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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츠 성곽에서 바라본 구 시가지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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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 서남부의 도시로 라인란트팔츠주의 주도로 97.76㎢에 22만여명[1]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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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바덴 맞은편인 라인 강의 좌안, 마인 강 입구에 있는 항구도시이자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다. BC 14~9세기에 켈트족의 거주지였으며, 이후 로마인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켈트족이 숭배하던 모고 신의 이름을 따 모군티아쿰(Moguntiacum)[2]으로 불렸다.
마인츠는 기원전 1세기 말인 기원전 13/12년, 당시 로마 제국의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벌인 게르마니아 전쟁 속에서 로마군 숙영지, 군사기지, 퇴역병 정착촌 개념을 합쳐 건설됐다. 이때 로마인은 마인츠를 모군티아쿰이라는 이름 대신 처음에는 병영기지라는 점을 분명히 나타내, 카스트룸 모곤티아쿰(castrum Mogontiacum)이라고 했다. 이 도시를 건설하라고 명령하고, 지시한 사람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양자이자 로마군 사령관 대 드루수스였다. 그는 마인츠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로마인이다.
드루수스는 당시 갈리아 전역과 게르마니아 일대 군단 지휘권을 양부 아우구스투스에게 수여받은 로마군의 실질적인 총사령관으로, 갈리아 총독 파견 당시 23살이었을 때부터 척후병을 보내 마인츠 일대를 주목했다. 그래서 개전 직후, 그는 마인츠 건설을 명했다.[3] 이때 드루수스가 마인츠를 주목한 이유는 라인 강의 가장 긴 지류인 마인 강 하구에 위치해 있으면서, 마인 강과 라인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전략적 위치 때문이었다. 따라서 건설 당시부터 마인츠는 로마 시대에 걸쳐 중요한 군사 도시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런 목적 아래에서 이 도시 건설을 명한 드루수스는 게르만족을 상대로 4년 내내 마인츠를 게르마니아 전쟁의 로마군 본영으로 활용하고, 퇴역병과 그 가족을 정착시켰다.
로마 제국 시대 당시, 마인츠는 갈리아 지역과 함께 라인강을 주축으로 한 일명 레누스 전선의 서방 로마군 최정예 본영 역할을 했고, 게르마니아 일대 해역을 책임진 로마 해군 기지 역시 위치해 있었다.
따라서 상무 정신이 강한 로마 제국 안에서도 마인츠는 서방 로마군에게 성지 대접을 4세기까지 받았다. 이 도시에는 드루수스탑(Drususstein)이라는 유적이 남아 있다. 이 돌탑은 개선식을 앞두고 낙마사고로 요절한 드루수스를 기리기 위해, 마인츠에 정착한 퇴역병과 그 가족들이 자발적으로 드루수스의 양부 아우구스투스에게 허락을 구해 손수 쌓은 것으로 유명했다. 이때 마인츠 시민과 마인츠 주둔 로마군, 로마해군은 매년 돌탑을 한바퀴 돌면서, 군신으로 로마군에게 추앙받은 드루수스와 그 장남 게르마니쿠스를 위한 제사를 치렀다. 그리고 이 제사를 위해, 쾰른이나 북이탈리아 또는 갈리아의 도시 루그두눔(오늘날 프랑스의 리옹)부터 매년 퇴역병과 그 가족들이 순례객으로 마인츠를 찾았다. 이런 것처럼 마인츠는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황제 중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1세의 지지기반이 됐고, 이들 네 황제에게 필수적인 군대 충성의 핵심도시로 이름을 날렸다.[4] 이는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가 단절된 뒤, 플라비우스 왕조,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세베루스 왕조 아래에서도 비슷해, 공화적 입헌군주제 형태의 로마 원수정 아래에게 마인츠 내 인기 장악은 황제의 로마군 충성에서 중요한 관심사가 됐다.[5] 이런 배경 때문에 세베루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 세베루스 알렉산데르가 군대 불신임 속에서 마인츠에서 암살될 때, 50년의 난세로 유명한 군인황제시대가 시작됐다.
로마 제국 아래에서 게르마니아 수페리오르 속주의 주도이자 중심도시였던 만큼, 80년경부터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모군티아쿰 주교구가 설치되었고, 게르마니아 수도원의 중심지가 되었다. 낙후되기로 유명했던 게르마니아 지방에서도 부유한 중심도시로 명성을 떨쳤다. 이후에도 마인츠는 번영해 451년경 로마인들이 이곳을 떠나기 전까지 발전했다. 따라서 360년대 이후 알레만니족의 침공 등으로 게르마니아 지방으로 불린 로마 제국 아래의 독일 땅이 타격을 입을 때, 로마를 침공한 적들에게 가장 많은 공격을 받았다.
6세기에 새로운 시가지가 생겼으며, 이후 프랑크 왕국의 세력권에 편입되면서 745년에 도시명이 마인츠로 개칭되면서 마인츠 대주교 관구가 개설되었고, 775~780년도에 성 보니파세가 등장했으며 대주교관구와 주교관구를 비롯한 독일교구의 중심지가 되었고, 마인츠의 대주교는 알프스 이북에서 교황을 대리하는 위치에 있게 된다.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의 오토 1세의 제국교회정책으로 마인츠 대주교를 비롯한 독일 내의 교회에 세속권력을 쥐게 하면서 마인츠 주교를 포함한 점차 성직 제후화 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급격하게 발전해 1118년 얼마간의 자치권을 얻었고, 1244년 자유도시가 되었다. 그러다가 1251년 대주교였던 게르하르트 1세가 선제후가 되었고 이후 마인츠 대주교가 독일의 재상과 대법관직을 겸했고,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기까지 황제선거를 주재하는 역할을 맡게 되면 1254년 '마인츠 황금지대'로 강력한 라인 지방 도시연맹의 중심지가 되었다. 당시 마인츠 대주교의 영향력은 라인 강 좌·우안에 있는 마인츠 일대뿐만 아니라 마인 강을 끼고 보다 위에 있는 아샤펜부르크 특별구역을 포함하여 프랑크푸르트와 니더작센 주의 아이히스펠트, 튀링겐 주의 에어푸르트 인근까지 미쳤고 이 지역에는 마인츠 선제후국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1462년 적대관계에 있던 두 대주교의 전쟁으로 경제 침체가 극에 달하자 이곳 시민들은 자치권을 박탈당했다. 많은 기술자들이 유랑의 길을 떠남으로써 인쇄술이 퍼지게 되었다. 1477년부터 유럽의 주요 대학도시 중 하나가 되었지만 30년 전쟁 중 스웨덴과 프랑스의 점령을 당했고 1792년 프랑스 제1공화국에 다시 점령되기 전까지는 활발한 상업 및 문화 중심지였다.
1793년 프로이센 왕국과 합스부르크 제국 연합군이 이곳을 탈환하는 데 성공했으나, 1797년 캄포포르미오 조약과 1801년에 뤼네빌 조약이 각각 체결됨에 따라 프랑스에 양도되어 실질적으로 프랑스 영향력 아래에 있게 되었으며 1802년 프랑스에 의해 대주교령은 세속화되기 시작해 대주교관구 또한 주교관구로 바꾸고 탄압했으며, 1803년에는 레겐스부르크에서 열린 마지막 제국회의에서 완전히 프랑스 영토로 넘어가면서 대주교령을 포함한 주교령의 세속화를 인정하자 교회의 영토를 종교와 분리시면서 완전히 세속화가 되었다.
1815년 빈 회의로 프랑스의 지배가 끝나자 이 도시는 헤센-다름슈타트 대공국로 넘어가 새로 생긴 라인-헤센 주의 주도가 되었다. 독일 연방과 후에는 1918년까지 독일 제국의 요새도시였다. 이후 제1차·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군이 점령했고. 제2차 세계 대전 중 도시의 80% 정도가 파괴되었으나 급속하고 광범위한 재건사업이 이루어졌다. 1946년 새로 주의 영역과 명칭을 개정하면서 새로 설치된 라인란트-팔츠의 주도가 되었고, 라인 강 오른쪽 둑에 있던 교외지대는 헤센 주로 편입되었다.
3. 문화유산
독일의 고도 중 하나로 각종 문화유산이 많은 편으로 로마의 영토였고, 게르마니아 수페리오르 속주의 주도였던 만큼, 고대 로마 시대의 유적들이 남아 있다. 유물들은 중앙 로마-게르만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중 가장 주목받고 있는 유적은 군사도시에서 시작된 마인츠를 잘 설명해주는 드루수스탑(Drususstein)이다. 이 돌탑은 현재 마인츠 근교에 남아 있고, 로마 제국이 무너진 뒤에도 철거되지 않고, 주변을 성벽으로 둘러쌓여 그나마 그 형태가 보존되어 있다. 이 돌탑과 함께 마인츠 수교도를 비롯해, 로마군 상설 숙영기지 등 로마군 병영 흔적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마인츠 대주교령이 있었기에 많은 성당들이 위치하고 있다. 975~1009년에 처음 세워진 장크트마르틴 성당과 18세기 중후반에 세워진 장크트이그나티우스 성당, 장크트페터 성당과 르네상스 양식의 선제후 궁전이 있으며 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되었지만 재건사업 때 복원되었다.
4. 소재 기관
라인란트-팔츠 주의 중심지이기에 가톨릭 주교좌·대학·가톨릭신학교·국립미술공예학교·기능공회의소·상공회의소·철도관리국·지방법원 등이 있다. 인쇄술을 발명한 구텐베르크가 태어난 곳이기도해 구텐베르크를 추모하기 위하여 구텐베르크 기념비, 구텐베르크 박물관, 국제 구텐베르크 협회의 본부 건물이 위치하고 있다. 개국 이후 잠시 떠돌던 공영방송 ZDF의 본사도 마인츠에 있다.5. 교육
- 마인츠 대학교
마인츠 대학교는 1823년 폐교되었으나 1946년 구텐베르크의 이름을 딴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마인츠 대학교(Johannes Gutenberg-Universität Mainz, 약칭 JGU)로 재개교되었다.
6. 경제
경제적으로는 포도재배지 라인란트팔츠의 중심에 있어서 포도주 양조업도 발달되어 있으며 포도주 축제와 사순절 전야 축제가 열린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이곳은 군사적으로는 중요했지만 인근에 프랑크푸르트 암마인과 만하임이 있어 상업적으로는 비교적 발전하지 못했으며 19세기 초 프랑스에 점령된 시절에 상업이 심하게 침체되기까지 했다. 그후 라인 강의 포도주 교역 중심지가 되었다. 산업화는 늦게 이루어졌으나 제조업은 화학·의약 제품, 기계, 유리, 악기 등을 포함하여 매우 다양하다.특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백신 코미나티주를 개발한 바이온테크가 이곳에 본사를 두고 있다. 바이온테크가 판데믹 기간 중에 엄청난 매출을 올려서 그에 따른 법인세 또한 증가한 덕분에 마인츠 시는 2022년 말에 시 재정 부채를 완전 탕감할 예정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6]
7. 스포츠
이 곳을 연고로 하는 축구구단 1. FSV 마인츠 05, TSV 쇼트 마인츠와 야구 구단인 마인츠 애슬레틱스가 있다. 1. FSV 마인츠 05의 경우 한국 선수들도 제법 뛰어서 분데스리가 축구에 관심이 있는 한국인이라면 인지도가 있는 편.8. 교통
마인츠 트램.
마인츠 중앙역을 중심으로 하는 철도 노선망이 비스바덴, 프랑크푸르트, 만하임 등으로 인근 도시들로 연결되어 있다.
[1] 2024년 기준[2] 로마 제국 시대 당시에는 MOGVNTIACVM으로 표기됐다. 종종 Mogontiacum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현대 라틴어 발음으로 /mɔɡɔnˈti.akũːm/이라고 읽는다.[3] 그는 아우구스투스가 원로원과 측근들에게 "내가 죽으면 내 뒤는 내 아들 드루수스가 잇는다."고 언급한 실질적인 황태자로 아우구스투스의 또 다른 후계자로 아우구스투스의 외손자이자 양자인, 황태자 격의 프린켑스 유벤투티스 가이우스 카이사르의 장인이기도 하다.[4] 동시에 이 세습왕조의 마지막 황제 네로가 아우구스투스, 드루수스의 혈육들을 모두 멸족시켰을 때 몰락한 시작 역시 공교롭게도 마인츠에 주둔한 로마군이 반란자 빈덱스 토벌 후 네로를 탄핵하면서 시작됐다.[5] 따라서 마인츠에서 군대가 들고 일어나는 것은 상대적으로 판노니아 일대의 군사도시들보다 적었고, 있더라도 보통은 병사들이 황제를 완전히 불신임하지 않는 이상 조기 진압됐다.[6]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