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嬴晃명군이 되어보세! 4부의 등장인물.
원 역사의 야마시나노미야 아키라 친왕과 동일인물이나, 본작에서는 2부에서부터 일어난 각종 나비효과로 인해 인생이 크게 달라지게 되었다.
본명은 시즈노미야 아키라 친왕(靜宮晃親王)이었지만, 일본 황실에서 폐출되고 대진국 황제를 자칭할 때 진나라의 황성 영(嬴)을 붙여 이름을 영황(嬴晃)으로 바꾸었고, 청나라에 칭신해 진왕(秦王)으로 격하된 이후에도 여전히 영황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2. 작중 행적
후시미노미야 구니이에 친왕의 서장남.어린 시절부터 말썽꾸러기로 유명했으며 승려로 출가했다 원 역사와 똑같이 2살 연하인 고모와 스캔들이 나 친왕 작위를 박탈당하고 유폐되었다. 작중 일본은 대한과의 교류와 성리학의 영향으로 원 역사보다 근친혼이 터부시되는 경향이 강해져서 사촌간 결혼도 잘 안 하게 되었는데[1] 3촌인 고모(...)와 스캔이 났기 때문. 애초에 원 역사에서도 3촌과 근친했다고 일시적으로 폐적당하는 등 원래부터 3촌혼은 헤이안 시대 이후로 금지였다.
여기서는 도막파의 승려 묘운의 도움으로 고모를 데리고 일본을 탈출해 후송에 고용되어 가는 용병들 틈에 섞여 후송으로 도망쳤다. 본인은 정치 권력에는 뜻이 없는 한량이지만, 막부가 일본에서 내쫒아 후송으로 보낸 도막근황파 무사들이 그를 구심점으로 옹립하고 후송에 나라를 세워 세력을 키운 후 일본으로 쳐들어가려는 계획에 이용당한다.
태평천국과의 정전협정 이후 후송 측에서 부상군을 토사구팽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도막파의 선동으로 10만 부상군이 반란을 일으키자, 자신이 진시황의 후손이라며 대진국(大秦國)이라는 국가를 건국하고 황제로 추대되며 진시황, 호해, 자영에 이은 진나라 사세 황제라고 자칭하고 함양으로 가서 진나라를 재건하고 아방궁에 살겠다며 도막파도 당황시킨다.
이 상황을 청나라를 흔드는데 이용하려는 홍수전과 동맹을 맺고 청나라로 진격, 서안을 가볍게 점령하고 관중을 점거한다. 이 기가 막힌 상황에 일본에서는 아키라도 타카코도 모두 죽었고 저놈들은 사칭자라고 손절해 버린다.[2]
하지만 이후 서안을 개칭한 서경에서 기반을 다지자 항복한 왜인팔기를 이용해 도막파 지도부를 숙청하고 청나라에 귀부하여 청의 번국이 된다. 청나라에 귀부할 때도 직접 자금성에 입조하여 청나라의 믿음을 사고, 청나라의 번국이 된 후에는 외왕내제도 허례허식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든 왕실 용어도 번왕에 맞춰 낮추었다.
애초에 막부 타도 따위는 관심도 없었고 자신과 타카코가 행복하게 살기 위한 기반이 필요해서 도막파의 비위를 맞췄던 것으로, 아방궁을 새로 짓겠다는 호언과는 달리 대자은사를 환일궁으로 개명하여 궁으로 삼고 전장에서는 항상 선봉에 나서 부상을 입으면서까지 싸워 군대의 신망도 얻었으며, 고립된 내륙국인 대진국이 이대로 버텼다가는 말라 죽을 뿐이라는 정확한 현실 인식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여태까지의 또라이같은 행적도 전부 연기였고 근친상간이나 하는 무식한 또라이라고 생각하고 적당히 허수아비로 내세우려던 도막파가 역으로 이용당한 것이다. 그 이전에 도막파가 관중에서 웅거한 시점에서 완전히 잘못된 판단인 게, 그렇게 막부 타도를 하고 싶었으면 본토와 가까운 강소성이나 절강성에서 웅거했어야 했다. 다만 강소성이나 절강성에서 도막파가 나라를 세웠으면 후송은 그렇다 쳐도 대만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일대에 직할령을 갖고 있던 대한이 바로 삭제시켜 버렸을 테니, 도막파들의 계획은 애초에 현실성이 없었던 셈.
왕비와 둘이 알콩달콩 살려고 했는데 왕이 되니 업무가 너무 많다고 투덜거리면서도 군대를 절반으로 줄여 제대한 군인들은 농상공업에 투입하여 경제 발전 노력을 하며 출신 불문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고, 본인은 이미 목표를 달성했음에도 도막파가 주제도 모르고 계속 떠들자 마침 벵골 전쟁이 터져 청나라가 왜진국 병력을 대한군을 도와 파병하라고 명한 것을 기회로 도막파를 벵골 전쟁터로 보내버리는 등 상당히 괜찮은 정치를 한다. 전형적인 똑게 타입인 듯.
3. 기타
오직 타카코 하나만을 바라보는 근친순정남으로, 후궁들이 여럿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정치적 이유 때문에 내키지 않아 하며 들인 것이다.독자들을 황당함으로 몰아넣은 대진국의 수장인 데다 아키라의 근친 설정 때문에 밈적인 의미로 화제가 되었던 인물이지만, 정치적으로 매우 유능한 모습 때문에 독자들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송태후와 마찬가지로 4부에서 잘 만든 캐릭터로 재평가받았으며, 특유의 기괴함과 별개로 독자들의 화제를 부르며 대진국 편이 재미있다는 평을 듣게 만들었다.
사실 춘추전국시대 진나라 왕조는 영성 조씨(嬴姓趙氏)로[3] 전국시대 때부터 성에서 씨가 분리되어 씨를 주로 사용했기 때문에 진나라 황족의 후손을 자칭하려면 조씨를 쓰거나, 아니면 진나라의 후손을 강조하기 위해 하타 씨족처럼 진(秦)을 성으로 쓰는 게 더 맞다. 그러나 진나라 사세황제를 자칭하는 상황에서 구별이 필요했기 때문에 영성(嬴姓)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일본 황실은 성씨 자체를 쓰지 않는 일족이기도 하고.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후송이 자칭하는 송나라 조씨 왕조가 진나라 영성 조씨와 조상이 같은 조나라 영성 조씨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행보가 행보인지라 원 역사와 달리 일본 황실로 복귀할 가능성은 1도 없어 보인다. 애초에 대진국 자체가 관중이라는 중원에서도 꽤 서쪽에 세워진 나라라서 본국의 도움을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 독자들도 일본계 중원 왕조가 생기면 일본 본토와 거리가 가까운 강소성이나 절강성에서 생길 줄 알았지 뜬금없이 무슨 관중이냐는 평이었다. 위치상 독립국을 세우려면 관중보다 한중이 더 현실적이지 않냐는 평은 덤.
사실 2부에서 아시카가 氏가 진서대장군부로 존속했을 때부터 독자들은 일본계 중원 왕조가 탄생하는 게 아니냐는 가설을 제기하고 있었지만 3부에서 이미 사라졌다는 설정으로 나와 독자들이 아까운 설정을 버렸다고 비판했는데, 이게 4부에서 이상한 방향으로 나타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