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군이 되어보세! |
등장인물 (1부 · 2부 · 3부 · 4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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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多羅克勤君王 愛新覺羅 固爾瑪渾명군이 되어보세! 4부의 등장인물.
도로이 키치허 군왕으로, 한자로는 다라극근군왕 애신각라 고이마혼이다.
원 역사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가공인물이다.
2. 작중 행적
박락의 서차남. 1816년생. 세례명은 피에트로.만주 귀족 동가씨 출신 측복진의 소생. 황위 계승 경쟁자 중 가장 권력욕이 강하고 손속이 악독하여 대복진, 이복형제들, 삼촌들을 암살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암살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북경산 복숭아 통조림을 즐겨먹는다. 권력투쟁 과정에서 이복형제 및 삼촌들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악랄한 행보를 직접 보여 다른 후계자 후보들을 대부분 암살하거나 모략으로 축출하고 부황에게도 인정을 받아 후금 칸위의 계승자에 가장 가까워졌다. 럭더훈을 지지하는 청나라를 적대하는데 심지어 대한 태황태후 조문 사절로 와서 재석에게 자신을 대칸으로 지지해주면 청나라를 쳐서 건주일통을 이룰 때 산동 반도를 대한에 떼주겠다고 제안할 정도.
박락이 위독해지자 자라풍아를 보내 박락의 유언을 미끼로 두도를 유인해서 암살하려고 했으나 이를 눈치챈 두도가 가무사를 대신 보내면서 실패하고 후금 내전이 터지게 된다.
총 15만 명이 투입된 청군에게 물량으로 밀려 수도 상도를 빼앗기게 되자 대복진과 앵배르 주교를 인질로 잡고 막북으로 후퇴하여 싸움을 계속하지만 청군의 물량전에 연전연패한 데다 대한군까지 럭더훈을 지원하게 되고 대복진을 얀신에게 빼앗기게 되면서 부하들의 사기도 바닥나 군대가 거의 붕괴해가고, 대한군이 놓은 함정에 빠져 그나마 남은 부하들도 대한군의 회선포 사격의 제물이 되는 등 망하기 일보 직전이 되었다.
결국 1843년 12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야심을 완전히 포기, 앵베르 주교와 대원전국옥새까지 돌려준 후 가족과 남은 부하 3천을 데리고 러시아로 망명한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는 이들을 받아주자니 대한과 청과의 관계 악화가 부담되기도 해서 이들이 천주교 신자인 것도 고려해 이들을 교황령으로 보내주는데, 마침 자유주의자들을 막기 위한 병력이 필요하던 교황령은 천주교 신자인데다가 전투력 하나는 입증된 이들을 환영한다.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굴마훈을 '성 베드로의 로마를 지키는 카타이 근위대'의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굴마훈을 비롯한 카타이 근위대를 몬테카시노의 수도원에 주둔하게 한다. 이후에는 몬테카시노에 주둔하면서 프랑스군에게 고용되어 알제리 전선에서 용병으로 뛰거나 나폴리 왕국을 약탈하면서 돈을 모으고 있으며 적당한 영지 하나를 차지하고 영주가 되고 싶어한다. 알제리 전선에서 약 300명의 전사자를 냈지만 강제 개종[1]시킨 아랍인 200명이 자원입대했다. 몬테카시노에 주둔한 본대는 주변 도적들을 토벌하여 재물과 여자를 뺏아오고, 밀가루 위주의 유주식 식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나폴리에서 가축을 훔쳐오거나 산에서 맹수를 사냥하는데 덕분에 주변 도적도 소탕되고 맹수가 전멸해서 지역 주민들에게 큰 지지를 받고 있다.
마침 1849년 로마에서 자유주의자 봉기가 일어나 교황이 로마를 떠나자 자신이 교황을 보호하면서 로마 탈환이라는 공을 세워 교황에게 정식으로 영주 책봉을 받으려는 계획으로 로마 공화국 토벌전을 벌였으나 나폴레옹 2세가 파병한 프랑스군 4만 명이 개입해 로마를 탈환하여 닭 쫓던 개 신세가 된다.
그러던 중 자신들의 공을 뺏어간 프랑스로부터 보수는 섭섭치 않게 챙겨줄 테니 러시아-튀르크 전쟁에 프랑스 편으로 참전하라는 제안을 받는데,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자신의 입장에서 이교도인 튀르크 편을 들어 같은 그리스도교 형제이자 자신들에게 피난처를 마련해 준 러시아와 싸울 수는 없고 그렇다고 러시아로 가 러시아 편으로 싸울 수도 없어서 난감해하던 차에 이탈리아 통일을 노리는 사르데냐 왕국으로부터 사르데냐 편으로 전향해 이탈리아 통일에 협력하면 부유한 공작령 하나를 내어주겠다[2]는 제안을 받고 고민하나 이윽고 거절한다.
교황은 교황령을 수호한 공로로 굴마훈에게 축복과 함께 훈장을 수여했으나 교황령도 돈은 없어서 그것 외에는 다른 보상은 없었고 몬테카시노에 머무는 동안 태어난 아이들 때문에 먹여살려야 할 인원은 늘었는데 수입은 그대로라 고민이 더 깊어진다. 굴마훈을 포기하지 않은 나폴레옹 2세는 프랑스에 귀부하면 후작 작위와 함께 프랑스령 알제리의 도지사를 시켜주겠다고 계속해서 꼬드기는데 겉보기에는 좋은 조건같지만 굴마훈은 나폴레옹 2세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안 될 것 같은 직감을 느껴서 제안을 거절한다. 사르데냐 또한 계속해서 굴마훈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지만 사르데냐의 제안을 받아들여도 영불 연합군 편으로 참전한 사르데냐군 소속으로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러시아와 싸워야 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거절한다. 그러던 중 니콜라이 1세로부터 오스만과 평화 협상을 맺는 조건으로 카타이 근위대를 예루살렘으로 보내 성지 관리 임무를 맡기고 싶은데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3. 기타
굴마훈이라는 이름은 원 역사 매국노인 정명수의 만주식 이름 굴마훈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후대에는 여러모로 평가가 갈릴 인물. 후금을 실위로 몰락시킨 가장 직접적인 원흉이지만 개인의 탓이 아닌 유목정과 천주교 교리를 융합해 탄생한 후금 황실이 태생적으로 품고 있던, 언젠가는 터질 폭탄이기도 했고 굴마훈은 불합리한 체제에 순응하는 대신 뒤집으려다 좌절한 풍운아로도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 후금에서 러시아, 이탈리아를 거친 여정이 워낙 드라마틱해서 후대에 그가 주인공이거나 모티브를 딴 창작물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냉혹하고 손속에 망설임이 없지만 실패를 시원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무익한 살육은 자제하는 합리적인 면도 겸비하고 있고 자신을 따라 지구 반바퀴를 돌아온 부하들은 살뜰히 챙겨 부하들도 충성심이 변치 않는 모습을 보이는 등 보스 기질이 충만하다. 적자로 태어났다면 군주감임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을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