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자코모 마리 (Giacomo Mari) |
생년월일 | 1924년 10월 17일 |
사망년월일 | 1991년 10월 16일 (향년 66세) |
국적 | [[이탈리아| ]][[틀:국기| ]][[틀:국기| ]] |
출신지 | 이탈리아 왕국 베스코바토 |
포지션 | 하프백 |
신체조건 | 176cm | 77kg |
소속팀 | US 크레모네세 (1941-1946) 아탈란타 BC (1946-1949) 유벤투스 FC (1949-1953) UC 삼프도리아 (1953-1956) 칼초 파도바 (1956-1960) US 크레모네세 (1960-1961) |
국가대표 | 8경기 (1948-1954) |
감독 | US 크레모네세 (1960-1961) 칼초 파도바 (1961-1962) 타란토 FC (1962-1964) 만토바 1911 (1964-1965) 카세르타나 FC (1965-1966) 라벤나 FC 1913 (1967-1968) AC 크레마 1908 (1974-19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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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전 축구 감독.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고향 베스코바토에서 멀지 않은 크레모네세 지방에서 축구를 배운 마리는 이 지역을 연고로 하는 US 크레모네세에서 선수 데뷔를 했다. 1946-47 시즌에 아탈란타 BC로 이적한 마리는 1946년 9월 22일에 세리에 A 데뷔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그 이후 3시즌간 아탈란타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인 마리를 다른 세리에 A의 빅팀들이 노리기 시작했고 그 경쟁의 승자는 유벤투스 FC가 되었다.파롤라와 함께 유벤투스에 입단한 마리는 4시즌간 133경기에 출전하며 중용되었다. 이 기간에 마리는 15경기에 결장했으며 유벤투스는 2회의 스쿠데토를 차지했다.
마리는 1953년부터 UC 삼프도리아에서 3시즌, 칼초 파도바에서 4시즌을 머물렀고 1960-61 시즌에 데뷔팀인 US 카르모네세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선수 커리어의 마지막을 보냈다.
2.1.2. 국가대표
마리가 아탈란타 BC에서 펼치는 활약을 눈여겨 본 당시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 비토리오 포초는 마리를 1948년 올림픽 대표팀에 소집시켰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8강에서 덴마크에 3:5로 일격을 맞아 탈락하고 말았다.마리는 1950년과 1954년, 2차례 FIFA 월드컵에도 참가했고 각 대회에 한 경기씩 출전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수페르가의 비극을 극복하지 못하고 상위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마리는 체력과 운동 능력이 좋고 위치 선정을 잘하는 하프백이었다. 여기에 이타적이면서 용감한 플레이를 펼쳤기 때문에 마리는 출전만 하면 중원의 엔진 역할을 맡았다.4. 수상
4.1. 선수
4.1.1. 클럽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
분류
- 1924년 출생
- 1991년 사망
- 1941년 데뷔
- 1961년 은퇴
- 롬바르디아 주 출신 인물
- 이탈리아의 남자 축구 선수
- 수비수
- US 크레모네세/은퇴, 이적
- 아탈란타 BC/은퇴, 이적
- 유벤투스 FC/은퇴, 이적
- UC 삼프도리아/은퇴, 이적
- 칼초 파도바/은퇴, 이적
- 이탈리아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 참가 선수
-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참가 선수
- 이탈리아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1948 런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선수 겸 감독/축구
- 이탈리아의 남자 축구 감독
- US 크레모네세/역대 감독
- 칼초 파도바/역대 감독
- 타란토 FC/역대 감독
- 만토바 1911/역대 감독
- 카세르타나 FC/역대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