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마케도니아 전쟁은 로마 공화국과 카르타고 공화국이 제2차 포에니 전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었던 기원전 215년부터 기원전 148년에 벌어진 제2차 피드나 전투까지 로마 공화국과 마케도니아 왕국이 벌인 여러 차례의 전쟁을 말한다.이 전쟁에서 패배한 마케도니아의 안티고노스 왕조는 몰락했고, 로마는 그리스의 패권을 차지한 뒤 동방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2. 발단
디아도코이의 후예인 안티고노스 왕조 출신으로 마케도니아를 통치하고 있었던 필리포스 5세는 로마 공화국이 일리리아를 점령하고 그리스에 진출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당시 이탈리아 반도에서는 희대의 명장 한니발 바르카가 이끄는 카르타고군이 로마의 대군과 벌인 칸나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그리스계 도시국가들이 많은 이탈리아 남부를 일부 지배하고 있었다. 명성을 날리고 있었던 한니발과 함께 하고 싶어했던 필리포스 5세는 이탈리아로 사절을 보내 한니발과 동맹을 맺었고, 결국 지중해 세계의 운명을 건 제2차 포에니 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다.3. 제1차 마케도니아 전쟁
기원전 218년의 지중해
필리포스 5세는 일리리아의 로마 세력을 공격했고, 마케도니아가 한니발을 지원하는 것을 두려워한 로마 원로원은 한니발이 이탈리아를 종횡무진하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집정관급 사령관과 군단을 그리스에 파병했다.기원전 214년, 마케도니아군이 아폴로니아를 포위하자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라이비누스가 이끄는 로마 함대가 타렌툼을 출항하여 오리쿰에 상륙했다. 로마군은 필리포스 5세의 진격을 저지하다가 마케도니아와 평화협정을 맺은 아이톨리아 동맹과 제휴했다. 라이비누스의 로마군이 육지에서 싸우는 동안 아이톨리아 동맹은 해군을 지원하기로 했고, 라이비누스는 겨울을 지내기 위해 코르키라 섬으로 철수했다.아이톨리아 동맹이 로마군과 함께 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필리포스 5세는 오리쿰과 아폴로니아에서 일리리아를 침략하고 남하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210년 봄이 되자 라이비누스는 그리스 동맹군으로 구성된 함대와 함께 코르키라 섬을 출항했다. 한편 이탈리아에서는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막시무스가 이끄는 지원군이 구성되어 마케도니아 전선에 합류했고, 에게해에 진입한 술피키우스 갈바는 로마의 동맹국이었던 페르가몬 왕국으로부터 35척의 함대를 지원받았다.기원전 205년, 푸블리우스 셈프로니우스 투디타누스가 35척의 함대와 11,000명의 병력을 가지고 그리스에 상륙했다. 투디타누스가 요충지인 아폴로니아를 포위하자 필리포스 5세는 투디타누스의 로마군을 향해 진군했고 아폴로니아의 포위 공격을 중단한 로마군은 철수했다. 이 무렵 필리포스 5세가 한니발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하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한 로마는 마케도니아에 강화를 제안했다. 일리리아 지역을 획득한 필리포스 5세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서(포이니케 조약) 로마와 마케도니아의 첫 번째 전쟁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4. 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
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BC 200~BC 196)
안티고노스 왕조에 타격을 입힌 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은 아테네에서 개최한 엘레우시아 비의 행사 도중 발생한 사건이 원인이 되었다.기원전 201년에 열린 엘레우시아 비의 행사 도중 2명의 아카르나니아인이 데메테르 신전에 무단 입장했고, 이 행동을 신성 모독으로 간주한 아테네는 이 두 젊은이를 사형에 처했다. 이에 격분한 아카르나니아는 필리포스 5세에게 지원을 요청했고, 마침내 아티카 지역으로 진입한 마케도니아군이 약탈을 일삼자 페르가몬 및 로도스와 동맹을 맺은 아테네가 마케도니아에 전쟁을 선포했다.필리포스 5세는 엘레우시스를 기습했지만 로마와 그리스의 연합 함대가 피라이우스를 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퇴각했으며, 엘레시우스의 연합군을 유인해 공격하려고 했던 필로클레스의 부대가 매복에 실패하고, 성을 공격했으나 마찬가지로 후퇴했다. 기원전 199년, 로마와 그리스 연합군은 네 방향에서 동시에 마케도니아를 공격했으나 테살리아를 압박하고 있었던 아이톨리아 동맹군이 패주하면서 마케도니아를 포위 공격하겠다는 로마군의 전략은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연합군의 주력인 술피키우스의 로마군이 펠리온을 점령하고, 로마와 페르가몬의 연합 함대가 에우보이아의 항구 도시인 오레오스를 함락시켰다. 오레오스 항의 함락은 필리포스 5세에게 치명적인 것이었는데, 아이톨리아 동맹이 테르모필레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케도니아는 에우보이아를 거쳐 로크리스나 보이오티아 등지로 건너가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에우보이아와 연계할 수 없게 된 필리포스 5세는 에페이로스 왕국의 영토를 흐르는 아오스 강의 협곡 지대에 진영을 건설하고, 로마군에 승부수를 던졌지만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가 이끄는 로마군에게 참패했다.(아오이 스테나 전투)이 전투로 인해 필리포스 5세를 배반한 아카이아 동맹은 로마에 가담했고, 마침내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가 이끄는 로마 연합군과 필리포스 5세가 이끄는 마케도니아군은 키노스케팔라이에서 결전을 벌이게 되었다.
키노스케팔라이 전투 과정
전투 초기 안개가 걷힐 무렵에는 로마 연합군이 밀리는 형세에 있었으나 마케도니아군이 팔랑크스 진형을 갖추기 어려운 구릉지대에 진입하자 진형이 붕괴되어 필리포스 5세가 패배하고 말았다.[1]결국 안티고노스 왕조 마케도니아 왕국은 그리스, 트라키아, 에게해 연안 일대의 모든 점령지를 상실하고 말았다. 필리포스 5세는 둘째 왕자인 데메트리우스를 로마에 인질로 제공하고 1,000탈렌트에 달하는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는 굴욕적인 강화를 맺었다.
5. 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
자세한 건 피드나 전투 참조.로마에 인질로 갔다가 친로마 성향이 되어 마케도니아 본국으로 돌아온 둘째 왕자 데메트리우스를 반역죄로 처형한 필리포스 5세가 충격으로 병사하자 그의 첫째 아들인 페르세우스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반로마적인 성향을 가졌던 페르세우스는 로마에 적대적이었던 셀레우코스 제국 및 에페이로스 왕국, 일리리아와 트라키아의 부족들, 그리고 그리스의 몇몇 도시들과 조약을 맺었다. 마침내 페르가몬으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은 로마가 마케도니아에 전쟁을 선포하자 페르세우스는 당시 총독이었던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를 공격하여 패퇴시켰다.크라수스는 팔라나에서 페르세우스와 대치했고, 이듬해 집정관으로 파견된 퀸투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는 마케도니아 영토로 진입하다가 보급 문제로 인해 후퇴하고 말았다.피드나 전투 당시 양군의 진격도
주황색: 마케도니아군녹색: 로마군
피드나 전투 당시 양군의 포진
주황색: 마케도니아군청색: 로마군
마침내 로마는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케도니쿠스를 집정관으로 선출하여 마케도니아 전선으로 보냈고, 피드나 전투에서 페르세우스 왕이 이끄는 마케도니아군이 파울루스의 로마군에게 패배하면서 마케도니아를 오랜 기간 통치한 안티고노스 왕조는 멸망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