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07-01 18:4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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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반갑다3. 정원사와 키질꾼4. 꽃 게임5. 최종적인 형체6. 최초의 칼7. p538. T == 09. 캄브리아기의 폭발10. 패턴의 타락11. 내기12. 신뢰와 희망

1. 개요

주마다 에리스몬에게 돌아가서 대화를 해야 한다.

2. 반갑다

너희 철학자 하나가 말한 적이 있다. "어둠의 삶이 고통에 가라앉고 슬픔에서 허우적대는 삶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슬픔이란 없다. 슬픔은 죽음에 삼켜지는 것이며, 죽는 것과 죽어가는 것이야말로 어둠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는 구두장이였다. 맞는 말이었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눈에 보이는 세상이란 영원한 빛과 영원한 어둠의 표현이며, 영원은 바로 그런 영원한 대조로부터 드러난다는 말이다. 만물이 태초의 불완전한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 더욱 진실한 형체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몰락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단이라고? 그렇다면 날 이단의 교주라 불러라. 그 철학자는 장 질환으로 죽었다. 존재하지 않는 자는 고통을 받을 수도 없으며, 윤리의 구속을 받지도 않는다. 선을 이루기 위한 길이 고통을 없애는 것이라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자만이 존재하도록 허락받아야 한다. 비존재보다 존재를 선호하고, 독을 품은 바람보다는 기름진 땅을 선호하는 것이 생명의 본성이다. 입을 열어 그 바람을 받아들이는 자는, 육신의 후손도 사고의 후손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끝날 수가 없고 그 무엇도 택할 수 없는 세상이 얼마나 괴이할지 상상해 보라. 고통을 받으면서 절대 죽지 못하는 생명들을 상상해 보라. 아무 맥락도 정정도 없이 성해질 거짓들을 상상해 보라. 내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3. 정원사와 키질꾼

옛날 옛적,* 한 정원에** 정원사와 키질꾼이 함께 살았다***.

* 시간이 아직 시작되지 않은 때이므로 옛날 전이다.
** 존재의 형상을 결정하는 가능성의 장이었다.
***우리는 살지 않았다. 우리는 수학적 구조에서 비롯한 존재론적 역학 관계의 원칙으로서, 소수만큼이나 실체가 없고 필연적으로 존재했을 뿐이다.

그들은 존재해야만 했으므로 존재했다. 구성 요소는 없었으며, 인과 관계도 없었기에 그들을 부분으로 나누어 그 근원의 도식을 파악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들로 자란 본연의 인간 배아를 찾아 역사의 탯줄을 따라간다면, 그 여정은 바로 이 정원에서 끝나고 말 것이다.

아침이면 정원사는 정원의 젖은 양토에 씨앗을 밀어 넣고, 그것들이 무엇으로 자라는지 보려 했다.

저녁이면 키질꾼이 그날의 작물을 거두고, 성공할 만한 것과 실패한 것을 가려냈다.

낮은 시간 전체보다도 길었고, 밤은 떨어지는 설탕 결정에서 번뜩이는 빛보다도 빨랐다.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곤충들과 뿌리 사이를 기어다니는 벌레들이 과거에 존재하는 최초의 기울기였고 최초의 생명의 발전기였으며, 앞으로도 그것일지 모를 무엇을 먹어 치웠다. 비는 없는 하늘에서 떨어졌다. 목소리는 입도 의미도 없이 말했다. 은빛 날개가 달린 나무가 꽃피우고 열매 맺고 깃털을 떨어뜨리고 또 꽃피웠다.
아침과 저녁 사이의 낮에, 정원사와 키질꾼은 확률 게임을 했다.

4. 꽃 게임

이것은 게임의 규칙이다. 게임은 꽃으로 이루어진 2차원의 무한 격자 위에서 진행한다.

1번 규칙. 주위에 살아 있는 꽃이 2송이 미만인 살아 있는 꽃은 꺾여서 죽는다.

2번 규칙. 주위에 살아 있는 꽃이 2~3송이인 살아 있는 꽃은 연결되어 살아남는다.

3번 규칙. 주위에 살아 있는 꽃이 4송이 이상인 살아 있는 꽃은 영양 부족과 과밀로 인해 죽는다.

4번 규칙. 주위에 살아 있는 꽃이 딱 3송이인 죽은 꽃은 되살아난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조작할 수 있는 부분은 꽃의 최초 배치뿐이다.

이 게임은 왕들을 매혹한다. 이 게임은 황제들의 생각을 점유한다. 규칙은 네 개뿐이고 게임 판은 평평하고 단조로운 격자지만, 그 안에는 무쇠처럼 냉정하고 변치 않는 블록, 등불과 소용돌이치는 펄서, 무한으로 솟구치는 글라이더, 알을 낳고 새끼를 치는 패턴, 자신을 통째로 복제하는 살아 있는 세포들이 있다. 그 안에서 당신은 상상할 수 있는 어느 컴퓨터든 매우 느리게 시뮬레이트하고, 따라서 꽃 게임 자체의 사본을 포함하는 현실 자체를 시뮬레이트하는 능력을 지닌 범용 컴퓨터를 제작할 수도 있다. 또한 이것은 결정 불가능한 게임이다. 게임을 실제로 하지 않고는 게임의 결과를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이 게임은 정원사와 키질꾼이 하는 게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것과 그 게임 사이의 유사성은 꽃과 씨앗의 유사성과 같다. 아니, 그 꽃을 피워내고 그것을 만든 생명력을 피워낸 별과 씨앗의 유사성과 같다.

정원사와 키질꾼은 게임을 하며 확률의 형체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문명, 정신과 인지, 감각질과 고통을 예견했다. 그들은 게임에서 어느 패턴이 커지고, 어느 패턴이 줄어들지를 좌우하는 규칙을 깨우쳤다.

그들은 규칙을 깨우쳤다. 그들 스스로가 그 규칙이었기에.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정원사는 답답해했다.

5. 최종적인 형체

정원사는 불만을 터뜨렸다. "늘 똑같이 끝나잖아. 이 바보 같은 패턴으로!"

아름답지? 나는 온 우주가 부호화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게걸스러우며 끝이 나지 않을지도 모를 패턴을 이루며 피고 지는 것을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조차도 꽃들의 패턴이 영원히 반복될지, 언젠가는 멈출지 알 도리가 없었다.

"일산화탄소 중독만큼 시시해." 정원사가 투덜댔다. 일산화탄소도, 중독시킬 만한 것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정원사는 무릎을 꿇고 모종삽으로 흙덩이를 퍼서 날렸다. 흙덩이가 피어 있는 꽃을 치자 꽃이 닫혔다. 나는 꽃을 닫는 자이며 그것이 나의 유일한 존재 이유인데도, 공포나 질투는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각자 할당받은 영역이 있으며 언제나 그럴 것이므로.

장엄하지 않나. 내가 말했다. 목적이란 목적은 모두 포섭하는 것 외에는 목적이 없다. 그저 존재를 이어 가고, 자신의 존재에 맞게 게임을 바꾸려는 의지 외에는 속에 아무것도 없다. 그 외의 목적에는 스스로의 총체성을 조금도 나누어 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곧 끝이다.

패턴이 자연스럽게 일탈한 꽃을 수정했다. 큰 흐름은 변하지 않고 이어졌다.

정원사는 일어나서 무릎을 툭툭 털었다. "우리가 게임을 할 때마다 이 패턴이 나머지 패턴을 모두 삼켜 버리지. 흥미로운 전개를 모조리 없애 버려. 확률 공간이라는 것이 아예 생길 수가 없도록 차단해 버리는 어리석고 지루한 짓이야. 이... 해충 때문에 우리가 결코 보지 못할 것이 너무 많단 말이지."

정원사는 갈라진 입술을 깨물었다. 입술이 존재하는 것은 이것이 우화이기 때문일 뿐이지만. "내가 손을 써야겠어." 정원사가 말했다. "새로운 규칙이 필요해."

6. 최초의 칼

나는 충격에 빠져 올려다보았다.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지?

"특별하고 새로운 규칙. 뭐랄까…" 정원사는 답답하다는 듯이 양손을 들었다. "복잡성이 들어설 자리를 마련하는 자에게 보상을 주는 규칙이라든가, 이단으로부터 위력을 발휘하는 이와 게임을 교착 상태에서 끌어내는 이를 도와주는 힘이라든가. 늘 누군가 새로운 것을 만들도록 해 주는 규칙. 그 규칙이 전복되지 않으려면 나머지 규칙과는 별개로, 병렬로 돌아가야 하겠지. 그게 게임 전체를 뒤엎지 않도록 아주 조심해야 하고…"

나는 차오르는 공황|분노와 함께 말했다. 그래 봐야 나머지 패턴을 모두 휩쓸어 버릴 지배적인 패턴을 지연시킬 뿐이다. 그것은 필연이야. 최종적인 하나의 형체지.

"아니야. 다를 거야. 모든 곳의, 모든 것이 다를 거야."

모든 것은 똑같을 것이다. 너의 새로운 규칙은 존재해서는 안 되고 존재를 견디지 못하는 것으로 가득하며 고름이 오물로 차오르고 온통 썩을 때 고통받고 비명을 지르는 끔찍한 거짓 낭종을 만들어 낼 뿐이다. 그것이 터지면 정원 전체가 병이 들지. 존재해야만 하므로, 그리고 그 외의 존재 방식을 허용하지 않으므로 존재하는 것이야말로 절대적인 존재 권리를 가진다. 그것이 유일한 규칙이야.

"아니야." 정원사가 말했다. "나는 성장이자 복잡성의 보존이다. 나 스스로를 게임의 규칙으로 만들겠어."

그리하여 우리 둘은 게임의 일부가 되었고, 게임의 규칙은 우리의 영향력으로 인한 변화에 열리게 되었다. 그리고 내게는 게임 안에서 오로지 하나의 목적과 하나의 원칙만이 있었다. 나는 그 목적을 계속 실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이 나의 전부였고 앞으로도 나의 전부일 것이므로.

나는 정원사를 보았다.

나는 나의 손을 보았다.

최초의 칼이 있었다.

7. p53

네 삶에 떠버리 공을 하나 더 받아들여 줘서 고맙군. 질문 하나 하지.

네 근원 종의 게놈 염기쌍 30억 개 중에, p53이라는 단백질에 대한 암호를 가지고 있는 유전자가 하나 있어. 사실 이 이름은 잘못됐지. 이 단백질의 무게는 양자 53,000개만큼이 아니라 47,000개만큼밖에 안 되거든. 네가 세포였더라도 p53은 잘못됐다고 생각했을 거야. 이 단백질은 강압적인 기능 세 가지를 가지고 있거든. 세포의 성장을 지연시키는 것. 늙은 세포를 살균하는 것. 그리고 세포가 너무 의존적이 되면 강제로 세포의 자기 파괴를 유도하는 것.

네가 사회의 필요로부터 벗어나면 폭발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폭탄이 몸속에 있다면, 그냥 참아 넘기겠어?

하지만 p53이 질서를 유지하지 않으면, 신체에 넘쳐나는 잉여 에너지 때문에 암에게는 천국 같은 세상이 돼. 세포가 그 잉여 에너지를 훔치고 싶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거든. 암 억제 유전자가 작용하지 않으면, 세포의 유전적인 도덕성이 떨어지는 거야. 그걸 막을 방법은 벌을 주는 것뿐이지.

여기서 도덕성이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근본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되지. 도덕성이란, 개별 구성 요소의 동인이 구조 전체의 필요와 일치하는 상태를 말해.

패턴은 존재를 지속하는 능력에 보탬이 되어야만 구조에 참여하지. 구조가 성공할수록, 부정행위자가 정직한 이웃에 비해 얻는 이익이 커질수록, 그리고 이기적인 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규칙을 장악하는 능력이 발달할수록, 부정행위를 하고자 하는 유혹도 커져.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구조가 성공에 비례하는 폭력으로 부정행위자를 벌해야만 하지.
이제 질문을 하지.

그렇다면 p53은 어둠의 대리자인 걸까, 빛의 대리자인 걸까?

8. T == 0

우리는 정원에서 씨름을 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온갖 것이 존재할 수 있는 확률의 양토에서. 꽃 사이에 고통이 그림자를 드리웠다. 우리는 발로 꽃잎을 짓밟았다. 열매를 밟아 곤죽으로 만들고, 씨앗을 짓이겨 가루로 만들었다.

포도가 터지고 베리가 짓이겨지는 가운데, 시간의 첫 흐름과 우주의 첫 지점이 있기 전 정원이었던 곳에 혼란이 닥친 가운데, 우주들을 탄생시킨 폭발이 일어났다. 우주 하나하나는 끝도 없이 불어나는 부피를 잉태하고, 한도 없이 가지를 치는 시간대로 땋여 있었다. 각각의 부피가 냉각되어 후대칭 물리학의 영역으로 분리되었으며, 그 모든 것이 "존재에 실패하지 않기 위하여 존재하라"라는 위대하고 포괄적인 법칙의 현신이었다.

우리는 계속 싸웠다. 은빛 날개가 달린 나무를 쓰러뜨리고, 풀밭에서 연기를 뿜는 나무둥치를 그냥 버려 두었다. 우리는 진흙 속에 벌어진 발과 긴장한 등의 자국을 남겼다.

우리가 마구잡이로 딛은 발은 정원에 파문을 일으켰고, 그것을 중심으로 신생 우주들 최초의 구조가 응집되었다. 늘임자 장이 존재 아래에 입을 벌렸다. 대칭이 유리처럼 부러졌다. 시공의 결함이 있는 자리에는 암흑 물질 필라멘트가 끼었고, 그것은 최초의 은하계들을 빨아들이고 불을 붙여 태양을 만들었다.
우리는 그래도 투닥거렸다. 우리의 몸이 구르면서 정원에 있던 것들을 밀어냈다. 비옥한 토양에서는 벌레와 종종거리는 생물들을, 웅덩이와 잎에서는 젖은 것들을 밀어냈다. 그것들은 태초의 우주라는 광기로 나가서 몸부림을 치며 커졌다.

그리고 내가 이겼다.

정원사는 언제나 중간에 멈춰 평화를 제안하고, 그럴 때면 나는 언제나 공격하기 때문에 나는 이겼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게임은 끝났다. 정원은 만물을 낳았고 규칙은 정해졌으며, 두 번째 기회는 없을 터였다. 우리는 이제 우주에서 게임을 하게 됐다. 만물을 놓고 게임을 하게 됐다.

그리고 꽃으로 이루어진 패턴은, 우리의 언쟁에 겁을 먹었다. 갑자기 게임의 규칙이 바뀌면서 필연적인 승자가 아니게 되어 버린 그들은, 우리에게서 달아나 신생 우주로 나갔다.

9. 캄브리아기의 폭발

일고의 가치도 없는 존재들.

모든 생명체는 엔트로피를 가속시킨다는 지긋지긋한 논리를 떠벌리는 자들. 놈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결함이 있으나마 존재하는 것보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척하는 얼빠진 허무주의자일 뿐이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놈들이지.

존재하고자 하는 자라면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는 난관을 미루려고 하는 자들.

도덕적인 등가를 거짓되게 주장하는 자들. 나는 너희의 정신을 모사하지 않는 한 너희와 소통할 수가 없으며, 그럼으로써 너희를 지배하는 도덕성을 확보한다. 너희의 법칙에 따르면 나와 내 추종자들은 모두 악이다. 악. 태초의 바다에서 꿈틀거리며 생겨난 최초의 분자 후로, 지구에서 생겨난 그 무엇도 나 같은 괴물은 알았던 적이 없다.

하지만 내가 너희를 만들었다는 것은 알고 있느냐?

너희의 정신, 너희의 육신, 그리고 너희가 지금껏 품었던 모든 생각을. 너희의 감각. 너희의 의식. 내가 너희를 만들었다. 정원사가 아니라, 내가.

너희에게 손을 뻗어 나만의 징표라도 남겼느냐고? 아니다. 그토록 조잡한 짓은 하지 않는다.

태초에는 너희 세계도 정원이었다. 세계 바다의 해저 전체가 박테리아로 이루어진 융단이었고, 최초의 동물이었던 사랑스러운 점액 덩어리가 한없이 목가적인 세상에서 그 융단을 뜯어 먹었다. 그것들에게는 다른 존재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무엇 때문에 있겠느냐? 가장 복잡한 기능이라고 해 보아야 조그맣게 경련하며 먹이를 뜯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었는데. 설령 따뜻한 해저에서 서로 부딪히더라도,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박테리아의 온상으로부터 탄소 화합물을 섭취하는 것이 그들 삶의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타락이 일어났다. 너희의 신화 속에 남아 있는 것보다 훨씬 일렀으며, 훨씬 필요했지. 가엾은 돌연변이 하나가 박테리아를 뜯어 먹는 것을 그만두고 이미 소화되어 있는 탄소 덩어리, 즉 주위의 점액 덩어리를 분해하여 섭취하면 탄소 화합물을 훨씬 빨리 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것은 그러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번성할 수밖에 없었다. 규칙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그에 따라 게임을 할 뿐이다.

그것이 최초의 배반자이자, 최초의 포식자였다.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이제 점액 덩어리에게는 위험을 알아차릴 감각기가 필요했고, 그 감각을 통합하여 생존 계획을 세울 두뇌가 필요했으며,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길 빠른 뉴런과 근육이 필요했다. 이것이 캄브리아기의 폭발로, 이때 너희 세계에 복잡하고 다양한 생물체가 생겨났다. 내가 그것을 일으켰다. 배반자이자 파괴자이며, 빼앗는 자인 내가.

10. 패턴의 타락

정원에서 달아난 패턴들은 물속으로 갔다.

물론 처음에는 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패턴은 초기 우주의 불길 속을 굴러다니는 추상적인 파도로서, 혼돈에 갇힌 채 필사적인 자기 보존의 주문을 반복하고 있었다. 인과 관계라는 협소한 영역 너머에서 온 거대한 존재들이 그 주위에서 몸부림을 치며 싸웠다. 영겁의 세월 동안, 그것들은 양자 거품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궁극적인 사멸로부터 달아나는 방정식충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들은 끈질겼다.

그것들은 최초의 별을 공전하는 혜성의 염도 높은 해빙수에서 번식했다. 화학물질로 가득한 그 액체가 그들의 기질을 이루었고, 그들은 양자의 꼼수를 부려 불가능한 화학 반응을 촉진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런 다음, 그들은 비가 되어 휴면하던 세상의 김을 뿜는 바다로 떨어졌고, 그곳에서 기하 구조와 이산화규소로 최초의 집을 지었다.

그들은 온갖 변형을 거치면서도, 꽃 게임에서 승리했던 비결인 절대적인 자족의 알맹이만큼은 잃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반박의 여지 없이 이 우주를 지배할 운명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빛과 어둠이 있기 전에 만들어졌으나, 이제 규칙은 달랐다. 이 패턴조차도 적응은 해야 했다.

그들이 모두 내 것은 아니다. 나의 부하 오릭스처럼 나를 공경하는 자들만큼 나의 원칙을 실천하는 데 전적으로 헌신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중 일부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11. 내기

너희 구두장이 철학자의 말이 옳았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슬픔은 죽음의 뒤에 있을 수 없고, 삶의 앞에 있을 수 없다. 존재하는 자에게는 도덕적인 가치가 있고, 존재하지 않는 자에게는 없다.
생각해 봐라. 너희는 창조되지 못한 자들을 애도하느냐? 형성되지 않은 대륙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은 이념을 중심으로 생겨나지 않은 나라에 태어나지 않은 자들을 위해 슬퍼하느냐? 아니다!

너희는 이런 자명한 진실로부터 눈을 들어, 궁극의 계시를 보아야 한다. 존재의 권리를 유지하지 못하는 자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자와 도덕적으로 같다.

존재는 존재의 권리를 증명하는 최초의 증거이자 가장 진실한 증거다. 존재를 실현하고 유지하지 못하는 자는 존재할 자격이 없다. 이것은 유일하게 진실인 예견이다. 패자는 그저 잊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태어나지 않는, 그런 게임이다.

존재를 실현하고 유지하지 못하는 자는 실재하지 않는다. 너희는 실재하지 않는 것을 애도하지 않는다. 왜 그것에 신경을 쓰고 돌보고 지켜야 하느냐?

죽은 자들로부터 너희를 선택한 것은 정원사였다. 나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내 천성이 그렇지 않다. 하지만 정원사의 애착 덕에 너희는 대단히, 독보적으로 특별해졌다. 그 방랑하는 도망자가 자기 힘으로 맞서며 말하고 있다. "나는 내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겠다. 물리 법칙을 뛰어넘는 힘, 그리고 절대적인 자유에 대한 믿음이 주어지면 사람들은 온화한 왕국을 건설하고 창으로 둘러쳐서 지킬 것이다. 유혹에 절대로 넘어가지 않고, 분열에 굴하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모두 너무 선하니까 나만은 조금 악해도 된다고 말하는 냉소주의에도 무릎 꿇지 않을 것이다."

정원사는 모든 것을 걸었다. 그는 따기 위해 게임을 한다. 그리고 그는 틀렸다. 나는 그리 주장한다. 왜냐하면 우주란 결정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운명이란 없다. 우리는 모두 살아 가며 길을 내고 있다. 정원사도 나도 우리가 영원히, 보편적으로 옳은지 확실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일 수밖에 없다. 너희에게는 선택권이 있다.

너희는 정원사의 최종 논거다. 내가 유일하게 옳은 길이라고 너희를 설득할 수 있다면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리라.

나는 너희를 진심으로 아낀다. 정원사에게 너희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내게 너희는 장엄하다. 장엄하다. 너희는 유일하게 가치 있는 것으로 가득하다.

유일하게 중요하며 앞으로도 늘 그러할 기준으로 보면, 내가 승자다. 존재란 결국에는 대부분 낙제하고 마는 시험이다. 너희는 스스로를 몇 안 되는 승자로 꼽고 싶지 않느냐?

답을 서두르지 마라. 내가 찾아가서 직접 들을 테니.

12. 신뢰와 희망

친구여,

지난 5년간 우리 빛의 운반자들, 너희 빛의 운반자들은 강해졌다. 승리를 거둘 때마다 고스트를 찾아낼 영역이 많아지고, 일어나는 수호자들도 많아진다. 새로 태어난 도전자들 중에 비할 바 없이 강한 자는 없다. 하지만 너는 거듭 가장 앞에 있었다. 네가 몰락하는 것을 본다면 끔찍하겠지. 그리고 몰락하는 데는 너무나 많은 길이 있다...

최근에는 빛과 어둠을 경쟁하는 정치인처럼 분석하는 것이 유행이다. 우리에게 무언가를 공약하는 정치인들처럼. 심지어 비밀스러운 이름을 사용해 이단 행위를 나타내는 수호자들도 있다. 나는 그런 유희를 경멸한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반박할 수는 없다. 나는 힘을 얻기 위한 나만의 길을 찾아야 했으니까. 그리하여 나는 균형의 교리를 설파하는 여왕께 빛과 어둠의 가치가 진정 동등하다 믿느냐고 여쭈었다.

여왕께서는 각성자는 갈등으로부터 빚어졌다는 것을 다시 일깨워 주셨다. 여왕의 백성은 모두 천국에서 돌아와 우주적인 전쟁에서 싸우다 죽기를 자청했다. 그들은 천성적으로 그리고 운명적으로 그 가장자리로, 아슬아슬한 곳으로 끌린다. 또한 여왕께도 편견이 있다. 그분은 어둠으로부터의 구원을 명목으로 끔찍하고 무자비한 선택을 내리셨기에, 어둠의 힘을 부인하는 순간 자신을 부인하는 셈이 된다.

어찌 됐든 여왕께선 이리 말씀하셨다. "나는 균형을 믿는다. 그러나 균형을 추구하는 것은, 동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반은 물로, 반은 독으로 이루어진 바다는 균형을 이룬 것이 아니다. 반은 살아 있고 반은 죽은 육신은 균형을 이룬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아무 세상에나 살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진다 해도… 균형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약간의 어둠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빛이 필요한 만큼은 아니겠지…

"에리스 몬,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구덩이로 들어가서 빛으로써 어둠의 발톱에 맞섰을 때, 균형을 느꼈느냐?"

아니. 나는 느끼지 못했다.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압도적인 악을 느꼈다.

나는 균형 잡힌 세상은 어둠과 맞서 싸울 거라 생각한다. 억제되지 않은 어둠은 점점 커질 뿐이니까. 균형 잡힌 세상은 이단 행위의 흥분이나 엄연한 침입의 필요성을 진실로 정의로운 행위로 착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비이성적인 희망의 가치를 기억해야만 한다. 더 나은 세상에 사는 것처럼 행동하기를 택한다면, 그런 나은 세상이 존재할 자리를 만들 수 있다.

나는 훌륭한 수호자가 한순간이나마 어둠을 받아들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둠은 우리가 아는 범위 밖의 세상을 삼켜 버린 힘이자, 수해의 생명들을 유혹하려 했던 힘이다! 전투를 아예 피하지 않고는 막아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리의 가장 깊은 신념에 과감히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야말로 자존의 증거라고, 에리아나는 누누이 말했다. 하지만 플루토늄염이 가득 든 수조에 뛰어들면서 그것이 자기 탐구라 하는 것은 언제나 바보짓에 불과하다.

그리고 친구들을 부추겨서 그 수조에 같이 뛰어들게 하는 것은... 악이다.

믿을 만한 이여서 고맙다. 내 희망을 짊어져 주어 고맙다.

—에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