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도공사의 기관차 {{{-2 {{{#005bac (열차번호 · [[한국철도공사/차량번호|{{{#005bac 차량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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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191919> 조선총독부 철도국 모가1형 증기기관차 Sentetsu Mogai Class Steam Locomotive | }}} | |
차량 정보 | |||
구분 | 탱크식 증기기관차 | ||
도입량 | 4량 | ||
차륜배치 | 2-6-0 | ||
도입시기 | 1899년 | ||
제작사 | Brooks Locomotive Works | ||
인천공작창 | |||
차량 제원 | |||
전장 | 9,132㎜ | ||
전폭 | 2,642㎜ | ||
전고 | 3,405㎜ | ||
궤간 | 1,435㎜ | ||
차중 | 34.3t | ||
최고속도 | 55㎞/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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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899년에 경인철도합자회사에 의해 도입된 한국철도 최초의 증기 기관차이자 탱크식 증기 기관차이며, 차량 명칭의 유래는 차륜 배치 표기법에서 2-6-0 바퀴 배열의 명칭 모걸(Mogul)을 일본 가타카나로 읽은 '모오 가루(モーガル)'를 사용한 것이다,[1]일본이 제임스 R. 모스로부터 매입한 부설권으로 설립한 경인철도주식회사가 미국의 브룩스(Brooks Locomotive Works)사에서 6량을 부품 상태로 제작 및 인천공작창에서 조립되었으며, 경인선의 제물포~노량진 구간에 투입되었다.
철도박물관 실내전시관에 축소한 모가형 증기기관차 모형이 있으며, 수도권 전철 1호선 동인천역 북광장에 이 기관차의 실제 크기와 준하는 모형 기관차가 전시돼 있으며, 인천역에 있는 한국철도 탄생역의 석조 조각상도 모가형 증기기관차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2. 운행
1899년 이후엔 추가적인 도입이 없었다. 이때는 경인선 규격 자체가 낮아서 후에 들어올 파시형이나 미카같은 대형 기관차가 입선하지 못했기에 꽤나 사용되었다.1903년에서부터 1906년까지는 경부선의 공사를 위해 잠시 경부선 공사현장에 이적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 번호가 100번대로 개번되었다.
1904년, 도입될 때부터 달고 있었던 체인 앤 버퍼 연결기에서 자동 연결기로 교체되었으며 기적과 안전 밸브[2]의 위치를 바꿨다.
1906년, 경인철도합자회사, 경부철도주식회사, 산마철도, 경의철도가 국유화로 조선총독부철도국 소유로 이전되자, 기관차에 '모가형'라는 형식명칭이 처음으로 붙게 되었다.
하지만 후에 개량된 형식의 푸러형 증기기관차가 새로 도입되며 경인선 선로의 개량작업으로 미카나 파시 같은 대형 텐더식 증기기관차들이 경인선에서 달릴수 있게 됨에 따라 일에 사용되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1930년대에 모가형 증기기관차는 퇴역하였지만, 4대의 기관차들 전부 입환기나 공사열차로서 계속 쓰이게 된다.[3]
1935년 10월 1일에 함흥, 이리, 원산, 경성철도공장에서 입환기로서 사용되던 모가형 기관차 4대 중 1대가 철도박물관[4]에 이전하여 전시하였다는 기록이 존재한다.[5]
1938년, 모가형의 명칭이 다시 한번 '모가1형'으로 변경되며 다른 기관차들과의 번호체계의 동일화가 이루어졌다.
1947년, 해방 이후에 남한과 북한의 분단을 거치며 북한으로 기관차 1대의 소유가 이전되었으며 형식명칭도 '모가하형'로 변경되었다.
2.1. 폐차 시기
폐차시기나 운행현황은 정확히 알 수 없으며, 해방전과후 몇몇 자료에 그 존재가 확인되고 있다. 1948년 미군정 운수부가 조사한 철도 차량 조사표에서 3량의 모가형이 보유중으로 나온다. 그 가운데 1량은 북한 소속으로 나온다.또한 일본에서 발매된 '기관차표'라는 DVD에 따르면,해방후 모든 차량이 북한철도 소속이 되었다는 언급이 있으며, 한국전쟁시기 서울공작창에서 1대의 모가형이 공습으로 대파되었다는 언급도 존재하며, 1960년대 교통백서 기관차 보유 목록에 차령 50년이 넘는 기관차 2대가 통계에 잡혔다. 50년이라는 연식과 2대라는 애매한 차량수로 미루어보아 모가형 기관차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할 수 있다. 허나 60년대 이후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푸러 1형과 같이 차령이 50년이 넘거나 넘기 직전인 차량을 여전히 운용중이었기 때문에, 60년대 기준으로 보았을때 모가형보단 푸러 1형과 같은 차량이 당시에도 남아있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2.2. 기타
한국철도 탄생역 기념비 |
- 인천역 앞에 한국철도 탄생역 기념비로 있는 기관차 모형이 바로 이 기관차다.
동인천역 모가형 기관차 모형 |
- 동인천역 주변에 외진곳에 이 기관차를 실물모형으로 만든게 있다. 물론 기관차 실물 재현 모습이 그렇듯 이것도 조잡하기 짝이 없다.
- 제물포역 역사 2번 출구쪽 유리창에 모갈 1호 설명이 간략하게 적혀 있다.
3. 관련 문서
[1] 이걸 시작으로 다른 기관차에도 이름을 붙이는 방식이 이렇게 되었다. 예시로 미카형 증기기관차는 2-8-2 바퀴 배열의 명칭 미카도(Mikado)의 가타카나식으로 표기한 명칭에서 두 음절만 사용한 '미카(ミカ)' 처럼이다.[2] 증기기관차가 열을 지나치게 발생시키며 증기 압력이 일정 수치 이상으로 넘어가면 증기를 강제로 분출시켜 보일러가 폭발하는걸 막아주는 장치이다.[3] 꽤 덩치가 작은 기관차여서 조차장에 들어가기엔 덩치가 컸던 기관차들보다는 조차장 내에서의 운행이 더 편리했기에 가능했다.[4] 현재의 의왕시 소재 박물관이 아닌 만주국철도의 지원을 받아 용산 철도종사원양성소 내에 세워진 다른 박물관이다.[5] 한국전쟁 당시, 폭격에 의해 파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