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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2, 1946년 월드컵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취소 [1]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에서도 일부 경기 개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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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 ||
'''
Coppa del Mondo FIFA Italia 1990 1990 FIFA World Cup Italy™''' | ||
대회 기간 | 1990년 6월 8일 ~ 1990년 7월 8일 | |
개최국 | [[이탈리아| ]][[틀:국기| ]][[틀:국기| ]] | |
마스코트 | 차오 (Ciao) | |
주제가 | 이탈리아의 어느 여름날 (Un'estate italiana) | |
공인구 | 에투르스코 우니코 (Etrusco Unico) | |
본선 진출팀 | 24개팀 | |
대회 결과 | ||
우승 | 서독 (세 번째 우승) | |
준우승 | 아르헨티나 | |
3위 | 이탈리아 | |
4위 | 잉글랜드 | |
수상 | ||
골든볼 | [[틀:깃발|살바토레 스킬라치 | ]][[틀:깃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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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이후 대회 | ||
1986년 멕시코 | 1990년 이탈리아 | 1994년 미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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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공식 인트로[1] |
1990년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14회 FIFA 월드컵. 이탈리아로서는 1934년 이후 56년 만에 개최하는 2전째 월드컵이다. 냉전의 종식과 동구권의 해체 기운 속에 치러진 월드컵에서[2] 서독이 매우 의미있는 우승을 차지한 대회이다. 이 대회를 끝으로 서독과 동독은 그 해 10월 3일 통일 독일로 재탄생했고, 서독의 우승은 조국 통일을 몇 달 앞에 둔 하나의 축포였다.
러시아와 체코가 각각 소련과 체코슬로바키아라는 이름으로 출전한 마지막 대회였고, 유고슬라비아는 내전으로 다음 대회의 출전 기회조차 박탈당했다. 루마니아는 전년도 크리스마스날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총살당한 다음 해였고.
축구경기적인 차원에서라면 당시 소위 사키이즘이라 불린 수비위주의 축구가 극에 달한 대회였다. 당시에만 해도 수비수들은 '도살자', '살인마' 같은 별명을 갖게 되는 것을 명예롭다고 생각하던 시기였으며, 어지간한 백태클 푹 한 번 담궈 줘도 옐로 카드는커녕 구두 주의만 받고 끝나던 시절이었다. 주요 리그에서도 열몇골 넣으면 득점왕 한번 넘볼 수 있기도 했다. 그래서 최악의 득점난을 가져온 대회가 되었다.
당시 세계 축구계는 사키이즘으로 인한 저조한 득점 현상을 축구계의 위기로 보았고, 이에 FIFA는 이 대회 이후 파울 규정 강화, 골키퍼에 백패스 등 시간지연행위 규제,[3] 오프사이드 규제 완화, 승점제 변화 등 다양한 제도를 강구하게 되었다. 또 공격축구를 유도하기 위해 공인구 제작사인 아디다스에 높은 반발력을 지닌 공인구를 개발하도록 독려하기도 했다.
축구의 비주류로 여겨지던 아프리카 대륙의 카메룬이 돌풍을 일으키며 큰 주목을 받았다. 이 대회에서 카메룬의 활약으로 아프리카 출전국 수가 증가하고 아프리카 선수들의 유럽 리그 진출이 본격화되는 등 큰 변화를 이끌었다.
1990년 월드컵의 특징 중 하나는 빅매치가 너무 빨리 성사되어 강팀들이 조기에 나가떨어졌다는 것이다. 16강에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서독과 네덜란드 등 빅매치가 성사된 것.[4] 아르헨티나와 서독은 지난 대회 우승과 준우승국이며, 네덜란드는 2년 전 유로 우승국이었다. 브라질 또한 지난해 코파 아메리카 우승국이자 상당히 강력한 스쿼드를 가진 팀으로 3개 대회 연속 조별리그 3전 전승을 기록했고, 결국 다음 대회인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우승을 이룬 우승 후보였다. 결국 16강에서 패한 브라질과 네덜란드는 조기에 짐을 싸야 했다.
2. 상징
2.1. 마스코트
마스코트의 이름은 이탈리아어로 '안녕'을 뜻하는 챠오(Ciao). 로고처럼 이탈리아 삼색기의 색깔을 사용한 사각형 블럭들을 사람 모양으로 연결시켜 형상화하여 만든 인간형 마스코트. 머리는 그냥 축구공이다. 이탈리아 국기색이 첨가된 것 외에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다.[5]
2.2. 공인구
공인구는 에투르스코 유니코(Etrusco Unico). 내부에 풀리우레탄 품이라는 층을 두어 완전방수가 가능해졌고, 공의 속도가 많이 상승했다. 디자인적으로는 지난 대회에 큰 차이는 없고, 그냥 사자문양을 집어넣은 정도.
2.3. 주제곡
주제곡은 우리에게는 1988 서울 올림픽 주제곡인 '손에 손잡고'의 작곡자로 유명한 조르조 모로더가 작곡한 이탈리아의 어느 여름날(Un'estate italiana - 영어제목 'To be Number One').[6] 이전에 작곡한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1988 서울 올림픽의 주제곡과는 달리 자신의 조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이기 때문인지 가사에서부터 이탈리아를 크게 부각시켰다.
3. 유치 과정
유치 의사를 나타낸 것은 총 5개국이었다. 이 중 이란은 1978년 대회에서 자국의 첫 월드컵 본선 진출에 들떠 유치전에 나섰으나 해당 대회에서 탈락하고 다음 대회 본선 진출에도 실패한데다, 이슬람 혁명 크리까지 겹쳐 자진 포기했다.나머지 국가들은 잉글랜드, 그리스, 소련이었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24년 만에 도로 월드컵을 개최하려 한다는 부정적인 여론에 밀렸고, 그리스는 당시 월드컵 본선진출 경력이 없었던 것이 지적되었다. 결국 최종적으로 이탈리아와 소련이 결선투표를 진행했다.
그런데 개최지 투표가 진행되던 1984년은 미국과 소련이 서로 잡아먹을듯이 노려보며 전 인류가 핵전쟁과 인류멸망의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런데 서방세계 국가가 중심이 되는 기구인 FIFA에서 소련 편을 들어줄 리 없었다. 결국 총 16표 중 이탈리아가 11표를 가져가며 월드컵 개최를 확정. 이탈리아는 그래도 공산당도 있고 공산권 국가랑도 제법 친해서.
만약 이때 소련에서 개최되었다면, 다 망해가던 나라에서 참으로 암울한 대회를 했어야 했으니 결과적으론 다행이었다.[7] 대신,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가 2018년 대회를 유치했으니까 러시아 입장에서도 1990년 월드컵 개최권을 가져가지 못했던 게 그야말로 새옹지마가 아닐까.[8]
4. 경기장
- 로마 - 스타디오 올림피코[9] (73,603명 수용) - 결승전 개최.
- 밀라노 - 산 시로[10] (74,559명 수용) - 개막전 개최.
- 토리노 - 스타디오 델레 알피[11] (62,628명 수용)
- 나폴리 - 스타디오 산 파올로[12] (59,978명 수용)
- 바리 - 스타디오 산 니콜라[13] (51,426명 수용)
- 피렌체 - 스타디오 아르테미오 프랑키[14] (38,971명 수용)
- 베로나 - 스타디오 마르칸토니오 벤테고디[15] (35,950명 수용)
- 우디네 - 스타디오 프리울리[16] (35,713명 수용)
- 칼리아리 - 스타디오 산텔리아 [17] (35,238명 수용)
- 볼로냐 - 스타디오 레나토 달라라[18] (34,520명 수용)
- 팔레르모 - 스타디오 라 파보리타[19] (33,288명 수용)
- 제노아 - 스타디오 루이지 페라리스[20] (31,823명 수용)
5. 진출팀 및 감독
5.1. 본선 진출팀[24개국]
1986년 대회와 이 대회에서 오세아니아 축구 연맹 소속이었던 이스라엘이 OFC에 주어진 0.5장의 티켓으로 남미 3위 콜롬비아과 플레이오프를 치렀는데, 1, 2차전 합계 0:1로 패하여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표시는 개최국 팀 자동진출, ★은 전 대회 우승팀 자동진출이다. () 표시는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거친 팀이다.
- 남미(3.5장) :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 (콜롬비아)
- 북중미(2장) : 미국, 코스타리카
- 아시아(2장) : 우승 진출 대한민국, 준우승 진출 아랍에미리트
- 아프리카(2장) : 이집트, 카메룬
- 유럽(14장) : 이탈리아●, 루마니아, 스웨덴, 잉글랜드, 소련,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서독, 스코틀랜드, 유고슬라비아, 스페인, 아일랜드, 벨기에, 체코슬로바키아
- 오세아니아(0.5장) : 진출 실패
24개국 중 코스타리카, 아랍에미리트, 아일랜드 등 3개 팀은 첫 본선 진출이다. 이중 코스타리카는 멕시코가 출전정지 중징계를 받은 덕에 어부지리로 올라왔다.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멕시코 선수 중에 실제보다 나이가 많은 부정선수가 있는 것이 발각되어 FIFA가 멕시코의 1990년 월드컵 출전을 금지시켰다.
한편, 남미 예선에서 칠레가 실격당해 다음 대회까지 참여가 금지당했다. 칠레는 브라질과의 원정 경기에서 골키퍼가 브라질 홈관중이 던진 폭죽이 근처에서 터지자, 얼굴을 크게 다친 척 하고 미리 준비한 피를 얼굴에 묻혀 나뒹굴었고 칠레는 즉시 경기를 중단하여 선수단 철수. 그러나 이 사실이 뒤늦게 발각되어 칠레는 1994년 미국 월드컵까지 월드컵 출전 금지라는 중징계를 받은 것이다. 물론 폭죽을 던진 관중도 칠레에 매수되었다고 한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다루었다.영상웹툰 이건 칠레의 자폭이었다. 제3국에서 재경기를 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다는 명분으로 벌인 계획이었지만 오히려 이 계획 때문에 브라질이 손쉽게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고(이 계획이 들통나면서 브라질은 공짜로 1점을 더 얻었다.) 칠레 측에게 매수당해 골키퍼에게 조명탄을 던진 그 브라질 관중은 오히려 이 덕에 모국에서 '행운의 소녀'라는 찬사를 받았고 잡지 화보랑 광고까지 찍었으며 브라질 여행사의 홍보 사절로 뽑혀 이듬해 열린 이탈리아 월드컵을 직접 관전하기도 했다. 게다가 제3국에서 재경기를 한다고 해서 칠레가 이길 거라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5.2. 참가 감독
{{{#!wiki style="color:white; 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or:#181818" | <colbgcolor=#fe3333> A조 | 아첼리오 비치니 | 요제프 히커스베르거 | 밥 갠슬러 | 요제프 벵글로시 |
B조 | 카를로스 빌라르도 ☆ | 발레리 니폼니시 | 발레리 로바노브스키 | 에메릭 제네이 | |
C조 | 세바스치앙 라자로니 | 올레 노르딘 | 보라 밀루티노비치 | 앤디 록스버그 | |
D조 | 프란츠 베켄바워 ★ | 이비차 오심 |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파헤이라 | 프란시스코 마투라나 | |
E조 | 기 티 | 이회택 | 오스카르 타바레스 | 루이스 수아레스 | |
F조 | 바비 롭슨 | 레오 베인하커르 | 잭 찰튼 | 마흐무드 엘고하리 | |
역대 대회의 참가 감독 1930 | 1934 | 1938 | 1950 | 1954 | 1958 1962 | 1966 | 1970 | 1974 | 1978 | 1982 1986 | 1990 | 1994 | 1998 | 2002 | 2006 2010 | 2014 | 2018 | 2022 | }}}}}}}}} |
5.3. 참가 선수
6. 대회 진행
6.1. 조별 리그[24강]
최좌측이 조 1위, 최우측이 조 4위이다. 굵은 글씨로 표시된 나라가 16강 진출국.조 | 1위 (결선 진출) | 2위 (결선 진출) | 3위 (순위 경합) | 4위 (탈락) |
<colbgcolor=#fe3333,#026><colcolor=#06c,#fff> A조 | 이탈리아(3승) | 체코슬로바키아(2승 1패) | 오스트리아(1승 2패) | <colbgcolor=#ccc,#111> 미국(3패) |
B조 | 카메룬(2승 1패) | 루마니아(1승 1무 1패) | 아르헨티나(1승 1무 1패) | 소련(1승 2패) |
C조 | 브라질(3승) | 코스타리카(2승 1패) | 스코틀랜드(1승 2패) | 스웨덴(3패) |
D조 | 서독(2승 1무) | 유고슬라비아(2승 1패) | 콜롬비아(1승 1무 1패) | 아랍에미리트(3패) |
E조 | 스페인(2승 1무) | 벨기에(2승 1패) | 우루과이(1승 1무 1패) | 대한민국(3패) |
F조 | 잉글랜드(1승 2무) | 아일랜드(3무) | 네덜란드(3무) | 이집트(2무 1패) |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A조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B조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C조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D조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E조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F조
24강 B조는 이번 대회 공인 죽음의 조였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디펜딩 챔피언에다 여전히 건재한 디에고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 그리고 1988 서울 올림픽 금메달 및 UEFA 유로 1988 준우승에 빛나는 소련이 유력한 16강 후보로 점쳐졌고, 20년 만에 본선에 올라온 루마니아가 조 3위 자리에서 그나마 16강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특히 아르헨티나는 당시 이탈리아, 서독과 함께 우승 후보 1순위, 소련은 4강까지 무난하게 올라갈 수 있는 국가로 꼽혔다.
그러나 첫 경기부터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가 카메룬에 0:1로 패하며 검은 돌풍이 시작되었다. 카메룬은 동유럽의 다크호스 루마니아까지 격파하여, 결사적이었던 소련에 0:4로 대패하고도 2승 1패로 조 1위를 차지했다. 아르헨티나는 이후 소련에 이기고 루마니아에 비기며 간신히 1승 1무 1패, 루마니아도 소련을 잡으며 같은 1승 1무 1패가 되었으나 다득점에서 루마니아가 2위, 아르헨티나가 3위가 되었다. 무승부만 아니었으면 골득실로 승부를 겨루려던 소련은 마지막 경기에서 카메룬에게 한 골도 내주지 않으며 4골을 뽑아냈으나, 1승 2패 승점 2점[26] 조 4위로 16강 진출에 실패하며 전체 17위를 차지, 소련으로서의 마지막 대회를 초라하게 마무리했다. 카메룬 > 루마니아 = 아르헨티나 > 소련 > 카메룬이라는 뫼비우스의 띠가 탄생했다.
24강 C조에선 브라질이 3전승을 기록하며 손쉽게 16강에 합류했다. 대회 첫 출전인 코스타리카는 스웨덴과 스코틀랜드를 연파하고 브라질과도 접전 끝에 0:1로 석패하는 강팀의 면모를 보이며 2승 1패 조 2위로 16강에 진출, 멕시코에 가려졌을 뿐 만만치 않은 북중미의 강호임을 인증했다. 매 경기마다 1:2로 패배한 3패의 스웨덴은 조 최하위로 탈락. 그래도 1승 2패 승점 2점 스코틀랜드는 오스트리아와 공동 18위로 마감하였다.
24강 D조도 서독이 유고와 UAE를 각각 4:1, 5:1로 완파하는 독주를 보였고, 유고슬라비아는 아랍 에미리트를 4:1로 이기고 16강 진출의 명운이 걸린 콜롬비아전에서 1:0 신승, 2승 1패로 2위가 되었다. 콜롬비아는 서독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비기며 조 3위 자리를 따 냈다. 이 때 승점자판기 UAE는 첫 출전이었는데 데뷔골과 동시에 조가 너무 안 좋았고, 이후로 다시는 월드컵에 출장하지 못하고 있다. 서독은 이 대회의 스타 플레이어 로타어 마테우스와 루디 푈러가 3골, 위르겐 클린스만이 2골을 넣었다.
24강 E조도 D조와 매우 흡사했다. 스페인이 2승 1무, 벨기에가 2승 1패를 거두며 1, 2위를 차지했고, 펠레가 우승후보로 지목한 우루과이는 스페인과 무승부를 거뒀으나, 벨기에에 1:3으로 완패했다. 1무 1패로 탈락 위기에서 한국과의 마지막 3차전 후반 45분에 어느정도 오심 덕을 본 극적인 결승골(1:0)로 1승 1무 1패가 되었다. 한국은 8강도 가능하다는 언플을 하다가 벨기에전에서 0:2, 스페인전에서 1:3, 우루과이전에서 0:1로 지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3전 3패 1득점 6실점으로 전패를 당했다. 그나마 미드필더 황보관이 스페인전에서 114km/h 대포알 슛으로 1골을 넣어서 스페인과 역사상 첫 경기에서 첫골을 기록하였고,[27] 무득점 전패는 면했다. 참고로 스페인의 미첼은 무려 4골을 뽑아냈는데, 그중 3골이 한국전에서의 해트트릭이었다. 한편 우루과이전에서 막판에 터진 다니엘 폰세카의 결승골이 명백한 오프사이드였던 상황에서 당시 주심인 툴리오 라네세가 이를 무시하고 득점으로 인정해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르기도 했다. 만일 제대로 오프사이드로 판정하여 0:0으로 비겼더라면 한국은 지난 대회와 마찬가지로 승점 1점 1무 2패를 기록했을 것이다.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첫 골과 첫 승점 1점, 이탈리아전 2:3 선전, 월드컵 20위로 선전하자, 한국은 세계와 대등해졌다는 오만함으로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다. 상대팀 분석이란 것도 없었고 현지 적응도 거의 되지 않았다. 너무 압도적으로 지역예선을 통과한 것이 오히려 발목을 잡은 셈이 되었는데, 최종예선 5득점 1실점[28] 3승 2무 무패, 1차예선까지 포함한다면 9승 2무 무패 30득점 1실점으로 아시아 예선 우승 진출과 잉글랜드와 함께 유이한 무패 진출국이었기에 외신들부터 엄청난 복병으로 지목하기 시작했고, 이에 스스로도 문제없다고 월드컵을 무시하며 쉽게 16강이니 8강에 간다느니 1승 설레발을 언론이 신나게 퍼부었다. 이회택 당시 국대감독이나 김호곤 코치도 세월이 지나 그때 준비가 미흡하던 걸 이야기하며 아쉬워했다. 사실 이때만 해도 한국 국대감독은 무보수로 일하는 명예직이었다! 물론 식비나 교통비나 일부 승리수당이나 대회 상금을 얼마 정도 주는 보너스가 있었지만 정식 계약도 없고 그저 국대 감독이란 명예로만 연봉이니 그런 거 없이 일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1990 월드컵 전패 여파로 국대 감독도 정당한 계약을 맺자는 여론이 생겼고 결국 1992년부터 정식연봉 및 추가 수당을 주며 김호 감독이 처음으로 정식계약으로 국대 감독이 되었다.[29] 그런데 더 씁쓸한 건 이 당시 한국을 3전 전패로 몰아넣었던 스페인, 우루과이, 벨기에가 모조리 16강에서 탈락하여 결국 E조 전체가 전멸했다는 것이다.[30]
24강 F조는 상당히 특이한 결과가 나왔다. 잉글랜드가 이집트에 1:0로 이기며 1승 2무로 1위를 했다. 즉, 잉글랜드와 이집트간의 경기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경기가 다 무재배였다. 1패를 떠안은 이집트는 탈락, 남은 네덜란드와 아일랜드는 똑같은 3무에 2득점 2실점으로 골득실과 다득점까지 같고, 서로 비겨서 승자승 원칙도 무의미했다. 결국 양국은 추첨으로 순위를 가려 아일랜드가 2위로 16강에 진출, 네덜란드가 3위가 되어 조 3위간 경합에 의해 16강에 진출했다.[31] F조는 정말 골이 안터졌으니, 그나마 무승부들도 모두 1:1 아니면 0:0이었다. 이집트는 2무 1패 승점 2점으로 선전했다는 평을 받았으며 당시 이집트 독재자이던 무바라크도 격찬했다.[32] 그리고 카메룬의 8강 진출 및 이집트의 선전을 이야기하며 아프리카 축구연맹은 피파에게 아프리카 참가국 수를 늘려달라는 요구를 하여 피파에서도 긍정적으로 동의하게 된다. 34년 후인 유로 2024 C조에서도 F조와 같은 결과가 나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잉글랜드가 유로 2024에서도 1승 2무 C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였다. 1990년 월드컵 F조 잉글랜드와 유로 2024 C조 잉글랜드의 공통점으로는 전 세계 축구팬들이 비난할 정도로 눈 썩어 들어가는 경기력을 펼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6.2. 조 3위간 순위 결정
순위 | 조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
1 | B | 아르헨티나 | 3 | 1 | 1 | 1 | 3 | 2 | 1 | 3 | |
2 | D | 콜롬비아 | 3 | 1 | 1 | 1 | 3 | 2 | 1 | 3 | |
3 | F | 네덜란드 | 3 | 0 | 3 | 0 | 2 | 2 | 0 | 3 | |
4 | E | 우루과이 | 3 | 1 | 1 | 1 | 2 | 3 | -1 | 3 | |
5 | A | 오스트리아 | 3 | 1 | 0 | 2 | 2 | 3 | -1 | 2 | |
6 | C | 스코틀랜드 | 3 | 1 | 0 | 2 | 2 | 3 | -1 | 2 |
각조 3위 6개국 중 상위 4개팀은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네덜란드, 우루과이가 되었다.
6.3. 결선 토너먼트
경기 | 대진표 | 경기 | 대진표 | 경기 | 대진표 | 경기 | 대진표 |
A | 16강 1경기 이탈리아 2:0 우루과이 | I | 8강 1경기 이탈리아 1:0 아일랜드 | M | 4강 1경기 이탈리아 1:1(3:4) 아르헨티나 | P | 결승 아르헨티나 0:1 서독 |
B | 16강 2경기 루마니아 0:0(4:5) 아일랜드 | ||||||
C | 16강 3경기 스페인 1:2 유고슬라비아 | J | 8강 2경기 유고슬라비아 0:0(2:3) 아르헨티나 | ||||
D | 16강 4경기 브라질 0:1 아르헨티나 | ||||||
- | |||||||
E | 16강 5경기 서독 2:1 네덜란드 | K | 8강 3경기 서독 1:0 체코슬로바키아 | N | 4강 2경기 서독 1:1(4:3) 잉글랜드 | ||
F | 16강 6경기 체코슬로바키아 4:1 코스타리카 | ||||||
G | 16강 7경기 잉글랜드 1:0 벨기에 | L | 8강 4경기 잉글랜드 3:2 카메룬 | ||||
H | 16강 8경기 카메룬 2:1 콜롬비아 | O | 3·4위전 이탈리아 2:1 잉글랜드 |
16강에서도 돌풍이 계속되었다. 카메룬이 남미의 강호 콜롬비아에 연장접전 끝에 2:1 승리를 거두고 8강에 진출한 것. 이탈리아는 우루과이에 2:0 승리를 했고, 아일랜드는 루마니아와 0:0으로 승부차기에서 5:4 승리를 거두었다. 유고슬라비아는 연장 끝에 스페인이라는 대어를 잡았고(2:1), 서독과 잉글랜드는 각각 네덜란드와 벨기에에 승리했으며, 체코슬로바키아는 코스타리카에 4:1 압승을 거두었다.[33] 아르헨티나는 영원한 라이벌 브라질에 1:0 승리를 거두며 8강 대진을 완성시켰다. 웃기는 건 E조에서 한국을 3전 전패로 몰아넣고 사이좋게 16강에 올라간 스페인, 벨기에, 우루과이는 각각 유고슬라비아, 잉글랜드, 이탈리아에 패해 모조리 탈락했다는 사실이었다.
8강 첫 경기에서 이탈리아가 아일랜드에 이기고, 아르헨티나는 유고슬라비아에 승부차기로 승리했다.[34] 서독은 로타어 마테우스의 페널티 킥으로[35] 체코슬로바키아를 꺾었다. 가장 치열했던 8강전인 잉글랜드 대 카메룬의 경기에선 잉글랜드가 선취골을 넣고도 카메룬에 61분 페널티킥에 이어 65분 역전을 허용하여 패색이 짙었으나, 후반 38분 천금같은 리네커의 동점골에 이어 연장 전반 15분 또 리네커의 재역전골이 작렬하며 간신히 이겼다. 노장 게리 리네커의 마지막 활약이 돋보인 경기. 펠레 스코어가 난 이 경기에서 카메룬의 동점골, 잉글랜드의 동점골 및 역전골은 모두 PK골이었다.
나폴리에서 벌어진 4강 제1경기. 자기를 응원하라는 디에고 마라도나의 도발에 "마라도나! 우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우리의 조국입니다."로 응수한 나폴리 팬들이 주목을 받았다. 이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초반 우세한 경기를 이끌어나가다 1:1 동점골을 허용하고,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 2명이 연달아 실축해 3:4로 져서 3위 결정전으로 떨어졌다. 이탈리아 승부차기 징크스의 시작이 된 대회. 제2경기에서는 서독과 잉글랜드가 1:1로 비긴 후 역시 승부차기로 돌입, 잉글랜드의 마지막 키커 2명이 실축하여 서독이 승리했다. 이 경기에서 기록한 동점골은 리네커의 월드컵 마지막 골이다.
4강의 두 경기 모두 승부차기로 결과가 결정된 셈인데, 승리한 서독과 아르헨티나가 결승에서 맞붙었고 패배한 이탈리아와 잉글랜드는 3·4위전에서 맞붙었다. 그 3·4위전에서 이탈리아는 잉글랜드에 후반 41분 페널티 킥으로 승리하며 개최국의 체면을 살렸고, 다음날 열린 결승전에서 서독은 후반 43분 안드레아스 브레메의 PK골을 결승골로 가져가며 자국 역사상 3번째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다. 개인 수상 분야는 살바토레 스킬라치가 골든볼과 골든슈를 모두 차지했다.
6.4. 우승
1990 FIFA 월드컵 우승 |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000 서독}}}]] |
세 번째 우승 ★★★ |
7. 최종 순위
순위 | 국가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득실 | 승점 | 비고 |
서독 | 7 | 5 | 2 | 0 | 15 | 5 | +10 | 12 | 우승 | |
아르헨티나 | 7 | 2 | 3 | 2 | 5 | 4 | +1 | 7 | 준우승 | |
이탈리아 | 7 | 6 | 1 | 0 | 10 | 2 | +8 | 13 | 3위 | |
4 | 잉글랜드 | 7 | 3 | 3 | 1 | 8 | 6 | +2 | 9 | 4위 |
5 | 유고슬라비아 | 5 | 3 | 1 | 1 | 8 | 6 | +2 | 7 | 8강 |
6 | 체코슬로바키아 | 5 | 3 | 0 | 2 | 10 | 5 | +5 | 6 | |
7 | 카메룬 | 5 | 3 | 0 | 2 | 7 | 9 | -2 | 6 | |
8 | 아일랜드 | 5 | 0 | 4 | 1 | 2 | 3 | -1 | 4 | |
9 | 브라질 | 4 | 3 | 0 | 1 | 4 | 2 | +2 | 6 | 16강 |
10 | 스페인 | 4 | 2 | 1 | 1 | 6 | 4 | +2 | 5 | |
11 | 벨기에 | 4 | 2 | 0 | 2 | 6 | 4 | +2 | 4 | |
12 | 루마니아 | 4 | 1 | 2 | 1 | 4 | 3 | +1 | 4 | |
13 | 코스타리카 | 4 | 2 | 0 | 2 | 4 | 6 | -2 | 4 | |
14 | 콜롬비아 | 4 | 1 | 1 | 2 | 4 | 4 | 0 | 3 | |
15 | 네덜란드 | 4 | 0 | 3 | 1 | 3 | 4 | -1 | 3 | |
16 | 우루과이 | 4 | 1 | 1 | 2 | 2 | 5 | -3 | 3 | |
17 | 소련 | 3 | 1 | 0 | 2 | 4 | 4 | 0 | 2 | 조별리그 |
18 | 오스트리아 | 3 | 1 | 0 | 2 | 2 | 3 | -1 | 2 | |
18 | 스코틀랜드 | 3 | 1 | 0 | 2 | 2 | 3 | -1 | 2 | |
20 | 이집트 | 3 | 0 | 2 | 1 | 1 | 2 | -1 | 2 | |
21 | 스웨덴 | 3 | 0 | 0 | 3 | 3 | 6 | -3 | 0 | |
22 | 대한민국 | 3 | 0 | 0 | 3 | 1 | 6 | -5 | 0 | |
23 | 미국 | 3 | 0 | 0 | 3 | 2 | 8 | -6 | 0 | |
24 | 아랍에미리트 | 3 | 0 | 0 | 3 | 2 | 11 | -9 | 0 |
특이하게도 이 월드컵에서는 16강 실패팀 중 승점 1점 1무 2패를 거둔 팀들이 한 팀도 없었다. 20위 이집트의 2무 1패 밑으로 21위부터 24위까지는 죄다 3패(...).[36]
8. 수상
- 신인상 -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 (유고슬라비아)
- 페어플레이상 - 잉글랜드
8.1. 베스트 골
9. 기록실
- 최다 득점: 살바토레 스킬라치, 이탈리아. 6골.
- 최초 득점: 프랑수아 오맘비크, 카메룬. 개막전 6월 8일 후반 22분.
- 최초 퇴장: 에릭 위날다, 미국. 6월 10일 對 체코슬로바키아, 후반 7분.
- 최초 무득점 경기: 6월 13일 우루과이 對 스페인.
- 최초 승리 국가: 카메룬 6월 8일 對 아르헨티나.
- 최초 다득점 승리 국가: 체코슬로바키아. 6월 10일 對 미국, 5 : 1 승.
- 최초 페널티킥: 미할 빌레크, 체코슬로바키아. 6월 10일 對 미국, 전반 39분.
- 최초 멀티골: 토마시 스쿠라비, 체코슬로바키아. 6월 10일 對 미국. 전반 25분 및 후반 33분.
- 해트트릭
- 최다 득점 경기 - 이 2경기는 최다득점차 경기 3개 중 하나이기도 하다.
- 6월 10일, 체코슬로바키아 對 미국, 5 : 1.
- 6월 15일, 서독 對 아랍 에미리트, 5 : 1.
- 최다 득점차 경기 - 최다 득점 경기에 포함된 2경기 제외
- 6월 18일, 소련 對 카메룬, 4 : 0.
- 자책골: 드물게도 자책골이 기록되지 않은 월드컵이다.
- 최초 역전승: 6월 20일 코스타리카 對 스웨덴. 코스타리카 2 : 1 승.
- 최고령 선수: 피터 쉴튼, 잉글랜드. 40세
- 최연소 선수: 크리스 헨더슨, 미국. 19세
- 최연소 경기 출전 선수: 로날드 곤살레스, 코스타리카.19세
총 115골이 터졌고, 경기당 2.21골로 엄청난 골가뭄에 시달렸던 대회이다. 이를 반영하여 다음 대회부터는 공인구를 공격적으로 바꾸고, 승리의 승점을 2점에서 3점으로 올려 무재배를 막았으며, 경기지연행위에 대해선 과감하게 반칙을 선언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10. 화제의 팀들
자세한 내용은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팀별 리뷰 문서 참고하십시오.11. 한국 측 중계진
- KBS
- 캐스터: 우제근[38]
12. 여담
- "성악가가 되지 않았다면 세리에 C에서 뛰어도 좋으니 축구선수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축구를 열광적으로 좋아한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개막식 축하 행사로 또 다른 세계 3대 테너인 플라시도 도밍고와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오 솔레미오'를 불렀다. 세계 3대 테너인 이 셋은 평상시 비교 당하기 싫어서 같이 부르는 걸 주저했는데,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을 축하하기 위해 파바로티가 불렀다고 한다. 이후에도 이 셋은 3Tenors라는 이름으로 1994년, 1998년, 2002년 월드컵 직전에 해당 국가에 가서 공연을 한 바 있다. 모두 지휘는 주빈 메타가 담당했다. 2002년에는 우리나라에도 왔던 셈인데, 당시 파바로티의 컨디션이 너무 안좋았고, 레퍼토리 또한 94년 때와 완벽하게 똑같아서 욕 좀 먹었다. 이 때 세 명의 테너가 공연을 한 공연장은 '카라칼라 욕장' 즉, 로마시대에 목욕탕 자리였던 유적지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카라칼라 황제가 지었으며 로마 시대에 가장 큰 규모의 목욕탕이다. 단순히 목욕탕 기능 뿐만 아니라 체육관, 도서관 등의 기능도 갖춘 그 당시의 일종의 문화센터. 이 때 이후로 요즘에도 7,8월 여름 오페라 휴무기 때에는 이 유적지에서 야외 오페라 공연을 한다. 당시 공연은 이후 DECCA 레코드를 통해 음반과 VHS, DVD로도 출시됐다.
- 한국과 함께 본선에 진출한 UAE는 석유 부국답게 아부다비 왕국 국왕이 월드컵 본선에서 자국 대표팀이 단 한 골이라도 넣는다면 선수들 전원에게 롤스로이스 자동차를 사주겠더고 약속하였다. 그 소식을 들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주전 공격수 토마시 스쿠라비는 “우리는 롤스로이스는 고사하고 나라에서 자전거라도 한 대 사줬으면 좋겠다.” 라고 푸념하기도 하였다.[40]
- 조 편성 당시 톱시드는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과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의 성적을 기준으로 배정되었는데, 오랜만에 본선에 진출한 네덜란드는 본인들이 직전 유럽 챔피언이라는 것을 근거로 탑시드에 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당연히 씹혔다...[41][42]
- 한국의 역대 11번의 월드컵 출전들 중 현재까지도 승점을 단 1점도 올리지 못한채 전패 탈락 그것도 패배만 3경기 이상 이었던[43] 단 한번 뿐인 유일한 대회로 남아있다.
[1] 위 인트로 영상에서, 끝부분(영상의 1:00~1:04 부분)의 현수막에 해당 경기를 개최할 경기가 열리는 도시별로 다르게 나온다. 아래 인트로의 경우 로마(Roma)에서 경기가 열린 경기의 인트로이다. 인트로 뒤 간략한 개최도시 소개 영상이 나온다.링크의 영상은 개막식 영상으로 0:43 ~ 1:43 부분에 인트로가 나오며, 1:40 ~1:43 부분의 현수막에 밀라노(Milano)로 표시되어 있다.[2] 1988 서울 올림픽과 비슷한 성격을 가졌다.[3] 이 때까지만 해도 수비수가 백패스 해준 공을 골키퍼가 손으로 잡을 수 있었다.[4] 게다가 두 경기는 같은 날에 열렸다.[5] 32년 뒤인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의 마스코트 소개영상에서야 추가된 설정이 있는데 블럭들이 제각각으로 움직이고 변하는 타입을 갖고 있다.[6] 이 곡을 부른 가수는 잔나 난니니(Gianna Nannini)와 에도아르도 벤나토(Edoardo Bennato)다.[7] 그리고 1986년에 그 유명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가 터지면서 치명타를 제대로 입었다. 만일 소련이 개최를 했다면 참가 선수들이나 팬들이나 방사능 피폭에 대한 공포로 참가를 꺼렸을 지도 모른다.[8] 더 아이러니한 사실은 소련이 처음 유치하려 했던 1990년 월드컵에선 서독이 우승을 차지했지만, 러시아의 첫 월드컵인 2018년 월드컵에서 독일은 32강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는 것이다.[9] SS 라치오와 AS 로마의 홈구장. 1960 로마 올림픽 주경기장이기도 했다.[10]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와 AC 밀란의 홈구장[11] 과거 유벤투스 FC와 토리노 FC의 홈경기장. 철거 후 알리안츠 스타디움으로 재건축되었다.[12] SSC 나폴리의 홈구장[13] FC 바리 1908의 홈구장[14] ACF 피오렌티나의 홈구장[15] AC 키에보베로나와 엘라스 베로나 FC의 홈구장[16] 우디네세 칼초의 홈구장[17] 칼리아리 칼초의 홈구장[18] 볼로냐 FC의 홈구장[19] US 팔레르모의 홈구장[20] UC 삼프도리아와 제노아 CFC의 홈구장[24개국] [24강] [23] 당시 1승은 승점 2점이었고, 94 월드컵부터 1승은 승점 3점으로 바뀐다.[24] 스코틀랜드와 공동 18위[25] 그나마도 미국은 라이벌 멕시코의 출전자격 박탈(부정 선수로 인한 징계)로 인해 어부지리로 진출한 것이다. 물론 이번 대회의 경우 UAE라는 최약체가 있었던 덕에 대회 전체 꼴찌를 면했고, 이후 미국은 1994 월드컵의 개최국으로서 16강 14위를 기록, 그러나 8년 뒤의 월드컵 32강 본선에서 또다시 3전 전패의 치욕을 당한 데다가 대회 전체 32위 즉, 꼴찌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까지 남기고 말았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8강 8위를 기록했다.[26] 당시 1승은 승점 2점이었고, 94월드컵부터 1승은 승점 3점으로 바뀐다.[27] 스페인이 월드컵 역사상 아시아 팀과 처음 붙는 동시에 첫 골을 실점한 최초의 경기.[28] 그나마 마지막 경기 주전들을 상당히 뺀 상태에서의 경기였다.[29] 후에 KBS에서 브라질 월드컵 개막 직전에 방영한 국가대표팀 관련 다큐멘터리인 '2014 브라질 월드컵 특집 다큐멘터리 : 대한민국 월드컵 도전사' #를 보면 90년 월드컵에 참가한 당시 선수들의 아쉬움을 느낄 수 있다. 다큐멘터리에 출연하였던 전 국가대표 선수인 최순호와 김주성, 박경훈은 대회때 느낀 아쉬움을 여지없이 토로하였는데 그 중 박경훈 전 감독의 경우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압박축구로 나타났던 그때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게 결정적인 패인'이라고 말하면서 세계 축구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한 우리 대표팀의 자세에 커다란 아쉬움을 드러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때 지역 예선에서 한국은 6전 전승에 25득점을 작렬시켜 아시아 무대를 거의 주름 잡았고 상대들도 거의 약한 모습을 보여주다보니 쉽게 경기를 풀어갈 수 있었다. 이런 모습 때문에 언론들의 설레발은 계속해서 펼쳐지게 되었고 그런 분위기에 적응된 대표팀도 역시 대회에 참여하며 나섰지만 결국 전패 탈락의 아픔을 느끼는 굴욕 속에 대회를 마무리 짓는다.[30] 스페인은 유고슬라비아한테 1:2패, 우루과이는 이탈리아한테 0:2패, 벨기에는 잉글랜드한테 0:1패.[31] 28년 후에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일본과 세네갈이 똑같이 1승 1무 1패에 골득실차 0, 승점도 똑같이 4였고, 서로의 대결도 비겼다. 하지만 그 대회부터 도입된 페어플레이 점수에서 일본(-4)이 세네갈(-6)보다 앞서서, 일본은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하고 세네갈은 조 3위로 탈락했다.[32] 하지만 이집트는 1990년 대회 이후 28년간 월드컵에 나서지 못하였고 오히려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을 휩쓸며 아프리카 대표로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 나서기도 하였지만 최근 행보를 본다면 네이션스컵을 휩쓸었던 리즈 시절과는 거리가 멀다. 유독 월드컵 징크스가 큰 나라였으나, 28년 만에 러시아 월드컵에 나가게 되었다.[33] 토마스 스쿠라비의 해트트릭[34] 유고슬라비아 쪽에서는 지난 경기에서 2골을 넣었던 드라간 스토이코비치가 실축했고 아르헨티나에서도 디에고 마라도나가 실축했다.[35] 이 때 페널티킥 판정에 대해 심판에게 격렬히 항의하던 체코슬로바키아 선수가 축구화를 허공에 던져버려서 그대로 퇴장을 당했다.[36] 그나마 조별리그 3차전인 한국 대 우루과이 경기에서 후반 막판에 나온 다니엘 폰세카의 오프사이드 골을 주심이 제대로 판정했더라면, 이 경기가 무승부로 끝났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한국이 이 월드컵에서 승점 1점 1무 2패를 거둔 유일한 팀이 되었을 것이다.[37] 이는 월드컵 최초로 헤더로만 성공시킨 해트트릭이다. 12년뒤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2번째로 기록.[38] <KBS 연지 1991> p54.[39] 지난 멕시코 대회만 해도 한국 출전 3경기와 개막전, 결승전만 생중계였다.[40] 재미있게도 스쿠라비는 본선 한 골 수준이 아니라 무려 해트트릭을 기록하였다. 그것도 16강에서! 여담으로, 스쿠라비 다음으로 토너먼트에서 해트트릭를 기록한 사례는 32년 뒤에야 나왔다.[41] 약체인 아일랜드와 이집트와도 비기고 3무 1패로 16강 광탈해 망신만 당했다.[42] 스페인 역시 톱시드에서 짤렸는데, 잉글랜드는 톱시드에 배정되어 감독인 루이스 수아레스는 “이탈리아가 영국 훌리건들을 피하기 위한 속임수”라고 반발하였다.[44] 그러나 FIFA 측은 최근 대회의 성적을 반영하여 시드 배정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반박하였다.[43] 최초 출전 이었던 1954 월드컵때도 전패 탈락이었지만 그땐 두 경기만 치러서 2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