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스포츠단에서 한 순간의 잘못된 이적으로 인해 폼이 나락으로 떨어진 선수/지도자에 대한 사례를 나열한 문서.스타 플레이어가 순식간에 팀을 이적한 선수/지도자가 다른 팀으로 이적할 때 폭망하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이 있어 왔다.
이런 것들이 터지면 높은 확률로 먹튀가 되거나 잘하더라도 팀 적응에 실패하여 선수가 고통 받다가 금방 떠나 버리는 실패를 겪게 된다.
2. 선수 원인
2.1. 본인이 원하지도 않는 이적
선수 스스로는 원 소속 팀에 남아서 계속 플레이하고 싶은데 원 소속 팀이 해당 선수를 그냥 포기해 버리는 경우. (예시: 염혜선)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이 경우는 소속팀에서 좌천당하듯 버림받은 경우라 해당 선수의 멘탈이나 리그 내 위상에 큰 상처로 남는다. 선수가 새로운 팀을 찾는 과정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선수를 받기만 하고 활용 계획이나 준비가 없으면 제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팀의 기대와 맞는 활약을 할 수 없다. 애초에 팀이 뭘 기대하는지도 안 정해진 상태로 뛰는 거니...
특히 팀 이적의 자유가 떨어지는 리그 같은 경우라면 트레이드나 보상 선수로 이적하는 경우도 이에 해당된다. (예시: 노재욱, 표승주)
은퇴 후 취업을 보장해 주는 구단(IBK기업은행, 대한항공 점보스 등)의 선수가 이적당하면 은퇴 후 취업 자리에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예시: 남지연)
옛날 야구계에서는 트레이드 대상으로 지목된 선수들이, 해태-기아로 이적할 상황에 처하자 은퇴를 시도한 사례가 있다. 이 해태-KIA 타이거즈 구단이 군기 잡기 및 폭력 문제가 심했고, 선수들은 해태-기아에 절대 안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소리지만 이적 후 폭력 문제에 시달릴 게 뻔했다.[1]
2.2. 주전 확보 실패
주로 중소 클럽의 에이스나 하위 리그에서 활약하던 에이스급 선수들이 한 단계 더 높은 클럽으로 갔을 때, 로테이션이나 후보 선수로 전락하면서 이런 경우가 생긴다. 계구우후라는 고사성어가 이런 상황에 어울린다고 보면 되겠다. 본인이 에이스이던 이전 소속팀에서는 자신을 중심으로 전술을 짜 왔지만, 빅 클럽에서는 본인이 전술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융화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예시: 박주영)2.3. 지역 적응 실패
주로 타 국가의 리그에 갔을 때 실패하는 경우의 선수들에 대해 벌어지는 경우.축구에서 남미나 아프리카의 선수들이 따뜻한 남쪽 리그에서 활약하다가[2] 음식[3]이나 언어[4]가 어울리지 않는 다른 리그에 이적했을 때, 문화적 차이등으로 적응을 하지 못하고 기본적인 의식주 생활을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다. 먼 나라의 리그에 갔을 때 달라진 기후 조건으로 인해(예컨대 따뜻한 나라의 리그에서 활동하다가 추운 나라의 리그로 이적했을 때) 몸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
이 경우는 흔히 일본이나 한국에서 용병으로 오는 구기 종목의 외국인 선수 또한 자주 겪는 문제로 초반 적응 실패에 대해 대다수를 차지하기도 한다.
2.4. 융화되지 못함
원래의 소속팀에서 새 팀으로 이적을 했을 때, 새 팀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도는 경우로, 대개 돈지랄로 스타 플레이어를 단기간에 모은 팀에서 주로 벌어진다.주로 언론에서는 '고참 선수 부족', '리더십 부재'등으로 스타 플레이어들을 하나로 융합하지 못하는 지도력을 탓하며, 인터넷상에서는 그 팀만 가면 망가진다고 ○○적화라는 단어로 조롱받게 된다. 맹적화, 엘적화 등.
3. 해당 선수
3.1. 축구
- 로멜루 루카쿠: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첼시 FC
- 안드리 셰브첸코: AC 밀란→ 첼시 FC
- 가이즈카 멘디에타: 발렌시아 CF→ SS 라치오
- 카카: AC 밀란→ 레알 마드리드 CF
-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FC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 시절은 본인 스스로가 흑역사로 느낄 정도. - 히카르두 콰레스마: 스포르팅 CP→ FC 바르셀로나 / FC 포르투→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클럽에서도 국가대표에서도 분명 클래스가 있는 선수였으나 유독 바르샤와 인테르등의 빅클럽에서만 적응을 못했다. 베식타쉬와 포르투에서의 활약으로 30이 넘어서 국대에도 오르는걸 보면 결코 바보가 아니라는 얘긴데 큰 리그가 안 맞았던 걸까? - 마이클 오웬: 리버풀 FC→ 레알 마드리드 CF
빅 이어를 타겠다고 정든 리버풀을 떠나 레알 마드리드로 갔으나 정작 본인이 이적하자 리버풀이 빅이어를 손에 넣었고(…) 본인도 쟁쟁한 선수들에 밀려 결국 후보로 전락하고 말았다. - 페르난도 모리엔테스: 레알 마드리드 CF→ 리버풀 FC
레알 마드리드의 프랜차이즈 선수였지만 호나우두, 오웬의 잇단 영입으로 백업으로 밀리자 리버풀 이적을 택했으나 그 해 리버풀이 빅이어를 드는 것을 멀리서 바라만 봐야 했다. 이미 레알 마드리드에서 챔스 조별리그를 뛰었기에 리버풀 소속으로는 남은 일정에 뛸 수 없었기 때문.[5] - 마리오 발로텔리: AC 밀란→ 리버풀 FC
맨체스터 시티 생활로 인해 EPL에서 어느 정도 통하는 공격수라고 인정받았으나 밀란을 거쳐 리버풀로 온 순간… - 앙헬 디마리아: 레알 마드리드 CF→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레알 마드리드의 갈락티코 멤버로 활약해왔으나 1년간의 맨유 생활은…그리고 곧바로 파리 생제르맹으로 떠나 부활했다. - 페르난도 토레스: 리버풀 FC→ 첼시 FC→ AC 밀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사간 도스
첼시 시절 한정으로 잔부상에 의한 영향과 혹사 때문에 폼저하가 일어났는데 첼시와서 더 심해지는 바람에 토레기로 등극하고 말았다. 그래도 나중엔 친정팀으로 복귀해서는 부활했지만 사간 도스로 떠났는데 또 몰락의 징조가… - 라다멜 팔카오: AS 모나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첼시 FC
- 알렉스 송: 아스날 FC→ FC 바르셀로나
- 누리 샤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레알 마드리드 CF
- 카가와 신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티모 힐데브란트: VfB 슈투트가르트→ 발렌시아 CF
- 알렉산드르 흘렙: 아스날 FC→ FC 바르셀로나
- 요안 카바예: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파리 생제르맹 FC
- 에덴 아자르: 첼시 FC→ 레알 마드리드 CF
사실상 이분야 GOAT. 첼시에서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크랙으로 불리며 리그를 지배했던 아자르는 클럽 역대 최고 이적료로 자신의 드림클럽인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후 끊임없는 부상과 자기관리 실패로 아무 활약도 보여주지 못했고 결국 2023년 은퇴를 선언했다. - 마리오 괴체: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FC 바이에른 뮌헨
- 클라우디오 피사로: FC 바이에른 뮌헨→ 첼시 FC
물론 독일 분데스리가 브레멘 이적 후 다시 폼을 찾았고, 이후 다시 복귀한 뮌헨에서는 트레블도 경험을 하였다. - 치로 임모빌레: 토리노 FC→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세비야 FC
임모빌레는 도르트문트랑 스타일이 안맞기도 했지만 적응이나 친화력을 다 말아막고 도르트문트를 디스하는 뒤끝까지 보여주는 바람에 도르트문트의 금지어가 되었다. 막상 라치오에 가니 세리에 탑급 공격수가 된거 보면 국내용이라는 오명은 벗기 힘들듯. - 다르코 판체프: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 마테야 케즈만: PSV 에인트호번→ 첼시 FC
- 클라스얀 휜텔라르: AFC 아약스→ 레알 마드리드 CF→ AC 밀란
본래 아약스 08/09 시절엔 34경기 33골을 기록하여 레알마드리드에 입단했다. 그래도 20경기 7골이라는 기대한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준수한 경기력을 보여줬는데 하필 2차 갈락티코를 시전하는 바람에 AC밀란에 입단하였고 맞지않는 팀의 스타일과 본인의 스타일이 나쁜쪽으로 시너지를 일으켜 콰밥만훈의 [훈]을 담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샬케 04에서 완벽하게 부활한다.그래도 국대에선 잘 했다 - 야리 리트마넨: AFC 아약스→ FC 바르셀로나→ 리버풀 FC
- 안토니: AFC 아약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무려 1400억에 육박하는 이적료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였지만, 프리미어리그의 피지컬 싸움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23-24 시즌 리그 29경기 1골이라는 처참한 결과로 맨유 역사상 최악의 먹튀로 꼽히고 있다. - 이동국: 포항 스틸러스→ 미들즈브러 FC→ 성남 일화
미들즈브러에서 제대로 실패한 뒤 성남에서도 폭망, 전북 현대로 이적한 뒤에는 다시 부활했다. - 이천수: 울산 현대→ 레알 소시에다드→ CD 누만시아 / 울산 현대→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수원 삼성→ 전남 드래곤즈→ 알 나스르
- 조세권: 울산 현대→ 전남 드래곤즈
3.2. 야구
- 임재철 - 한화 이글스, 두산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LG 트윈스의 다섯 팀을 뛰었는데 한화에서는 그 유명한 '롯데보다 더 X같은 곳은 처음봤다.' 발언의 당사자이다.
- 앤디 밴 헤켄 - 넥센 히어로즈의 외국인 투수 레전드.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뛰었으나 중간의 세이부 라이온스의 1년은 먹튀 신세였다.
- 박찬호 - 메이저리그에서 8개구단을 뛰었으나 그 중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은 완벽한 흑역사. 그 외 말년의 일본 1년 생활 역시도 실패한 이적이라고 볼 수 있다.
- 이승엽 - NPB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오릭스 버팔로스에서 실패를 경험한 뒤 국내로 리턴하였다. 하지만 국내 리턴 후 삼성 왕조의 한 축으로 자리잡고 화려하게 은퇴하였다. 다만 이 분은 지도자로써도 해당되는데 지도자 첫 경력이 삼성이 아닌 뜬금없이 두산 베어스로 그것도 감독으로 갔는데 부임 2년 6개월 간 온갖 욕은 다 먹고 두산을 암흑기로 밀어 넣어버린채 첫 지도자 경력을 허무하게 끝냈다.
- 조경환
- 추신수 - 박찬호의 타자 버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거쳐 신시내티 레즈에서 커리어 하이를 찍고 텍사스 레인저스로 갔으나 먹튀가 되고 말았다.
- 콜로라도 로키스로 이적한 투수들 - 쿠어스 필드는 높은 해발고도 탓에 타구가 쭉쭉 뻗어나가는 투수들의 무덤으로 악명이 높다. 그 탓에 훌륭한 투수들이 먹튀가 되어 몰락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마이크 햄튼이 있다.
3.3. 농구
- 우지원 - 인천 신세기 빅스 → 서울 삼성 썬더스 : 2000~2001년 시즌이 끝난 직후 문경은과의 트레이드로 삼성으로 이적했는데, 문경은보다 못한 성적을 남기며 그 다음 시즌 서장훈의 FA 영입 과정에서 보호선수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당하며 1년 만에 모비스로 다시 트레이드 당했다.(정확히는 보상선수 지목 후 곧바로 김영만과 맞트레이드) 다행히 모비스에서 플레이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며 2번의 우승을 거두었고 영구결번도 되었다.
- 전희철 - 대구 동양 오리온스 → 전주 KCC 이지스 : 2001~2002년 우승 주역이자 동양의 프랜차이저였지만, 김승현-마르커스 힉스에 이은 3옵션 자리에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에 트레이드를 요구, 이현준과 현금 6억원에 KCC로 이적했다. SBS로 이적한 양희승의 확실한 대체자이자, 신선우식 토탈 바스켓볼의 마지막 퍼즐로 평가받았지만 팀 컬러와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 덕에 성적이 수직 낙하했고 이는 전희철의 커리어가 몰락하는 계기가 되었다.
- 표명일 - 원주 동부 프로미 → 부산 kt 소닉붐 : 오랜 기간 동안 백업으로 활약하다 동부에서 주전으로 정점을 맞이한 후 FA 시장에 나오자마자 전창진 감독이 있는 kt가 연봉 4억원을 주고 데려왔지만, 노쇠화 탓에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며 먹튀로 까였다.
- 전태풍 - 전주 KCC 이지스 → 고양 오리온스 → 부산 kt 소닉붐 : 2012년 KCC와의 3년 계약이 끝난 후 입찰을 통해 오리온스로 이적했으나 추일승식 공산농구+김동욱과의 갈등으로 슬럼프가 시작되었고, 1년도 안 되어 우여곡절 끝에 kt로 이적했으나 거기서도 슬럼프 탈출은 실패. 그리고 2015~16 시즌 KCC로 리턴한 이후 MVP로 거론될 정도의 맹활약으로 부활하였다.
- 이광재 - 원주 동부 프로미 → 부산 kt 소닉붐 : 표명일과 비슷한 경우. 5년 계약을 맺었지만 전창진 말기 때 이적하여 준수한 3점슈터 역할을 기대했지만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그가 있는 동안 KT는 4년 동안 PO에도 진출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8-19 시즌 직전에 웨이버가 되어 DB로 돌아와서 1년 뛰고 은퇴했다.
- 김기윤 - 안양 KGC인삼공사 → 부산 kt 소닉붐 : 이쪽은 이적 당시 기대치 이상은 해 줬지만 팀 동료의 음주 차량에 동승하여 큰 부상을 당하고 1년 만에 방출되었다. 그로 인해서 가드와 포워드를 보강하기 위해 서동철 감독은 1라운드 1번픽이었던 변준형과 당시 포텐이 터져가던 박지훈마저 KGC로 내줘야 했고 대신 받아온 김윤태는 기량이 크게 떨어졌다가 낮술듀오 사건까지 일으켰고 한희원은 기대치보다는 못하고 있어 팬들의 금지어가 된 경우.[6] 반대급부로 넘어간 이재도는 군 전역 후 리그 최고의 수비형 가드로 각성했으며, 박지훈은 2년 동안 준수한 활약을 보인 뒤 상무 입대를 했다.
- 김태술 - 안양 KGC인삼공사 → 전주 KCC 이지스 → 서울 삼성 썬더스 → 원주 DB 프로미 : 당초 인삼공사와 5년 6억 2천에 재계약을 맺었으나 강병현, 장민국과 1:2 사인 앤 트레이드 형식으로 KCC로 이적하였다. 정통 포인트 가드로써 하승진의 완벽한 파트너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부상과 저조한 슈팅력이 겹치며 먹튀로 전락해버리고 말았고, 전태풍과의 공존에도 완벽히 실패하며 결국 먹튀의 길을 걷다 이후 삼성, DB로 이적해 부활을 노렸지만 모두 실패하고 쓸쓸히 은퇴하고 말았다.
- 강아정 - 청주 KB 스타즈 → 부산 BNK 썸 : KB의 원 클럽 우먼으로 활동하였으나 2021-2022 시즌 고향 팀인 부산 BNK 썸에 3년 3억 3천을 받고 이적하였다. 허나 KB 시절 말년과 마찬가지로 BNK에서도 부상과 부진을 거듭하며 1년 후 은퇴를 발표했다.[7]결과적으로 먹튀는 맞지만, 사실 지역 출신의 스타 플레이어라는 이유로 무지성으로 영입한 BNK 구단의 삽질이 더 맞는 표현이다.
- 고아라 - 춘천 우리은행 한새 →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 사전접촉 논란까지 받으며 1억 9000만원에 삼성생명으로 이적했지만 정작 그 시즌에 우리은행은 56666의 암흑기 청산과 동시에 통합 6연패까지 기록한 반면 고아라는 우리은행의 통합 6연패 시작에 기여(?)하며 삼성생명의 X맨으로 전락했고 팀은 KB와 우리은행에게도 밀리는 수준으로 전락하며 삼성생명 팬들의 속만 뒤집고 부천 KEB하나은행으로 이적했다. 이 쪽은 먹튀이자 여자농구 잘못된 팀 이적의 대표 사례.
- 김단비 - 아산 우리은행 위비 → 부천 하나원큐 : 우리은행 시절엔 최은실과 함께 주전 선수들을 뒷받침하며 6연패에 기여했고 홍보람과 함께 백업진에서 맹활약 하며 1617 시즌 33승 2패하는 독보적인 성적에 기여했다. 하지만 김정은의 보상선수로 하나은행으로 이적하며 폭망했다.
3.4. 배구
- 한송이: 구미 도로공사 →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여배의 원조 사례. 하지만 이건 약과다. 아래에는 이거보다 더 한 사례도 있다. 이적 후 당사자는 비록 이후 두번 더 이적했지만 우승도 두번을 했다. 그런데, 도로공사측은 자업자득이 된 바보짓. 목적인 고의적인 특정 팀 엿먹이기[8]로 다음 시즌 꼴지만 면하자는 계획이 실현되기는커녕 꼴지가 되고 보상픽인 이보라가 유리몸 기질로 폭망한 데다가 그 엿먹이려던 팀의 박진왕과 트레이드를 했는데 이보라가 더 오래 프로생활을 한데 비해 박진왕은 단 1년 만에 방출되면서 프랜차이즈 윙을 1년 한도 세터로 바꿨다는 환장할 결과가 나왔다. - 염혜선: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
여배의 대표 사례. 차라리 도로공사의 한송이 FA 이적 방해는 프런트가 주도했지, 여긴 프런트, 코칭스탭, 선수들이 삼위일체로 이런 짓을 저질렀다. 대놓고 커리어상 쨉도 안되는 이다영 따위를 주전으로 쓰려고 양철호 사단을 내치고 염혜선, 김주하 등을 선후배가 실컷 조롱해 이적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는 캠벨 방출 후 리그 17연패. 당사자도 이적 후 멘붕으로 이고은, 이나연에 밀려 백업으로 전락한 희대의 바보짓. 추가 이적으로 반등이 없다면 후술할 노재욱의 다운그레이드 버전. 결국 후술할 표승주의 보상선수로 GS칼텍스로 이적했다. 하지만 GS도 이고은에 안혜진이 있는 터라 추가 트레이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고, 예상대로 보상선수로 이적 후 현대시절 제쳐버렸던 한수지 영입을 위해 인삼공사로 트레이드되었다. 사실상 돌도희 사단의 만행으로 (기록상으로 한정 시) 이숙자, 김사니, 이효희와 버금가는 대형 세터를 완벽하게 허접 세터로 만들어 버리고 팀도 박살냈다. 그러나 인삼공사 이적 후 국가대표에도 꾸준히 출전하며 이다영을 실력으로 압도하며[9] 돌도희 사단과 이정철 사단에게 빅엿을 먹이며[10] 도쿄 올림픽 주전 세터로 등극한데다 인삼공사를 2회 봄배구에 이끌고, 특히 24-25 시즌은 13연승에 챔피언 결정전까지 보냈다. PO에서 자신을 버린 친정 팀을 막아세운 것은 덤. - 표승주: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 → 대전 정관장 레드스파크스
조금 애매한 케이스. 이소영의 FA 보상선수로 정관장으로 팀을 옮겼지만 다행히 정관장 내에서도 잘 융화가 된 데다[11][12] 커리어 최초로 챔피언 결정전까지 간 것은 좋았으나, 문제는 팀 구성상 표승주의 스탯이 희생될 수 밖에 없는 구조여서 하필 FA 직전 시즌에 저평가를 받은데다[13] 24-25 시즌 이후 표승주 본인의 FA 시기에서 고희진 감독이 예상보다 훨씬 낮은 연봉으로 후려친 후, 표승주가 결혼생활 유지를 위해 수도권 팀[14]으로 사인 앤드 트레이드를 요구하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해 FA 미계약 후 은퇴시켰다는 점이다. - 이소영
- GS칼텍스 서울 KIXX → 대전 KGC인삼공사
2020-21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얻고 3년 19.5억, 연 6.5억에 이적했으나 GS 시절부터 이어진 혹사와 부상으로 인해 21-22시즌과 22-23 시즌 봄배구를 무산시켰다. 그러다가 23-24 시즌 부활했지만 PO에서 부상이 또 터지며 결국 챔피언결정전 진출은 실패했다.[15] - 대전 정관장 레드스파크스 →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
위의 표승주가 보상선수 이적을 하게 만든 FA 이적생이다. 그러나 정관장에서도 잔부상때문에 풀 시즌을 소화한 적이 없었는데 김호철 감독이 3년 21억, 연 7억에 해당하는 오버페이를 시전했고, 그 결과 두 시즌 연속 시즌아웃, 어쩌다 나오는 경기마저도 존재감이 없고, 오히려 팀에 마이너스가 되는 경기 내용이었다. 결국 2025-26 시즌 중, 부상이 더욱 심각해지자 잔여 연봉 14억을 포기하고 계약 해지 절차에 들어갔다. - 남지연: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 →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박미희 감독의 보상선수 뻘짓 그 자체이다. 남지연은 은퇴 후 기업은행 팀에서 일할 예정이었다. 김수지의 보상 선수로 지목된 일은 남지연의 장래를 꼬이게 하여 은퇴를 앞당긴 셈이다. - 노재욱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전광인 보상선수로 옮겼으나 한국전력에서 폭망하고 우리카드로 최홍석과 트레이드 되어 그나마 우리카드에서 회복. 한전 이적 한정이다. 은퇴 직전 유광우, 경험 적은 하승우, 시즌 말에나 전역하고 경기 감각이 뚝 떨어진 김광국으로 시즌을 날 위기였던 우리카드는 뜻하지 않게 주전세터를 얻으며 창단 첫 봄배구를 하면서 이 트레이드에서 반사이익을 누렸다. 현대캐피탈 역시 노재욱 공백이 크게 드러나고 말았지만, 그래도 이승원의 확실한 가능성을 보여주며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했다. 이 쪽은 남배의 대표사례.
서울 우리카드 위비 →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황경민과 함께 트레이드로 삼성화재로 이적했다. 사회복무요원(공익)으로 복무하여 2022.02.27에 소집이 해제된다. 2022-2023 시즌에 출전할 전망이지만, 삼성화재의 선수진이 부실하여 본인의 경기력을 뽐내기 어려울 것이다. - 황경민: 서울 우리카드 위비 →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2019-2020 시즌 종료 후 우리카드-삼성화재 간의 4대 3 대형 트레이드로 삼성화재에 이적했다. 18-19 시즌 후 신인상을 받고 나경복을 뒷받침하며 우수한 기량을 보여주었으나, 삼성화재에서 과거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황경민 외의 국내 레프트들이 황경민을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것도 크다.
3.5. e스포츠
- 장용준 - 농심 레드포스 고스트 선수 부당 계약 제시 사건으로 농심 레드포스와 이적부터 좋지 않은 시작을 한데다, 22 시즌 농심 레드포스는 코로나로 인한 무분별한 주전 교체, 전 감독의 금전 문제로 안팎으로 쉴새없이 이슈가 터진 탓에 최소한 플옵은 노릴 법한 로스터로 동부 말석을 전전하다 시즌이 끝났고 고스트는 그대로 은퇴했다.
[1] 대표적으로 1차 지명을 받고도 입단을 회피한 박재홍이 있다. 어찌저찌 고향팀에 오긴 했지만 팀 케미에 녹아들지 못했다.[2] 주로 스페인/포르투갈이나 프랑스 등에서 활약한다.[3] 특히 프리미어 리그로 진출하는 선수들에게 영국 요리는 악명이 높아서, 오스카처럼 요리사를 동행시키는 경우도 있다.[4] 제이미 캐러거가 현역일 시절, 리버풀 FC로 이적한 선수들에게 가장 난항을 겪었던 게 캐러거 특유의 리버풀 사투리였을 정도다.[5] 해당 규정은 2018년에 폐지되었다.[6] 그나마 박준영이 2020-21 시즌부터 조금씩 살아나면서 최악은 피했다.[7] 여러 부상으로 인한 기량 하락도 있지만, 은퇴의 결정적인 이유로 어머니의 병환이 심해져 곁을 지켜야만 할 상황이었다고 밝혔다.[8] 한송이를 못 잡을 것이 확실하자 "자신들의 주 사업인 고속도로와 관계된 팀으로는 보내지 않겠다"라는 말을 시전했다.[9] 애초에 세터라는 포지션이 멘탈 관리가 가장 중요한 덕목인데 이다영은 현대건설, 흥국생명 시절 모두 코칭스태프와 프런트의 푸시를 받으면서도 멘탈리티 문제로 대형사고를 2번이나 터트린 반면, 염혜선은 돌도희 사단과 이정철 사단한테 외면당하면서도 멘탈리티를 지켰고, 그것은 둘의 운명을 극적으로 바꿔놓았다.[10] 물론 이것은 이다영의 초대형 트롤짓 2회 때문에 국가대표와 V-리그에서 영구 퇴출된 것이 결정적이었다.[11] 사실 이소영과 이주아를 동시 영입하느라 IBK의 샐캡이 과포화상태에 다다랐기에 고액 연봉자의 유출은 필연적이긴 했다. 그러나 팀 구성상 이소영과 황민경이 중복 롤인데다가 둘 다 유리몸이라 금강불괴 타입인 표승주를 정관장으로 보낸 순간 IBK는 전력 약화, 정관장은 전력 강화가 되었다는 것이 문제.[12] 염혜선이 실질적이든 명목상이든 주장인 것은 맞지만 포지션이 세터란 한계가 있어 실질적으로 공격수 중에서의 주장은 표승주였다. 또한 염혜선과 박은진과 같은 2020 도쿄 올림픽 멤버란 점에서도 선수단 내 공감대 자체는 꽤 있는 편이었다.[13] 주전 리베로인 노란이 22-23 시즌 부상 이후 리시브가 심히 부진해졌기에 표승주가 노란의 리시브까지 커버치는 것도 모자라 용병들의 어택 및 후위 디그 커버까지 해야 하는 자리였다. 즉, 팀 구성상 실력과 체력이 받쳐주는 한 1인분은 어찌저찌 할 수는 있어도 플레이스타일이 반대인 선수라면 스탯이 박살나는 것은 불가피한 자리.[14] 신혼집은 동탄, 남편의 직장은 광교인데 정관장의 클럽하우스는 대전 신탄진에, IBK, 현대건설, 흥국의 클럽하우스는 용인 기흥구에 있다. 그 중 IBK는 터져나가는 샐캡은 둘째치고 선수 본인이 자신을 버린 IBK로 되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며, 현대건설은 이다현 및 고예림 유출, 양효진 은퇴 시즌 준비로 표승주까지 영입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므로 사인 앤드 트레이드에 응할 만한 구단은 한 곳밖에 안 남는다.[15] 24-25 시즌 챔피언결정전 진출은 이소영의 보상선수였던 표승주가 시켜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