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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우사마 빈 무함마드 빈 아와드 빈 라딘 (أسامة بن محمد بن عوض بن لادن)[1] |
출생 | 1957년 3월 10일 |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 |
사망 | 2011년 5월 2일 (향년 54세) |
파키스탄 카이베르파크툰크와 주 아보타바드 | |
국적 | [[사우디아라비아| ]][[틀:국기| ]][[틀:국기| ]] → 무국적[2] |
신체 | 195cm, 73kg[3] |
부모 | 아버지 무함마드 빈 라덴 (1908 ~ 1967) 어머니 하미다 알 아타스 (1934 ~ )[4] |
형제자매 | 24남 28녀 중 17남 이복형 살렘 빈 라덴 (1946 ~ 1988) 이복형 예슬람 빈 라덴 (1950 ~ )[5] |
배우자 | 최소 6명 나즈와 가넴 (1960년생, 1974년 결혼) |
자녀 | 최소 20~26명 오마르 빈 라덴 (1981 ~ )[6] 함자 빈 라덴 (1989 ~ 2019)[7] |
종교 | 이슬람 수니파 (와하브파)[8] |
약력 | 알카에다 최고지도자 (1984년 ~ 2011년) |
1. 개요2. 이름의 표기3. 생애
3.1. 출생 배경과 어린 시절3.2. 폭력의 역사
4. 향후의 전망5. 이슬람 테러리즘에 끼친 영향과 의의3.2.1.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경제, 경영 공부3.2.2.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무자헤딘으로 참전
3.3. 9.11 테러를 일으킨 이유3.4. 최후3.2.2.1. 막타브 알히다마트(1984)
3.2.3. 가족들과의 단절(1991): 파키스탄, 수단, 아프가니스탄3.2.4. 9.11 테러3.2.5.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5.1. 파키스탄, 아랍 세계, 그리고 오사마 빈 라덴
6. 여담7. 등장 매체8. 관련 문서9. 둘러보기[clearfix]
1. 개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테러리스트이자, 알카에다의 전 수장.21세기 이슬람 극단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로, 인류 역사상 최악의 테러리스트로 유명하며 역사상 가장 높은 금액의 현상금이 걸렸던 현상범이기도 하다. 알카에다 조직을 이끌며 2001년 미국에서 일어난 9.11 테러를 주동한 인물로 널리 알려졌다. 2011년 5월 2일 미군의 넵튠 스피어 작전으로 사살 및 수장되었다.
2. 이름의 표기
본명은 우사마 빈 무함마드 빈 아와드 빈 라딘(أسامة بن محمد بن عوض بن لادن / ʾUsāma bin Muḥammad bin ʾAwaḍ bin Lādin)이다. 우사마(أسامة)가 그의 이름이고, '빈(بن)'은 아랍어로 '아들'이라는 의미이며 '무함마드'는 그의 아버지 이름. 따라서 '우사마 빈 무함마드'는 '무함마드의 아들 우사마'라는 의미가 된다. 통상적으로 서아시아식 이름은 본인 이름-아버지 이름-할아버지 이름과 더불어 본인의 출신지나 가문명을 붙이는 형태로 구성된다. 그리고 '아와드'는 무함마드의 아버지, 즉 우사마의 할아버지이고, 예외로 '라딘'은 아와드의 아버지가 아닌 할아버지, 즉 오사마 본인에게는 고조 할아버지가 된다. 그러므로 이름을 완전히 해석하면 '라딘의 손자 아와드의 아들 무함마드의 아들 우사마'.보통 아랍식 이름에는 마지막에 가문의 이름을 붙이는게 일반적이지만, 오사마 빈 라덴 본인은 가문명을 사용하지 않았다. 만약 적었다면 이름 마지막에 알카흐타니(القحطاني)라고 썼을 것이다.
'오사마'는 그의 이름을 영어식 철자로 적은 여러 바리에이션 중의 하나다. 아랍인 인명, 단체명은 통일된 알파벳 음역 표기가 딱히 없어서 사람마다 다양하게 택하곤 한다. 그의 이름이 처음 알려질 때만 하더라도 '우사마(Usama)'와 '오사마(Osama)'가 혼용되었지만 점차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으로 통일되었다.[9] 결론적으로 우사마 또는 오사마가 그의 이름이고 빈 라딘 또는 빈 라덴은 아랍어 기준에서는 성씨가 아닌 부칭이다. 다만 오사마 빈 라덴 본인이 가문명을 안써서 부칭이 마치 성씨처럼 쓰인 것. 이하 본문에서는 잘 알려진 오사마 빈 라덴으로 표기를 통일하여 서술한다.
3. 생애
3.1. 출생 배경과 어린 시절
어린 시절의 오사마 | 1971년도 당시 가족들과 스웨덴에서 촬영한 사진 속 14세의 오사마(오른쪽 두 번째 초록색 상의)[10] |
이렇게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지만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에 창궐하던 극성 와하비즘 성향에 지나치게 심취해서 광신적인 인물이 되어 버렸다.[14] 이후 성인이 되어 무자헤딘으로 참전한 것을 계기로 무장 활동에 나섰고 종국에는 테러리즘에 심취하게 되었다. 갑부 가문 출신이라 돈도 많았기 때문에 소련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한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서방에 대한 테러 지원을 시작하여, 이슬람의 상징과도 같은 메카를 비롯한 이슬람교 성지에 이교도인 미군이 주둔 중이라는 이유로 알카에다를 이용해 미국에 테러를 감행했다. 그리하여 1998년 케냐의 미국 대사관을 공격하도록 배후에서 조종하는 데 결국 성공하여 200명 이상이 사망한 케냐 미 대사관 폭탄 테러를 주도한다. 당시 대테러리즘에 관심있던 사람들에게 '중동의 깡패'라는 악명을 얻으며 서서히 그 이름을 알렸다.
이 때를 기점으로 안 그래도 지속적인 테러 지원 활동 때문에 대립하고 있던 집안에서 완전히 망나니로 낙인찍히고 의절당했다. 테러 발생 직후 그의 가족들이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우린 그런 놈 모릅니다"라고 존재 자체를 부정했을 정도. 그리고 그의 가문은 오사마 하나 때문에 라덴에서 라딘으로 성을 갈아 버렸다.[15]
3.2. 폭력의 역사
3.2.1.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경제, 경영 공부
오사마 빈 라덴은 엘리트 고등학교인 Al-Thager Model School을 졸업하고, 역시 명문인 사우디의 킹 압둘아지즈 대학에서 경제와 경영을 공부했다. 다만 오사마의 이후 학력에 대해서는 여러 자료가 있는데, 토목공학[16]으로 1979년에 학사학위를 받았다는 자료도 있으며 다른 반면에는 행정학으로 1981년에 학사학위를 받았다는 자료가 있으며 또 다른 반면에는 그가 대학교 3년차에 자퇴했다는 자료도 있다. 그 외 또 다른 자료에서는 1981년에 행정학으로 학사를 받았다는 기록과 3학년 때 중퇴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입학 당시에는 경영학을 공부하였다는 기록이있다.3.2.2.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무자헤딘으로 참전
영국 신문사 인디펜던트에 '평화의 길로 가는 반소련 전사들의 수장'으로 묘사된 오사마 빈 라덴
그 후 소련의 침공을 받은 아프가니스탄에 압둘라 유수프 아잠(عبد الله يوسف عزام, Abdullah Yusuf Azzam, 1941–1989)[17] 휘하의 의용 무자헤딘으로 참전하였다. 이때만 해도 미국 CIA와의 관계는 서로 절친이었다고 한다. 무자헤딘 뒤를 봐주고 있던 CIA나 ISI 입장에서는 부잣집 도련님이 편한 생활을 마다하고 소련군과 싸우겠다고 최전선 현장에서 싸우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특히 서방에서 교육을 받아 영어도 잘 하니 그의 위상은 안 봐도 비디오였다.[18]
3.2.2.1. 막타브 알히다마트(1984)
1984년에는 가문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 등을 활용, 그 넘쳐나는 돈을 아낌없이 풀어서 '막타브 알히다마트(مكتب الخدمات, Maktab al-Khidamat, 아프간 서비스국)'라는 단체를 설립하였고, 이는 아랍 세계의 의용병, 무기와 자금[19]을 아프가니스탄으로 흘러 들어가게 하는 주된 통로가 되었다. 1988년에는 막타브 알히다마트의 조직을 분리하여 압둘라 유수프 아잠은 무자헤딘에 대한 지원을 맡고 오사마 자신은 좀 더 군사적인 활동에 집중하여 1989년에는 아프가니스탄의 잘랄라바드 전투에서 일어난 전투에 참여하는 등 수차례의 전투를 벌였다. 그의 휘하 조직은 현재의 알 카에다로 이어진다.3.2.3. 가족들과의 단절(1991): 파키스탄, 수단, 아프가니스탄
1991년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파키스탄으로 옮기면서 가족들과의 관계를 단절했는데 사우디에서 보유한 재산들을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 1993년에는 수단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소말리아에서 UN군을 공격한 민병대 일부가 알 카에다인 것으로 밝혀져 미군의 추적을 받기 시작하자 다시 거처를 옮긴 곳이 아프가니스탄이라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맞서 싸웠다고 보기에는 각각의 행동이 시기적으로 한참 차이가 있다.빈 라덴이 잠깐 거처한 곳이 잘랄라바드였는데 탈레반은 잘랄라바드를 군대로 공격해 점령했다. 즉, 빈 라덴과 탈레반의 관계는 사실상 그 이후부터라고 보는 것이 옳다.
수단의 학살자 오마르 알바시르와 친한 사이였는데, 알바시르가 빈라덴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탓에 수단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는 계기가 된다.
3.2.4. 9.11 테러
이러한 와중에 빈라덴은 2001년 많은 사람이 타고 있는 대형 여객기를 4대나 납치하여 인류 역사상 최악의 테러이자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테러인 9.11 테러를 일으켜 세계무역센터 완전 붕괴와 미국방부 펜타곤 일부 붕괴 등 미국 본토 핵심부 공격에 대성공, 3천명의 미국인을 학살하고 2만 5천명을 부상입히고 미국의 본토 안전 신화를 산산조각내버렸다.보통 테러단체들은 자신들이 한 일이 아님에도 이목을 끌기 위해 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9.11 테러는 그야말로 미국의 뚜껑이 제대로 열렸다는 것을 알았기에 모든 테러단체는 물론 북한마저 자기들은 아니다라며 미국에게 하소연하며 알 카에다가 범인이라는 정보를 제공했고 빈라덴은 알 자지라 방송을 통해 자신이 테러를 저질렀다는 인증영상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보내며 미국의 주의를 끌었다.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즉각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으며 아프가니스탄에 빈라덴이 은신하고 있다는 CIA의 정보를 통해 아프가니스탄에 빈 라덴의 송환을 요구했으나 깡이 미친 듯이 세고 국제사회의 요구를 철근처럼 씹어먹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부는 오사마 빈 라덴이 어딨는지 모른다며 그의 인도를 거절했다. 알 카에다와 탈레반은 오랜 유착과 협력관계를 이루고 있었으며, 이슬람 극단주의라는 확실한 공감대가 있었으니 미국 공격에 성공하여 사실상 영웅이나 다름없었으니 그를 넘겨줄리가 만무했다. (다만 훗날 탈레반은 이를 협상할 수 있었는데 미국이 공격했다고 밝혔다.#)
3.2.5.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렇게 미국은 자신들의 요구를 거부한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기 위해 파키스탄을 당근과 채찍으로 포섭한 이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시작되었다. CIA 요원들이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건너가고 곧 델타포스, 그린베레와 같은 특수부대원들이 뒤따라 들어가 탈레반 정권의 정신나간 탄압 정책으로 진절머리 난 반 탈레반 북부동맹을 비롯한 아프가니스탄 부족들을 규합한 뒤 무기지원과 대대적인 게릴라 양성을 통해 탈레반 정권 전복과 오사마 빈라덴 체포를 위한 전쟁준비를 시키기 시작, 그렇게 결성된 북부동맹군이 탈레반을 밀어내는 사이 미군은 그린베레와 네이비실 등 최정예 전력과 항공지원등으로 차츰차츰 지원하며 마지막엔 미 정규군을 투입해 전쟁을 사실상 마무리했다.탈레반은 미군의 최신 화기, 첨단과학을 앞세운 군사기술을 이용한 대대적인 공세 덕에 순식간에 패닉이 되어 민간인 속에 숨어들거나 혹은 전멸에 가까운 전비로 거덜나는 등 사실상 미군의 압승으로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의 점령상태가 되었다. 대공세 이후 탈레반을 모두 소탕했다고 안심한 미국은 탈레반을 확실히 말살시키는 소탕작전을 벌이는 대신, 곧바로 이라크가 미국을 노린 대량살상무기를 제조한다는 명분으로 이라크 전쟁을 개전하는 악수를 두면서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던 미군 대부분이 이라크로 가버리는 바람에 미군의 공백이 생긴다.
이 공백인 상황에 시간이 지나면서 미군의 감시와 소탕 활동이 줄어들고, 양귀비 재배로 생산된 아편을 뒷세계에 팔아재끼는 것을 통해 자금을 벌어 탈레반은 다시 세력 재집결에 성공하고 고도가 높아 통신이 먹통인 상황이 종종 발생하는 지리적 이점과 미군을 구하기 위해 더 많은 미군을 수송 헬리콥터로 데리고 온다는 점을 착안하여 이 수송 헬리콥터를 최우선적으로 노리는 전략 덕에 더욱 강성해져 말짱도루묵이 되어 버렸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의 뒷수습을 굉장히 엉망진창으로 진행해서 대놓고 반군과 테러리스트들이 나돌아다니는 등 치안이 불안정해진데다가, 부시 대통령이 세운 하미드 카르자이 정부는 하미드 카르자이가 부패를 주도한 끝에 서방으로부터 받은 막대한 재건 비용[20]을 부정부패로 날려버렸고 군부들도 거짓 명부로 올린 뒤 착복하는 것은 물론 임금체불이 빈번했기 때문에 정규군들은 돈 많이주는 탈레반에 붙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카르자이 이후 부임한 아슈라프 가니는 코만도 확충과 어느정도 군 개혁에 성공하며 아프가니스탄 군이 탈레반을 격퇴하는 등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가니측도 카르자이보다 덜 하긴 했어도 이쪽도 부정부패를 저지르면서 결국 다시 탈레반이 점령지역 대부분을 탈환하는데 성공한다.
다시 공세를 취하기에 미군 규모를 늘리기에는 이미 이라크 전쟁으로 쓴 맛을 본 미국이었기에 현상유지만 취했고 결국 오바마의 취임 이후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정부 치안 유지용(그린존)인 부대만 남겨두고 대부분의 병력을 철수했다.
3.3. 9.11 테러를 일으킨 이유
빈라덴이 9.11 테러를 일으킨 표면적인 동기는 걸프전쟁을 핑계로 중동에 진출한 미군을 철수[21]시킨다는 것이었다. 19세기 수단의 이슬람 극단주의 신학자 무함마드 아흐마드는 “아랍인이 아닌 튀르크인이 성지를 지배하는 이상 성지 순례는 의미가 없으며, 성지를 장악한 이교도들은 적그리스도의 백성이기 때문에 명목상으로는 무슬림이라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비무슬림으로, 지하드를 통해 척결해야 할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무함마드 아흐마드는 하디스에는 아랍인과 튀르크인이 전쟁을 벌이게 된다는 예언[22]을 근거로 심판의 날이 도래하기 직전 튀르크인과 아랍인의 성전이 시작되었다 선언하였다. 무함마드 아흐마드의 주장에 나온 튀르크인을 미국 및 기존 무슬림 국가 정권에 대입시키면 오사마 빈 라덴을 이데올로기 즉 "미국이 이슬람 성지를 점령하고 석유 자원을 약탈하고 있다"가 된다. 이게 점령이라는 말이 어폐가 있는것이 사우디아라비아에 미군이 주둔한 계기 중 하나가 걸프전 및 사우디 왕가의 요청이었다. 빈 라덴은 사우디 국왕에게 자신이 나서서 싸우겠다고 했지만 이를 거절했는데, 가뜩이나 과격한 이들이 나서서 싸워 전과를 올리면은 이후 사우디 왕가를 위협을 할 수 있기 때문 이였다. 더 중요한것은 험준한 산악지대인 아프가니스탄과는 달리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는 광활한 사막지대에서는 게릴라전이 사실상 불가능했고 당시 이라크군은 중동지역의 최정예 백만대군이었다. 그런 이라크군을 빈라덴이 막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 대신에 미국에 요청을 해서 미군 주둔을 허용하는데, 빈라덴은 이슬람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 가까이에 외국의 세력(미국 및 미군)이 들어 온 것에 대해 크게 분노했다고 한다. 1999년 인터뷰에서 빈 라덴은 미군이 메카에 너무 가까이 주둔한다고 말하면서 이는 이슬람 세계에 대한 도발이라고 주장하였고, 이 때 가까운 적(이스라엘), 먼 적(미국)이라는 자신의 사상을 세우게 된다. 비교하자면 오스만 제국의 헤자즈 지방 장악도 사파비 제국으로부터 성지를 보호한다는 명분 및 요청이 컸다. 물론 마흐디즘은 현대 무슬림들과 이슬람계 주류 관점에서 봤을 때 이단이었고, 오사마 빈 라덴도 바보는 아니라서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무자헤딘 활동을 할 때는 대놓고 자신이 마흐디스트라고 주장하지는 못했다.빈라덴은 무함마드가 "이교도 군대의 아라비아 영구 주둔"을 금했다고 해석하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미군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철수해야 무슬림들의 메카 성지순례의 의미가 복구된다고 생각했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참전 이후 빈라덴의 다음 표면적인 목표는 미군의 사우디아라비아 철군이었다.
이는 1998년 오사마 빈 라덴은 두번째 파트와를 통해 걸프전 이후에도 미군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의 외교 정책은 실제 이유인 이스라엘을 위한 것일 뿐이라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즉 실제 이유는 가까운 적인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면 먼 적인 정치적.군사적 후원자 미국을 약화시켜야 하고 그렇게 되려면 미국의 경제를 파탄에 빠뜨려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23]
2004년 10월, 오사마는 인터넷을 통해 9.11 테러를 왜 계획하게 되었는가를 밝혔다. 빈 라덴은 공식적으로 1982년도에 미국 제 6함대의 도움과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 공군은 레바논 침공 중 베이루트에 대한 무자비한 폭격을 자행했고, 이때 고층 빌딩들이 무너지고 무고한 희생자들의 모습을[24](레바논 내전) 텔레비전으로 보고 이를 갈면서 이스라엘의 후원자인 미국의 건물을 공격해 그대로 되갚아 줄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발언은 효과가 상당히 좋았는데, 오사마가 주장했던 언플 즉“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사는 우리 형제들이 불안 속에 사는 동안 너희 미국인들이 평화를 누리는 것은 불공평하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후원하고 지지하는 한 계속해서 미국에 대해 공격을 할 것”이라는 발언에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열광하면서 알카에다는 전 세계에 걸친 테러 조직망을 운영, 통제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오사마 빈 라덴은 와하브파였음에도 불구 수피 극단주의 신학자 무함마드 아흐마드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오사마 빈 라덴의 타크피르주의가 무함마드 아흐마드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오사마 빈 라덴은 1991년부터 96년까지 수단 공화국의 하르툼에 체류하였으며, 수단에 잔존한 마흐디스트들과 친분이 두텁기도 했다.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이 적그리스도의 국가라고 진심으로 믿었던 듯 하다.이는 알카에다가 주로 공격하던 대상은 미국 대사관 및 미국 영토였지 해외 주제 이스라엘 대사관이 아니었던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슬람 하디스에는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예언이 없지만, 적그리스도가 애꾸눈이라는 예언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오사마 빈 라덴은 1달러 지폐에 등장하는 전시안이 적그리스도의 심벌이라는 음모론을 믿는 상황이었다. 음모론이야 원래 근거가 없어도 그럴듯하게 때려맞추면 장땡이었다.
결론적으로는 빈 라덴은 이슬람 경전을 인용하여 부당한 처사가 철회될 때까지 무슬림이 미군을 공격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역사적으로 이슬람의 법을 해석하는 울라마는 무슬림 국가의 적을 파괴하는 개인들의 지하드를 승인하여 왔다"고 말한 바 있다.
2001년 11월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잘랄라바드의 파괴된 건물에서 수집한 비디오 테이프를 복원하였다. 2001년 12월 7일 복원된 영상이 공개되었고 여기서 빈 라덴은 알카에다 활동을 같이 한 사우디 아라비아의 칼레드 알하르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서방, 특히 미국은 이슬람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해악을 끼져 왔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 십자군의 해악이다. 미국에 대항하는 테러리즘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왜냐하면, 불의에 대한 응답이자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것을 중단하도록 압박하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 우리 사람들이 죽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국의 종말이 임박했다고 말한다. 빈 라덴과 동료들이 살았건 죽었건, 무슬림의 공동체인 움마를 일깨우는... 군사력의 기반인 (미국의) 경제에 타격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가 타격을 입으면 그들은 재건을 해야만 할 것이다. — 오사마 빈라덴 |
또한 미국을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모욕하려는 것도 테러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결론적으로 2002년 11월 빈라덴이 쓴 "미국에 보내는 편지"를 종합하면 빈 라덴의 테러 동기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
- 소말리아 무슬림에 대한 공격 지원
- 모로 분쟁에서 필리핀 무슬림에 대한 공격 지원
- 이스라엘의 레바논 무슬림에 대한 공격 지원
- 러시아의 체첸 공화국내 무슬림에 대한 공격 지원
- 중동에 무슬림에 반하는 친미 정부 수립
- 카시미르에서 인도의 반 무슬림 행위 지원
-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우던 와치 작전 수행
- 이라크 개입
3.4. 최후
자세한 내용은 넵튠 스피어 작전 문서 참고하십시오.4. 향후의 전망
오사마 빈 라덴은 확실히 알 카에다의 핵심적인 지도자이기는 했으나, 오사마 자신이 미국에 쫓기면서 공개적인 활동이 상당히 어렵게 되었으므로 그 대안으로 오사마 빈 라덴 사살 당시에는 세계 각국의 지부가 상당히 독자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알 카에다는 이미 오사마 빈 라덴 한 명이 사망한다고 단숨에 와해될 정도의 조직은 아니었다.그러나 오사마 빈 라덴이 알 카에다라는 조직에서 가지는 비중은 작지 않다. 정신적 지주이자, 핵심적인 지도자이며, 막대한 재산과 인맥을 가진 중요한 물주임은 분명했다. 또한 오사마가 가지고 있던 알 카에다 조직의 핵심적인 정보까지 미국의 손에 들어간 이상, 알 카에다는 상당한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오사마 빈 라덴이 사망하고 1, 2년 사이의 기간 동안 고위급 알 카에다 간부들이 연달아 미국에게 죽었는데 오사마 빈 라덴이 가지고 있던 정보로 추적한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그래도 한동안은 그 동안 쌓아둔 명성과 자산 덕에 버티고는 있었으나, 2014년 들어서는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의 급격한 성장으로 알 카에다는 입지를 잃었다. 그나마 그 ISIS조차도 대대적인 토벌 끝에 이라크와 시리아 내에 있던 거점지들을 모두 상실하여 궤멸당하고 일부 잔당들만 산발적으로 생존하면서 2020년대에는 서로 사이좋게 몰락한 상태.
5. 이슬람 테러리즘에 끼친 영향과 의의
이렇게만 보면 오사마 빈 라덴을 폭력에만 미친 살인마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으나, 그렇게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은 오사마 빈 라덴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오사마 빈 라덴은 현대 이슬람 테러리즘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그의 가장 큰 의의는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서방의 본토를 직접 노리기 시작하게 만든 것에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사마 빈 라덴 이전의 지하디즘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빈 라덴 이전의 지하디즘은 평범한 반정부 테러리즘에 지나지 않았다. 이를테면 이집트를 이슬람 국가로 만들기 위해서 이집트 정부, 관공서, 군기지 등을 공격하는 식이었다. 조금 더 나아가면 현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기지나 대사관을 공격하는 정도였다. 즉,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현지의 세속주의 독재정권을 전복시키려는 것에서 만족했다. 그들은 1979년의 이란처럼 현지의 이슬람 무장세력이 단결한다면 부패한 세속정부따위는 손쉽게 전복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오사마 빈 라덴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여하면서 이러한 방법의 한계를 깨닫게 된다. 아프가니스탄의 공산주의 괴뢰정부는 소련이 계속 지원하는 한 절대 붕괴하지 않았다. 실제로 나지불라 정권이 붕괴한 것은 무기의 지원자였던 소련이 붕괴되기 시작한 90년대 초반의 일이다. 열강들이 최신식 무기를 지원하고, 우월한 자금력으로 현지 병력을 모집해서 군대를 만들기만 하면 자금력, 인력, 무기가 부족한 반군조직은 당해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빈 라덴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슬람 세계의 도래를 방해하는 근본적인 배후세력인 서방에 대한 직접 타격을 주문하였다. 1960년대~1970년대와는 달리 서방세계에 진출한 무슬림 이민자들은 급속히 증가하고 있었다. 이들 중 일부를 포섭하거나, 아니면 요원을 서방세계의 본토에 파견시켜 민간인 밀집지역이나 주요시설을 타격한다면 서방 정부와 국민들은 두려움과 혼란에 빠질 것이요, 내부의 적을 청소하느라 외부에 돌릴 여유가 없어지고 중동에까지 세력을 유지하려는 목소리가 작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빈 라덴은 아랍 세계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외세 국가가 대부분 민주주의 국가라는 점에 주목했다. 베트남 전쟁과 같이 미국 내부의 반전여론이 높아지면 현지 상황이 어떻든 철수할 수 밖에 없다. 테트 공세는 미군과 남베트남군이 잘 싸워 이겼지만, 사이공의 미 대사관이 불타고 있는 것이 전세계에 중계되는 바람에 미국은 전략적으로는 패배를 당했다. 빈 라덴은 베트남처럼 그놈의 중동이 뭐라고 시비를 걸어서 이 난리를 만드냐는 목소리를 노린 것이다. 실제로 이 전략은 2004년 마드리드 폭탄테러를 통해 스페인에게 먹혔고, 스페인군의 이라크 철군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본토에 대한 테러는 베트남 전쟁과는 다르다. 무자비하게 살상당한 민간인들을 보고 온 사람들이 똘똘 뭉쳐서 복수를 외칠 수도 있다. 실제로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이런 방향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빈 라덴은 이렇게 되어도 결과적으로는 손해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할 수도 있지만, 잠시 이슬람권의 현 상황을 살펴보자.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들은 19억명에 달한다. 더군다나 세계화의 바람으로 이 무슬림들이 기존의 무슬림 국가들뿐만 아니라 서방을 비롯한 비이슬람권 국가들에 다양하게 퍼진 상태이다. 이 19억명의 무슬림들은 중앙아시아나 인도네시아처럼 히잡도 대충 쓰고 술도 마시고 돼지고기도 가끔은 먹는 나이롱 신자부터, 신실하게 이슬람을 믿지만 폭력적 정치행위는 반대하는 무슬림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있고, 이들 중 테러리즘 단체에 뛰어드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빈 라덴은 테러리즘 단체에 가담하지 않는 대다수의 무슬림들을 두고 '회색 지대(gray zone)'에 놓여있다면서, 회색 지대를 없애고 전 세계를 십자군의 진영과 무자헤딘의 진영으로 양분하여야 할 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이 회색지대를 없앨 수단으로 서구 사회에 대한 테러를 선택했다. 알카에다 같은 이슬람 테러단체들이 서구사회에 테러를 저지른다면 서구의 비이슬람권 사람들이 복수심에 불타 반이슬람주의가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고, 비이슬람권 국가에서 비주류인 무슬림들이 차별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일 이러한 사회적 차별과 증오가 서로 쌓여 반목하게 되는 상황으로 흘러가면, 회색 지대 혹은 서방의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무슬림은 감소하고 지하디즘에 공감하는 무슬림이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빈 라덴은 최종적으로는 이 19억명을 모두 이슬람 극단주의자로 만들어 지하드를 하게 나서면, 전세계를 이슬람화하는 것은 불가능해도 최소한 기존의 이슬람권에서 서구의 영향력을 제거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전략은 별다른 전략적 안목이 부재했던 전통적인 지하디즘에서 오사마 빈 라덴은 더욱 더 간악하고 교활한 방향으로 테러의 방향을 전환하였다. 실제로 1990년대 중반 이후 알 카에다의 주요 타겟은 언제까지나 타국의 본토였다.
그러나 오사마 빈 라덴이 죽은 이후 빈 라덴을 비판하고 전통적 투쟁방법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 또한 일어나고 있다. 반이슬람주의를 책동시켜 무슬림을 차별받게 하고, 그로 인해 회색지대에 있는 무슬림을 없게 한다는 것이 말이 쉽지 19억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그렇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민간인 거주지에 무차별적으로 테러해 무슬림들마저도 알 카에다의 주장에 더 이상 공감하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2011년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군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발을 빼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서방 세력이 이슬람 세계를 식민지화하려고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잃어갔다. 오히려 문제는 현지에 존재하는 세속 독재세력이라는 것. 아랍 세계에 대규모 미군이라고 할 것이 없는데 백날 서구를 때려봤자 무엇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비판자들은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을 대표적인 반증으로 제시한다. 이집트와 튀니지, 예멘은 친미 독재자가 집권하고 있는 국가였는데, 대규모 시위로 정부가 뒤집힐 위기에 처하자 미국은 이들을 지원하지 않고 재빨리 버렸고, 독재정권은 붕괴했다. 즉, 대규모 민중반란을 선동할 수만 있다면 굳이 위험과 비난을 들어가면서 서구의 본토를 때리는 것보다 성공하는 확률이 높다는 것. 이러한 노선을 들고 나온 세력이 대표적으로 시리아에 있는 알 누스라 전선. 알 누스라 전선의 수장인 무함마드 알-줄라니(Muhammad al-Joulani)는 미국을 공격할 생각이 없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럴 필요가 없으며, 우리의 활동은 시리아에만 한정될 것'이라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물론 이는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대차게 말아먹었고, 셰일 가스 혁명으로 굳이 중동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니 해외에 군사력을 쓰는 것에 소극적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5.1. 파키스탄, 아랍 세계, 그리고 오사마 빈 라덴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간, 파키스탄 산골짜기도 아닌 파키스탄 시가지의 호화 안전가옥, 그것도 군사학교 코앞에 숨어있었기 때문에 파키스탄은 혹시 오사마와 한패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게 되었다. 오사마 사망보도 직후 CNN에서 진행된 대담에 따르면 오사마가 거처하던 숙소는 오사마 사망 당시 약 6년 가량 지난 건물이었는데 이러한 특수한 건물[25]을 지은 이유는 역시 오사마의 거처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냐는 심증이 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실제로 작전에 대해서 파키스탄 정부에 사전통보를 하지 않았고 덕분에 작전을 끝내고 귀환하던 미군 헬리콥터 2대가 파키스탄 공군 F-16 전투기의 공격을 받을 뻔한 일도 있었다.다만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한 연설에는 작전에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의 도움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내용이 있었고 테러와의 전쟁에 파키스탄의 동맹이 필요하였다는 점도 언급되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각자의 자유이나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에게 파키스탄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점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기 위해 러시아나 이란[26]을 통과할 수는 없으니 결국 파키스탄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작전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별로 미덥지는 않지만 참고 친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날개달린 코카인[27]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면 아랍의 갑부들이 그렇듯 오사마는 매를 몹시 좋아해서 1년에 한두 차례는 꼭 매사냥을 나갔다고 한다. 실제로 그러한 루트로 오사마를 목격한 사람도 있었다. 중앙아시아의 한 매 보호가가[28] 매 밀렵에 오사마 빈 라덴이 연루되어있음을 알고 있었고 매 사냥 예정장소까지 가르쳐주었는데 CIA는 쿨하게 씹었다. 그리고 5개월 후 9.11 테러가 터졌다.
또 사실 미국 UCLA에서는 2년 전에 오사마 빈 라덴의 거처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고 한다. UCLA의 두 지리학자들과 그 학생들이 어떤 가설에 의하여 오사마는 작은 마을에 은둔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신고할 가능성때문에 큰 도시(수도) 근처에 은거하고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위성과 오사마의 자취들을 이용하여 가장 높은 확률의 은신처를 찾아보았다고 한다. 그 결과 88.9%로 파키스탄의 아보타바드 지역에 은거하고 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들이 한 것은 대학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CIA나 다른 기관들은 쿨하게 씹어버렸고 이 프로젝트는 결국 묻히고 말았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매 사냥이라든가 아보타바드 관련 언급들은 미국 정보기관들이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내버려둔 것일 가능성도 있다. 먼저 9.11 테러가 일어나기 전에는 냉전이 끝나서 더 이상 첩보기관들이 수틀리면 별의별 짓을 다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오사마 빈 라덴 체포작전도 지금처럼 먼저 잡고 보는게 아닌 법 절차를 따져가며 잡는 것이라서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주권침해와 국제법 위반으로 충돌을 일으킬 수 있었고 아랍의 주요인물들은 자신들에게도 골치 아픈 일이 생길까봐 미국의 대테러 작전에 비협조적이었다. 거기에 몇몇 미국의 동맹국 유력자들은 오사마 빈 라덴과 친교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29] 이런 상황에서 함부로 공격해서 국제법 위반과 동맹국 주요 요인 사살이라는 악수를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9.11 이전에는 CIA도 오사마가 매 사냥을 즐기는 것을 알고 요원들을 배치해 오사마를 공격하려 했지만 바로 옆에 UAE 공군 소속 비행기가 있는 것을 보고 작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UAE의 수장국인 아부다비의 왕자.[30] 거기에 아보타바드에 오사마가 숨어있을 것이라는 첩보나 분석은 몇 년전부터 나왔지만 파키스탄은 이에 대해 "그럴 리가 없다", "첩보가 잘못된 것이다", "니들이 뭘 안다고 함부로 의심하는데?"는 입장을 견지해서 협조를 하지 않았다. 이번 작전에서 파키스탄의 양해를 구하지 않고 즉각적인 공격을 한 것도 이런 배경이 있다.#
2011년 7월 12일, ISI와 오사마 빈 라덴의 관계가 일부 드러났다.# 파키스탄 군부는 필사적으로 부정하는 중이다. 또한 파키스탄은 탈레반의 후원자라는 의심받고 있다.
6. 여담
오사마 빈 라덴이 은신해있던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의 저택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성지화가 우려되었으나 "알면서도 거짓말한 것이 아니냐?"라는 미국의 압박과 "파키스탄 정보부의 수치다"라는 파키스탄 정부 내의 여론 때문에# 2012년 2월에 철거가 완료되었다.오사마 빈 라덴의 가문인 라덴 가문은 9.11 테러 이후 그를 호적에서 팠다. 가문의 성 역시 라딘으로 변경했다.
묘하게 아스날 FC 팬들에게는 아스날 광팬이라는 이미지가 붙어 있다. 하이버리 시절 경기장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목격했다는 제보가 숱할 뿐 아니라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으로 바뀐 뒤에도 종종 경기장을 찾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런 이유로 아스날 팬 한정 아랍 축구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오사마 심복들의 증언에 따르면
"잉글랜드 축구 클럽 아스널의 경기를 환호성을 지르며 볼 정도로 좋아했고 가끔은 직접 축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기 중에도 절대로 터번을 벗지 않았다. 키가 큰 오사마는 배구에도 재능이 있어 공을 상대방 코트에 내리찍기 위해 뛸 필요가 없었다. 또 독서광이었고 한시도 쉬지 않고 일할 정도로 부지런했다."
세계 10대 지명수배자 중 한 명으로 꼽혔다. 그 중에서 288억으로 가장 현상금이 높았으며, 인터폴에서 뽑은 세계에서 가장 악명높은 범죄자 7인 중에서 1위로 꼽혔다고 한다. 이 지명수배서는 영화 《한니발》에도 나온다. 참고로 한니발은 9.11 테러가 일어나기 7개월 전에 만들어진 영화다.
일본에서는 오사마가 아니라 우사마라고 부르며[31] 터키에서는 'Usame bin Ladin'으로 불린다.
2001년도에 가수 강현수의 별명이기도 하였다. 그 당시 강현수의 외모가 빈라덴과 많이 닮았다고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2001년~2002년 사이에 대한민국 TV방송에서 많은 패러디가 나왔고, 에미넴의 뮤직비디오에서도 빈라덴을 패러디한 영상이 나오기도 했다.
폭스 뉴스에서는 'OBAMA BIN LADEN DEAD'라는 자막 오타를 내서 비웃음을 당했다.
Rule 63에서는 오사마 빈 라덴 사후에 오사마의 여체화 그림이 메인에 올라왔다. 안구 테러를 당할 수 있으니 주의.[32]
와우 커뮤니티들에서는 오사마의 딸이 사살될 당시 오사마의 옆에 있었다는 점 때문에 에드윈 밴클리프 부녀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는 듯하다.
사후 아지트에서 찾은 문서에 의하면 한국 공격을 지시할 준비를 하려고 했었다고 한다. 다만 이게 한국 주둔 미군기지나 미국 관련 시설을 공격하는 건지 자세한 묘사가 없었으며 일본이나 여러 나라에게[33]도 이런 공격 지시가 있기에 기획만 있다뿐이지 상세히 준비했다고 보기에는 힘들다는 분석도 많다.
빈 라덴 본인도 자신의 행보에 후회가 있었는지 자신의 아들딸에게 "알 카에다에 합류하지 마라"라는 유언을 생전에 남겼었다고 한다. 덧붙여 아들딸에게 서방세계에서 잘먹고 잘 살라고 당부했다.#그러나 아들 중 한명인 함자 빈 라덴[34]이 아버지의 유언을 저버리고 그의 뒤를 이어 알 카에다의 지도자격 존재로 활동하다가 2019년 7월 미군한테 사살당했다.[35]
2006년부터 2011년 사망할 때까지 머물던 아지트에서 오사마는 의외로 검소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아지트는 기본적인 페인트칠만 되어있고 기본적인 난방시설 이외에 에어컨 같은게 없어 수십명이 머무는 대저택임에도 한 달 전기, 가스 요금이 50달러 수준이었다고 한다. 식량도 자급자족하고 침대는 기본적인 합판으로만 짜여진 것이어서 그 저택을 취재한 타임지 기자는 마치 그곳이 캠프장 같았다고 전했다. 하긴 숨어살아야 했으니. 그를 추적 조사하던 사람들에 의하면 오사마 빈 라덴은 은신하던 당시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 노엄 촘스키, 밥 우드워드의 책을 즐겨보았으며, 포르노 중독 증세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지명수배자인 만큼 매우 신중한 생활을 했는데, 불투명한 창문만 하나 있는 그 집의 3층에서만 머물며 집밖으로 나오는 일이 드물었다. 게다가 그 저택에는 오사마의 가족 이외에 행랑채에서 부하와 가족들이 살았는데 부하의 가족들에게조차 자신의 존재를 숨길만큼 신중한 생활을 했다. 누가 배신할지 모르니 당연지사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CIA에서 정보원을 들여보냈을지도 모른다.
도피생활을 하면서 온갖 방법으로 추적과 탐지를 피했는데, 수염을 싹 미니까 아무도 못 알아봤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경찰에게 과속으로 걸렸는데도 경찰은 전혀 눈치 못챘다고 한다.
2012년 10월 9일에 발매되는 "오사마"라는 소설에서는 테러리즘이 없는 평행세계를 무대로 오사마는 펄프 픽션의 주인공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주인공인 탐정이 조사를 하면서 정말 빈 라덴이 소설 속의 인물인가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오사마 빈 라덴이 죽은 후, 알 자지라 방송국에서 오사마의 2004년 생전 비디오를 녹화한 것을 공개했다. 이 비디오가 대테러 전문가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다. #
- <비디오 내용>
- || Praise be to Allah who created the creation for his worship and commanded them to be just and permitted the wronged one to retaliate against the oppressor in kind. To proceed:
찬양받기 위해 창조물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정의로움을 명하시고, 핍박받는 자들이 핍박하는 자들에게 복수할 것을 허락하신 알라를 찬양하노라.
Peace be upon he who follows the guidance:
이 안내를 따르는 이들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People of America this talk of mine is for you and concerns the ideal way to prevent another Manhattan, and deals with the war and its causes and results.
미국인들이여, 나의 이 담화는 그대들을 위한 것이고, 또 다른 9/11을[36] 방지하기 위한 이상적인 길을 모색하기 위함이며, 전쟁과 그 원인과 결과를 다루기 위함이다.
Before I begin,
시작하기 전에,
I say to you that security is an indispensable pillar of human life and that free men do not forfeit their security, contrary to Bush's claim that we hate freedom.
나는 당신들에게 안전이란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대들보이며, 우리가 자유를 증오한다는 부시 행정부의 주장과는 반대로 자유인은 안전을 박탈하지 않는다고 말하고자 한다.
If so, then let him explain to us why we don't strike for example - Sweden?
만약 그들의 주장이 옳다면, 그들로 하여금 왜 우리가, 예를 들어, 스웨덴을 공격하지 않는지 설명토록 하라.
And we know that freedom-haters don't possess defiant spirits like those of the 19 - may Allah have mercy on them.
그리고 우리는 자유를 증오하는 자들은 그 19명(9/11 자살 특공대)과 같은 저항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 그들에게 알라의 자비가 있기를.
No, we fight because we are free men who don't sleep under oppression.
우리는 핍박 아래 잠들지 않는 자유인이기에 싸운다.
We want to restore freedom to our nation,
당신이 우리 조국을 파괴하는 짓을 하기에,
just as you lay waste to our nation.
우리는 조국의 자유를 되찾고 싶다.
So shall we lay waste to yours.
그러므로, 우리 또한 당신의 조국을 불모의 땅으로 만들 것 이다.
No one except a dumb thief plays with the security of others and then makes himself believe he will be secure.
멍청한 도둑놈을 제외하면, 어떤 이도 남의 신변을 가지고 장난치면서 스스로는 안전할 것이라 믿지 않는다.
Whereas thinking people, when disaster strikes, make it their priority to look for its causes, in order to prevent it happening again.
반면에, 생각하는 사람들은, 재앙이 닥치면, 문제의 원인을 찾아 예방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But I am amazed at you.
하지만, 그대들은 날 놀라게 했다.
Even though we are in the fourth year after the events of September 11th, Bush is still engaged in distortion, deception and hiding from you the real causes.
우리가 9/11로부터 4년째를 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시는 여전히 사실을 왜곡하고, 기만하며, 그대들로부터 진정한 원인을 감추기에 급급하다.
And thus, the reasons are still there for a repeat of what occurred.
그러므로, 과거(9.11 테러)의 일이 반복될 불씨는 여전히 존재한다.
So I shall talk to you about the story behind those events and shall tell you truthfully about the moments in which the decision was taken, for you to consider.
그대들의 심사숙고를 위해[37], 나는 당신들에게 그 일련의 사건들 너머 감춰진 이야기들을, 그리고 그 결정이 내려졌던 순간에 대해 진실되게 말하겠다.
I say to you, Allah knows that it had never occurred to us to strike the towers.
내가 그대들에게 고하노니, 알라께서도 아시다시피 우리는 원래 전혀 그 건물들을 공격할 의도가 없었다.
But after it became unbearable and we witnessed the oppression and tyranny of the American/Israeli coalition against our people in Palestine and Lebanon, it came to my mind.
그러나 상황이 참을 수 없게 흘러갔고, 미국-이스라엘 동맹이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의 동포들에게 자행했던 압제와 폭정의 장면들이 내 가슴을 짓눌렀다.
The events that affected my soul in a direct way started in 1982 when America permitted the Israelis to invade Lebanon and the American Sixth Fleet helped them in that.
내 영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사건은, 1982년, 미국이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묵인하고 미군 제 6함대가 이를 지원했던 때로부터 기인한다.
This bombardment began and many were killed and injured and others were terrorized and displaced.
이 폭격이 시작되면서, 많은 사람이 살해당하고, 부상당했으며, 다른 이들은 공포에 질렸고, 살 곳을 잃었다.
I couldn't forget those moving scenes.
난 그 피비린내, 살육의 현장을 잊을 수가 없다.
Blood and severed limbs, women and children sprawled everywhere.
피와 절단된 사지들,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이 사방에 널브러진 그 순간을.
Houses destroyed along with their occupants and high rises demolished over their residents, rockets raining down on our home without mercy.
가옥들은 그 안의 거주자들과 함께 파괴되고 고층 건물들은 그 안의 입주자들과 함께 붕괴되었으며, 사람들의 삶의 터전에는 로켓포가 자비 없이 비처럼 내렸다.
The situation was like a crocodile meeting a helpless child, powerless except for his screams.
이러한 상황은 비명지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하고 무력한 어린아이가 악어와 마주하는 것과 같다.
Does the crocodile understand a conversation that doesn't include a weapon?
그 악어가 과연 아무런 싸움 없이 대화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있을까?
And the whole world saw and heard but it didn't respond.
이를 전 세계가 지켜보았고 들었음에도, 어떠한 답도 없었다.
In those difficult moments many hard-to-describe ideas bubbled in my soul, but in the end they produced an intense feeling of rejection of tyranny, and gave birth to a strong resolve to punish the oppressors.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 설명하기 힘든 수없이 많은 번뇌가 내 영혼을 채웠으나, 최후에는 이런 포학 행위에 대한 격렬한 거부감이 일어났고, 이런 압제자들을 처벌해야겠다는 단호한 각오가 탄생하였다.
And as I looked at those demolished towers in Lebanon, it entered my mind that we should punish the oppressor in kind and that we should destroy towers in America in order that they taste some of what we tasted and so that they be deterred from killing our women and children.
그리고 나는 레바논에서 부서져버린 건물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이러한 행위를 저지른 압제자들을 동일한 방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 말해 우리가 "미국"의 건물들을 파괴함으로써 "미국"에 우리가 맛본 고통의 일부를 맛보여 주어야만 그들 또한 우리네 부녀자와 아이들을 죽이는 것을 단념 하리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And that day, it was confirmed to me that oppression and the intentional killing of innocent women and children is a deliberate American policy.
그리고 그 날, 압제, 그리고 무고한 부녀자와 아이들에 대한 의도적인 살해야말로 미국이 지향하는 정책임이 입증되었다.
Destruction is freedom and democracy, while resistance is terrorism and intolerance.
파괴가 곧 자유이며 민주주의였고, 저항은 테러와 불관용이었다.
This means the oppressing and embargoing to death of millions as Bush Sr. did in Iraq in the greatest mass slaughter of children mankind has ever known, and it means the throwing of millions of pounds of bombs and explosives at millions of children - also in Iraq - as Bush Jr. did, in order to remove an old agent and replace him with a new puppet to assist in the pilfering of Iraq's oil and other outrages.
이는 이라크에서 아버지 부시가 저질렀던 인류사상 유례 없는 대규모 아동 학살과 같은 억압과 금수 조치를, 그리고 역시 이라크에서 아들 부시가 그러했듯 오래된 스파이[38]를 제거하고는 자신을 돕는 새로운 꼭두각시[39]를 세워 이라크의 기름을 좀도둑질하고 다른 포악한 짓들을 저질르기 위해 수백만 명의 아이들에게 수백만 파운드의 폭탄과 폭약을 던져버렸던 행위를 의미한다.
So with these images and their like as their background, the events of September 11th came as a reply to those great wrongs.
즉, 이러한 정황을 감안하면, 9월 11일에 벌어졌던 그 사건은 미국이 저지른 거대한 악행에 대한 응분의 보답이었을 뿐이다.
Should a man be blamed for defending his sanctuary?
과연 한 인간이 자신의 안식처를 지키기 위한 행동으로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
Is defending oneself and punishing the aggressor in kind, objectionable terrorism?
자신을 지키고 압제자에게 동일하게 되돌려주는 것이 과연 객관적으로 경멸의 대상이 되어야 할 테러리즘인가?
If it is such, then it is unavoidable for us.
만일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그것 외에 어떠한 선택의 여지도 없다.
This is the message which I sought to communicate to you in word and deed, repeatedly, for years before September 11th.
이것이야 말로 9.11 테러 수 년 전부터 말과 행동으로 당신들과 함께 소통하고자 했던 메시지이다.
And you can read this, if you wish, in my interview with Scott in Time Magazine in 1996, or with Peter Arnett on CNN in 1997, or my meeting with John Weiner in 1998.
당신이 원한다면, 이러한 것들을 1996년 타임 지의 스캇 기자와 했던 나의 인터뷰, 혹은 1997년 CNN의 피터 아넷 기자와의 인터뷰, 혹은 내가 1998년에 존 와이너와 가졌던 만남 등에서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You can observe it practically, if you wish, in Kenya and Tanzania and in Aden.
아울러, 당신이 원한다면, 보다 실질적으로 케냐와 탄자니아[40]와 아덴에서 벌어진 일[41]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And you can read it in my interview with Abdul Bari Atwan, as well as my interviews with Robert Fisk.
또한 내가 압둘 바리 아트완과 가졌던 인터뷰, 그리고 로버트 피스크와의 인터뷰에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The latter is one of your compatriots and co-religionists and I consider him to be neutral.
후자는 그대들의 동포이며 그대들과 같은 종교를 믿고 내가 중립적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So are the pretenders of freedom at the White House and the channels controlled by them able to run an interview with him?
그럼 백악관에 있는 자유의 위선자들과 그들이 통제하는 방송국들이 내가 그와 가진 인터뷰를 방송할 의향이 있을까?
So that he may relay to the American people what he has understood from us to be the reasons for our fight against you?
그럼으로서 그가 우리가 그대들과 싸우는 목적을 이해한 것처럼 미국 국민들도 이해시킬 아량을 베풀어줄 수 있겠는가?
If you were to avoid these reasons, you will have taken the correct path that will lead America to the security that it was in before September 11th. This concerned the causes of the war.
만일 그대들이 이러한 이유를 회피한다면 이 전쟁을 만든 원인이 되었던 9월 11일 이전의 보안으로 가는 올바른 길로 가게 될 것이리라.
As for its results, they have been, by the grace of Allah, positive and enormous, and have, by all standards, exceeded all expectations. This is due to many factors, chief among them, that we have found it difficult to deal with the Bush administration in light of the resemblance it bears to the regimes in our countries, half of which are ruled by the military and the other half which are ruled by the sons of kings and presidents.
그리고 그 결과로 그들은 알라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 국가들의 지도층, 즉 군부와 왕들, 그리고 대통령들의 아들들이 다스리는 지도부와 거의 흡사하게, 아울러 상상을 뛰어넘는 그 이상으로 부시 행정부는 통하기 어려운 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42]
Our experience with them is lengthy, and both types are replete with those who are characterized by pride, arrogance, greed and misappropriation of wealth. This resemblance began after the visits of Bush Sr. to the region.
우리와 이들의 경험은 꽤 오랜 것으로 이 둘은 교만하고, 거만하며, 부를 남용하는 자들로 즐비하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 부시 시니어가 이 지역들을 순방한 이후 나타난 공통점이다.
At a time when some of our compatriots were dazzled by America and hoping that these visits would have an effect on our countries, all of a sudden he was affected by those monarchies and military regimes, and became envious of their remaining decades in their positions, to embezzle the public wealth of the nation without supervision or accounting.
당시 우리의 동료들 중 몇명은 미국에 대한 환상을 갖고 그의 순방이 영향을 끼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는 우리의 왕정들과 군부들의 장기독재를 해오며 공공의 부를 횡령해온 이들의 통치 스타일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과 동시에 이들을 부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So he took dictatorship and suppression of freedoms to his son and they named it the Patriot Act, under the pretense of fighting terrorism.
그리하여 그는 이 독재체제와 자유의 탄압을 그의 아들에게 물려주어 소위 테러와의 전쟁을 벌인다는 목적으로 애국자 법이라는 것을 만들었고.
In addition, Bush sanctioned the installing of sons as state governors, and didn't forget to import expertise in election fraud from the region's presidents to Florida to be made use of in moments of difficulty.
더 나아가 아들들을 주지사로 임명했고[43] 플로리다 대통령 선거부정을 이용하는 점도 잊지 않았다.
All that we have mentioned has made it easy for us to provoke and bait this administration. All that we have to do is to send two mujahidin to the furthest point east to raise a piece of cloth on which is written al-Qaida, in order to make the generals race there to cause America to suffer human, economic, and political losses without their achieving for it anything of note other than some benefits for their private companies.
위에 언급했던 모든 것들은 우리가 이 행정부를 자극시켜 미끼로 유인하기에 쉬운 것이었으며 우리는 우리의 무자헤딘 두 명을 동부의 더 먼 지역으로 투입시켜 미국민들로 하여금 인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손실을 자신들의 개인 기업체에 끼치는 약간의 이익을 얻는 것외에는 성취되지 못한 형태의 것으로 만들어냈다.
This is in addition to our having experience in using guerrilla warfare and the war of attrition to fight tyrannical superpowers, as we, alongside the mujahidin, bled Russia for 10 years, until it went bankrupt and was forced to withdraw in defeat.
여기에는 우리가 러시아에게 적용하여 그들로 하여금 10년이나 출혈을 일으켜 파산을 내고 물러가게 했던 게릴라전도 아울러 적용했다는 것을 밝혀두는 바이다.
All Praise is due to Allah.
알라께 찬양을.
So we are continuing this policy in bleeding America to the point of bankruptcy. Allah willing, and nothing is too great for Allah.
그러므로 우리는 알라께서 원하시는대로 미국의 계속적인 출혈을 강요해 그들로 하여금 파산직전으로 몰아부칠때까지 계속 투쟁할 것이며 이는 알라께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That being said, those who say that al-Qaida has won against the administration in the White House or that the administration has lost in this war have not been precise, because when one scrutinizes the results.
이는 바로 알 카에다가 이 행정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고 말하는 자들이 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밝혀두기 위함이다.
One cannot say that al-Qaida is the sole factor in achieving those spectacular gains.
알 카에다가 이 대결의 단독승자라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해주려는 까닭이다.
Rather, the policy of the White House that demands the opening of war fronts to keep busy their various corporations - whether they be working in the field of arms or oil or reconstruction - has helped al-Qaida to achieve these enormous results.
오히려 이것은 백악관으로 하여금 계속되는 전쟁을 강조해 그들의 이득원인 방위산업과 석유, 혹은 재건사업의 촉진시켜 알 카에다의 목적을 성취시키게 함에 있는 것이다.
And so it has appeared to some analysts and diplomats that the White House and us are playing as one team towards the economic goals of the United States, even if the intentions differ.
그리고 이는 일부 전문가들로 하여금 백악관과 우리가 미국의 경제를 위해 한 팀으로 일하는 것으로 보여지게 함도 있음이다. 물론 그 의도는 다를지라도.
And it was to these sorts of notions and their like that the British diplomat and others were referring in their lectures at the Royal Institute of International Affairs.
그리고 이는 영국 외교관들과 다른 사람들이 왕립외교학회에서 지적한 것과 비슷한 개념의 것으로 볼 수도 있으리라.
When they pointed out that for example, al-Qaida spent $500,000 on the event, while America, in the incident and its aftermath, lost - according to the lowest estimate - more than $500 billion.
일례로 그들은 미국이 -최소 대략금액으로- 이 사태로 인해 5억 달러를 지출했을때 알 카에다가 지출한 금액은 50만 달러에 불과했다라는 지적을 했었다.
Meaning that every dollar of al-Qaida defeated a million dollars by the permission of Allah, besides the loss of a huge number of jobs.
이는 곧 엄청난 숫자의 일자리가 사라진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알 카에다는 알라의 허락 하에 1달러를 지출할 때마다 (적들에게) 백만 달러씩의 손실을 입혔다는 뜻이다.
As for the size of the economic deficit, it has reached record astronomical numbers estimated to total more than a trillion dollars.
아울러 이는 미국의 경제적 적자 규모를 봐도 1조 달러가 넘는 천문학적 손실이 예상된다라는 셈이다.
And even more dangerous and bitter for America is that the mujahidin recently forced Bush to resort to emergency funds to continue the fight in Afghanistan and Iraq, which is evidence of the success of the bleed-until-bankruptcy plan - with Allah's permission.
여기에 미국에게 더욱 쓰라리면서 위험한 것은 알라의 허락하심으로 이러한 무자헤딘이 부시로 하여금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이중전선에의 긴급자금지원이란 대책까지 이끌어 냈다는 것이고 이는 우리의 파산되기까지의 출혈이란 전략을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음이다.
It is true that this shows that al-Qaida has gained, but on the other hand, it shows that the Bush administration has also gained, something of which anyone who looks at the size of the contracts acquired by the shady Bush administration-linked mega-corporations, like Halliburton and its kind, will be convinced. And it all shows that the real loser is… you.
이것은 알 카에다의 소득으로 보여지는 것도 사실이나, 한편으로는 부시 행정부의 소득이기도 한 것이다. 단지 이 결과로 그늘진 부시 행정부와 밀착한 할리버튼과 같은 대기업이 얻어든 대형 사업계약만을 주목하는 사람들에겐 이 전쟁의 진정한 패자는 당신이구만.이라고 할 수 있겠으리라만.
It is the American people and their economy.
우리의 목표는 미국인들과 그들의 경제이다.
And for the record, we had agreed with the Commander-General Muhammad Ataa, Allah have mercy on him, that all the operations should be carried out within 20 minutes, before Bush and his administration notice.
공개적으로 언급하자면 우리는 행동책임자 무하마드 아타[44]와 부시와 그의 행정부가 눈치채기 전에 20분안에 해결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였다.
It never occurred to us that the commander-in-chief of the American armed forces would abandon 50,000 of his citizens in the twin towers to face those great horrors alone, the time when they most needed him.
우리에게는 적어도 미군의 군 통수권자가 그의 국민들이 그를 필요로 할때 있지 않았다는 사실 즉 쌍둥이 빌딩안의 5만명의 그의 시민들이 홀로 그 공포를 당해야 하는 실수는 일어나지 않았다.
But because it seemed to him that occupying himself by talking to the little girl about the goat and its butting was more important than occupying himself with the planes and their butting of the skyscrapers.
하지만 적어도 그에게는 비행기들이 마천루들을 들이받는 것에 골몰해있기보다는 어린 소녀와 함께 염소가 서로 들이받는 것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해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리라.
We were given three times the period required to execute the operations.
우리에겐 이 작전을 세번씩이나 더 세밀하게 실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All praise is due to Allah.
이 모든 것으로 인해 알라께 찬양을 드리리.
And it's no secret to you that the thinkers and perceptive ones from among the Americans warned Bush before the war and told him: "All that you want for securing America and removing the weapons of mass destruction - assuming they exist - is available to you, and the nations of the world are with you in the inspections, and it is in the interest of America that it not be thrust into an unjustified war with an unknown outcome."
그리고 이것은 미국인들 가운데 존재하는 일부 지각있는 사람들과 통찰력을 가진 인물들이 부시로 하여금: "당신이 미국을 지키고 다른 국가들과 함께 조사를 벌이고 있는 대량살상무기를 -그것들이 있다는 가정하에- 제거하고자 한다는 것이지만 불확실한 결과를 일으킬 정당성이 없는 전쟁에는 개입하지 않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라는 경고를 했었다는 것 역시 만인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But the darkness of the black gold blurred his vision and insight, and he gave priority to private interests over the public interests of America.
그러나 그에게는 검은 금[45]의 어두움에 시야가 흐려지고 현안이 없어졌고, 자신의 개인적인 이득을 공공의 이익에 우선했다.
So the war went ahead, the death toll rose, the American economy bled, and Bush became embroiled in the swamps of Iraq that threaten his future.
결국 전쟁은 진행되었고 사상자는 늘었으며, 미국의 경제는 출혈이 심화되고, 아울러 부시는 이라크라는 늪에 얽매여 그의 미래까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He fits the saying "like the naughty she-goat who used her hoof to dig up a knife from under the earth".
과연 그에겐 "암염소가 굽 있는 발로 땅 밑에 묻힌 칼을 파낸다."라는 말이 어울릴 지경이다.
So I say to you, over 15,000 of our people have been killed and tens of thousands injured, while more than a thousand of you have been killed and more than 10,000 injured.
이러므로 나는 그대들에게 우리 인원 1만 5천명이 죽고 수만명이 부상할 동안 그대들은 수천이 죽고 1만명이 넘는 부상을 치렀다.
And Bush's hands are stained with the blood of all those killed from both sides, all for the sake of oil and keeping their private companies in business.
이 모든 것이 석유와 그의 개인 기업의 상업 활동을 위하여 양쪽의 인명의 피를 그 손에 묻힌 부시에게 있다.
Be aware that it is the nation who punishes the weak man when he causes the killing of one of its citizens for money, while letting the powerful one get off, when he causes the killing of more than 1000 of its sons, also for money.
이 나라(미국)는 돈 때문에 자신들의 자녀들 수천명을 죽인 강한 자는 도주하게 하고 돈 때문에 자신의 시민들 몇을 죽이는 약자는 징벌하는 국가인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46]
And the same goes for your allies in Palestine.
이것은 팔레스타인의 그대의 동맹국들도 마찬가지이며.
They terrorize the women and children, and kill and capture the men as they lie sleeping with their families on the mattresses, that you may recall that for every action, there is a reaction.
그들은 여성들과 아이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가족들과 함께 침대에서 잠든 남성들을 잡아가거나 죽이는 것을 일삼던 자들이며 이에는 응분의 보응이 따를 것 이다.
Finally, it behooves you to reflect on the last wills and testaments of the thousands who left you on the 11th as they gestured in despair. They are important testaments, which should be studied and researched.
끝으로, 그대들은 11일에 남겨져 절망에 허덕이는 남은이들의 증언과 유언에 대해 심사숙고 해야 하는 의무를 가졌다.
Among the most important of what I read in them was some prose in their gestures before the collapse, where they say: "How mistaken we were to have allowed the White House to implement its aggressive foreign policies against the weak without supervision."
이것들 중 내가 중요하게 읽은 것들 중 하나는 빌딩이 무너지기 전 쓴 산문 가운데 "우리가 백악관으로 하여금 통제없이 약소국으로 하여금 공세적인 외교정책을 세우게 한 것이 얼마나 오판이었는가."라고 쓴 것이었다.
It is as if they were telling you, the people of America: "Hold to account those who have caused us to be killed, and happy is he who learns from others' mistakes."
이는 그들이 당신들 미국국민들에게 "우리를 죽게 한 자들에 대해 책임을, 그리고 상대의 실수를 타산지석으로 여기는 이에게는 행복을."이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And among that which I read in their gestures is a verse of poetry. "Injustice chases its people, and how unhealthy the bed of tyranny."
아울러 또 그들의 쓴 시 가운데 "불의는 그들의 백성을 추격하고, 폭정의 침상은 얼마나 불결한가?"란 것도 있었다.
As has been said: "An ounce of prevention is better than a pound of cure."
이는 "한 되의 대비가 한 말의 치료보다 낫다."라는 격언과 같다.
And know that: "It is better to return to the truth than persist in error." And that the wise man doesn't squander his security, wealth and children for the sake of the liar in the White House.
아울러 "잘못을 고집하는 것보다 진실로 회귀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것과 현명한 자는 백악관의 공갈꾼을 위해 자신의 안전과 부와 자녀들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In conclusion, I tell you in truth, that your security is not in the hands of Kerry, nor Bush, nor al-Qaida. No.
결말로 내가 그대들에게 말하는 사실은 그대들의 안전은 부시나 케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알 카에다에게 있는 것 또한 절대 아니다.
Your security is in your own hands.
그대들의 안전은 그대들의 손 안에 있다.
And every state that doesn't play with our security has automatically guaranteed its own security.
그리고 우리의 안전과 장난치지 않는 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안전이 보장되었다는 것이다.
And Allah is our Guardian and Helper, while you have no Guardian or Helper. All peace be upon he who follows the Guidance.
아울러 그대들의 인도자와 협력자는 없을지라도 알라께서는 우리의 인도자요 협력자가 되시니 그의 인도하심을 받는 모든 이들에게 평화가 있을지라. ||
오사마의 이 수단은 오사마의 사후 3년, IS가 이용하고 있다. 이 발표문을 읽어보면 IS가 어떻게 미국과 싸울 것이며 IS가 미국을 도발하는 의도를 알 수 있다.
영화 독재자에서는 오사마 빈 라덴이 죽은 척을 하고 주인공인 알라딘의 궁전에 숨어 산다는 설정이 있다. 영화 결말에 궁전 테라스에서 주인공의 결혼식을 보며 박수를 치다가 카메라에 잡히자 황급히 들어간다.
라덴 가문은 미국과도 사이가 좋은 데다가 미국 석유 기업의 주주이기도 해서 2004년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화씨 9/11》에서도 이 부분이 음모론의 일부로 등장한다. 그럴 만한 것이 부시 가문과 엄청 친하다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 가보면 타워크레인과 대형 카 크레인에 영어로 크게 'binladen'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CIA에서 오사마 빈 라덴 사후 그가 가지고 있던 노트북을 조사해 까발렸는데 하프라이프, 카운터 스트라이크등 미국 게임과 파이널 판타지 7 같은 일본 게임, 톰과 제리, 아이스 에이지 같은 미국 애니메이션도 있었으며 유일신과 성전의 미국인 인질이였던 잭 헨슬리 참수 영상도 들어있었다고 한다.# 게임이야 자기가 직접 즐기려고 다운받은 거고 사망 당시 그의 막내 아들이 10살 미만이라서 같이 보려고 다운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상당한 규모의 그리고 다양한 포르노물도 노트북에서 발견되었으나 CIA 측에서 오사마 빈 라덴이 구체적으로 어떤 포르노물을 소장했는지에 대한 공개를 거부하였다.# 애초에 알카에다는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를 이용한 스테가노그래피를 이용해 테러 관련 정보를 은밀히 주고 받는 것으로 알려졌고 그가 자신의 노트북의 소장한 방대한 양의 포르노물이 순전히 감상용이었는지 아니면 추가로 알카에다에게 다른 명령을 전달하는 ‘스테가노그래피’를 위한 것이었는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엄청난 장신이다. 공식적으로 서방 세계에서는 오사마 빈 라덴의 키를 195cm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47] 팔레스타인 출신인 그의 생모는 여성이지만 키가 2m가 넘었으며 오사마는 이 영향을 받아서 체격이 매우 크다.[48] #
Helicopter hovering above Abbottabad at 1AM (is a rare event) 2011년 5월 1일#
새벽 1시, 아보타하드 상공에 헬리콥터가 떠있다. (이거 드문 일인데)
새벽 1시, 아보타하드 상공에 헬리콥터가 떠있다. (이거 드문 일인데)
Uh oh, now I'm the guy who liveblogged the Osama raid without knowing it. 2011년 5월 2일#
이런. 내가 이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오사마 레이드를 생중계로 블로깅한 사람이 되었네.
의도적이지 않게 넵튠 스피어 작전을 실시간으로 트윗하게 된 사람이 있다. 파키스탄 아보타바드 지역에 사는 IT 컨설턴트인 소하이브 아타르(Sohaib Athar)가 트위터로 아보타바드 상공에 평소에는 보기 힘든 헬리콥터가 떠다닌다며 "아 뭐야 시끄럽게." 하는 트윗을 올렸는데, 자고 일어나보니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 소식이 발표되었다. 이런. 내가 이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오사마 레이드를 생중계로 블로깅한 사람이 되었네.
제다 타워를 건축하는 빈 라딘 그룹이 이 가문이다. 그런데 이 가문은 빈 라딘을 싫어하는것만이 아니고 엄청나게 증오해서 족보에서도 이름을 없애 버렸다고 한다.
그의 조카딸인 와파 두푸르가 있는데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모델이다. 2005년 12월 24일에 YTN에서 보도된 적이 있었다.[49]
ISIS가 난동을 부리기 전 2014년 이전까지는 Kalamulla.com같은 웹사이트에서 오사마 빈 라덴 전기의 영어 번역본을 무료 PDF로 다운받을 수 있었다. 현재는 다행히도 사이트 폐쇄되었다.[50]
한국에서는 9.11 테러 이후 얼마 안 가 오사마 빈 라덴이 연일 이슈에 올랐을때 여기에 편승해 오사마 빈 라덴 봉제인형이 만들어져서 뽑기기계의 경품용 인형 등으로 배포된 적이 있었다. 한 손에는 AK-47처럼 보이는 총기를 든 모습이다. 2010년대 이후 같으면 인터넷 언론에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지탄받을 일이었다. 당시에도 그게 좀 도가 넘은 현상이긴 했는지 얼마 안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 말고도 내가 제일 존경하는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구전 동요가 유행해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테러리스트 찬양곡이 나돈다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기사, 기사 2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찬양만 한 건 아니고 웃긴 닉네임용으로 '옷삶아 빛나데' 또는 '옷삶아 빛나대', '옷삶아 빛나네' 같은 언어유희도 있었다.
7. 등장 매체
로드 오브 워에서는 언급만 된다. 주인공 유리가 그 악명높은 빈 라덴한테는 무기를 안팔았다는데, 도덕적인 이유가 아니라 수표를 부도냈으니까 안판다는 것.제로 다크 서티와 코드네임 제로니모는 넵튠 스피어 작전을 다룬다.
메달 오브 아너: 워파이터의 최종보스 "클레릭" 하산 라시드는 오사마 빈 라덴이 모티브이다.
오사마와 탈레반들이 좀비가 되어 세계를 위협하는 정신나간 B급 영화도 있다. OSOMBIE.
사우스 파크에서는 시즌 5 9편 Osama bin Laden Has Farty Pants에서 처음 등장했는데, 아프가니스탄의 깊숙한 산 자락에서 은신해 활동하는 모습으로 나오며 우연치 않게 아프가니스탄으로 온 주인공 4인방을 납치해 처형 직전까지 갈 뻔하다 카트맨의 계략으로 연신 굴욕을 겪다가 마지막에 파견된 미 군인에게 사살당했고, 시즌14에서는 뉴 저지 사람들이 사우스파크에 이사 오면서 마을 전체를 저지 스타일로 물들이는 와중에 랜디의 호출을 보고 알 카에다 조직원들에게 자살특공을 지시해 뉴 저지 사람들을 학살함으로써 때마침 위기에 몰릴 뻔한 사우스 파크를 구해냈으며, 승리한 사실에 감격한 마을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던 도중 미 특수부대원에 의해 또 사살당한다.
블랙코미디 슈터게임인 포스탈 시리즈중 포스탈 2, 실사영화판 포스탈, 포스탈 3에서 등장한다. 첫등장한 포스탈 2에서는 리더인 본인(?)부터 남성 부하들[51]까지 자기들과 똑같은 모습이다(...) 즉 모델링 돌려쓰기.
론리 아일랜드의 노래 중 하나인 Finest Girl이라는 노래의 주된 소재로 등장한다. 병맛으로 유명한 그룹답게 가사가 엄청난 병맛을 자랑하는데, 사귀게 된 여자친구가 자신을 미군이 빈 라덴을 죽인 것처럼 검열삭제 해달라고 부탁한다는 노래이다.
뉴 바이블에서는 주연인 오사마가 이 빈라덴의 얼굴을 썼다. 전과 역시 각종 테러인데 정작 살인은 한 건도 저지르지 않았다.[52]
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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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ʾUsāma bin Muḥammad bin ʾAwaḍ bin Lādin[2] 1994년에 국적을 박탈당했고, 그 이후로부터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수단 등에 숨어지냈고 2019년도에 빈 라덴의 아들도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에 의해 국적을 박탈당했다.[3] BMI가 19 정도로 마른 편이다. 키 때문에 체격이 건장하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특유의 펑퍼짐한 복장에 무성한 수염 때문에 마른 몸이 잘 드러나지 않아서 그런 듯. 마르팡 증후군일 가능성도 있다.[4] 하미다 알 아타스 소생 유일한 아들이다. 빈 라덴보다 키가 커서 키가 2미터가 넘었고 아들이 미군에 사살된 지 10년 넘었지만 현재 살아있다. 허나 공개된 사진을 보면 키가 그 정도로 커보이진 않는다.[5] 와파 두푸르의 아버지다. 와파 두푸르는 이복삼촌인 오사마 빈 라덴 때문에 외가인 두푸르 성을 썼다.[6] 현재 프랑스에서 화가로 살고 있다. 연좌제 의식이 극히 적은 서구권 국가여서 화가 활동이 가능한 것이며 빈 라덴의 아들이어서 받는 불이익은 딱히 없으며 오히려 빈 라덴의 아들이라는 화제성 때문에 그림이 잘 팔린다.[7] 아버지 빈 라덴이 사살당하자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으나 그 역시 아버지처럼 전사했다. 정작 오사마 빈 라덴은 자신이 알카에다를 한 것을 후회했으며 자식들에게 알카에다에 들어가지 말라는 유언장을 남겼다.[8] 이슬람 수니파의 핵심 분파로 와하브파 자체가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이 강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식 국교로 사우디 왕실 또한 독실한 수니파 와하브파 신자이지만 빈 라덴과 달리 친미 성향이다.[9] 여기에는 영어권에 오사마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도 꽤 많은 것도 한몫을 했다. 영어 위키백과 아무래도 친숙한 표기다보니 '우사마(Usama)'보다 많이 쓰였던 것. 마치 한국인 성씨도 이왕이면 영어권에 있는 성씨를 써서, '김'을 'Gim'보다는 'Kim'으로 '이'를 'Yi'보다는 'Lee'로 많이 쓰는 것과 유사하다.[10] 사진 상태로 보아 흑백에서 컬러로 복원한 사진으로 보인다. 또한 뒤에있는 차량은 1960년대 후반 연식의 캐딜락 드 빌로 추정된다.[11] 친미 가문이다. 후술하듯이 원래 이름은 빈 라덴 그룹이었으나 오사마 빈 라덴 때문에 가문에서는 오랫동안 지켜온 성씨 표기를 빈 라딘으로 바꿔버렸고(정확히는 9.11 테러 직후에 바꿨는데, 아랍 문자 특성상 모음을 표기하지 않으므로 아랍 문자 회사명은 바뀌지 않았다.) 이렇게 함으로써 오사마 빈 라덴을 증오함을 넘어 바로 호적을 파버리고 가문에서 쫓아냈다. 나중에 제다 타워 건설을 착공한다.[12] 자식들이 굉장히 많아 보이지만, 일부다처제가 인정되는 사우디아라비아 특성에다가 이 당시 사우디의 출산율이 7명대를 기록했었기 때문에 한 가문에 자식 수십 명 정도 있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었다. 물론 21세기 들어서는 이 정도로 자녀수가 많은 경우는 줄어들었다. 이 당시는 한국에서도 출산율이 6명대에 달했고, 각 가정마다 자식 5명은 기본으로 낳았기 때문에 한 가문에 자식 수십명이 있는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으며 이 때문에 학교가 터져나와서 국민학교에서 2부제, 3부제 수업을 진행하던 시절이었다. 이슬람권 국가들의 출산율 하락이 좀 늦은지라 지금 와서 보면 특이하게 느껴지는 것뿐이다.[13] 청소년기 때 그의 지도를 맡았던 한 서방인 교사는 그를 수줍음을 많이 탄 소년으로 기억했다.[14] 빈 라덴이 집안에선 외톨이였는데 그 이유는 나이도 가장 어린 어머니가 팔레스타인인이기 때문이었다. 10살이 되던 해 아버지의 무함마드의 헬기 사고로 인해 가족들과 멀어지고 이슬람 근본주의에 심취한 계기가 되었다.[15] 정확히는 لادن을 로마자로 전사할 경우 Ladin이나 Laden등으로 표기될 수 있기에, 이름 자체를 바꾼 것은 아니고 그 로마자 표기를 조금 바꾼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오사마를 호적에서 파낸 자 취급을 할 수 있게 됐다.[16] 여담으로 국방TV에서 방영했던 한 미국의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어릴 적 아버지가 오사마를 비롯한 본인의 자식 몇명을 데리고 가문이 하는 건설업과 관련한 교육을 했었으며 당시 이 때 건설폭약을 다루는 법은 물론 실제로 터뜨려 보는 기회도 줬다고 한다. 해당 내용에 대해서, 나레이션이 본의 아니게 아들에게 테러에 필요한 지식을 의도치 않게 익힐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고 평했다.[17] 본래 팔레스타인인으로 별명이 '이슬람 지하드의 아버지'였던 유명한 이슬람학자이다.[18] 1988년 작인 영화 《람보 3》는 영화 마지막에 "이 영화를 자유를 위해 싸우는 용감한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바칩니다"라는 자막을 내보내는데 그 13년 뒤에는 9.11 테러로 상황이 뒤바뀌게 됐다.[19] 주로 CIA와, 소련과 공산주의 세계에서 누가 우두머리인가를 겨루고 있던 중국에서 공급되었다.[20] 농담 안하고 미국을 비롯한 제1세계권 국가들이 재건에 지원한 비용을 부정부패로 날려먹지 않고 제대로 활용만 했다면 과거 모하마드 자히르 샤가 부임하던 시절급의 부유를 재건하고도 지원금이 남을만한 수준이었다.[21] 역사만화 같은 곳에서 보면 그 이유가 "이슬람 성지를 점령하고 석유 자원을 약탈하며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미국을 응징하기 위함" 으로 많이 나온다. 하지만 이는 그러한 이유로 비행기를 납치하여 건물을 폭파시켜 무고한 사람들을 많이 죽이는 학살을 저지른 것이 된다.[22] 오늘날 이슬람 학자들은 이를 몽골 제국의 바그다드 침공과 칼리프 시해로 해석한다.#[23] 참고 기사. 알카에다가 미국을 반대하는 근본 원인은 이스라엘[24] 1982년 6월 6일 이스라엘 공군이 민간인들에게 국제법상 사용이 금지된 집속탄을 투하하여 수많은 이들을 불구로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2만명의 사망자와 3만 명의 부상자가 속출했다고 한다.[53]이때 직접적인 명분은 3일전(1982년 6월 3일)에 발생한 주영 이스라엘 대사 저격 사건에 대한 보복 이였지만 실제로 이스라엘의 목적은 레바논에 주둔한 시리아군을 축출하고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축출, 발본색원하기 위한 목적과 레바논의 정치 구조를 바꾸고 평화 협정을 맺을 새 레바논 대통령을 취임시킬 계획이였다.[25] 건물 주위에 특수장벽이 있다고 한다.[26] 이란은 미군을 보면 무조건 쏴버리고 러시아는 미국이 방공망 안에 들어오는 걸 매우 싫어한다 격추하진 않더라도 당연히 협조도 안할테니 통과가 불가능하다[27] Feathered Cocaine[28] 지금 중앙아시아의 매는 밀렵으로 인해 거의 다 멸종직전에 직면해있다.[29]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왕족이 빈 라덴의 물주가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을 받았다. 그리고 사우디는 알 카에다는 아니었지만, ISIL에 대해서는 사태 초기에 일정부분 우회적 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중에 ISIL이 사우디도 멸망시키겠다며 덤벼들고 나서야(2015년) 사우디 왕가의 ISIL 지원책이 중단됐다.[30] 오바마 대통령이 CBS의 '60minutes'라는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두바이 왕자 운운한 것도 이런 이유가 있었다.[31] 원어 표기인 우사마 빈 라딘(ウサーマ・ビン・ラーディン)으로 표기.[32] 모에화나 그냥 성전환이 아닌 오사마의 얼굴에 여자 몸만 붙여 놓은 조롱성 그림이다.[33] 중국, 북한도 포함되었다고 한다.[34] 더군다나 결혼 상대는 바로 9.11 테러주범의 딸이었다.[35] 공식적인 사망 발표는 2019년 9월이다.[36] 원본에는 9/11 당시 세계 무역센터 건물들이 무너진 "맨해튼"을 지칭함[37]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지 설명할 테니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명심하라"는 의미[38] 예전에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은 사담 후세인을 지원했었다. 이란을 견제하기 위함이었긴 하지만...[39] 제이 가너는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누리 알 말리키를 세우기 전까지 이라크 군정을 이끌었던 미국의 군인이다.[40] 두 곳의 미국 대사관이 폭탄 테러로 파괴되었다.[41] 1992년에 예멘의 아덴에서 두 곳의 호텔에서 미국 정부 요원들과 미 해병대를 대상으로 한 폭탄 테러. 하지만 첫번째 폭탄이 터지기 전에 미 해병대원들은 이미 건물을 나갔고, 두번째 폭탄은 미 해병대원들이 있었으나 아무도 죽지 않았다. 결국 미국과 관계없는 사람들만 피해를 입었다.[42] 자세한 번역은 힘드나 문장의 내용상 부시 행정부와 아랍 독재국가는 거의 그 성격이 비슷하며 오히려 부시 행정부가 더하면 더했다는 듯한 내용으로 보인다. -역자 주-[43] 플로리다 주의 주지사이자 George H.W.Bush의 아들인 젭 부시를 지칭한다.[44] 알라여 그에게 자비를 베푸시기를[45] 석유를 지칭함.[46] 즉 약한 자에게는 강하고 강한 자에게는 약하다는 조롱조의 말이다.[47] 사우디아라비아 남성의 평균 키가 171cm이다.[48] 엄청난 장신이었던 탓에 프레데터 무인기가 쏜 헬파이어 미사일에 애꿏은 동네 장년을 오인하여 사살했던 사례도 있었다. 국방TV 미국 다큐에 따르면 해당 남성 역시 거의 2m에 육박한 키 덕에 지역 내에서도 유명했던 장신이었다.[49] 빈 라덴 조카, 그의 컴퓨터에 담겨 있었던 파일들. 그 외에 본인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 2편이 있었다고 한다.[50] 오사마 빈 라덴 위인전 때문에 폐쇄된 것은 아니고, ISIS의 직계 기원이 된 사이드 쿠틉의 불쏘시개 및 사이드 쿠틉 찬양 서적을 무료로 홍보, 배포했었다.[51] 여성 대원들은 얼굴에 히잡만 쓰고 대충 검은색 상의와 치마를 입은 성의없는 모습이다.[52] 장난삼아 다른 사람들을 놀래키거나 반달리즘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