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4 10:33:53

선수 겸 감독

플레잉 매니저에서 넘어옴
1. 개요2. 실존하는 선수 겸 감독
2.1. 야구2.2. 축구2.3. 기타 종목
3. 창작물에서의 선수 겸 감독

1. 개요

스포츠에서 선수감독 직책을 모두 겸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 영어로는 해당 종목의 감독을 매니저라고 부르는지 헤드코치라 부르는지에 따라 플레잉 매니저(Playing Manager), 혹은 플레잉 코치(Playing Coach).

보통 프로스포츠 구단에서는 선수와 코치, 감독으로 역할이 세분화되어 있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드물게도 고참 선수들 중 코치와 선수 역할을 병행하는 플레잉 코치가 생길 수 있으며 이들 중에서도 가장 드문 사례로 선수단을 지휘하는 역할을 맡는 감독이 직접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 역할까지 겸해가며 활약을 펼치는, 선수 겸 감독이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체로 프로스포츠에서는 시즌 종료 후 감독직이 비어 있을 시 마땅한 선택지가 없을 경우, 선수단 사이에서 인망이 높은 선수를 감독으로 선출하는 게 일반적이다. 아마추어 스포츠에서는 명감독을 영입하기에는 자본이 부족하거나 스포츠단의 투자 부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스포츠 업계와 관련 없는 인물을 감독으로 고용하거나 감독을 바지사장으로 두고 한 선수가 감독을 대신해서 선수단을 통솔하는 케이스도 있다.

옛날에는 선수층이 얇고 감독감도 적어서, 가장 유서깊은 프로스포츠 리그 중 하나인 메이저리그 베이스볼에서는 선수 겸 감독이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하는 경우도 1901년 이후 5번 있었다.[1] 가장 최근의 경우는 1948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유격수 겸 감독 루 보드로[2][3]이다.

그러나 현대에는 선수 겸 감독으로 성공을 거둔 사례는 거의 없다시피하다. 수많은 유망주들 중에서 선수로서의 자질이 있는 몇몇 선수만이 프로에서 살아남는 게 프로스포츠의 법칙인데, 더욱이 명선수의 조건에 부합하는 뛰어난 운동신경과 자기관리, 그리고 명감독의 조건에 부합하는 선수단 통솔 능력이나 작전 수행능력 등을 모두 갖추는 선수는 좀처럼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 예로 KBO 리그만 해도 선수 겸 감독은 프로 원년 MBC 청룡을 지휘했던 백인천이 유일무이한 사례이며, 일본프로야구에서 조차 선수 겸 감독으로 양쪽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인물은 난카이 호크스노무라 카츠야 말고는[4] 전혀 없다시피하다. 20세기에는 스포츠 의학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선수들을 관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선수 겸 감독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으나, 스포츠 의학과 각종 훈련, 분석기법이 고도로 발달된 21세기로 가면서 선수, 코치, 감독 외에도 트레이너라든가, 전력분석원 같은 프로스포츠와 관련된 직업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운동능력과 판단력 두 가지를 모두 신경써야 하는 선수 겸 감독은 갈수록 사라져 가는 게 현실이다.

물론 동호회 수준으로 가면 아직도 있으며, 나름 전문화된 팀의 경우 코치 겸 선수, 트레이너 겸 선수도 있다. 아마추어 대회에서 좋은 기량을 보이기 위해 훈련한다는 명목도 있지만 본질적인 목적은 서로 즐기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프로처럼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 쪽이 될까말까한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평소에는 트레이너나 감독을 하다가 경기 당일에는 경기에 출전하면 그게 선수 겸 감독이 되는 것이고, 프로처럼 성적에 목 매는 것도 아니고 다들 다른 직업에 종사하면서 취미로 즐기는 것인데다가 선수 풀이 넓은 것도 아니라서 감독이 직접 출전한다고 해서 문제될 것도 없다. 보통 감독을 맡을 정도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경기도 잘 뛴다. 그래서 생활체육에서는 선수 겸 감독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2020년대에 들어 K리그의 경우 적격의 인물 중 지도자 생각이 있는 이들이, 지도자 연수도 받으면서 선수 생활도 마무리할 겸 시작하는, 일종의 지도자 견습 단계로 변하고 있다. 물론 K리그도 자체적인 지도자 준비과정이 잘 되어 있지만 이론밖에 못 가르치기 때문으로, 애초에 이런 경우에는 지도자 면허를[5] 따 놓은 경우도 있으며 특히 염기훈의 경우 플레잉 코치를 하기 전인 2020년에 A급을 취득했다.

2. 실존하는 선수 겸 감독

이름 - 선수 겸 감독으로 재직했던 팀(재직년도) 순으로 기재바란다.

2.1. 야구

2.2. 축구

2.3. 기타 종목

3. 창작물에서의 선수 겸 감독



[1] 특히, 엔트리라는 개념 자체가 거의 없어서 1907년부터 1920년까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감독이었던 휴이 제닝스의 경우, 정식 선수라 보기 어려움에도 대타로 9타석, 대수비로 1경기를 출장하기도 하였다.[2]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마지막 우승이다. 2016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 찬스를 잡았으나 100년 넘게 우승을 못했던 시카고 컵스염소의 저주를 깨고 우승하는 데 기여하고 말았다.[3] 이 공적으로 그는 영구결번까지 되었다. 더욱이 선수로서도 뛰어나서 리그 MVP까지 된, 우승 감독 겸 MVP라는 영원히 다시 나올 수 없는 기록을 세웠다.[4] 그마저도 말년엔 구단과의 불화로 팀을 떠나 롯데 오리온즈, 세이부 라이온즈를 떠돌며 보내야 했다. 그리고 그가 떠난 호크스는 20자리 패스워드행[5] 지도자는 License이므로 자격이 아니라 면허다.[6]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감독[7] 메이저리그 최후의 선수 겸 감독.[8] 현재까지 KBO 리그 최초이자 최후의 선수 겸 감독. 심지어 백인천은 프로야구 원년에 타율 .412를 기록해 현재까지 KBO 리그 역사상 유일한 단일시즌 4할 타자로 남아있다.[9] 이후 전임 감독으로 계약했다.[10] 플레잉 코치 신분으로 있다가 13-14시즌 막바지에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이 경질되면서 선수 겸 감독 대행으로 4경기를 지휘했다. 정식 감독은 아니지만 짧게나마 선수 겸 감독에 부합하는 역할을 했으므로 기재. 실제로 감독 대행으로 팀을 지휘하면서 본인이 직접 교체출전하기도 했다.[11] 2019-20 시즌에 선수 겸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시즌 초반에 팀이 부진하자 수석코치 사이먼 데이비스에게 감독직을 넘기고 전업 선수로 돌아갔다. 이후 데이비스 코치가 팀을 지휘하다가 프랑키 페르카우테런이 임시 감독으로 부임해 잔여 시즌을 이끌었고, 2020-21 시즌부터는 콩파니가 선수 은퇴 후 전업 감독으로 재부임했다.[12] 1990년에는 선수로만/ 91년부터 93년까지 선수 겸 감독으로, 94년부턴 선수 은퇴 이후 감독으로 활약했다.[13] 플레잉 코치 겸 감독대행. K리그 사상 최초.[14] 이후 2021년 1월 15일부터 선수 은퇴후 전임 감독 취임[15] 1968, 1969년에 선수 겸 감독으로 우승한 후 은퇴했다. 사상 최초의 흑인 감독이자 최초의 흑인 감독 우승자이기도 한데, 첫 시즌인 66-67시즌에만 당시 최고전력을 자랑하던 필라델피아와 라이벌 윌트 체임벌린에게 패했을 뿐, 그 다음해에는 같은 식서스에게 1승3패로 뒤지다가 역전해서 업셋, 그 다음해에도 압도적인 전력의 레이커스 (체임벌린이 여기로 이적했다)를 상대로 7차전 만에 원정에서 승리, 역사상 최초로 파이널 7차전에서 원정팀이 승리한 케이스를 만들었다. 여러모로 극적이었던 시절. 69년에 우승 후 러셀은 이전 우승과는 비교도 안된다며 눈물을 흘렸다.[16] 공식 직함은 코치. 그러니까 플레잉 코치(선수 겸 코치)였다. 하지만 삼성 칸은 김가을 감독이 사임한 이후 감독직을 공석으로 두었고, 코치가 감독 역할을 수행했다. 김가을 감독 이후로는 오상택 코치가 감독 역할을 맡다가, 2014년 11월에 오상택 코치가 이탈한 뒤로는 송병구가 플레잉 코치로 전환되며 감독 역할까지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