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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 남부의 역사적 지명이다. 슈바벤은 게르만족의 일파인 수에비족에서 기원한 이름으로 원래 현재의 바덴뷔르템베르크주를 중심으로 알자스와 바덴, 스위스 일부와 현재 바이에른주의 서남부 일부 지역을 포함한 지역을 의미했다. 나중에 알자스와 바덴 등이 떨어져 나가면서 근대 이후 대체로 옛 뷔르템베르크 지역과 바이에른의 서남부 일부 지역으로 제한되었다.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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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바벤은 로마 제국의 언어인 라틴어로 '알레만니아(Alemannia)'라 부르던 지역으로, 3세기 이후 마인강 유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이후 4~5세기에는 독립된 왕국을 이루다가 6세기에 메로빙거 조 프랑크 왕국에 귀속되면서 슈바벤 공국이 되었다. 그러나 프랑크 왕국에 병합된 후에도 반독립적인 성격을 유지했다. 프랑크 왕국의 힘이 약해질 때마다 독립을 위한 반란도 자주 일어났다.
프랑크 왕국이 분열되고 독일 왕국 시대로 넘어가면서 슈바벤 공국은 중세 독일 왕국의 5대 부족 공국 중 하나로 독일왕과 신성 로마 제국 황제선거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독일의 중심부에 가까웠던 슈바벤은 변경 지역에 있는 작센 공국이나 바이에른 공국처럼 비교적 단일한 영지를 유지하지 못하고, 이웃한 프랑켄 공국과 비슷하게 여러 가문에 의해 서서히 분할되었다.
슈바벤 공작위는 여러 가문을 거쳐 1079년부터 호엔슈타우펜 가문이 차지했다. 호엔슈타우펜 가문이 신성 로마 제국 황제를 세습하면서 슈바벤 공국은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그러나 호엔슈타우펜 왕조 황제들은 이탈리아 반도와 시칠리아 왕국에 몰두한 나머지 슈바벤에 소홀했다. 특히 호엔슈타우펜 왕조의 마지막 황제[2]인 프리드리히 2세는 아예 거의 평생을 시칠리아에서 머물렀다. 이 때문에 독일에서는 황제에 반발하여 각종 반란이 일어났고 이에 슈바벤 영토는 여러 제후들의 침입을 받아 분할되어갔다.
결국 프리드리히 2세의 아들 콘라트 4세 사후 호엔슈타우펜 가문은 더이상 황제로 선출되지 못하며 몰락하였고 제국은 대공위 시대로 접어들었다. 1268년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마지막 상속자인 소년왕 콘라딘이 나폴리에서 사형당하며 후사 없이 16세의 젊은 나이로 죽으면서 호엔슈타우펜 가문은 단절되었다. 콘라딘은 1266년에 카를루 1세로부터 시칠리아 왕국을 되찾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는데, 이 전쟁을 위해 슈바벤 공국을 담보로 군자금을 마련했다. 결국 콘라딘이 죽으면서 저당잡힌 슈바벤 공국은 분할되면서 해체되었다.
콘라딘이 죽고 호엔슈타우펜 가문이 단절된 후 슈바벤 지역은 뷔르템베르크 가문, 비텔스바흐 가문, 합스부르크 가문 등 여러 제후들에 의해 분할되었다. 그 중에서 신성 로마 제국에서 급부상한 합스부르크 가문이 슈바벤 공작 지위를 물려받았으나 이미 슈바벤 영지는 여러 제후들이 나눠차지하고 있었고 합스부르크 가문이 슈바벤에서 차지하고 있는 영토는 제한적이었다. 출발이 한미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은 유서깊은 슈바벤 공작 지위를 이용해 권위를 얻고자 했지으나 결국 포기하고 1313년 결국 슈바벤 공작을 폐지했다.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은 남서 독일으로의 확장을 포기하고 대신 본토인 오스트리아 공국을 발판 삼아 동유럽으로 가문을 확장하였다.
13세기 이후 슈바벤은 여러 영주들에 의해 분할되어 있었으나 독일 왕국의 5대 부족 공국 시절부터 이어오던 제국의 행정 구역으로서 명칭이 유지되었다. 1500년 아우크스부르크 제국 의회에서 제국 개혁의 일환으로 행정구역이 6개의 제국 관구로 개편될 때 슈바벤 관구가 되었다.
슈바벤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제후들 가운데 뷔르템베르크 백국[3]은 슈바벤 지역의 핵심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고 점차 슈바벤에서 그 세력이 커지되었다. 1495년 마침내 뷔르템베르크 공국으로 승격되었다.
16세기 종교 개혁 및 종교전쟁기에 슈바벤 지역은 독일에서 가장 혼란스웠던 지역 중 하나로 1524년~1525년 중부 독일을 휩쓸었던 독일 농민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슈바벤에서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던 뷔르템베르크 공작 울리히 1세와 크리스토프 1세는 루터교회로 개종하였지만 슈바벤에는 여전히 합스부르크 가문의 월경지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슈바벤이 종교전쟁의 각축장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종교전쟁 때 뷔르템베르크 공국은 이웃의 가톨릭 제후국인 바이에른 공국 및 오스트리아 대공국과 박터지게 싸우고 한때 독일왕 페르디난트 1세에 의해 뷔르템베르크 공작 울리히가 추방되고 영지가 몰수되기도 했다. 그러나 개신교 세력의 지도자였던 헤센 방백 필리프의 도움으로 영지를 탈환했다.
나폴레옹 전쟁기에 접어들자 혁명 프랑스와 가까웠던 뷔르템베르크 공국은 프랑스의 침공을 받았고 곧 프랑스에 굴복한 후 프랑스의 괴뢰국인 라인 연방의 일원이 되어 프랑스에 협력하여 오스트리아와 싸웠다. 이때 뷔르템베르크는 구(舊) 슈바벤 지역에 있는 타 가문의 영토, 특히 합스부르크 가문의 월경지들을 대거 차지하고 대신 동쪽의 일부 영토를 바이에른에게 내주었다. 프랑스에 협력하여 오스트리아와 싸운 공을 인정한 나폴레옹은 자신에게 협력해준 뷔르템베르크 공국을 1803년 선제후국으로 승격시켰고 이어 1806년 바이에른과 함께 왕국으로 격상시켰다. 나폴레옹이 뷔르템베르크와 바이에른을 왕국으로 승격시킨 것은 합스부르크 가문이 제위를 차지하고 있는 신성 로마 제국을 흔들려는 시도의 일환이었고, 나폴레옹의 의도가 적중하여 1806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란츠 2세가 스스로 황제에서 퇴위하면서 신성 로마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나폴레옹의 몰락 후 빈 회의에서 오스트리아는 뷔르템베르크가 차지한 슈바벤의 월경지를 포기하는 대신 이탈리아 영토로 보상받는데 합의했고, 이에 따라 뷔르템베르크 왕국은 바이에른에게 넘어간 지역을 제외하고 구(舊) 슈바벤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후 슈바벤이라는 지명은 역사적 지명화되었고, 뷔르템베르크라는 지명으로 대체되었다. 다만 바이에른으로 넘어간 일부 슈바벤 땅은 지금도 바이에른의 슈바벤 현지역으로 불리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서독의 뷔르템베르크주가 되었다가 이웃 바덴주와 통합하여 현재 바덴-뷔르템베르크주가 되었다.
[1] 영어로는 스와비아(Swabia)로 표기하는데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 첫번째 캠페인에서 나오는 적인 스와비아가 슈바벤을 가리킨다. 다만 바이에른의 영어명인 바바리아에 비해 슈바벤의 영어명인 스와비아는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2] 아들인 콘라트 4세가 독일왕으로 선출되기는 했지만 부황의 독일 방치로 인해 통치권을 사실상 상실했다.[3] 1083년 슈투트가르트를 중심으로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