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12px -0px" | <tablebordercolor=#00ae4d> | }}} | |||
{{{#!wiki style="color: #fff; margin: -0px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 자치구 | ||||
동구 | 중구 | 유성구 | 대덕구 | }}}}}}}}} |
{{{#!wiki style="margin:-12px -0px" | <tablebordercolor=#2d2926> | }}} | |||||||||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min-height: 26px; color: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fff> 행정동 | 법정동 | |||||||||
<colbgcolor=#bdb76b> 중앙동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원동 | 정동 | 중동 | 소제동 | 신안동 | }}} | ||||
신인동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신흥동 | 인동 | }}} | |||||||
효동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효동 | 천동 | 구청 가오동 | }}} | ||||||
판암1동 | {{{#!wiki style="margin: -16px -11px -5px;" | }}} 판암동 | |||||||||
판암2동 | |||||||||||
대동 | 대동 | ||||||||||
용운동 | 용운동 | ||||||||||
자양동 | 자양동 | ||||||||||
가양1, 2동 | 가양동 | ||||||||||
용전동 | 용전동 | ||||||||||
성남동 | 성남동 | ||||||||||
홍도동 | 홍도동 | ||||||||||
삼성동 | 삼성동 | ||||||||||
대청동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추동 | 효평동 | 직동 | 용계동 | 마산동 | |||||
세천동 | 신촌동 | 사성동 | 내탑동 | 오동 | |||||||
주촌동 | 신상동 | 신하동 | 비룡동 | 주산동 | }}} | ||||||
산내동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낭월동 | 대별동 | 이사동 | 대성동 | 장척동 | |||||
소호동 | 구도동 | 삼괴동 | 상소동 | 하소동 | }}} |
대전광역시의 자치구 {{{#!wiki style="margin: -5px -10px; display: inline-table" | <tablebordercolor=#fff,#1c1d1f><tablebgcolor=#fff,#1c1d1f> | 동구 東區 Dong-gu | }}} | ||
<colbgcolor=#2d2926><colcolor=#fff> 구청 소재지 | 동구청로 147 (가오동) | ||||
광역자치단체 | 대전광역시 | ||||
하위 행정구역 | 16동[1] | ||||
면적 | 136.68㎢ | ||||
인구 | 218,640명[2] | ||||
인구밀도 | 1,599.64명/㎢[3] | ||||
구청장 | | 박희조 (초선) | |||
구의회 | | 5석[4] | |||
| 4석[5] | ||||
| 1석[6] | ||||
시의원 | | 3석[7] | |||
국회의원 | | 장철민 (재선) | |||
지역번호 | 042 | ||||
링크 | | | | | |
[clearfix]
1. 개요
대전 동구청 |
둔산신도시 및 유성구 개발의 영향으로 대덕구와 함께 도심 공동화를 경험하고 있는 자치구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대전의 오랜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한 곳이다. 동구에서 담당하던 중심지 기능이 1990년대부터 서구의 신시가지로 옮겨졌다는 면에서 광주광역시의 경우와 비슷하다.
거대한 유리궁전 구청이 있다. 대전에서 세수가 가장 적게 걷히는 지역인데도 전 구청장인 이장우가 자기 치적을 위해 구청을 웬만한 시·도청 못지않게 크고 화려하게 지어놓는 실책을 범했고[8][9], 그런 탓에 동구는 대전의 다른 자치구들에 비해 빚이 많고 재정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10]
이후 2018년 부임한 황인호 구청장 체제에서 공무원에게 수당을 전액 지급하면서도 빚을 조기 상환하였고, 예산 규모로 대전 5개 구 중 유성구를 제치고 2위에 오르는 등 현재는 많이 호전된 상태이다.
지역에 있는 대학으로는 대전대학교, 우송대학교, 우송정보대학, 대전보건대학교, 한국폴리텍Ⅳ대학이 있다. 때문에 빌라들이 엄청나게 많다.
2. 상징
동구의 CI | |||
동구민을 위한 혁신의 바람 동구가 일으키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 {{{#!folding [ 역대 CI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81818,#e5e5e5 | <colbgcolor=#fff,#2d2926> 1995년 ~ 2000년 | }}}}}}}}}}}}}}} |
동구의 브랜드 슬로건 | |||
자유로운 공직 분위기로 참신한 아이디어를 바로바로 소통하고, 구민의 욕구를 제대로 반영한 정책을 적기에 바로 추진해 동구를 새롭게 구민을 신나게 만드는 행정을 추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 {{{#!folding [ 역대 브랜드 슬로건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81818,#e5e5e5 | <colbgcolor=#fff,#2d2926> | 2022년 새로운 브랜드 슬로건이 나오기 전까지 사용된 슬로건 | }}}}}}}}}}}}}}} |
동구의 구정 슬로건 |
'~를 새롭게, 구(시,군)민을 신나게'라는 패턴은 대전 동구 말고도 민선 8기 국민의힘 지자체 상당수[11]가 걸어놓은 구(시,군)정 슬로건이기도 하다. 즉 아류작.# |
3. 지역 특징
작은 마을이던 한밭이 대전역으로 경부선 철도가 들어오면서 대전광역시로 급성장을 한 점으로 봤을때 동구, 그 중에서도 소제동, 정동, 중동, 원동, 신안동은 대전 역사의 출발점과도 같은 기념비적인 지역이다. 원동과 정동 각 일부가 과거 대전리였다.하위 법정동명에 유난히 외자 이름이 많은 동네이기도 하다. 중동, 정동, 인동, 효동, 원동, 대동, 천동 등.[12][13] 또한 삼성동도 있는데, 서울 강남구의 삼성동과는 분위기가 매우 다른 동네다. 자양동, 가양동도 마찬가지다. 용운동에는 대전대학교가 있는데 유명 야구선수 김태균과 류현진이 이 학교 출신이며, 한 때 음치개그로 잘 나가던 개그맨 김미연도 이 학교 무용학과 출신이다.
옥천군 방향으로 경부선 세천역이 있는데, 이 역의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로. 대청동(구 동면) 및 산내동(구 산내면)은 1989년 대덕군 폐지와 함께 면에서 동으로 전환된 지역으로, 아직까지 시골 지역으로 남아있다. 산내동은 산내 포도가 유명하다. 산내동 중 낭월동엔 천주교 공동묘지가 있으며, 한국 전쟁의 비극인 '산내 양민학살'의 현장도 이 곳에 위치해 있다.
4. 인구
대전광역시 동구 인구 추이 (1980년~현재) |
1977년 9월 1일 대전시 동부출장소 + 북부출장소 → 대전시 동구 설치 |
1980년 272,812명 |
1983년 2월 15일 충청남도 대덕군 회덕면 → 대전시 동구 편입 |
1985년 337,884명 |
1989년 1월 1일 충청남도 대전시 → 대전직할시 승격 舊회덕면 지역, 대덕군 신탄진읍, 오정동·대화동 지역을 대덕구로 분리 |
1990년 302,551명 |
1995년 272,705명 |
2000년 247,381명 |
2005년 232,673명 |
2010년 248,835명 |
2015년 239,579명 |
2020년 223,021명 |
2024년 10월 218,640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5만 명 |
행정동별 인구 통계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효동 22,903명 |
용운동 21,410명 | |
용전동 20,158명 | |
산내동 19,622명 | |
가양2동 18,949명 | |
신인동 15,289명 | |
대동 14,120명 | |
삼성동 13,272명 | |
가양1동 12,952명 | |
판암1동 12,060명 | |
홍도동 11,303명 | |
성남동 11,021명 | |
자양동 10,877명 | |
판암2동 7,985명 | |
중앙동 3,848명 | |
대청동 2,268명 | |
2023년 11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그래프 최대 값은 2.5만 명 |
===# 행정동별 인구 #===
중앙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3년 1월 1일 행정동제 실시 원동, 신안동, 소제동, 정동, 중동(법정동) → 원동, 신안동, 소제동, 정동, 중동(행정동) |
1966년 32,628명(원동 3,712명 + 신안동 8,318명 + 소제동 8,315명 + 정동 5,658명 + 중동 6,625명) |
1970년 37,537명(원동 4,014명 + 신안동 9,042명 + 소제동 11,429명 + 정동 6,208명 + 중동 6,844명) |
1975년 38,356명(원동 3,243명 + 신안동 8,535명 + 소제동 13,633명 + 정동 6,709명 + 중동 6,236명) |
1980년 37,331명(원동 2,673명 + 신안동 9,157명 + 소제동 14,725명 + 정동 5,154명 + 중동 5,622명) |
1985년 32,331명(원동 2,307명 + 신안동 7,766명 + 소제동 13,985명 + 정동 3,961명 + 중동 4,312명) |
1990년 24,379명(원동 1,594명 + 신안동 6,103명 + 소제동 9,892명 + 정동 3,371명 + 중동 3,119명) |
1995년 14,057명(원동 806명 + 신안동 3,974명 + 소제동 6,245명 + 정동 1,821명 + 중동 1,211명) |
1998년 12월 14일 원동 + 정동 + 중동 → 중앙동 합동 대1동+ 신안동 → 대신동 합동[14] |
2000년 14,182명(중앙동 2,761명 + 대신동 6,695명 + 소제동 4,726명) |
2005년 11,646명(중앙동 2,072명 + 대신동 5,656명 + 소제동 3,918명) |
2008년 9월 1일 중앙동 + 대신동 일부 + 소제동 → 중앙동 합동 |
2010년 9,208명 |
2015년 6,512명 |
2020년 4,963명 |
2023년 9월 3,888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4만 명 |
효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3년 1월 1일 행정동제 실시 효동 + 천동 + 가오동 → 효동 신설 |
1966년 9,073명 |
1970년 12,824명 |
1975년 16,565명 |
1980년 18,095명 |
1985년 19,138명 |
1990년 21,218명 |
1995년 14,843명 |
2000년 16,132명 |
2005년 13,597명 |
2010년 26,528명 |
2015년 28,583명 |
2020년 25,338명 |
2023년 9월 23,044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만 명 |
신인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3년 1월 1일 행정동제 실시 인동, 신흥동(법정동) → 인동, 신흥동(행정동) |
1966년 17,358명(인동 9,603명 + 신흥동 7,755명) |
1970년 19,723명(인동 10,023명 + 신흥동 9,700명) |
1975년 22,017명(인동 10,399명 + 신흥동 11,618명) |
1980년 24,175명(인동 10,942명 + 신흥동 13,233명) |
1985년 22,060명(인동 9,512명 + 신흥동 12,548명) |
1990년 20,344명(인동 9,469명 + 신흥동 10,875명) |
1995년 14,974명(인동 7,095명 + 신흥동 7,879명) |
2000년 12,301명(인동 5,928명 + 신흥동 6,373명) |
2005년 10,599명(인동 5,526명 + 신흥동 5,073명) |
2008년 9월 1일 인동 + 신흥동 → 신인동 합동 |
2010년 14,248명 |
2015년 13,002명 |
2020년 12,322명 |
2023년 9월 15,315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5만 명 |
판암1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3년 1월 1일 행정동제 실시 판암동 + 삼정동 → 판암동 신설 |
1966년 6,226명 |
1970년 7,986명 |
1975년 10,767명 |
1980년 13,115명 |
1985년 14,359명 |
1990년 17,025명 |
1992년 9월 1일 판암동 → 판암1동, 판암2동 분동 |
1995년 15,049명 |
2000년 14,778명 |
2005년 13,136명 |
2010년 11,470명 |
2015년 10,325명 |
2020년 12,503명 |
2023년 9월 12,083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75만 명 |
판암2동 인구 추이 (1995년~현재) |
1992년 9월 1일 판암동 → 판암1동, 판암2동 분동 |
1995년 20,346명 |
2000년 17,280명 |
2005년 14,152명 |
2010년 12,337명 |
2015년 10,550명 |
2020년 8,811명 |
2023년 9월 8,006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만 명 |
용운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3년 1월 1일 행정동제 실시 용운동(법정동) → 용운동(행정동) |
1966년 4,693명 |
1970년 6,580명 |
1975년 8,409명 |
1980년 9,309명 |
1985년 12,994명 |
1990년 26,574명 |
1995년 22,943명 |
2000년 19,690명 |
2005년 23,147명 |
2010년 21,895명 |
2015년 20,293명 |
2020년 18,610명 |
2023년 9월 21,439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5만 명 |
대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3년 1월 1일 행정동제 실시 대동 + 자양동 → 대동 신설 |
1966년 19,219명 |
1970년 7월 1일 대동 → 대1동, 대2동, 자양동 분동 |
1970년 20,515명(대1동 7,998명 + 대2동 12,517명) |
1975년 24,921명(대1동 8,692명 + 대2동 16,229명) |
1980년 28,808명(대1동 8,850명 + 대2동 19,958명) |
1985년 29,163명(대1동 8,920명 + 대2동 20,243명) |
1990년 21,432명(대1동 6,924명 + 대2동 14,508명) |
1995년 15,416명(대1동 4,749명 + 대2동 10,667명) |
1998년 12월 14일 대1동 + 신안동 → 대신동 합동 대2동 → 대동 개칭[15] |
2000년 9,231명 |
2005년 8,150명 |
2008년 9월 1일 대신동 일부 + 대동 → 대동 합동 |
2010년 12,120명 |
2015년 13,280명 |
2020년 15,175명 |
2023년 9월 14,142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만 명 |
자양동 인구 추이 (1970년~현재) |
1970년 7월 1일 대동 → 대1동, 대2동, 자양동 분동 |
1970년 5,629명 |
1975년 8,383명 |
1980년 10,639명 |
1985년 15,254명 |
1990년 18,089명 |
1995년 17,871명 |
2000년 15,896명 |
2005년 15,320명 |
2010년 12,352명 |
2015년 11,151명 |
2020년 10,582명 |
2023년 9월 10,950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만 명 |
가양1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3년 1월 1일 행정동제 실시 가양동 + 용전동→ 가양동 신설 |
1966년 9,635명 |
1970년 13,582명 |
1975년 20,547명 |
1979년 5월 1일 가양동 → 가양동, 용전동 분동 |
1980년 31,186명 |
1982년 9월 1일 가양동 → 가양1동, 가양2동 분동 |
1985년 25,884명 |
1990년 26,330명 |
1995년 21,042명 |
2000년 18,000명 |
2005년 16,386명 |
2010년 14,594명 |
2015년 15,440명 |
2020년 13,994명 |
2023년 9월 13,014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25만 명 |
가양2동 인구 추이 (1985년~현재) |
1982년 9월 1일 가양동 → 가양1동, 가양2동 분동 |
1985년 18,341명 |
1990년 23,624명 |
1995년 27,299명 |
2000년 25,506명 |
2005년 24,353명 |
2010년 23,418명 |
2015년 21,401명 |
2020년 18,475명 |
2023년 9월 18,996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75만 명 |
용전동 인구 추이 (1980년~현재) |
1979년 5월 1일 가양동 → 가양동, 용전동 분동 |
1980년 7,764명 |
1985년 13,472명 |
1990년 19,262명 |
1995년 17,444명 |
2000년 21,662명 |
2005년 22,616명 |
2010년 21,379명 |
2015년 21,174명 |
2020년 20,607명 |
2023년 9월 20,184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25만 명 |
성남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3년 1월 1일 행정동제 실시 성남동(법정동) → 성남동(행정동) |
1966년 15,676명 |
1970년 7월 1일 성남동 → 성남1동, 성남2동 분동 |
1970년 20,872명(성남1동 10,122명 + 성남2동 10,750명) |
1975년 24,233명(성남1동 11,810명 + 성남2동 12,423명) |
1980년 26,390명(성남1동 13,175명 + 성남2동 13,215명) |
1985년 27,414명(성남1동 14,105명 + 성남2동 13,309명) |
1990년 22,940명(성남1동 10,994명 + 성남2동 11,946명) |
1995년 16,094명(성남1동 7,031명 + 성남2동 9,063명) |
2000년 13,225명(성남1동 5,741명 + 성남2동 7,484명) |
2005년 14,593명(성남1동 5,350명 + 성남2동 9,243명) |
2008년 9월 1일 성남1동 + 성남2동 → 성남동 합동 |
2010년 12,273명 |
2015년 13,827명 |
2020년 12,341명 |
2023년 9월 11,030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75만 명 |
홍도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3년 1월 1일 행정동제 실시 홍도동(법정동) → 홍도동(행정동) |
1966년 5,919명 |
1970년 7,565명 |
1975년 8,587명 |
1980년 10,779명 |
1985년 14,265명 |
1990년 16,620명 |
1995년 14,952명 |
2000년 15,356명 |
2005년 13,594명 |
2010년 13,894명 |
2015년 12,477명 |
2020년 11,051명 |
2023년 9월 11,306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75만 명 |
삼성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3년 1월 1일 행정동제 실시 삼성동(법정동) → 삼성동(행정동) |
1966년 20,213명 |
1970년 7월 1일 삼성동 → 삼성1동, 삼성2동 분동 |
1970년 20,815명(삼성1동 14,411명 + 삼성2동 6,404명) |
1975년 25,925명(삼성1동 15,767명 + 삼성2동 10,158명) |
1980년 29,661명(삼성1동 16,632명 + 삼성2동 13,029명) |
1985년 30,821명(삼성1동 15,516명 + 삼성2동 15,305명) |
1990년 26,847명(삼성1동 11,298명 + 삼성2동 15,549명) |
1995년 21,546명(삼성1동 8,619명 + 삼성2동 12,927명) |
2000년 17,973명(삼성1동 6,652명 + 삼성2동 11,321명) |
2005년 15,272명(삼성1동 5,107명 + 삼성2동 10,165명) |
2008년 9월 1일 삼성1동 + 삼성2동 → 삼성동 합동 |
2010년 20,003명 |
2015년 17,064명 |
2020년 14,590명 |
2023년 9월 13,325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25만 명 |
대청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6년 11,176명 |
1970년 10,836명 |
1975년 10,675명 |
1980년 5,707명 |
1985년 5,441명 |
1989년 1월 1일 대덕군 동면 → 대전직할시 편입 및 폐지 대덕군 동면 → 추동, 세천동 분리 |
1990년 4,658명(추동 2,067명 + 세천동 2,591명) |
1995년 3,972명(추동 1,780명 + 세천동 2,192명) |
1998년 12월 14일 추동 + 세천동 → 대청동 합동 |
2000년 3,310명 |
2005년 3,064명 |
2010년 3,129명 |
2015년 2,907명 |
2020년 2,491명 |
2023년 9월 2,286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25만 명 |
산내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6년 10,588명 |
1970년 10,811명 |
1975년 12,470명 |
1980년 13,088명 |
1985년 14,777명 |
1989년 1월 1일 대덕군 산내면 → 대전직할시 편입 및 폐지 대덕군 산내면 → 산서동, 산내동 분리 |
1990년 13,509명 |
1995년 14,857명 |
2000년 12,859명 |
2005년 13,048명 |
2010년 19,987명 |
2015년 21,593명 |
2020년 21,168명 |
2023년 9월 19,679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25만 명 |
5. 경제
대전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꼽힌다. 사실 원래부터 낙후된 동네는 아니었고, 오히려 동구는 대전에서 중심지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서구와 유성구 일대가 개발되면서 동구는 점점 쇠퇴하기 시작한다. 둔산신도시에 정부대전청사가 생기고, 대전광역시청 등 관공서와 공공기관, 기업체와 상점들이 이곳로 이동하며 기존 원도심인 동구가 쇠퇴하게 된 것이다.[16]그나마 다행인 건 대전역과 대전복합터미널가 있어 대전의 관문역할을 하고 초대형 철도기관 본사들이 위치해 있는 철도기관 공동사옥이 동구에 소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외부인들로부터 수입을 벌어들이는 형국이다. 이후 이 일대가 혁신도시로 지정되어 재개발이 단계적으로 진행 중이어서 앞으로 미래가 그리 어둡지는 않은 편이다.
5.1. 금융
6. 의료기관
종합병원인 대전한국병원(220병상) 말고는 특별한 의료기관은 없다. 다만 동구와 같은 구도심인 중구에 대학병원 2개가 있어 이용하는데 큰 불편함은 없다.7. 정치
자세한 내용은 동구(대전광역시)/정치 문서 참고하십시오.8. 하위 행정구역
대청동은 舊 대덕군 동면, 산내동은 舊 대덕군 산내면이었으며, 나머지 지역은 1989년 직할시(광역시) 승격 전 대전시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자세한 내용은 동구(대전광역시)/행정 문서 참고하십시오.
9. 여담
- 버스 정류장에 있는 대전 지역 관광명소들을 살펴보면 동구만 제외 되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0. 출신 인물
자세한 내용은 분류:동구(대전) 출신 인물 문서 참고하십시오.- 김준호 : 코미디언[21]
- 김창수 : 정치인, 민선 3기 대전광역시 대덕구청장, 18대 국회의원
- 김학철 : 배우
- 매직박 : 치과의사 겸 마술사, 트위치 스트리머
- 박도현 : 한화생명e스포츠, 프로게이머
- 박병석 : 정치인, 16~21대 국회의원, 21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 박팽년 : 조선 전기의 문신
- 설억만 : 독립유공자
- 송좌빈 : 정치인
- 송중기 : 배우[22]
- 신승훈 : 가수
- 이진숙 : 교수, 제19대 충남대학교 총장, 제29대 충남대학교 공과대학 학장.
- 장철민 : 21대 국회의원
- 재이 : 가수, 걸그룹 STAYC의 멤버
- 정민철 : 야구인, 한화 이글스 전 단장(2019~2022), 현 MBC, MBC SPORTS+ 야구 해설위원(2015~2019, 2023~)
- 타미르 : 마두금 연주자
- 한대화 : 야구인, 한화 이글스 전 감독(2010~2012)
- 황인호 : 정치인, 민선 6기 대전광역시의원, 민선 7기 대전광역시 동구청장
- 혜성 : 보이그룹 VANNER의 멤버
- 혁 : 보이그룹 VIXX의 멤버
- 흐림 : 가수 겸 유튜버
- MJ : 유튜버
- 키나 : 걸그룹 FIFTY FIFTY의 멤버
- 손지영(모델) : 배우 겸 모델 겸 인플루언서
11. 관련 문서
[1] 45개 법정동, 16개 행정동[2] 2024년 10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3] 2024년 10월 기준.[4] 동구 가선거구 (중앙동, 신인동, 효동, 홍도동, 삼성동, 산내동): 강정규, 오관영
동구 나선거구 (판암1동, 판암2동, 용운동, 대동, 자양동, 대청동): 박철용
동구 다선거구 (가양1동, 가양2동, 용전동, 성남동): 박영순
동구 비례대표: 김영희[5] 동구 가선거구 (중앙동, 신인동, 효동, 홍도동, 삼성동, 산내동): 성용순, 이재규
동구 나선거구 (판암1동, 판암2동, 용운동, 대동, 자양동, 대청동): 정용
동구 다선거구 (가양1동, 가양2동, 용전동, 성남동): 이지현[6] 동구 나선거구 (판암1동, 판암2동, 용운동, 대동, 자양동, 대청동) 김세은 의원 사직으로 인한 공석[7] 동구 제1선거구 (중앙동, 신인동, 효동, 홍도동, 삼성동, 산내동): 송인석 (초선)
동구 제2선거구 (판암1동, 판암2동, 용운동, 대동, 자양동, 대청동): 이상래 (초선)
동구 제3선거구 (가양1동, 가양2동, 용전동, 성남동): 정명국 (초선)[8] 이 여파로 이장우는 5회 지방선거에서 낙선하나, 이후 2016년 말 전까지는 유효했던 친박 버프를 받아 두 번이나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거기에 대전광역시장까지 되는 업적도 이루었다.[9] 하지만 동구청 신청사 건립 추진 이전의 이장우는 대전복합터미널 추진 및 조기완공, 철도기관 공동사옥 유치, 대전 문학관 건립 등 그만큼 업적도 많다. 심지어 국회의원 시절에는 대전역세권개발사업까지 따냈을 정도 이다. 당시에 이미 쇠락해가던 동구 입장에서는 대부분 미래를 건 역점사업이었고, 이를 성공적으로 추진한 덕분에 지금 동구를 먹여살리고 있는 것 대부분이 이장우 때 이루어진 사업이다. 특히 대전복합터미널은 몇년째 삽도 못 뜨고 있는 유성복합터미널과는 딴판으로 속전속결로 끝난 덕분에[23] 지금까지도 대전의 주요 관문이자 동구-대덕구 일대의 핵심 상권으로 기능하고 있을 정도 이다. 확실히 무능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마지막으로 당시 숙원사업 중 하나인 동구청 신청사를 유리궁전으로 지으면서 엄청난 예산낭비를 하는 바람에 대부분의 치적은 묻히고 지금은 대부분 동구 예산을 파탄낸 구청장으로만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10] 당시 동구 공무원들의 월급을 지급할 수 있냐 없냐 할 정도로 심각하게 쪼들렸다. 다행히 시에서 지원을 해준 덕에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이 때문에 한때 지역 사회에서 큰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11] 서울 강동구, 인천 옹진군, 충남 아산시, 경남 창녕군 등. 심지어 광역지자체인 충북(도지사: 김영환)도 '충북을 새롭게, 도민을 신나게'라는 도정 슬로건을 걸어놨다.[12] 대전역 주변은 거의 외자 돌림. 동구도 그렇지만 대전광역시 전체적으로도 한글자짜리 동명이 많다. 유성구에는 궁동, 갑동, 죽동 등 서구에는 변동, 내동. 대덕구에는 법동, 장동. 중구에는 목동.[13] 일제강점기부터 발전한 다른 지역들(서울, 대구, 부산, 목포, 광주 등)은 n가(일제강점기에는 n정목(쵸메, 丁目)) 식의 법정동 지명이 그대로 존치되었으나 대전은 각 정목들이 모조리 쪼개져 각각의 동으로 분리되는 바람에 이렇게 된 것이다. 단적인 예로 일제강점기 당시 원동, 인동, 효동은 모두 혼마치로 묶여있었다.(정확히는 원동이 혼마치잇쵸메(本町一丁目), 인동이 혼마치니쵸메(本町二丁目), 효동이 혼마치산쵸메(本町三丁目))[14] 일시적으로 舊대1동 지역의 인구가 합산됨.[15] 일시적으로 舊대1동 지역 인구가 제외됨.[16] 다만, 1977년 중구가 분리될 때 충남도청, 대전시청을 비롯한 정치 중심지, 으능정이 거리로 대표되는 상업 중심지, 중앙로-계룡로 일대의 기업들, 신흥 택지지구로 개발중이던 태평동까지 싹싹 긁어가는 바람에 동구의 위상은 푹 꺾인 상태였다. 이 때문에 중구는 도심 공동화가 진행된 후에도 썩어도 준치라고 남아있는 기업체들과 공공기관들이 있어서 버티고 있는 반면에 동구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심하게 낙후될 수밖에 없었다.[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20] 구 오정신용협동조합[21] 실질적인 성장은 서구 가수원동에서 했다. 현재 본가도 가수원동에 있다.[22] 정확히는 대전 편입 이전의 대덕군 출신이다.
동구 나선거구 (판암1동, 판암2동, 용운동, 대동, 자양동, 대청동): 박철용
동구 다선거구 (가양1동, 가양2동, 용전동, 성남동): 박영순
동구 비례대표: 김영희[5] 동구 가선거구 (중앙동, 신인동, 효동, 홍도동, 삼성동, 산내동): 성용순, 이재규
동구 나선거구 (판암1동, 판암2동, 용운동, 대동, 자양동, 대청동): 정용
동구 다선거구 (가양1동, 가양2동, 용전동, 성남동): 이지현[6] 동구 나선거구 (판암1동, 판암2동, 용운동, 대동, 자양동, 대청동) 김세은 의원 사직으로 인한 공석[7] 동구 제1선거구 (중앙동, 신인동, 효동, 홍도동, 삼성동, 산내동): 송인석 (초선)
동구 제2선거구 (판암1동, 판암2동, 용운동, 대동, 자양동, 대청동): 이상래 (초선)
동구 제3선거구 (가양1동, 가양2동, 용전동, 성남동): 정명국 (초선)[8] 이 여파로 이장우는 5회 지방선거에서 낙선하나, 이후 2016년 말 전까지는 유효했던 친박 버프를 받아 두 번이나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거기에 대전광역시장까지 되는 업적도 이루었다.[9] 하지만 동구청 신청사 건립 추진 이전의 이장우는 대전복합터미널 추진 및 조기완공, 철도기관 공동사옥 유치, 대전 문학관 건립 등 그만큼 업적도 많다. 심지어 국회의원 시절에는 대전역세권개발사업까지 따냈을 정도 이다. 당시에 이미 쇠락해가던 동구 입장에서는 대부분 미래를 건 역점사업이었고, 이를 성공적으로 추진한 덕분에 지금 동구를 먹여살리고 있는 것 대부분이 이장우 때 이루어진 사업이다. 특히 대전복합터미널은 몇년째 삽도 못 뜨고 있는 유성복합터미널과는 딴판으로 속전속결로 끝난 덕분에[23] 지금까지도 대전의 주요 관문이자 동구-대덕구 일대의 핵심 상권으로 기능하고 있을 정도 이다. 확실히 무능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마지막으로 당시 숙원사업 중 하나인 동구청 신청사를 유리궁전으로 지으면서 엄청난 예산낭비를 하는 바람에 대부분의 치적은 묻히고 지금은 대부분 동구 예산을 파탄낸 구청장으로만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10] 당시 동구 공무원들의 월급을 지급할 수 있냐 없냐 할 정도로 심각하게 쪼들렸다. 다행히 시에서 지원을 해준 덕에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이 때문에 한때 지역 사회에서 큰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11] 서울 강동구, 인천 옹진군, 충남 아산시, 경남 창녕군 등. 심지어 광역지자체인 충북(도지사: 김영환)도 '충북을 새롭게, 도민을 신나게'라는 도정 슬로건을 걸어놨다.[12] 대전역 주변은 거의 외자 돌림. 동구도 그렇지만 대전광역시 전체적으로도 한글자짜리 동명이 많다. 유성구에는 궁동, 갑동, 죽동 등 서구에는 변동, 내동. 대덕구에는 법동, 장동. 중구에는 목동.[13] 일제강점기부터 발전한 다른 지역들(서울, 대구, 부산, 목포, 광주 등)은 n가(일제강점기에는 n정목(쵸메, 丁目)) 식의 법정동 지명이 그대로 존치되었으나 대전은 각 정목들이 모조리 쪼개져 각각의 동으로 분리되는 바람에 이렇게 된 것이다. 단적인 예로 일제강점기 당시 원동, 인동, 효동은 모두 혼마치로 묶여있었다.(정확히는 원동이 혼마치잇쵸메(本町一丁目), 인동이 혼마치니쵸메(本町二丁目), 효동이 혼마치산쵸메(本町三丁目))[14] 일시적으로 舊대1동 지역의 인구가 합산됨.[15] 일시적으로 舊대1동 지역 인구가 제외됨.[16] 다만, 1977년 중구가 분리될 때 충남도청, 대전시청을 비롯한 정치 중심지, 으능정이 거리로 대표되는 상업 중심지, 중앙로-계룡로 일대의 기업들, 신흥 택지지구로 개발중이던 태평동까지 싹싹 긁어가는 바람에 동구의 위상은 푹 꺾인 상태였다. 이 때문에 중구는 도심 공동화가 진행된 후에도 썩어도 준치라고 남아있는 기업체들과 공공기관들이 있어서 버티고 있는 반면에 동구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심하게 낙후될 수밖에 없었다.[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20] 구 오정신용협동조합[21] 실질적인 성장은 서구 가수원동에서 했다. 현재 본가도 가수원동에 있다.[22] 정확히는 대전 편입 이전의 대덕군 출신이다.
[23] 유성복합터미널이 추진부터 착공까지 걸린 기간의 반의 반도 안 걸리고 완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