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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성
현실을 조율합니다. 필연을 추구합니다. 신성을 구현합니다.리스본-13은 야르담-4를 두고 온 곳을 돌아봤다. 팀이 갈라지는 건 늘 꺼림칙했지만, 레카나가 고위 무녀와 교감하려면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 필요했다. 만일 그들이 검은 정원에 불시착한 것을 벡스가 감지했다면, 야르담-4가 그 시간을 벌어 줄 것이었다.
"빨리 움직여야 할 것이야." 무녀가 레카나에게 말했다. 리스본-13은 레카나의 비밀 통신 채널을 공유하고 있었다. 레카나는 그를 믿었던 것이다. "오시리스가 예견한 대로, 선봉대가 우리 세력이 잔존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우리를 잡으려고 화력팀을 보내겠군요."
"남아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 모든 크립토크론에게 화력팀을 보내겠지.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너희가 가는 길이 가장 위험하다. 지도부는 많은 화력팀이 너희 뒤를 따르리라 예견했지. 우리 세력이 구하는 지식은 나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찾을 수 있을 거라고요? 찾는 게 아니라요?" 레카나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걱정이 묻어났다.
"검은 정원을 둘러싼 장막 때문에 지도부의 예견에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장담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세력에서는 한 무리의 수호자들이 나무에서 검은 정원의 근원에 대한 비밀을 밝힐 거라고 말하더구나. 예지몽 지도부는 그 화력팀이 켄타크-3이 아닐 이유는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이 직물에는 이 실오라기와 한데 얽힌 실오라기가 하나 더 있다. 벡스, 아니면 벡스의 한 분파가 그곳에서… 신적인 존재를 섬기거나 모시고 있기 때문이지."
"검은 심장 말인가요? 그건 파괴됐잖아요."
"그래. 하지만 이건 달라. 이건 물체야. 일종의 성물이지. 벡스가 그것을 중히 여기는 이유는 우리도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지도부는 그것이 위험—"
"벡스의 무기인가요?"
"그럴 가능성도 있지." 무녀는 말이 끊겨서 짜증이 난 목소리였다. "레카나, 지도부는 그것이 네게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저한테요? 그럼 왜 절 이 임무에 파견하는 거죠?"
"지도부가 그 물체의 꿈을 꾸었을 때, 네가 그 곁에 있었기 때문이지."
"알겠어요. 우리가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될지 두고 보죠, 무녀님…" 레카나는 한참 뜸을 들였다.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검은 정원 주위의 장막과 벡스의 영향력 때문에, 그런 것을 짐작하기가 어렵구나. 나는 우리가 다시 만날 거라 믿겠다."
"그럼 작별 인사는 하지 않을게요." 레카나가 이렇게 말하고 채널을 닫았다.
레카나는 잠시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었다. 리스본-13은 기다렸다.
그녀가 마침내 눈을 뜨고 말했다. "리스본, 그걸 찾으면 네가 사용해 줘."
"그 성물? 신적인 존재라는 것을 말이야?"
"그런 것을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은 너밖에 없어."
2. 타이탄
2.1. 공정의 투구
"해야 할 일은 알고 있습니다. 제가 할 겁니다." —야르담 4, 켄타크 3의 타이탄"지금은 어때?"
"여전히 아무것도 없습니다."
야르담-4가 눈을 가늘게 뜨고 고스트를 올려다보았다. "확실해?"
"당연히 확실하죠. 최소한 1킬로미터 안에는 벡스가 없어요."
"그렇다면—?"
"이제 돌아가고 있는 거죠. 무얼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신 거죠?"
야르담-4는 눈을 굴리고는 돌멩이를 벼랑 가장자리로 걷어찼다. "어우, 왜 이래. 센서가 그렇게 많으면서 놈들이 보내는 신호도 못 잡는 거야?"
야르담-4의 고스트는 갈피를 못 잡겠다는 듯이 공중에서 위아래로 움직였다."됐어. 신경 쓰지 마. 질투하는 거 아니니까."
"진짜요?" 충격받은 말투였다.
"와, 너 진짜 인간을 전혀 모르는구나?"
야르담-4의 고스트는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변명을 떠올리려 했다.
"됐어. 괜찮다니까." 그가 말했다. "네가 필요한 건 그것 때문이 아니야. 넌 그냥 내 뒤를 봐주기만 하면 돼. 팀의 관계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레카나가 선장이긴 하지만, 켄타크라는 배가 어디든 가려면 돛이 필요하니까."
"당신이 돛이라는 얘긴가요?"
"그렇지. 닻이기도 하고."
"그렇군요." 고스트가 자세를 바꾸고 비유를 이해하려고 애쓰며 말했다. "그럼 리스본-13은 뭐죠?"
"방향타."
"방향… 타요? 이해가 안 되는데요."
"방향타는 키의 손잡이에 연결돼 있어. 배에 방향타가 없으면 선장이 조향을 할 수가 없어. 망망대해를 그냥 떠돌게 되는 거야."
"그럼 그분이 없으면 길을 잃을 거란 얘깁니까?"
"길을 잃어? 아니. 우리가 어디 있는지는 알 거야.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를 뿐이지."
"와아. …심오하네요. 근데 배에 대해 어떻게 그리 잘 아시죠?"
야르담-4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아는 거야. 늘 그랬지."
"그럼… 진짜로 질투하는 게 아닌가요?"
"시끄러워. 인간을 정말 전혀 모르네."
2.2. 환호의 건틀릿
"저거 보셨어요? 제가 뭘 할 수 있는지 보셨어요?" —야르담 4, 켄타크 3의 타이탄야르담-4는 허리가 쑤셨다. 뛰느라 발도 욱신거렸다. 하지만 지금 이 부자연스러운 계곡에, 그들을 위협하는 것은 없었다. 그는 동료들을 보았다. 그의 기분이 엉망인 만큼 그들의 모습도 엉망이었다. 농담으로는 안 되겠다. 화를 돋울 만한 말을 해야 했다.
"놈들을 얕봤군." 야르담-4가 말했다.
리스본-13은 고개를 홱 돌렸지만, 레카나가 리스본-13의 팔에 손을 댔다.
말을 잘 듣는데, 야르담-4가 생각했다. 레카나에게 목줄이 꽉 쥐여 있군. 이런 생각은 야르담-4에게도 뜻밖이었고, 그래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 레카나가 말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됐어."
"상황을 파악했다고?" 무슨 헛소리람. 야르담-4는 피곤했다. 처음에는 화가 나는 시늉만 했는데, 이제 진짜 화가 났다. 하지만 레카나는 의미 없는 말은 절대 하는 법이 없다. "대체 무슨 상황을 파악하길래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건데?"
레카나와 리스본-13 사이에 무언가가 오갔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언제나처럼 리스본-13가 그녀가 남긴 공백을 파고들었다. "적의 방어력은 미친 수준이었어." 그건 사실이었다. "중계와 속박, 천사까지. 벡스는 정말 우릴 여기에서 쫓아내고 싶은 거야. 그리고 그건 놈들이 이곳을 약점이라 생각한다는 뜻이지."
레카나의 볼에 혈색이 돌아오는 걸 보니 좋군, 야르담-4가 생각했다. 리스본-13은 가슴을 잔뜩 내민 것이 꼭—
"그래, 약점이지."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도, 야르담-4는 말했다. "아마 놈들의 가장 큰 약점일 수도 있겠어."
야르담-4는 흠칫 놀라 입을 다물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기가 하지 않을 법한 말도 아니었다. 그저… 그 말을 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그래. 그러니까 우린—" 레카나가 입을 열었지만, 그때 리스본-13이 그들이 찾은 무기를 들어 올리더니 주위를 살폈다.
야르담-4는 마치 자다 깨는 듯이 몸서리를 쳤다. 이제 피곤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총을 들었다. "무슨 소리지? 어디서 들린 거야?"
레카나도 정체불명의 상대를 향해 방어 태세를 취했다. 총을 뽑는 그녀의 어깨가 야르담-4를 스쳤다. "난 아무 소리도—"
"너. 너한테서 나는 거야. 넌 영웅이니까."
2.3. 승천의 판금 흉갑
"이제 벡스는 우릴 막을 수 없습니다. 아무도 못하죠." —야르담 4, 켄타크 3의 타이탄야르담-4가 빙글 돌아 굴속을 살폈다.
"저 소리 들려? 누구지?" 야르담-4는 고함을 치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했다.
"들려." 레카나와 리스본-13이 한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등골이 오싹했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소리라면 어떻게 저 둘에게 들린 거지?
세 수호자는 모두 고스트를 불렀다.
"고스트?" 야르담-4가 먼저 말했다. "이게 뭐지?"
야르담-4는 동료들이 고스트와 이야기하기 시작하는데도 그곳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뭘 찾고 계신가요?" 그의 고스트가 물었다.
"무엇이든. 뭐든 상관없어. 나… 난… 날 스캔해. 무언가, 누군가 다른 사람이 없나 찾아봐."
"와아. 알겠습니다…" 그의 고스트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시대로 했다. "어, 정확히 무엇을 찾아야 하는—?"
야르담-4가 지켜보는 도중 고스트의 스캔 결과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고스트는 뚝 떨어져서 바닥에 뒹굴었다.
고스트를 집어 드는 야르담-4는 빛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야르담, 리스본, 둘 다 괜찮아?" 레카나가 멀리서 물었다.
"응, 괜찮아." 하지만 야르담-4는 괜찮지 않았다.
2.4. 우위의 각반
"여기가 어디인지는 잘 압니다." —야르담 4, 켄타크 3의 타이탄야르담-4는 생각에 잠긴 리스본-13을 보았다.그는 그녀가 우리를 배신하게 만들 것이다.
그런 일은 절대 없어.우린 그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그는 우리의 선물을 받아들였지. 그런데 그는 이제 우릴 두려워한다. 그게 옳은 것인가?
아니지. 하지만 그는 언제나 외톨이였으니까.
야르담-4는 이 생각과 함께 의외로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리스본-13은 그의 친구였다.
"우린 이러려고 여기 온 게 아니야." 리스본-13은 말문을 열었다.
"당연히 아니지. 누가 이런 걸 예상이나 했겠어?" 레카나가 치고 들어왔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있는데, 우리 임무가 무슨 상관이야? 이게 훨씬 더 중요하잖아."
"멋지기도 하고.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잊지 마." 야르담-4가 불쑥 말했다. 그는 말을 덧붙여 "멋지다"보다 더 좋고 더 깊은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그때 리스본-13이 끼어들었다.
"하지만 이것, 우리에게 주어진 이 힘은 잘못된 쪽에서 나온 거야."
레카나는 그를 볼 수가 없었다. "난 모르겠어."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 그게 어느 쪽에서 나오든 무슨 상관이 있어?"이오 일은 기억하겠지." 야르담-4가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우린 포위당했지. 선적 컨테이너 안에 갇혀 있는데 사방에서 방패병들이 다가왔잖아. 그리고 너, 너 이 개자식. 넌 뒤쪽의 작은 구멍을 향해 뛰었어. 난 네가 우릴 버린 줄 알았다니까."
"그럴 일은 절대 없어." 리스본-13이 뱉듯 말했다.
진심이군. 다행이야.
"나도 알아." 야르담-4는 말을 이었다. "상자에서는 총알이 달그락거리고 있었어. 폭발이 일어나고, 우린 할 수 있는 한 총을 쏴댔지. 그런데 갑자기 네 비명이 들리는 거야. 유령이 우는 소리 같았지. 넌 비명을 지르며 사이온이 아직 타고 있는 요격기에 올라탔어. 그리고 사이온의 머리로 그걸 조종했다고!"
"기억난다." 리스본-13은 이렇게 말하며 야르담-4 옆으로 지나가려 했지만, 야르담-4는 굳게 버티면서 그의 눈길을 잡으려고 했다.
"그리고 넌 방패병 네 기를 측면으로 돌파했어. 그다음, 그다음엔… 너도 기억하지, 레카나?"
"잊을 수가 없지."
잘됐군. 누구도 잊어선 안 돼."그 요격기를 다른 방패병의 방패에 흩뿌려 버리고는 그 엄청난 폭발을 타고 날았잖아. 그리고 그 녀석들 뒤쪽 땅에 떨어졌을 때, 쾅! 내가 지금껏 본 광경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지."
리스본-13은 멈춰 서서 야르담-4의 눈을 바라보았다.
지금이야. 판도를 뒤집을 기회다.
"그게 지금의 우리야. 우리는 네가 했던 일을 하는 거라고. 이 우주 전체가 커다란 컨테이너고 최후의 도시, 선봉대, 여행자가 전부 그 상자 안에 있는 거지. 우리는 방금 뒤쪽에 있던 구멍에서 기어 나왔어. 저기 그 요격기가 있고, 마침 그 안에는 지금 사이온도 안 타고 있다고."
리스본-13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가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비유가 조금 애매해지지. 요격기 하나가 아니라 네가 상대할 요격기와 내가 상대할 골리앗, 레카나가 상대할 스레셔까지 있잖아. 그 화력을 전부 우리가 차지하면 싸움이 어떻게 되겠어?" 야르담-4는 의기양양하게 말을 맺었다. 화력팀에 대한 경탄과 사랑으로 숨이 가빴다.
리스본-13의 입술이 말려 올라갔다. 야르담-4에게는 몸에 와 닿는 변화였다. 그는 마음의 눈에, 미친 듯이 빙빙 돌아가는 타륜이 보였다.
"아주 화끈해지겠지." 리스본-13이 잡아먹을 듯이 말하고 돌아섰다.
2.5. 유혹의 표식
"이게 그릇된 거라면, 전 옳고 싶지 않습니다." —야르담 4, 켄타크 3의 타이탄"이렇게 이야기가 끝날 수는 없어." 레카나가 멍하니 말했다.
"아직 끝이 아니야. 우리가 이길 거야." 레카나는 확신이 없어 보였다. 야르담-4는 전략을 바꾸었다. "잘 들어. 리스본은 힘을 아끼고 있어. 새로 얻은 힘을 쓰려니 겁이 나는 거야. 그러니까 정면으로 붙으면 머릿수나 힘이나 우리가 유리해."
"아니야."
"아냐?"
"리스본은 겁이 나는 게 아냐. 절박한 거지. 배신감을 느끼는 거야." 레카나가 말했다. 어느새 맑아진 레카나의 눈은 기습의 징후를 찾아 주위를 살폈다.
"리스본이 배신감을 느낀다고?"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우릴 배신한 건 그야!"
"그렇지. 하지만 그건 이제 우릴 친구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야."
"뭐, 그건 제대로 짚었네. 어쩌다가 그렇게 꼬인 거지? 우리 모두 거래에 응했잖아. 그런데 지금 이게 무슨 꼴이냐고!"
레카나는 자신을 보더니 다시 그를 보았다. "우리가 옳은 일을 한 걸까?"
레카나가 자신을 의심하는 건가? 혼란스러웠다. 레카나가 집중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당연하지. 그리고 우린 도시로 돌아가서 너희 세력과 함께 알아낸 사실을 전해야 해. 하지만 그러려면 우선 검은 정원에서 나가야 하지. 잘 들어. 리스본과 싸울 필요는 없어. 하지만 맞대결을 피하려면 녀석의 속셈이 뭔지 알아야 돼."
레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녀석이 우리 뒤에서 공격할까, 아니면 우릴 막아설까? 벡스를 또 우리 쪽으로 보내려고 할까?"
레카나는 눈을 감았다. 그녀의 호흡이 느려졌다. 야르담-4는 주위를 주시하면서도 간간이 레카나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꺼풀 아래에서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몇 분 후에 그녀의 호흡이 빨라지는가 싶더니, 레카나가 눈을 떴다.
"소용없어. 가능한 실마리가 너무 많아서 어떡해야 할지 정할 수가 없어.""괜찮아. 바람 부는 대로 실려 가지, 뭐." 야르담-4가 중얼거렸다.
"뭐?"
"말했다시피 우리가 직접 길을 정하는 거야. 이야기를 경험하며 동시에 쓰는 거지."
야르담-4는 내키지 않는 미소를 지었고, 레카나는 그가 앞에 말한 내용을 못 들은 척했다.
3. 헌터
3.1. 공정의 두건
"당신이 옳다고 해서 제가 틀려야 할 이유는 없지 않나요?" —레카나, 켄타크 3의 워록그녀가 입을 열었을 때 리스본-13은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
"그녀를 믿지 않는군. 다 티가 나네."
그는 하마터면 비틀거릴 뻔했지만 걸음을 빨리해서 그걸 감췄다.
레카나는 너무 많은 것을 보았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그 사실이 그를 놀라게 했다. 그녀는 그를 바로 꿰뚫어 보았고, 그 모든 잘못과 실패, 모든 죄책감과 후회를 바라보고도 외면하지 않았다.
"그녀를 믿을 필요는 없어. 널 믿으니까."
"그걸로 충분하다고?"
"늘 그래."
전에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말의 진실이 그를 안정시켰다. 그건 그들의 거칠고 위험한 삶을 구성하는 혼돈과 모호성을 베어낼 면도날이었다. 그녀는 자기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았다. 바로 그를 곁에 두는 것이었다. 명예였다.
그녀는 그의 뒤에서 머뭇거렸다. 임무에 관해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이봐, 굼벵이. 올 거야?"
"그래."
리스본-13은 멈춰 서서 그녀를 기다렸다. 그는 멀리 우주 밖 풍경을 바라봤다. 끔찍했지만 그래도 나름의 방식으로 아름다웠다. 레카나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거울 너머에 존재한다는 건 참 이상하지."
"응."
그녀의 눈은 푸르게 빛났다. 그녀가 무엇을 볼 수 있는지 깨닫기 전에 그게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그는 그 눈 너머에서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생각했다.
그는 그녀가 임무에 관해 하지 않고 있는 말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크립토크론이 검은 정원의 진실을 아는 것이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녀가 답을 알고 있다면 질문을 할 필요가 없었다.
"야르담이 재미 삼아 벌레들에게 사격을 시작하기 전에 돌아가야 해."
3.2. 환호의 손아귀
"당신은 정직합니다. 진실합니다. 힘의 책무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당신일 겁니다." —레카나, 켄타크 3의 워록리스본-13은 굴을 둘러본 후 다시 동료들을 바라봤다. 레카나는 많이 지친 표정이었다. 전투도 힘겨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왠지 몰라도 그녀는 자신감을 잃은 것 같았다. 흔한 일은 아니었다.
"놈들을 얕봤군." 야르담-4가 비난했다.
리스본-13은 팔에 와 닿은 레카나의 손길을 느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됐어."
"상황을 파악했다고?" 야르담-4는 해명을 기다리지 않았다. "대체 무슨 상황을 파악하길래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건데?"
레카나는 리스본-13을 바라봤고, 그는 그제서야 이해했다. 그녀는 벡스를 얕봤다. 그들이 경험한 것과 같은 격렬한 저항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건 그들의 여정에 더 큰 의미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 안에 설명되지 않은 운명이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적의 방어력은 미친 수준이었어." 리스본-13은 대화의 결과를 예상하며 말했다. "중계와 속박, 천사까지. 벡스는 정말 우릴 여기에서 쫓아내고 싶은 거야. 그리고 그건 놈들이 이곳을 약점이라 생각한다는 뜻이지."
"그래, 약점이지." 야르담-4가 그렇게 말하자 동굴 속에 메아리가 울렸다. "아마 놈들의 가장 큰 약점일 수도 있겠어."
하지만 그건 메아리가 아니었다.
다른 목소리가 "약점"이라고 다시 말했다.
"그래. 그러니까 우린—" 레카나는 깜짝 놀랐고, 리스본-13은 레카나가 맡긴 무기를 들어 올렸다. 그는 주위를 살폈다.
야르담-4도 불꽃에 맞은 듯 깜짝 놀라 총을 들었다. "무슨 소리지?" 당황한 목소리였다. "어디서 들린 거야?"
레카나는 일행을 향해 물러나 자동적으로 방어 태세를 취했다. "난 아무 소리도…" 레카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입을 다물었다.
"충분한 힘이 있는 자들은 다른 자들의 약점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
3.3. 승천의 조끼
"이런다고 당신이 우리보다 낫다고 생각하나요?" —레카나, 켄타크 3의 워록그들의 고스트가 모두 한꺼번에 재잘대기 시작했고, 리스본-13은 일행들에게서 떨어져 자기 고스트의 목소리를 들었다.
"스캔 중입니다. 세 분을 제외하면 복합 생명체의 흔적은 없습니다. 스캔 변수를 확장합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습니다."
"뭔가 송신되는 건 없는지, 또 근처에 음향 장비는 없는지 찾아봐." 리스본-13이 명령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잖아."
"찾았습니다." 그의 고스트가 말했지만, 다시 공중에서 비틀거렸다. "우어, 못 찾았습니다."
리스본-13은 고스트가 떨어지기 전에 붙잡았다. 굴속에서 그들의 빛이 흐려져 갔다.
레카나가 묻는 소리가 들렸다. "야르담, 리스본, 둘 다 괜찮아?"
"난 괜찮아." 그는 말했다. 정말 괜찮았다. 뭔가 이상한 일, 걱정스러운 일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리스본-13은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
어둠이 짙어지고 리스본-13은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긴장했다. 상대가 누구인지, 아니 무엇인지는 몰라도 말을 했다. 아마 다시 말할 것이다.
리스본-13은 어둠을 바라보며 상대를 기다렸다.
3.4. 우위의 발걸음
"전 제 길을 택했어요. 당신도 같은 일을 할 수 있나요?" —레카나, 켄타크 3의 워록"우린 이런 이러려고 여기 온 게 아니야." 리스본-13은 확신했다.
"당연히 아니지. 누가 이런 걸 예상이나 했겠어?" 레카나는 재빨리 대답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있는데, 우리 임무가 무슨 상관이야? 이게 훨씬 더 중요하잖아."
리스본-13도 그렇게 믿고 싶었지만 레카나 자신도 그다지 확신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녀의 눈이 너무 환하게 빛났다. 그녀는 열광했다. 흥분하는 동시에 두려워하고 있었다. 혼돈을 잘라내던 면도날이 흔들렸다.
"멋지기도 하고.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잊지 마." 야르담-4가 말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감정을 눈치챈 게 분명했다.
리스본-13은 레카나가 이해해 주기를, 정신을 차리기를 바라며 그녀와 눈을 맞췄다. "하지만 이것, 우리에게 주어진 이 힘은 잘못된 쪽에서 나온 거야."
레카나는 시선을 외면했다. "나는 잘 모르겠어." 그녀의 눈은 초점 없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오 일은 기억하겠지." 야르담-4가 불쑥 말하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우린 포위당했지. 선적 컨테이너 안에 갇혀 있는데 사방에서 방패병들이 다가왔잖아. 그리고 너, 너 이 개자식. 넌 뒤쪽의 작은 구멍을 향해 뛰었어. 난 네가 우릴 버린 줄 알았다니까."
"그럴 일은 절대 없어." 무의미한 방해에 화가 난 리스본-13이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알아." 야르담-4는 말을 이었다. "상자에서는 총알이 달그락거리고 있었어. 폭발이 일어나고, 우린 할 수 있는 한 총을 쏴댔지. 그런데 갑자기 네 비명이 들리는 거야. 유령이 우는 소리 같았지. 넌 비명을 지르며 사이온이 아직 타고 있는 요격기에 올라탔어. 그리고 사이온의 머리로 그걸 조종했다고!"
"기억난다." 리스본-13은 이렇게 말하며 야르담-4 옆으로 지나가려 했지만 타이탄은 그의 걸음에 맞춰 함께 움직였다.
"그리고 넌 방패병 네 기를 측면으로 돌파했어." 야르담-4가 주먹으로 손바닥을 때리며 말했다. "그다음, 그다음엔… 너도 기억하지, 레카나?"
"잊을 수가 없지."
"그 요격기를 다른 방패병의 방패에 흩뿌려 버리고는 그 엄청난 폭발을 타고 날았잖아." 야르담-4는 온몸을 던져 그 이야기를 재연했다. 리스본-13을 조금이나마 웃음 짓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녀석들 뒤쪽 땅에 떨어졌을 때, 쾅! 내가 지금껏 본 광경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지."
리스본-13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야르담-4를 스쳐 지나가려던 생각은 포기하고 그 타이탄을 바라보며 본론을 얘기해 주길 기다렸다.
"그게 지금의 우리야. 우리는 네가 했던 일을 하는 거라고. 이 우주 전체가 커다란 컨테이너고 최후의 도시, 선봉대, 여행자가 전부 그 상자 안에 있는 거지. 우리는 방금 뒤쪽에 있던 구멍에서 기어 나왔어. 저기 그 요격기가 있고, 마침 그 안에는 지금 사이온도 안 타고 있다고."
리스본-13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비유가 조금 애매해지지. 요격기 하나가 아니라 네가 상대할 요격기와 내가 상대할 골리앗, 레카나가 상대할 스레셔까지 있잖아. 그 화력을 전부 우리가 차지하면 싸움이 어떻게 되겠어?"
리스본-13은 모두가 그 질문을 음미할 수 있게 내버려 두고는 레카나가 대답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기만 했다.
"아주 화끈해지겠지."
3.5. 유혹의 망토
"언제나 절 믿겠다고 했었죠. 절 믿으세요." —레카나, 켄타크 3의 워록리스본-13은 바위에 기대서서 재장전했다. "이런 걸 원한 게 아니었어!"
그는 예상하던 수류탄이 떨어지자 펄쩍 뛰어올랐다. 수풀을 뚫고 날아온 총탄에 바위 옆에서 돌 조각이 튀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경사로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수류탄의 폭발로 움직임을 감췄다.
좋은 위치를 점유한 후 흘긋 바라봤지만 언덕 아래에서 그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하루 전이었다면 그들은 미끼를 물었을 것이다. 야르담-4가 달려와 보호막을 세우고 레카나를 감쌌을 것이다. 그러면 그녀는 보호막을 뛰어넘고 바위 뒤에 내려앉아 유성처럼 에너지를 퍼부어 그를 끝장냈겠지.
그는 그들에게 참을성을 발휘하라고 가르쳤다.
"뭘 원했던 건데?" 야르담-4가 3시 방향에서 리스본-13의 오른쪽으로 이동하며 말했다. 물론 속임수일 수도 있었다. "네가 수락했잖아. 너한테 무슨 제안을 했는데?" 오른쪽 조금 더 먼 곳이었다. 속임수가 아니었다.
리스본-13은 야르담-4가 있을 곳에 수류탄을 던진 후 돌아섰다. 레카나가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그가 야르담-4에게 집중하는 동안 그녀가 다가왔던 것이다. 같은 입장이었다면 그라도 그렇게 했을 게 분명했다. 그는 미소를 지을 뻔했다.
그녀의 주먹이 빛을 발하며 낯선 힘으로 부르르 떨렸다. 그녀가 주먹을 펴기만 해도 그 에너지가 그를 꿰뚫으며 불도 없이 태울 것이다.
"내가 가장 원하던 제안을 했지. 하지만 결국엔 주지 못했어. 빼앗아 가는 것밖에 몰랐으니까."
리스본-13은 반짝이는 두 눈을 들어 레카나의 짙은 청록색 눈을 바라보며 신성을 들어 올렸다.
4. 워록
4.1. 공정의 가면
"당신은 더 큰 선을 위한 일이라고 말하죠. 당신이 작은 선이라고 생각하는 게 뭡니까?" —리스본-13, 켄타크 3의 헌터"그녀를 믿지 않는군." 레카나가 말했다. "다 티가 나네."
리스본-13은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 "그녀를 믿을 필요는 없어. 널 믿으니까." 그는 진실을 가볍게 등 뒤로 던졌지만, 레카나는 그 무게를 느꼈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늘 그래."
레카나는 얼른 반 걸음을 디뎠다. 훌쩍 앞으로 뛰어 버린 심장을 따라잡으려고.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무거웠다.
크립토크론은 비밀을 판단하고 균형을 잡는 법을 배운다.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것이 약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지만, 진실이 얼마나 끔찍할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은 크립토크론을 제외하면 얼마 되지 않는다. 크립토크론에 합류하는 워록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잊고 싶은 것을 기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털어놓을 수 없는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언제나 더 힘들다.
레카나는 그들이 만나기 전에 그것이 일어나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가 그녀를 보기도 전부터, 그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녀는 클로비스 브레이가 견제 목적으로 열세 번이나 죽여야 했던 남자에 대해서도 알았다. 그리고 전쟁지능이 아니라도 그가 그녀에게 어떻게 반응할지는 예측할 수 있었다.
레카나는 그런 지식이 방어구 역할을 해 주겠거니 생각했다. 이야기의 끝을 알면 등장인물에게 마음이 덜 쓰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그녀 또한 하나의 등장인물이었다. 이것은 그녀의 이야기였다.
"이봐, 굼벵이. 올 거야?"
"그래."
레카나는 걸음을 재촉하여, 붉은 꽃이 루비처럼 박힌 네모진 바위의 그림자에서 그를 따라잡았다. 그의 눈길이 다가가는 그녀에게 머물렀다가, 주위의 풍경으로 옮겨 갔다.
"거울 너머에 존재한다는 건 참 이상하지."
"응."
레카나는 그가 생각에 잠긴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형형한 눈빛을 저 앞에 고정하고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생각을 굴렸다. 그들의 임무, 상관들이 그들에게, 그녀에게 말했던 것. 그는 갑자기 야영지를 향해 돌아섰다.
"야르담이 재미 삼아 벌레들에게 사격을 시작하기 전에 돌아가야 해."
4.2. 환호의 장갑
"당신은 예술가의 손을 갖고 있군요. 다행히 그중 하나가 예술의 경지에 이른 병법이고요." —리스본-13, 켄타크 3야르담-4는 엄숙한 얼굴이었다. 가끔은 거슬릴 정도로 붙임성이 좋은 그가 진지하게 경멸을 느낄 때면 늘 짓는 표정이었다. 그가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뜨거운 눈빛을 보면, 그녀를 도발하는 말을 하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놈들을 얕봤군."
독기는 없었다. 그저 사실을 그대로 진술했을 뿐.
레카나가 리스본-13의 팔에 한쪽 손을 올리자마자, 그가 레카나를 보호하려고 펄쩍 뛰었다.
"맞아." 그녀가 말했다.
흩어지는 데는 의미가 없었고 오판을 했다 해서 수치스러울 것도 없다. 벡스는 예지몽 지도부에게 가장 무서운 적이었다. 여러 시간대와 현실을 가로질러 생각을 공유하는 존재이기에, 세력에서 아무리 지위가 높은 이의 예측도 빗나가는 일이 허다했다. 지도부의 일원과 대화를 나눈 동료 크립토크론은, 그것이 손안에서 녹는 눈송이의 결정을 빠짐없이 세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표현했다. 관찰이라는 행위 자체가 결과를 바꾸었고, 증거는 미처 들여다보기 전에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됐어."
"상황을 파악했다고? 대체 무슨 상황을 파악하길래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건데?" 야르담-4의 분노는 호기심에 눌려 사그라들었다.
레카나는 리스본-13을 힐끗 보았다. 늘 그렇듯이 믿음직하다.
"적의 방어력은 미친 수준이었어." 리스본-13의 명석한 두뇌가 그녀의 논리를 빠르게 따라갔다. "중계와 속박, 천사까지. 벡스는 정말 우릴 여기에서 쫓아내고 싶은 거야. 그리고 그건 놈들이 이곳을 약점이라 생각한다는 뜻이지."
야르담-4도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 약점이지. 아마 놈들의 가장 큰 약점일 수도 있겠어."
"그래. 그러니까 우린—" 레카나는 말을 멈추었다. 리스본-13이 고개를 휙 돌리며 그들이 찾은 무기를 들어 올렸다..
야르담-4도 무기를 들었다. "무슨 소리지?" 당황한 목소리였다. "어디서 들린 거야?"
셋은 등을 맞대고 귀를 기울였다.
"난 아무 소리도—" 레카나가 말하는 순간 소리가 들렸다.
4.3. 승천의 로브
"일단 하고 나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어떤 선택은 당신을 변화시키죠. 이게 바로 그런 선택입니다." —리스본-13, 켄타크 3의 헌터"저 소리 들려? 누구지?" 야르담-4는 금방이라도 공황 상태에 빠질 듯이 말했다. 레카나는 그의 이런 목소리는 처음 들었다. 아무리 격렬한 전투에서도, 심지어 켄타크-3의 마지막 전투일지도 모를 지난번 전투에서도, 야르담-4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들려." 레카나와 리스본-13가 한목소리로 말했다. 세 수호자는 거의 동시에 고스트를 소환했다.
"고스트?" 야르담-4가 먼저 말했다. "이게 뭐지?"
"주위에서 생명체를 스캔하 줘." 리스본-13이 지시했다.
"다중 위상 스캔!" 레카나가 자신의 고스트에게 외쳤다.
그들의 고스트가 모두 한꺼번에 재잘대기 시작했고, 수호자들은 서로에게서 떨어지면서 굴 구석구석으로 흩어져 삼각형 모양의 방어 대형을 넓혔다.
"뭔가 이상해요." 레카나의 고스트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모든 주파수에서 잡음이 잡혀요. 마치 신호 하나하나에 그림자가 드리운 것처럼요. 구체적인 것은 아닌데도, 어디에나 존재해요. 잠깐만요. 아니다, 문제가 있네요. 전—"
레카나의 고스트가 돌덩이처럼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는 손을 뻗어 공중에서 고스트를 붙잡았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리스본-13이 자기 고스트를 들고 있었고, 야르담-4는 바닥에 떨어진 고스트를 들어 올리는 참이었다. 주위의 빛이 희미해지고, 굴의 어둠이 성큼 다가들었다.
"야르담, 리스본, 둘 다 괜찮아?"
"난 괜찮아." 리스본-13의 대답이 들렸다. 차분한 목소리였다.
"응, 괜찮아." 야르담-4의 대답은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마치 반대편을 향해 멀어져 가는 듯했다.
레카나는 비상 전등에 손을 뻗었다.
"기다려." 속삭이는 소리였다. 하지만 친구들의 소리는 아니었다. 그 소리는 그녀의 앞, 굴 깊숙한 곳에서 들려왔다. "기다려. 부탁이야. 잠깐 얘기만 하면 안 될까?"
4.4. 우위의 장화
"당신은 우리가 함께 비틀비틀 춤을 추며 시간을 통과할 거라고 하셨죠. 이젠 멈출 수 없습니다." —리스본-13, 켄타크 3의 헌터"우린 이러려고 여기 온 게 아니야." 리스본-13은 왠지 아직 확신이 없었다.
"당연히 아니지. 누가 이런 걸 예상이나 했겠어?" 레카나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있는데, 우리 임무가 무슨 상관이야? 이게 훨씬 더 중요하잖아."
레카나는 그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이것은 꿈에 나오지 않은 불가능성이었다. 쓰이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녀는 마치 굴레에서 풀려난 듯, 어느 때보다도 자유로운 기분이었다."멋지기도 하고.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잊지 마." 야르담-4가 그녀의 생각을 읽은 듯이 말했다.
"하지만 이것, 우리에게 주어진 이 힘은 잘못된 쪽에서 나온 거야." 리스본-13의 눈빛은 간청하는 듯했다.
"글쎄, 난 모르겠어." 그랬다. 지금 그녀는 그 무엇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이오 일은 기억하겠지." 야르담-4는 열의를 감추지 못했다. "우린 포위당했지. 선적 컨테이너 안에 갇혀 있는데 사방에서 방패병들이 다가왔잖아. 그리고 너, 너 이 개자식. 넌 뒤쪽의 작은 구멍을 향해 뛰었어. 난 네가 우릴 버린 줄 알았다니까."
"그럴 일은 절대 없어." 리스본-13이 맹렬한 기세로 말했다. 그의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지만, 야르담-4는 눈치채지 못했다.
"나도 알아. 상자에서는 총알이 달그락거리고 있었어. 폭발이 일어나고, 우린 할 수 있는 한 총을 쏴댔지. 그런데 갑자기 네 비명이 들리는 거야. 유령이 우는 소리 같았지. 넌 비명을 지르며 사이온이 아직 타고 있는 요격기에 올라탔어. 그리고 사이온의 머리로 그걸 조종했다고!"
"기억난다."
"그리고 넌 방패병 네 기를 측면으로 돌파했어. 그다음, 그다음엔… 너도 기억하지, 레카나?"
"잊을 수가 없지."
"그 요격기를 다른 방패병의 방패에 흩뿌려 버리고는 그 엄청난 폭발을 타고 날았잖아. 그리고 그 녀석들 뒤쪽 땅에 떨어졌을 때, 쾅! 내가 지금껏 본 광경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지."
리스본-13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입이 닫힌 것처럼.
"그게 지금의 우리야. 우리는 네가 했던 일을 하는 거라고. 이 우주 전체가 커다란 컨테이너고 최후의 도시, 선봉대, 여행자가 전부 그 상자 안에 있는 거지. 우리는 방금 뒤쪽에 있던 구멍에서 기어 나왔어. 저기 그 요격기가 있고, 마침 그 안에는 지금 사이온도 안 타고 있다고. 하지만 이 지점에서 비유가 조금 애매해지지. 요격기 하나가 아니라 네가 상대할 요격기와 내가 상대할 골리앗, 레카나가 상대할 스레셔까지 있잖아. 그 화력을 전부 우리가 차지하면 싸움이 어떻게 되겠어?"
"아주 화끈해지겠지." 리스본-13은 뱉듯이 말했다.
4.5. 유혹의 완장
"뭘 원하는 거죠? 지금 진짜로 필요한 게 뭡니까?" —리스본-13, 켄타크 3의 헌터"언제나 날 믿겠다고 했는데." 레카나가 중얼거렸다. 아직 귀가 울렸고, 바닥이 치고 올라와 발을 후려치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야르담-4의 부축을 받은 채로 숨을 곳을 찾아 뛰었다.
"그래, 그리고 우릴 절대 떠나지 않겠다고도 했지. 말은 얼마든지 해도 되는 건가 보지."
돌이 지붕처럼 덮인 곳 아래에서, 야르담-4는 그녀의 등을 돌벽에 기댔다. 주위는 온통 붉은 꽃이었다. 그 소박하고도 달콤한 향기가 코르다이트와 오존, 땀과 피가 어우러져 자아내는 냄새에 섞여 들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눈을 뜨자, 야르담-4가 코앞에서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그녀에게 힘이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하고 있었다.
"아직 나랑 있는 거야?"
"그는."
"뭐?"
"아직 가지 않았어."
야르담-4는 물러나서 주위를 스캔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렇겠지."
"그가 고블린들이 우리에게 달려들도록 자극한 거야."
"그래. 우릴 쫓아내려고 한 거야."
"그리고 성공했지." 레카나는 꽃과 야르담-4에게서 몸을 떼었다. 그리고 탄약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가 지금은 우릴 보고 있지 않아. 그게 아니라면 우릴 쏘겠지."
레카나는 그 논리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관문으로 가고 있다는 걸 알아. 그럼 그가 어떻게 할까, 레카나? 우리를 앞질러 가서 길을 막아설까, 아니면 우리를 몰래 뒤에서 덮칠까?"
레카나는 두 남자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가 아는 리스본-13과, 그가 예의 번뜩이는 눈 뒤에 아직 품고 있는 남자를.
"레카나? 지금 그 두뇌를 써 주면 참 좋겠는데."
"이건 아냐."
"뭐?"
"이렇게 이야기가 끝날 수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