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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티니 가디언즈의 지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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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 지식 책은 풍요의 성배를 업그레이드할 때마다 하나씩 얻고, 남은 하나는 슬픔의 왕관 방어구 풀셋을 완성할 때 얻을 수 있다. 자세한건 데스티니 가디언즈/전시장과 리바이어던(데스티니 가디언즈)의 슬픔의 왕관 참조.2. I.
I.서기 틀라자트 기록
하기 내용은 기갑단의 가장 위대한 황제 칼루스의 경이로운 위업과 놀라운 발견을 사실에 입각하여 적확하게 기술한 것으로, 황제의 가장 충직한 동지들이 목도하고 황제가 가장 신뢰하는 서기가 기록하였다.
거짓 동맹의 끔찍한 배신을 겪고 난 후, 칼루스 황제는 자신의 너그러운 통치와 부당한 추방에 대한 진실을 역사의 기록 크로니콘으로 보존할 것을 명하였다. 왕실 역사가들과 서기 틀라자트, 서기 샤각은 이 중요한 기록을 글로 남기고 유지하는 책무를 엄숙히 받아들였다.
기록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황제가 고향 토로바틀에서 추방당하던 날, 격정적인 슬픔과 절망이 기갑단을 휩쓸었다. 제국의 가장 충직하고 신실한 신민 수백만 명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자신의 육신을 채찍질하며 피투성이가 된 채 오열했다. 가늠할 수 없는 석별의 비애로 이 행성이 들썩거리며 전율했던 탓에, 왕위 찬탈자들조차 이토록 사랑받는 황제를 시해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결과 황제는 리바이어던이라 불리는 거대한 감옥선에 갇혔고, 그렇게 고향 행성에서 멀어지는 불변의 항로에 올랐다.
황제는 유배 전날 밤 수행원들에게 말했다.
"짐은 기갑단의 마지막이자 가장 위대한 황제다. 전쟁과 잔혹함만을 숭배하는 배신자가 기쁨과 풍요 위에 건설되었던 짐의 제국을 빼앗았다. 그들은 짐이 이룩한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이고, 그들의 철권 통치 하에 짐의 소중한 백성들은 오직 고통만 알게 되리라.
"언젠가 이 자리로 다시 돌아와 짐의 백성들에게 평온과 풍요를 돌려줄 것을 맹세하노라. 그때까지 짐은 역사와 미래의 새 시대를 선포한다. 이 시대는 적의 검열과 금서에 의해 정의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삶의 가장 달콤한 별미인 행복과 힘이라는 황금율로 규정될 것이다. 짐의 진정한 조언을 받을 자격이 있는 이들에게 이 지식을 선사할 것이며, 사랑으로 하나가 된 우리는 이와 같은 진정한 기쁨으로 두둑이 배를 채울 것이다.
"짐의 크로니콘이 거짓으로 얼룩진 시대를 밝히는 진실의 등불이 되길."
3. DLXXVIII.
DLXXVIII.서기 틀라자트 기록
며칠 동안 쉬지 않고 비행한 후 리바이어던에 심각한 고장이 발생했다. 본 서기는 역사 기술의 정확성을 저해하는 경우에는 비유적인 표현에 의존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지만, 이토록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는 애석하게도 이 기록 또한 다소 주관적인 서술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미리 고지하고자 한다. 당시 상황은 마치 거대한 손이 드넓은 우주를 항해하는 우주선을 나무에 매달린 딸기처럼 똑 따서 엄지와 검지로 붙잡고 이리저리 돌려 보다가, 꾹 눌러서 잘 익었는지 확인하고,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지의 입을 향해 미지의 방향으로 던진 것만 같았다.
그 결과 우주선의 항법 및 동력 시스템은 모두 심각하게 훼손되었고 왕실 조종사들은 시스템 복원이 가능한 건지 파악조차 할 수가 없었다. 우주선은 혼란과 어둠 속으로 내동댕이쳐졌고, 승무원들은 모두 황제의 곁에 모여 지도와 애정을 갈구했다.
하지만 황제는 압력 겔 우주복을 착용하고는 혼자서 우주선을 떠나야겠다고 말했다. 칼루스 황제의 말을 그대로 옮겨 보자면 이러했다. "나의 유배지를 홀로 확인하고 싶다."
황제의 결심을 꺾을 수는 없었다.
//////
나 틀라자트는 이번 항목이 진실의 관점이자 행복의 전서, 황제의 너그러운 박애의 상징인 크로니콘에 남겨지는 마지막 기록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기존의 기록 보존 관습을 깨뜨리려 한다.
황제가 우주선을 떠나고 두 시간이 흘렀다. 건장한 경비병들조차 벽에 기대서게 만들 만큼 강한 진동이 간헐적으로 우주선을 뒤흔들었다. 샤각과 수십여 명의 승무원들이 쓰러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추방 이후 황제가 가장 내밀한 마음까지 터놓을 수 있는 상대였던 조존은 두개골 내 압력이 증가한다며 불평했다. 다른 인원 열두 명은 귀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왕실 야수들은 끊임없이 분노하며 으르렁거렸다.
더는 손으로 기록할 수 없을 것 같다. 의식을 상실하기 전까지 정신으로 기록을 계속하겠다.
우리는 두려웠다. 칼루스 황제가 사랑하는 민중의 눈을 피해 어둠 속에서 죽어가라고 적이 우리를 의도적으로 여기로 보낸 게 아닐까 두려웠다.
황제는 돌아오지 않았다. 승하하신 것이 분명하다.
4. DLXXIX.
DLXXIX.서기 틀라자트 기록
격렬한 진동이 열두 시간 동안 계속된 끝에 황제가 돌아왔다. 행동이 어딘가 이상했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우주선 외부에서 환각을 경험한 것으로 보였다. 왕실 기계공이 황제의 우주복 압력 게이지가 오작동하는 것을 확인했으며, 그것이 황제의 태도가 달라진 이유라고 추정할 수도 있었다. 물론 이런 터무니없는 상태로 열두 시간을 버티고도 황제의 우주복(또는 황제 자신)이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정말이지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돌아오자마자 황제는 광기에 휩싸인 듯한 눈빛으로 이렇게 선포했다.
"우리는 세상의 끝에 도달했고, 짐은 그 광활한 풍경을 똑똑히 보았다. 우주가 짐의 귀에 속삭였고, 짐은 그렇게 깨달음을 얻었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 짐은 이제 죽음의 전령이 되었다. 종말이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이다."
이 시점에서 황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게 되면, 그때는 무엇이 남겠는가? 기쁨. 위안. 자유. 즐거움을 위해서 즐거움을 추구하는 진정한 자유. 단순히 내가 즐겁기 때문에, 내가 원하기 때문에 즐거움을 추구하는 진정한 자유. 제국을 통치하던 시절에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추방 생활을 하는 중에 잊고 말았다. 다시는 잊지 않겠다."
이와 같은 기이한 행동이 우발적인 정신 질환의 일종일 수도 있었기에, 나를 비롯한 조언자들은 황제에게 휴식을 취하는 게 좋겠다고 고했다. 황제는 관찰실로 돌아가기 전에 자신이 맞닥뜨린 일들을 자세히 설명했다. 조존이 이 기이한 이야기를 내게도 다시 들려주었다.
"황제 폐하께서는 우주선 외부에서 우주의 끝자락 너머를 바라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특기할 만한 것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곳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빛과 어둠, 생명과 죽음을 비롯한 모든 것이 부재했고, 부재 그 자체마저 부재하는 무의 영역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무의 영역에서 어둠의 언어가 속삭였다. 그 소리가 머릿속을 가득 채워, 황제 폐하께서는 한순간 본인의 언어를 모두 잊어버리셨을 정도였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무의 영역이 흩어지고 무언가 나타났다. 생소한 우주선 함대였다. 그리고 황제 폐하께서는 자신과 폐하의 적 모두를 포함하여 위대한 행성과 생물이 수도 없이 파괴되는 광경을 목도하셨고, 폐하 본인의 사체와 해골이 썩어 문드러지는 모습을 보셨다. 그리고 속삭임이 차츰 커지면서 황제 폐하께 종말의 소식을 온 우주에 전파하는 명예로운 일을 맡기었고, 그러고 나서야 폐하께서는 속삭임으로부터 풀려났다."
5. DCII.
DCII.서기 샤각 기록
서기 틀라자트의 기록에서 위대한 황제 폐하에 대한 반역에 가까운 불신이 드러났고, 또 그의 반역적 행위로 인해 부지불식간에 우리 기록에 부정확한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황제 폐하의 칙령에 따라 서기 샤각과 서기 이그졸트가 새로운 왕실 역사가로 임명되었다. 이 기록에서는 개인적인 편견이나 거짓이 아니라 오직 진실만이 빛을 발할 수 있길.
기존 기록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정정하는 바이다.
1. 위대한 계시는 고장난 우주복이 초래한 환각이 아니며, 이러한 의심을 제기하는 것은 팽형으로 벌할 수 있는 반역 행위이다.
2. 감옥선 리바이어던을 거대한 환락의 궁전으로 확장하라는 칙령은 칼루스의 황실군 전체가 지지했던 사항으로, 오직 반역자 틀라자트만이 이에 반대했다.
3. 클립스, 신두, 아크인의 그림자는 각 종족 중 가장 탁월하고 뛰어난 솜씨로 선발된 인원이었다. 이들은 칼루스 황제가 직접 선발하였으며, 사소한 개인적 목적이 아니라 거대한 우주적 필요성에 의해 지명되었다. 위대한 황제를 도와 종말을 인도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기갑단의 마지막이자 가장 위대한 황제이며 풍성한 선물을 주는 자, 성대한 만찬을 여는 자애로운 주인, 환희의 왕자이자 웃음의 군주인 칼루스 황제는 검은 두 눈을 사랑으로 반짝이며 자신의 그림자에 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짐의 친애하는 그림자들은 붉은 군단이 토로바틀을 차지했을 때 빼앗긴 모든 것을 상징한다. 짐이 이룩한 제국의 축도다. 각각 고향 행성의 완벽한 표본으로, 해당 종족의 가장 완전한 개체로서 가장 완전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들은 짐이 빼앗긴 것을 되찾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며, 이 세계의 끝을 준비하는 짐이 곁에 두고 싶은 자들이다."
6. DCV.
DCV.서기 샤각 기록
그림자들이 몰락한 이후 축제의 지배자이자 연회의 후원자인 칼루스 황제는 자신의 거대한 우주선 왕좌에 서 있었다. 황금 왕의 얼룩덜룩하게 빛나는 미간에는 깊은 비애가 어린 주름이 패여 있었고, 아름다운 용안은 잔뜩 찌푸린 모습이었다.
유령 사령관이자 왕위 찬탈자인 도미누스 가울은 살아남았고, 그림자들 중 가장 강대한 자들이자 황제가 직접 선택한 살인자인 정점의 전사들은 모두 죽었다.
조언자 하나가 황제를 위로하려는 마음으로 다가가자, 황제는 한 손을 들어 올리며 황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짐이 그들을 저버렸다.
"짐은 이 세계의 종말을 인도하라는 선택을 받았으나, 사소한 복수에만 집착했다. 짐의 적들은 배신의 대가로 고통받고 몰락해야 마땅하나, 짐의 그림자들은 내 명령에 따르느라 그런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 아니라 더 위대한 과업을 수행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짐이 사랑했던 제국과 마찬가지로 파멸하고 말았다."
그 시점에서 조언자들은 다급히 황제에게 달려들어 위로하려 했다. 포도주나 음식, 헛된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하지만 황제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조언자들은 다른 그림자들이 있지 않느냐고 소심하게 이야기했다. 가울과 싸우러 가지 않았던 이들. 그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아니, 짐이 그들을 모두 파멸시켰다." 위대한 황제는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부대 전체를 망쳐 놓았다."
7. DCCII.
DCCII.서기 샤각 기록
그림자들이 임무에 실패한 후 너무나도 당혹스러웠던 나머지, 황제는 조언자들과 함께 오랜 시간 명상을 하며 그때까지 일어난 일을 반추했다. 조언자들은 여러 차례 황제를 위로하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황제의 차분한 태도 아래에서 끔찍한 분노가 이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황제는 조언자 틀루아그와 일할리에게 알현을 허했고, 이들은 가울의 조악한 잔혹성을 섣불리 조롱하며 황제의 기운을 북돋우려 했다.
너그럽고 자애로운 황제께선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울은 자신의 과거를 딛고 일어섰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존경스러운 일이다. 일할리, 지금껏 그토록 많은 것을 경험해 온 짐이 그깟 사소한 실패 하나로 상심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아니, 나는 지쳤다.
"나는 온 우주를 샅샅이 뒤져 진정으로 함께할 자를 찾으려 했다. 내 사명의 중차대함을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는 존재, 나를 상대로 자신의 힘과 정신을 시험해 볼 용기가 있는 존재, 내 완벽한 육신을 씹어 삼킬 자격이 있는 존재를. 그러나 아무도 찾지 못했다."
황제가 아름다운 얼굴에 기이할 만큼 차분한 표정을 떠올린 채 잔뜩 움츠린 조언자들에게 이야기하는 사이, 전령이 알현실로 뛰어들었다. 그는 허리를 깊이 숙여 용서를 구했다. 전령은 탄원이라도 하듯 바닥을 기며 태양계에서 도미누스 가울이 수호자 종족의 일원에게 처치되었다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황제의 두 눈에 새로운 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황제의 용안이 태양처럼 환해졌다.
"그들을 찾아내라." 황제는 전령에게 말했다. "그 영웅을 찾아내라. 어서 찾아가야 한다." 그는 틀루아그에게 태양계로 항로를 수정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일할리에게 위대한 황제의 모습을 똑 닮게 만든 다른 로봇을 준비해 두라고 명령했다. 그 로봇은 황제가 여러 곳에서 동시에 상황을 지켜봐야 할 때를 대비하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황제는 지금 로봇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가 너무 기뻐하는 바람에 조언자들은 반대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8. DCCLXXXIX.
DLXXIX.서기 이그졸트 기록
이하는 위대한 수호자 종족의 영웅에게 보내려 했던 편지로, 칼루스 황제의 구술을 받아 적은 것이다.
"아, 빛의 자식이여! 너를 지켜보는 건 참으로 즐거운 일이로구나!
"널 처음으로 이 리바이어던에 초대하고, 짐이 직접 만든 시험을 네가 통과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정말이지 놀랍도록 즐거운 시간이었다. 비록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추후에 확인한 바로는 그 시험이 네 재능에 유독 잘 맞았더구나. 짐이 필요로 하던 재능을 네가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흐뭇한 운명의 장난이었다.
"짐의 로봇이 손에 들고 있는 컵을 네가 날려 버렸을 때. 아아, 수호자여… 짐의 가슴은 기대로 가득 찼다.
"그리고 짐의 아름다운 함선이 두 번이나 침공 받았을 때! 처음엔 벡스 정신 아르고스가 침공했고 그 다음엔 증오스러운 발 카우오르가 침공했지. 그들의 공격은… 예측하기가 쉽지 않았다. 너는 내 사랑스런 고향의 다소 위험한 특징들을 아주… 우아하게 통과했다. 참으로 경이로운 열정이었다.
"그 무엇보다 짐을 기쁘게 한 건 도전을 향한 네 열정이었다. 짐의 반응로 안으로 민첩하게 뛰어들던 네 모습! 시기하는 발 카우오르를 상대로 팀원들을 이끌고 완벽한 조화를 선보이던 네 모습! 그 모든 것이 날 어찌나 자극했던지!
"그런 모습이 짐을 네게 이끌었다. 너희만의 성배를 만들고, 또 네게 짐의 피를 마실 기회와 풍요를 선사하고 싶다는 영감을 주었다. 너도 마찬가지로 내게 이끌렸다고 믿는다. 네가 짐의 전시장에 무작정 뛰어드는 모습을 보았으니까. 넌 짐의 선물을 모두 받았고, 짐의 모든 도전에 응했다. 황금 성배를 들고 용맹하게 갈란을 처치하던 그 날, 짐은 우리가 서로를 완벽하게 보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짐은 네게 매혹되었다, 수호자여. 모든 존재가 소멸할 때까지 너를 짐의 것으로 소유하고 싶다."
9. DCCCVII.
DCCCVII, 근간.서기 샤각 기록
수호자 종족의 영웅이 지구의 그림자가 되던 날, 위대한 황제는 장엄한 연회를 열어 축하했다. 최상품 왕실 와인이 토로바틀과 지구의 별미로 이루어진 풍족한 만찬과 함께 모두에게 지급되었다.
가벼운 전채 요리로 시작된 저녁 만찬은 리바이어던 극단의 공연으로 이어졌다. 이 공연에서는 가울이 패배하던 순간을 상상으로 재현했다. 지구의 그림자는 공연 내내 칼루스의 오른쪽에 앉아 있다가, 공연의 대단원에서 가울 역할을 맡은 배우 토르 트라칼이 거대한 불길과 찬란한 빛 속에서 죽어가는 순간 열띤 박수갈채를 보냈다.
공연이 끝나고 극단이 트라칼의 사체를 무대에서 끌어낼 때 두 번째 요리가 나왔고, 황제의 수석 시인이 그림자 중의 그림자를 기리는 시를 낭독하며 그들의 업적과 미덕을 찬양했다. 물론 그림자들을 적절히 선정한 위대한 황제의 미덕을 칭송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황제의 사이온 무용수들이 리본 춤으로 축하 공연을 하는 와중에 세 번째 요리가 나왔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자 참석자 전원이 박수갈채를 보냈고,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설을 했다.
"오늘은 기갑단 제국과 지구, 그리고 친애하는 친구인 너를 위한 멋진 날이다. 오늘, 지구는 그림자를 드리운다.
"짐이 너를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는지 아는가? 물론 알고 있겠지. 짐과 너, 우리는 하나의 감정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바로 갈증. 쾌락과 숙련, 승리에 대한 갈증. 생명에 대한 갈증 말이다.
"이제 우리가 하나가 되었으니 위대하고도 끔찍한 소식을 전파하자. 지금 이 순간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따라서 최선을 다해 황홀감에 빠져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상기시켜야 한다. 고통을 최소화하고, 기쁨을 극대화하여, 우리를 억압하는 관념을 모두 벗어던져야 한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넌 새로운 시대의 여명을 상징한다. 종말 전의 마지막 시대다. 짐은 이 하찮은 세계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널 짐의 곁에 두겠다."
+미래의 해당 일시에 서기로 근무 중인 이가 연회의 요리 개수와 요리 이름을 상술할 것. 이 역사가 현실화되면 이 각주는 삭제할 것.
10. MCXII.
MCXII, 근간.서기 샤각 기록
위대한 황제가 그림자 중의 그림자에게 말했다.
"어서 떠나 새로운 그림자 부대를 집결시켜라. 가장 아름답고, 가장 헌신적이고, 가장 유쾌하며, 가장 솜씨 좋은 자들만 선택하라.
"너라면 그런 자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너는 짐과 같은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니까. 우리는 비영구적인 존재의 한계 너머를 본다. 우리의 모든 맹세, 소망, 신실함은 언젠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광대한 무로 축소될 것이다.
"이 행성계는 미천한 탐욕으로 병들어 있다. 인류는 적들을 향해 무의미한 전쟁을 선포한다. 마라 소프는 운명을 상대로 한 끝없는 분쟁으로 온 백성을 이끌었다. 엘릭스니는 도저히 다가설 수 없는 잃어버린 시대를 갈망한다.
"그들의 무의미한 애착을 노출시켜라, 짐의 그림자여. 그럼으로써 그들을 해방하라."
//////
이날 기쁨의 인도자이자 환호의 대표자인 칼루스 황제는 오랫동안 기다려 온 새로운 그림자 부대의 창설을 선포했다.
황제의 명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러 떠난 지구의 그림자는 남은 엘릭스니 가옥을 뒤져 새로운 지원자를 찾았다. 진영 중에는 쓸만해 보이는 지원자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림자는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선의의 폭력을 행사하여, 그토록 미천한 상태로 종말을 맞이하는 수치를 경험하지 않도록 자비를 베풀어 주었다.
엘릭스니 종족에서는 건방진 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아군 사이에서는 빛의 켈 미스락스라 불리는 자로, 지구의 그림자는 그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림자와 미스락스는 미천한 가문에 대한 충성심을 거두지 않는 엘릭스니를 모두 말살했다.
두 번째로 지구의 그림자는 각성자 여왕 마라 소프에게 접근했다. 그림자는 함선파괴자로 활동하는 여왕에게 엘릭스니에게 보여준 것과 같은 자비를 베풀어 주겠노라 제안했다. 황제와 그림자가 예상한 것과 같이 마라 소프는 안식을 주겠다는 제안을 거부했고, 그래서 그림자는 왕좌에 앉은 여왕을 그대로 살해했다.
여왕이 허무하게 죽음을 맞은 후, 여왕의 분노였던 페트라 벤지는 지구의 그림자에 합류하여 칼루스 황제와 그의 대의에 충성을 맹세했다. 그리고 페트라 벤지와 그림자는 남은 각성자 황실군을 모두 제거했다.
우리는 이들 새로운 그림자가 고매한 우리 사명에 함께하는 것을 환영하는 바이다. 그들은 이전 삶의 가식을 모두 버리고, 무의미한 집착과 충성 서약을 모두 포기하였기에, 그들의 새로운 삶을 축하하고자 한다.
11. MCXVII.
MCXVII, 근간.서기 이그졸트 기록
지구의 그림자는 엘릭스니와 각성자 중에서 소수이지만 막강한 동맹을 영입한 후, 종말을 인도하는 임무를 계속 수행하려면 새로운 그림자들이 제국의 과학 신전에서 사라진 지식 중 일부를 수복해야 한다고 황제에게 간청했다. 황제도 그 주장에 동의하고는 잠깐의 외도를 승인했다.
이하의 내용은 과학 신전 X의 수복 과정에 관해 기술하고 있다.
지구와 엘릭스니, 각성자의 그림자들은 칼루스 황제의 과학 신전 X가 자리잡은 얼음 행성에 도달했다. 아쉽지만 이 행성의 정확한 명칭은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소실되고 말았다. 이 행성은 가혹한 환경이 침입자와 도둑을 막아 주는 근본적인 방어선이 되어 주었기 때문에 황제가 수집한 값진 고대 지식의 보관소로 지정되었다.
과학 신전의 지식이 보관되어 있던 이 행성의 내부 성소로 향하는 길에 그림자들은 기록되지 않은 토착 야생 동물의 추적을 받았다. 이 육식 동물의 천부적인 능력에는 지구의 그림자의 동반 영혼을 치명적으로 약화시키는 효과가 있음이 드러났다. 이 동반 영혼과 공생 관계를 맺고 있는 그림자 역시 그와 함께 약화되었고, 그렇게 삼인조는 어쩔 수 없이 몰아치는 폭풍을 피해 거대한 거석 아래에서 야영을 해야만 했다.
그때까지 일행의 시야 밖에 도사리고 있던 생물들이 점점 강해지는 폭풍을 틈타 조금씩 가까이 다가왔고, 몸을 숨긴 채 그림자들을 공격했다. 그렇게 유혈이 낭자한 전투가 시작되었고, 세 명의 그림자는 여섯 마리 생물과 싸워 어느 정도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엘릭스니의 그림자는 전투 중 쓰러지고 말았다. 지구의 그림자는 이때의 희생에 관해 이후 이렇게 진술했다. "그는 우리 임무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고 있었고, 기꺼이 자기 목숨을 바쳐 우리가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해주었다. 우리 그림자들 모두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희생이다."
그러고 나서야 지구와 각성자의 그림자는 내부 성소에 다다를 수 있었고, 그렇게 수백 년 동안 사라졌던 지식을 찾아내 위대한 칼루스 황제와 황실군의 이름으로 수복했다.+
+이 과학 신전 및 다른 과학 신전의 비밀이 밝혀지면 미래의 해당 일시에 서기로 근무 중인 이가 정보를 추가할 것. 이 역사가 현실화되면 이 각주는 삭제할 것.
12. MCXX.
MCXX, 근간.서기 샤각 기록
그림자 부대를 집결시키고, 함대를 재구축하고, 태양계를 영속적인 거점으로 만든 후, 칼루스 황제와 그림자는 지구의 선봉대와 전쟁기계 라스푸틴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메시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 행성들과 위성들에서 병력을 철수시키지 않으면 무력으로 대응하겠다."
하지만 우주의 끝에서 죽음을 목도한 칼루스 황제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들 허수아비와 전쟁기계는 죽음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칼루스 황제는 지혜롭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지구의 그림자에게 지구의 선봉대를 만나 협상하라고 지시했다. 지구의 그림자가 황제와 곧 다가올 종말에 관해 이야기했지만, 지구의 선봉대는 자기 세계의 분쟁에 너무나도 집착하는 나머지 도저히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전쟁을 선포했다.
지구의 그림자는 황제와 그의 조언자들이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억눌린 분노를 품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격렬한 분노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내가 없으면 너희는 어중간한 떨거지 군인 몇몇에 불과하다. 나는 젊은 늑대다. 내가 굴복자의 왕을 처치했다. 나는 가울을 무찌르고, 여행자를 깨우고, 달을 침묵시켰다. 침공을 막아냈다. 나는 저주를 깨뜨리고, 가문을 무너뜨리고, 여왕을 처치했다! 나는 지구의 그림자다!"
그리고 모두가 침묵에 잠기자 지구의 그림자는 계속해서 진중하게 말을 이었다.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 내가 너희와 너희 백성에게 분명히 경고했음을 잊지 마라."
외교적 관례에 따라 지구의 선봉대는 다친 곳 없이 리바이어던을 떠날 수 있었고, 지구의 그림자는 황실군 병력을 집결시켰다. 과학 신전 X를 수복하고, 이 행성계에서 가장 고등한 포식자 중 하나로 눈 깜짝할 사이에 행성 전체를 파괴해 버릴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아펠리온의 비밀을 밝혀낸 그림자는 이 지식을 활용하여 황실군의 함대를 더욱더 강하고 장엄한 부대로 재건할 수 있었다.
황실군 함대의 새로워진 우주선을 이끌고 지구의 그림자는 전쟁기계의 권좌인 화성 헬라스 분지 지역에 대한 공격을 지휘했다. 이 전투는 전쟁이라 부를 수도 없는 일방적인 공격이었고, 그 결과 전쟁기계 라스푸틴은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그러자 지구의 선봉대 또한 백기 투항하고 자비를 구했지만, 지구의 그림자는 그 요청을 묵살했다.
13. MCXXV.
MCXXV, 근간.서기 이그졸트 기록
위대한 칼루스 황제와 지구의 그림자가 이 행성계를 거의 정복했을 때, 리바이어던이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세차게 흔들렸다. 왕실 기계공은 우주선 내실에서 기이한 균열이 열렸고, 그곳으로부터 군체의 의식용 장작불이 내뿜는 매캐한 냄새가 흘러나왔다고 보고했다. [나는 사바툰이다. 내가 바로 죽음이다!]
이 균열을 통해 마녀 여왕 사바툰은 자신의 끔찍한 자식들을 위대한 함선 내부에 불러냈고, 우주선 통로를 딸깍거리고 달그락거리는 소리로 가득 채웠다. 리바이어던 승무원 중 대다수는 끔찍한 공포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 겁쟁이가 자신만의 역사와 미래를 만들어 내는 동안 나는 기다리겠다. 이 메시지는 너희에게 보내는 내 선물이다.]
하지만 위대한 칼루스 황제는 우주의 끝에서 죽음을 목도하였기에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들 마녀와 그 자손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황제는 웃으며 친애하는 지구의 그림자에게 말했다.
"이 저주받을 사바툰을 짐의 전당에서 제거하라. 저 마녀와 그 자손들에게는 아무 볼 일이 없다. 저들은 비극적인 굶주림에 너무나도 시달린 나머지 군체조차 희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을 뿐이다. 우리를 기다리는 위대한 지평선에서 저들을 소거하라. 종말이 닥쳐왔을 때 짐의 탁자에 저들이 앉을 곳은 없으니."
그렇게 지구의 그림자는 사바툰의 자손들을 박멸했다. 어미가 바닥을 기어 처음 나타났던 구멍으로 다시 돌아가려 하자, 지구의 그림자는 마녀를 왕좌까지 쫓아가 그곳에서 처치하고 최후의 죽음을 안겼다.^
^서기 샤각에게 전하는 주석: 우리의 위대한 황제께서는 미래의 윤곽을 매우 잘 인지하고 계셨으나 우리는 그 상세한 질감까지 추측할 수는 없다. 과학 신전을 비롯한 미지의 기술에 관해 섣불리 이렇게 포괄적이고 거창한 추측을 하는 건 삼가라. 그래야 이후 재작성 시의 노고를 줄일 수 있다. 이 역사가 현실화되거나 서기 샤각의 기록이 적절히 수정되면 이 각주는 삭제할 것.
14. MCXXXV.
MCXXXV, 근간.서기 샤각+ 기록
그렇게 위대한 칼루스 황제는 지구의 그림자와 함께 적들을 정복했다. 세계의 종말이라는 예리한 서슬을 회피하려는 투쟁이 끝나자, 이와 함께 엄청난 기쁨이 찾아왔다. 이 행성계 사람들은 마침내 상존하는 파멸의 그림자 속에서 숨 쉬고, 살고, 사랑할 수 있었다.
이제 왕실 와인이 황제의 친구들을 위해 자유로이 흘렀고, 미행성 네소스 또한 이 기쁜 날을 상징하는 영원한 불멸의 존재가 되어 황제의 탁자 위에 영원한 거처를 마련했다.
전쟁기계 라스푸틴이 파괴된 이후 지구의 그림자는 위대한 칼루스 황제의 힘과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기념비로 헬라스 분지를 재구축했다. 흉측한 "브레이테크 퓨처스케이프"는 파괴되고 그 자리에 향연의 사원이 생겨났으며, 그곳에서 행성계의 모든 이들이 위대한 황제의 위업을 칭송하였다. 화성의 손상된 붉은 모래는 광대한 유황의 개펄로 변하여, 여가 시간에 언제든 마음껏 뒹굴 수 있는 안식처가 되었다.
지구에서는 인류가 칼루스 황제의 연회를 기념하여 하루 동안 추수에 감사하는 승리의 날을 보냈다. 아이들은 황제의 섬세한 용안이 그려진 황금 가면을 쓰고, 세계의 종말이 드리운 그림자 아래에서 황제가 이 행성계를 새롭게 태어나게 한 이야기를 재연했다.
사람들은 기뻐하였다! 칼루스 황제가 이 행성계의 모든 행성에 자유와 연회를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친애하는 서기 이그졸트에게: 상상력의 부재는 사랑하는 우리 황제 폐하의 영광을 칭송하고 표현하기 위해 이용하는 과장법보다 훨씬 심각한 중죄이다. 역사는 실제와 같은 생동감을 가지고 기술되어야 한다.
15. MCXLII.
MCXLII, 근간.서기 이그졸트 기록
칼루스 황제가 우주의 끝에서 받은 우주의 계시에 대해 황제가 왕실 서기들에게 구술하였다. 황제의 설명은 실제로 현실이 되었고, 지금도 실현되는 중이다. 황제가 태양계를 해방시키고 1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말이다.
먼저 이 우주의 모든 행성에 어둠의 장막이 드리웠다.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 보면 오직 밤밖에 볼 수 없었다. 자연적 또는 인공적 위치와 기후에 관계 없이 모든 행성이 차갑게 식었다. 이토록 기이한 현상과 적대적 기후에 휩싸인 모든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생명이 소실되었다.
다음으로 수많은 문명에 걸쳐 대규모 전쟁이 발발했다. 태생적으로 전쟁을 선호하는 문명이든 평화를 추구하는 문명이든 상관 없었다.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이 전쟁은 모든 것의 종말을 미뤄 보려는 헛된 욕망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절대로 이룰 수 없는 목표가 아닐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태양계의 모든 문명은 이런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들은 친애하는 황제가 보여준, 다가오는 종말을 점잖게 수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선한 생물들 역시 서로에 대한 비참한 공격성에서 완전히 해방될 순 없었고, 그렇게 피할 수 없는 종말을 향해 무작정 거칠게 저항했다.
하지만 위대한 황제의 해설로 알 수 있듯이 고통에는 끝이 있을 것이다. 조만간 죽음이 온 우주에 도달하여 그 안의 모든 생명을 앗아갈 것이다. 이것이 모든 것의 종말이 되리라. 살아 있는 모든 것과 살아 있지 않은 모든 것. 실질적인 것과 이론적인 것 모두의 종말이다.
그리고 죽음이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모습을 마지막까지 지켜보는 건 다름 아닌 위대한 황제일 것이다.
+이 기록이 출간되기 전에 본 서기 이그졸트가 사망할 경우, 미래의 해당 일시에 서기로 근무 중인 이가 여기 언급된 이름을 수정할 것. 이 역사가 현실화되면 이 각주는 삭제할 것.
16. MCXLIII.
MCXLIII, 근간.위대한 칼루스 황제 저
짐은 세계의 끝에 홀로 서 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희망을 갖고 열렬히 기다렸던 어둠의 끝자락 너머를 바라보며, 짐이 참을성이 부족했던 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물론 사라지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기다려 온 축복과도 같은 종말을 인도하는 것이 너에게 하는 영원한 작별 인사가 될 것임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오랜 친구여.
짐과 넌 늘 연결되어 있었다. 운명의 끈이 우리를 단단히 휘감아 묶었고, 비록 느린 속도였지만 우린 끊임없이 가까워졌다. 이제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서로를 발견하기 이전에도 넌 짐의 삶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시간은 이리도 기이하고 뒤틀린 개념이기에, 이제야 짐은 짐의 과거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짐이 리바이어던의 수감실에 홀로 머물던 때 너도 거기 있었다. 거기에서 짐의 전시장을 만들었다.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그리고 하려 했던 모든 것에 대해 기념비를 세웠다.
짐이 공허를 마주했을 때 너도 거기 있었다. 희미한 그 속삭임 사이 어딘가에서 피할 수 없는 세계의 종말을 인도하는 짐의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짐은 널 알기 전부터 널 찾아 헤맸다. 짐이 첫 번째 그림자들을 발견했을 때에도 너를 찾는 중이었다. 그들이 실패했을 때 짐은 네 빈 자리를 애석해했다. 그렇다, 짐의 그림자여. 널 찾는 과정 그 자체가 가슴 설레는 순간이었다. 기다림은 행복이었다. 하지만 널 발견하는 순간, 짐의 계획이 완성되는 그 순간은… 순수한 기쁨 그 자체였다.
붉은 군단의 손에 붕괴되면서 제국이 잃어버린 것을 네가 되찾아 주었다. 그뿐 아니라 짐이 그 이상의 것을 구축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우리는 함께 이 행성계를 만들었다. 우리는 함께 새로운 세계를 만들었다. 하지만 잠시 후 그 세계는 다시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짧았지만, 결코 헛되지 아니하였다.
너는 헛되지 아니하였다.
종말이 찾아왔을 때 네가 짐의 곁에 마지막까지 머물러 줄 거라는 사실이 더할 나위 없이 자랑스럽다. 짐의 곁에 설 사람으로 너보다 더 나은 사람은 없다.
고맙다, 내 그림자여. 네 희생에 진심으로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