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31 10:42:23

신립(명군이 되어보세!)

1. 개요2. 작중 행적3. 기타

1. 개요

명군이 되어보세! 2부의 등장인물로 원 역사의 신립과 동일인물이다.

원 역사와 마찬가지로 왕실의 외척이지만, 원 역사와 달리 평양군이라는 군호를 받았다. 신립의 본관인 평산(平山)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는데 정확한 한자는 불명이다.

주인공의 두 차례에 걸친 빙의로 인해 인생이 달라진 인물이지만, 한편으로 비슷한 인생을 살다 간 인물이기도 하다.[1]

2. 작중 행적

여진족들 사이에서 호랑이 병마사라고 불리고 있다. 그만큼 여진족 전문가로 여진족과의 싸움에서는 항상 대단한 전과를 올린다. 충성심 강하고 용맹하며, 30명의 여진족들한테 습격받았을 때 단신으로 절반 넘게 죽일 정도로 일신의 무예도 뛰어나 병사들에게도 신뢰 받는다. 단순히 싸움만 잘하는 건 아니라서 여진족의 약탈 습성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고 있었고, 1부에서 주인공에 의해 양성된 왜인여진이 전리품 풍습이 남아있는 걸 이해하고 이를 존중하며 중재하기도 했다.

명나라에게도 기죽지 않는 몇 안 되는 상남자이기도 한데, 무자호란 중 목단강에 다리를 짓고 이서 지역(조선이 할양을 요청하려고 생각했지만 아직은 명나라 영토였던)에 수비 거점을 짓자, 임시 어전회의에서는 우려를 표하나 신립만은 "거기 도적들이 많은 지역이니 상관(商館)을 크고 튼튼하게 지었다고 하면 되잖아"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문제는 자만심이 강해 다른 이를 잘 인정하지 않고, 질투심이 많아 다른 장수들을 경계하며, 성격이 급하고 공적에 대한 욕심이 많아 부하들에게도 성공이든 실패든 빠른 결과만을 원하는 등 성격에 문제가 많다. 덕분에 기병제일주의로 느려터진 보병을 짐으로 여기기도 한데, 대신 기마대를 다루는 솜씨 하나만큼은 조선 전체를 통틀어 최고이며 덕분에 평지에서의 회전을 선호한다.

물론 마냥 무식한 맹장은 아니라, 병법의 기본에 충실하고 지형지물을 철저히 파악해서 함정을 파서 대승을 거두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조련과 야전 지휘는 전문가지만 그 외의 행정 업무엔 전혀 관심이 없는 전형적인 맹장형 군인으로, 야전사령관으로는 흠잡을 데 없지만 지휘관으로서 중요한 소양인 차분함과 신중함과는 거리가 먼 조선의 조지 S. 패튼.

원 역사의 행적을 떠나서 재석이 별로 선호하지 않는 부류의 장군이지만[2] 북방에서 계속 승승장구하고 그 와중에 북원 원정까지 성공시키며 군호까지 하사받는 등[3] 주가를 올려서 결국 경인왜란에서도 기용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하남벌 전투(삼랑진 전투)에서 오만함으로 인한 방심과 조급한 성격이 겹쳐 지리멸렬한 지휘로[4] 왜군에게 참패를 당하고 본인도 포로가 된다. 이 전투로 본인이 그렇게 아끼던 오위군은 회복 불가능한 큰 피해를 입고 해체되었다. 비록 패배했지만 불리한 전황에서 철기를 이끌고 오다의 코앞까지 돌입하고 편전으로 오다의 어깨를 맞춰 부상을 입혔다.

그 용맹에 감탄한 오다가 포섭하려 하나 당연히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을 설득하러 온 임해군의 귀를 물어뜯어 짝귀로 만들어버린다. 결국 그의 조선 왕에 대한 충심을 인정한 오다는 소원대로 처형한 뒤 시신을 깨끗이 수습해 동생 나가마스 편으로 조선 왕에게 전달한다.

재석은 그 충성심을 기려 신립의 딸을 차남 영창대군과 결혼시키고 무묘에 배향해준다.[5] 정치적으로도 의미가 있는데, 현재 세자에 이어 왕위계승 2순위인 영창대군이 만일 이순신 같은 전설적인 무장의 사위라면 정국 불안정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지만, 신립은 이미 전사했기 때문에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경인왜란 초기 전황 악화의 장본인이지만 그 전에 세운 공도 엄청나고 최후까지 간지폭풍을 선보여서 미래에도 평이 크게 갈리는 인물이 될 듯하다. 이는 원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죽은 뒤에도 그 이름은 여전히 여진인들 사이에서 전설로 남아서, 누르하치의 명령을 왜곡해서 전혀 엉뚱한 평안도까지 치고 들어가는 뻘짓을 하려던 추옌을 말릴 때 야르하치는 네가 어렸을 때 들었던 '호랑이 병마사' 이야기를 생각해 보라면서 압박해 이 뻘짓을 막았고, 노역은 죽어도 하기 싫어하던 왜인여진 부대 병사들이 자신들과 함께하는 비호군 중대장 신경진이 그 신립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자발적으로 노역에 나서기도 했다.

조선이 세계에 많이 알려진 4부에서는 나폴레옹이 조아킴 뮈라에 비견되는 기병 전문가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뮈라와 신립은 장단점이 비슷한 인물이었으니 틀린 비유는 아닐 듯하다.

3. 기타

원 역사 신립의 누나는 정원군의 처 인헌왕후의 어머니였고, 신립의 장녀 신제순(申悌順)이 선조의 4남 신성군과 혼인하여 왕과 사돈지간인 인물이었다. 원 역사에서도 왕실의 외척이었다는 소리. 작중에서 하성군의 아들로 광해군과 임해군만 언급되지만 정황상 더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1578년생이고 하성군 일가가 임해군의 반역으로 멸족당한 시기가 1590년이기 때문에 당시 12세였던 신제순이 신성군과 혼인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는 역사가 바뀌어 하성군이 아니라 본작 오리지널 인물인 경성군이 왕이 되었기 때문에 대신 경성군의 차남 영창대군과 혼인하여 사돈지간이 되었다.[6]


[1] 이는 원 역사 중심의 인물과 사건에서 가공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였던 2부의 특징이기도 하다.[2] 재석은 성품이 차분하고 시야가 넓은 무인을 선호한다. 그래서 1부 당시 원 역사에서 나중에 권력을 쥔 후 타락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유순정을 키웠다.[3] 북원 원정을 성공시켜서 재석이 온갖 포상을 내려주면서도 공이 너무 커서 대체 뭐라고 칭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대놓고 말할 정도였다. 그걸 듣는 신립은 이보다 더 당당할 수가 없었다고 하며, 내려진 포상에 만족한다.[4] 다만 이것도 하남벌 전투의 상황을 본다면 나름 최선의 판단이었다. 자세한 것은 해당 회차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5] 하남벌 전투의 패장인지라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대신 왕의 사돈이라는 권위를 이용해 확실히 관철시키려는 재석의 의도였다.[6] 이 영창대군은 원 역사의 영창대군과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