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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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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원전 고대 문명

문명 이전에도 수학은 있었다. 처음에는 숫자대신 물고기와 양 그림을 써서 魚, 魚, 魚, 魚, 羊, 羊 이런 식으로 물고기 4마리, 양 2마리를 표현했다. 거기서 발전하여 魚||||, 羊|| 이런 식으로 4, 2이라는 추상적 수 개념을 뽑아내어 쓰게 되었다.

문자가 없던 시절이라 정확한 기록물은 없지만, 짐승그림이나, 별자리 그림 등이 남아있는 동굴 벽화나 유물 등을 통해 문명 이전 사람들 역시 기초적인 수학을 사용했으리라 추측한다.

콩고민주공화국비룽가 국립공원에서 발견된 2만 5천 년 전 이상고 뼈에는 19, 17, 13, 11개 눈금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소수, 태음력, 월경 주기 등을 표시한 것이라는 가설이 있다.

1.1. 메소포타미아 문명

  • 기원전 4700년경에 바빌로니아력(曆)이 시작되었다.
바빌로니아의 역법은 태음력으로 1년은 12달, 354일로 나누었고, 1달은 29일, 30일로 정했다. 이런 식으로 태양의 일주를 무시하고, 순수하게 달이 지고 뜨는 것을 기준으로 삼다보니, 자연히 주기가 불규칙 할 수밖에 없었고, 이후 수차례 개정을 거치게 된다.
바빌로니아인들은 하루를 하나의 태양이 떠있는 시간으로 여기고, 황도 12궁을 기준으로 하루를 밤의 12시간과 낮의 12시간, 총 24시간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한 시간을 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60진법으로 나누어 60분으로 나누고, 다시 1분을 60초로 환산하였다.
그리고 각 시간마다 태양, , 화성, 수성, 목성, 금성의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하루가 시작하는 첫 시간을 관장하는 신의 이름을 따서 각 요일의 이름을 붙이고, 현재의 일요일에서 금요일로 이어지는 체계를 만들었다.
  • 기원전 3000년경에 숫자를 기록한 수메르 점토판이 출토되었다. 그 이전에도 동물의 뼈 등에 가축의 숫자 등을 표시한 작대기 등을 새긴 유물들이 출토되긴 하였다.
  • 기원전 1900년경 함무라비 시대 직전에 바빌로니아식 기수법이 고안되었다.
바빌로니아의 기수법은 60진법으로 1에 해당하는 못 문자와, 10에 해당하는 서까래 문자들을 조합하여 1~59까지의 숫자를 표기하였으며, 60이 넘어가는 숫자는 해당 숫자를 60으로 나눈 개수만큼의 못 문자를 나열하고, 가장 오른쪽에 나머지 숫자를 표기하는 식으로 적었다.[1] 이러한 위치적 기수법을 사용하다 보니, 큰 수의 경우에는 띄어쓰기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어디서부터 끊어서 읽어야 할지가 애매해진다는 불편함이 있었다.
결국 위와 같은 숫자 표기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자릿수 개념의 공백 기호를 고안해냈는데, 자릿수를 구분하기 위해 101, 4002 등과 같은 용례로 사용했을 뿐이었다. 때문에 현재의 0과 같은 없음, 0개와 같은 의미는 아직 부여되지 않았고, 100-80-20=? 같은 문제의 답의 경우 공백 기호 대신 문장으로 답을 적었다.
  • 기원전 1700년경 함무라비 시대, 역법의 개혁이 있었고, 당시의 산수를 기록한 점토판이 출토되었다.
바빌로니아인들은 달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태음력을 고수하였으며, 태음력 주기의 불규칙성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기 위해 이후 메톤 주기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역법을 수정해 나간다.
함무라비 법전에 보면 이미 대부업의 이자율 상한선이 명문화 되어 있었으며, 당시의 수학 시험지나 영수증, 거래 장부 등의 점토판들도 출토되었다.
  • 기원전 1500년경 60의 제곱표, 도형의 넓이와 부피를 구하는 문제의 점토판 등이 출토되었다.

1.2. 이집트 문명

매년 나일강의 범람으로 토지를 다시 측정해야 하는 일이 생기자 기하학적분이 발달하였다. 그 외에도 수많은 실용적 목적을 위해 수학이 발명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수학은 매우 초보적이고 직관적이었고, 엄밀한 논리를 따지기보다는 실용적으로 사용하는 면에서 많은 발전을 보였다.[2]

당대에는 그리스를 능가하는 수학 선진국이었으며, 탈레스, 피타고라스를 비롯한 많은 수학자들이 수학을 배우기 위해 이집트 유학을 떠났다.
  • 기원전 4244년경에 이집트에서 태양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태음력을 사용하였으나, 1년을 30일로 이루어진 12달과 추가 5일을 넣어 1년을 365일로 정했다. 이로 인해 고대 이집트의 기록은 현재의 달력에 대응하여 정확히 언제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이집트의 태양력은 후일 율리우스력, 그레고리력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집트인들은 계산을 통해 1년이 약 365.25일이고, 4년마다 돌아오는 윤년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나, 달력에 하루를 추가하는 대신 축제일 등의 날짜를 조정하는 것으로 대응하였다. 특이하게도 태양 대신 항성 시리우스의 운동을 1년의 기준으로 삼았기에 절기의 기준으로 삼는 달 등이 현재의 태양력과는 차이를 보였다.
  • 기원전 3000년경에 이집트식 기수법이 고안되었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에 해당하는 상형문자[3][4]를 사용한 10진법을 사용했으며, 실질적으로 10만 이상의 숫자는 쓸 일이 거의 없었기에 백만에 해당하는 문자에 무지 많다라는 의미를 담아 포괄적으로 사용했다. 이와 더불어 신관문자를 활용한 숫자표기법도 고위 지배층에서 병용되었다.
아래의 아메스 파피루스와 더불어 고대 이집트의 수학 수준을 알 수 있는 유이한 직접적인 유물로 골레니셰프에 의해 세상에 드러나 골레니셰프 파피루스라고도 불린다. 이집트에는 이보다 더 많은 파피루스 들이 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불탈 때 전부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모스크바 예술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 파피루스에는 약 25개의 수학문제가 수록되어 있다. 이중에는 각뿔[5] 의 부피공식도 있는데, 현재 이를 유도하기 위해선 미분이 필요하다.
  • 기원전 1700년경에 수학서 아메스 파피루스가 작성되었다.
이집트의 수학자 아메스가 이전의 수학서들을 참조하여 저술했으며, 이후 영국의 이집트 학자 헨리 린드의 이름을 따서 린드 파피루스 라고도 부른다. 주로 실용적인 문제들을 주로 다루는데 분수, 기하급수, 산술급수, 등비급수, 나일강의 범람에 따른 토지 및 도형의 면적 문제, 지름이 9이고 높이가 10인 원기둥 사일로의 부피를 구하는 문제, 원주율에 관한 문제, 직각삼각형의 빗변을 활용하여 경사각을 구하는 문제 등이 수록되어 있다.
총 87문제 중 81문제가 분수를 다루고 있으며, 전부 1/2, 1/3, 1/4...와 같이 분자가 1인 단위분수들만을 사용하여, 단위분수들의 합으로 분수를 표기하였다. 그러면서도 2/3만은 예외로 따로 상형문자를 두고 표기했다. 아메스 파피루스에는 수학책 부록에 실린 삼각함수표와 마찬가지로 2/5에서 2/101까지 '2/홀수분모인 분수의 단위분수 합'을 구한 표가 수록되어 있다.
또한 지름이 9인 원은 한 변이 8인 정사각형과 면적이 동일하다고 적었는데, 계산해보면 3.16049의 근사치를 보인다. 다만 곱셈과 나눗셈, 방정식을 보면 현재로써는 약간 답답한 방법으로 푸는 게 느껴진다.
곱셈과 나눗셈의 경우 직접 계산하는 대신 2진법을 활용하여 2의 거듭제곱의 합들을 더해가는 방식으로 계산하였다. 방정식의 경우에도 가정법이라고 하여 방정식의 해에 수를 대입하여 맞는지 보는 매우 야매스러운 방식으로 방정식을 풀었다.
이집트인들은 도량형으로 손끝에서 팔꿈치사이 길이인 로얄 큐빗'을 사용했다. 이는 현재의 약 52.5cm에 해당하는 길이다. 먼 거리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로얄 큐빗 간격으로 매듭을 지은 밧줄을 줄자로 활용했다.

1.3. 고대 인도

  • 인더스 문명에서는 1, 2, 4, 6, 8, 16, 32, 64 단위의 저울추를 활용했다.
    발굴된 유물이 적어 제한적인 추론만이 가능하지만, 2진법체계를 사용하였으며 제곱의 개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10진법을 활용한 눈금자 유물도 발굴되었다.
  • 베다 문명에서는 무한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기원전 1000년경 만트라에서는 조(수)를 10의 거듭제곱으로 표현한 것이 나온다. 시공의 무한성을 강조한 베다 종교에서 무한의 개념이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 기원전 8세기 술바 수트라스가 쓰여졌다.
    베다 종교의 제단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활용된 여러 수학적 지식들이 기록되어 있는 여러 문서들이다. 여기에는 일차방정식, 이차방정식의 해법은 물론 2의 제곱근의 소숫점 넷째자리까지의 값 등이 기록되어 있다.
  • 석가모니는 10의 53승까지 셌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큰 수의 개념이다. 이외에도 10의 421승에 해당하는 숫자를 표현하거나, 매우 작은 크기를 나타내기 위해 단위를 쪼개고 또 쪼개 원자하나의 크기를 표현하는 기록들이 남아 있다.
    이외에도 불교에서는 '셀 수 있다', '셀 수 없다', '무한하다', '불확정수'같은 개념을 제시하였다.

1.4. 고대 그리스

  • 기원전 594년 솔론이 아테네에서 사용하는 역법에 윤달을 두었다.
  • 기원전 625년 탈레스 출생
    수학 이외에도 철학의 아버지로도 불리지만, 최초로 수학에 논증을 도입한 인물이기도 하다. 잘 알려진 일화로는 교과서에도 실린 피라미드와 막대의 그림자 비를 이용해 피라미드의 높이 구하기, 일식의 규칙성을 밝혀내고 기원전 585년 5월 28일의 일식 예측 외에도 중학교 수학과정에서 배우는 탈레스의 정리 등을 남겼다.
    1. 지름은 의 면적을 이등분 한다.
    2. 이등변 삼각형의 두 밑각은 같다
    3. 맞꼭지각은 같다.
    4. 한 변과 양 끝각이 같은 두 삼각형은 서로 합동이다.[6]
    5. 지름을 한 변으로 삼고 반원 안에 그려지는 삼각형은 직각삼각형이다.
  • 기원전 570년 피타고라스 출생.
    가장 널리 알려진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그의 증명 이외에도 다양한 증명법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이름이 붙었다고는 하지만, 그 이전에도 이집트나 바빌론 등에서 다른 명칭으로 쓰이던 기록이 있다. 오히려 이보다도 유리수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히파소스의 일화[7]로 인해 무리수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 기원전 470년경 수학자 히포크라테스 출생[8]
    키오스 섬에서 태어난 그는 상인이 되고자 하였으나, 해적에게 전 재산을 털린 뒤, 수학자가 되었다. 그가 지은 기하학 원론은 약 100년 뒤 나온 유클리드의 원론에 영향을 주었으며, 히포크라테스의 초승달[9] 문제와 두 원의 넓이 비 = 지름의 제곱 비를 증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 기원전 450년 브리슨이 착출법을 고안, 그리고 기원전 430년 안티폰이 이를 이용해 원의 넓이를 계산.
    정다각형과 그 외접원의 면적 차는, 정다각형의 변의 수를 늘려가는 과정에서 한없이 소멸된다는 관점에서 원의 넓이를 구하고자 하였다.
  • 기원전 428년 아르키타스 출생
    피타고라스 학파이던 그는 옥타브 문제를 수학에 대입시켜 √2가 무리수임을 증명하였고, 한 옥타브를 셋으로 나누는, 즉 2의 세제곱근을 구하는 문제를 통해 3대 작도 불능 문제 중 하나인 델로스 문제[10]를 해결하였다. 이 과정에서 자와 컴퍼스에서 벗어나 반원기둥을 절단하는 아르키타스의 원기둥이라는 불리는 방법을 사용하여 플라톤의 비난을 받았나는 기록도 있다.
  • 기원전 427년 플라톤 출생
    그는 정다면체가 4, 6, 8, 12, 20 다섯 종류밖에 없고, 여기에 4원소설을 대응시켜 불은 정사면체, 흙은 정육면체, 공기는 정팔면체, 물은 정이십면체의 형상을 띠고 있으며, 우주는 황도 12궁을 따와 정십이면체로 이루어졌다는 저술을 남겼다. 거기서 따와 정다면체들은 플라톤의 다면체라고도 부르는데, 정작 그것을 발견하고 정다면체가 다섯 개밖에 없다고 증명한 것은 피타고라스 학파였다.
  • 기원전 408년 에우독소스 출생
    그의 이론을 아리스토텔레스가 체계화 시켜 천동설을 제창하였으며, 그의 실진법[11]아르키메데스가 발전시켜 적분의 시초인 구적법을 창안해냈다.
    그 이외에도 델로스 문제 증명을 통해 일반 비례론을 세웠고, 그가 증명한 여러 평면, 입체 기하학문제 들은 후일 유클리드에 의해 원론 5권에 정리되었다.
  • 기원전 375년 메나이크모스 출생.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스승으로 기하학을 좀더 배울 수 있는 법을 묻는 알렉산더에게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다라고 답했나는 일화가 정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 또는 유클리드가 했다고도 한다.[12] 또한 원뿔곡선을 발견하고 저서 원뿔곡선론을 통해 관련 개념들을 정의하였다. 이를 통해 평면에 한정되었던 기하학을 3차원인 해석기하학으로 확장시킨다.
  • 기원전 310년 아리스타르코스 출생.
    지구가 아닌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있고, 지구가 1년 주기로 그 둘레를 공전하며, 하루를 주기로 자전한다고 주장한 천문학의 선구자이다. 동시에 오차가 있긴 하지만, 태양, 지구의 부피와 지름 대한 최초의 가정을 내놓았으며, 삼각비와 월식 관측등을 통해 태양과 달, 지구사이의 거리를 계산하였다. 다만, 거리문제의 경우는 당시에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었고, 위도에 따른 지구와 달 사이 각도의 오차를 알지 못했던 점으로 인해 그가 잘못 구한 87도 대신 89.85도를 그의 계산식에 대입해보면, 거의 정확한 값이 나온다.
  • 기원전 287년 아르키메데스 출생.
    내접하는 정n각형 둘레 < 원의 둘레 < 외접하는 정n각형 둘레이고 다각형의 변 개수가 많을수록, 원 안팎의 정n각형 둘레간의 차이가 적어진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정96각형을 그려서 원주율의 근사값을 구했다. 그의 계산값 3.1408 < 원주율 < 3.1428 은 소수점 두자리까지 정확하므로, 3.14를 아르키메데스의 수라고도 부른다.
    포물선과 직선으로 둘러싸인 도형의 넓이는 그에 내접하는 삼각형 넓이의 4/3이 되고, 구의 겉넓이와 부피는, 외접하는 원기둥의 겉넓이와 부피의 2/3이 됨을 증명하였고, 그는 이 증명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겨 자신의 묘비에 세겨줄 것을 부탁할 정도였다.[13] 그가 이 과정에서 사용한 구분구적법은 훗날 적분의 기초가 되었다.
  • 기원전 190년 히파르코스 출생.
    세차운동을 밝혀낸 천문학자. 항성표를 작성하는 계산에 삼각함수를 사용하여, 관련 계산법과 오늘날 수학책 부록으로 나오는 삼각함수표를 완성하였다.
  • 기원전 120년 헤론 출생.
    삼각형의 넓이를 구하는 헤론의 공식, 이차방정식의 풀이법, 음수의 제곱근 등을 남겼다.

2. 1세기 ~ 14세기

  • AD 246년 그리스, 디오판토스 출생.
    최초로 문자식을 사용하여 대수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산수론에 관한 저술과 디오판토스 방정식을 남기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중학교과과정에 나오는 디오판토스의 묘비가 더 유명하다[16]
  • AD 290년 그리스, 파푸스 출생.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나 그리스 학통을 이은 최후의 수학자로 불린다. 고교 교과과정의 파푸스의 중선 정리가 바로 이 사람의 이름을 딴 것이다.[17] 그는 기하학을 연구하기도 하였고, 유클리드, 프톨레마이오스 등의 저서에 주석을 남기기도 하였지만, 가장 큰 업적은 저서 수학 집성을 통해 선배 수학자들의 업적을 한 데 정리한 것이다. 많은 량의 저서가 소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부분적으로나마 고대 그리스 수학자들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공이 크다.
  • AD 429년 송나라 조충지 출생.
    지구의 공전주기를 측정하여 대명력을 만들었는데, 오차가 60만분의 1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매우 정밀한 역법이다. 또한 최초로 원주율 소수점 일곱 자리까지 구했는데, 아르키메데스와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아르키메데스가 정96각형으로도 두 자리까지밖에 못 구한 것을 이 사람은 쌩노가다로 일곱 자리까지 구해냈다.
  • AD 476년 인도 아리아바타 출생.
    문자로 수를 표현하는 상수의 개념을 최초로 제시하였으며, 그의 저서 아리아바티야를 통해 도형의 넓이, 부피, 원주율, 삼각함수, 부정방정식, 등차수열 외에도 지구의 자전에 의한 별들의 운동, 월식, 일식, 행성 운동 등을 서술하였다. 그의 저서에는 시대를 앞선 개념과, 부정확한 내용이 뒤섞인 관계로 학자들은 자갈과 보석을 한데 모아놓은 것이라고 평한다.
  • AD 598년 인도 브라마굽타 출생.
    천문학자이기도 한 그는 저서 '우주의 창조'를 통해 분수의 계산법, 이차방성식 풀이, 둘 이상의 해를 지닌 미지수, 제곱과 제곱근, 세제곱과 세제곱근, 자릿값 계산법[18], 0 등을 설명하였고, 그의 저서는 널리 번역되어 유럽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음수에 대한 개념을 풀어서 다음의 연산 법칙을 정한 것이다.
    [math( x-0=x, -x-0=-x, 0-(-x)=0+x=x, 0-x=-x, (-x)*(-y)=+xy, (+x)*(-y)=(-xy), (-x)*(+y)=(-xy) )]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당연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전까지 음수는 없는 수 취급당했다. 그는 의 개념을 들어 음수를 설명했다.
  • AD 780?년경 바그다드 알콰리즈미 출생.
    그의 저서 완성과 균형에 의한 계산 개론은 유럽으로 건너가 대수학의 개념과 인도-아라비아숫자[19]를 등장시켰다.
    shay라는 단어를 써서 미지수 x를 표현했으며, 최초로 x자체가 하나의 개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했으며, 방정식을 [math( ax^{2} =bx )], [math( ax^{2} =c )], [math( bx=c )], [math( ax^{2}+bx=c )], [math( ax^{2}+c=bx )], [math( bx+c=ax^{2} )]의 여섯 유형으로 나누어 해결법을 제시하였다. 그의 이름은 알고리즘, 대수학(algebra)의 어원이 되었다.
  • AD 973년 페르시아 알 비루니 출생[20]
    에라토스테네스의 방법을 참고하여 아스트롤라베로 지평부각[21]의 측정값을 바탕으로 삼각형의 공리[22]와 삼각법을 활용하여 지구의 반지름을 구한 뒤, 거기에 원주의 공식(2πr]을 적용하여 지구 둘레의 길이를 구했다. 약 1000년 전 에라토스테네스의 방법의 오차는 6250km 약 15%정도였지만, 그는 오차를 1% 이내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 AD 1114년 인도 바스카라 출생.
    10진법의 체계화, 같은 크기의 직각삼각형 4개와 정가운데 정사각형을 통한 피타고라스의 정리 증명, 양수의 제곱근은 둘, 음수의 제곱근은 없다는 점을 통해 2차방정식의 해법을 제시하였다.
  • AD 1170년 이탈리아 레오나르도 피보나치 출생.
    피보나치 수열로도 유명하지만, 아라비아 숫자 등 중동의 수학을 유럽에 소개하여 유럽 수학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또한 제곱수는 홀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정리를 남겼다. [math( n^{2}+(2n+1)=(n+1)^{2} )]
  • AD 13세기 중국 원나라 주세걸 출생. 생몰년도 기록 없음.
    1299년 최초로 간행된 산학계몽은 그의 주요 저서로, 현재의 대수학 입문서에 해당한다. 사칙연산, 농지면적 구하기, 도량형 계산 문제 등 실생활과 관련된 문제들도 있었지만, 주 내용은 미지수가 하나인 일원 방정식의 풀이에 대한 것으로, 미지수를 천원(天元)으로 삼아 천원술이라고 불렸다. 그 외에도 미지수가 4개인 4원방정식에 관련된 저서 사원보감도 남겼는데, 여기서는 각 미지수에 천지인물(物)을 대입하는 등 수학을 동양철학적 관점에서 만물과 연관시키는 관점을 보여주었다.
    그의 저서는 명나라시절을 거치며 소실되기도 하였으나, 훗날 다시 복간되어 조선을 거쳐[23] 일본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로 인해 훗날 서양식 수학기호나 미지수가 들어오기 전까지 한중일 동북아 3국은 나무막대 등을 이용하여, 입천원일(立天元一)을 기본으로 구하고자 하는 것을 천원으로 삼고, 천원을 정립하는 과정을 통해 수학 문제를 해결하는 천원술을 사용하였고, 일본에서는 화산(和算)이라는 이름으로 사용하였다.

3. 15세기 ~ 18세기

  • AD 1540년 네덜란드의 뤼돌프 판 쾰런 출생.[24] 그는 아르키메데스의 방법을 사용하여 2의 62승 다각형을 통해 소수점 아래 35자리 3.14159265358979323846264338327950288까지의 파이값을 구해냈다. 그의 유언에 따라 비석에는 원주율이 세겨졌다.
  • AD 1601년 프랑스에서 피에르 드 페르마 출생. 블레즈 파스칼과 함께 확률론의 기초를 만들었다. 르네 데카르트와는 별도로 독창적으로 해석기하학을 생각해냈다. 그 수준은 데카르트가 만든 것보다 더 뛰어났다고 한다. '아리스메티카' 책의 여백에 이것저것 끄적였는데, 사후 그의 조카가 그가 책의 여백에 달아놓은 주석을 정리하여 출판했다. 수학 사상 최초로 미분을 했다.
  • AD 1690년 독일에서 크리스티안 골드바흐 출생. 그는 아마추어 수준의 수학자였으나, 1742년 오일러에게 5보다 큰 정수는 세 소수의 합 란 추측이 담긴 편지를 보냈고, 여기에 오일러의 첨삭이 더해져 2보다 큰 짝수는 두 소수의 합이라는 골드바흐 추측 문제가 발생했다.[25] 이로 인해 그의 명성이 높아지자 일부 수학자들은 증명 없는 추측은 바보라도 할 수 있다며 그를 까댔는데, 아직까지 그의 추측은 부분적으로만 해결됐을 뿐[26] 아직 증명되지 못했다.
  • AD 1777년 독일에서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출생.
    정17각형 작도법, 수업시간에 1에서 100까지 순식간에 더한 일화[27] 등이 많이 알려져있다. 대수학의 기본정리, 산술의 기본정리의 증명, 합동식의 발명, 저서 정수론, 소행성 세레스[28]의 추적과정에서 최소제곱법 발명, 생전에 미발표 되었던 비유클리드 기하학 입증, 미분기하학의 기초인 가우스의 빼어난 정리 등의 업적을 남겨 수학의 왕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외에도 많은 발견을 미발표인 채로 남겨두었으나, 사후 그의 일기를 통해 146가지 발견에 대한 증명, 계산 과정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4. 19세기 ~ 20세기

정수론, 미분 기하학, 천문학, 비유클리드 기하학, 광학, 역학 등등 과학과 수학 모두 영향을 끼친 수학의 천재 중 한 명이다.

[1] 100의 경우는 못 하나 + 4 서까래 문자, 111의 경우는 못 하나 + 5서까래/1못 문자로 표기[2] 그래서 일부 학자는 바빌로니아와 비교해서 깐다.[3] 각각 작대기, 뒤꿈치, 밧줄, 연꽃, 손가락, 개구리, 신을 경배하는 남자[4] http://blog.naver.com/heycats/140015272479[5] 각뿔을 밑면에 평행하게 잘라낸 입체도형 중 밑부분[6] ASA 합동[7] 겁도 없이 스승에게 각 변이 1인 정사각형의 대각선의 길이는 유리수만으로 표현할 수 없다고 대들었다가 스승에 의해 물에 빠져 죽었다.[8] 코스섬에서 태어난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 보다 앞선 시대를 살다 간 동명 이인[9] 직각 이등변 삼각형의 두 변을 반지름으로 삼는 사분원과 빗변을 지름으로 삼는 반원을 겹쳐 그리고, 공통부분을 제외한 초승달 모양의 곡선 도형과 직각 이등변 삼각형의 면적이 같음을 증명하였다.[10] 주어진 정육면체보다 부피가 두 배 큰 정육면체의 작도[11] 전체 면적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부분을 빼고, 남은 전체 면적에서 다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부분을 빼는 과정을 되풀이 할 경우 어떤 정해진 면적보다도 작은 면적을 남게 할 수 있다.[12] 시골에는 여러 길이 있겠지만, 기하학에는 오직 한 길밖에 없다.[13] 실제로 오랫동안 잊혀졌던 그의 무덤은, 1965년 호텔 기초공사 작업 중, 원기둥에 내접한 구의 심볼이 그려진 묘비가 발견되면서 세상에 드러났다.[14] 고등교과과정에서 배우는 파푸스의 중선정리의 본래 명칭. 해외에서는 다 아폴로니우스 중선정리로 부른다.[15] 원 안에 크기가 동일한 원 세 개를 내접하게끔 삼각꼴로 배치하면, 곡선 삼각형이 4개 생긴다. 그리고 각 곡선 삼각형에 내접하게끔 원을 그리면 새로운 곡선삼각형이 3개 생기고, 이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면 일종의 프랙탈 도형을 그릴 수 있다.[16] 생애의 1/6은 소년이였고, 그 후 1/12의 지나 수염이 났으며, 또 다시 1/7이 지나 결혼을 하였다. 5년 뒤에 아들이 태어났으나, 아들은 아버지의 반 밖에 살지 못했고, 그는 아들이 죽은 후 4년 뒤에 세상을 떠났다. 생몰연도를 통해 84살이라는 것이 주어진 상황에서 소년기, 청년기, 결혼을 한 나이 등을 1차 방정식을 통해 구하는 문제[17] 해당 개념을 일본에 처음 소개한 사람이 파푸스의 저서를 보고, 파푸스 중선정리라는 이름을 붙였고, 한국에서도 이를 그대로 번역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나라에서는 전부 아폴로니우스의 정리라 부르고, 위키에도 파푸스 정리는 전혀 다른 내용이 등록 되어 있고, 해당 항목은 아폴로니우스 정리로 등록되어 있다.[18] 오늘날 수학교과서에서 배우는 곱셈의 세로 계산법[19] 인도 숫자가 아라비아를 거쳐 유럽으로 가서 오늘날의 아라비아 숫자가 되었다.[20] al-Bīrūnī, Abū Rayhān 출생지역은 지금의 우즈베키스탄[21] 실제로 보이는 수평선과 천문학적 수평선 사이의 아주 작은 각[22] 내각이 같은 삼각형끼리는 대응하는 각 변의 길이 비가 같다.[23] 세종 등 조선의 임금들이 주세걸의 책으로 수학 공부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24] 태어난 곳은 현재 독일 힐데스하임[25] 후자가 참이라면 홀수에 3, 짝수에 2를 더하면 자연스레 전자도 참이 되므로, 전자는 골드바흐의 약한 추측, 후자는 골드바흐의 추측이라 불린다[26] 약한 골드바흐의 추측은 부분적으로 그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며 2013년 증명되었지만, 아직 골드바흐의 추측은 미제로 남아 있다.[27] 1+100=101, 2+99=101... 을 이용해서 101*50=5050[28] 지금은 왜행성으로 분류되지만, 발견 당시에는 행성을 거쳐 소행성으로 분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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