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13 20:48:35

데스티니 가디언즈/지식/비둘기와 불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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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티니 가디언즈의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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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1: 책임 1부3. 2: 책임 2부4. 3: 책임 3부5. 4: 불꽃에 뛰어드는 나방 1부6. 5: 불꽃에 뛰어드는 나방 2부7. 6: 기초 1부8. 7: 기초 2부9. 8: 관찰자 효과10. 9: 중과부적11. 10: 영웅담12. 11: 호흡13. 12: 여백 1부14. 13: 여백 2부15. 14: 기대주16. 15: 목자17. 16: 정치18. 17: 덧없음19. 18: 원망20. 19: 재회

1. 개요

시간의 회랑을 탐험하면서 얻을 수 있다. 시간의 회랑은 2020년 1월 15일부터 28일까지만 열리는 퍼즐 컨텐츠이니 이 이후에는 얻을 수 없다.

2. 1: 책임 1부

저무는 태양의 사그라지는 빛을 따라 비행하는 모함 한 대가 낡은 철제 차체를 덜거덕거리며 데드 존의 거짓된 고요를 깼다. 높이 치솟은 산봉우리가 낮게 걸린 구름을 뚫었고, 그 찢어진 구름 조각이 부서지는 파도의 물거품처럼 보였다. 모함이 그 사이를 지나다니는 가운데, 폐쇄망 통신 채널에 신호가 잡혔다.

마린 오루:
숲에는 나무가 너무 빽빽해서 착륙할 수가 없어. 공터에서라면 들킬 거고.

세인트-14:
티브는 반드시 올 거야. 마지막 통신에 따르면 난민은 여섯 명이었어. 에테르를 취급했다더군.

제페토:
그리고 몰락자도 서른 마리 넘게 있네요.

마린 오루:
기관총을 가져와서 다행이군.

세인트-14:
놈들과 거래하는 전쟁군주가 누군지 몰라도… 한 차례 방문해줘야겠군.

마린 오루:
지금은 지금 할 일에 집중해. 삼십 초 남았다.

제페토:
루신 양의 고스트인 고스트가 그러는데 파이크는 없다네요. 한편, 야영지에서 위를 덮어놓은 구덩이를 발견해서 주의가 그쪽으로 쏠린 모양이에요. 통신이 더는 안 들어오는데요.

마린 오루:
그런 건 굳이 건드리지 않는 편이 좋을 텐데.

모함은 착륙을 위해 속도를 낮추며 산봉우리 사이의 그늘을 향해 구름을 흩으며 하강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흔들리다가 엔진이 꺼지면서 식기 시작했다. 타이탄과 워록이 내려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수고했다, 제페토." 숲의 가장자리를 노려보는 헬멧 안에서 마린 오루의 목소리가 울렸다.

제페토는 해가 저무는 지평선을 향해 빛을 깜박여 코드를 보내며 응답을 기다렸다. "고마워요, 마린 형제. 이번에 처음 해봤거든요."

마린은 동상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세인트는 모함의 화물칸을 열고 마린에게 돌아섰다. "반드시 올 거야."

제페토가 눈을 깜박였다. "루신 양에게서 응답이 없네요."

"다 쓸데없는 걱정이야. 내일이면 티브랑 웃고 있을 거라고." 세인트는 마린의 등을 두드렸다.

"내일이라." 마린은 어둠이 깔리고 있는 숲의 가장자리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래, 내일. 혹은 모레, 글피, 그 글피의 글피까지도. 방어구를 입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 때까지 말이야."

"그거참 솔깃한 얘기군." 마린은 자세를 바로하며 먼 곳을 응시했다.

숲의 가장자리에서 불빛이 깜박였다.

"세인트 형제. 찾았어요."

3. 2: 책임 2부

티브 루신이 뒤에 여섯 영혼을 이끌고 숲에서 나오며 황혼 속에서 제페토의 빛이 깜박이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의 고스트인 고스트는 저들을 목적지로 "인도"하고 있는 한 어린아이의 손 안에서 회전하며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골짜기에 달빛이 드리우며 일몰과 월출 사이를 잠깐 지배하던 어둠을 걷어냈다. 티브의 발밑에 밟히는 풀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이쪽으로 다가왔다. 고스트들은 흩어졌다.

마린은 어깨 위에 양각대에 고정된 긴 총신의 무기를 짊어진 채 침착하게 서서 기다렸다.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 마린." 나직한 음성으로 티브가 말하며 힘차게 마린의 손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마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잡고 악수했다. "세인트가 하자고 했어."

"세인트가 그렇게 말했어?" 티브는 피난민들에게 인사하며 모함으로 인도하는 세인트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누가 하자고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잖아." 세인트-14은 티브와 포옹했다.

마린은 등을 펴고 먼 곳을 응시했다. 숲에서 불꽃이 일며 퍼런 부활의 기운을 하늘로 퍼트렸다. 나무들 틈에서 비명과 점멸하는 빛이 정신없이 엉키고 있었다. 구름이 공터 위를 어둠으로 덮었다.

마린이 자세를 풀었다. "티브, 이 고철 덩어리를 얼른 띄워. 세인트는 나랑 같이 여기서 버티고."

마린은 양각대를 풀밭 위에 내려놓았다. 세인트는 숲을 향해 빛으로 환한 방벽을 쳤다.

"얼른 가. 긴 싸움이 될 거야. 아무도 따라붙지 못하게 할게." 세인트가 소총을 어깨에 받치며 말했다.

티브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종석으로 달려갔다.

화물칸이 닫히는 것을 보며 세인트는 경례로 인사했다.

숲의 가장자리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몰락자들이 공터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마린은 연발총을 장전했다. "어디, 덤벼봐."

모함의 엔진이 가동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환한 불꽃을 분출했다. 어둠 속의 등불이자 소망이었다.

멀리서 거슬리는 소리가 나더니, 빽빽하던 소나무숲을 가르며 붉은 포탄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공터로 날아왔다.

모함은 완전히 공중분해 되었다.

티브의 몸이 잔해 속에서 풀 위를 나뒹굴며 부서졌다.

귀가 먹먹해지는 충격파와 함께 한 외침이 밤의 고요를 깨트렸다.

"거미 전차다!"

4. 3: 책임 3부

세인트는 모함이 있던 자리에 생긴 뒤틀린 흔적을 눈에 담았다. "다들 죽었어…"

"진압사격!" 마린이 숲을 향해 복수의 총탄세례를 퍼부었다. 그의 도발에 몰락자들이 몰려왔다. "움직이라고!"

세인트의 눈에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 티브가 보였다. 모함의 잔해 틈에서 웅크린 티브는 비틀거리며 몇 걸음 움직였다. 고스트가 바쁘게 빛을 회전하는 동안 티브는 모함의 선체 조각에 기대어 적의 시야에서 몸을 가렸다. 아직 멀쩡한 손으로 칼집에 든 검을 잡았다. 아직 밤공기는 정체된 상태였다.

엑소의 눈이 숲의 경계에 머물렀다. 그의 의지는 찬란한 무지개색으로 빛났고, 그 주위의 공기는 무한대의 밀도로 굴절했다. 그의 흉갑에서 보라색 기운이 출렁이며 뿜어져 나오더니, 영롱한 방패의 형태를 갖추었다. 돌격해오는 몰락자들에게 공허의 빛 파멸로 맞서 상대했다. 머리 위로는 기관총이 연사하며 드렉을 처리하고 전방의 적을 양분했다. 한 걸음씩 나아가며 앞을 가로막는 이는 모두 박살 냈다. 그렇게 숲가까지 나아간 그는 방패를 던져 보행 탱크의 다리 하나를 끊어냈다.

결국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다. 그를 겨냥하여 보행 탱크의 야전포가 돌아갔다. 세인트-14은 묵묵히 받아냈다. 그는 찬란한 수호자요, 정의의 징벌자였다. 밤을 물리치기 위해 세워진 보라색 방벽이었으나, 그 뒤에 새벽이 따르지는 않았다. 보행 탱크의 야전포에서 두 번째 포탄이 굉음을 내며 날아왔다. 둘의 충돌은 대재앙급이었다. 폭발 속에서 수호자는 산산조각이 났다. 남은 것은 어둠뿐이었다.

힘없이 펼쳐져 있던 강철 손이 느리게 주먹을 쥐었다. 끌려가고 있었다. 세인트는 정신을 차리려 애를 썼다. 시야에는 온통 불과 잔해뿐이었다. 연기에 휩싸인 보행 탱크가 나타나며 나무를 박살 냈다. 공터를 채우는 몰락자들의 입에선 쇳소리가 나왔으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세인트는 눈을 깜박였다. 빠르게 정신이 들었다.

"스카스 베스키리스크." 남은 몰락자 병사들이 갈라지며 거대한 덩치의 대장이 나타났다. "스카스 볼라서스크!" 그가 포효하자 휘하의 반달부터 드렉까지 요란법석을 떨며 소리를 내었다.

마린은 누운 채, 숨은 붙어 있지만 피를 흘리고 있었다. "서둘러… 티브…"

"캅소크 압스 반켐랍탈리라스크, 캅속 압스 바메사켑토시루로스크." 무리는 무기를 치켜들었다. "멜릭스니스크. 모네킨." 그러고는 화살의 소용돌이를 발사했다.

발밑에서 지면을 튕기는 번개로 감싸인 티브가 공중에서 그 화살의 소용돌이와 마주했다. 정연한 의지로 소용돌이를 몰아내며 화력팀 주위로 전기 볼트의 우박을 내렸다. 지면에 떨어져 땅을 지지니 자욱하게 공중에 구름이 올라왔다. 그 먼지의 장막 속에 유유히 들어간 티브는 혼란의 도가니에 빠진 몰락자들에게 순수한 전기 공격을 날렸다.

마린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끌어낼 수 있는 모든 의지, 모든 빛을 한 지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주위의 사물이 색을 잃었으며, 그 지점은 점점 어둡게 변했다. 이렇게 형성한 현실을 끝없이 물어뜯는 무채색의 찬란한 공허의 구를 던져 보행 탱크를 맞히니, 탱크는 한낱 찌그러진 고철 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몰락자는 한 명도 남지 않았다.

그 잔해 속에 그들은 홀로 남았다.

5. 4: 불꽃에 뛰어드는 나방 1부

불똥이 튀며 오시리스의 고독한 얼굴 위로 희미한 빛을 비추었다. 그 뒤의 숲은 한밤중의 어둠 속에 형체를 잃고 녹아들었다. 사기라가 그의 어깨 사이를 오갔다. 현실과 동떨어진 고요함. 작은 다이아몬드였다. 계획된 고립. 열기둥 사이에서 깜박이는 장난기 가득한 날것. 사념의 집중이 물리적인 껍질을 벗겼다.

그는 혼자 공허 속에 있었다.

더 이상 방해받는 일은 없었다.

깊이에는 한 지점이 있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는 지점이었다.

더 깊이. 파고들고. 파헤쳐야 했다.

"불이 꺼지고 있어요."
인세의 지겨운 소음이 다시 밀려왔다.

"으응?"

"춥지 않으세요?"

"안 추운데." 오시리스는 이마를 문지르고는 불을 쑤셨다. "고맙다, 사기라."

"혼자서 아무리 원해도 일이 저절로 분명해지는 일은 없어요, 오시리스. 시간이 필요해요."

오시리스는 턱을 바짝 당겼다. 자신은 얕은 곳에 서서 앞에 펼쳐진 깊이를 멍하니 바라만 보는 것 같았다. "왜 나를 선택했지?" 오시리스의 목소리는 공허했다. 사기라가 올라설 수 있도록 손바닥을 펼쳤다.

"당신에겐 불꽃이 있어요." 사기라의 목소리에는 따뜻한 기운이 서렸다. 불똥이 튀었다.

"불꽃이라고?" 오시리스의 얼굴에 답답한 기색이 서렸다. "이 세계는 죽어가고 있어. 거듭하고 또 거듭해서."

"당신도 그랬죠. 제가 꺼내주었고요." 사기라는 오시리스가 자신의 껍데기를 감싸는 것을 내버려 두었다. "저는 당신이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키웠어요. 당신 역시 당신 나름대로 같은 일을 하는 거예요."

사기라의 말이 달콤하게 그의 귓가에 머물렀다.

"난 너만 한 인내심은 없어, 사기라."

오시리스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가 다시 내뱉었다.

"누군가가 오고 있어요." 사기라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나를 숨겨줘." 오시리스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오시리스가 손바닥을 오므리자 사기라는 흩어졌다. 오시리스의 모습도 흐려졌다.

6. 5: 불꽃에 뛰어드는 나방 2부

오시리스의 측면에 있던 숲에서 작은 무리의 인간이 나타났다. 더러는 녹이 슨 무기를 들고 있었다. 무리의 리더가 앞으로 나섰다.

"일어나라, 노인." 어깨 너머로 축축하고 묵직한 음성의 말소리가 들렸다.

"싫다."

색칠된 고스트 하나가 오시리스의 눈앞으로 날아들어 왔다. "라이히 전쟁군주의 명령입니다. 일어서세요."

"내 영토에 들어와서 내 나무를 태우고 있군. 그건 도둑질이지. 그 대가는 팔을 자르는 것이고."

"불멸성을 얻었는데도 고작 주변에 있는 것을 움켜쥐는 것밖에 생각 못 하다니. 정말 한심하군."

전쟁군주는 웃었다. 고스트도 재빨리 따라 웃었다.

"넌 수치다." 오시리스는 어깨너머로 응시했다. "가서 네 인생을 재고해봐라."

"팔 하나를 내놓든지, 아니면 목숨을 내놓든지. 그게 법이다."

"선택은 네가 해라." 오시리스는 전쟁군주에게 말을 남겼다.

"내 뒤에는 총이 여섯 대는 있다고." 전쟁군주는 철기를 오시리스의 두건에 댔다.

"나는 불꽃이 있지." 불길이 오시리스를 감싸더니 마치 밤의 그림자를 쫓아내는 날개처럼 펼쳐졌다. 하얗게 달구어진 검이 오시리스의 손에서 뻗어 나왔다. 단번의 날랜 움직임으로 오시리스는 전쟁군주를 타는 고깃덩이로 만들어버리고, 놀란 그의 고스트를 공중에서 가로챘다. 눈길을 나머지 사람들에게로 옮기니, 그들은 등을 보이며 숲속으로 도망갔다. 그는 다시 고스트에게 주의를 돌렸다.
"왜 이 자였지?" 오시리스는 불을 껐다.

"날 놔라!"

사기라가 다시 현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너! 자매여. 도와줘!"

"알았어. 이봐, 이 사람은 널 다치게 할 생각 없어. 나랑 얘기 좀 해. 저 사람은 없는 셈 치고." 사기라는 고스트의 정면에 자리했다. 둘의 홍채가 서로에게 맞물리며 불규칙적으로 흔들렸다.

"아. 이제 놔주세요."

오시리스는 손을 놓았다. 고스트는 사라졌다. "사기라?"

"강한 사람이 필요했던 거예요. 전사 같은."

"그것뿐이야?"

사기라는 잠시 머뭇거렸다.

"우릴 창조하던 당시, 여행자는… 다친 상태였어요. 그 고통은 우리에게도 메아리치지요. 우리 중 일부는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을 해요. 더러는 두려움에 빠져 있고요. 그 과정은 간단하지 않거든요."

"흠이 있었군." 오시리스는 빛이 들어올 틈도 없이 빽빽한 숲을 향해 가며 멀어졌다. 빛에 흠이 있다면, 타락하는 것도 가능하다. 완전무결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쇠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전체의 일부를 이루는 조각이지만, 모두 다 달라요. 고유하지요. 당신 또한 완벽한 존재는 아니잖아요."

오시리스도 인내심을 길러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디로 갈 셈이지?"
"여행자에게로 돌아갈 거예요. 새로운 사람을 찾기 위해. 더 나은 사람이요."

7. 6: 기초 1부

앞으로 최후의 도시가 될 곳이 오시리스의 앞에 펼쳐졌다. 흉물스러운 방벽이 그 주위를 감싸며 멀리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녹이 잔뜩 슬고 반쯤 허물어진 철벽 사이를 지나 소형 화기의 공격으로 벌집이 된 흙바닥 위를 걸었다. 지나가면서 보니 수십 명의 시민들이 방어 시설을 보강하고 수리하며 전화에 시달린 허름한 집을 뜯어서 자재를 재활용해 좀 더 튼튼한 집을 짓고 있었다.

빛의 운반자들이 곳곳에 보였다. 장벽이 세워지는 곳에 상당량의 철재를 올려주거나, 태양의 빛으로 철근을 녹이거나, 도시 경계에 난민들을 안식처로 인도하는 등대처럼 세워진 수많은 감시탑과 함께 다가오는 위협이 있는지 감시하고 있었다. 고스트들은 도면과 설계도를 영사하여 각 일꾼의 손길을 지도하고 있었다. 한 사내가 양동이에서 조악한 컵을 꺼내 들었다. 사내가 깨끗한 물이 넘쳐나는 컵을 입으로 가져가 길게 목을 축이는 동안 양동이는 도르래에 달린 채 다른 곳에 있는 일꾼들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계속 이동했다.

"이렇게 고스트가 한자리에 많이 있는 건 처음 봐요. 여기서 오래 지낼 건가요?"

"여행자가 여기 있잖니, 사기라. 우리가 찾는 답을 구하기에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이 있겠니?"

공기 중에 차와 향신료의 내음이 실려 와 매연에 지친 후각에 때때로 신선한 자극을 선사한다. 후추로 양념한 고기의 냄새가 오시리스를 잡동사니가 흩어져 있고 낮은 콘크리트 벽에 고철 소총이 기대어져 있는 광장으로 이끌었다. 무장한 엑소 한 명이 잔햇더미로 빙 둘러싸인 공간에서 열심히 여러 석쇠를 전전하며 고기를 굽고 있었다.

"듣던 것보다… 초라하네요." 멀리 보이는 도시의 남은 막사들을 둘러보며 사기라가 말했다.

"소문이란 게 원래 그렇지. 펠윈터가 묘사하던 도약을 위한 오아시스는 못 되겠지만, 그래도 출발점으로서는 기능할 거야."

"초라하긴 뭐가 초라해?" 엑소 요리사가 음식이 담긴 나무 접시 대여섯 개를 거친 돌상 위에 요란하게 놓으며 말했다. "이건 희망이라고, 수호자. 이렇게 평온한 나날이… 곧 더 많아질 거라고."

"나는 수호자가 아니다. 그저 친구를 만나러 왔을 뿐." 오시리스는 넓은 건설 현장을 멀리서 굽어보는 탑으로 눈길을 돌렸다. 뼈처럼 하얀 보주의 그늘 아래 고독한 자태였다.

"내가 당신의 친구가 되어주지. 이리 와 앉아서 먹어. 당신도 같이 먹을 만큼 음식은 충분해. 나는 세인트-14이라고 해."

오시리스는 접시에 담긴 고기와 연기 나는 석쇠를 흘깃 보고 난 뒤 다시 먼 곳의 방어 시설로 눈길을 돌렸다. "당신이라면 저 벽에서 스무 명분의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내 벽이 아니니까. 도움이 필요하다면 요청하기만 하면 되는걸." 세인트-14은 음식이 담긴 접시 하나를 오시리스 쪽으로 밀어주고는 자신의 얼굴판이 미소를 띠도록 구성했다.
"제가 대신 소개할게요… 이분은 오시리스이고, 저는 사기라예요. 만나서 반가워요, 세인트!"

8. 7: 기초 2부

"나도 만나서 반갑다, 사기라! 오시리스, 좀 앉지." 세인트-14은 대충 만들어진 나무 의자에 앉으라며 손짓했다.

고스트 둘이 빠르게 날아와 돌상에서 접시를 낚아채고는 다시 재빠르게 날아갔다.

"쟤들이랑 같이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겠니, 사기라?"

"그러죠. 서빙 프로토콜을 불러올 테니 잠시만요." 농담을 알아듣지 못한 세인트-14은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좋아요! 금방 다녀올게요!" 사기라는 절묘하게 접시를 받쳐 들고 유유히 사라졌다.

"배 안 고픈가?"

"당신이라면 강철 군주들과 순찰을 다닐 수도 있을 텐데." 오시리스는 접시를 제 앞으로 당겼다.

세인트도 앉았다. "당신의 존재 의의는 그런 데 있나?"

한 무리의 고스트가 서로 왁자지껄 떠들며 먼지구름을 얕게 일으키면서 다가왔다. 잔햇더미를 넘어와 빈 접시를 남긴 후 음식이 담긴 접시를 가지고 다시 떠났다.

"밖에는 괴물이 설친다고. 빛 없는 자들은 감히 상대도 못 할 그런 괴물들 말이야."

"인생이란 원래 고단한 법이지." 세인트는 일어서서 석쇠에 썰린 돼지고기를 올려놓기 시작했다. "도울 수 있는 자는 도와야지."

"나는 실력의 낭비를 걱정하고 있는 거야." 오시리스는 제 접시에서 작은 고기 조각을 들어 슬쩍 입에 넣었다.

"대변자를 만나는 게 좋겠군. 그라면 당신이 올바른 길을 찾도록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오시리스는 코웃음 쳤다. "대변자도 내가 찾는 답은 줄 수 없을걸."

"내기할 텐가?" 세인트-14은 손으로 돼지고기 덩어리를 뒤집으며 물었다.

"난 도박은 안 해." 오시리스가 대꾸하더니 어깨너머로 돌아보았다.

다른 고스트들과 대열을 이룬 사기라가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공중에서 춤추며 대충 만든 식탁에서 빈 접시를 챙기는 중이었다.

"좋은 사람인가?"

"그를 위해서라면 내 목숨도 바칠 수 있어."

"으음."

"이 모든 것은," 세인트-14이 도시의 경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숨이야. 숨 쉴 틈이 있으면 사람들의 형편도 나아지지."

"그렇게 생각해?"

"물론이지. 당신도 내 말에 동의하게 될 거야."

고스트들이 또 한 차례 돌아왔다. 사기라가 웃었다.

"그럴 수도 있겠군. 잘 먹을게, 세인트-14."

"어서 들라고."

둘은 식사한다.

오시리스의 어깨가 내려앉았다. "이거 탄 것 같지 않아?"

"전혀."

9. 8: 관찰자 효과

세인트-14이 형형색색의 패턴으로 물들었으나 지금은 그 색이 흐려진 양털 뭉치 사이로 쏜살같이 움직였다.

방화대 한 부대가 계곡을 계속 점령하고 있다가 위기의 순간에도 고집을 부려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의 용맹은 덧없이 사그라졌다. 여덟 명이 쓰러졌고, 한 명은 행방불명되었다.

세인트는 아직도 방어구에 만화경 조각처럼 털실 조각을 단 채 서쪽 전선의 언덕 위에 나타났다. 그의 등 뒤로는 포탄이 폭발하고 있었다. 그에 대응해 번개가 쳤다. 도시는 아직 건재했다.

쓰러진 적이 가득하고 전화에 그을은 땅 위에 여덟 명의 수호자가 빛 없이 서로 등을 맞댄 채 쓰러져 있었다. 시체를 발견한 독수리처럼 몰락자들이 그들을 둘러쌌다. 혼란 속에 그들의 고스트는 들키지 않고 언덕 위로 도망쳤다. 세인트-14은 그들이 빠르게 내려가는 것을 지켜보며, 언덕의 경사를 따라가면 나오는 작은 분화구의 끄트머리에서 그들과 조우하기로 경로를 정했다.

순간, 분화구가 그의 주의를 끌었다. 아홉 번째 수호자 엘릭. 혼자, 무사히, 숨을 죽이고 숨어있었다.
세인트는 분화구를 미끄러져 내려가 엘릭 옆으로 이동했다. 깜짝 놀란 엘릭의 두려움은 금세 안도로 변했다.

"괜찮아?"

"괜찮아." 고스트가 부상을 당하긴 했지만, 살아는 있었다.

"우리가 길을 뚫으면 다들 다시 일어날 거야."

몰락자들 위의 공기가 폭발했다. 가까이 있던 자들은 잿더미가 되었다. 그 자리에는 오시리스의 찬란한 황금색 빛이 빛났다. 폭발 덕분에 근처에 있던 대장의 방어막이 찢어져 그 뒤에 있던 자들은 밀려났다. 충격 소총이 하늘을 향해 발사했다.

불꽃이 비처럼 내리자 몰락자들은 흩어졌다. 오시리스의 움직임이 그들 사이로 찬란한 띠를 이루며 공격했다. 갈팡질팡하던 몰락자들은 금세 공황 상태에 빠져 하나씩 그의 불에 전소되었다.

"그래, 지옥불을 내려, 이 미친놈아." 세인트는 엘릭에게로 돌아섰다. "준비됐어?"

"안 돼."

오시리스는 잠시 시야를 도망치는 고스트들로 돌렸다. 찰칵. 그들은 거의 언덕에 닿았다. 찰칵. 손바닥에 빛을 쥐고 홱 돌아섰다. 다시 일어선 캡틴이 소각 대포로 일격을 발사했다. 직격당한 오시리스의 모습이 반짝이며 산산히 부서져 계곡에 녹은 유리의 흔적을 남기며 빛을 흩뿌렸다.

몰락자들이 계속하여 계곡으로 몰려왔다.

"네가 필요해, 타이탄."

"난 또 죽을 수 없어."

"그럼 더 죽지 않으면 되지." 세인트는 탄창을 확인했다.

언덕의 가장자리에서 작은 빛 여럿이 깜박였다. "수호자들이다!"

엘릭이 상체를 일으켜서 빛의 수를 세었다. 여덟 명의 목숨이었다. 앞으로 더 많은 목숨을 짊어질 여덞 명의.

"난 못 해…"

"이건 새로운 선택이야." 세인트-14이 분화구에서 나왔다. "네가 무엇이 되느냐는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에 달렸어."

엘릭이 일어섰다. "지금은 숨어, 꼬맹이들아. 너희 수호자들을 되찾아올게."

10. 9: 중과부적

오시리스는 불타고 있었다. 포효하는 얼굴은 깜깜한 하늘을 향했다. 끝없고 단단한 밤이었다. 빛의 타래가 엉키며 웅웅거렸다. 빛을 띈 힘줄이 근육과 뼈를 이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수많은 분신들이 그의 지시에 따라 도시의 방어선에 난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 애쓰고 있었다. 그의 아래에 있는 동부 전선은 미친 듯이 밀려오는 몰락자들의 파상 공세에 뚫렸다. 전선은 붕괴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이동했을 뿐이었다. 오시리스는 그곳에 투영을 집중했다.

작은 화력팀 하나가 전선에서 버티고 있었다. 오시리스는 몸을 비틀었다. 황금빛 저항이 몰락자들의 기세를 저지했다. 투영 하나가 타이탄 하나와 눈을 마주쳤다. 타이탄이 고개를 끄덕이자 투영은 유려한 움직임으로 타이탄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타이탄은 도시의 장벽을 타고 벼락을 내리는 돌풍을 내려 진전하던 적군을 흩었다. 멀리서 샤크스의 포효가 들렸다.

여러 타래가 끊겼다. 하늘은 별 하나 없는 깜깜한 밤의 장막이었다. 오시리스의 정신의 경계에선 망각이 숨 막히는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여백. 빛이 아주 얄팍하게 덮는 곳. 극한 상황. 항상 부족한 곳.

서부 전선이 밀리고 있었다.

이동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오시리스는 불지옥을 짜내었다. 에테르와 불꽃이 재만 남기며 서로를 삼켰다. 언덕을 오르는 빛 여덟 개가 보였다. 찰칵. 단신의 수호자가 언덕 위의 지평선에 뛰어들고 있었다. 찰칵. 저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찰칵. 오시리스는 돌아섰다. 손바닥에 빛을…

북부 전선이 뒤틀리고 있었다.

신경이 탔다. 도시의 황금색 빛이 흔들렸다. 숨 한번 쉴 정도의 찰나였지만.

북부 전선이 갈라졌다. 야전포가 장벽에 맹공을 퍼부었다.

오시리스는 그 자리에 있었다. 두 명의 사냥꾼이 버티고 있었다. 한 명은 화염에 휩싸인 채 소총으로 태양빛 빔을 연속으로 발사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순수한 전기의 검날로 적들을 썰고 있었다. 아무도 그 둘을 통과하지 못하리라.

오시리스의 투영들이 틈을 메우기 위해 움직였다.

잔해 사이사이에는 사체가 가득했다.

동부 전선이 뚫리면서 대피하던 자들이 폭발에 휘말린 것이었다.

오시리스는 스무 개의 황금빛 눈을 통해 그들의 죽는 장면을 기억에 생생히 새겼다.

오시리스는 황금의 빛으로 북부 전선을 샅샅이 뒤질 작정을 했다.

부서진 장벽으로 눈길을 돌렸다. 틈 사이에는 영원한 벼랑에 가리워져 무용해진 정신으로 악의만 가득한 몰락자들이 눈을 아래를 향한 채 이 마지막 희망을 깊이 잠식하려는 굶주림으로 물밀 듯이 몰려들고 있었다. 몰락자들이 빛에 부딪쳐오는 지금 이 순간에도, 별빛조차 없는 깊은 공허 속에서 지켜보는 자들이 있었다. 이번이 아니면 다음에 이루어질 것이다. 댐이란 결국 시간이 지나면 무너지기 마련이므로.

일단 지금은 남부 전선이 밀리고 있었다. 아직 불로 정화할 기회가 있었다.

11. 10: 영웅담

제페토:
통신 채널이 다시 멀쩡해졌네요. 연결을 다시 구축합니다. 안녕하세요, 작전통신부 여러분. 여기는…

샤크스:
샤크스다. 적이 모두 퇴각 중이다!

오시리스:
북부의 장벽은 버텨냈다.
내가 갈 곳이 있다.

세인트-14:
샤크스? 이봐? 서부 전선은 이상 없다. 나는 세인트-14이다.

샤크스:
정말 잘됐군! 그렇다면 남쪽으로 행군한다.

살라딘:
몰락자들의 남부 진입은 차단되었다. 도시는 건재하다.

잠시 침묵이 흘렀…

샤크스:
놈들은 여기로 쳐들어와서 우릴 모두 죽일 셈이었겠지.

다들 웃는다.

살라딘:
그래.

오시리스:
모든 화력팀의 생사를 확인했다. 사상자는 없다.

세인트-14:
자네와 내 친구 엘릭 덕분이지. 엘릭이 활약하는 모습을 다들 봤어야 하는데. 작은 빛을 여덟이나 구했다고. 나랑 같이 수십 명의 몰락자들에게 돌진했어. 번개며 총탄이며… 아주 멋진 광경이었다고.

엘릭:
과찬이야. 당신의 곁에서 싸울 수 있어서 영광이었어.

샤크스:
수십 명이라고?

살라딘:
제법인데, 세인트. 그 돌진을 시도하면서 몇 번이나 죽었어?

세인트-14:
나는 안 죽었어. 엘릭의 엄호가 워낙 뛰어나…

샤크스:
난 그 말 못 믿겠군.

세인트-14:
너는 죽었기 때문에 그러는 거지, 샤크스? 몰락자에게 뿔이 부러졌다는 소린 들었다.

샤크스:
그 소린 어디에서 들었지?

엘릭:
세인트의 말은 내가 보증하지. 우린 죽지 않았다.

세인트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샤크스:
우리 모두가 다 너처럼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네, 세인트.

세인트-14:
아까도 말했지만, 뛰어난 엄호를 받았다니까.

오시리스:
나는 셀 수도 없이 많이 죽었어.
도시 곳곳의 눈으로 전투를 목격했지.
아주 아슬아슬했어.
전장이 너무 분산되었어.

세인트-14:
내 형제여, 자네는 정말 치열하게 싸웠어.
긍지를 가지라고. 자네가 없었으면 우린 졌을 거야.

오시리스:
지고 만 이들도 있지.

12. 11: 호흡

세워진 장벽 주위로, 도시의 나머지 부분과는 떨어진 구획에, 전화로 비옥해진 토양에 작은 농장들이 들어서 밭고랑에 녹색 싹을 틔우고 있었다. 구불구불한 덩굴 식물이 버려진 지 오래인 전쟁의 잔해를 휘감아 자랐다. 여섯 전선의 전투가 끝나고 몇 주 동안 도시에는 드문 평온이 감돌았다. 여행자의 빛 아래엔 들꽃이 피고 있었다.

곧 비가 올 것이었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찬란한 햇빛 아래 여러 색채를 뽐내는 헐렁한 여름 소재 대신 짙은 색의 질감이 있는 양모로 여러 겹을 두르는 형태로 바뀌었다. 녹색 장식술이 달려 바람에 휘날리는 철장대가 세워져 다음날에 있을 축제를 위한 종자열을 이루었다. 아이코라는 추모 행사에 참여할 시민들을 도시의 중심부에서 이끌었다. 어깨에서 굴레를 벗어든 세인트를 보고 서로 미소를 지었다. 세인트는 축제 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종자열을 걷게 될 줄은 몰랐다. 축제 장소에 들어서며 지나가는 사람에게 일일이 인사했다. 더러는 그와 악수했고, 더러는 감사 인사를 했다. 일부는 그의 금속 골격을 장식할 보라색 리본을 선물했다.

장벽의 높은 곳에는 새들이 내려앉았다.

자발라가 마지막 장식술 장대를 꽂아 워드클래시 원을 이루었다. 샤크스는 우뚝 서서는 그에게 시선을 집중하는 한 무리의 아이들에게 극적인 양념을 쳐서 전쟁담을 들려주고 있었다. 아나는 태양열 폭죽을 구슬려 등으로 만들어 축제 참가자들을 위한 종자열의 앞부분에 놓고 있었다. 오시리스는 걱정하기 좋아하는 그의 분주한 정신 상태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의 세상은 성장하고 있었다.

세인트는 차례를 지키며 종자열을 걷는 시민들을 지켜보았다. 그들 위로는 종자가 뿌려졌고, 바람이 그들의 등을 밭과 벽 너머로 날려주었다. 의식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뒤로 황혼이 깔리며 불꽃이 흩날렸다. 수호자들은 준비를 마친 후 각자 맡은 야간 초소로 돌아갔다. 부산하던 장내가 이내 고요해졌다.

"특히 추모하고 싶은 사람 있어?" 아나가 빈 등을 세인트에게 건네주며 물었다.

세인트는 등을 받아들고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어둠을 완전히 무찌르고 나면 넌 무엇을 할 거야? 평화를 온전히 확보하면 말이야?"

"글쎄, 모르겠어." 아나는 한숨했다. "이전의 열셋을 걱정해본 적 있어? 난 가끔 생각하거든."

"난 열넷에 만족해."

아나는 세인트의 어깨를 붙잡았다. "나도 그래, 세인트-14." 아나는 한 움큼의 종자를 세인트에게 뿌렸다. "종자열을 걷는 거 잊지 마. 날도 저무는데." 아나는 미소지었다.

"고마워, 아나스타시아."

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나라고 불러줘." 그렇게 말한 후 아나는 다시 도시로 돌아갔다.

세인트-14은 등에 공허의 빛을 채운 후 종자열을 걸었다. "마린을 기억하며."

세인트는 앉았다. 비둘기들이 그에게 올라앉아 종자를 부리로 쫗쪼았다. 세인트는 별과 분간이 되지 않을 때까지 등을 지켜보았다.

"착한 새들이구나. 이곳에 정착해주어 고맙다."

13. 12: 여백 1부

오시리스는 여행자 아래에 있는 작은 돌 정원에 앉아 있었다. 교감 시도에는 실패한 상태였다. 대변자가 이곳에서 몇 시간이고 서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아이코라는 추모 행사에서 그의 역할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마지못해 수락했다. 비록 말은 곱게 하지 않았지만, 그녀 역시 마음속으로는 최근의 승리가 안일함을 불러왔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급박하고 팽팽한 위기의 압박감이 느껴졌다.

헛발질을 기다리고 있는 올무가 놓인 상태였다.

아주 미묘한 줄다리기였다.

화로가 그림자를 드리웠다. 눈앞에 그림자가 번뜩이며 그의 집중을 방해했다.

오시리스는 숨을 들이켰다.

돌 정원은 무한의 공간이었고 주변의 실루엣은 황폐해진 지평선이었다.

숨을 내쉬었다.

그는 혼자 공허 속에 있었다. 더 이상 방해 받는 일은 없었다.

깊이에는 한 지점이 있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는 지점이었다.

더 깊이. 파고들고. 파헤쳐야 했다.

그래도 빛 없는 깊이 속 한 지점에 불과했다.

무. 그 방대한 존재.

오시리스는 새로운 시각을 취하기 위해 더 깊이 침잠했다. 지점은 그대로 있었다.

아주 흐렸다. 멀었다. 비록 빛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의 손길은 너무 뻗은 나머지 희미해졌다. 그의 손과 지점 사이의 공간에는 청명함이 있었다. 뼈처럼 하얀 지점. 이제는 흐려진.

어디에나 존재하는.

굶주린 확인.

방대함. 거대함 앞에 홀로 선 자신. 끝없이 펼쳐지는 심야. 그에 대비되는 고독한 한 지점.

14. 13: 여백 2부

"여기서 보게 되니 참 반갑구나. 앉아도 될까?" 그가 말했다.

일상의 소음. 돌 정원은 현존했다. 그 역시 현존했다.

칙칙하고 어슴푸레한 배경을 등진 군주인 여행자.

"앉든지." 오시리스는 일어섰다.

"가지 마."

오시리스는 멈춰서 대변자를 향해 돌아섰다. 뼈처럼 흰 그의 가면에 여행자의 빛이 바랬다. "뭐 필요한 볼일이라도?"

"도시에 워낙 많은 일이 있어서. 우리가 서로 대화한 지도 너무 오래된 것 같고."

오시리스는 침묵한 채 여행자를 올려다보았다.

팽팽한 위기의 압박감이 있었다.

"무슨 고민 있어?" 대변자는 오시리스에게 다가섰다.

오시리스는 급히 숨을 들이쉬었다. "내 보고서는 읽었나?"

"당연하지." 대변자는 자세를 누그러뜨렸다. "네 조언은 언제나 귀하게 여기고 있는걸."

"정말 아슬아슬했어. 한순간은 정말 잘못되고 있었다고." 오시리스는 대변자를 바라보았다.

대변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하지만 빛이 결국 네 앞길을 인도했지."

헛발질을 기다리고 있는 올무가 놓인 상태였다.

"여섯 전선에서 여행자를 보지 못했어."

여행자 앞에 선 오시리스는 초라했다. "넌 보았단다, 아들아. 네 형제와 자매들을 구한 불 속에 있었는걸. 적군을 찢어발기던 전기 볼트 속에도 있었지. 전선을 지키던 보라색 보호막에도…"

"이 책임을 낭만으로 꾸미지 마. 우리는 무기를 휘두르는 거라고."

대변자는 고개를 저었다. "빛이 너를 휘두르는 거란다, 오시리스. 네가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너의 존재가 정해지는 것이지. 여러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장엄한 빛의 영예로운 연장선 중 하나가 되는 거야."

오시리스는 그 현란한 말소리에 초조해졌다. "그렇다면 말을 더 분명하게 하는 게 좋겠지. 나를 제대로 인도할 수 있도록."

대변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의지 없이? 그렇게 하면 어둠과 다를 게 없는걸."

"나는 그저 지도를 부탁하는 것뿐이야. 지금 우리는 아주 미묘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잖아." 오시리스의 목소리에는 괴로움이 묻어났다.

다시 위엄 있는 자세로 돌아간 대변자는 돌 정원을 향해 손짓했다. "같이 앉겠어?"

15. 14: 기대주

세인트-14은 돌이 깔린 길을 따라 도시 안을 누볐다. 집에 있을 땐 거의 매일 걸었다. 시간이 나는 대로.

사람들이 손을 흔들었다. 환호하기도 했다.

격려와 선망의 표시를 물질로 보여주기도 했다.

빵. 토큰. 솜씨 좋게 짜낸 위엄 있는 보라색의 장식술과 띠 등.

그의 이름은 수호자와 거의 동격이 되었다.

다들 우러러보고 존경하는 이미지로.

세인트는 미소 지으며 그들과 악수했다.

웃으며 그들의 선물을 받았다.

그들의 기쁨이 곧 그의 기쁨이었다.

그는 그들이 목에 둘러주고 기대감으로 조여준 보라색 띠의 막중한 무게를 느꼈다.

그의 방어구는 신앙이었다. 이동 중에 미끄러지며 느슨해지는.

그들은 함께 노래했다. 그는 합창하는 목소리들과 빵을 나누었다. 그들의 머리에 리본을 묶어주었다.

그의 기쁨이 곧 그들의 기쁨이었다.

그들은 그에게 새로운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밝게 빛났다.

16. 15: 목자

아버지와 아들이 탑 위에 서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도시는 여행자 아래에서 쭉쭉 뻗어 나가며 번성하고 있었다. 여섯 전선은 인류를 새로운 위대한 사명 아래 집결하라 외치는 구호가 되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기나긴 절망의 밤에 희망이 속삭였던 약속의 근거를 찾기 위해 최후의 도시의 문턱을 찾아왔다.

"우리가 처음 도착했을 때 이렇게 되리라 상상이나 했어?" 세인트-14은 탑의 난간에 기댔다.

대변자는 분주한 도시의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빨리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해낼 수 있으리라는 점은 언제나 확신했지."

"내가 처음 각성했을 때를 기억해?"

"기억하지."

"내가 다른 이들이 따르게 될 모범 사례가 될 거라고 말했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었지?"

"나는 몰랐어. 그저 네 잠재력을 믿었을 뿐."

여행자는 옅은 색의 하늘을 지배하며 표면에서 빛의 광선을 쏘아 멀리 보이는 산들 위로 반짝이는 돔을 이루었다.

"우리가 내리는 선택에 대해 종종 생각해보곤 해. 정말 옳은 선택이었는지. 우리가 잃은 자들이 과연 그 선택에 동의할지. 그들을 기리려고도 하고."

"우리는 연약한 존재이지. 엑소도 마찬가지고. 의문을 던지고, 자신을 성찰하는 것은 좋은 일이야." 대변자는 세인트-14의 어깨를 붙잡고 자세를 곧게 잡아주었다. "네가 우리를 위해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 나는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지만, 그런 희생도 인생의 달콤함의 일부라는 점만은 얘기해줄 수 있지."

세인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많은 것을 배웠어." 그렇게 말하며 세인트는 고개를 들었다.

둘은 번잡하게 흐르는 도시를 지켜보았다.

"우리가 완전히 이기고 나면 당신은 뭘 할 셈이야?"

대변자는 머릿속에서 끈기 있게 단어를 조합했다.

"제페토와 나는 발사 기지에 당도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불모지를 수색했지. 제페토는 거의 희망을 잃은 상태였어." 대변자는 세인트-14을 돌아보았다. "그 작은 빛은 어디를 찾아야 하는지 알고 난 뒤로는 정확하게 네가 있는 곳을 짚어냈지." 대변자는 웃었다. "이전이나 이후 같은 것은 없단다, 내 아들아. 우리는 시도하고, 의심하고, 성장하는 거야. 길은 하나뿐이란다."

17. 16: 정치

"오시리스, 미안해. 아이코라는 네 역할을 대신할 수 없어."

"아이코라, 제발 나가줘."

아이코라는 날카로운 말투로 되물었다. "대화의 주인공이 들으면 안 되는 얘기를 하려고?"

"아이코라가 원한다면 있어도 돼. 이유를 들을 자격이 있으니까." 대변자는 아이코라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아이코라는 대답했다. "동감이야."

"좋아."

"그래. 그럼, 오시리스…

"아이코라가 회의 앞에 서게 해줘." 오시리스는 자세를 가다듬었다. "내 역할을 대신할 능력이 충분하고도 넘친다고. 게다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이었다. "여기서라면 보좌할 사람들도 충분하잖아."

대변자는 몸을 앞으로 숙였다. "오시리스, 네 후임자를 네 맘대로 선출할 권한은 네게 없어. 우리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대화가 있었니. 회의에서 선봉대에 기대하는 게 있어. 충족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대변자, 나도 이해해." 아이코…

"정치란."

대변자는 자세를 꼿꼿이 했다. "평화를 유지하여 우리가 함께 미래를 위해 싸울 수 있도록 해주는 협정이지."

"아이코라는 나를 가장 잘 대표할 거야. 단순한 후임이 아니라."

"네 의무를 이행하려면 네가 여기 있어야 한다고."

오시리스의 눈길이 대변자의 가면을 꿰뚫을 듯이 쏘아보았다. "이 도시를 보호하는 것 말고 내 의무가 또 있나? 우리는 어둠 속의 한 지점이야. 위협이 우리에게로 오는 것을 마냥 기다릴 수 없다고. 누군가는 막아야 해."

대변자는 일어섰다. "우리가 막을 거야. 때가 되면 함께."

오시리스는 한숨을 쉬었다. "인내심을 가지라고…" 말투에서 악의가 흘러나왔다.

18. 17: 덧없음

제페토-3-1-294:
안녕하세요, 사기라와 오시리스 형제.
이 통신 채널을 항상 열린 상태로 유지해 주세요.

사기라-3-1-294:
아, 좋은 생각이네요. 하위망을 구성하는 거군요.

오시리스-3-7-294:
다음 접선을 놓치겠군.

세인트-3-8-294:
그래? 네 일정이 갑자기 길어지는 걸 보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 선봉대에는 네 함선이 파손되어 지연이 생겼다고 할게. 또 너 때문에 거짓말하게 만들지는 마. 난 거짓말하는 것 싫다고. 제페토도 싫어하고.
그리고, 사기라에게 내가 약속을 잊지 않았으며, 지키지 않으면 나에게 빚지는 거라고 얘기해줘.

오시리스-4-0-294:
사기라는 도박 안 해.

세인트-4-1-294:
도박 아니야. 도박이랑은 다르다고. 아무래도 네게 잔소리를 충분히 하지 않는 모양이네, 우리 서신에 네가 회신을 보내는 시간은 정말 끔찍하게 느리다고.
제발 내 제안대로 해봐. 분명해 도움이 될 거야.

오시리스-5-14-294:
아이코라는 잘 있어? 너는 잘 지내고?

세인트-5-14-294:
우리 둘 다 실망했지만, 그래도 살아야지 뭐.
아버지도 계속 널 변호할 순 없고.

오시리스-5-14-294:
내 변호는 내가 해.

세인트-5-17-294:
정말 굉장했어.
지금 어디야?

오시리스-6-2-294:
답을 구하는 중이지.
곧 다시 얘기하게 될 거야.

오시리스-9-29-296:
지금 어디야?

19. 18: 원망

태양의 바람
모래가 흐느낌을
돌 위에서 거두네.
유리를 깨며
자신을 지키네.

네 말이 맞았어.
도움이 되더군.

20. 19: 재회

세인트-14은 격납고에서 함선이 드나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부산한 도시 속에서 함선이 도킹하거나 이륙하는 소리에도 규칙이 있었다.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여러 번 연습된 평화로움.

한 방문자가 회색 비둘기에 발을 들였다.

제페토가 돌아서서 그를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오시리스 형제. 정말 반갑네요. 사기라도 같이 왔나요?"

"안녕, 제페토. 사기라는 아이코라를 보러 갔다." 오시리스는 회색 비둘기의 통로에 앉아 손가락으로 리본을 만지작거렸다. "안녕, 세인트."

"오시리스? 난 우리의 재회가 네 투영과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설마 그럴 리가…"

---

"널 위해 아주 멋진 제단을 만들어놨군. 너 죽는 거야?"

세인트-14은 웃었다.

"다시 만나서 정말 반갑다, 형제여."