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18:32:52

데스티니 가디언즈/지식/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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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들바람2. 겨울 연꽃 의체3. 별빛의 역사4. 청색 빛5. 기쁜 소식6. 아득히 먼 고향7. 겨울의 냉기8. 여명의 기쁨9. 명절 기분10. 암네스티아-S211. 불면의 비행12. 별나그네 7M13. 여명의 종 의체14. 신성한 길

1. 산들바람

겨울의 추위 속에서도 따뜻한 서풍이 다시 불어올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세요.
눈표범이 먹이 앞을 서성인다.
표범은 발소리를 내지 않는다.
눈표범은 불길한 예감을 느낀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다.
그가 발톱과 송곳니를 내밀고 돌아보지만
그녀는 더 빠르다.
그가 칼을 내리친다.
그녀는 속지 않는다.
그의 이빨은 날카롭다.
그녀의 칼날은 더욱 날카롭다.
그가 칼날을 들이대지만
그녀는 그 자리에 없다.
피 끓는 그와
냉혈한 같은 그녀.
그의 피가 바닥을 적신다.
그녀는 그를 죽이기 위해 다가간다.
그의 공격이 정확하게 들어가자 그는 미소짓는다.
그녀는 쉬익 소리를 낸다.
그가 울부짖는다.
온기와 나른함에 그녀의 움직임이 둔해진다.
추위와 불안함에 그의 움직임이 격해진다.
그녀가 뜨겁고 매서운 강풍을 불러온다.
그는 조용히 다음 겨울을 기다린다.

2. 겨울 연꽃 의체

여명의 여러 가지 전통을 되새기는 고스트에게 적합합니다.
선물을 주고받고 촛불을 밝히는 풍습, 소원을 적고 눈송이와 별 무늬가 있는 종이 랜턴을 날리는 풍습, 노래와 기도로 명절을 기리면서 피난길에 전해지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풍습. 갖가지 음식과 음료를 한 상 가득 차려 놓는 풍습 등,

최후의 도시의 여명은 저마다 각기 다른 풍습으로 수놓여 있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 한 가지만은 동일합니다. 인류라는 사실 말이죠. 우리는 지구라는 요람에서 태어난 인류의 마지막 후예들입니다. 밤은 길지만 우리는 함께 살아남을 것입니다. 빛이 꺼지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3. 별빛의 역사

강철 사원을 지키게 되기 전까지 타이라 칸은 수많은 별들을 집처럼 넘나들던 사람이었습니다.
(…)

자네도. 어느 때보다도 벅찬 여명이군. 어떻게 부르든 새로운 시대가 동트고 있지.

부디 새로운 붕괴의 서막은 아니기를.

(…)

우리는 빛을 되찾는 데만 온 정신을 쏟는 바람에 빛의 모호함은 잊고 말았지. 빛을 기려야 하지만 무조건적인 신봉은 안 되겠지.

(…)

에피, 그리고 선물 고맙게 받겠네. 하지만 가장 큰 선물은 내 얘기를 귀담아 들어 주는 거야. 그리고 우주선에 장식은 안 달아도 돼. 우주를 누비던 것도 다 지난 일이지.

(…)

나 대신 지금 하늘을 누비는 이에게 주게. 우리 중에서 누구보다도… 그들이 이 모든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하네.

(…)

왜 내가 이곳에 남기로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어쨌든… 여명 복 많이 받게, 오랜 친구. 내년에 보세.

4. 청색 빛

몇 년 동안, 여명은 모두가 예상한 것보다 빨리 다가왔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흐리고 추운 날이다. 에메르자는 아침부터 두 번이나 울어 댔고, 아직 가게 문은 열지도 못했다. 그녀의 시선이 3일 된 과일을 지나치다 멈춘다. 저건…

슈웅! 하얀 얼룩이 지나간다. 그 바람에 창문이 덜그럭거리고 사과 한 알이 탕 소리를 내며 굴러떨어졌다. 과일을 모두 들여 놓은 후에도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미스트-1은 벌써 몇 달이나 에어 쇼를 기다렸으니까. 일기 예보에서는 오늘 드디어 날씨가 개일 것이라고 했지만 아침이 되었어도 계획대로 행사가 시작할 기미가 없었다. 사람들은 한숨을 쉰다. 질병 때문에 지난 해에도 열리지 않았는데 올해에도 취소되다니… 사람들은 실망한 눈치다.

슈웅! 순식간에 구겨진 그림처럼 알아보기 힘든 청동색과 사파이어색의 빛줄기가 지나쳐 간다. 사람들이 눈을 빛내고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아만다는 스코리 운하 왼쪽을 날면서 이마를 훔치고 활짝 웃는다. 머지 않아 비행 안전 고도보다 1,000피트나 낮은 곳을 날았다는 것을 들키겠지만 탑에서 질책을 받게 되더라도 귓가에는 환호성이 맴돌고 있을 테니까.

5. 기쁜 소식

"이곳이 '최후의 안전한 도시'일 수는 있지만, 그래도 우린 서로를 보살펴 줘야 해." —수라야 호손
"자요." 호손이 발판사다리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다 끝났어요."

"고맙다, 수라야." 하산 부인은 가게에서 고개를 비죽 내밀고는 위에 걸린 파란색 등불들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난 이제 더는 그 사다리에 올라갈 수가 없어서 말이야." 그녀가 손짓을 했다. "들어와서 따끈한 차라도 한 잔 하지 그러니? 파라도 집에 있어." 그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85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짓궂은 모습이었다. "그 아이도 아직 혼자라고 얘기했던가?"

호손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여러 번 말씀하셨죠, 부인. 하지만 괜찮아요. 가봐야 하거든요."

그녀는 하산 부인을 위해 발판사다리를 접어 두고, 설탕 가루를 뿌린 부드러운 쿠키 통을 마지못해 받아들었다. 그리고 최후의 도시의 눈 덮인 길을 걸었다. 날은 어느새 어둑해지기 시작했고, 아직 들를 곳이 몇 군데 더 있었다. 여명 기간에는 가정 방문을 해야 할 일이 아주 많았다.

머리 위로 수호자의 우주선이 빠르게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걸음을 늦췄다. 엑소가 보도로 전송되어 나타났다. 그리고 네 걸음째 걷다가 우뚝 멈춰서서 거리를 갈짓자로 비추고 있는 등불을 바라봤다.

신임 수호자가 분명했다. 호손도 이제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들은 아무런 예고 없이 모든 걸 조사하려고 들었다. 주변 상황도 의식하려 하지 않았다.

"저게 다 어디서 나온 거죠?" 수호자가 호손을 바라보지도 않고 겸손하게 물었다.

"등불? 우리가 걸었는데." 호손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여명을 맞이해서 말이야."

수호자는 마법사라도 보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여명이라고요?"

호손은 새로운 수호자를 보면 마음이 약해졌다. 그녀도 EDZ의 황야에서 홀로 견뎌야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키만 훌쩍 커버린 어린아이처럼 이렇게 치열한 세상에 내던져지고는, 사정을 설명해 줄 상대라고는 하늘을 나는 작은 로봇밖에 없는 이 친구들보다 더 외로운 경험이 많을 것 같진 않았다.

"이리 와." 그녀가 말했다. "같이 걸으면서 얘기하자고. 배가 고플 테지. 내 친구 중에 이맘때면 아주 끝내주는 타말을 만드는 사람이 있어."

6. 아득히 먼 고향

어떤 상황에서도 여명은 축하해야 합니다.
델-3는 메탄 바다의 부글거리는 파도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도시로 그냥 돌아가고 싶은 게 아니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싶었다. 붉은 전쟁 이전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을 잃기 전으로. 그들 없이는 여명도 전과 같지 않았다. 아리는 타이탄으로 돌아가던 날, 가까운 시일 내에 "다리를 되찾을"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춥고, 불안정하고, 외로운 장소를 매년 기다려야 하는 거라면, 도저히 그래야 할 필요를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눈물을 참느라 지휘관이 다가오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델."

그녀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부사령관님," 그녀가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잠시—"

"쉬어." 슬론이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으로 들어와라. 저녁 준비가 됐다."

7. 겨울의 냉기

여명은 매년 꼬박꼬박 찾아오죠. 한 2, 3년에 한 번씩만 지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저게 여행자들인 거야. 눈으로 된 여행자들."

재즐라가 다시 눈사람을 내려다보았다. 아래쪽 눈덩이에 얼음 조각이 나뭇가지를 중심으로 궤도를 따라 걸려 있었다. 그녀의 파트너 뒤로 보이는 하늘에 있던 것과 똑같았다.

"우연이야." 사실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누군가 흉상을 뭔가… 석탄 같은 것으로 칠해 놓았다. 검은 밑둥은 몇 달 전 하늘에 있던 것과 닮았다.

"너도 우연이 아닌 거 알잖아. 지난 주에 그린 것에 이어 이번엔 이거야. 죽은 여행자 하나. 살아 있는 여행자 하나. 추적할 여행자 하나."

"다른 건?" 재즐라는 몇 발짝 떨어진 곳에 있는 아름다운 구체를 가리켰다. 속이 텅 비어 있었다. 이곳에 무성한 식물은 그들의 후손이 심었음이 분명했다. 솜씨 있게. 의도적으로.

"저거 말야… 저거 때문에 락슈미와 얘기해 봐야겠다고 한 거야."

재즐라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저들을 상대한지 꽤 오래되었지만… 이제는 때가 된 걸지도 몰랐다. 여명이라고 하던가? 새로운 시작의 시간.

얼어붙은 땅으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저녁?

델은 천장에 매달아 늘어뜨린 종이 눈송이 장식을 피하느라 허리를 숙이며 슬론을 따라 식당으로 들어갔다. 커다랗고 엉성한 금속 탁자에 파란색과 은색 식탁보가 덮여 있었다. 전투 식량이 간이 만찬처럼 탁자 위에 차려져 있었다. 아리가 촛불을 켜고 있었다.

"뭘 하는 거죠?" 델이 물었다.

슬론은 조금은 당황한 듯했지만 자랑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여긴 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축제를 즐기지 못할 이유는 없잖아. 이리 와. 신 나게 먹자고."

8. 여명의 기쁨

어떤 전통은 정말 놀랍도록 훌륭하지요.
"그게 뭐예요?"

카심은 싱긋 웃으며 옆으로 비켜서서 아이들에게 자기 참새를 보여줬다. "크링글 씨의 썰매지."

"그게 누군데요?" 루나가 외쳤다. 열한 살인 그 여자 아이는 아이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다.

"크링글 씨는…" 붕괴 이전의 전통에 관한 책을 즐겨 읽던 카심은 이렇게 대답했다. "여명이 올 때마다 도시의 착한 아이들을 찾아온단다. 너희가 모두 잠든 밤에 찾아와서 집 안에 선물을 놓아두지."

"하지만 도둑들 때문에 문을 잠그잖아요." 토마스가 말했다.

"그분은 굴뚝으로 슬금슬금 들어오거든." 카심이 말했다. 아니, '살금살금'이던가?

"굴뚝은 좁은데 어떻게 들어와요?" 막내인 마츠코가 물었다.

"어…" 카심은 머뭇거렸다. "그분은 마법을…"

"그러면 수호자군요." 루나가 말했다.

"아니, 수호자는 아니야."

아이들은 의아한 표정을 교환하고는 긴장한 듯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벽난로에 불을 피워도 들어올 수 있나요?" 토마스가 긴장한 듯 물었다.

"그분은 불에 데지 않는단다." 서서히 카심의 열정이 식어갔다. "다들 내 얘기 좀 들어 보렴. 그분은—"

"그분은 불에 면역이신 거야." 루나가 짐짓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츠코는 울음을 터뜨렸다. 토마스는 참새를 걷어찼다. "얘!" 카심이 말했다. "내 얘기 좀 들어! 그건 진짜가 아니야, 알았어? 현실에 존재하는 건 아니라고. 그냥 만들어 낸 이야기야." 그는 참새를 옮겼다. "그냥… 내가 한 얘기 다 잊어버리렴."

루나는 카심이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걱정 마." 그녀는 마츠코에게 말했다. "샤크스 경이 크링글을 막아 줄 거야."

9. 명절 기분

눈에는 반짝임을, 폐에는 오존을, 가슴에는 노래를 담으세요.
"겨울의 손길은 이제 지나가리니, 구름이 걷히고 빛이 돌아오리라
여명 앞에 어둠은 스러지고 찬란한 빛이 영원히 불타리라
여명은 한 해에 한 번만 찾아오리니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라
보석 같이 빛나는 눈으로 뒤덮인 대지를 보며 마음의 어둠을 덜어내어라
포근한 난롯가에 둘러앉으면 그 어떤 추위도 우리를 갈라놓지 못하리이다
여명은 한 해에 한 번만 찾아오리니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라
사랑하는 가족을 품에 안고 그 온기를 느끼라
우울한 생각은 접어두고 지나간 일도 잊어라
여명은 한 해에 한 번만 찾아오리니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라"

"…"

"뭐라고?"

"좀 이상하지?"

"스코리 같은 실력은 없어서 말이야."

"발사 기지에서 사람들이 돌아오기 전에… 다시 한 번 해 봐야 해."

"그래, 맞아."

10. 암네스티아-S2

"여명은 모두를 반갑게 맞이하지." —에바 레반테
지난 삼 주 동안 그 수호자는 늘 참새들이 우글거리는 주요 도로에서 멀리 벗어난 곳에 놓인, 잔뜩 녹이 슨 선적 컨테이너 안에서 생활했다. 그는 다른 수호자들이 오가는 길에서 벗어나 있었고, 그러지 못할 때는 헬멧을 썼다. 늘 그랬다.

그가 소유한 것이라고는 낡아빠진 장비와 반지, 비단 덮개 하나뿐이었다. 깨어났을 때 그가 지니고 있던 건 그게 전부였다. 반지는 사슬에 꿰어 목에 걸고, 비단 덮개는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상기하고자 곁에 두었다. 가끔은 어깨에 걸쳐 늘어뜨리기도 했다. 섬세한 천으로 만든 그 덮개를 보며 그는 지금의 삶이 시작되기 전에 살아가던 장소를 상상했고, 지금 이곳에 비해 거기는 얼마나 멋진 곳이었을까 생각했다.

그는 홀로 시간을 보냈다. 다른 수호자는 예측 불가능한 고통과 혼돈의 근원일 뿐이었고, 그 또한 그를에게 그런 존재였다. 노골적인 적대감을 표시하는 이들도 있었다. 또 그를 볼 때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개인적인 슬픔에 짓눌리는 자들도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혼자 있는 편이 낫다는 것, 그것이 부활의 가장 고통스러운 교훈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제 늘 혼자였다. 그의 고스트만 제외하고.

어느 날 밤, 그는 무릎에 머리를 묻고 먼 곳에서 들려 오는 날카로운 총성에 귀를 기울였다. 일주일 째 다른 사람은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그 소리는 계속 들렸다. 그것 때문에 왠지 고독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더 짙어지는 것만 같았다.

"혹시 그거 아세요?" 그의 총명하고 상냥한 고스트가 말했다. 보라색 의체가 상자 밖의 희미한 빛을 받아 반짝였다. "최후의 도시에서는 지금 축제가 열리고 있어요. '여명'이라고 하더라고요. 우정과 희망, 온기의 축제라고 해요."

수호자는 두 눈을 감고 씁쓸한 감정을 억지로 삼켰다. 둘 사이에 하지 않은 말들로 이루어진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고, 고스트는 그의 어깨에 부드럽게 몸을 부딪쳤다. "서로 기분이 좋아지라며 이렇게 인사를 한다고 하네요. 행복한 여명이 되길."

그래도 수호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침묵 때문에 속이 뒤틀려 왔다. 그의 고스트는 단 한 번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사실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끝없는 낙관의 샘 같았다. 그건 짜증스러운 동시에 가슴 아프고, 위로와 안심이 되는 기분이기도 했다. 수호자도 고스트를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이 삶에서는 실망스러운 일이 이미 너무 많았으니까.

"행복한 여명이 되길." 그는 말했다.

11. 불면의 비행

"우리는 사람들이 푹 자길 바라지. 그러려면 우린 전혀 잘 수 없어. 이건 내가 오래전에 떠맡은 임무야." —아브디
에바는 언제나 어려움에 처한 수호자를 기꺼이 자신의 집으로 맞아들였지만, 이 시기에는 그럴 일이 훨씬 많았다.

명절 분위기를 손에 잘 맞는 장갑처럼 편안히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게임을 하고 선물을 주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사람은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무거운 짐을 짊어졌어도 잠시나마 긴장을 풀고 축제를 즐길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속도를 늦추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장식을 보면 이렇게 묻곤 했다. "축하하기엔 너무 이른 거 아닙니까?" 탑이 평소보다 조금 더 따뜻하기 때문에, 그들은 아직 할 일이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행성계의 냉혹함을 모두 경험했기 때문에 따뜻하고 유쾌한 전통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모두가 어떤 위험에 처해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사람들이 축제를 즐길 수 있기를 바라면서도 자기들도 그 일부가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할 일이 너무나도 많은 때, 그건 무책임한 행위였다.

그녀는 이런 사람들을 찾았다. 그들은 축제의 가장자리에서 어슬렁거리면서 다들 시무룩하거나 망연자실하거나 비탄에 잠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슬픔에 잠긴 이들도 있었다. 분노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에바를 맹렬히 비난하다가도 그 뒤에는 늘 사과하곤 했다. 축제에 참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죄책감을 느끼고, 실제로 함께하지는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보통 뭔가 일을 해야만 축제의 일부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에바는 그들에게 일거리를 마련해 주었다. 또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눈 후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암묵적으로 명절의 경계 밖에 서 있을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그들이 잠시나마 멈춰 서서 숨을 돌릴 수 있는 때가 찾아온다면 여명과 사자들의 축제, 그리고 지점과 향연까지 모든 것이 그들을 반갑게 맞아 줄 것이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날이 곧 오기만을 바랐다.

12. 별나그네 7M

우리 사이에 거리는 없는 거나 다름없어요.

// 접속자 없음 //

아르테미스-5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어두운 모니터에 글자가 깜박이는 것을 보고 있었다. 창문에 비친 그녀의 아파트에는 가구들이 숄에 덮여있고, 지저분한 술잔들이 창문턱에 어질러져 있었으며, 서리 낀 창문에는 여행자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갑자기 모니터가 번쩍하더니 그녀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 접속자 한 명 //

수염이 덥수룩한 건장한 남자가 화면에 나타났다. 그는 과격하게 손짓을 하면서 입을 크게 벌렸다. 마치 오페라 공연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잰더? 안 들려." 아르테미스가 말했다.

남자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그리곤 화면 밖으로 몸을 빼 장치 하나를 만지작거리더니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것 참 안타깝군. 내 천상의 비브라토를 놓치다니."

"여행자가 준 최고의 선물이지." 아르테미스가 킥킥 웃으며 말했다. "왜 이렇게 화면이 어둡지?"

"오, 여긴 태양 빛이 꽤 어두워. 곧 익숙해질 거야. 잘 지냈어?"

"난 잘 지내! 탑은 이제 거의 장식이 끝났어—"

// 접속자 두 명 //

화면이 둘로 나뉘더니 조종석에 앉아있는 각성자 여자 한 명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녀의 뒤로 보이는 둥근 창에는 새하얗고 동그란 유로파가 둥둥 떠 있었다.

"늦었어, 알아." 카메라 프레임 아래에서 뭔가를 더듬으며 각성자가 말했다.

"니사, 이래서 내가 너한테만 접속 시간을 30분 일찍 설정해 놓은 거야!" 잰더가 노려보며 말했다.

"이래서 내가 네 에어록을 고장 낸 거야, 잰더." 니사가 농담을 했다. 그녀는 뒤로 기대어 앉아 보라색 리본으로 장식된 작은 선물 상자를 들어 올렸다. "그럼 준비됐어?"

"뭐 바쁜 일 있어?" 잰더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누구랑은 다르게, 이 몸은 바쁘신 몸이거든."

잰더가 비웃으며 말했다. "이 임무는 자발라가 직접 내린 지시라는 걸 알아둬."

"너한테 거기서 뭘 하라고 시킨 거야?" 아르테미스가 물었다.

잰더는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행성이 없어지는 건지 알아보라고 했어."

니사는 코웃음을 쳤다. "아주 간단하군, 우리 고대의 적들이 하는 행동을 이해하기만 하면 되잖아. 그럼 몇 년 뒤에나 보겠네?"

"그렇게 말하지 마!" 아르테미스가 끼어들었다. "서로 못 본 지 이미 오래됐다고."

"하긴 그래," 니사가 투덜거리며 창밖을 가리켰다. "나도 이 눈덩이는 이제 지긋지긋 하다고."

아르테미스는 주춤하며 말했다. "언제 집에 올 수 있어?"

"이 피라미드가 꺼져버리거나 아이코라가 충분한 데이터를 모았다고 생각할 때쯤, 그러니까 절대 못 돌아간다는 말이지."

"내년에는 우리 모두 집에 올 수 있을 거야. 그땐 직접 만나서 수다 떨고 있을 거라고." 아르테미스가 말했다.

잰더는 목덜미를 문지르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렇게 생각해?"라고 그가 중얼거렸다. "우리가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이 전과 같은 일상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르테미스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옆으로 젖혔다. "이러려고 오늘 모인 게 아니잖아."

"우주에서 오도 가도 못 하고 있으니깐 축제 기분이 안 나네." 니사가 불평을 늘어놓았다.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기도 하고 말이지." 잰더가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커피도 다 떨어졌어…"

아르테미스는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테이블에 팔꿈치를 대고 몸을 기댄 채 친구들이 불평하는 걸 듣고 있었다. 돌풍이 그녀의 창문을 세게 쳤다. 문 너머로 아이의 울려 퍼지는 울음을 조용히 달래고 안심시키기 위해 모든 게 괜찮을 거라고 주문 외우듯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오늘 난 나에게 빛이 있음에 감사해." 아르테미스가 친구들의 대화에 끼어들며 말했다.

니사는 억지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끝없는 전쟁'에 당첨돼서 아주 기쁘군."

"빛이 없는 사람들은 더 쉬울 거라고 생각해? 적어도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잖아.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하지만 넌 거기 앉아 빈정거리는 삶에 만족하려나." 아르테미스가 날카롭게 말했다.

잰더가 카메라 앞에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그쯤 해둬, 알티. 우리 모두 느끼고 있는 걸 그저 말로 꺼낸 것뿐이라고."

아르테미스는 손가락으로 창문을 가리켰다. "저기 있는 도시의 사람들은 전부 우리와 같은 소식을 듣고 같은 화면을 보고 있어.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말이야. 우리랑 같아. 하지만 두려움에 떨고 있지. 우리가 당당하지 못하면 그들은 어떤 기분이 들겠어?"

화면이 잠시 침묵한 사이, 우주선의 잔잔한 소리만이 울렸다.

"나도 두려워." 잰더가 인정했다. 니사도 끄덕였다.

아르테미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이 일에 자원한 사람은 없어, 하지만 우리는 빛을 선물 받은 사람들이야."

니사는 한숨을 쉬었다. "그 선물이 지금 꽤 묵직하게 느껴진다고."

아르테미스는 바람이 최후의 도시를 지나 자신의 집 벽에 있는 틈새로 쌕쌕거리며 비집고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다. "그걸 짊어질 수 있는 건 우리뿐이야."

"선택권이 있었다면 정말 이 일에 지원했을 것 같아?" 니사가 물었다.

잰더가 손사래를 쳤다. "너무 철학적인데—"

"응," 아르테미스가 확신에 찬 말투로 대답했다. "천 번도 넘게."

니사는 그녀의 선물 상자를 만지작거렸다. 잰더는 빙긋이 웃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천 번이라고?" 니사가 빙그레 웃었다.

"천 번도 넘게!" 잰더가 노래하듯 말하며 화면 밖으로 손을 뻗어 선물 상자를 집었다. 그리곤 자랑하듯 들었다.

아르테미스도 웃으며 그녀의 선물을 집었다. "동시에, 알았지?"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서로 수백만 킬로 떨어져 있다는 사실은 잠시 잊은 채 그들은 선물 상자 리본에 집중했다.

"하나, 둘, 셋…"

13. 여명의 종 의체

새로운 시대를 축하하는 고스트들에게 적합합니다.

핀치는 쿠키를 전송해 그가 쌓은 작은 돌더미 위에 균형을 유지하도록 올려놓았다. 그런 뒤 내려와서는 3mm 왼쪽으로 가도록 콕 찔렀다.

"보여요, 켄? 바로 이게 당신이 놓치고 있던 그런 거라고요."

근처에서는 핀치의 군체 수호자 시신이 무심하게 사지를 뻗고 누워 있었다. 핀치는 돌아서 그를 보았다.

"한번 생각해 보라고요, 수호자한테서 쿠키를 받았을 수도 있잖아요. 근데 당신이랑 함께하면 온통 일방적이고 극단적인 폭력이 된단 말이죠. 아, 근데 어쨌든 행복한 여명이에요… 굳이 저한테도 인사할 필요는 없어요."

핀치는 진짜로 쿠키를 먹을 수는 없었지만, 대신 한 조각을 들어 부스러기 분자를 공중에 흩뿌렸다. 그러니까 사실 먹는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그게 당신 문제예요. 다가가는 걸 두려워하잖아요. 연결되는 것 말이죠. 그러려면 진짜 연약함을 내보일 줄 알아야 하는데, 제가 생각하기엔 지금 당신한테 그게 없거든요."

켄은 망부석처럼 침묵을 지켰다. 핀치는 못마땅하다는 듯 의체를 흔들었다.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요. 왜냐면 이거, 이 상징적 의미를 띤 물질적 상품을 교환하는 거 말이죠? 아마 우정이라고 부를 수 있겠죠? 이건…"

핀치는 놓인 쿠키를 내려다보았다. 고스트는 잠시 동안 켄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았다.

"기분이 꽤나 괜찮거든요."

14. 신성한 길

더욱 위대한 수수께끼를 기념하며.

리프의 마라 소프 여왕은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축하의 물결로 희미하게 밝혀진 벽을 걸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는, 바람이 망토 자락을 휘날리며 그녀가 더 멀리 가도록 밀어대곤 했다.

아래쪽 거리는 축하 인파로 북적였다. 그들 사이의 각성자들 —지구 출신, 리프 출신, 빛의 운반자—모두가 마라의 마음에서 신비롭게 빛났다.

오늘의 축하는 도시를 위한 것이었다. 마라는 그들 사이에 끼어 축하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홀로 걸으며 자신이 처음 맞은 승천의 밤을 생각했다.

이제는 관습으로 자리 잡은 민간의 명절은, 백성들로부터 마라에게까지 거슬러 올라왔다. 각성자들의 지류 탈출을 기념하며 어둠 속을 걷는, 지금과 같은 행사가 되기까지는 몇십 년이 걸렸다.

첫 승천의 날 밤, 슈어는 바람처럼 달려와 문을 쾅 열었다. 언제나처럼 단단한 장화와 장궁을 걸치고, 밖에서 여왕을 괴롭힐 준비를 모두 갖춘 상태였다. 그녀는 웃으며 마라의 손을 잡고 이끌었고, 마라도 웃으며 그녀를 따랐다.

야외 활동에 익숙한 장신의 여자답게, 슈어의 걸음은 빨랐다. 반면 마라의 걸음은 인식 활동에 우선적으로 집중하는, 느린 지도자의 속도였다. 슈어는 종종 둘이 다르다는 걸 잊곤 했다.

"천천히 가자." 감시탑 입구가 가까워지자, 마라가 말했다.

"안아드릴 수도 있습니다."

"싫다." 마라는 서둘러 대꾸하고 후회했다. 슈어 아이도 같은 여자를 막으려면 더 단호하게 말했어야 했다.

마라는 슈어가 그녀를 들어올리기 전에 재빨리 문으로 향했다. 슈어는 장난스럽게 외치며 그녀를 쫓았다. "여왕이시여, 제 심장이 당신을 섬기라고 하는데요!"

우주의 끝없는 밤에 펼쳐진 소행성들을 지나 걸으면서, 리프로 향했던 첫 여정의 기억을 추억하는 밤이 계속되었다. 그들을 쫓아오는 미사일을 피해 웜홀로 도망쳤던 여정이었다. 머리를 어지럽히는 아드레날린과 냉철한 계산을 통해, 새로운 보금자리에 도착해야 했다.

살을 에는 공기 속에서도 슈어에게선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키가 크고, 호탕하게 웃으며, 살아 있었던 그녀. 자신과 맞잡은 슈어의 손을, 이후 마라는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마라를 끌어당겨 오르는 걸 도와주던 손. 또 예의 바른 기사처럼 도랑을 건널 수 있도록 그녀를 지지해 주던 손.

오랫동안, 승천의 밤에 마라의 곁을 지켰던 것은 슈어였다. 울드렌이었던 때도 있었다. 그는 마라에게 새로운 광경, 길을 따라 보이는 고대의 보물을 보여주려고 애를 썼었다. 두 번은 리븐이었다. 그들은 꿈의 도시를 오래 걸으며 그들의 걸작을 살펴보았다.

리프와 꿈의 도시에서 마라의 백성들은 함께 축하하며 역사를 기억했다. 당시를 재현하고, 새롭게 만들고, 삶으로 되가져왔다.

이제 마라는 자기들만의 전통이 생긴 도시에서 명절을 즐기고 있는 각성자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혼자 걸었다. 도시와 그 바깥의 어둠 사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