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8 02:03:17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국과수에서 넘어옴
파일:국립과학수사연구원_국_상하.jpg
1. 개요2. 조직구성3. 역사4. 업무5. 대우 및 선발
5.1. 법의학 부검의(4/5급)5.2. 약사(연구사)
6. 비슷한 기관7. 문제점8. 기타

1. 개요

행정안전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제53조(직무) 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이 장에서 "연구원"이라 한다)은 범죄수사에 관한 법의학·법화학·이공학분야 등에 대한 과학적 조사·연구·분석·감정 및 교육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한다.
② 연구원은 국가기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요청에 응하여 범죄수사 및 사건사고에 필요한 해석 및 감정을 할 수 있다.
각종 범죄수사 중 획득한 증거물을 과학적으로 감정하고 연구자료를 축적해 가는 국가기관(약칭 국과수). 행정안전부의 소속기관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중국, 미국의 법의학 학술교류를 하고 있다.

한국의 CSI 과학수사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나 CSI와는 조금 다르다. 자세한 것은 아래에서 서술한다.

2. 조직구성

분원이 4개 존재했으나 조직개편으로 5개 분소로 개편되었다. 서울과학수사연구소와 대구과학수사연구소가 새로 추가되었다. 기존의 중부지원의 업무는 원주시로 이사간 본원이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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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원: 강원도 원주시 입춘로 10[1]
  • 서울과학수사연구소(구 본원): 서울특별시 양천구 지양로 139
  • 부산과학수사연구소: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금오로 50[2]
  • 광주과학수사연구소: 전라남도 장성군 남면 나노산단5로 60-15[3]
  • 대전과학수사연구소: 대전광역시 유성구 유성대로 1524
  • 대구과학수사연구소: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호국로 33-14[4]
  • 제주출장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첨단로 221
일반적인 증거물 감정이나 부검 등은 각 지방연구소의 담당에 따라 처리한다. 담당지역은 해당링크를 참조.

본원이 원주에 새로운 청사를 지어 이전하면서 설비의 상당수를 최신 설비로 교체하였다. 본원에 남아 있던 설비 중 복수 설치[5]되어 있던 것은 지방 연구소에 나누어 주었다[6]. 이에 따라 지방 연구소의 감정 능력은 기존에 비해 상당히 개선되었고, 웬만큼 감정하기가 어렵지 않은 이상 본원까지 가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특히, 2014년 새로 개소한 대구소의 경우에는 본원 뺨칠 정도의 시설과 설비를 보유[7] 하고 있으며, 연간 3만 여건을 감정처리[8]하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는 도저히 감정이 어렵다 싶은 것은 원주 본원으로 보내고 있다.

그런데 위의 쉴드를 반박[9]하는 사건이 일어났으니 유병언 부검은 서울에서 한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본원에 부검실이 없어서 라고 한다. 본원에 왔는데 왜 부검을 못하니 2015년까지도 부검동이 완공되지 않아 가까운 문막분원에서 대신 부검을 하고 있다. 2017년 현재도 부검동이 세워지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주민 반발 때문이라고 한다(...)

3. 역사

언론에 노출된 것이 생긴 지 얼마 안 된 데다가 설립연도가 2010년 8월 10일이라 신생 기관으로 보일지 모르나, 1955년에 설립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전신으로 삼는 뼈대와 전통이 있는 기관이다.

간단히 연혁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955년 3월과학수사연구소의 직제 제정[10]
1962년 1월직제개정으로 서무과, 법의학과, 이화학과 등 3과 설치
1963년 8월청운동 신청사 이전
1977년 2월의주로 청사로 이전
1986년 9월현 양천구 신월동 청사로 이전
1987년 5월법의학 2과 이화학 2,3과를 신설 6과로 개정
1989년 7월2부 7과 3실로 직제개정
1991년 8월이화학 4과를 신설 7과로 직제개정
1992년 5월운영규칙(내무부 훈령)을 개정 운영감독을 경찰청장이 수행하게 됨(!)
1993년 3월부산 남부분소 개소
1996년 3월현재의 2개부 10개과로 직제개정
1997년 7월전남 장성 서부분소 개소
2000년 9월대전 중부분소 개소
2006년 1월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
2010년 9월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승격

20년 이상 국과수에서 근무한 과장급 인사를 포함한 여러 국과수 내부 관계자의 발언에 의하면, 국과수는 대한민국 경찰청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으며 그 뿌리는 일제 치안국 산하의 조직이다. 이후 광복과 정부수립, 6.25전쟁을 거치며 내무부 산하에 독립된 연구원을 따로 개원하게 된 것이 국과수의 모체였으며, 당시에는 일제강점기 시대의 자료를 그대로 물려받았던지라 현재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자료들이 많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유명한 기생의 자궁이나 사람의 머리가 포르말린에 담긴 채 보관되고 있었다고. #

1960~70년대의 활동내역은 찾아보기 힘든데 이때는 시대도 시대이거니와 지문 하나만 뜰 줄 알면 대부분 만사OK인 시대라 묻혔다. 슬픈 이야기이지만 당시 국과수에게 맡겨진 업무는 범죄와 관련이 적고 간단한 일들이 대부분으로 보이는데, 일례로 모 분원 개축공사를 하기 위해 허름한 창고를 부쉈더니 안에서 '국한문혼용체 문서에 대한 TLC감정서'가 나온 적이 있다고 한다(학부 실험실에서도 쉽게 하는 그 TLC가 맞는다).

그렇게 수십 년을 지내다가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국과수도 격변을 맞이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전환점이 87년 6월 항쟁을 불러온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다. 당시 부검의였던 국과수 황적준 박사가 경찰의 협박과 회유를 이겨내고 고문에 의한 사망임을 밝혀냄으로써 민주항쟁의 불씨를 활활 타오르게 한 것이 국과수에게도 변혁의 계기가 된 것이다. 국과수가 더이상 정권의 꼭두각시로 행동하지만은 않게 되면서 국과수의 중요성도 점점 커져갔다.

또한 화성 연쇄살인 사건으로 보다 전문적인 과학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국과수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11]

모두가 국과수의 중요성에 주목하면서 정권교체 직후인 1998년 행정부 개편 당시 국과수를 자신들의 산하 부서로 만들려는 각 기관들의 암투가 심했다고 전해진다. 결국 실무자 회의에서 경찰청이 국과수를 가져가기로 합의가 된 상황에서 마지막 국무회의 의결에 들어갔을 때 법무부 장관이 돌연 반대를 했는데, 그 이유는 '판결을 내리는 판사의 입장에서, 제3의 기관이 아닌 경찰청 산하의 기관에서 나온 자료를 객관적인 증거로 확신할 수 없다. 결국 또 다른 제3의 기관을 만들게 될 텐데, 재원 낭비가 심하다. 경찰청 산하가 아닌 제3의 기관 산하로 만들자'였다고 한다. 결국 이게 통해서 결국 국과수는 행정자치부의 산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후 2010년 국립과학수사연구으로 승격하였다.

기술적 측면에서, 1980년대 들어 갓 도입된 음성인식 기술의 국산화에 성공했고 1990년대 들어 유전자 분석, 각종 혈액분석과 감정 등의 국산화 및 타국가 보급을 주도해 국제표준규격의 최첨단을 걷는 등 엘리트 집단이다. 특히 마약류 감식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정확도도 높고, 특히 감정물이 들어와서 정식감정결과가 나오기 전에 간이 검사를 시행하여 결과를 수사현장에 알려줘 빠른 수사에 도움이 된다.

4. 업무

혈액/타액의 유전자 감식, 부검까지 하니 만능 수사기관이다 할 수 있다. 이 기관 하나 덕분에. 범인이 아니라고 잡아 떼는 여러 범죄자들을 철창으로 가둔 매우 유능한 기관이다.

감정물 중 가장 많은 것은 혈중알콜농도 측정이다. 접수직원이 아침에 출근하면 혈중알콜농도 측정 관련 감정물이 항상 산더미같이 쌓여있다.

연구원의 인력은 그렇게 넉넉하지 못하다. 다만, 공조수사 및 증거물들이 잔뜩 밀려서 감식하는데 연구원들만 죽어나간다. 감정물의 분야마다 감정하고 결과를 발송해야 하는 기한이 있는데 이게 한 사람의 인생이 갈릴 수도 있기 때문에 정확히 시행해야 한다. 하지만 감정해야 할 절대적인 건수는 많기 때문에 연구원들에게 감정기한은 압박으로 다가온다.

5. 대우 및 선발

국과수라는 특수성 때문에 보수가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봤자 공무원. 다만 다른 연구직 공무원보다 수당이 조금 더 붙기 때문에 같은 직급의 연구직 공무원보다 약간 더 높긴 하다.

국과수의 연구원이 되려면 일반적으로 자연계열의 석사학위 이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정부의 압박으로 종종 채용공고에 '학사이상 지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이 붙는데, 실제로는 석사 이상 따야 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관련 연구기관의 경력이 있다면 유리한건 사실이다. 다만 연구원의 TO가 워낙 적다보니 매년 정기적으로 채용이 이루어지지 않고 채용인원도 적다.

의사, 약사 등의 채용은 서류전형(3~5배수)과 면접시험을 거친다.

5.1. 법의학 부검의(4/5급[12])

2019년 현재 국과수는 심각한 부검의 구인난을 겪고 있다. 매년 부검의 채용공고를 내고 있지만 "제발 지원해주세요." 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13] 그래서 그런지 현재 국과수에 근무하고 있는 부검의는 매달 20~40건의 부검을 진행하고 있고, 일이 많은 경우에는 60건까지 부검해봤다는 사람도 있다. 말이 20~40건이지, 매일같이 부검을 한다고 생각해보면 헬게이트가 따로 없다.[14] 매년 국과수 부검의 수는 줄고 있으며, 부검의 중 누가 그만둔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원장님이 직접 연락을 해 올 지경까지 왔다. 심지어는 기존에 근속 중인 법의관들이 고민하는 가장 큰 문제가 수제자 양성 문제로 인한 고민이 많다. 기존에 근속중인 법의관들 같은 경우에는 평균연령이 4~50대 이상인 나이가 어느정도 있는 법의관들이 많다. 기존에 있던 법의관들의 몸상태는 갈수록 망가져가는 법의관들이 대부분이고 자신의 뒤를 이을 젊은 연령의 수제자들은 들어오지 않고 있다.[15]

2013년 3회 경력경쟁 시험의 경우, 의무사무관 경쟁률은 2:1. 이 당시의 응시 자격은 의사(2), 한의사(2)년의 경력을 갖춘 사람으로, 해부학/병리학/진단검사의학 분야에서 경력을 갖추면 되었다. 우대요건은 법의부검 실무를 경험한 사람과 병리과 전문의 자격을 소지한 사람이었다.

인기가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교수 되기가 어렵다.
    대한법의학회에 등록된 국내 법의학자는 50명에 불과하다. (국과수 22명, 의과대학 내 개설된 법의학교실 교원 19명, 민간 법의병원 개업의 9명)[16] 국과수에서 경력을 쌓아도 법의학자의 전공을 살려 일 할 만한 자리가 거의 없다. 국내 전문의 전문과목 26개 중 법의학 분야는 아예 없다. 다만 질병이나 손상의 원인·과정·결과 등을 연구하는 병리과 전문의 중 일부가 법의학자가 되고 있다. 병리학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는 부검 20건을 해야 하는데 이것만으로는 법의학 전문성을 갖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의대 학생이 법의학을 하겠다고 해도 교수가 학생을 다른 과로 돌려보내는 실정이다.[17]
  • 연봉이 낮다.
    연봉이 2012년 현재 세전 6,500만 원 (세후 5,500만 원)인데, 서울 시내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도 2014년 현재 세후 7,200만 원 이상을 받게 되기 때문에 차이가 크다. 당장 위에 제발 지원해달라고 애원은 하지만 애원만 하고 지원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요인을 끼치는 명예, 돈, 삶의 질의 개선은 하나도 하지 않으려고 하니 사람이 오지를 않는다. 돈을 적게 받더라도 삶의 질과 명예면에서 이득을 본다면 모를까, 셋 모두 큰 손해를 보기 때문에 굳이 힘든 공부 다 하고나서 고생길 가려는 사람은 미치치 않고서야 거의 없으며, 굉장히 힘이 드는 일을 하면서도 일반적인 의사로서 얻을 수 있는 대접을 전혀 받지 못한다. 당장 한국 최초의 법의학자라는 문국진 박사조차 서점에서 법리학 서적을 읽다가 호기심에 일을 하다가 중간에 못 하겠다고 외과의로 돌아가려던 걸 스승인 장기려가 일갈해서 계속 하게 된 것이며, 장기려도 문국진이 처음에 검시의를 하겠다고 하니까 미쳤다면서 말리는 등 원래부터 대우가 시원찮았다.

5.2. 약사(연구사)

법독성학과의 경우 전원을 약사로 뽑는데, 선착순(...) 및 얼마나 오랫동안 국과수에 남아있을까(...) 가 뽑는 기준이라는 내부 발언이 있었다. 국과수 약학 파트의 업무 강도는 약학대학 연구실의 100배쯤 된다고 보면 된다. 국과수 약학 파트에서 일할 결심을 갖고 있다면,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를 더 하는 것이 이득일 것이다.

업무강도 외에 수입도 문제가 된다. PEET 증원 이후에도 개업을 하거나 취직을 하면 국과수보다 훨씬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다. 약학파트도 선발 인원보다 지원자가 많으면 다행이라 여길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2013년 3회 경력경쟁 시험의 경우, 보건연구사(약학) 경쟁률은 7:1. 다만 약사만 지원한 게 아니므로 실제 경쟁률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지원자격이 '약사'보다 훨씬 넓었기 때문이다. (약사, 한의사, 한약사, '보건학-생물학-미생물학-화학'을 4년제 대학에서 전공한 사람, 관련 분야에서 민간근무경력 6년 이상인 사람)

6. 비슷한 기관

6.1. 대한민국 경찰청 과학수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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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위 그림은 과학수사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합동 현장 감식을 하는 모습. 과학수사대의 복장에는 POLICE, 국과수 복장에는 NFS라고 적혀 있다.

보통 사람들이 사건 현장에서 '과학' 수식어가 붙은 사람들을 국과수 소속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는다. 과학수사대는 경찰청 소속으로, 엄연한 경찰이다. 따라서 검찰의 지휘 하에 수사권을 쓸 수 있다. 반면에 국과수 연구원은 위의 '역사'에 소개된 것처럼 경찰과 아무 상관 없는 소속으로, 수사권이 없다. 대신에 과학수사대가 처리할 수 없는 전문적인 분석이나 연구를 전담하는 편이다. 보통 범죄/사고 현장에서 경찰의 과학수사과에서 자체적인 감식을 한 뒤, 여기서 해결되지 않는 경우는 국과수로 보내 감정을 받는다. 말 그대로 '연구'에 중심을 맞춘 곳이 국과수인 것이다.

6.2.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출범
대검찰청 과학수사
대검찰청 과학수사부는 2016년 2월 16일 출범한 조직으로 원래 검찰청 내부에 비공식적으로 있던 조직이었으나 이를 확대개편조직한 곳이다. 약칭은 DFC이다.

국과수와 하는 일이 많이 겹친다. 특히 DNA 감식, 디지털 포렌식 같은 경우는 국과수와 완벽하게 겹치는데, 차이점이라고는 국과수가 행정안전부 소속인 데 반해 여기는 대한민국 법무부 소속이라는 것 정도... 실제로 두 기관이 똑같은 일을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지적도 간혹 나오고 검경 수사권 조정의 일환이라며 '국과수가 경찰과 같은 안전행정부 소속이라 꼴보기 싫어서 검찰청 안에 국과수와 비슷한 것을 하나 만든 것이다' 하는 극단적인 주장도 나오는 편이다. 하지만 부검 같은 경우는 국과수 말고는 해줄 곳이 없이 때문에 어차피 검찰에게 있어서도 형사재판에서 국과수의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편이고 둘의 사이가 나쁘지는 않다. 게다가 국과수와 대검찰청 과학수사부가 법의학 분야에서 선의의 경쟁을 하게 된다는 것은 나쁜 의미의 경쟁이 아니라 좋은 의미의, 둘 다 발전하게 되는 경쟁이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너무 나쁘게 볼 필요는 없을 수도 있다.

하는 일은 차이가 많이 없어도 행정적, 법적으로는 차이가 큰데, 국과수나 경찰청 과학수사부와는 다르게 DFC는 검찰청 소속이므로 검찰에 소속된 곳이고, 당연히 수사권이 존재하므로 뭔가 증거가 있다 싶으면 직접 털어버릴 수 있다. 국과수 같은 경우는 증거가 나오면 경찰이나 검찰에게 주면서 소견서를 주는 정도가 끝.

현실에서와는 다르게, 국과수를 소재로 다룬 드라마 싸인에서는 국과수와 DFC를 안 좋은 의미로 대립하고 경쟁하는 관계로 묘사했기 때문에 불편하다는 사람도 있다.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두 기관은 딱히 사이가 나쁘지 않다.

6.3. 대한민국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

1953년 8월 헌병사령부 예하에 창설된 제1범죄연구소가 그 전신이다. 연구소는 58년 육군본부 소속 육군과학수사연구소로 바뀌었다가 89년 국방부 소속 국방과학연구소로, 2006년 2월에는 국방부 합동조사단이 국방부 조사본부로 개편됨에 따라 조사본부 산하 기구가 되었다. #

7. 문제점

그들도 사람이기에 오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오차가 발생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이다. 2015년 10월 4일 방영된 시사매거진 2580에서 국과수의 오류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국과수를 상대로 고소를 해도 수사가 진행되지 않는 등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

세간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감정기관이라는 인식이 있으나 교통사고나 자동차 기계 조사에 대해선 민간 기관이나 민간 전문가들만도 못한 역량을 갖고 있음이 밝혀졌다. 2016년 발생한 싼타페 급발진 의심 사고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국과수에선 차량 파손 정도가 너무 심해 기계적 조사를 할 수 없다고 했지만, 국과수 관계자와 민간 전문가가 함께 입회한 자리에서 민간 전문가진이 그 자리에서 차량의 시동을 걸어 일관 점검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해당 사건에서 국과수에선 해당 차량의 ECU와 TPU를 분석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국과수 내부에 ECU분석 장비나 분석 매뉴얼이 없어서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실에서 2017년 국토교통부와 국과수에서 넘겨받은 자료에 의하면 국과수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국가 기관은 자동차 기계 사고를 정밀하게 조사하고 처리할 능력이 없음이 밝혀졌다. 이와 관련하여 대림대학 자동차 공학과의 한 교수는 "국과수 교통사고 분석계통이 보유한 장비는 1급 정비사나 대학 연구소 정도밖에 못미치며, 현재 이루어지는 조사 행위란 것은 40~20년 전의 것과 동일하다"라며, "국과수에서 하는 거라곤 고작해야 스키드 마크 분석이나 외관 상의 손도 분석,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전부다"라고 지적했다.

국과수의 이러한 실력과 장비, 인력 부족은 향후 전개될 자율주행 차량 시대에 더 큰 문제로 부각될 것이다. 특히, 제대로 된 입증 능력도 없으면서 국과수의 보고서가 마치 공신력 있는 것마냥 받아들여지는 현재의 상황에선 그러한 문제가 더더욱 커질 것이다. 더욱이 자동차 제조사들은 이러한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국과수의 이러한 특성을 교묘히 이용하기도 한다.

검찰 수사에 의하면 화성 8차 연쇄살인 사건과 관련해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 결과가 실제와 다르게 조작됐다고 한다. #

8. 기타

경찰 수사관들은 연구원이라 부르지 않고 연구소라고 읽는다. 이는 뉴스 매체에서도 마찬가지. 허나 각 지방연구소로 개편이 된 이후에는 본원담당지역을 제외하고는 오히려 올바른 표현이 되어버렸다.[18]

가끔 가다 외압이 들어오려는 시도가 있다고 하는데, 그런 경우에는 다른 의사들과 정보를 교류해서 이건 공통의 의견이라 어쩔 수 없음.이라는 식으로 막아낸다고한다.

이 기관을 소재로 한 드라마로 싸인이 있다. 국과수의 열악한 상황을 현실적으로[19] 그려낸 드라마. 각 국과수 지방연구소에는 이 드라마와 관련된 사진이 어디엔가 한두 개씩 붙어있다. 기관으로서 상당히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모양.[20] 이후 2018년 방송된 검법남녀 역시 국과수가 배경이 되고 있다.

예전에 연구원에서 사용하던 통근버스는 사고나서 폐차직전의 차량을 얻어 수리하여 운영했다는 설이 있다.

주소가 양천구보충역 입영 대상자라면, 사회복무요원 근무지가 서울연구소가 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공익근무요원의 정원이 적기 때문에 확률은 매우 낮다.

2007년 강원 원주혁신도시로 이전계획을 확정했고 2013년 11월쯤 돼서 정식 개원. 기존 본원은 서울과학수사연구소가 되었다.

KBS에서 방영하는 다큐멘터리 3일에서 2011년에 국과수에 대해서 다룬 적이 있다. KBS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도 삭제된 상태라 볼려면 중국사이트로 가서 봐야한다.http://v.youku.com/v_show/id_XMzExNjIyNDM2.html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에서도 국과수를 다룬 적이 있다. 2011년 6월 25일 방영한 807회 "진실을 밝히는 칼, 국과수를 말한다" 편. 빅뱅 대성의 교통사고의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 속에서 현 국과수의 문제와 한계를 보여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희선 원장[21]은 34년간 맡았던 사건 중 가장 기억에 남고 안타까운 사건으로 김성재사망 사건을 꼽았다. 인터뷰 기사


[1] 원주 혁신도시 이전 기관이다. 이전하면서 서울에 서울과학수사연구소를 설치했는데 이것 때문에 서울 벗어나기 싫어서 꼼수 쓴다고 원주 쪽으로부터 욕을 많이 먹었다. 그런데 서울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원주로 갔기 때문에 서울 벗어나기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정말로 서울을 벗어나기 싫어서 꼼수를 쓰는 기관은 대한적십자사다. 적십자사는 서울 본부를 그대로 놔두고 혈액관리본부를 비롯한 일부 조직만 원주 혁신도시로 이전했다.[2] 경상남도 양산시에 있지만 부산연구소로 표기한다. 부산대학교양산캠퍼스 바로 앞이다. 또한 현 연구소는 한차례 이전한 것이고 원래는 부산 영도구에 있었다.김해공항의 IATA 코드가 PUS인 것처럼 말이다.[3] 부산과학수사연구소와 같이 광주가 아닌 전라남도 장성군에 있지만 광주연구소로 표기한다.[4] 해당 지역은 왜관 IC에서 약 1.1km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왜관 IC에서 서대구 IC까지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30분 안에 도착 가능한 거리.[5] 하나의 장비가 여러 개 설치되어 있던 것. 본원이랍시고 이런 식의 중복 설치와 투자가 상당히 심했었다. 일례로, 일 년에 서너 번 쓸까말까한 초분도 마이크로 분광계도 7대나 보유하고 있었다.[6] 서울소라고 해서 엄연히 본원이 아니므로, 다른 지방소에 비해 특별히 감정 능력이 뛰어나거나 하지는 않다. 그런데 지방소의 장은 본래 4급으로 보임하는데 서울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를 것도 없는데 유독 3급으로 보임해서 말들이 많다.[7] 실제로 대구소에 가보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인데, 기존의 서울 본원은 둘 째치고 현재의 본원과 비슷한 규모에 설비도 ㅎㄷㄷ한 수준이다. 다른 지방소의 규모와 사정에 비하면 넘사벽의 초호화청사에 최고급 장비들을 갖추고 있다. 사실 대구소 이외에 부산소도 최근에 새로운 청사를 거하게 짓고 온갖 새로운 장비들을 마련해서 이전했다. 그러나 광주와 대전의 상황은 그야말로 현시창. 서울소도 말이 좋아 서울이지 낙후한 환경과 구식 설비는 큰 차이가 없다. 이러한 각 지소별 차이는 정치적인 입장이니 아니니하는 말이 내부적으로 많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곳에서 일하는 인원들의 의욕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국과수 일이 워낙 힘든 일이고 또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면 수입도 더 좋고 일도 편한 곳을 쉬이 찾을 수 있는데도 사명감 하나로 일하는 것인데, 이러한 차별 아닌 차이가 있다면야...[8] 본원은 15만여 건[9]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은 아니다. 원래 본원 청사 신축이 제대로 진행이 되었다면, 국가적 관심을 받는 유병언의 사체 부검은 당연히 본원에서 진행했을 것이다. 신축 공기가 계속 연기되어 기존에 확보된 예산으로는 청사 신축이 어려운 것이다. 유병언 사체의 경우에는 광주소에서 먼저 부검의뢰서를 접수한 후 본원으로 이첩시켜 사체를 본원에 보존고에 입고한 후, 본원의 부설 부검소에서 부검할 수 없자, 다시 서울소로 보내어 부검을 진행한 것이다. 이 부검을 진행한 부검의 및 연구원은 전부 본원에서 파견되었으며, 부검 감정이 끝난 후에는 사체를 다시 본원으로 보내어 부검 이외의 감정 절차(유전자 감정, 체골 감정 등)를 진행하였다.[10] 대통령령 제 1021호, 지문감식사무는 치안국 수사지도과 감식계, 법의 및 이화학적 감식사무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담당[11]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완전범죄로 여겨지지만 사실 과학 수사만 있었다면 충분히 해결하고도 남았을 거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2019년 9월 발전된 DNA 분석을 통해서 범인이 밝혀졌다.[12] 2007년도 기술서기관/의무사무관 특채 기사, 치과의사도 의무사무관으로 뽑았다.[13] 현재 법의관 정원은 53명이지만 현원은 30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시체 부검처리 건수는 폭발적으로 늘어 한해 1만 2천여 건을 처리해야 한다.[14] 해외 부검의들에게 하루에 두세 건씩 부검한다라고 이야기하면 미쳤냐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부검이라는 것이 시체를 가르는 전후에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그걸 하루에 무려 두세 건씩한다니 부검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이 다행인 상황이다.[15] 사실 의과대학 본과생들이 법의학 쪽으로 가려도 해도 교수가 다른 과로 모두 돌려버린다. 이유는 당연히 대한민국 법의학의 현 실태 때문.[16] 참고로 국내 법치의학계는 이러한 현상이 더 심한데 법치의학자는 단 4명뿐이다. 국과수 1명, 치과대학 교수 3명. 물론 의사 숫자와 치과의사 숫자가 같지 않음을 감안하고 보면 비율은 비슷할 수 있다.[17] 이러한 현실 때문에 경찰은 간호사·병리학 전공 출신의 경찰검시관 (검시관 자체도 전국에 70명을 넘지 않는다) 중에 선발하여 속성 과정으로 법의학자를 양성하려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법의학회에서는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18] 경찰 현장에서는 과수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다. 이는 변경전 명칭인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줄임말.[19] 실제 국과수의 모습이라고 오해할 만한 내용이 많았던지 드라마 시작 전에 항상 관련 문구를 출력하였다.[20] 그동안 방영한 의학 드라마는 많았지만 법의학 드라마는 싸인이 최초이다. 그리고 이러한 드라마들 중에서 가장 현실적이라는 평이 많았다.[21] 국과수 최초의 여성 수장이자 초대 원장, 소장으로 재임 중 원으로 승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