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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선(협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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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42A3TW44NVFQDOVLLA27QSWUL4.jpg 파일:1057285_330371_930.jpg
소래철교를 건너는 수인선 협궤열차 한대앞역에 도착한 수인선 협궤열차[1]

1. 개요2. 사진과 영상3. 역사4. 특징5. 몰락6. 보존
6.1. 부지/시설 활용
7. 전철화 및 재개통8. 여담9. 역 목록

1. 개요

수인선 협궤열차 마지막 운행 (1995.12.31)

표준궤 수인선 이전의 수인선 협궤철도를 말한다.

2. 사진과 영상

파일:한국철도공사 1x56편성(터널 도색).jpg
안산선수도권 전철 1호선의 지선으로 운행되던 시절 안산역에 정차한 수인선 협궤열차(오른쪽)와 1호선 중저항 열차(왼쪽)의 모습이다. 크기 차이에 주목하자.
파일:한대앞역협궤4호선.jpg
안산선이 수도권 전철 4호선에 포함되었을 때 한대앞역에 정차해 있는 수인선 협궤열차와 4호선 열차의 모습. 전자는 사라졌고 후자는 아직도 저 사진에 나온 도색을 유지한 채 운행 중이다.
수인선 열차의 도색이 초록-노랑 도색인 철도청 최후기 시절 도색을 하고 있는 것과 한대앞역 구내에 부본선이 설치된 것과, 옆에 정차해 있는 4호선 열차를 봐서는 한대앞역이 종착역이 된 이후인 1995년 사이의 모습으로 추정된다.[2]

파일:20240906_065923.jpg
▲ 수인선 협궤열차시절 유일하게 동차 구동음이 들어간 영상이다.
▲ 1991년 안산역 ~ 송도역 구간 답사 영상이다.[3]
1993년 수인선을 다룬 대한뉴스 영상이다.
00:30부터 수인선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4]
1986년 12월 12일에 방영된 대한뉴스 제1623호 영상이다.
수인선 철도 외에 갯벌, 군자염전, 소래포구의 옛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다.
1989년 7월 5일에 상영된 대한뉴스 영상이다.
3:47 부터 수인선 협궤열차가 나온다.
파일:1992년 당시 수인선.jpg
1992년 여름에 제작된 KBS 단막극에서 등장한 구 송도역과 161호, 165호 열차.
3분 51초부터 4분 35초까지 등장하며, 58분 9초부터 23초 동안 구 소래철교를 건너는 열차가 등장한다.

3. 역사

1937년 7월 11일에 개통되어 수원시에서 안산시, 시흥시(당시 행정구역으로는 화성군, 시흥군)를 지나 인천광역시(당시 행정구역으로는 인천직할시)까지 오가는 대한민국 철도청의 철도 노선이었다. 대한민국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궤간 762mm의 협궤철도였다.

일본인 소유의 조선경동철도주식회사가 운영하는 사철로 경기도 수원군 수원읍에서부터 인천부 용현동[5]까지 부설되었다. 주로 경기도 해안지방에서 만들어진 소금과 더불어 같은 협궤노선이었던 수려선과 연계하여[6] 경기 동부지방에서 생산되는 곡물까지도 인천항으로 수송해 일본으로 반출하는 역할을 했다. 이런 역사 때문에 남인천역 근처에는 지금도 "수인시장"이란 곡물&소금 도매 재래시장이 존재하는데, 사실 남인천역의 원래 역명이 수인역이기 때문에 이름이 그렇게 지어진 것이다. 이 때문에 현 42번 국도수인로와 달리 수원 ~ 안산 간에서 남쪽으로 우회한다.

8.15 광복 이후에는 대한민국 교통부 산하의 철도국을 거쳐 대한민국 철도청 신설과 함께 이관되어 운영되고 화물 수송보다는 여객 수송의 비중이 커졌다. 1980년대까지 협궤였던 수인선은 인천 남부, 시흥군 남부, 화성군 북부지역의 승객들이 이용하면서 수원역에서 일반열차나 1호선을 갈아타는 용도로 사용되다가 1988년에 안산선이 개통되어서 1989년부터 효용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남한 지역[7]에서 협궤 수인선과 거의 동급의 거대 규모 노선임에도 영동고속도로 개통으로 1970년에 사라진 수려선과 달리 1990년대까지 상당히 오랫동안 살아남은 협궤노선이다.
파일:external/planar.co.kr/3175324384.jpg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선로 상태가 매우 불량했다.

1973년 7월 14일 출발역이었던 경기도 인천시(현 인천광역시) 남인천역이 폐지되며 노선이 인천시 남구(현 연수구) 송도역까지로 단축되었고, 1988년 10월 25일에는 안산선이 개통되어 일리역(현 한대앞역) ~ 원곡역(현 안산역[8]) 구간을 수인선과 병행하게 되었다. 수인선과 안산선이 병행하는 구간의 기존 수인선 정차역들은 안산선 전철 개통과 함께 역사(驛舍)가 통합되었으며, 안산선 옆에 따로 마련된 승강장에서 승객을 받았다. 다만 환승은 되지 않아서 수인선과 4호선 환승 방법은 표를 별도로 구입하고 갈아타야만 했었다.

1990년대 초반 인천직할시의 남동지구 택지개발사업이 확정되자 1992년 7월 20일에 노선을 소래역까지 단축시키며 선로를 철거했다. 이에 철도청은 지역주민들의 불편을 줄이고자 선로 철거 직후부터 1993년 12월 13일까지 이 구간에 임시 셔틀버스를 운영하였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이 구간이 철거되는 것이 아니라, 선형을 직선화하기 위해 운행이 잠시 중단된 것이라고 알려지기도 했다. 게다가 임시 셔틀버스임을 사전에 고지했기 때문에, 당시 지역 주민들은 공사가 끝나면 수인선이 재개통할 것이라고 믿기도 했다.

1994년 4월 1일에 안산선과 과천선이 서울로 향하는 직통 노선으로 연결되면서 수인선의 이용객은 또 한 번 타격을 주었고, 결국에는 9월 1일, 한대앞역까지로 단축되며 사실상 반쪽짜리 노선이 된 수인선 협궤철도는 폐쇄가 기정사실화되었다. 1995년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영업한 후 모든 선로가 2005년까지 방치되었다가 2006년에 수인선 복선전철화를 활성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철거[9]되고 영업도 중지되었다.

협궤 수인선이 영업을 중지한 이후에도 열차 몇 량이 2002년까지 수원역 차량사무소에 한동안 주박되어 방치되어 있었으나 수원역 현대화 공사로 사라졌다. 성포동 홈플러스 근처의 고가도로 밑을 지나가면 풀밭의 폭이 상당히 넓은데, 그곳이 수인선 협궤의 흔적이다. 한대앞역에는 금정 방면 승강장에 과거 수인선 승강장이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에 이미 상당히 소실된 상태인데다 2017년 12월 기준으로 수인선 직결 공사로 인해 철거되어 지금은 볼 수 없다. 참고로 2015년 9월 4일, 수원 ~ 한대앞 구간이 공식적으로 철도 거리표에서 삭제되었다.

4. 특징

  • 40km/h 전후의 속도[10]로 인천 ~ 수원 간 편도 구간을 약 1시간 30분~2시간 정도에 주파하였다.[11] 초창기에는 혀기형 증기기관차나 일제시대에 도입된 나게하형 가솔린동차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1965년 디젤동차가 도입되면서 기존 가솔린 동차를 대체하기 시작하였고, 1972년 수려선의 폐선으로 디젤동차의 여유분이 수인선으로 모두 배속되면서 운행비중이 늘어나게 되었다.
  • 열차편의 경우 50석 정원의 좌석을 설치한 객차디젤동차를 여러 대 편성했는데, 과거 탑승수요가 많을 때는 디젤동차 2량에 무동력 객차 2량을 추가해 총 4량으로 정규 편성하여 다닐 때도 있었으나, 1980년대 후반부터 탑승수요 급감으로 디젤동차 2량으로 정규 편성하여 다니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주말 한정으로 관광수요가 많을 때는 객차 1량을 추가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속도나 서비스를 중시하는 노선이 전혀 아니다 보니 당연히 완행열차 수준으로 운영되었고, 1984년부터는 비둘기호 등급으로 배정되어 폐선되기 전인 1995년까지 운용되었다.
  • 노선운임도 이러한 등급에 맞추어 저렴한 수준이었는데, 1990년 기준 기본운임 160원에 수원 ~ 송도 간 운임이 370원 정도로 당시 서울 지하철 기본운임이 250원 정도였으니 얼마나 저렴했는지 알 수 있다. 매표는 안산역, 송도역 등의 주요역 5개역에서는 철도청 소속 역무원들이 상주하여 직접 매표를 하였으나, 예외적으로 소래역, 고잔역 등의 일부 역들은 철도청으로 부터 매표금의 10%를 마진으로 받는 조건으로 그 지역에 사는 개인이 매표를 대행하기도 했다. 이 외의 나머지 역들은 역무원도 배치되지 않는 간이역 수준이었기에, 해당 승객들은 일단 열차에 탑승하고 열차 내에서 차장이 직접 매표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 일반 표준궤 노선과 달리 노반과 철로의 관리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고, 무엇보다 협궤철도라 차체의 폭이 좁아 승차감은 매우 나쁘다. 위의 동영상에서 보이듯 열차 운행 시에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버스마냥 좌우로 엄청 심하게 흔들려서 서서 가는 경우엔 고역이 따로 없었다. 게다가 좁은 차체 탓에 좌석도 좁아서 겨우 한 사람이 드나들 정도의 간격에서 마주보고 앉아있는 형태였다. 현대의 경전철보다도 좁으며, 물론 경전철의 궤간 규격이 표준궤이므로 열차 규격도 그에 맞춰서 협궤보다 넓은 것이 당연하긴 하다. 심지어 열차가 작고 가볍기 때문에 철도건널목 등에서 버스와 충돌하면 열차가 넘어진다. 폐선 직전에 이러한 사고가 제법 있었다.
  • 소래철교를 비롯한 일부 구간은 해안가가 바로 옆에 있어 갯벌염전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전망은 좋았다고 소문난 노선이었고, 거기에 더해 수도권과 가까우면서도 낙후된 곳을 지나갔기 때문에 여러 사진작가들의 주요 기행테마가 되어왔다.
  • 여담으로 동차의 화장실비산식으로 되어 있다. 배설물이 그냥 선로로 바로 떨어지는 방식이었다. 1960년대 제작한 열차칸은 관광호 같은 특급 이상을 제외하면 대부분 이런 식이긴 했다.

5. 몰락

파일:external/4016055986d98f4229a85cabaf5ccdc99d31d246853a95e7f4d48a4e9cd06824.jpg
▲ 운행 막바지 당시의 수원의 한 건널목.
수원역 남쪽 세류동[12]에 있었다.[13]

1980년대까지 안산선이 개통하기 전에는 이용객이 적지 않던 노선이었으며, 운행편수 또한 일 왕복 7차례로 운행되었으나, 1988년 10월 25일에 안산선이 개통되면서 수원역에서 일반열차나 1호선을 갈아 타는 필요성이 줄게 되어 효용가치가 떨어지게 되었다. 그 여파로 1989년부터는 왕복 3차례로 줄어들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80년대부터는 간척사업 등으로 경기도 내 해안들이 매립되면서 서해안 포구들도 하나둘씩 사라져 주 이용객이던 어패류를 운반하던 어민들이 자취를 감추었고, 채소를 도시에 내다파는 부녀자와 통학생 그리고 주말 나들이 관광객들만이 이용하게 되었다. 1988년 10월에 안산선의 개통으로 기존에 있었던 수인선의 이용객들이 안산선으로 대부분 이탈하면서 1989년부터 급속도로 줄어들며 하루 평균 3백여 명 수준에 그치는데다 그마저도 무임승차 대상인 65세 이상 노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하여 매표 수입은 하루에 겨우 6~7만 원 정도로 하루 열차 연료비인 15만 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어서 연간 수억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하였다.

이미 당시 철도청은 만성 적자운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터라 1989년부터 여러 차례 수인선의 폐선을 고려해 왔으나, 현지 주민들의 반발 등으로 무산되다가 결국 1990년대에 철도청이 공사 전환의 계획이 확정되면서부터 수인선 협궤철도의 폐선과 관련된 구체적인 방안이 시행된다.[14] 수인선의 완전폐선은 통과지역 주민들의 반발도 심할 수밖에 없었고, 수인선 노선 자체만 보면 잠재수요가 어느 정도 있다는 결론이 나면서, 완전 폐선이 아닌 기존 협궤철도 폐선 후 표준궤 복선으로 재부설하여 수도권 전철로 운영하는 방안으로 가닥이 잡혔다.

협궤 당시의 수인선 상태가 어땠는지 체험해 보려면, 762mm궤간으로 달리는 일본 미에현산기철도 호쿠세이선이나 욧카이치 아스나로 철도 또는 토야마현의 쿠로베 협곡철도를 타보자. 전자는 내륙 쪽 노선이라 바다는 못 본다. 쿠로베 협곡철도는 협곡을 볼 수 있다. 1994년 4월에 안산선이 과천선과 함께 수도권 전철 4호선으로 연결되면서 수인선 폐선에 결정타를 날렸고 이로 인한 영향으로 5개월이 지난 9월에 단축된 후에도 끝까지 남아있던 한대앞역 ~ 수원역 구간도 결국 1995년 12월 31일 마지막 운행을 하고 1996년 1월 1일 자로 영업중지 되었다. 이렇게 해서 협궤철도 수인선은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파일:attachment/suin_line_last_day.jpg
▲ 운행 마지막 날 동차에 붙은 현수막

수인선이 영업거리표상 철도거리표에서 아예 삭제된 적은 없지만, 오이도-송도 구간 '복선화 후 재개통'이 되어 영업정지선인 수원-한대앞 협궤 구간과 표준궤 복선전철화 된 오이도 ~ 송도 구간이 한동안 영업거리표에 공존하다가, 2015년 9월 수원 ~ 한대앞 협궤구간 삭제와 함께, 송도 ~ 인천 간의 영업거리표 반영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안산 ~ 오이도 구간마저 시흥시 월곶동에서 시흥차량사업소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표준궤가 되어 4호선으로 넘어갔다. 사실 원래 안산 ~ 오이도 구간은 수인선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사업이었다. 다만 단독으로 운행하기에는 너무 짧은데다 4호선 말고 직결할 노선도 없어, 4호선에 편입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열차 자체가 니가타 디젤동차비둘기호 시리즈 같이 복고풍, 빈티지 디자인의 극치를 달려 많은 한국 철도 동호인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6. 보존

철도박물관 개장 당시부터 수인선에서 쓰던 객차 2량(18011, 18012호) 및 디젤동차(163호)를 옮겨왔는데 이 차량들은 수인선이 아직 운행하는 중이었음에도 박물관으로 옮겨왔다. 특히 수인선 협궤 디젤동차 163호와 그 뒤에 연결된 객차 18012호는 박물관 개장 초창기에 실제로 운행도 가능해서 박물관 구내에 설치된 협궤 선로를 따라 박물관을 반바퀴 운행하였다. JSB 일본위성방송에서 촬영한 한국철도 다큐멘터리를 보면 열차 전면부 우측에 차호 3자리가 적혀있는 상태로 철도박물관 구내에서 자력 운행하는 모습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철도박물관에 객차와 동차가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상태는 좋지 않다.[15] 박물관 외에도 화성시고양시에 동차 2량이 남아있었으나, 현재는 폐기되어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또다른 하나인 차호불명의 동차는 모기업이 소유하고 있었는데 현재도 소유인지 불명이다. 따라서 철도박물관에 전시된 차량이 유일하게 남아있는 동차인 셈이다. 철도박물관에 보존된 동차 1량과 객차 2량 외에도 당시 수인선에서 쓰던 차량 일부가 보존중에 있다.

파일:목인박물관_수인선협궤열차.jpg

특히 충청북도 진천의 목인박물관에 보존되었던 차량이 인천광역시에 기증되었으며, 인천시립박물관 우현마당에 전시가 될 예정이다.[16] 협궤열차 마지막으로 운행했던 9164 열차는 화성시의 한 식당 카페의 간판으로 쳐박혀 있었다가, 이후에 철거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혀기형 증기기관차는 전국 각지에 6량이 보존되어 있다. 철도박물관은 물론 구 화랑대역, 소래역사관 등지에서 볼 수 있다. 상세한 내용은 철도차량 보존 현황 문서를 참고.

2020년 서울 부암동에 위치한 목인박물관 목석원의 관장인 김의광 관장이 개인적으로 3량을 구입해서 가지고 있었는데, 이를 모두 인천시립박물관에 기부한다고 밝혔다. "내가 가지고 있는것보다 연고지인 인천에서 전시되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해 기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인천시립박물관은 객차를 전달 받아 보존처리를 거친 후 1량을 박물관 앞 우현마당에 전시한다고 한다.

연수구에서 송도역 협궤열차 역사를 복원하기로 결정하고, 그 주변을 문화공원으로 꾸밀 예정인데, 저 나머지 2량이 전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지금은 화성시 보존처리장에 있다는 듯. 2022년 2월에 철도박물관에 있는 수인선 동차와 객차등이 등록문화재로 된다는 예고가 올라왔었다.

현재 구 송도역사가 관리등급 E등급이 나왔다면서 철거를 해버렸고 이후에 나온 잔해들로 최대한 재현복원을 한다고 말을 했으나, 원래 자리는 아닐꺼라고 말을 했기에 아마도 전시가될 협궤 객차들은 그곳에 전시될것으로 보인다.

6.1. 부지/시설 활용

고색~오목천 구간이 지하화되고 남은 협궤 철도 부지는 공원화했고 수원시-화성시 경계의 협궤터널은 보도터널로 새단장을 했다.

7. 전철화 및 재개통

파일:attachment/649305_238993_01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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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여담

파일:sooin1.jpg
1981년 7월 고기제1건널목 충돌사고
  • 협궤선로 시절 운행하던 차량 또한 선로만큼이나 아기자기한 크기를 자랑하는지라 그에 따른 이야기도 나돌곤 한다. 수인선 협궤열차 운행중에 철길건널목을 통과하는 대형차량이나 작업중인 중장비와 충돌을 한 사고들이 몇 건 있는데, 보통 표준궤 열차의 경우라면 가속력을 이기지 못하고 충돌할 경우 큰 요동 없이 차량을 밀고 나가는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수인선 협궤열차는 그 크기나 무게가 너무나 아기자기하기에 차량과 충돌하고서 차량은 별로 꿈쩍도 안하고 오히려 열차가 탈선 및 전복하는 웃지 못할 이야기[17]도 있다. 시내버스는 경원여객 소속 BF101인데, 그 차량 역시 휘어져 있다.[18] 선로를 타고 운행하는 열차는 자동차도로와 만나는 교차로에서는 어김없이 서행 또는 일시정지를 하면 지나다니는 자동차의 눈치를 보며 안전을 확인한 후 통과하는 웃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 2005년까지만 해도 거의 전 선로가 온전히 남아있었다고 하나, 2006년부터 수인선의 복선 전철화 사업이 진행되면서 예전에 선로가 있던 곳이 새로 개발이 되고 표준궤 개궤를 위해 기존의 철로를 뜯어낸 상태다. 다만 송도 일대 및 고잔역 일대에서는 과거 열차가 다녔던 옛 수인선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2015년 들어와서는 안산시 일대에서 그나마 상태가 온전하던 수인선 중앙역 선로는 뜯겨나갔다. 그러나 이것이 성포동 홈플러스 근처의 고가도로 밑과 한대앞역까지 포함한 것이다.  중앙역 근처 금개구리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연못 옆에 옛 수인선의 철도가 보존되어있다. 초지동 32-76이나 고잔동 167-91, 본오동 626-40 같은 주소지에 지적편집도나 위성지도를 보면 구 수인선 협궤철도의 흔적이 보인다.
  • 또한 시종착역인 수원역에서는 수인선에 대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된 지는 꽤 되었고, 급수탑과 더불어 구 수인선 수원역사로 알려진 건물, 그리고 수원역에서 출발하여 현재의 수인선 세류공원 방향으로 선로가 나오는 수인선 전용 출구가 잔존하였으나 철거와 환경정비사업 등으로 급수탑을 제외하고 모두 사라졌다. 복선전철화 사업으로 전 구간이 차례차례 개통되어 이제는 대부분의 구간이 유실되었다시피할 지경이다.
  • 1996년 협궤였던 수인선 폐선 이후 2006년~2013년에 걸쳐서 수인선이 복선 전철화 사업이 착공 직전까지 가장 유실이 심한 구간은 용현역에서 송도역까지의 구간과 수원역 인근의 구간으로 이 구간은 아예 철도 노반의 대부분이 도로로 바뀌어 있거나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남인천역에서 용현역까지의 구간은 표준궤개궤되어 동양화학의 인입선으로 남아 있다.그러나 주변에 시가지가 형성되어 복선 노반을 설치할 공간이 없기 때문에 이 구간은 지하 구간으로 복원되었다. 또한 송도역에서 소래역까지의 구간은 아예 도시 개발을 하면서 노선을 직선화하고 기존 노반을 완전히 갈아엎어 흔적이 거의 없다. 공원화된 소래역 부지와 구 소래철교, 남동역 인근의 승기천철교 정도가 구 수인선의 흔적이다.
  • 대한민국 최후의 협궤철도라 그런지 1995년 12월 31일에는 수인선 종운(終運) 소식이 9시 뉴스의 첫번째를 장식하기도 했다. 종운기념 행사도 꽤 성황리에 치러졌다. 만약 수인선이 표준궤로 개궤되지 않고 협궤로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옆나라 일본우츠베선과 비슷한 형태가 되었을 것이다. 해당 항목 참조. 물론 선형이 불량해서 고쳐야했던데다가 수송량도 적어서 코레일이 굳이 협궤를 유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협궤에서 표준궤로 궤간'만' 바꾸는 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는 미니 신칸센만 봐도 알 수 있다. 또한 우츠베선은 전체 거리가 6 km도 안 되는 짧은 노선이고 도시 내를 운행하는 소규모의 도시철도지만 수인선은 인구 3백만의 인천광역시와 인구 1백만의 수원시를 잇는 철도이고, 중간에 관통하는 안산시 인구도 60만명을 넘어가기 때문에 표준궤 복선화와 전면적인 개량이 필요했던 상황이다.
  • 인천 공영급행의 노선인 급행간선 910번(제물포역-논현지구)이 수인선 대부분의 인천 구간을 따라갔었다. 수인선 1차 개통 이후 감차가 진행되더니 결국 폐선되었다.김국환이 부른 '수인선 협궤열차'라는 노래가 있으며, 1989년 어린이 영화 '순돌이와 팔도아이' 에서 수인선이 나왔다.[19] 그리고 살인의 추억에서도 이 철도 노선이 나온다.
  • 일부 인천 시민단체에서 인천이 수원보다 더 큰데 왜 인수선이 아니라 수인선이냐며 문제제기를 한다. 한 인천지역 거대 네이버 카페 매니저가 문제를 제기한 상태. 일제강점기 시절 경부선-경의선이 주 간선이라 주 간선에서 갈라지는 노선으로 간주하여 수원을 기점으로 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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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이사항으로 어천역 인근에서 경부고속선과 교차하는 구간이 있다. 물론 경부고속선이 개통했을 때 수인선은 이미 폐선되었기 때문에 협궤열차와 고속열차가 만나는 일은 없었다. 다만 이때는 아직 수인선 선로가 남아 있어서 최신식 고속선 고가 밑으로 낡아빠진 협궤철도가 교차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현재는 해당 구간에 표준궤 전동차가 운행한다.#

9. 역 목록

  • 1937년 당시 역 목록
<rowcolor=#fff> ㎞ 역명 역무취급 환승노선 현재역 행정구역
<rowcolor=#fff> 운전 여객 화물
0.0 수 원 水 原 경부선, 수려선 수원역 경기도 수원군
3.9 고 색 古 色 고색역
5.8 오 목 梧 木 오목천역
10.7 어 천 漁 川 어천역
13.7 야 목 野 牧 야목역
15.1 빈 정 濱 汀 -[20]
20.0 일 리 一 里 한대앞역 경기도 시흥군
21.6 성 두 城 頭 -[21]
27.9 원 곡 元 谷 안산역
29.2 신 길 新 吉 신길온천역
32.4 군 자 君 子 정왕역
38.6 소 래 蘇 萊 소래포구역 경기도 부천군
41.4 논 현 論 峴 호구포역
42.4 남 동 南 洞 남동인더스파크역
45.8 문 학 文 鶴 -[22]
47.0 송 도 松 島 송도역 경기도 인천부
52.0 인천항 仁川港 숭의역

  • 1970년대 역 목록
행정구역의 경우, 1970년대 당시의 행정구역을 기입.
<rowcolor=#fff> ㎞ 역명 역무취급 환승노선 등급 현재역 행정구역
<rowcolor=#fff> 운전 여객 화물
0.0 수 원 水 原 경부선, 수려선 보통역 수원역 경기도 수원시
3.9 고 색 古 色 무배치간이역 고색역
10.7 어 천 漁 川 보통역 어천역 경기도 화성군
13.7 야 목 野 牧 배치간이역 야목역
17.9 사 리 四 里 을종대매소 사리역
20.1 일 리 一 里 보통역 한대앞역
24.0 고 잔 古 棧 무배치간이역 고잔역 경기도 시흥군
27.9 원 곡 元 谷 보통역 안산역
29.2 신 길 新 吉 무배치간이역 신길온천역
32.4 군 자 君 子 보통역 정왕역
36.0 달 월 達 月 을종대매소 달월역
38.6 소 래 蘇 萊 보통역 소래역 경기도 인천시
40.4 논 현 論 峴 임시승강장 호구포역
42.4 남 동 南 洞 보통역 남동인더스파크역
47.0 송 도 松 島 보통역 송도역
49.5 용 현 龍 峴 보통역 인하대역
52.0 남인천 南仁川 주인선 보통역 -[23]

  • 1988년 이후 역 목록
일부구간의 선로 이설로 인한 거리 조정.
<rowcolor=#fff> ㎞ 역명 역무취급 환승노선 등급 행정구역
<rowcolor=#fff> 운전 여객 화물
0.0 수 원 水 原 경부선 보통역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10.7 어 천 漁 川 무배치간이역 경기도 화성군
13.7 야 목 野 牧 무배치간이역
17.9 사 리 四 里 을종대매소 경기도 안산시
20.2 한대앞 漢대앞 안산선 무배치간이역
21.9 중 앙 中 央 안산선 보통역
23.3 고 잔 古 棧 안산선 무배치간이역
26.7 안 산 安 山 안산선 보통역
28.6 신 길 新 吉 무배치간이역
31.8 군 자 君 子 무배치간이역 경기도 시흥군[24]
35.5 달 월 達 月 을종대매소
38.0 소 래 蘇 萊 을종대매소 인천직할시 남동구
41.8 남 동 南 洞 무배치간이역
46.3 송 도 松 島 보통역 인천직할시 남구


[1] 촬영일자는 1995년 12월 28일, 마지막 운행 3일전이다.[2] 철도청 역삼각형 CI가 출범하며 기존 파란색 도색에서 초록-노랑 도색으로 바뀐 게 1994년이고, 수인선 한대앞역은 시종착역이 되기 전에는 부본선이 없는 1면 1선 구조였다. 그리고 서울교통공사 4000호대 VVVF 전동차가 도입되고 안산선이 수도권 전철 4호선에 포함된 때는 1994년이며, 서울교통공사 차량이 낮 시간대에 안산선에 들어온 것은 1995년 여름부터이다.[3] 일본 모 방송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로 1991년 당시 교통부 및 철도청으로부터 정식 협조를 받아 제작되었으며, 한국 외에도 중국, 태국 등 아시아 각국의 철도노선을 답사하는 시리즈물로 제작되었다. 7분 17초경부터 소래철교를 통과하는 장면이 나온다.[4] 1분 3초부터 나오는 곳이 소래포구이다.[5] 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6] 수원역을 거치지 않고 수려선과 수인선을 직결하는 삼각선도 존재했다.[7] 북한에는 아직 협궤가 많이 남아있다.[8] 이 때 원곡역이 안산역 근처로 이전하였다.[9] 소래포구 철교 등 일부 철교 위 구간에는 레일이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하다. 소래철교는 운행 중지 후 초기엔 침목 사이에 나무를 덧대 인도로 쓰다가 나중에는 레일 위에 철망을 깔아 사람이 다니게 했고, 안산 삼화교차로 부근 철교는 출입금지로 막아 놓았다.[10] 디젤동차 스펙으로는 최고속도가 105km/h였지만, 협궤선로 특성상 노반 및 철로 상태가 좋지 않았고 정차역 문제로 이 속도까지 내긴 어려웠다. 참고로 40km/h라면 철티비 열심히 밟아도 낼 수 있고 로드바이크를 타면 금방 나오는 속도다.[11] 과거 남인천역까지 전 구간 운행되던 1973년까지만 해도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됐다.[12] 덕영대로 세평지하차도 앞. 사진을 자세히 보면 세평지하차도가 보인다.[13] 위치[14] 적자노선 투성이 철도/백원 벌기위해 4천8백원 투자도[15] 다행히도 2021년 초에 재도색을 하여 외관 상태는 다시 좋아졌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운전석 창문 뒷쪽에 붙어있던 통표 방지용 철창이 없는 등 아직도 고증오류가 남아있다.[16] 인천 ‘수인선 협궤객차’ 25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17] 1,067mm 케이프 궤간을 주로 사용하는 일본에서는 전복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형차량과 충돌 후 탈선하는 사고가 종종 있다.[18] 렬차·시외버스충돌 수인선 고기건널목[19] 그것도 당시 영업 중이었던 송도역과 협궤동차가 실제로 운행하는 씬도 나왔다.[20] 폐역.[21] 폐역. 현재 수인·분당선 / 안산선 중앙역은 성두역의 직접적인 후신이 아니다.[22] 폐역. 현재 수인·분당선 연수역은 문학역의 직접적인 후신이 아니다.[23] 폐역. 현재 수인·분당선 숭의역은 남인천역의 직접적인 후신이 아니다.[24] 시흥군이 시흥시로 승격된 것은 1989년 이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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