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11대 왕비 文定王后 문정왕후[A] | |||
성렬인명문정왕후 聖烈仁明文定王后[A] | |||
존호 | 성렬인명(聖烈仁明)[3] | ||
시호 | 문정(文定)[A] | ||
출생 | 1476년(성종 7년) 12월 15일 (음력 11월 29일) | ||
조선 한성부 | |||
사망 | 1537년(인종 31년) 5월 16일[B] (음력 4월 8일) (60년 5개월 1일 / 22,081일) | ||
조선 한성부 경복궁[6] | |||
능묘 | 무릉(茂陵) | ||
재위 | 조선 왕세자빈 | ||
1488년 2월 ~ 1495년 1월 25일 | |||
조선 왕비 | |||
1495년 1월 25일 ~ 1506년 11월 18일 | |||
조선 왕대비 | |||
1506년 11월 18일 ~ 1537년 5월 16일[B]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3px" | 본관 | 거창(居昌) | |
전호 | □□전(□□殿) | ||
부모 | 거창부원군 신승선, 중모현주 흥안부부인 이씨 | ||
부군 | 조선 무종 | ||
자녀 | 1남 2녀(첫째는 공주, 둘째는 인종, 셋째 공주는 요절 | }}}}}}}}} |
1. 개요
명군이 되어보세! 1부의 등장인물로 원 역사의 폐비 신씨와 동일인물이다. 남편의 몸에 주인공 이재석이 빙의하면서 인생이 달라지게 된다.2. 작중 행적
원 역사처럼 지극히 선한 마음씨를 가진 인물로, 성종의 후궁 숙의 홍씨와 그 자식들의 반역 사건 때 그들을 살려달라고 빌기까지 했었다. 원 역사에서 비슷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엄연히 고증이다. 이재석은 연산군에게 물려받은 부인에 마음에 드는 외모가 아님에도[8] 그 선한 성품에 마음을 열고 중전 신씨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재석과의 사이에서 세자 이황을 낳았다. 원 역사의 폐세자 이황이 1498년생이었지만 본작의 세자 이황은 1501년생이기 때문에 엄밀히는 동명이인이라 봐야 한다.[9] 그러나 재석이 원 역사와 같은 해에 살해당하면서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는 비극을 겪게 된다.
재석의 사후 만5세였던 세자 이황의 나이 때문에 진성대군(원 역사 중종)을 내세울지 논의가 있었지만, 진성대군의 어머니였던 정현왕후가 세자를 지지하는 신하들의 세가 크다는 점을 들어 어린 세자를 즉위시키고 친정이 가능해질 때까지 장기간 수렴청정하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이 아들이 본작의 인종이 되어 원 역사의 명종 초기 시대까지 장기간 재위했다. 이때 원 역사의 문정왕후와 같은 성렬왕대비라는 존호를 받게 된다.
한편 재석이 사망할 당시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고 유복녀인 공주를 낳았지만, 영아 사망률이 높았던 조선 왕실답게 5개월 만에 사망하는 추가적인 비극이 있었다.
아들인 인종에게 왕대비로 대접받고 아들에게 효도 받으면서 살다가 자연사했는데, 왕대비가 된 뒤에도 여전히 아랫사람들에게 존댓말을 하는 등 온후한 성품을 유지한다. 슬프게도 죽을 때까지 남편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재석의 말인 폴쇄를 직접 돌볼 정도였다고. 후대의 왕비-황후들과 달리 성렬왕대비라는 존호만 나올 뿐 시호는 공개되지 않아 독자들은 문정왕후로 추정하고 있으나 장경왕후일 가능성도 있어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재석이 2부에서 경성군으로 환생한 후 상희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신씨를 그리워하며 무릉에 성묘 간다는 핑계로 신씨의 무덤 곁에 가서 그리움을 토로하는 등 한때는 진심으로 사랑했었지만, 이후 환생을 반복하고 다른 여자들을 만나면서 잊힌다.(...)
3부에서 저승의 상황을 다룬 외전에 따르면 저승에 오자마자 사랑하던 남편을 찾았으나 저승에 올라온 연산군의 영혼이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하자 재석이 아닌 것을 알고 크게 상심했으며, 같은 처지인 장조 비 의인황후 김씨와 자주 만나 서로를 위로하면서 진짜 재석의 영혼을 찾고 있다.
3. 기타
사실 문서에는 성렬왕대비라는 시호가 원 역사 문정왕후와 같아 문정왕후로 추정하는 거지, 장경왕후일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언제 사망했는지는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대체로 원 역사와 같은 시기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537년에 사망한 것이 맞아면 본작 인종의 재위기간 도중에 사망한 것이 된다.[10]
원 역사에서 연산군과 금슬이 좋은 부부였지만 본작에서는 이재석 때문에 연산군과의 사이가 파토나고(...) 저승에서 환생을 반복하는 이재석을 그리워하는 등 어떤 의미로는 본작의 피해자다.
연재가 장기화되면서 김상희와 올렝카 등에게 밀려 묻혔지만 설정상 이재석의 첫사랑으로, 2부 시점에서도 신씨를 나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긴 세월 살면서 환생을 반복하고 여러 여자를 만나다 보니 어느 순간 잊혔다.
원 역사에서는 1941년에 휘신공주를, 1942/1943년에 공주를, 1494년에 원자를, 1495년에 공주를, 1498년에 폐세자 이황을, 1500년에 창녕대군 이성을, 1501년에 아들 이인수(李仁壽)를 가졌고 여덟째를 유산하였는데 본작에서는 둘의 사이와 별개로 그 정도로 아이를 낳지는 않아 공주를 낳은 뒤 1501년에 인종을, 1507년[11]에 유복녀를 두는 등 자식이 적었고 간격 차도 꽤 났다.
[A] 작중 묘사 없음. 원 역사 성렬왕대비 문정왕후에 대응해서 추정.[A] [3] 성렬은 원 역사 성렬왕대비 문정왕후의 존호로 나머지 두 글자는 여기에 대응해서 추정. 원 역사에서 중전 시절 존호인 제인원덕(齊仁元德)은 1505년 받은 것으로 작중 존호 묘사 없음.[A] [B] 작중 묘사 없음. 원 역사와 동일하게 추정.[6] 작중 묘사 없음. 추정.[B] [8] 조선시대 기준으로 미인이어서 재석 눈에 그렇게 예쁘지 않다고 한다. 그래도 보다보면 제법 괜찮은 외모인 듯.[9] 원 역사에서도 1501년 아들을 낳았다가 곧 죽은 사건이 있기는 했다.[10] 본작 인종은 재위기간이 매우 길어서 1553년까지 재위했다.[11] 1506년 11월 18일에 이재석이 사망했는데 당시 임신 중이었음을 고려하면 1507년에 태어났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