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9 15:19:00

윤종오

파일:국회휘장.svg 대한민국 국회의원 (울산 북구)
제19대
박대동
제20대
윤종오
[1]
제20-21대
이상헌
제20-2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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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북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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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대 울산광역시 북구청장
<colbgcolor=#d6001c><colcolor=#fff> 대한민국 제20·22대 국회의원
윤종오
尹鍾五 | Yoon Jongo
출생 1963년 8월 14일 ([age(1963-08-14)]세)
경상남도 합천군
본관 파평 윤씨
재임기간 제4대 울산광역시 북구청장
2010년 7월 1일 ~ 2014년 6월 30일
SNS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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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6001C><colcolor=#fff> 가족 아내 김종임, 슬하 1남 2녀
병역 육군 제7공수특전여단 병장 만기전역
(1984년 2월 27일 ~ 1986년 7월 24일)
소속 정당

파일:진보당(2020년) 흰색 로고.svg
지역구 울산 북구
의원 선수 2
의원 대수 20[당선무효], 22
학력 부산성동초등학교 (졸업)
부산서중학교 (졸업)
부산공업고등학교 (졸업)
동의대학교 (국민윤리학 / 중퇴)
울산대학교 (지역개발학 / 학사)
부산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3] / 석사)
경력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조직실장
제2대 울산광역시 북구의회 의원 (민선 2기 / 무소속)
제3·4대 울산광역시의회 의원 (민선 3·4기 / 민주노동당)
제4대 울산광역시 북구청장 (민선 5기 / 민주노동당)
민중당 원내대표
제20대 국회의원 (울산 북구 / 무소속)
새민중정당 대표
진보당 울산광역시당 민생특별위원장
진보당 울산광역시당 달빛어린이병원 추진본부장
제22대 국회의원 (울산 북구 / 진보당)
}}}}}}}}}

1. 개요2. 어린 시절
2.1. 노동조합 활동2.2. 정치 활동
2.2.1. 구청장 재임 시절
2.2.1.1. 세대 공감 창의 놀이터 2.2.1.2. 친환경 무상급식2.2.1.3. 체불임금 없는 관급공사 운영 조례2.2.1.4. 차오름 장학금2.2.1.5.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2.2.1.6. 천마산 편백숲 산림욕장, 박상진 호수공원2.2.1.7. 화동못 수변공원, 강동사랑길 2.2.1.8. 코스트코
2.2.2. 구청장 재임 이후2.2.3. 국회의원 재임 시절
2.2.3.1. 쉬운 해고 금지법2.2.3.2. 신고리 6호기 추가 건설 반대
2.2.4. 민중당 창당 이후
3. 여담4. 선거 이력5. 소속 정당6.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진보당 울산시당 민생특별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울산 북구에서 구의원과 구청장을 역임하고 지역구 국회의원까지 당선된 인물이다. 보수정당 강세 지역인 울산 내에서도 노동자 인구 비중이 높은 북구에서 군소 진보정당의 세를 형성하고 있는 대표적인 정치인 중 한 명. 현재에도 울산 북구를 지역 기반으로 하고 있다.

2. 어린 시절

1963년 8월 14일 경상남도 합천군에서 태어났다. 6살 되던 1968년 부산시로 이사왔는데, 당시 살던 집은 단칸방에 부엌 하나, 화장실은 공중화장실, 수도가 없어 2-300미터 걸어가서 물을 길어와야 했고, 집중호우 땐 안방까지 물이 찼다고 한다.

아버지는 천하의 노름꾼이었지만 어머니는 억척으로 5남매를 고등학교까지 공부시키고 추운 겨울날 새벽 두시 콩국 리어카를 끌고 서면까지 가서 손등, 발등 갈라지도록 장사를 했다고 한다. 이런 어려운 시절을 겪었어서 세상 어디에 던져 놓아도 살 수 있다는 강인함과 자립심이 생겼던 것이다. 또한 윤종오의 정체성인 미소는 늘 웃는 모습이 일품인 어머니에게 받은 최고의 유산이라고 자평한다.

부산성동초등학교, 부산서중학교를 졸업하고, 부산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해 3학년 2학기부터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첫 직장은 '미기화학'이라는 방위산업체였는데, 고무 가루를 취급하는 곳이라 퇴근할 때면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고, 코를 풀면 시커먼 덩어리가 엄청 나왔었다고 한다. 다음 직장은 거제도 대우조선소였다. 그 당시 한 달에 철야 특근을 많게는 10개까지 할 정도였고,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과도한 노동으로 몸이 망가져 향수병이 생겨나 석 달 반 남은 대학입학 학력고사를 준비하여 동의대학교 국민윤리학과에 합격했다. 1년간의 대학 생활 동안 학생회 간부도 하며 재밌게 지냈으나, 더는 학교 다닐 형편이 되지 않았고 마침 영장이 나와 1984년 2월 27일 육군에 입대하였다. 이후 육군특수전사령부 예하 제7공수특전여단에서 28개월 반동안 공수부대 정보병(전투정보 특기)으로 복무하며 '안되면 되게하라'를 몸에 뱄다. 1986년 7월 24일 병장으로 만기전역하였다.

2.1. 노동조합 활동

전역 후 복학하지 않고 1986년 8월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다. 당시 현대자동차는 현재와 다르게 매달 수백 명씩 뽑았고 그만두는 사람도 많았다.[4] 그러던 87년 7월 25일 아침, 노동조합을 창립하니 12시까지 본관으로 모이라는 유인물이 뿌려졌는데, 호기심에 가 보니 민주노조 설립이 아니었고, 민주노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며 자신은 트럭 위에서 메가폰을 잡고 두 시간 넘게 진행을 맡았다. 그렇게 시작한 민주노조 활동은 네 번의 대의원과 총무부장, 사업부 대표, 노동조합 조직 실장, 현대그룹노동조합 총연합 조직국장을 역임했다. 91년 말 시작된 성과분배 투쟁으로 징계와 수배, 한 달간 구속당했다. 이후 1996년부터 1997년까지 현대그룹 노동조합총연합 조직국장을 역임했다. 이때 정리해고 날치기에 맞서 한 달이 넘는 총파업 투쟁이 벌어졌고 당시 집회 사회를 봤었다.

2.2. 정치 활동

앞선 투쟁 직후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울산광역시 북구의회 의원 선거에 '정리해고 반대! 살맛 나는 지역 건설!'를 구호로 걸고 출마하였다. 그리고 무소속 이홍우 후보를 누르고 노동자들의 열성적인 지지로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하였다.

당선되고 나서 의원 사무실 명칭을 '염포주민문화센터'로 달고 지역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작은 공간에 도서관, 어르신 한글 교실, 치매 예방 건강강좌, 주택가 재활용품을 수거해 재생 화장지로 바꿔주는 활동을 했다. 본인은 특히 어르신 한글 교실이 가장 보람있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글 모르는 어르신들 모으는 것도 어려웠다고 한다. 어르신들 찾아다니면서 “글 몰라 답답하시죠? 글 모르는 건 어머님들 잘못이 아닙니다. 일제 강점기와 6.25를 겪으며 시대를 잘못 만났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고생하시면 세상이 다르게 보일 겁니다.”라고 설득해서 10명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그 한글 교실은 입소문을 타고 20명, 30명 금방 불어나 지금 그 어머님들이 글을 배워 간판도 읽고, 버스도 타고, 편지도 쓰고, 카톡도 보낸다고 한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로 울산광역시의회 북구 제3선거구에 출마하여 한나라당 정윤석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어 광역의회에 입성하였다. [5] 19명 중 3명이었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해 시민단체로부터 임기 중 세 차례 우수의원으로 선정되었고, 이어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민주노동당 후보로 울산광역시의회 북구 제3선거구에 출마해 한나라당 이상만 후보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한다.

2.2.1. 구청장 재임 시절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민주노동당 후보로 울산광역시 북구청장 선거에 도전하여 한나라당 류재건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구청장이 되고 처음 한 일은 주민참여과를 만들어, 주요사업 추진 시 주민과 협력할 방안을 기획단계부터 고민하도록 업무보고 양식을 바꿨다. 또한 공무원이 주민참여 행정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 이해하도록 꾸준히 교육하고, 주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을 통해 주민이 행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주민이 행정에 관심도 높아지고, 공무원도 주민참여가 사업의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정임을 알게 했다.

주민참여 행정은 마을공동체 만들기, 도시농업, 염포동 주민센터 신축, 세대 공감 창의 놀이터 사업으로 성과적으로 나타났다.
2.2.1.1. 세대 공감 창의 놀이터 [6]
2008년 음식물 자원화 시설이 가동을 멈춘 후 방치되고 있었는데, 도쿄 장난감 미술관 시설 견학을 갔을 때 관장에게 후쿠시만 원전 사고로 많은 일본국민이 목숨을 잃고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 체육관에서 생활할 때, 도쿄 장난감 미술관이 어린이 장난감을 들고 위로 방문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두 어렵고 힘든 상황이지만, 아이들이 장난감을 갖고 놀며 행복해지자 어른들도 덩달아 미소짓게 되는 것을 보고 '아이들을 위한 시설을 만든다면 지나온 갈등도 치유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후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고, 주민을 만나 설명하고, 주민설문조사도 진행하고, 필요한 시설인지 여부에 대한 용역도 실시하면서 주민 동의 받아 구청장 3년 차에 첫 삽을 뜨고 #, 지금은 북구만 아니라 울산 전역에서 어린이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2.2.1.2. 친환경 무상급식
당시 북구청의 예산만으로 초·중학생 모두에게 무상급식을 한다는 것은 어려웠으나 시민사회와의 협의를 통해 친환경 급식은 아이들의 건강과 미래를 위해 대상 아동 전체에 실시하고, 무상급식도 북구청이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것 이상의 범위에서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7]

뒤이어 주민과 급식 관련 시민사회단체, 북구청이 함께 '친환경 급식지원센터'를 만들고 친환경 식자재 공급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북구에 친환경 농산물 생산 의지가 있는 농업인을 모으고 농협과 북구청, 생산자 3차 협약을 통해 안전한 친환경 식재료를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행정의 신뢰를 기반으로 학교를 찾아가 설득하고, 센터도 많은 설명회와 간담회를 개최하여 신뢰를 쌓았다. 2011년 2월 20개 모든 초등학교가 친환경 무상급식비를 신청하면서 민관 거버넌스로 추진한 최초의 친환경 급식지원센터를 설치했다. [8] 주민과 학생, 지역 농가가 함께 한 북구 친환경 무상급식은 당시 행정안전부로부터 민관협력 우수 사례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9]
2.2.1.3. 체불임금 없는 관급공사 운영 조례
10년전까지만 해도 명절 때가 되면 건설업체 임금 체불은 빈번히 일어나고 있었다. 구청에서 발주하는 사업만이라도 임금 체불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2013년까지 12개 광역시도와 133개 기초단체가 체불임금 없는 조례를 제정해 운영하였고, 계속 확산시켰다.[10]
2.2.1.4. 차오름 장학금
2011년 당시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었는데, 북구에는 교육진흥재단이 있었고, 북구청이 9억, 모금이 1억 원으로 10억 원의 기금이 있었다. 재단 운영에 대한 고민이 있었지만, 비정규직 자녀 장학금을 지급하자는 것으로 뜻이 모여 첫해 비정규직 자녀 중 대학 입학생 30명에게 100만 원씩 지급했다.[11]
2.2.1.5.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당시 북구청에도 비정규직이 참 많았지만 행정기관은 총액인건비라는 제도에 묶여 마음대로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우선 비정규직 업무 중 사람이 바뀌면 사업성과가 떨어지거나 지속성을 가져야 하는 일자리부터 정규직으로 전환하였습니다. 취약계층을 돌보는 방문간호사업과 사회복지사례관리사 등 15명을 우선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정규직 전환 첫 교육자리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한 분이 “목걸이(신분증)을 정말 걸고 싶었어요. 소속감이거든요. 그 전 직장 다닐 때도 비정규직이었어요. 부서 회식 때 당연히 갈 줄 알고 퇴근 준비하는데 저는 대상에 없더라구요. 얼마나 서러움이 복받쳤는지 몰라요. 정규직 시켜주셔서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한다.
2.2.1.6. 천마산 편백숲 산림욕장, 박상진 호수공원
천마산 편백숲 산림욕장은 1985년 산불이 난 후 편백숲 조림사업을 진행했고, 제가 북구청장을 하던 당시에 산림욕장을 조성하고, 산책로를 만들어 울산의 많은 분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박상진 호수공원은 광복군 총사령관 고헌 박상진 의사의 생가가 있는 송정동에 있는 호수공원입니다. 송정 저수지 일원을 생태공원으로 조성하고, 박상진 의사의 스토리텔링을 더해 울산의 대표적인 생태 호수공원으로 조성하였다.
2.2.1.7. 화동못 수변공원, 강동사랑길 [12]
화동못 수변공원은 어린이집 단골 소풍 장소이자 인근 주민의 산책로로 인기가 높다. 그리고 공원 조성계획부터 주민의 의견을 반영해 이용자가 원하는 공원으로 만들어서 주민의 애착이 높고 지역 단체가 서로 관리하겠다고 했었다고 한다.

강동사랑길은 2010년 지역공동체 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을 때 만들어져 사업계획을 구청 공무원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사랑길 구간마다 역사와 전설을 토대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주민이 사랑하는 길로 만들었다.
2.2.1.8. 코스트코
구청장 재임 당시 울산 북구에 코스트코 건축허가를 내달라는 요청이 왔었는데, 대형마트가 이미 과포화 상태였다. [13]

영세상인의 생존권 문제와 직결되는 문제로 보고 건축허가를 반려하니 결국 울산시 행정심판위원회에서 직권으로 건축허가를 냈다. 코스트코 측은 그때부터 형사 고발과 손해배상 청구를 했고, 이후 북구청은 코스트코 측에 손해배상액을 물어주고 자신에게 구상금을 청구했다. [14] 그 때문에 아버지 묘소와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갈 위기였다. 그러나 본인을 위해 170개가 넘는 단체가 구명대책위를 구성하고, 5만 명이 넘는 주민이 구명 서명을 했고, 국회의원 116명이 구명운동에 참여해 위기를 넘겼다. [15]

2.2.2. 구청장 재임 이후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통합진보당 후보로 울산광역시 북구청장 재선에 도전하였으나, 당시 나락으로 떨어져 있었던 통합진보당에 대한 국민들의 이미지, 새정치민주연합 김재근 후보와의 단일화 실패 등 여러 악재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새누리당 박천동 후보에 밀려 1.8%의 근소한 차이로 2위로 낙선하였다.

2.2.3. 국회의원 재임 시절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신의 오랜 정치기반인 울산광역시 북구 선거구에서 무소속 후보로 출마를 선언하였다. 정의당 조승수 후보와의 진보 단일후보 경선에서 승리한데 이어,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후보와의 단일화[16]에도 성공하였다. 그리고 본선에서 새누리당 전직 의원인 윤두환 후보를 큰 표차로 물리치고 여유있게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하였다.

파일:IMG_2138.jpg

여담으로 육군특수전사령부 예하 제7공수특전여단에서 군복무를 마친 특수부대 출신인 덕에 진보정당 계열 정치인들에게 흔히 따라 붙는 '종북 좌파' 공세를 효과적으로 반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선거 유세 기간 동안 윤두환 후보 측이 자신을 향해 종북 프레임 공격을 해오자 "내가 종북? 나는 특전사 출신이다."라고 맞받아쳤고, 오히려 반북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 군인단체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파일:IMG_2133.jpg

당선되던 해 비선 실세 최순실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해야 한다는 여론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지만, 국회에서는 국회의원들이 눈치를 보며 누구도 탄핵 얘기를 꺼내지 않았었다. 그때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왔을 때 면전에 '최순실 나와라'라는 피켓을 김종훈의원과 함께 들어 화제가 되었다.[17][18] 이것이 불씨가 되어 국회에서 박근혜의 탄핵 논의가 이뤄지게 되었다.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쉬운 해고 금지법, 직장폐쇄 제한법, 취업 후 학자금 상환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등 노동자 서민을 위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2.2.3.1. 쉬운 해고 금지법
▲쉬운상시업무에 대한 직접고용원칙의 확립 ▲정리해고의 요건과 절차를 엄격하게 규정하여 정리해고 남용 금지 ▲ 변형된 형태의 정리해고인 직장 괴롭힘을 통한 희망퇴직의 제한 ▲하도급업체 변경에 따른 하청 노동자의 고용불안 해소 ▲ 일반해고제 도입을 위한 편법적인 취업규칙변경 행정지침 제한을 담아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정규직 중심의 일자리를 만들고 지키기 위한 내용이다. 그러나 후술한 이유 때문에 그는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법안이 통과되지는 못했다.
2.2.3.2. 신고리 6호기 추가 건설 반대
당시 국회의원들에게 가장 인기가 없는 상임위인 미래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에 배정되었지만, 위기를 기회로 삼아 미방위는 탈핵과 언론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특히 2016년 경주에 4.6의 강도 높은 지진이 발생하여 원전문제가 부각이 되었던 터라 지진, 원전으로부터 안전한 북구 만들기 및 탈핵 활동에 집중했다. 이런 활동을 통해 '환경운동연합 2016 국회 우수 환경의원(탈핵분야)'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19]

2.2.4. 민중당 창당 이후

이후 울산 동구에서 함께 무소속으로 당선된 김종훈 의원과 손잡고 새민중정당이라는 진보 정당을 창당했으며, 2017년 민중연합당과 합당해 민중당을 창당했다.

이후 민중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의정 활동을 이어갔지만 2018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 형이 확정되며 의원직을 상실했고 민중당에서도 탈당했다.# [20] 피선거권이 박탈되자 공직자 윤리법 제한 기간이 풀린 뒤 현대자동차로 복직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유죄 판결로 받게 된 취업 제한 기간 3년이 만료되자 2021년 현대자동차 의장1부로 복직, 2023년에는 민중당이 2020년에 당명을 바꾼 진보당으로 복당했다. 복당한 그 해 진보당 울산광역시당 민생특별위원장으로 선임되었고, 지역 활동을 재개하면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2023년 12월 12일 울산 북구 선거구의 진보당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2024년 2월 21일 더불어민주당이 제안한 '민주개혁진보선거연합'에 새진보연합과 진보당이 합류하면서 야권 연대에 동참하게 되었고, 이 선거연합 결성 합의 사항에 따라 민주당이 울산 북구 선거구 공천을 하지 않는 것으로 양보하면서 제22대 총선 울산 북구 야권 단일 후보가 되었다. 이로써 8년 만에 다시 북구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이 같은 결정에 사전 협의 없이 공천에서 배제된 북구 현역 이상헌 민주당 의원 측이 반발하였고, 결국 이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북구 출마를 선언하면서 야권 표 분산의 리스크를 안게 되었다.

야권 단일화를 위해 이상헌 의원 측에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줄 것을 제안했으나 오히려 이 의원 측으로부터 경선을 통해 단일 후보를 선출하자는 역제안을 받았고, 이 제안을 받아들여 경선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3월 23~24일 경선을 진행한 결과 승리해 울산 북구의 야권 단일 후보로 결정되었다. 국민의힘 박대동 후보와 본선에서 양자 대결을 펼칠 예정이다.

결국 22대 총선 울산 북구 야권 단일 후보로 국민의힘 박대동 후보를 꺾고 당선되면서 진보당의 유일한 지역구 국회의원이 되었다.

또한, 22대 총선에서 양당의 당적을 거치지 않고 당선된 유일한 지역구 국회의원이 되었다. 일단 이 선거는 무소속 지역구 당선인조차 전멸한, 말 그대로 '양당 총결집 선거' 였다. 양당 소속이 아닌 지역구 당선인은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김종민 새로운미래 의원, 윤종오 의원 뿐이다. 이준석 대표는 2011년 새누리당 시절때부터 2023년 탈당까지 줄곧 보수정당 당적을 가지고 있었고, 김종민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2번 당선되었다. 반면 이분은 한번도 양당에 소속된 전적이 없다![21] 1998년 정계입문때부터 현재까지 약 26년간 무소속과 진보정당을 전전하며 정치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만 2번이나 당선됐다. 총 당선횟수만 따지자면 5번.

3. 여담

  • 형제자매(2남 4녀) 가운데 쌍둥이 자매가 있었는데, 그중 동생이 어렸을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워 부잣집으로 입양되었다고 한다. 2013년, 44년 만에 그 쌍둥이 여동생과 상봉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연합뉴스 중앙일보 경향신문 세계일보 뉴스1

4. 선거 이력

<rowcolor=#fff>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8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울산 북 염포읍

[[무소속(정치)|
무소속
]]
2,400 (55.10%) 당선 (1위) 초선
2002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울산 북 3

[[민주노동당|
파일:민주노동당 흰색 로고타입.svg
]]
8,660 (55.17%)
2006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11,782 (58.87%) 재선
2010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울산 북구청장 37,811 (56.44%) 초선
2014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통합진보당|
파일:통합진보당 흰색 로고타입.svg
]]
33,877 (43.06%) 낙선 (2위) [22]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울산

[[무소속(정치)|
무소속
]]
55,621 (61.49%) 당선 (1위) 초선[23]
2024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파일:진보당(2020년) 흰색 로고.svg
63,188 (55.12%) 당선 (1위) 재선[24]
역대 선거 벽보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2회 지선 (울산 북구 염포읍) 3회 지선 (울산 북구 3)
4회 지선 (울산 북구 3) 5회 지선 (울산 북구청장)
6회 지선 (울산 북구청장) 20대 총선 (울산 북구) }}}}}}}}}

기초의원, 광역의원, 기초단체장, 국회의원 줄줄이 당선되었다.[25]

5.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무소속(정치)|
무소속
]]
1998 - 2002 정계 입문


[[민주노동당|
파일:민주노동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02 - 2011 입당


[[통합진보당|
파일:통합진보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1 - 2014 합당[26]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14 - 2016 정당 해산


파일:민중의 꿈 흰색 로고타입.svg

(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16 - 2017 창당준비위원회


파일:새민중정당 글자.svg
2017 창당


[[민중당(2017년)|
파일:민중당(2017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17 합당[27]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17 - 2023 탈당[28]


파일:진보당(2020년) 흰색 로고.svg
2023 - 현재 복당[29]

6. 둘러보기

파일:울산광역시 휘장_White.svg 울산광역시 제20대 국회의원
{{{#!wiki style="margin: 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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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갑 남 을
정갑윤 이채익 박맹우
울주
김종훈 이상헌 강길부
* 북구 윤종오 당선무효 (2017.12.22.) }}}
비례 · 서울 · 부산 · 대구 · 인천 · 광주 · 대전 · 울산 · 세종
경기 · 강원 · 충북 · 충남 · 전북 · 전남 · 경북 · 경남 ·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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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울산광역시 휘장_White.svg 울산광역시 제22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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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갑 남 을
박성민 김상욱 김기현
울주
김태선 윤종오 서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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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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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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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18,#e5e5e5
울주
박성민 김두겸 김종훈 윤종오 신장열
민선 2기 / 민선 3기 / 민선 4기 / 민선 6기 / 민선 7기 / 민선 8기 }}}}}}}}}}}}}}}


[1]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인한 의원직 상실[당선무효] [3] 사회복지학 전공[4] 그도 그럴것이 하루 12시간 근무에 매주 바뀌는 주야 근무, 일요일은 무조건 출근이었다. 머리가 조금만 길어도 경비에게 출입증을 뺏기는 무거운 현장 분위기. 이렇게 한 달 꼬박 일해도 월급은 20만 원 남짓. 본인도 오래 다닐 직장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한다.[5] 첫 진보정당의 광역시의원이다.[6] 공식 홈페이지[7] 울산북구 친환경 무상급식 민.관공동으로[8] 전국 최초 '친환경급식지원센터' 운영[9] 친환경급식 추진 북구청 민관협력사례 최우수상 수상[10] 울산 북구, 전국 첫 체불임금 없는 관급공사 운영 조례 제정[11] 울산 북구 교육진흥재단, '차오름장학금' 전달[12] 울산 북구 캠핑장[13] 전국은 인구 15만 명에 1개였는데, 울산은 9만 명당 1개, 북구는 코스트코까지 생기면 인구 3만 6천 명 당 1개가 되는 상태였다고 한다.[14] 대형마트 코스트코 입점 막으려다 구상권 청구 당한 이유는?[15] '코스트코 구상금' 윤종오 전 구청장 위기 모면[16] 단일화 기자회견 자리에는 문재인 전 대표가 직접 참석하였다.[17] "백남기 부검 대신 사과해야" 박근혜 대통령 막아선 김종훈 윤종오 의원[18] 혹시나 본회의장에 피켓을 들고 가다 뺏길까 돌돌 말아서 가슴팍에 품고 들어갔었다고 한다.[19] 윤종오의원, `2016 국회우수환경의원` 수상[20] 검찰의 먼지털이식 수사를 받았고, 결국 유사선거사무실을 운영했다는 혐의였다.[21] 다만 선거때마다 민주당 소속 후보와 단일화를 해오긴 했다.[22] 5번의 선거 중 첫 낙선[23] 2017.9.3 새민중정당 창당
2017.10.15 민중당 창당(새민중정당-민중연합당 합당)
2017.12.22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유죄 판결에 따른 당선무효
[24] 7년만의 원내 복귀.[25] 이와 비슷한 케이스가 서울 노원구김성환과 서울 강동구이해식이 있다.[26]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와 신설 합당.[27] 민중연합당과 신설 합당.[28] 의원직 상실 및 피선거권 박탈 이후 탈당.[29] 피선거권 회복 후 복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