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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군이 되어보세!/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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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군이 되어보세!
등장인물 (1부 · 2부 · 3부 · 4부 · 이재석 · 김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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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유교 묘사에 대한 아쉬움3. 수정 전 뜬금없는 1부 결말
3.1. 어째서 그랬는가?3.2. 수정본
4. 늘어지는 전쟁 묘사
4.1. 1.1 사태
4.1.1. 5월 6일 버전(달구벌 전투)4.1.2. 단행본 버전(밀양강 전투, 정사)
4.2. 사태가 벌어진 이유는?
5. 김상희 관련6. 주인공 이재석의 인간성 문제
6.1. 올렝카 사태
7. 건주위 강화
7.1. 반론
8. 3부의 미진한 전개
8.1. 반론
9. 예왕의 난과 관련된 비판10. 긴장감의 상실11. 재현 오류

1. 개요

명군이 되어보세!의 비판을 정리한 문서다. 비판 문서의 내용은 저작권상 현재 서술된 내용까지만 이야기한다.

2. 유교 묘사에 대한 아쉬움

"그래, 성종처럼 사는 것도 좋겠지. 목가적인 선비의 나라를 만들어 평화롭게 농사나 짓고, 싸움을 걸지도 않고 받지도 않으면서 사는 것도 좋겠지. 근데 말이야, 그렇게 나섰을 때 생길 결과에 대해서는 생각해 봤어? 그렇게 살려다가 당한 게 임진왜란이야. 그러고도 정신을 못 차리다 정묘호란병자호란 쳐 맞았고, 결국에는 일본에 나라가 넘어갔다고. 선비처럼 살려고 하다가. 우리 주변에 아무도 없으면, 속세를 벗어난 무릉도원에 살면 뭐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평화롭게 살아도 되겠지. 하지만 지구상에 그런 땅은 없어.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하와이도 미국에 나라를 뺏겼다고. 그런데 어떻게 이 한반도가 혼자 선비처럼 살아?"
- 2부 154화에서 자신이 빙의하기 전 경성군이 뽑은 사대부 중 한 명이 주인공의 실용주의 개혁정책을 반대하다 자살하면서 남긴 유서를 읽은 주인공의 독백.[1]
상고해 보면 참으로 무도한 시절이었다. 아무리 선비의 기상을 세운다 해도 엄연히 질서와 예의를 지켜야 하는 법이거늘, 무도하고 방자한 태도를 의기와 지조로 혼동하는 자들이 너무 많았다. 성종 때 득세한 사림은 제대로 된 선비라고 할 수도 없는 자들이었다.
"수단에서 다소 과한 면이 있으시기는 하였으나, 무종대왕께서 호된 철퇴를 내리신 덕분에 그런 자들이 주춤했지. 만약 무종께서 그자들을 그대로 방치하셨다면, 지금 나라꼴이 볼만했을 걸세."
"도저히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겠지요. 지난 백여 년에 걸쳐 사림들이 득세하면서 모든 체제가 망가져 가기만 했을 겁니다."
실제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않고 입으로만 덕과 도리를 따지는 자들이 조정을 가득 채웠을 생각을 하니 두 사람 모두 눈앞이 답답했다. 과연 이 나라가 어떻게 되었을까.
- 2부 361화에서 이항복과 이덕형의 대화 내용 중 일부
2부로 접어들면서, 성리학과 이에 심취한 사림파들이 조선의 발전을 막는 부정적인 세력이자 만악의 근원으로 묘사된다. 지방 세력화 방지, 민심이반 방지,[2] 행정력 강화,[3] 권위와 정통성으로 생성된 왕권 구축 등이 성리학을 기반으로 닦여진 시스템 덕분인데도 그렇다. 즉, 성리학으로 발달한 조선의 시스템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받는 게 주인공이지만, 정작 본인의 성리학에 대한 평가는 매우 박하다. 작중 묘사에서도 사림파를 중심으로 자연현상과 같은 우연인 것까지 일일이 왕의 부덕 탓으로 몰거나, 성리학적 이상에 사로잡혀 외국과의 교역과 발전된 문물 도입을 무조건적으로 반대하거나, 나라의 국운이 걸린 중대한 사안을 두고도 성리학적인 사고방식으로만 해결하려는 답답한 장면들이 자주 나오며 그럴 때마다 주인공이 속으로 혀를 차며 한심해한다.

이는 주인공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이야기가 진행되며 성리학과 사림파를 부정적으로 보는 다른 사람들도 나오는 등[4][5] 작가가 처음부터 작정하고 성리학은 헛된 학문이니 실용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들로 물갈이를 해야만 조정이 산다라고 결론짓고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6]

다만 작품이 진행될수록 주인공도 모두 배척하기보다는 사림이라도 융통성과 능력을 두루 갖춘 인물이라면[7] 적성에 맞는 자리에 등용하고 필요하면 성리학적인 논리도 적절히 가져다 인용한다. 왜란이 발발하자 사대부, 김상헌을 필두로 하는 성균관 유생들이 앞 다투어 조국을 위해 입대하는 것을 본 주인공이 성리학을 공부한 양반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에 감탄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작가가 비판을 수용했는지, 당시 일본[8]과 명나라[9]와 유럽[10]의 문제점 역시 극중에서 비판하며 유교국가인 조선의 장점 역시 드러내고 있다. 2부 기준으로 사림파들은 조정에서 거의 물갈이되었고 상공업의 발전과 견서사를 통한 서구 문물과 사상이 도입되어 관학파 중에서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사고관을 가진 이들이 조정 안팎으로 늘고 있기에 조선이 원역사처럼 성리학 교조주의로 빠질 가능성이 확 줄어들었고, 원래부터 성리학을 근본으로 삼은 조선에서 성리학을 아예 말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조선이 분열되지 않게 해주는 사상적 구심력으로서의 성리학은 존속시킬 계획이다.

3. 수정 전 뜬금없는 1부 결말

1부가 한창 흥미롭게 진행되다가 굉장히 뜬금없게 주인공이 비명횡사로 죽어버리며 끝나버렸다.[11] 1부가 시작하는 시점은 세조로 인하여 쓸모없는 공신들이 넘쳐났고 성종의 치세로 인해 신하들의 트집 잡기가 끝이 없었다. 주인공은 몇몇 역모사건과 자신의 미래지식을 이용한 개혁으로 발판을 다져놓은 뒤에 갑자기 죽어버렸다.

물론 주인공 암살에 대한 복선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굉장히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들 입장에서는 초반에 잔뜩 고구마 먹어가며 견뎌가다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나 싶은 와중에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80년을 점프해서 선조시대로 가버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평판을 대폭 깎아먹었다. 안 그래도 히로인인 상희의 매력묘사 실패와 1부 진행 동안 이어졌던 사림파들의 진상과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의심병 도진 주인공의 괴팍한 행동에 독자들의 불만이 쌓여갔는데, 거기서 이어진 막장결말과 심히 작위적인 전개와 이유[12]로 욕을 푸짐하게 먹었다.

3.1. 어째서 그랬는가?

애초부터 이 소설은 단순한 대체역사소설이 아니라 밀리터리물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목표는 대체역사물에서 흔히 보이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막는 것이 아니다. 작중의 주인공은 양란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작가의 의도는 이를 더 크게 일어나되 조선이 그것을 훌륭하게 막아내는 그림을 원한 것이다. 그러기에 주인공이 앞에서 연산군으로 각성한 10년이 필요했던 것이고 그 뒤에 1582년이라는 애매한 시절로 점프하는 것이다.[13][14] 조선이 원역사보다 더 발전된 모습이 필요했고 히데요시가 아닌 오다 노부나가가 일본을 통일하고 쳐들어오는 그림까지 필요했기에.[15] 결국 이 소설의 2부의 목표는 일본의 대규모 침략을 분쇄하는 화끈한 밀리터리 전쟁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임진왜란은 이미 원역사에 명장들과 천재들이 많이 있기에 이런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초창기에 욕을 많이 먹었던 이유는 그냥 솔직하게 이런 목적을 이야기 하고 작품의 특징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넘기면 그만인데 작가가 쓸데없이 임진왜란을 막기 위해서는 앞에서 왕권을 강화하고 군사력을 강화시킬 시간이 필요하다는 등[16] 주인공이 죽은 이유가 똑바로 처신을 못해서가 아니라 정해진 운명이니 수명 따위의 말도 안되는 내용을 적어서 독자들의 어이를 가출시켜버렸기 때문이다.

3.2. 수정본

결국 2019년 6월 26일 1부 결말부와 2부 도입부 내용이 수정되었다.

차라리 수명이니 운명이니 하는 사족을 떼고 그냥 넘어가는 것이 낫겠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있어왔고 작가 본인도 그러는 게 더 나았을 것이라 후회 중이라고 밝힌 적도 있는 만큼 이 부분의 수정은 예상할 수 있었다. 수정본에서는 천녀가 나와서 너는 무조건 그 날 죽을 운명이었다는 말을 하는 대신 종성순에게 그렇게 가혹하게 굴고 이렇게 될 줄 몰랐냐고 비아냥거리는 내용으로 변했다.

수정 후 내용도 매끄럽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작품의 치명적인 하자였던 수정 전 결말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그러나 이미 수정 전 그 부분을 읽고 넘어간 대부분의 기존 독자들은 수정된 부분을 굳이 돌아가서 읽어보지 않았을 것이므로 1부 결말이 쓰레기 같았다는 인식은 작품이 완결될 때까지 따라다닐 것으로 보인다.

1부 결말 논란이 작가에게는 큰 트라우마로 남은 것인지, 2부에서는 재석이 사망하기 전 기우제를 지낸 후 병에 걸려 죽을 것이라는 떡밥을 아주 긴 기간에 걸쳐 노골적으로 뿌려서 독자들 대부분이 그 내용을 예상할 수 있었다. 1부와 다르게 전근대 기준으로 살만큼 살았고 왕으로서 이룰 것은 모두 이룬 후에 죽은 것이니 뜬금없다는 논란은 없었으나 대신 너무 뻔히 보이는 전개였다는 비판이 다소 있었다.

4. 늘어지는 전쟁 묘사

2부에서 발생한 무자호란이 무려 14장, 15장, 17장, 총 53화에 걸쳐 진행되었다. 군대가 출발하는 내용에만 4화 이상이 걸렸을 정도. 무자호란이 병자호란보다도 규모가 큰 전쟁이고 작중의 주요 사건인 것은 맞지만, 2부의 메인 사건이 될 왜란이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소 우려되는 부분. 무자호란보다도 큰 규모가 될 왜란 묘사에 100화쯤 걸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왜란쯤 스케일이면 2부의 가장 중요한 메인이벤트이고 왜란 정도의 내용이면 최소한 100화 이상의 분량으로 다루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으니 이 부분은 독자들의 개인 성향마다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현재 왜란 파트가 시작되면서 일부 독자들의 이와 같은 우려가 현실화되었다. 경인왜란이 개전된 후 약 30여 화가 연재되었는데 작중에서 흐른 시간은 약 한 달 정도로 소설 한 화에 하루 정도 시간이 흘렀다. 아직 일본군이 전부 전개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러다 일본 본토 역공까지 합해 200~300화는 걸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고 이에 빠른 진행을 원하는 독자들의 불만이 댓글에서 매 화 터져 나오는 중. 빠른 전개가 대세가 된 웹소설 시장에서 작가의 스타일은 종이책 스타일에 가까울 정도로 느리고 세밀한 데다, 지나치게 시시콜콜하고 작중의 시점이 어지러워서 전쟁에 들어선 이후의 전세의 흐름을 독자가 파악하기도 어렵다. 아예 전쟁소설이라면 모를까, '대체역사' 소설인데 작가는 작가의 전문인 밀리터리물마냥 전쟁씬에만 집중하고 싶어 한다는 비평이 공통적으로 나온다.

작가 본인도 빠른 전개를 원하는 독자들의 요구와 디테일하게 쓰는 본인의 스타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디테일한 묘사를 하다가 불만이 폭발할 때쯤 느닷없이 중요한 파트에서 급전개가 이루어지며 재현과 디테일을 원하는 역사 동호인 독자들과 빠르고 통쾌한 전개를 원하는 대다수 독자들 양쪽을 모두 잡으려다 이도저도 아니게 되는 모양새가 되버린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일이 터졌다.

4.1. 1.1 사태

2019년 1월 1일 연재된 24장 8화, '하남벌 전투'[17]의 내용에 독자들이 대폭발하여 댓글창이 불타고 그동안 작가의 소설 설정을 도와주던 지인들조차 이 전개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자[18] 결국 수 시간 뒤 해당 연재분의 내용을 전부 삭제하고 다시 써서 올리겠다고 밝혔다. 전날 작가가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며 휴재를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고 밝혔는데 압박감과 나쁜 건강상태가 겹쳐서 생긴 사태라는 추측도 있다.[19]

삭제된 연재분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 임해군의 개소리에 분노한 신립이 '이 역적 놈의 새끼야!' 하며 지휘고 뭐고 내팽개치고 단신으로 적진에 돌격하자 얼떨결에 휘하 철기병 6천 명이 함께 돌격한다. 류성룡과 김여물 등이 수습하려고 하나 이미 지휘계통이 붕괴했고 후방에서 타치바나군과 초소카베군이 등장하자 포위된 오위군은 지리멸렬하게 패퇴한다. 뒤늦게 신립은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지만 이미 오위 본진은 무너지고 있고 철기병은 거의 전멸했다. 신립은 피눈물을 흘리며 오다를 직접 치기 위해 마지막 남은 기병들과 함께 돌격하나 결국 왜군에게 생포 당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

삼랑진 전투 지도
원피스로 비유된 삼랑진 사태 요약

연재분 반응 #1 #2 #3 #4 #5 #6

이 사태에 대해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에서는 1.1 사태보다는 대체로 삼랑진 사태라고 불린다. 전투의 이름이 정확히는 삼랑진 전투가 아닌 하남벌 전투이니 하남벌 사태라고 불러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사태가 터진 1월 1일 당시에는 작중에서는 해당 전투를 삼랑진 전투라고 칭했으며 작가의 말에도 삼랑진 전투라고 쓰였다. 전투의 이름이 하남벌 전투로 정정된 것은 며칠 후의 연재분 작중 내용에서 정확히 전투가 일어난 곳은 삼랑진이 아닌 하남벌이니 하남벌 전투라고 고쳐부르기로 하는 내용이 나온 뒤이기 때문에 하남벌 사태라는 표현은 사태가 진정되고 한참 지나서 등장했다.[20] 본 항목에서는 삼랑진 사태, 하남벌 사태라는 명칭으로 수정되었다가 그냥 사건이 발생한 날짜에서 따온 1.1 사태라는 명칭으로 최종적으로 정착되었다. 또한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에서는 삼진 사태라고 오기되는 경우가 많다.

내용이 삭제된 후 한밤중이 되어서 수정된 버전이 업로드되었다. 슈타인호프 작가는 원래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 창립자 겸 초대 매니저였는데, 이 사태 이후로 매니저 자리에서 내려왔고 그 이후 대역갤을 거의 방문하지 않는다. 눈팅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전처럼 고정닉으로 활동하지는 않으며 수 개월에 한 번 안부 글을 올리러 찾아오는 정도. 이후로 대역갤에서 폐주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또한 문피아 댓글 하나하나에 모두 답글을 달아주던[21] 과거와 달리 이 이후로 답글을 꼭 필요한 경우[22] 외에는 달지 않는다.

4.1.1. 5월 6일 버전(달구벌 전투)

2020년 5월 6일 2부 완결 이후 단행본 출간과 함께 2부 내용 전반적인 수정이 들어가면서 하남벌 전투 파트도 전면적으로 수정되어 달구벌 전투로 변경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개선이 아닌 오히려 기존의 수정 후 하남벌 전투보다 나쁘다거나 심지어는 최초의 수정 전 삼랑진 전투보다도 못한 개악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재수정본의 전개는 다음과 같다.
신립이 수군에서 큰 공을 세운 이순신을 질투해서 이순신을 누르고 자신이 이 전쟁의 일등공신에 오르기 위해서는 적을 각개격파하기보다는 단 한 번의 회전으로 전멸시켜야 한다며 일부러 일본군 12만명이 집결할 때까지 대구에서 대기한다. 오다는 양동작전을 펼쳐 오위군을 한밤 중에 달구벌로 유인해내고 열기구를 잡동사니 취급하며 정찰을 게을리 한 신립은 여기 가볍게 낚여 일본군이 밧줄을 설치해두고 조총병들을 매복시켜둔 달구벌로 제발로 들어간다. 결국 기습에 당해 3000명의 손실을 입는다. 여기서 신립은 퇴각하기는 커녕 이대로 돌아가면 자신이 이 실패의 책임을 져야하니 어떻게든 승리를 거둬 이를 덮어야 한다는 생각에 포위망이 좁혀오는 것을 무시하고 퇴각하지 않은 채 일본군과 결전을 준비한다. 그러나 자신의 전공만 생각하기 바빴던 신립은 태양을 등진 일본군과 대치한다는 아주 초보적인 실수를 저질렀고 오위군은 활과 조총의 우위를 살리지 못한 채 창기병으로 일본군 장창진에 꼴아박았다가 가볍게 저지당한다. 뒤늦게 자신의 잘못으로 오위군이 패배했음을 깨달은 신립은 삶을 포기하고 보병들을 퇴각시키기 위해 오위 기병들과 함께 후위를 자처하여 오위 보병들을 포위망에서 탈출시킨 뒤 포로가 된다.

이 재수정본에서 인물들의 달라진 점을 정리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신립: 멍청했지만 오다의 목숨을 한 번이나마 위협했고 찌질한 모습은 보이지 않음 → 오다에게 위협이 되기는 커녕 출세욕과 질투심에 눈이 멀어 초보적인 실수로 군을 말아먹은 찌질이
유성룡: 손쓸 틈도 없이 오다의 계략에 휘말린 피해자 → 막나가는 신립에게서 망조를 보고도 고민만 하면서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임
김여물: 비장한 각오로 후위를 맡고 실종됨 → 신립과 함께 싸우다 전사하는 장면이 직접 묘사되었으나 오히려 비장함이 줄어들음
사노부: 포위망을 뚫고 유성룡을 탈출시킨 간지폭풍의 활약 → 포위망 완성을 막기 위해 분투함
노부나가: 오위군이 자신의 코앞까지 돌격하자 측근 무사들이 극구 만류하고 화살과 총탄이 날아와 호위무사들이 하나둘 쓰러지는대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용자 → 신립이 접근하자 후퇴하는 평범한 장수

분명 망가진 신립의 이미지 때문에 욕을 먹던 버전이라서 수정을 가한 것인데, 오히려 재수정본에서 신립을 포함한 조선측 인물 전원의 묘사가 추해지는 기현상이 일어나버렸다. 그렇다고 일본 측 인물들이라도 더 멋있어졌나 하면 그렇지도 않다. 오다 측의 묘사가 더 늘어나긴 했지만 신립이 워낙 멍청하게 행동해서 오다의 뛰어난 작전술에 패했다기보다는 정상인이 멍청이를 상대로 이긴 것처럼 되었고, 신립이 코앞에 들이닥칠 때까지 피신하지 않고 버티던 대담한 장면까지 사라져 오다 또한 더 볼품없어졌다.

결국 독자들의 반응이 매우 좋지 않자 수시간 후에 다시 기존의 하남벌 전투로 롤백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신 연재분이 아닌 기존 연재분 수정이라서 이 재수정본이 올라온 뒤 롤백되기 전까지 읽은 사람이 거의 없었고 때문에 이 재수정본 사태는 1.1 사태와 달리 큰 논란은 되지 않았다. 이 사태를 통해 슈타인호프 작가가 1.1 사태 이후로 연재 태도 면에서 많이 개선되었음에도 여전히 독자들의 요구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특히 전쟁 묘사에서) 사실이 드러났다.

4.1.2. 단행본 버전(밀양강 전투, 정사)

단행본 출시에 맞춰 다시 쓴 달구벌 전투가 혹평을 받고 수시간만에 롤백된 이후 다시 고쳐쓴 버전으로 밀양강 전투로 변경되었고, 작가 피셜 이것이 정사다.

전개는 다음과 같다.

연재파트보다 동래성이 이틀 정도 먼저 함락되어 전투장소가 바뀐다. 일단 이 시점에서 적이 최소 10만이기에 오위군만 가지고는 달구벌에서 벌이는 회전 또한 절대로 무리라고 생각한다. [23] 적은 이미 삼랑진을 통과해 작원관마저 함락시켰다. 작원관을 못지킨건 주인공이 잔도를 크게 넓혀서 속오군 병사들로는 지킬 수가 없어서. 김성일이 밀양에서 수성을 하자고 하지만 신립은 밀양을 지키지 않고 남진하여 적을 공격하여 작원관과 삼랑진을 탈환하기로 결정.

판단의 근거는 이렇다.
오위군이 밀양을 지키면 적이 밀양을 지나쳐서 서쪽으로 돌아 대구성을 공격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별동대를 풀어 군사를 나눠 여기저기 쑤시고 대구로 향할지도 모른다. 대구성을 천혜의 요새로 개조한건 사실이지만 대구성 안에는 전투경험이 전무한 속오군과 외별기만 존재하니 만약에 신장이 대구성을 공격할 시 안에서 동조자가 나와 성이 쉽게 함락당하면 대구성은 최악의 침략 전진기지가 되어 큰 위협이 된다.


전투의 흐름은 이렇다.

처음 신장군은 밀양성으로 진격하는 듯 했다. 신립은 유리한 지형에 대형을 짜고 기다렸으나 신장군은 앞에서 멈춰 움직이지 않았다. 이에 혹시 오위군을 묶어두고 다른 길로 우회해서 전진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공격을 한다. 유성룡이 후방에 오위군 5만을 두고 진격하는 짓을 신장가 할리 없다고 주장. 오위를 먼저 섬멸하고 대구로 진격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으나 신립은 단순히 눈길을 돌리기 위해 전라도에 10만을 갖다 밖은 신장이라면 능히 오위의 발을 묶기 위해 2만 정도는 버릴 수 있다고 말하며 만약 대구성이 함락하고 바다에서 계속하여 증원이 온다면 오위군은 앞과 뒤로 포위당한 채 곤란한 사태에 직면한다고 판단한다.

대구성에서 수성전을 하는 것은 무리. 피난민이 많아서 다 들어갈 수도 없고 사기도 떨어진다. 정찰대를 보내보니 적진에는 3만명 만이 있었다. 동래에서 아직 안 올라왔을 수도 있고 주력을 분산시켰을 수도 있다. 신립은 적이 군사를 나뉘어서 다른 곳에 보냈을 가능성이 높으니 어서 진격하여 선발대를 박살내고 각개격파해야한다고 주장. 그때 곧바로 적군 3만명이 진격하고 그 안에 신장의 깃발이 있다. 유성룡은 3만명으로 시선을 끌고 나머지는 매복했을 가능성을 말했으나, 신립은 설령 매복이 있더라도 적진에 신장이 있다면 양 측면에서 덮치기 전에 바람 같이 진격하여 신장의 목을 쳐서 전쟁을 끝내버릴 수 있다고 말하여 대신 척후를 보내 측면의 기습에는 대비하기로 한다.

전투가 벌어지고 서전이 끝나자 적 별군은 정말로 대구성을 공격하러 간 게, 아니라 오위군을 섬멸하기 위해 매복 포위를 하였다. 유성룡의 충고를 듣지 않아 미안해진 신립은 눈을 맞추지 못한다. 허나 이미 포위는 끝난 상황. 여기서 도망친다고 하여 포위를 확실히 벗어난다고 장담할 수 없고 적진에 역도 이진과 신장이 있음을 알게 된 신립은 결국 최후의 역전을 노리기 위해 일점 돌격하여 신장의 목을 치기로 결정. 어차피 포위망을 벗어나려면 기병이 후위를 맡기로 결정하였으니 나쁠것 없다고 생각. 기병 1만으로 돌격을 시도한다.

오위군 기병 1만이 신장군의 10단 방어진을 차례차례 격파하여 신장에게 한창 쇄도하는 중 신립에게는 불운하게도, 그리고 신장에게는 행운이게도 밀양성을 공격하라고 보낸 우키다군 1만5천이 길을 헤메다가 딱 맞는 타이밍에 신립군 측면에 나타나 공격을 시작. 결국 신장을 눈앞에 두고 기병대는 전멸. 신립도 포로가 되며 전투가 끝난다.

전투의 결과로 오위군은 1만5천명이 전사하고(대부분 기병이다) 5천명이 포로가 된다. 왜군측은 5천명이 사망하고 2만여명이 부상을 당한다. 이렇게 오위군의 패배로 전투는 마무리가 되었다.

정발판에서 묘사된 전투내용은 그럭저럭 현실성이나 분위기를 맞췄다는 평. 하남벌 전투와 비교하여 상당히 상식적이고 개연성 있게 흘러갔다. 특히 신립 뿐만 아니라 유성룡의 행동양식이나 판단이 훨씬 현명하고 자연스럽다. [24] 신립의 오판이라면 단 하나. 적군이 대구성에 있는 왜별기를 이용해 대구성을 쉽게 함락하는 것을 노릴 것이라는 것 한가지.

주인공도 신립이 왜별기를 의심한 건 아쉽지만 그 외에는 올바른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4.2. 사태가 벌어진 이유는?

초짜도 아니고 충분히 경력도 오래되고 이름도 있는 작가가 어째서 이런 무리한 전개를 했는가. 그 이유는 상술한 대로다. 작가의 스타일은 분명 좀 늘어지더라도 하나하나 세세한 묘사를 하고 천천히 진행하는 스타일인데 댓글창에서 계속되는 통쾌하고 빠른 전개를 원하는 청원이 올라왔다.[25] 그런데 본격적으로 왜란이 시작되자 독자들 사이에서 내용에 대한 토의도 활발하고 작가에 대한 후원도 제법 들어와서 작가에게 더욱 부담이 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대다수의 독자들의 바람과 작가의 본래 스타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벌어진 일이다. 독자들이 바랐던 것은 통쾌하고 빠른 진행이었지만, 작가가 원래 구상하던 밀리터리 스토리로써 작가와 독자의 니즈로 어긋난 이해로 충돌하여 작품을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인해 설득력 있는 서술로 풀어가야 할 패전을 빠르다 못해 어처구니 없는 졸속 진행으로 넘겨버린 것이다. 즉 독자들이 하남벌 전투에서 불평하는건 신립 살려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니탕개의 난부터 무자호란까지 이순신 이상으로 존재감을 길러냈던 신립은 대단히 허무한 분량으로 죽었고, 그 때문에 많은 반발로 돌아왔다. 적어도 오다를 물리치지 않는 승리를 주지 못했다면 져도 잘 싸운 전개로 가야했는데 그것조차 결과론적으로 말했을 뿐, 그런 느낌을 주지 못했다는 것.

사실 작품에서 왜란 시작 전에 이미 무자호란이 벌어졌고 무자호란 자체도 꽤나 길었고 연달아 이어진 경인왜란까지 자세히 다루느라 생각보다 전개가 넘 느리고 더욱이 그 지지부진한 초반부 전개가 일본의 강세로 묘사되어져서 독자들의 원성이 컸다.[26] 거기다가 내용이 진행되며 작가의 예상보다 신립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감과 호감이 더 커진 것도 문제였다.[27][28] 물론 작품 진행상 신립의 패배는 이미 충분히 예견되어졌고, 이전부터 충분히 복선이 깔려있었기 때문에, 신립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실망이었을지 몰라도 묘사만 잘 했어도 다른 이들에게는 납득을 줄 수 있었는데 진행 과정이 너무 작위적이고 설득력이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29] 거기다 원래 역사의 신립과 달리 충분한 충고와 브레이크를 넣어줄 류성룡도 있었기에 오히려 승리를 위한 복선으로 자칫 알아보기 쉽다. 차라리 작품속 내에서 류성룡을 신립 옆에 보내지 말고 오다가 예측한 가상 전투대로 흘러가는 게 더 현실성이 있었을지도 모른다.[30]

작가의 의도대로 따르자면 신립은 죽어야 맞는 캐릭터이긴 했다. 왜란 당시 활약한 원래 장수들도 충분히 있는 마당이고 무엇보다 원역사 선조와 대비되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리려면[31] 충분히 큰 위기가 있어야 하는데 작품 속 상황 상 일본은 장수들이 정말 어지간히 잘 싸우지 않는 이상 조선에 심각한 위기를 줄만큼 강하지 않다.[32] 앞선 무자호란으로 조선의 전력을 북에 몰빵시킨 정도로도 부족한 수준이었다.[33][34]

결국 수정본과 작가의 사과문이 나오며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결국 사건이 일어난 문제는 작가의 계속되는 연재로 인한 컨디션 난조와 독자들의 원성에 흔들린 멘탈이 본래 계획했던 시나리오와 다르게 겹쳐져 나타난 참상이었다.[35] 이후 작가는 여전히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으며, 댓글에 일일이 답 댓글을 달지도 않고 자신의 페이스에 맞게 글을 이어가고 있다.

최종적으로 경인왜란 분량은 작중에서 151일, 현실에서 143일, 화수로 129화가 걸렸다. 실제로 1화당 1일 꼴의 진행속도가 맞았던 것. 그나마 하남벌 사태 때문에 지지부진했던 전개를 중반 이후로 속도를 좀 올렸고 전쟁 자체를 그렇게 길게 끌지 않아(...) 저 정도로 끝났던 것이다.

5. 김상희 관련

상희의 캐릭터, 그 중에서도 1, 2부의 모습에 불만을 표하는 독자들이 있다. 1부에서의 상희는 짜증을 유발하는 극혐 캐릭터였다는 평가를 받으며 등장할 때마다 욕을 먹었으나, 2부가 되며 성격이 변모하여 상희 캐릭터 자체에 대한 비판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비중이 급감하여 수학, 의학 셔틀 상희만이 남았다는 아쉬움을 표하는 경우도 있으며[36] 굳이 상희를 등장시킬 필요가 있었냐는 비판도 많다. 다만, 충분히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고 심리묘사 상 정상적인 캐릭터인데 작가의 묘사 부족 때문에 이런 상황이 도래했다는 반론도 있다.[37][38][39] 상희의 옹호 중에는 독자들이 부국강병 묘사만 원해서 욕먹었다고도 하는데 그건 사실과 조금 다르다. 지나치게 계속되는 정치와 전쟁이야기만 나오는 것 보다 가끔씩 나오는 캐릭터 이야기가 나쁠 리가 없다. 단지 히로인 상희가 매력이 너무 없고 둘의 연애부분이 재미가 너무 없었던 게 문제일 뿐.

그래도 2부들어서 평가가 괜찮았"었"는데[40] 최근 들어 유럽에 동의보감에 적힌 우두법의 전파문제로 주인공과 강한 의견 차이를 보이며 히스테릭한 행동으로 인해 다시 한 번 평가가 곤두박질쳐버렸다.[41] 덕분에 간만에 게시판에 불이 붙었고, 히로인 상희의 떨어졌던 존재감이 안 좋은 의미로 다시 한 번 기하급수적으로 폭락해버렸다.[42] 사실 의료인인 상희로서는 무척 올바르고 당연한 마음가짐이다. 하지만 말투나 태도가 별로 좋지를 못했다. 작중에서 상희는 만약 우두법 전파로 유럽이 원역사보다 강해져서 나중에 조선에 피해가 올까봐 걱정한다는 주인공에게, 그래도 전염병으로 죄 없는 사람이 죽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냐~, 라고 주인공을 설득하는 게 아니라 그런 건 외교를 잘하고 국력을 키워서 잘 막을 생각을 해야지!라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소리를 하면서 짜증을 부렸다.[43] 또한 역사가 바뀌어서 미래에 예측 못한 사태가 일어날까봐 두려워하는 주인공에게 그런 게 무서우면 아예 연산군처럼 폭정을 하고 선조처럼 도망이나 치지? 라고 비아냥대는 것은 심하다는 지적도 있다.[44]

상술했듯 상희가 의료계 종사자로서 가지는 마음가짐과 태도는 도덕적으로 분명 올바른 것이고[45], 작중 초부터 쭉 있어왔기에 부주의하게 상희에게 말을 한 것도 모자라 베갯머리송사에 가까운 것을 받아주는 주인공이 더 문제지만, 중세로 왔는데도 아직 현대인의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해 합리적인 사고와는 거리가 멀어 대안조차 제시하지 않고 떼만 쓰고 있는 부분에서 독자들의 짜증과 혐오감을 불러 일으키게 되는 아쉬움을 보였다.

사실 상희의 비중이 이상하게 변해버린 점은 작가의 전개문제 때문이다. 1부에서 주인공과 사통을 맺어 애까지 가지게 된 상희였고 앞으로 관계 진전이 될 기대도 있었지만, 주인공이 종성순에게 암살을 당해 더이상 애정이고 뭐고 홀로 지내면서 요절당했다.

2부에서도 상희가 후궁으로 들어와서 온갖 치트를 부려서 활약을 했지만 문제는 때가 니탕개의 난부터 경인왜란까지 이어지는 난세라 상희의 비중이 수학이나 의학 등 미래인 치트밖에 별 활약이 없었다는게 문제고, 독자들의 주 관심사가 전쟁과 역사개변이였던 탓에 상희에 대한 관심은 뒷전일 수 밖에 없었다. 확실히 상희의 비중이 올라간 때는 난세가 끝난 후였지만, 문제는 '같은 현대인'으로서 주인공과 끝까지 가는 처지로서 동반자적인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타이밍이 나쁠 때마다 주인공이 중요한 정책에 쓸데없는 전개에 딴지와 트집을 잡아 발암을 유발하는 실장석같은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즉, 빙의 2차를 보여주면서 내내 성숙하지 못한 주인공과 비슷한 욕을 들어먹고 있으며, 상희의 경우엔 사고방식이 전근대에 적응을 못하고 현대식으로 사고를 하고 있으므로 대체역사 장르 캐릭적으로 보았을때 개연성이 좋은 캐릭이라 볼 수 없다.[46]

3부 이후로는 평가가 완전히 반전되었는데, 주인공 이재석은 후술할 올렝카 사태를 비롯하여 자꾸 망언을 반복하며 작품 외적으로 싸이코라는 밈까지 생겨버린 반면 상희는 지속적으로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도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 현 시점에서 상희를 문제삼아 비난하는 독자는 거의 사라졌다. 3부에서 상희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사망하여 조기 퇴장하고 상희 없는 전개가 오래 지속되면서 상희가 보고싶다며 그리워하는 독자들도 꽤 나왔다.

6. 주인공 이재석의 인간성 문제

2부에서 주인공 이재석의 혹형 남용이 갈수록 점점 심해져서 국가 반역자나 전범들을 거열형보다 더한 혹형에 처했는데[47] 적어도 주인공이 조선의 잔혹 수위[48]를 알고 있었다면 죄인들을 거열형으로 끝냈어야 했다.[49][50]

혹형 남발 이외에도 주인공 시점에서의 독백을 고려해도 주인공 이재석의 성격이 잔혹한 것도 그렇거니와 비인간적인 측면이 강해 읽기 거북하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미행을 나가 백성들을 챙기거나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상희와의 사랑 등 인간적인 모습도 그려지지만, 1부에서 겨우 구출된 아이누 탐험대 소식에 '통역 득템'이라며 좋아하거나 2부에서 친정을 나가며 '처자식도 있는 사람이 잘못되면 자살이나 한다.'는 생각을 하는 묘사 등에서 그런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51] 또한 상술했듯 왜란때 선비들이 자진입대해서 국가에 도움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감사는 잠깐뿐, 그들을 후하게 대하는 그런거 없이 여전히 냉랭하게 대하는 배은망덕한 인성, 심지어 빙의자가 여자가 아니라 자신같은 남자였으면 찾아내서 죽였을 것이라는 성격파탄자의 행각을 보였다. 이 때문에, 대역갤에서는 대체역사소설 주인공 중 가장 인간쓰레기인 인물을 꼽을 때 명군이 되어보세의 이재석이 항상 순위권에 들어간다.

다만, 일부에서는 당시 조선 왕의 과도한 업무량과 정치싸움, 암살에 대한 공포로 인한 스트레스와 힘들게 손에 넣은 절대권력을 생각하면 오히려 저렇게 잔인해지는게 현실적이라며 호평하는 이들도 있고, 죄를 지은 자에겐 그에 걸맞는 잔혹한 벌이 필요하니 도리어 잘한다, 더 하라고 응원하는 독자들도 만만치 않게 존재한다. 굳이 따지자면 독자의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작품의 특징에 가깝다.

또 원래 주인공은 착했는데 빙의된 몸주인의 뇌의 영향으로 성격이 나빠진거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52] 이 성격변화에 대해서는 확실한 설명이 있으면 좋지만 아직까지 나온 적은 없다.

사실 주인공이 성격이 상당히 냉혹하고 잔혹하지만, 그것은 자신에게 해가 되거나 위협이 자에 한해서 그럴뿐 그 외에는 평범한 축에 속하고 인간적인 면모도 많다. 실제로 주인공이 아끼는 자들에겐 굉장히 친절하고 상냥하며,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자에게는 나름 관대한 면모도 보이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6.1. 올렝카 사태

부족한 묘사로 독자분들께 불쾌감을 드려 죄송합니다.

2020년 7월 22일 연재분에서 재석이는 내면독백으로 3부 신규 히로인 올렝카의 몸과 성격이 마음에 들었고 수십 년 만에 10대 시절 같은 풋풋한 연애를 했다고 말한다. 이런 감정은 생전 누구에게도 느껴본적 없다며 처음 느끼는 이 연애감정에 사랑과 설렘을 느낀다고 말하며, 상희에게 미안할 정도다, 라며 올렝카를 특별시한다.

근데 뒤이어 갑자기 올렝카를 이렇게 사랑하는 게 상희한테 미안한데, 그냥 올렝카 몸에 상희가 빙의하면 안될까? 라는 생각을 하고 또 그 뒤이어 그럼 상희가 왜 이 몸의 주인(올렝카)이랑 어떤 사이냐, 왜 너랑 자고 있냐고 하면 그건 너 만날때까지 아무도 안 만날 수는 없잖아? 라고 하면 그만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묘사를 한다.

사실 이재석이 잔혹하고 냉정하긴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에게 해가 되거나 위험시 되는 인간에게 한해서지 자신이 아끼는 자들은 끔찍하게 아끼는 인물이다. 그런데 앞에서는 올렝카를 사랑한다며 특별시 해놓고 뒤에서 갑자기 죽어서 상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달리 상희를 만날 방법이 얼마든지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더군다나 상희는 이미 이재석이 다른 여자를 만나도 좋다고 공언했고 애초에 이재석은 다른 여자를 만나는데 상희의 눈치를 별로 보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상희와 환생하면서 몇번이나 다시 만날거고 나중에는 질려서 멀어질지 모른다고 걱정까지 했었다. [53]

아마도 3부에서 상희의 부재가 지속되고 올렝카의 인기가 지속적으로 올라가자[54] 주인공의 입과 생각을 통해 상희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덤으로 이재석과 상희의 사랑과 둘의 인연을 강조하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생각없는 처참한 묘사로 주인공의 캐릭터성에 크게 상처를 내버렸다. [55]

수정 후 연재분에서는 상희를 만나고 싶긴 하지만, 그렇다고 올렝카 몸에 상희가 들어오면 올렝카는 죽고, 상희만큼은 아니지만 올렝카도 소중하니 그건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내 가슴을 확 찌르는 말이었다. 나를 따라가겠다고 결정한 올렝카는 그 '어딘지도 모르는 나라에 가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어색하게 사는 길'을 선택했으니 말이다. 과연 나는 그녀가 후회하지 않게 해줄 수 있을까?
-3부 47화에서 재석의 독백
이런 아이를 두고 작년에 잠깐이기는 했어도 올렝카에게 상희가 깃들면 어떨까 하는 못된 생각까지 했으니, 나는 역시 천벌을 받아도 싼 놈이다. 부디 상희가 올렝카가 아니라 다른 사람, 아직 나와 연을 전혀 쌓지 않은 사람으로 각성했으면 한다.
-3부 48화에서 재석의 독백

작가는 그 후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재석이 잠시라도 그런 생각을 한 것을 크게 반성하고 있고 올렝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묘사를 넣어 이 사태를 수습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처음부터 수정 후 내용대로 나왔더라면 큰 논란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기존 연재분이 존치되었던 시간이 1시간 남짓에 불과함에도 독자들 중 상당수가 이미 해당 내용을 읽은 뒤였고 안 그래도 인성 논란이 있던 이재석 캐릭터의 이미지가 큰 손상을 입은 것은 되돌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7. 건주위 강화

주인공 이재석의 건주위와 관련된 행동에 대한 불만점이 있다.

주인공은 누르하치를 미리 제거해버리고 건주위를 몰살할 능력이 충분히 있음에도 하지 않고 적당히 세력을 키워[56] 조선과 명사이에 완충지대로 삼았는데 이부분에서 독자들에게 불만을 샀다.

7.1. 반론

사실 건주위 강화 자체는 개연성이나 현실성이 부족하지 않았다. 도리어 작중에는 주인공이 건주위를 명과 조선사이에 완충지대로 삼으려고 하는 이유에 대해 납득할만한 충분한 설명이 나온다.

1. 어차피 명나라 측이 단체로 미치지 않은 다음에야 조선에 요동을 넘겨줄 가능성은 전무하다.[57][58]
2. 조선의 북방 군사력강화의 정당한 이유가 된다.[59]
3. 만력제의 미친 몽골 원정에 강제로 끌려가지 않아도 된다.
4. 누르하치가 잘 통제한다면 북방에서 여진족들의 도적질을 금지시킬 수 있다.(약탈보다 교역이 더 이득이므로.)
5. 나중에 명나라의 국운이 다하면 조선을 대신해서 명나라를 공격할 사냥개로 키울 것이다. [60]

전부 맞는 말이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평이 안좋았다. 그 중심에는 누르하치나 홍타이지에 대한 본능적인 혐오감도 있겠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작가의 구상에 대한 의심이었다. 1)경인왜란/을미동정처럼 3부에서 대청제국을 건설하여 강해진 조선과 적대하게 만드려는 큰 그림이 아니냐는 것. 2)작품에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노부나가같은 강한 적(강희제 등)을 만들려는 의도라고 의심받았다.[61] 작품의 긴장감 유지를 위해 적이 생기는 거야 그럴 수 있다쳐도 문제는 작중에서 대청제국이 건국되려면 건주위가 화북을 제압하고 강남과 사천까지 진격해서 중원 전체를 집어삼키는 동안 동북아 최강의 전력을 가진 조선이 요동만 먹고 계속 멍을 때리며 지켜봐야하는 말도 안되는 억지가 필요하기에 걱정이 많았다.[62]

하지만 작가가 일찌감치[63] 3부는 대규모 전쟁이 없는 모험물이라고 밝히며 논란이 약간 줄어들었으며,[64] 3부에서 명이 망하고 중원이 3분할되고 건주위도 청(화북)과 후금(몽골)로 나뉘면서 논란은 더욱 줄었다.

8. 3부의 미진한 전개

3부에 접어든 이후 천 화 가까이를 따라온 독자들도 전개가 노잼이 되어가고 있다고 지적을 하고 있다.

3부 초반의 대유주편 연재분의 대부분이 등장인물들 간의 작위적인 대화로 설정을 주절주절 설명하는 내용 혹은 유럽을 기행하며 원역사와 똑같이 전개되는 사건들을 목격하거나 여러 실존인물들을 만나기만 하고 다니는 기행문으로만 진행되고 있어 독자들의 불만이 늘고 있다. 3부 초반의 배경이 유럽이란 것이 발표된 직후 독자들이 기대한 것은 1, 2부의 역사적 변동으로 대격변이 일어났거나 혹은 아직 변동이 크지 않더라도 재석이 돌아다니면서 개입한 영향으로 대격변이 일어나는 유럽사였다. 하지만 유럽은 두부를 먹는다거나 열기구를 사용한다거나 하는 사소한 차이들을 제외하면 원역사와 똑같은 인물, 체제, 사건들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재석이 돌아다니며 개입하는 것도 어차피 이길 전투(빈 전투)에서 이기는 편에 참전해 숟가락을 얹거나 어차피 패배할 혁명(명예혁명)에 개입하지 않고 넘어가는 등, 역사의 현장을 따라다니며 감상만 늘어놓을 뿐 아무런 차이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은 슈타인호프 작가는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현실 반영을 나름대로 잘 해서 원역사의 현장을 재현해낸 뒤 그 안에서 이야기를 전개해본 적은 있어도 이미 뒤틀릴대로 뒤틀린 역사 속에서 나비효과로 인한 변화들을 그려본 적은 없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다. 원역사 조선 그대로가 배경이었던 1부, 조금 변하기는 했지만 큰 틀은 유지되고 있었던 2부와 달리 3부에서는 아시아 전체가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정도로 크게 뒤틀렸다. 때문에 본인의 특기인 자료조사를 쓰지 않고 상상력만으로 이야기를 전개할 자신이 없어 아직 영향이 크게 미치지 않아 원역사와 큰 차이가 없다고 설정한 유럽을 배경으로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1, 2부 수백화를 따라온 애독자들이 원하던 것은 별 영향도 받지 않고 그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할 뿐인 유럽의 이야기보다는 1, 2부에서의 주인공의 활약이 이끌어낸 변화를 직접 보는 것이었고, 때문에 빨리 유럽편을 끝내고 귀국하라는 말이 끊이질 않았다.[65] 결국 유럽편이 끝났지만 배경은 아시아가 아닌 아메리카로 옮겨갔고, 미주편에서도 똑같은 설명문 전개 방식이 지속되고 있어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8.1. 반론

사실 위의 비판은 작품을 제대로 읽지 않았거나, 진행 중에 쓴 성급한 비판일 수 있다. 재석이 세계사의 사건들에 개입하지 않은 이유는 그 시점에선 재석은 미움 받아서 견서사를 빙자한 유배에 처해진 망나니 친왕이었기 때문에 행동이 제약되고, 자신과 일행들의 안위를 위해 개입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작중 대한이 원역사보다 훨씬 개방되고 서방과 많은 교류를 하고 있다지만 항해에만 1년 넘게 걸리는 뱃길을 사이에 두고 있는 대한이 100년도 안 되는 시간동안 유럽에서 세계사를 바꿀 정도의 변화를 일으킨다는게 오히려 더 비현실적인 전개일 것이다. 작중 대한이 7년마다 보내던 견서사도 2부의 장조 사후 두번 더 보내고 그 후에는 소빙하기로 인한 연이은 대기근을 극복하는데 국력을 쏟아부어야 해서 못 보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3부 시작 전 열조가 러시아와 국경협약을 맺어서 동부 시베리아 상당부분을 차지하면서 이웃국가가 되었고, 재석이 견서사 파견 중 표트르 1세와 친분을 맺으면서 향후 러시아를 중심으로 세계사가 크게 변화할 가능성이 생겼다는게 2021년 연재분부터 서술되었고, 2부에서 퍼뜨린 종두법이 유럽 국가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많이 퍼지진 않았지만 죽었어야 할 사람들이 살아나는 등의 작은 변화들이 생겨서, 이로 인해 원역사의 요제프 페르디난트가 살아나서 왕위에 오르고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국면이 아예 달라지게 될 예정이니 나비효과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9. 예왕의 난과 관련된 비판

재석이 태제가 되고 대리청정까지 하면서 후계자로 확고히 굳히게 된 다음, 예왕파가 결국 난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와 관련해서 일부 개연성의 문제로 독자들의 비판이 있었다.
  • 태황이 공기화되는 문제
    3부 내내 태황은 등장 때마다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였다. 그런데 순식간에 리어 왕처럼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는 것에 개연성으로 비판. 안 그래도 건강이 안 좋은데 혹독한 대기근을 3년이나 겪으면서 절식을 하느라 더 몸이 약해졌을 것이고, 사랑하는 장남이자 태자를 잃었다. 그 후엔 후계 문제로 고민하다가 결국 해결하고 건강도 회복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도성의 20%가 불타고 수천명의 백성들이 사망한 대화재가 발생해서 결국 화병으로 쓰러졌다가, 휴식을 좀 취하나 했더니 일주일 좀 안 되는 공백기 동안 난이 일어났다. 이 정도면 건강한 사람이라도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 1만명이나 되는 군사가 난을 일으켰는데 몰랐다는 개연성의 문제
    독자들에게 몸 약한 태종이란 평을 듣는 군주인 태황이 무려 1만에 달하는 군사가 난을 일으키는데 모를 수 있냐는 비판. 그러나 작중에서 한양대화재 이후 복구 작업을 위에 2만에 달하는 군사가 이미 주둔 중이었고, 예왕은 구호를 목적으로 천막을 쳐놓고 공공연하고 비밀스럽게 난을 모의하고 군사를 포섭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화재부터 난이 일어나기 전까지 시간은 일주일 밖에 안 됐고, 태황은 재석에게 대리청정을 명하긴 했지만 일주일 동안 화재 복구만 해도 정신이 없었고, 금위사는 여전히 태황이 쥐고 있었기 때문에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건 상희 뿐이었다.[66] 그리고 대화재로 인해 금위사가 불타서 기능을 못 하고 있었으니 개연성은 더 보충되었다.
  • 왜 난의 주역들은 태황을 전혀 신경 안 쓰는 것인가?
    엄연한 전제군주국인 대한에서 난이 일어났는데 아무도 태황을 신경쓰지 않는게 이상하다는 비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쿠데타 세력의 최우선 목표는 국가수반의 확보가 될 수밖에 없다. 현대의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발생한 쿠데타조차 대통령을 잡지 못하고도 성공한 케이스는 없다시피 하며, 전근대 군주국가라면 말할 것도 없다. 실제 조선의 역사를 봐도 1차 왕자의 난, 계유정난, 중종반정, 인조반정을 비롯해 성공한 모든 반정에서는 왕의 신병을 확보하는 게 최우선 과제였다. 그래야 강제로 어명을 받아내서 충의지사 코스프레를 하건, 왕을 갈아치우건 할 수 있기 때문. 그러나 반란을 일으킨 예왕파는 대놓고 궁궐을 포위하려 들고 오군대총관을 쏘아죽이는 등 명분 잃을 행동만 골라서 하면서도 태황을 확보하긴 커녕 범궐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혀 개연성이 없다는 비판이 생긴 것.
    작중에서는 이에 대해 예왕파에서 성친왕을 상대하면서도 금군을 모두 제압하고 궁을 장악할 여력이 없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묘사되었으나, 이미 1만에 달하는 대군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고 반정 시작 시점에 성친왕은 고작 1개 중대에 보호받고 있었던 상황이기 때문에 여전히 충분한 설명은 되지 못한다. 한편으로 예왕파에 합류한 고관들의 근본적인 목표가 '한양대화재의 책임 회피'였고, 예왕은 한술 더 떠서 아예 태황을 분사(憤死)시키는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태황을 신경쓰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일단 반정을 시작한 시점에서는 화재 책임 따위는 아무래도 좋을 수준이고, 태황을 끌어내리건 칙명을 받아내서 성친왕을 반란혐의로 걸건 해야 반정도 성공하고 본인들도 사는 상황인데 그 많은 고관들 중 아무도 태황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설령 태황이 분사했다 하더라도 중종반정 같은 사례에서 보듯이 황실의 웃어른인 태후를 쥐고 있으면 명분을 확보하기 훨씬 쉽기 때문에 범궐 시도가 아예 없는 건 영 설득력이 없다. 또한 태황의 분사가 목적이라면 궁 안에 군사를 끌고 들어가 시위라도 하는 편이 더 효과가 좋았을 것이다(...).
    주인공인 성친왕의 진압군 역시 태황의 의중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었으나 그나마 이쪽은 어느 정도 작중에서 합리적으로 설명이 되고 있다. 일단 재석이는 난 초반에 집과 함께 불태워질 뻔했다가 혈로를 뚫고 간신히 탈출했으며, 성친왕파 군관들은 성친왕이 사실상 태제가 되었는데 태황을 시해하고 난을 일으키는게 말이 되냐며 일축했으니 당연히 태제가 된 성친왕의 편에 서는 것이 태황의 뜻이라고 여겼을 것이며, 애초에 예왕군이 궁궐을 포위하고 있으니 태황에게 전갈을 보내기도 불가능했다는 것이다.[67]

10. 긴장감의 상실

작가 본인이 밝히길 애초에 명군이 되어보세를 쓰려고 한 이유는 스케일 큰 임진왜란 전쟁 묘사를 하고싶어서였고, 비록 큰 논란이 생기긴 했지만 2부를 통해 이 목적을 이뤘다. 그러나 소설은 완결되지 않았고 3부를 넘어 4부까지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4부의 대한은 동아시아 최강국임은 물론 전세계에서도 대영제국과 견줄만한 압도적 강국이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최강국이라도 대영제국이 러시아, 독일 등의 도전을 받고 현대 미국이 중국에게 도전받고 있듯이 신흥 패권국에게 도전을 받으며 긴장감 있는 경쟁 구도가 형성될 수도 있으며 국내적으로도 식민지 분리독립이나 반란, 역모 등으로 긴장감을 주는 이벤트가 생길 수 있다. 문제는 현재의 명군이 되어보세는 그러한 긴장감을 조성할만한 갈등이 전무하며 생기려 하다가도 허무하게 해결되어버린다는 것이다.

3부 예왕의 난, 4부 소왕의 난 등의 왕족 내부의 반란은 둘 다 허무할 정도로 손쉽게 제압되었으며 유교 사상과 재석의 개입 덕에 식민지 분리독립의 가능성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한을 외부에서 침략할만한 적대 세력도 없으며 4부의 빌런인 태평천국 또한 대한이 소규모 의용군을 보내 원정을 간 것이라서 만에 하나 대한이 참패를 한다고 해도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할 뿐 국가적 위기를 겪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이렇게 허무하게 위기가 해소되는 패턴이 반복되는 것은 작가가 삼랑진 사태로 민심이 나락으로 떨어진 경험을 한 후에 조금이라도 주인공이 위기를 겪는 상황을 묘사하는 것에 부담을 느껴서 지나치게 사리고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68] 실제로 대한이 세계적 열강의 지위에 오른 4부에서도 일부 독자들은 "왜 미래자의 빙의에 힘입어 수백 년이나 성장한 대한이 영토가 이것밖에 안 되며 이것도 못 만들고 저것도 못 하는가?"라는 비난을 툭하면 쏟아내는 지경이다.

11. 재현 오류

역사적 사건과 연표, 기후에 한해서는 재현 수준이 매우 높다. 다만 요리법이나 각종 자연과학/지구과학/토목 및 건설기술 관련에 한해서는 일개 개인에 불과한 작가가 문이과 분야를 모두 재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므로 어쩔 수 없이 재현 오류가 생겨난다.
  • 저화를 쌀과 태환하는 쌀본위제로 주인공이 제도를 재정비하는 묘사가 있다. 그런데 사실 조선의 저화는 본래부터 쌀본위제였다. 다만 관에서 태환을 해주지 않았고 세금 수취에도 받지 않아 가치가 사라져버린 것.
  • 옥수수에 대한 서술 중에 가뭄을 대비한 작물이라고 되어 있는데 옥수수는 물을 상당량 소모하기 때문에 가뭄에 직격탄을 맞는 작물 중 하나이다. 열대작물이라서 냉해에도 취약하지만 대신 생육 기간이 짧아서 널리 재배되는 작물이다. 더군다나 옥수수는 지력 소모가 큰 작물이라 금방 땅을 황폐하게 만들기도 한다.[69] 연해주 같이 짧은 기간 동안이라도 일조량이 강한 곳에서 물이 풍부한 지역이라면 쌀 대신 옥수수가 적합하다.
  • 당시 일본에서 이름을 부르는 건 금기시됐다. 관백, 태합이라고 통칭하는 것처럼 그 사람의 관직을 부르는 것이 예의다. 조선에서 이름 대신 호를 쓰거나 영감, 대감, 사또 등으로 불렀던 것과 비슷하다. 이름을 부르는 건 고관이 아랫사람을 부르는 격이라고 한다. 오다 노부나가가 이름도 아니고 별명으로도 가신들을 불렀던 것은 거침없고 난폭한 성격을 보여주는 사례인 셈. 이 작품을 비롯한 미디어나 소설에서 이름을 부르는 건 독자 및 시청자의 편의를 위한 것이다. 굳이 이야기 흐름을 끊으면서 재현에만 몰두할 필요까진 없기도 하고.
  • 루이스 프로이스가 일본 예수회의 조선 침략 총책임자인 것처럼 나오는데, 서양인의 관점으로 '일본사' 란 책을 써서 당대 기준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인 건 맞지만 책임자는 아니다. 그리고 성격도 온건지향형이다. 묘사된 것과 같은 사람은 가스파르 코엘료가 이미지에 부합한다. 소설에서 예수회만 문제없는 유파라고 나오는데 예수회 내에도 과격 분파의 사람들이 있었고 상층부를 차지한다. 당시 일본 관구 책임자였던 코엘료가 그 대표격인 인물인데, 그 이전에 책임자가 됐다가 취소된 프란시스코 카브랄과 함께 상당한 강경파들이다. 무력으로 중국을 점령한 후 선교를 벌이자면서 예수회 분위기가 그 쪽으로 흘러가는 선봉에 선 사람들이다. 코엘료는 히데요시하고 대담을 한 후 찍혀서 바테렌 추방령으로 추방당하는 빌미를 제공했고 그에 대한 반감으로 마닐라의 무기와 용병들을 들여와 일본을 뒤집어엎을 궁리까지 했던 사람이다. 이후 다시 선교 활동을 용인받기 위해서 임진왜란 시 침공에 예수회가 적극 도움을 주게 된다.
  • 올렝카를 비하할 때 조선에선 노비나 하는 시녀라고 나오지만, 조선에서 궁녀는 양인 출신들도 들어간다. 천비 출신만 뽑으라고 한 건 경종 때 일이다. 몇 년 후 등장할 장희빈도 정3품 역관인 할아버지와 양인 부모 밑에서 출생했으나 궁녀로 들어간 케이스. 그런데 노비만 하는 시녀라는 것이 틀린 재현이 아닌 것이 사실 궁녀 문서에서 나오지만 원래 원칙적으로 궁녀는 공노비 출신의 여성으로만 선발되는 것이 법적으로 정해진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양인 출신들이 슬쩍 들어왔고 효종때 양인 출신으로 무작위로 궁녀들을 선발하는 소식에 딸을 가진 집안마다 딸들을 숨기려고 할 정도였다. 궁녀들이 완전히 양인 출신으로 구성된 때는 순조 원년인 1801년으로 공노비를 혁파하면서 부터다.
  • 광산개발이 쉽게 전문가 초청해서 해결하는 것으로 하지만 한반도의 광산개발이 늦은 이유는 그 이유가 있다. 이놈의 대한민국의 땅이 더럽게 단단한 화강암재질이다. 충청도에 태안반도를 잘라내는 굴포운하를 1천년간 파다가 포기한 이유가 그거다. 광산개발도 조선 후기에나 조금씩 이루어지고 본격적으로 19세기에 들어선 이유도 광산을 쉽게 팔 수 있는 다이너마이트가 등장해서였다. 그리고 강원도의 광산개발은 도로가 뚫리고 나서야 비로소 개발이 진행되는데... 먼저 접근자체가 쉽지 않는 동네다. 현대에서도 불과 1990년대까지만 해도 차가 구비구비 산을 타고 올라가야 했다. 그런데 조선시대였으면 석탄을 채굴한다고 한들 그것을 운송할 수단이 없거나 채산성이 맞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중국에서 수입한다면 모를까.
  • 한반도의 가도정비를 너무나도 쉽게 처리했다. 조선시대에 도로를 안 깔고 싶어서 안 깐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단순히 유학신봉자라서 도로를 안깔고 농업을 중시한 것이 아니다. 위에서 언급되어 있듯이 조선의 지반은 오질라게 단단한 화강암인데 심지어 산지가 6~70%가 넘으며, 개마고원을 논외로 하더라도 고도가 상당히 높다. 이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단적인 예로 2000년대까지 강원도는 대관령이라는 곳을 넘어야만 했다. 20세기 기술력으로도 강원도를 못 뚫은 것이다. 조선시대에서도 도로를 개선하려고 했지만 못했다. 여기다 한반도의 독한 4계절 때문에 땅이 어는 깊이, 즉 동결심도가 심각하리만치 깊은 걸 감안해야 한다. 자료들을 찾아보면, 무려 1000mm 즉 땅이 1미터나 얼어버리는 곳이 흔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달리 말하면, 얇은 판석을 흙 위에 얹어봐야 봄이 되면 뒤틀리고 망가져서 재보수해야 되며 판석이 아니라 그냥 돌덩이를 파묻어서 기반을 만들고 그 위에 판석을 얹는, 힘들고 복잡한 공정을 거쳐서 포장도로를 만들어야 된다는 소리다. 이게 다 재정이 필요한데, 전국토를 이렇게 도로를 만들어 막대한 돈을 들여가면서 1년 365일 유지보수하는 건 불가능하다.[70]이른바 중상학파 실학자들이 청나라를 예로 들며 도로를 개발하자고 주장했지만[71] 끝내 이것이 실현되지 못한 것은 다 이유가 있고, 고려~조선 말까지 세금을 육로가 아니라 수운으로 운반한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경술국치 후 일제가 도로정비보다는 철도부설에 집착한 것도 다 이놈의 지반 문제 때문이다. 도로건설은 전근대에 그 비용이 너무나도 천문학적이었으며, 기술력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최소 다이너마이트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어느나라도 할 수 없었다.
  • 과거 제도에 수학을 도입하는 등 실용적인 과목을 도입하는데, 정말 이런 과목이 실무에 큰 도움이 되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72] 현대 인사행정의 관점에서 보면 시대를 지나치게 앞선 조치이다. 선요약하자면, 관료들의 업무를 다루는 이른바 행정학이 정립된 것이 20세기 초 우드로 윌슨에 의해서이다.[73] 20세기 초까지 전문관료를 양성하는 데 필요한 행정과목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서양권에서 관료를 뽑는 데 '공개경쟁채용시험' 도입을 주창한 것은 가장 빠른 국가가 영국으로 1850년대이지만, 실제로 시험이 정착된 것은 1870년 제 2차 추밀원령을 통해서이다. 당시 역사, 과학과 같은 '일반 교양과목'을 시험과목으로 채택했기 때문에 당시 시험도입 반대자들의 논리도 과거제도 비판자들과 똑같이 '관료 자리에 시험 잘 보는 학생을 앉힐 것이냐'였다. 비슷하게 행정개혁을 시도한 미국의 예를 들면 공무원 임용에 민주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잭슨 대통령이 도입한 엽관주의로 행정이 혼란에 빠진 끝에 원하는 공직을 얻지 못한 엽관주의자가 가필드 대통령을 암살하고 나서야 1880년대에 펜들턴 법을 제정하여 실적주의를 도입했다. 이마저도 영국은 1920년대에 공무원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며 재개혁을 시도하였다. 즉, 3부 시점에서 과거시험을 '실용적'인 과목으로 도입한 건 아무리 못해도 거의 200년을 앞선 조치이다.


[1] 주인공이 읽은 유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 사대부가 "성현께서 이르기를 처자는 의복과 같으니 어찌 의복의 명운에 관심을 가지겠나이까?"라며 처자에 대한 걱정은 버렸다면서 정작 부모의 안위는 챙기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저 말은 유비가 서주성을 잃고 도망쳐온 장비에게 한 '형제여수족처자여의복/兄弟如手足妻子如衣服'이다. 초한지에서는 팽성에서 도망치던 유방이 자식들을 마차 밖으로 내던졌고, 삼국지에서는 교현이 인질로 잡힌 아들을 버렸으며, 유비가 장판에서 유선보다 조운을 더 크게 아꼈을 정도로 고대 중국에서 빈번하게 일어났고, 또한 고대 중국인들의 가치관이었는데 이에 주인공은 기가 차서 인격적으로도 문제인 이런 놈을 남편으로 둔 처자가 불쌍하다고 더욱 깐다.[2] 주인공이 그렇게 '전가사변'으로 사대부들을 마구 숙청해 북방으로 유배보내도 앙심을 품긴커녕 공으로 죄를 갚아 당당하게 중앙으로 돌아가겠다고 벼르는 경우가 대다수다.[3] 주인공이 탄탄한 행정력을 갖출 수 있는 것도, 사대부들이 학문과 지식을 쌓고 과거를 치러 몰려오는, 체계적인 인재육성과 모집 체계가 유교를 통해 성립되어 있기 때문이다.[4] 작중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의 대화에서도 조선인들은 밥 먹는 것보다 논쟁을 더 좋아해 천주교 허용 여부를 둘러싸고 자기들끼리 다투느라 일 년 내내 보내고도 남을 거라고 까내린다.[5] 다만 작중 노부나가 역시 전술적 능력은 있지만, 전국시대 무장이라는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진 못한 것으로 묘사되고, 또 애초에 그의 패배 원인 중 하나가 유교를 기반으로 한 중국, 조선의 시스템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북경만 함락하면 된다든지, 임해군을 왕으로 내세워서 조선 정부가 어떤 협상의 여지도 없이 결사항전하게 만든다든지) 해당 노부나가의 대사를 본작에서 그의 입을 빌어 유교를 비판하려는 의도로 보기는 매우 애매하다.[6] 오늘날 역사학자들이 평가하는 조선 멸망의 시발점은 민씨 일가의 부정부패로 인해 병사들을 홀대함으로 생긴 임오군란으로 보고 있다.[7] 조헌, 김명원, 김성일 등. 나중에 자신의 손으로 숙청했던 정철도 사전편찬 및 외국서적 번역을 담당하는 부서에 임명한다.[8] 요바이, 와카슈도 등 문란한 성문화가 판치며, 봉건제라 단합이 잘 안 되고, 전국시대가 계속되어 치안이 불안정하고, 농민들을 사람 취급도 안 해주며 착취하는 점.[9] 황제의 태업과 재정 악화, 이로 인한 부정부패 및 군 기강의 해이와 이탈.[10] 제국주의의 원주민 탄압, 천주교를 지향하면서 정작 왕과 성직자들이 정부를 두는 위선.[11] 1부 초반에 교조화된 성리학 탈레반들로 주인공이 굉장히 고생했고 그것을 여러 노력과 개혁으로 어느 정도 완전히 해소한 뒤에 본격적인 내치에 들어가는 시점이었다.[12] 그것이 연산군의 원래 수명과 죽을 운명이라는 개풀 뜯어먹는 소리.[13] 만약 연산군 시절이 그 뒤로 10~20년만 더 이어졌어도 주인공의 개입으로 일본의 역사는 완전히 비틀려서 일본통일은 훨씬 뒤로 미뤄졌을 가능성이 높다.[14] 그렇다고 아예 선조 초창기로 점프해도 곤란한 게 그러면 히데요시가 원역사대로 그대로 쳐들어오기에 아주 가볍게 바다에서 다 수장시켜 버리게 된다.[15] 1582년이라는 날짜를 보면 알겠지만 주인공의 빙의 시기는 혼노지의 변이 터진 바로 그 시기다.[16]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차피 선조 즉위 직후로 환생해도 임진왜란까지는 무려 25년이나 되는 시간이 있다. 비록 선조가 정통성 문제로 왕권이 약했던 건 맞지만 주인공의 미래지식과 뛰어난 정치력, 그리고 주변의 인재들을 이용하면 시간을 들여 왕권을 크게 강화시킬 수 있고, 임진왜란쯤은 가볍게 방어하거나 예방이 가능하다. 당장에 선조 본인도 중기 이후에 왕권을 상당부분 강화했었다. 그리고 원역사 그대로 일어나는 왜란 따위는 이순신한테 판옥선 150척 주고 경상우수사로 만들어주기만 해도 쳐들어오는 적들은 바다에서 죄다 몰살이다.[17] 이는 사태가 진정된 후 변경된 명칭이며 사건 당일에는 삼랑진 전투라고 불렸다.[18] "진짜 당초 계획했던 시나리오하고 다 어긋나버린 전개로 나간 마당에 여기서 롤백안하고 계속 진행하면 도저히 작품 못 이어나감;; 도저히 오늘 연재분은 그 정도로 심각한 수준...아 진짜 아무리 늘어진다는 문제에 쫓기신다고 그러셔도 그렇지 이 타이밍은 좀 서술을 이어나가고 그런 다음에 전개를 속행하셔야지 이러시면 안 되잖아요....ㅠ"[19] 후기에 '컨디션이 좋아서 늦어질 줄 알았는데 빨리 썼다.'라고 적은 것을 보면 일단 회복은 된 듯. 차라리 이참에 한 달 정도 휴재하면서 총체적으로 리메이크하라는 반응도 많았다.[20] 작가가 삼랑진 전투라는 표현이 등장할 때마다 독자들이 수정 이전의 흑역사 버전을 떠올릴 것을 우려해서 의도적으로 명칭이 바뀌는 파트를 집어넣었을 가능성이 있다.[21] 단순한 감상이나 칭찬, 비판, 질문은 물론 온갖 뻘소리나 무의미한 등수놀이 댓글에도 하나씩 반응을 해줬다.[22] 오타, 문법 오류, 내용 오류를 지적한 경우 등.[23] 향군장 중 한명인 김익종이 속오군을 모아 달구벌에서 회전을 벌이자고 하자 신립은 남도 속오군 따위를 믿고 싸우라니 미쳤냐며 비난하고 곽재우와도 잠시 언쟁을 벌인다.[24] 정발판에서는 류성룡의 판단력이 가장 좋게 나온다. 작중 류성룡이 하는 예측은 거의 대부분 맞다.[25] 원래 웹소설 자체가 빠른 전개를 원하는 독자가 많다. 그리고 동시기에 통쾌한 전개로 한참 주가를 올리던 폭군고종대왕 일대기의 영향도 아마 꽤 컸을 것이다.[26] 물론 내용 진행이 좀 느려도 한 번에 몰아서 본다면 재밌게 볼 수 있을 테지만 종이책 시장도 아닌데 웹상에서 그게 될 리가.[27] 작품속내에서 몇 안되는 명나라를 두려워하지 않는 상 남자에 충성심 높은 맹장이어서 인기가 높았다. 작품 속 주인공이 용장보다 차분한 지장을 선호하기에 뛰어난 맹장은 드물었다.[28] 여진족과의 전투에서 원 역사보다도 엄청난 공훈을 쌓긴 했고 거기다 북원 원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은 굉장한 공훈이었다. 누르하치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관찰사로 부임했던 경력이 있는 부여주와 달리 생판 처음인 몽골 지역에서의 원정을 최소한의 사상자로 큰 소득을 끌어낸 것이니 말이다.[29] 특히 류성룡의 동행과 남만갑의 하사는 어쩌면~ 하는 기대감을 독자들에게 줬다. 류성룡은 자타 공인하는 천재였으니.[30] 신립이 혼자 빠르게 달려와 동래부를 구하려다가 오다가 쳐놓은 함정에 빠져서 포위섬멸 한다는 작전이다. 왜별기가 존재하니 자신의 부하한명을 왜별기로 위장해 위급한 동래부가 함락직전이니 빨리 구해달라고 하면 성격 급한 신립이 앞뒤 안보고 전속력으로 달려올 테니 그때 포위섬멸 한다는 식으로... 작품 속 신립성격상 옆에 류성룡이 없었다면 상당히 있을법한 전개. 동래부는 출성능력이 없으니.[31] 나라가 큰 위기상황에 빠졌을 때 자기 보신만 하며 다른 나라로 도망갈 궁리를 하는 게 아닌 앞장서서 모범을 보이며 군사와 백성을 고무하는 올바른 군주의 모습.[32] 작품 속 일본의 강화된 힘은 그냥 오다가 정치적으로 무리수를 둔 정도지 딱히 버프를 받거나 하지 않았다.[33] 초반부 일본이 승승장구 한건 어디까지나 예상 못한 지역에 대한 대규모 기습의 성공과 무자호란으로 북방에 정예병이 몰빵되어서 그랬을 뿐. 애초에 포병과 기병이 부족한 일본군은 한계가 뚜렷했다.[34] 현실의 임진왜란조차 조선이 당시 대비만 잘했어도 그런 재앙으로 번질만한 전쟁은 아니었다. 작중 훨씬 강화된 병사를 가진 조선은 말할 것도 없다.[35] 본래 작가가 작품 댓글에 일일이 답 댓글을 달 정도로 독자들과 소통을 하는 것도 문제였다.[36] 다만, 1부와는 달리 상희의 내면묘사가 계속 나오고 있다. 1부에서는 상희의 내면묘사가 없어 상희가 천녀라는 설도 있었다.[37] 애초에 연애 묘사가 혹평을 받는 이유는 주인공의 성격이 무미건조한 편이기 때문인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1부의 고다지-이장곤 커플의 묘사는 평가가 나쁘지 않았고 2부에서도 주인공이 아닌 상희 입장에서의 독백 부분은 평이 괜찮은 편이었다. 안 그래도 연애 묘사에 소질 없는 작가가 목석같은 주인공으로 연애씬을 쓰려 하니 잘 될 리가 있나.[38] 사실 작가가 여자캐릭터의 매력을 잘 못 만드는 건 아니다. 1부에서 가장 인기였던 다지는 물론이고 한없이 착한 중전도 평가가 나쁘지 않았고, 2부의 차차, 유키 같은 다른 여캐들도 독자들에게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다.[39] 게다가 2010년대 후반부터 노히로인 체제가 웹소설 전반에 대세가 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히로인이 나오면 닥치고 까고 보려는 사람들의 영향도 있다.[40] 사실 1부에서도 워낙에 욕을 먹다보니 중반부쯤 보면 갑자기 상희의 성격이 급격하게 변하기도 한다. 초반부는 분명 나올 때마다 이유모를 짜증감 가득에 아직 사귀는 것도 아니었던 주인공에 대한 장난 아닌 투기로 안 그래도 사간들과의 다툼으로 힘겨워하는 주인공을 못살게 굴었었는데 중반부쯤 가면 갑자기 능글맞게 괜찮은 아가씨 골랐냐고 묻기도 하는 둥 짜증만 내다가 쉬다가라고 대놓고 유혹하기도 하는 둥 다지에게 질투만 잔뜩 하다가 이해한다는 둥......[41] 주인공은 유럽의 인구증가가 원역사보다 훨씬 강해져서 나중에 조선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상희가 거기에다가 대고 고작 그런 것 때문에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그냥 놔둘 거냐는 이야기를 하며 강하게 비난했다.[42] 사실 우두법 전파자체야 크게 문제될게 없었다. 어차피 우두법 전파로 늘어난 인구를 유럽식량사정이 감당한다는 보장도 없고, 전국적으로 시행하는 국가의료정책을 계속 숨긴다는 것도 어려우니, 적당한 시점에 알려주고 생색내면 국가위신도 크게 올라가고.[43] 물론 국가정책상 전국적으로 시행하는 우두법을 계속 숨기는 건 어려운 일이기에 우두법 전파자체야 반대도 찬성도 개인의 의견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하다. 단지 독자들이 가장 비난하는 부분은 나라의 중전이 되겠다는 사람이, 그것도 유럽의 폭발적인 성장과 잠재력은 물론 나중에 일어나는 제국주의의 비극에 대한 미래를 이미 지식으로 알고, 전쟁도 충분히 겪어본 사람이 아무런 대책이나 책임감 없이 감정적으로만 나온다고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44] 이것도 상희의 억지다. 주인공은 자국의 역사를 좋게 바꾸고 싶은 거지 역사가 바뀌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게 아니다. 바뀐 역사가 꼬여서 조선에 해가 가는 게 싫은 거다.[45]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생각해보면 국가가 다르다고 의료기술이나 행위를 전파하지 않는다는 것은 의료인으로서는 용납하기 힘든 일이긴 하다. 문제는 상희는 한의사라 히포크라테스 선서따윈 없다. 학교마다 가상의 창작 선서를 하는 편이다.[46] 애초부터 상희는 조선의 발전이나 이익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좀 더 도덕적이고 인도주의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미래지식을 이용하는 것도 업적 도둑질이라며 거부했고 국가 발전을 위해 인부들을 이용하는 것도 왜 사람들을 힘들게 하냐며 비난했었다. 숙청과 전쟁에 대한 거부감은 당연하고.[47] 각각 능지형과 책형으로, 능지형은 원역사에서 연산군이 자신을 비판한 임희재에게 자행했던 것이 전부였기에 작중에선 전례 없이 잔혹한 형벌이었으며 책형은 고구려에만 기록이 있다.[48] 조선은 처형의 한도가 거열형이 끝이었고, 사람을 삶아죽이는 팽형은 사형수를 그냥 뜨거운 물에 담갔다가 빼고 망자 취급할 정도로 중국에 비하면 그나마 양반인 국가였다.[49] 거열형을 능지형과 책형에 비교했을 때, 차이는 '죽는 시간의 차이'다. 둘을 비교하면 그나마 거열형이 양반인 셈. 거기다 책형당한 자들을 전시하는 짓까지 저지른다.[50] 하지만 작중에선 책형이라 언급되었다지만 창으로 찌르거나 내장을 찢거나 십자가형과는 다르게 '피를 안보고 그저 죽을 때까지 묶어둘 뿐인' 형벌로 묘사되는데, 이 형벌이 거열형보다 잔혹한지는 의문이다.[51] 주인공의 피 보는데 주저없는 성격이 능지형에서 정점을 찍는데, 사람 생살이 한 점씩 뜯겨나가는 장면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비위 상해하는 묘사라고 해봐야 고작 '이건 안 되겠다' 독백하는 수준이다.[52] 실제로, 작중에서 주인공의 아내이자 같은 현대인 동반자인 상희가 2부에서 1부 연산군 때와 지금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거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53] 애초에 이재석은 별로 누군가를 일편단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도 아니고, 사랑이 영원할거라 믿을 만큼 순수하지도 않다.[54] 모델이 된 인물이 워낙 미인이고 성격도 주인공에게 일편단심인 게 귀엽고 순수해서 인기가 좋다.[55] 애초에 아무런 쓸모도 없는 내용이었다.[56] 사실 주인공이 주도적으로 뭔가를 퍼줘서 건주위가 큰건 아니다. 건주위가 강성해진 가장 큰 이유는 무자호란 중에 주인공이 해서3부를 박살내고 그 박살난 세력을 스스로 흡수해서 강성해진 게 가장 큰데 그걸 주인공이 퍼줬다고 할 순 없다.[57] 사실 이게 훨씬 현실적이다. 다른 작품들 중에서 명이 모종의 이유로 베이징에서 다른 곳으로 천도하거나, 아예 나라가 망해버리지 않았는데도 조선 정도의 국력을 가진 나라가 요동을 점령하는 걸 그냥 내버려두는 게 훨씬 비정상적인 일이다.[58] 때문에 다른 작품들 중에서도 개연성이나 현실성에 문제가 없는 작품에서는 조선이 요동을 먹는 즉시 명나라와 천명전쟁으로 사생결단을 내거나, 카이펑, 시안, 난징 등으로 수도를 옮겨서 안보를 확보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59] 직접 국경이 맞닿을 경우 명나라 측에서 "우리랑 싸울것도 아닌데 군사가 왜 필요하니?" 라는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60] 작중의 조선은 명나라와 전쟁을 일으키기 곤란한 상황이다. 물론 2부 후반에 들어서는 장수나 병사의 질적 측면에서 차원이 다를만큼 크게 앞서서 명과 싸운다면 이기겠지만, 왜란 중에 받은 은자가 엄청나게 많고 땅까지 넘겨 받은 마당에 명쪽에서 그 은혜를 뒤엎을만한 명분을 주지 않는 이상 먼저 전쟁을 걸 수는 없다. 게다가 명에서 전쟁을 하지 않고 무역제재을 걸면 더욱 크게 손해다. 작중에 설명이 나오지만 저 시절 명과의 교역이 제한당한다는건 현대 한국이 미중일 삼국과 무역제한이 걸리는 것 이상의 타격이다.(현실에선 멕시코여기에 해당.)[61] 작가가 전근대 밀리터리물을 강하게 의식하고 시작했는데다, 당대의 무기체계와 전술을 다양하게 활용하기 위해 작위적인 밸런스 조절까지 했던 전적이 있던 만큼, 조선에 위협적인 적이 주변에 아예 없어지면 내용이 심심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니 상당히 합리적인 의심이다.[62] 만약 건주군이 여기까지 간다면 적어도 연운 16주를 비롯한 하북 지역과 산동 반도까진 확보해야 본토 방위가 수월하다.[63] 2부가 아직 반도 넘게 남은 시점에서.[64] 이 시점에서 독자들 대부분이 북청/남명구도를 생각했었다.[65] 대역갤에서는 칼부림(웹툰)의 장면에서 따온 "폐주! 조선엔 언제 가는 거요?" 하고 묻는 짤방#이 흥하기도 했다.[66] 구호에 나서는 건 좋은데 아내와 딸들까지 다 데리고 나오는 것에서 위화감을 느꼈다.[67] 다만 근황파 장수들이 연락을 시도조차 안 했다는 것은 작가가 묘사가 부족했음을 인정했다.[68] 최근의 명군이 되어보세는 마치 Europa Universalis 시리즈같은 게임에서 게임 후반부에 초강대국을 만들기는 했는데, 전쟁을 더 해서 세계정복을 하자니 귀찮고, 그렇다고 접고 새 판을 하자니 여태까지 플레이한 것이 아까워서 그냥 켜놓고 국력 우위만 지키는 현상유지만 하면서 시간만 보내는 상황과도 비슷하다는 평이 있다. 이를 슈타인호프 작가의 입장에 대입하자면 긴장감 유발을 위해 강대한 적을 등장시키자니 삼랑진 사태와 같은 독자의 이탈이 염려되고, 완결시키고 차기작을 쓰자니 7년 전과 달리 대체역사 소설이 매우 다양해진 상황에서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경쟁해서 스테디셀러인 명군이 되어보세만큼의 판매량을 올릴 자신이 없을 것이다.[69] 원산지인 아메리카에서는 이 때문에 '세 자매 농법'이라고 하여 옥수수,호박,콩을 같이 재배하는 방식으로 지력보존을 꾀했다.영문 위키백과 참조.[70] 현대 한국의 아스팔트 포장도로도 조금만 무신경하면 뒤틀리고 갈라지는 곳을 지나가면서 흔히 볼 수 있다. 승차감이 편한 아스팔트도 이럴진대 전근대 도로 유지가 얼마나 힘든지 짐작할 수 있다.[71] 그나마도 청에서 도로가 발달한 지역은 북경을 위시한 화북일대이며, 상해를 비롯한 강남지역은 진흙기반의 지반 때문에 운하를 비롯한 수운이 발달했다. 대부분의 중상학파 유학자들이 북경쪽만 가봤기 때문에 이런 주장이 나온 것.[72] 고위 관료라면 이들을 보좌하는 실무진이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으로 조선 시대에 잡과를 시행한 건 이들을 천시해서가 아니라 현대의 기술직/전문직 직렬로 따로 선발했다고 봐야 한다. 공무원 인사행정은 특정 분야에 숙련된 '전문가'와 뭐든지 소화해낼 수 있는 '만능인(generalist)'으로 나뉠 수 있기 때문에 과거제의 과목을 비실용적이라고 비판하는건 너무 성급한 판단이다. 21세기인 지금이야 행정이 복잡하게 돌아가기 때문에 전문성이 상대적으로 강조되는 것일 뿐이다.[73]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한 그 우드로 윌슨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