 전력분석관으로 나서면서 롯데와 닛폰햄과의 연습경기를 분석했다.

3. 별명

황(黃)+성(性)+용(龍)을 영어로 직역한 옐로우 섹스 드래곤, 줄여서 옐섹드(…)로 불렸었다. 하지만 실제 황성용의 한자는 黃成用으로 달랐다. 개명 후의 별명은 추가바람. 그러나 개명 후 존재감이 워낙 미미해서 추가 안될 듯


[1] 부산-후쿠오카 행정교류도시 체결 20주년을 기념하여 열렸다.[2] 개명 전의 이름은 황성용(黃成用).[3] 2002학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