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9-01 20:17:50

제11차 이제르론 공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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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차 이제르론 공방전
Eleventh Battle of Iserlohn · 第11次イゼルローン攻防戦
날짜
우주력 801년, 신제국력 3년 표준력 2월 12일
장소
이제르론 공화정부이제르론 회랑 알테나 성계 이제르론 요새
교전 당사자파일:lion02_s.png 은하제국 로엔그람 왕조 파일:lion02_s.png 이제르론 공화정부
지휘관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바겐자일
율리안 민츠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발터 폰 쇤코프
올리비에 포플랭
병력 은하제국군
바겐자일 함대
함정 8500척, 장병 불명
바렌 함대
함선 1만 5600척, 장병 불명
총병력
함정 2만 4100척, 장병 불명
이제르론 혁명군
함정 6600척, 장병 불명
이제르론 요새
피해 규모 장병 40만 명 이상 전사 피해규모불명
결과
이제르론 혁명군의 승리

1. 개요2. 배경3. 경과
3.1. 전쟁 준비3.2. 전투 개시
4. 이후 이야기5.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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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영웅전설의 에피소드
하이네센 동란 제11차 이제르론 공방전 오베르슈타인의 풀베기
역대 이제르론 요새 공방전
제10차 이제르론 공방전 제11차 이제르론 공방전

1. 개요

  • 등장 작품
    • 은하영웅전설 10권 <낙일편> 2장
    • 은하영웅전설 OVA 102화
  • 시기 : 우주력 801년, 신제국력 3년 표준력 2월 12일 4시 35분 ~ 21시 40분
第11次イゼルローン攻防戦

은하영웅전설의 전투. 이제르론 공화정부가 성립된 이래 은하제국군과 벌인 최초의 교전이자 이제르론 요새를 두고 일어난 마지막 공방전이다.[1]

2. 배경

우주력 800년, 노이에란트 전역에서 이제르론 공화정부가 노이에란트 총독 오스카 폰 로이엔탈의 협력 제의를 거부하고 은하제국에 협조하면서 형성된 해빙 무드 덕분에 양 세력은 잠시나마 평화공존 관계를 수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주력 801년, 신 제국력 3년에 접어들어 이 관계는 완전히 붕괴하고 말았다. 이른바 하이네센 동란이라고 불리우는 사건으로 구 동맹령이 혼란에 빠졌으며, 페잔의 항로국 데이터가 삭제되기도 했다. 이 사건의 배후에는 구 페잔 자치령의 란데스헤르 아드리안 루빈스키가 있었는데, 제국군에서는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 상급대장을 중심으로 이제르론 공화정부를 토벌하여 노이에란트의 안정을 꾀해야 된다는 강경론이 대두되었다.[2]

한편 이제르론 공화정부 측에서는 노이에란트 전역에서 로이엔탈의 협조를 거부함으로써 '원칙 없는 반제국 봉기에 협력하지 않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밝혔을 뿐만 아니라 제국과 호의적인 관계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하이네센 동란 이후 구동맹령에서는 제발 우리들을 버리지 말아달라고 10건이 넘는 구원요청을 보냈다. 거기에다 일부에서는 노이에란트 전역 당시 공화정부의 행적을 들어 공화정부의 진정한 목적은 민주주의가 아닌, 그저 자신들의 안전만 추구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제르론 측에서도 군사력이 부족해서 함부로 공세에 나설 수 없는 처지였다.

고심 끝에 율리안 민츠이제르론 혁명군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싸우는 군대라는 것을 전 우주에 표명하기 위해, 쟁취를 긍정하는 카이저 라인하르트의 마음을 헤아려 전쟁을 결정했다. 그리고 바렌을 이제르론 요새까지 끌어들이는 작전안을 제안했다.

3. 경과

3.1. 전쟁 준비

하이네센에 남아 노이에란트의 혼란을 정리하는 임무를 맡았던 바렌와 민사정부는 혼란 진정에 애먹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이제르론이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보고까지 날아들자 불쾌한 감정을 느껐다. 바렌은 제국 정부에게 현재 노이에란트의 폭동은 정치적 요구와 물질적 요구에 근간을 두고 있으며, 물질적 요구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물자 유통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수밖에 없다고 통신을 보냈다. 라인하르트는 이를 받아들여 공부성에 대책 마련을 명령했고 페잔 회랑 샤텐부르크 공역에 대군을 집결시켰다.

한편 바렌은 하이네센이제르론 요새를 잇는 회랑의 중간 공점에 함대를 배치하여 노이에란트의 폭동을 견제하고 이제르론에 대한 감시와 대응능력을 강화했다. 이 때 바렌 상급대장이 가진 전력은 함정 15,600척으로, 이 전투에 투입된 이제르론 혁명군 보다 2배 많은 병력이었다.

하지만 2월 7일 율리안 민츠가 이끄는 6,600척의 이제르론 혁명군은 구 동맹령이 아닌 제국 본토 쪽으로 진격을 시작하여 바렌과 참모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별다른 전략적 가치가 없는 진격이었기 때문에 바렌은 양동작전으로 생각하였다. 그렇다고 이제르론 공화정부군을 내버려둘 수는 없었기에 함대를 이제르론 회랑까지 진출하여 배후에 위협을 가하기로 결정하고 2월 8일 함대를 출격시켰다.

3.2. 전투 개시

한편, 이제르론 회랑의 제국령 출구 방면을 지키는 부대는 바겐자일 대장이 지휘하는 8,500척의 함대였다. 2월 7일 이제르론 혁명군의 접근 사실을 보고받은 바겐자일 대장은 부하들에게 함대를 출격시켰다.
"이제르론의 들개들이 컹컹 짖어대다 자기들이 늑대라고 착각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개를 훈련할 때는 채찍이 필요하다. 두 번 다시 놈들이 실력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혹독하게 조련해 줘라."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10권 <낙일편>, 김완, 이타카(2011), p.67

2월 12일 4시 20분, 혁명군과 제국군은 2.9광초(87만 km)를 사이에 두고 정지했다. 그로부터 15분 뒤, 양측 지휘관의 발포명령을 시작으로 양군은 전투를 시작했다. 1시간 넘게 포격을 주고받던 혁명군은 5시 40분 제국군이 밀고들어오는 만큼 후퇴하여, 얼마 뒤에는 함포사격 외에는 반격을 하지 않고 퇴각하기 시작했다. 혁명군의 후퇴에 제국군은 스스로 함렬을 무너뜨리고 무질서하게 혁명군을 추격하면서 이제르론 회랑으로 진입했다. 이것이 6시 30분이었다. 함대의 후퇴에 따라 혁명군의 공전대도 모함으로 귀환했는데, 스파르타니안 240기중 16기를 상실하는 동안 제국군 발퀴레 104기를 작살내는 우월한 교환비를 기록하면서 그 실력을 과시하였으며, 이 전투에서 포플랭은 250번째 격추기록을 세워, 제국-동맹 전쟁을 통틀어 격추 스코어 10위 내로 진입하였다.

그 시각 제국군은 무질서하게 혁명군을 추격하고 있었는데, 사령관 바겐자일 대장은 제5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 구 동맹군 우주함대 사령장관 시드니 시톨레 대장이 병행추격으로 난전을 유도하여 토르 하머를 봉인하고 이제르론 요새를 일부 파손시킨 일에 착안해서 이 병행추격 전략을 도입하여 토르 하머를 봉인하려 한 것이다.

물론 율리안 민츠는 이를 예견했으며 결국 제국군은 토르 하머을 봉인하지 못하였다. 마지막까지 실낱 같은 희망에 모든 것을 걸고 추격한 바겐자일은 실패를 인정하고 후퇴한다. [3] 하지만 이제르론 요새와 그 주변의 배치된 이제르론군의 병력배치 상황을 알면서도 자신의 응원 및 구원을 위해 출동한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상급대장의 함대에게 이를 전파하지 않아 가뜩이나 바겐자일 함대가 완전히 퇴각할 때까지 싸워야 했던 바렌에게 의도치 않은 복병공격을 받게 해 이제르론 요새 공략을 실패하게 함 과 동시에 토르 하머에 의한 피해을 보게 해야만 했다.

바겐자일 함대가 후퇴하는 도중 바렌 함대가 이제르론 요새 근처에 모습을 드러냈다. 혁명군은 즉각 뱃머리를 돌려 바렌 함대와 교전했지만, 바렌 함대의 맹공을 버티지 못하고 후퇴했다. 바렌은 퇴각하는 바겐자일 함대를 지원하기 위해 적의 노림수를 알면서도 일부러 토르 하머의 사정권에 들어갔다. 여기에는 토르 하머의 에너지가 충전되기 전에 요새에 육박하면 된다는 계산도 있었다.

제국군 바렌 함대가 '질풍 볼프' 볼프강 미터마이어 원수도 경탄할 정도로 급속전진해 토르 하머의 사각으로 파고들려는 순간, 메르카츠 제독이 지휘하는 별동대가 제국군의 좌측면을 기습공격했다. 원래 이 별동대는 바렌 함대의 정찰 시스템으로부터 사각이 되는 공점에 숨어 있었다가 때가 되자 뛰쳐나온 것이다. 바겐자일 함대는 이 별동대를 발견했지만 경고를 보내지 않았다.

별동대로부터 불의의 기습을 받은 바렌 제독은 침착한 지휘로 함열을 재편하고 혁명군의 공세로부터 함대의 와해를 막았으나 더 이상 공세를 퍼부을 수 없었다. 토르 하머의 에너지 충전이 끝난 것을 인식한 바렌 제독은 전 함대에 최대 속도로 후퇴할 것을 명령했으나 20시 15분, 토르 하머가 발사되었고 200초 뒤 2차 포격이 있었다. 제국군은 20시 45분, 사령관 바렌 제독의 명령으로 전투를 중단하고 후퇴했다.

21시 40분 제국군이 완전히 전장에서 철수한 것을 확인한 율리안 민츠는 이제르론 요새로 철수하였다.

이후의 제국군 내부의 전후검증에서 바겐자일이 바렌에게 적의 복병의 존재를 미리 전달하지 못한 점 등의 과실이 드러나게 되자 미터마이어메크링거는 요즘 대장급 이하 장성급 장교들에선 인재가 없다는 소리와 함께 바겐자일에 대한 비판을 삼가지 않았다.

4. 이후 이야기

이제르론 공화정부에서는 "황제의 정강이를 걷어차 줬다"며 이 전투의 승리를 평가하고 자축하였다. 어쨌든 양 웬리 사후 처음으로 민주공화주의 세력이 제국군을 이긴 전투였다. 여기에 바그다슈보리스 코네프 등이 이 승전보를 프로파간다 삼아 반제국 세력의 사기를 끌어올리려 하였다. 제국군은 보도관제를 통해 패전 사실을 감추려 했으나 승전 소식은 2월 하순 보도관제망을 뚫고 시민들에게 알려졌으며 하이네센의 시민들은 크게 환호했다. 바렌 제독은 승리에 흥분한 하이네센 시민들과 충돌할 것을 우려하여 하이네센으로 가지 않고 간다르바 성계에서 페잔에서 올 지원군을 기다렸다.

바렌의 패배를 보고받은 황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2월 18일 제국군 총본영에서 친정을 선언했으나 다음날 갑작스러운 고열 때문에 원정을 취소했다. 발열 증세는 사흘 만에 호전되었으나 친정 계획은 재개되지 않았다. 대신 군무상서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원수가 황제의 대리인으로서 전권을 위임받아 노이에란트의 혼란에 대처하도록 했는데, 배배꼬인슈타인이 오베르슈타인의 풀베기를 단행하고 라그풀 교도소 폭동사건이 터지면서 오히려 혼란이 가중됐다. 결국 이 혼란은 아드리안 루빈스키가 죽은 뒤에야 가라앉았다.

발터 폰 쇤코프 중장은 다른 장소에서 아텐보로, 포플랭과 함께 하이네센 탈환작전이 시작될 거라고 예측했지만 결국 그 작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후 시바 성역 회전에서 제국군과 화평하기 때문이다.

5. 평가

양 웬리 사후 의문 부호가 따라붙던 율리안 민츠의 입지가 어느정도 단단해진 전투이다. 바렌 상급대장은 이제르론 군의 움직임에 대해서 참모들이 하찮게 여기자 상대는 어리긴 하나 양 웬리의 신임을 받았던 자로 생각된다며 신중해했었는데 결국 바렌의 말은 옮음이 증명되었다. 해당 전투에서 쓸 작전의 아이디어 자체는 양 웬리에게 어깨너머로 배운 것들을 짜 맞춰 수립한 것으로 여기에 전문적인 군사학 지식과 기술, 풍부한 경험을 가진 이제르론군의 수뇌부들이 율리안을 보좌하여 작전을 성공시켰다. 바렌은 토르 해머 사정권에서 위기에 봉착한 바겐자일 함대를 내버려둘 수 없었고, 바렌이 이동할 것으로 예측된 사각지대에 메르카츠가 매복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덕분에 결국 바렌 본인은 토르 해머 재충전 시간 내에 이제르론 공략 포인트에 도달하지 못했고 결국은 주포에 정통으로 얻어맞는 상황을 연출했다. 메크링거, 비텐펠트, 미터마이어 등은 이를 메르카츠의 보좌의 결과물로 보았으나 비텐펠트가 과정의 모습을 보고는 이 정도 용병술을 보니 혁명군 지휘관이란 자도 만만치 않다고 평가했으니 어쨌든 전술적으로는 합격점.

단, 전략적으로 본다면 본 전투의 승패와 상관없이 해당 전투를 벌였다는 사실 자체가 과연 현명한 선택인지 의문이다. 비록 구 동맹령 내의 반제국 폭동이 격화되고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제국군은 건재했는데[4] 가뜩이나 회랑 전투 때보다도 적은 전력을 가진 혁명군이[5] 이처럼 제국군을 건드리는 행위가 가져올 후폭풍을 생각하면 옳은 선택인지가 의문이다. 실제로 뒤이어 해당 전투로 발생한 나비효과로 촉발된 오베르슈타인의 풀베기로 이제르론 공화정부 수뇌부가 제국군에게 항복할 뻔한 것을 생각하면 해당 전투의 결과로 일어난 일들이 긍정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차라리 앞서 언급한 노이에란트 전역에서 제국군이 오스카 폰 로이엔탈의 반군을 진압하는 데에 도움을 준 것을 빌미로 제국과의 교섭을 요청해 바라트 성계 자치령 창건이든 뭐든 협상하는 것이 혁명군 입장에서는 더 뒷탈 없고 현명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여기에는 반론도 존재하는데, 우선 노이에란트 전역 당시 제국은 이제르론 공화정부에게 도움을 요정한 적도 없고 요청할 필요도 사실상 없다시피했다. 이제르론 공화정부는 1만척도 안 되는 전함을 보유하고 있었고 양 웬리도 에드윈 피셔도 없어서 전술전략적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는 무리다. 이런 이들을 상대로 협상까지 한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밀면서까지 도움을 요청할 메리트는 없으며 더군다나 제국의 군사력은 아직도 몇십만척 이상 군함을 가진 수준으로 추정되며 이 중에 노이에란트에 있던 함선은 4만척도 안 되어서 사실 제국이 이기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6] 그렇기에 여기선 교섭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

하이네센 동란 관련해서도 이제르론 공화정부는 제국 강경파들 말마따마 공화주의자들의 심적 구심점이었고 실제로도 이들이 활동을 하며 양 웬리의 이름을 내걸었다는 것을 보면 공화주의자들의 구심점은 양 웬리, 그리고 그의 후계자들이 세운 이제르론 공화정부다. 그런 만큼 공화정부의 행보가 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은 뻔한데 공화주의자들은 열심히 활동하는데 공화정부가 외면하면 공화주의자들 역시도 공화정부를 외면할 것이고 그것은 결국 공화정부의 정치적 위신 실추이며 또한 이렇게 공화주의 세력이 분열되면 제국에게만 좋은 일로서 공화정부의 목적도 달성하기 어려워진다.[7] 결국 공화정부는 필연적으로 제국과 충돌할 수 밖에 없었던 셈이다.

어찌 보면 위의 전략적인 면에 관한 복잡한 논쟁이 발생한 것 자체가 이제르론 공화정부의 복잡한 상황을 대변하는 증거일지도 모른다.[8]

한편, 제국군에게 있어서는 대장 이하급 지휘관들의 능력 수준이 상급대장 이상에 비해 차이가 명확하다는 점이 드러난 전투였다. 바렌이 최선을 다해 바겐자일의 후퇴를 엄호하고 메르카츠가 기습할 때까지 혁명군을 밀어붙였던 것에 반해 바겐자일은 바렌은 신경쓰지도 않고 도망치기 바빴다. 볼프강 미터마이어는 제국 본토의 잔류부대는 다소 추태를 보였다고 혹평했다. 바겐자일 대장도 해당 전투에서 보여준 모습을 보면 아주 낮게 보더라도 중견급 이상은 되었는데, 평행추격은 시톨레를 비롯하여 구 동맹군이 수 많은 피를 흘리며 찾아낸, 토르 하머를 봉쇄하기 위한 검증된 수단인 만큼 그 자체는 나쁠 것이 없고, 토르 하머 봉쇄가 실패한 시점에서 고집을 피우지 않고 바로 퇴각을 결정하는 등 전술가로서 구 동맹군에서도 이에 견줄만한 중장 이상급 장성들은 거의 없을정도는 되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다. 하지만 바렌을 비롯한 다른 아군까지 고려한 넓은 시야는 갖지 못했고 위기 상황에서 자기 함대만 챙기기에 급급하여 자기는 살 수 있었지만 큰 손해를 볼 필요가 없던 바렌의 함대에 토르 하머를 먹여 막대한 손실을 안겼다. 제국군 고위층에서는 바로 이러한 점을 걱정한 것. 바겐자일은 이제르론군을 들개 취급 했지만, 상대는 이제르론 요새라는 막강한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양 웬리 함대의 주요 전투 브레인들이 대다수 남은 상태이며, 여기에 리즈시절 양 웬리 함대 주요 포스트들에게 개인교습을 받고 육성된 율리안 민츠가 직접 지휘하여 제국군 대장급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시야를 갖고 있어 이러한 역량이 부족한 제국군의 패배는 전투 전부터 확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로엔그람 왕조 치하 또는 그 이전 로엔그람 원수부 시절때까지만 해도 현재의 대장급 지휘관 중 촉망받던 인재는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대다수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새로운 쌍벽으로 기대를 모으던 알프레트 그릴파르처노이에란트 전역에서 이중배신이라는 추태를 보인 끝에 계급장도 떼이고 자결당했고, 그 친구인 브루노 폰 크납슈타인도 그릴파르처의 이중배신극에 공범으로 참여하다 전사하고 말았다. 그 이전의 이자크 페르난트 폰 투르나이젠버밀리온 성역 회전에서의 실책으로 인격적인 결함이 윗선에 제대로 드러나 한직으로 좌천되어 끝까지 요직으로 복귀하지 못했다. 그나마 착실하게 성장하며 주목받는 칼 에두아르트 바이어라인도 제2차 란테마리오 회전에서 로이엔탈에게 손도 대지 못하고 먼지 나도록 맞으며 경험 부족을 드러냈기에 미터마이어의 위기의식을 자극했다. 다만 이는 이 시기의 제국군 수뇌부가 역대급 실력자들로 구성된 것은 감안해야 한다. 실제로도 상급대장 이상의 장성들은 충분히 제 몫을 하기도 했고.


[1] 다만 이전까지의 이제르론 공방전들이 공격측에서 완전하게 이제르론 공략을 위해 벌인 전투라면 이 전투는 이제르론 혁명군 측에서 먼저 선빵을 걸어 일어난 전투다.[2] 이제르론이 있으니까 공화주의자들이나 루빈스키 같은 놈들이 설친다는 논리.[3] OVA에서는 후퇴 도중 토르 하머에 한 방 맞는다.[4] 이전에 회랑 전투, 노이에란트 전역과 앞서 말한 구 동맹령에서의 난리를 겪었음에도 훗날 있을 시바 성역 회전에서 600만에 달하는 대군을 동원한 데에서 증명된 바 있다.[5] 더군다나 회랑 전투가 끝난 후에 혁명군은 함대 운용을 책임지던 부사령관 에드윈 피셔가 전사한 관계로 양 웬리가 다시 전투가 일어나면 자신들의 패배가 확실시된다고 평할 정도로 불리한 상황이었다.[6] 그리고 로이엔탈쪽은 로이엔탈만한 군사적 역량을 가진 장군이 로이엔탈 하나뿐이었지만 제국은 미터마이어, 비텐펠트, 메크링거 등 다수가 있었다.[7] 중요한 점은 공화정부나 공화주의자들이나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공화정부는 정치력과 군사력 모두 어느정도 가지고 있고 이제르론 요새라는 제국도 건드리기 힘든 곳에 짱박혀 있어서 일단 당장에는 제국으로부터의 탄압에서는 자유롭지만 이제르론 요새의 지리적 특성 때문에 외부로의 확장이 거의 불가능하고 이는 병력, 인구, 민심 확보에 상당한 에로사항이 있다는 의미다. 반면 공화주의자들은 공화주의에 대한 민심을 확실히 확보하거나 제국에 보여줄 수 있지만 이들은 특별한 구심점도 무력도 없다. 즉 공화정부는 공화주의자들을 통해 구 동맹령의 공화주의에 대한 민심을 보여줄 수 있고 공화주의자들은 공화정부를 통해 자신들의 심리적 구심점과 공화주의를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어 결국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다.[8] 전력상으로 제국에게 맞다이를 뜨는건 자살행위이지만 구 동맹령의 민심을 고려하면 안 붙을 수도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